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제주도 잠녀의 물질하는 모습. 제주도 잠녀들은 철마다 전국은 물론 일본까지 출장을 다니며 끈질기게 살아왔다
정용 씨의 살림
이 분은 제주에서 태어나 지금까지 농사만 지으며 살았다고 합니다. 식구는 아내(41), 맏아들(21), 맏며느리(18), 둘째 아들(10), 맏딸(23, 일본 건너감), 둘째 딸(15), 셋째 딸(8)로 모두 8명이고, 그 가운데 농사짓는 사람 5명입니다. 땅은 제주도답게 논은 없고, 밭 4,800평을 농사짓습니다. 2,400평만 소작을 하고 나머지 2,400평은 자작을 하니, 당시로서는 꽤 유복한 집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지금도 그렇겠지요. 기르는 작물은 보리, 조, 콩, 밭벼, 고구마, 풋베기콩 등입니다. 집의 텃밭에는 고구마 모종을 키우고 마늘, 파, 상추, 배추, 호박, 옥수수, 사탕수수를 심어 먹는다고 합니다.
뭍과 다르게 소작 관행이 아주 재미있어 잠깐 소개하겠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일종의 전세보증금처럼 땅을 빌리는 사람이 돈을 맡기고, 계약기간이 끝나면 밭주인이 그 보증금을 돌려준다고 합니다. 이러한 계약은 오로지 입으로만 이루어지고, 밭주인은 보통 1년에 20%의 이자를 먹는다고 합니다. 이런 관행이 참 많은데 다카하시는 땅은 많은데 농사지을 사람이 적기 때문이 아닐까 예상합니다.
또 특이한 것으로는 공동으로 관리하는 꼴밭이 따로 있다는 점입니다. 제주도하면 들판에서 뛰노는 말과 소가 생각나지요. 이 사람의 꼴밭은 600m 떨어진 1,500평의 땅으로, 여기에는 소나 말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돌담을 둘렀습니다. 제주도에는 돌담을 두른 밭이 많은데 그 까닭은 놓아기르는 소나 말 때문이라고 합니다. 아무튼 꼴밭에는 자골(자귀풀)을 길러서 그걸 베어 겨울에 소에게 먹인다고 합니다. 소를 기르는 방법도 재미있습니다. 소도 공동으로 놓아기르는데, 이 마을에는 그럴 만한 곳이 없어서 이웃마을 방목계에 들었다고 합니다. 보통 음력 6월 초부터 8월 말까지 거기에 데려다 놓는데, 비용은 늙거나 어리거나 구별 없이 소와 말 1마리에 40전입니다. 대신 막 태어난 놈은 공짜이고, 계원은 할인 혜택이 있어 한 사람에 20전이라고 합니다. 놓아기르는 소와 말은 주인들 가운데 1명씩 3~5월과 9~10월에 순번대로 돌아가며 산에 풀어놨다가 끌고 온다고 합니다. 곁다리는 그만 잡고 본격적으로 농사짓는 방법을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자귀풀(우)
먼저 450평의 밭에 보리를 기르는 방법을 보겠습니다. 이 밭에는 앞갈이로 밭벼를 기르는데 그걸 음력 10월 20일에 거둡니다. 아직 가보지 못했지만 정말 따뜻한가 봅니다. 그리고는 10월 말에 돝거름을 냅니다. 제주도는 소똥보다 돼지똥을 거름으로 더 많이 썼습니다. 주인 내외와 맏아들 내외가 아침부터 저녁까지 10시간 동안 모두 100지게를 져 나른다고 합니다.
다음날 아내와 며느리가 거름을 다섯 두둑에 뿌리고, 주인은 한쪽부터 보리를 뿌립니다. 그러고 나서 쟁기질합니다. 이런 식으로 다섯 두둑씩 거름을 주고 보리를 뿌리고 쟁기질합니다. 그러는 사이 맏아들은 돌담 둘레에 검질(김)을 매고 쟁기질하지 못하는 부분을 괭이로 갑니다. 보리는 모두 3말을 뿌리는데, 2말 5되는 쟁기질 전에 뿌리고, 쟁기질 한 뒤 남은 5되를 다시 뿌립니다.
밭 모양은 아래 그림처럼 돌담을 두르고 사람만 드나들 수 있게 입구를 냈습니다. 이걸 세 ‘파니’ 또는 ‘칭’이라고도 부른다고 하는데, 배미를 뜻합니다.
쟁기질은 두뱃때기를 합니다. 한 이랑을 왔다갔다 두 번 가는 것을 말합니다. 소로 한 번 갈아 놓으면 맏아들은 흙을 덮는 일을 합니다. 이 일은 섬비를 가지고 합니다. 섬비는 뭍의 끙게와 같은 것입니다. 소나무 가지나 떨기나무를 모아서 묶고 무게를 더하기 위해 그 위에 돌을 얹어서 끌고 다니면 보리가 흙에 덮이는 도구입니다.
흙을 덮으려고 섬비를 끄는 맏아들(좌) 쟁기질, 쟁기질 간격은 30cm(우)
흙을 덮고 나서는 아내와 며느리가 곰베(곰방메)를 들고 다니며 부서지지 않은 흙덩어리를 부숩니다. 이렇게 하여 보리 뿌리는 일을 끝냅니다. 아침 7시부터 점심을 30분 먹고 거의 4시가 다 되어 끝냈다고 합니다.
보리를 다 뿌리면 이제 관리에 들어갑니다. 뿌리고 나서 바로인 음력 11월 초부터 3월 17일까지 아내와 며느리가 달마다 초하룻날에 오줌을 열두 허벅을 줍니다. 허벅 하나에 1말 정도 들어간다고 하니 모두 12말쯤 됩니다. 식구 8명이 한 달에 오줌을 열두 허벅을 누기 때문에 거름이 모자라서 다른 보리밭에는 오줌을 웃거름으로 주지 못하고, 대신 풋베기콩을 밑거름으로 줄 뿐이라고 합니다. 허벅은 제주도만의 독특한 농기구인데 요즘 국립민속박물관에서 전시회를 하니 관심이 있으면 가 보시기 바랍니다.
김매기는 음력 2월 20일에 애벌매기를 합니다. 음력 10월 말쯤 뿌렸으니 4개월 지나 처음으로 김을 맵니다. 주인, 아내, 맏아들 부부, 둘째 딸 이렇게 5명이 아침 10시부터 점심시간 포함해 7시간 걸려서 끝낸다고 합니다. 이때 보리는 9㎝ 안팎으로 자라 있습니다. 드디어 딸이 나온 걸 보면 역시 며느리에게 일을 많이 시키고 딸은 애지중지 길렀나 봅니다. 김매기는 한번으로 끝내고, 음력 4월 초에 밭에서 저절로 나는 메귀리를 주인 혼자 뽑는 정도만 합니다.
음력 4월 하순에 보리가 다 익으면 거두어들입니다. 앞에 말한 다섯이 아침 5시부터 시작해 점심에 한 시간 쉬고 오후 4시에 끝냅니다. 한 사람이 세 두둑을 맡아서 베고, 두둑마다 한 움큼씩 땅에 눕혀 놓습니다. 그걸 2~4일 동안 말린 다음, 주인 혼자 단을 묶는 데 하루 걸립니다. 단은 15~20움큼으로 한 단을 만들어 모두 320단이 됩니다. 그걸 주인과 맏아들이 소와 말에 싣고 한나절 걸려 집으로 나릅니다. 한 바리에 20단을 나를 수 있어 8번을 오가야지 다 나르고, 집에다가 눌(가리)을 쌓습니다.
조와 콩 뿌리기
소와 말을 끄는 맏아들
2004년 8월 밭밟기를 재연한 모습. 제주도 사투리로 이를 밧발림이라고 한다
아무튼 먼저 주인이 골체(삼태기)로 재를 나르면 아내가 골체에 담아다 뿌립니다. 그러고 나서 씨는 주인이 뿌립니다. 망태에 씨를 담아 왼쪽 어깨에 걸고 오른손으로 씨를 뿌립니다. 그 사이 맏아들은 곰베로 흙덩어리를 부수고, 며느리와 둘째 딸은 호미로 김을 맵니다. 주인이 씨를 뿌리고 쟁기질한 뒤, 다시 웃씨(5되)를 뿌리고 섬비를 끌어서 흙을 덮은 다음 소와 말을 데리고 밟게 합니다. 맏아들이 소와 말 한 마리씩을 끌고 가고, 며느리와 둘째딸이 이를 따라가면서 밭을 밟습니다. 제주도에서는 씨를 심지 않고 뿌리기 소를 앞에 놓고 말을 그 뒤에 놓습니다. 소와 말을 함께 끌 경우에는 늘 소를 앞에 놓고 말은 이를 뒤따르게 합니다. 소로만 하는 경우 또는 말로만 하는 경우도 있습니다. 이렇게 밭을 밟는 데는 보통 대여섯 마리의 소와 말을 쓰는데, 한 집에서 그 정도로 많이 키우지 못하기에 품앗이를 합니다.
콩은 웃씨를 뿌린 다음 곧바로 흩뿌립니다. 이렇게 제주도에서는 콩도 심지 않고 뿌립니다. 아마 새 피해가 적기 때문이 아니었을까 합니다. 까치만 해도 1963년에 처음으로 제주도에 방사되었다고 하니 말입니다. 또 콩에 섬비를 끌어 흙을 덮기 전에 돌담 둘레에는 들깨를 한 줄 뿌립니다. 곧 이 밭에서는 조와 콩, 들깨가 함께 자랄 것입니다.
이상으로 1930년대 말 제주도에 살던 김정용 씨의 농사를 간략하게 살펴보았습니다. 제주도는 뭍과 다르게 참 특이한 모습이 많았습니다. 제주도는 지리적인 조건 때문에 논은 별로 없었다고 합니다. 제주도를 조사한 다른 부분에서는 논이 나오기도 하는데 논벼보다는 밭벼가 중심이었습니다. 그래서인지 쌀도 주식이라기보다는 내다 팔거나 제사 때 조금 쓰는 것이 다였다고 합니다. 지난번 텔레비전을 보니 제주도에서는 국수에 돼지고기를 넣어 먹는다고 하더군요. 이것도 집집마다 돼지를 키우는 관습에서 오지 않았을까 합니다. 제주도에서는 말이나 소는 놓아기르고 주로 돼지를 이용해 똥도 처리하고 거름을 만들었습니다. 그러니 제주도에서는 잔칫날 돼지고기가 나오지 않으면 전라도 사람이 홍어를 먹지 못한 것과 같은 대접을 받았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아직 제주도를 다녀오지 못해서 다음해에는 직접 갔다올 생각입니다. 신혼여행으로 다녀오신 분들도 다시 한 번 꼼꼼히 제주도를 체험해 보시면 재미있을 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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