토지를 보고
토지는 땅을 기반으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이다.
이 땅에 산업화가 이루어지기 전 우리네는 오로지 땅에 의존하여 살았다.
오직 농사만이 유일한 생존방식이었던 그 때, 농자천하지대본이란 말이 절로 나왔다.
현대사회에서 자본가와 노동자가 있듯이, 그때에도 지주와 소작농이 있었으며, 어떻게 보면 현대사회 보다 더 다양한 사람들이 여러 계층을 이루며 한데 어우러져 살았다.
생산은 인간의 노동력에 중심을 둘 수밖에 없던 구조였기에 사람들이 한데 어우러져 사는 일이 중요했다.
그렇게 형성된 것이 공동체 의식이고 전통문화이다.
놀이도 노동도 함께 어울려서 할 수밖에 없었던 그 시절.
이제는 모든지 혼자서 할 수 있다.
사람들이 뿔뿔이 흩어져서 그런 것인지, 그런 도구들이 나와서 흩어진 것인지 어느 것이 우선이라고 할 수는 없겠지만 시대의 변화가 왔고, 사람들은 그 변화에 맞춰 바뀌어 나갔다.
그러나 옛 것이라고 다 버려야 하고 바꿔야 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무리 문명이 발전했다고 해도 지금도 사람들은 어울려 살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옛 것을 모조리 다 받아들여 계승해야 한다는 말도 맞지 않다.
어느 것을 취하고, 어느 것은 변형시키며, 어느 것이 버려야 할 것인지를 곰곰히 따져봐야 한다.
우리는 급격하게 산업사회로 접어들면서 많은 것을 버려왔다.
곰곰히 따져볼 새도 없이 그저 옛 것은 낡은 것이고 안 좋은 것이란 생각으로 버리기에만 급급했다.
이제 곳곳에서 옛 것을 다시 따져보는 작업들이 이루어지고 있다.
나는 농사를 지으려고 하고 있다.
나의 溫故而知新 작업은 농사를 중심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공동체 의식이 빛을 발하는 구조는 협업구조이다.
그 협업구조를 가장 잘 반영할 수 있는 것이 농사라고 생각한다.
산업사회와 농업사회가 병행해서 함께 나갈 수는 없을까?
지금까지는 산업사회에 의한 일방적인 농업사회 억압화의 과정이었다면 이제부터는 함께 살아나가는 길을 모색해야 하지 않을까 한다.
먹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으며 자연과 떨어져 살 수 있는 사람은 없기 때문이다.
자연과 인간과 더불어 사는 방법을 배울 수 있는 가장 좋은 구조는 농사를 통해서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사람의 발이 두 개이니 양 발을 한 쪽에 하나씩 두고 살 수 있었으면 한다.
그래서 귀농이라고 해서 막무가내로 농촌으로만 산골로만 가는 것도 맞지 않다고 생각하며, 반대로 산없화, 도시화라고 도시만 팽창시키는 것도 맞지 않다고 생각한다.
도시는 도시 안에 농업을 활성화 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하며, 농촌은 농촌 안에 도시를 활성화 하는 방향을 모색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한 마을이, 한 도시가 자급자립할 수 있는 구조를 만들어야 할 것이다.
도시든 농촌이든 사람이 살 수 있어야 하며, 사람이 살기 위해서는 자연이 살 수 있어야 한다.
어느 한 쪽만이 옳으며 어느 한 쪽만이 살 수 있는 곳이라면 반쪽 짜리 밖에 되지 않는다.
지금 도시에서는 사람이 넘쳐 흘러 제 몫을 분배받지 못해서 굶는 사람, 결국은 자신의 목숨을 끊는 사람이 넘쳐나고 있다.
반대로 농촌에서는 사람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어 폐허가 되는 마을, 노인들만 넘쳐 흘러 조만간 사라질 마을들이 넘쳐 난다.
제도적으로 정책적으로 최소한의 생존을 보장해줘야 한다.
실업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넘쳐나는 도시 노동력을 어떻게 해결할지 고민해야 한다.
그 좋은 해결 방안으로 농촌 활성화 사업이 있지 않을까 한다.
농촌도 사람이 살 수 있게 만든다면 가지 않을 사람이 없다.
하지만 지금 농촌은 사람이 살 수 있지 않은 구조이다.
도시 빈민을 고민하면서 함께 농촌문제를 고민해야 한다.
양자는 서로 맞물려 있고, 그렇기에 해결방법도 하나로 통해 있다.
토지를 보고 사람살이에 대하여 고민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