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발. 수암 파출소 앞에서 골목으로 들어서면 옛날 수암면사무소로 썼다는 주류창고의 앞에 군수 송덕비가 몇 개 서 있다. 아래의 비석은 그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 강희 oo년이라 써 있는데 흐릿하여 잘 읽을 수 없다.

 

 

 

1910년대에 개교한 안산초등학교. 100년 가까이 되었다. 저 건물이 원래 쓰던 교사이고, 현재는 새로 지은 건물을 쓰지만 그것도 여느 학교에 비해 자그마하다. 운동장 한켠에 교가비가 서 있는데, 옛 교과비를 보면 황해를 굽어보고 있다는 옛날 모습을 추억할 수 있는 가사가 눈에 띈다.

 

 

 

초등학교를 나와 관아지로 향하다 보면 큰 회화나무가 한 그루 서 있다. 양반들이 좋아했다는 회화나무. 입신양명을 바라는 뜻에서 심었단다.

 

 

 

관아지에서는 드디어 옛 관아를 복원하려는 공사가 한창이다. 정청과 익사에 쓸 나무라는 걸 적어 놓은 걸 보니, 본관과 그 옆에 딸린 건물까지 복원하나 보다. 그럼 나주의 금성관 같은 모습이 될까? 

 

 

 

관아지에서 소금골로 넘어가는 고개까지는 주민들이 텃밭으로 쓰고 있다. 한적하게 걸을 수 있는 좋은 길이다. 가는 길에 여러 작물과 식물들이 보인다. 아래는 돌나무 꽃.

 

 

씀바귀의 한 종류 같은데 이렇게 군락을 이루어 꽃이 핀 것을 보니 일부러 심은 듯하다. 이것은 무엇이고, 또 왜 여기에 이렇게 심었는지는 텃밭 주인을 만나야 알겠다.

 

 

 

소금골로 넘어가는 고갯길에 자라는 때죽나무의 꽃. 때죽나무는 독성이 있어 물고기를 잡을 때 잎과 열매를 찧어서 물에 담가 놓으면 고기들이 떼로 죽는다고 하여 때죽나무라는 설도 있고, 중과 관련된 이야기도 있다고 하는데 그 이야기는 기억이 나지 않아 넘어간다.

 

 

소금골을 통해 산을 오르다보면, 멋진 습지를 만날 수 있다. 아무도 밟지 않은 처녀지. 고마리가 한가득 자라고 있다.

 

 

숲이 멋진 수암산 자락의 산길을 오르면 수암봉의 모습도 색다른 각도에서 즐길 수 있다. 수암봉은 원래 수리의 부리까지 있던 곳이었는데 한국전쟁 때 폭격을 맞아 부리가 사라졌다는 동네 주민의 증언도 있었다.

 

 

 

지구에서 가장 오랜 세월을 살아 남은 양치식물. 그 양치식물의 하나... 이름은 기억나지 않는다.

 

 

 

아까시나무가 멋드러지고 당당하게 자라고 있는 숲. 향실암이라 이름을 붙인 곳에는 이것 말고도 다양한 정원수들이 위용을 뽐내며 자라고 있다.

 

 

향실암 근처는 사설묘지로 허가를 받은 지역이다. 곧, 사유지라는 말이다. 현재 시장에 내놓았다고 하는데, 바로 옆으로 고속도로가 지나고 있어 선뜻 사겠다는 사람이 나설지는 의문이다. 주인이 선뜻 기증을 하는 건 어떨까? 자본의 시대에 꿈과 같은 일일까? 뜻을 가진 사람들이 함께 상의하면 좋겠다. 

 

 

향실암. 무신년을 꼽아보니 지금으로부터 40여 년 전인 1968년이다. 곧 이곳은 1968년부터 누군가가 사설묘지를 만들고, 암자를 짓고, 나무를 심어 정원으로 꾸몄다는 말이다. 그런데 지금은 고속도로가 나고, 안산이 개발되면서 그냥 버려진 느낌.

 

 

향실이란 호를 가진 사람은 누구이고 어떤 사람일까? 의문이 들지만 그 의문을 해결해 줄 수 있는 사람은 아직 만나지 못했다. 

 

 

향실농원을 지나 남사박으로 나오는 길에 자리한 연암사 가는 길. 연암사는 안양예술고등학교와 관련 있는 분이 세운 개인사찰이다. 그 길목에 누군가 나무를 팔려고 심어 놓았다가 미처 팔지 못해 크게 자라버린 메타세콰이아가 우뚝 서 있다.

 

 

연암사의 포대화상. 주로 천태종과 관련된 절에 가면 쉽게 볼 수 있다. 그럼 이곳은 천태종? 그건 알 수 없다. 이밖에도 다양한 석상과 심지어 제주의 하루방까지 자리하고 있어서... 포대화상은 중국의 선승인데, 자루를 가지고 다니며 시주를 받고 사람들의 운명을 점쳐 주었다고 한다. 그만큼 민중과 가까운 사람이었다.

 

 

연암사 삼성각 앞에 앉은 석상. 이것은 누구를 형상화한 것인지 잘 모르겠다.

 

 

연암사 대웅전 전경. 아주 커다란 불상과 그 뒤로 바위 위에는 석탑까지 서 있다. 무엇을 표방하는지 어떤 성격의 절인지 도무지 감을 잡을 수 없다.

 

 

 

불상만 따로 보면 아래와 같다. 

 

 

연암사 대웅전의 단청. 새로 칠한 지 얼마되지 않았는지 색이 뚜렷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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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암 회화나무, ‘큰 인물이 나온다’
김석기의 <노거수>를 찾아서 ⑦ 양반집서 심었다는 회화나무

 

 

수암에는 전에 몇 번 온 적이 있지만, 이 길로는 처음이라 조금 헤맸다. 마침 놀이터에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놀러 나와 계셔서 뭐 주워들은 것 좀 없을까 다가가 인사를 여쭈었다.

“할머니, 여기 큰 나무가 어디에 있어요?”

그랬더니 여기저기서 한마디씩 하시는데 벌집을 건드린 것 같다. 지난 겨울 토종을 수집하러 다녔을 때도 그랬다. 할머니 한 분을 붙들고 말을 붙이다 보면 이런 씨앗도 나오고 저런 씨앗도 나오는데, 경로당 같은 곳에 가서 여러 할머니들께 여쭈면 아무것도 얻을 수 없었다. 대강 나무의 위치만 파악하고 얼른 화제를 돌렸다.

“그럼 다들 여기서 오래 사신 건가요?”

이 물음에는 어째 대답이 영 시원치 않다. 다들 이사를 온 지 얼마 되지 않으셨단다. 안산을 다니다 보면 토박이를 만나기가 참 힘들다. 참빗으로 훑듯이 다녀야 만날 수 있을까 이렇게 수박 겉핥기식으로는 더더욱 그렇다.

어쨌든 할머니들이 알려주신 대로 따라가니 마침내 큰 나무 한 그루를 찾았다. 그건 바로 회화나무다. 회화나무는 옛날부터 양반집에서 심기로 유명한 나무다. 잎사귀를 본 분은 잘 알겠지만 아카시처럼 전형적인 콩과인데, 원산지인 중국 북부에서 들어왔다고 추정한다.


 

중국에서는 집에 회화나무를 심어야 큰 학자나 인물이 나온다고 여기고, 출세한 사람이 나오면 그 상징으로 뜰에 심기도 했다. 그래서 영어로는 Chinese Scolar Tree라고 한다. 우리나라도 그 영향을 받아 양반집에서 주로 이 나무를 심은 것이다.

처음 이 나무를 만난 것은 서울에서였다. 정독도서관 입구에 보면 큰 나무가 하나 서 있는데, 그 나무가 회화나무였다. 그에 얽힌 추억은 없어 더 이상 떠오르는 건 없지만, 아무튼 그 나무 덕에 회화나무가 무엇인지 확실히 알았다. 여기 수암에 서 있는 회화나무는 다른 어느 곳의 나무 못지않게 멋들어진 모습을 뽐내고 있다.

 

 

밑동은 어른 너댓이 둘러 안아야 품에 담을 정도로 굵다. 다행히 주변에 집이 없어 마음껏 뿌리를 내리고 가지를 뻗을 수 있어 이렇게 잘 크고 있다. 장상동에서 보았던 은행나무의 초라한 모습에 비하면 정말 떳떳한 기품을 느낄 수 있다.

재밌는 것은 원줄기에서 자라고 있는 새끼 나무다. 등산객들이 오가며 재밌다고 다들 쳐다보고 한마디씩 나누는 걸 보았는데, 확실히 여느 나무에서는 보기 힘든 모습이다. 나무의 생리를 잘 모르니 그것이 왜 그런지는 전문가에게 물어봐야겠다.

 

마침 나무 밑에는 갓을 뜯고 계신 두 아주머니가 계셨다. 차림으로 보아 등산객은 아니신 듯하고, 혹시 이 나무와 관련하여 뭔가 재미난 이야기가 없을까 말을 건넸다.

나무를 찍는 내 모습이 특이하다고 여기셨는지 이건 사진을 찍어 뭐하냐고 그러신다.

그냥 멋있어서 남기려고 한다며 받아넘기고 이야기를 시작하니, 원래 살기는 저 아랫동네 그러니까 장하동 쪽에 산다며 오늘은 나물이나 캐러 나왔다고 하신다.

그래서 이 동네는 잘 모르신다고. 그러면서 저기에도 큰 나무들이 많으니 거기도 가서 사진을 찍으라고 일러주신다.

말씀하신 곳은 관아터라는 직감이 왔다. 모르고 지나다닐 때는 ‘큰 나무가 있구나’ 하며 다니던 길인데, 이렇게 의식을 하며 다니니 또 새롭다. 정말 누구의 말마따나 아는 만큼 보이는 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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