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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농업구술취재팀은 지난 16일 전라남도 화순의 동광원을 방문했습니다. 그곳에서 20대부터 동광원에서 농사를 지으며 살아오신 한 장로님(77세)을 만나 뵈었습니다. 한 장로님은 주로 율무와 고구마 농사를 지으시고, 자급용으로 논농사와 채소, 잡곡류를 짓고 계십니다. 그리고 몇 해 전부터는 전통방식으로 엿을 만들어서 판매도 하고 계십니다.




실례지만 언제 동광원에 들어와서 농사를 지으셨나요?

- 동광원에는 6.25 직전에 들어왔어요. 그래도 농사는 어려서부터 했어요. 아버지가 일찍 돌아가시고, 3살 때 어머니가 나를 두고 가버렸어요. 그래서 어려서부터 일을 했어요. 공부라는 건 생각도 못했는데 어디 가면 배운 사람으로 알아요.


예전에도 지금처럼 농약이나 비료는 사용 안 하고 농사를 지으셨나요?

- 중간에는 농약도 좀 했었어요. 그러다가 땅 살리기 운동한다고 안 하게 됐지요.

제가 6.25나고 한 사오 년 후에는 서울에 가서 인생공부 하려고 리어카 끌면서 고물장사도 했어요. 이현필 선생님이 의인은 교회에만 있는 것이 아니고 장돌뱅이 사이에도 있다고 하셔서 가본 거예요. 그렇게 서울에서 있다가 ‘자연식을 먹고 살려면 시골로 가야겠다’고 생각해서 60이 안 돼서 남원으로 왔어요. 그런데 거기서 자연식을 먹다보니까 쓰레기가 산더미처럼 나와서 ‘가공식품을 먹으면 안 되겠다’고 생각해서 딱 끊었지.


기장농사가 어렵다고 하는데 어떻게 하시나요?

- 어려운 것은 별로 없는데, 시기가 잘 안 맞으면 키가 커서 쓰러지기도 하고 죽어버리기도 하는 곤란한 점이 있어요. 기장은 6월쯤에 심는 것이 알맞은데, 그게 항상 같지 않아요. 그때그때 그해의 일기관계도 있고 우주적인 것도 있어요.

작년에는 그 시기를 맞추려고 늦게 심었는데 비가 통 오지 않아서 크지를 않았어요. 옛날 어른들이 ‘부스럼이 커야 고름이 많이 나온다’고 했는데 그러니 열매가 나올 것도 없었죠. 기장이 너무 키가 커서 잘 쓰러지길래 시기를 맞춘다고 늦게 심었는데 비가 안 오니까 크지를 않았으니 뭐 나올 것이 있어.

그래서 시기를 잘 맞춰야 하는데, 가물 때는 일찍 심어서 커버리는 것이 낫고 비가 자주 오면 늦게 심어서 어느 정도 패게 하는 것이 좋지. 우리가 마음대로 하기가 어려워요.


다른 농사는 안 하시나요?

- 다른 사람들이 안 하는 율무 농사를 하지. 한 20년은 된 것 같아. 율무는 거름이 많이 들어가요. 옥수수하고 비슷하게 해야 해. 적으면 열매가 잘 안 맺어요. 5월 달에 보리 심어 먹고 거기에 로타리 쳐서 골을 타고 모종을 심어요. 이건 습기가 좀 있어야지 너무 건조하면 죽어버려서 논에서도 잘 돼요.

모종을 심는 간격은 자기 마음이야. 두 자 심을 사람은 그렇게 심고, 한 자 심을 사람은 한 자 심고. 자기가 경험을 하다보면 요령이 생기지.

제초는 그냥 김을 매는데 어떻게 하냐면 처음에 골에다 심어서 어릴 때는 그냥 괭이로 긁어주다가 조금 더 크면 관리기로 그냥 콱 파서 북주면서 덮어줘 버려요. 그러면 훨씬 쉬워요.

율무는 목도열병도 잘 생기고 벌레 때문에 잘 죽어서 살충제를 좀 해줘야 한다고 하는데 나는 안 해줘요.

탈곡은 도리깨로도 하고, 차로 밟기도 하는데 그렇게 하면 좀 깨지더라고. 그러고 나서 정미소에 가져가서 현미로 만들어요. 요즈음은 정미소라도 해주는 데가 별로 없어요. 여기도 처음에는 못 한다고 했는데 내가 밀어붙였지. 율무를 찧으려면 쌀보다 힘도 더 들고, 돈도  더 비싸요. 옛날 �방에 찧듯이 찧는데 그러면 먼지가 엄청나요. 쌀은 마를수록 부수어지는데 율무는 마를수록 좋아. 수수는 방아를 안 찧어도 먹지만 이건 안 돼요.


고구마는 어떤 건가요?

- 호박고구마를 심는데, 이것이 소출은 적어도 맛이 좋더라고. 처음에는 먹으려고만 했는데 하다보니까 판로만 되면 더 낫겠다 싶어서 요즘에는 팔기도 하지. 일반 고구마보다 잘하면 만 원 정도 더 비싸게 팔아요.

몇 년 전에는 굼벵이가 다 먹어서 적자가 나버렸어. 굼벵이는 애초부터 흙 관리를 잘 해야 되요. 토비가 많으면 굼벵이가 많아지고 고구마도 맛이 없어요. 고구마는 한 곳에 계속 심어도 괜찮은데, 그러면 땅이 뼈 마른다고 그래요.


고구마 순은 어떻게 틔워서 심으시나요?

- 추운 지방에서는 조금 어려운데 이거는 굉장히 뜨거워도 죽지 않아서 하우스가 있으면 거기서 기르면 돼요. 고구마는 따뜻할수록 순이 잘 나고 70℃가 되도 피해를 안 받아요. 하우스가 없으면 활대로 터널을 만들고 보온덮개를 덮어서 낮에는 벗겨주고 밤에는 덮어줘. 비가 올 때는 벗겨주고, 안 그러면 가끔 물을 줘야 돼요.

심는 건 관리할 수 있다면 일찍 심을수록 좋아요. 여기는 날만 따뜻하면 해동이 되니까 구정 지나서 심어도 돼요. 해남 이쪽은 모종을 배게 꽂는데 그래도 고구마가 다 달려요. 배게 심으면 조금 작게 되고, 너무 일찍 심으면 적게 달리는 대신 크게 되고 그런 것이 있어요. 그래서 이쪽은 고구마가 6월이면 나와요.

우리는 매듭에서 고구마가 생기니까 비스듬히 심어왔는데, 심을 때 너무 깊게 하면 캐기가 나빠요. 고구마 덩굴이 너무 길면 낫으로 잘라줘요. 일반 농가는 제초제를 쳐서 못 자라게 해요. 그리 안 하면 고랑으로 뻗은 놈을 뽑아서 엮어주면 되요. 거름이 너무 많으면 덩굴만 잘 되니까 문제가 있어요.


퇴비는 어떻게 만드시나요?

- 옛날에는 다 만들어 썼는데 이제 힘이 없으니까 사서 써요. 옛날에 퇴비 만들 때는 퇴비간이 크게 있어서 거기에 풀을 막 베다가 작두로 썰어서 쟁여놓고 요리 조리 뒤집어서 썩히는 거야. 한 세 번 뒤집으면 잘 떠요. 뒤집는 시기는 논매는 거랑 같아요. 모내고 20일 만에 초벌 매고, 다음에는 15일 만에 매는데 그런 식으로 거름도 뒤집는 거야. 대충 계산해보면 35일은 더 걸려요. 소가 밟은 것을 섞으면 더 빨리 되는데, 그것만 가지고는 그래요.

그리고 거름이 말라 있으면 똥오줌이나 물을 뿌려서 습기가 있도록 만들어줘야 잘 떠. 마른 상태에서는 안 뜨고 너무 질어도 안 떠요. 그것도 죽이 맞아야해. 이건 자기가 경험을 해 봐야지 알아.


병해충은 방제는 어떻게 하시나요?

- 그냥 보고 있는 거지 뭐. ‘나 이거 못해도 원망 안 할랍니다’ 하면서 해. 내가 바가지 긁는 사람이 없거든.

옛날에는 병해충이 많지도 않았어요. 토비만 먹고 사니까 건강하고, 땅이 살아있으니까 힘을 쓰고. 그런데 지금은 비료 줘서 키만 커지게 하니까 땅이 힘이 없어져버렸어. 토비만 할 때는 뿌리가 강하거든. 그렇게 건강하게 커서 병해충이 별로 안 걸렸어.


지금도 섞어 심기를 하시나요?

- 무엇을 하냐면 수수하고 콩을 같이 심어요. 수수는 위로 커버리고 콩은 아래에서 자라니까 적당하게만 심으면 수수가 쑥 커버려요. 모종으로 해도 괜찮고 씨를 뿌려도 괜찮아요. 자기가 기술적으로 다문다문하게 뿌리면 되요.

또 여기는 뭘 하냐면 참깨를 심어놓고 그 사이에다 들깨를 심어서 그렇게 두 번을 해 먹어요. 참깨 베기 전에 들깨 모종을 옮겨 심어놔요. 아니면 거기에 콩이나 팥을 심던지 해요. 참깨는 두 달이면 되니까. 들깨도 이른 것이 있고 늦은 것이 있어요. 참깨가 꽃 피기 시작하면 늦은 들깨는 그때 모종을 심어요. 그런데 이른 것이 하얗게 보기는 좋은데 기름은 적게 나와요. 들깨가 사람 키보다 더 커버리면 제대로 수확이 안 나와요. 그래서 옛말에 키 크면 속없다는 거야.

그리고 들깨는 콩밭에다 넣으면 좋다고 그래요. 들깨향이 콩에 벌레를 덜 끼게 한다고 해요. 그런데 나는 추수할 때 귀찮아서 그렇게는 안 해요. 또 옛날에는 참깨하고 목화를 같이 심었어요. 그렇게 하면 참깨가 잘 열어요.


옛날에 과일농사는 많이 했나요?

- 그런 것은 없었지. 일본사람들이 와서 심었지 어디 배나 사과가 있었어요. 돌배나 감은 많았지. 제사상에도 사과나 배는 없고 밤, 대추, 감, 살구, 유자 이런 것이나 있었지.


보리 뒷그루는 어떤 작물을 하나요?

- 율무도 심고, 콩, 아무튼 전부 그때가 시기예요.


콩은 어떻게 키우나요?

- 콩은 너무 박토면 토비를 조금 해야 되고, 어지간하면 안 해도 돼. 심을 때는 콩에 따라서 작은 것은 배게 심고, 메주콩 같은 것은 한 자 정도 심어요. 콩이 잘 되는 곳이면 두 자 정도 심어야 해.

그리고 콩은 연작해도 되는데 그것도 계속 심으면 안 된다는 결론이 나와. 또 옛날 어른들이 콩은 습기가 있는 것을 좋아하고, 팥은 습기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고 했어요. 이런 건 자기가 자꾸 해보면 돼요. 안 해보고 하는 사람은 말쟁이고 학문쟁이지.


논농사 이야기 좀 해주세요?

- 제초제 대신 쌀겨를 한두 번 뿌려요. 모를 내고 일주일 이내로 한 번 뿌리고, 모 내고 나서 20일 안에 두 번째 뿌려주고서 그래도 풀이 나면 한 번 매줘요.

옛날에는 싹 손으로 맸는데 동네사람들끼리 품앗이를 했지. 오늘은 내 것, 내일은 네 것 하면서 순서를 정해서 맸어요. 모내고 나서 20일 안에 초벌을 매고, 풀이 많이 나면 도사리 짓는다고 호미로 파서 뒤집어엎어. 그러고 15일 만에 손으로 그 덩어리를 주물러. 그 다음 또 15일 만에 손으로 다 뽑아줘요. 그래도 풀이 많이 나면 네 번째는 다니면서 큰 풀을 뽑아주는데 그때는 벼가 크고 더우니까 힘들어서 시원할 때만 일하지.

옛날에는 하지 전 닷새, 후 닷새가 모내기 적기라고 했어요. 그때는 쌀은 일본사람들이 다 뺏어가서 가난하니까 다 보리를 심어먹어서 하지가 적기였어. 보리 때문에도 그렇고, 손으로 매니까 너무 일찍 내면 김이 나서 여러 번 매야하는 것 때문에 그랬지. 그런데 지금은 농약을 하니까 빨리 해서 먹잖아. 지금은 보리 망종이 중심이야. 옛날에는 하지 중심으로 농사를 했지.

모도 지금하고 비교하면 훨씬 크지. 손으로 심으니까 그렇고, 또 천수답이라서 그래요. 기계가 없으니 물을 퍼서 댈 수도 없고 언제 마를지 모르니까. 하지 때는 비가 많이 오니까 그때 심는데, 그럼 모가 커야 물을 많이 담아놓을 수 있어. 모가 작으면 녹아버리는데 모가 실하고 단단한 것은 물을 많이 담아도 녹지 않거든.

그리고 토질에 따라서 새끼를 많이 치는 논이 있고, 안 그런 논이 있어요. 새끼를 많이 치는 논은 적게 심어도 많이 쳐요, 그래서 어떤 분은 한두 개만 잡아서 심어요. 그래가지고 한 자 세치, 자가웃으로 심어요. 그렇게 해도 새끼가 많이 쳐버려. 새끼를 칠 때는 물을 넣어야 잘 쳐요. 어느 정도 자라면 물을 한 번씩 빼는데 그것은 경험에 따라서 조금씩 달라요

그때는 벼가 키도 별로 안 커서 잘 쓰러지지도 않았어. 돼지거름이나 소거름 많이 쓰는 사람이나 간혹 쓰러졌지.


예전에는 모를 40일 이상 키웠다고 하던데, 어떤 종자인가요?

- 우리 어렸을 때는 은방조, 아곡도라고 있었어요. 그리고 잊어먹어서 몰라. 그런 것들을 많이 심었어요.


논에 퇴비는 어떻게 했나요?

- 보리를 심어먹었으니까 이미 토비가 많이 들어간 셈이야. 그러니까 자연적으로 논이 거름지지. 그리고 보리를 수확하고 갈면 밑둥이 썩으면서 자연히 거름이 되는데, 그래도 거름을 해야 돼. 산에서 풀을 베어다가 보리 벤 것하고 같이 깔아놓고 써레질하는 것이지. 그것만 했지 추가로 주는 것은 없었어. 그러니까 수확이 적었지. 200평에 한 섬, 옛날에는 100근 두가마가 한 섬이여. 지금으로 하면 60㎏ 두가마지.

일제시대에는 거름이 나와서 좀 더 나왔고, 그래도 많이 나온 데가 어디냐면. 마을 앞에 고샅 논이라고 해. 마을 앞에 개똥이니 뭐시니 같은 것이 흐르는 곳이 더 나왔어. 지금은 이런 데를 별로 안 쳐주는데 그때는 마을 앞이 좋았지. 땅이 좋은 데는 밥맛이 꼭 찰밥 같았어요.


병충해에 대한 대책은 없었나요?

- 과거에는 그랬죠. 되는대로 쳐다만 보고 살았지. 그때는 깜부기병 같은 것도 있었고, 멸구가 심했어. 멸구는 석유를 모래에 섞어서 뿌려놓고 막가지로 벼를 쳐서 기름에 떨어뜨려서 죽으라고 했지. 대나무 같은 것으로 쓸고 가는 거야. 아니면 물로 그냥 흘러가게 하기도 했지. 제대로 된 것은 아닌데 그런 식으로 했지.

멸구는 벼가 익어가면서 오니까 빨리 되는 종자는 추석 안에 멸구가 없을 때 추수해버리는 사람도 있어요. 그런데 그것이 풍이 올 때 모가지가 나오니까 잘못하면 바람 맞는다고 해요. 바람 맞아버리면 이삭이 패면서 시큼시큼 해지는 폐단이 있어요.


엿은 어떻게 만드나요?

- 엿은 밀이니 보리로 엿기름을 길러요. 그런데 보리보다 밀이 더 달아. 보리로 많이 하는 건 색깔을 내려고 하는 거야. 보리는 하얗고 밀은 더 빨갛거든. 엿기름에다 쌀, 수수, 옥수수, 고구마 같은 것을 넣어서 삭히는데 그것이 잘 삭아야 엿이 잘 돼.

그걸로 감주를 만들어서 보자기에 짜서 찌꺼기를 싹 빼고 솥에다 넣고 불을 때는 거야. 그렇게 불을 때면 쫄면서 엿이 되는 거야. 불 때는 것을 잘 하면 금방 만들고, 못 하면 하루라도 못 끝내지. 어느 정도 불을 맞춰가면서 넘지 않도록 때야해. 그러면서 긴 주걱으로 계속 저어주지.

그렇게 하면 갱엿이 되는데, 조청보다 더 되게 만들어야 해. 그 도수를 잘 맞춰야 기술자여. 너무 되면 치기 힘들고 너무 눅어버려도 그렇지. 둘이 줬다 뺐었다 하면서 치는데, 기술자들은 나무 기둥에다 혼자 하기도 해요. 자꾸 치면 엿이 하얘지고, 바람이 들어가니까 사근사근해져. 빨간 갱엿은 먹기가 힘들어서 하얘질 때까지 쳐야 돼.

이렇게 엿을 만들려 하루를 더 잡아야 되요. 오늘 밤에 감주를 해서 놔두면, 내일 새벽부터 그걸 짜서 솥에 넣고 달여서 쳐야 돼. 이것도 몇 번 실패를 해보고 자기가 익혀야지 암만 방식을 듣는다고 해도 어렵지.


마지막으로 사람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없으신가요?

옛날에는 우리나라 풍속이 재미있었어. 정월달에 마을 사람들이 마당에 다 모여서 풍물을 놀면 등에 업힌 애기도 같이 춤추며 놀아요. 북치고 장구치고 소고치고, 덕구놀이라고 그걸 보면서 온 동네 사람들이 다 춤추고 논다고. 1월 한 달이 쉬는 기간이여. 설 쇠고는 집집마다 돌아다니면서 마당돌기를 하는데 농사가 잘 되라고 빌어주는 것이 하나고, 농사지은 걸 얼마씩 내놓으면 기금으로 만들어요. 그런 것들이 즐거웠지.

가다가 더우면 세수하고 바로 그 물을 먹고 그랬어. 그런데 지금은 과학이 발달해서 농약하면서 편히 살려고만 하니까 그런 것들이 다 없어졌어. 이런 것이 아쉬운 것이야. 좋은 것이라고 따라가다가 우리가 다 망하는 것이야. 그래서 물러가라 해야 하는 것이야.

나는 우리 조상들이 굉장히 지혜롭다고 생각해요. 김치 담가 먹는 것이나 농사짓는 것이나 만사가 다. 지금 방송에 나오는 건강식품이 다 우리 조상들이 먹고 살았던 것이잖아.

기독교도 우리 것을 알고 받아들여야 정상인데, 자기를 모르는 사람은 정신없는 사람이여. 내 것을 알고 다른 것을 받아들여야 해요. 다른 나라 말을 해도 내 나라 정신으로 내 것 위에다 해야 자기 정신이다 이거지.  지금 우리 기독교인은 너무 종교의식 때문에 문제가 많아요. 동광원은 문턱이 없어요. 예수님이 문턱이 없었거든. 그걸 우리 기독교인들이 앞장서서 해야 되는데 그러지 않으니까 안 돼요. 안 믿어도 기본 양심은 다 타고 나온 거예요. 자식이 안 믿는다고 부모가 내 자식 아니라고 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도 그렇게 생각하실 거예요.

그런 것을 직접 몸으로 보여줄 수 있어야지 의식이나 말로는 안 돼요. 여기 가끔 목사님들이 오시면 ‘네가 농사지어서 주면서 살아도 문제인데, 남한테 얻어먹고 살려면 교인 중에 제일 가난한 사람하고 똑같이 살면 목회를 잘 하는 것이다’라고 얘기해요. 예수님이 그랬어요. 그렇게 마음 다해서 하느님을 섬기고, 이웃사랑도 그에 못지않다는 것이지요. 그렇게 살 수 있으면 옛날처럼 살 수 있다는 것이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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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화순군 화순읍 훈리 46-2

 

1922년 무렵 건립되어 금융시설로 사용된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로, 삼면에 면한 도로에서의 고객 진입을 용이하게 하기 위하여 전면과 좌우측 모서리에 출입구를 두었다.

또한 상․하인방 및 코니스의 수평적 요소와 세로로 긴 창과 굴뚝의 수직적 요소를 통해 근대적 조형성을 잘 담아내고 있어 금융사적, 건축적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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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농업에서 배우자(35)-화순 김규환 님
산을 가꾸는 산채원지기, 백아산에서 보물을 만들다

 

전라남도 화순군 북면의 해발 300m에 자리 잡은 산채원을 다녀왔습니다. 해발은 높지만 따뜻해서 이 동네를 양지라 한다고 합니다. 집 앞에는 백아산이 우뚝 서 있고, 맑은 시냇물이 흐르는 곳입니다. 이런 천혜의 자연을 바탕으로 산채원에서는 200가지 이상의 산나물이며 산야초, 산양삼 등 산과 관련된 먹을거리를 보존, 보급하고 있습니다.

 

- 정말 좋은 곳인데, 어떻게 이곳에 정착하셨나요?
= 결혼하기 전에는 잠시 가평에서 민박집을 하며 농사를 지은 적이 있습니다. 결혼하면서부터는 사회생활을 했지요. 제가 담양 창평에 있는 고등학교를 나왔는데, 7년 전쯤 창평으로 내려왔다가 개인적인 사정 때문에 다시 올라갔습니다. 2003년부터 고향으로 가야겠다고 생각하기 시작했습니다. 고향에 가서 사회에 필요한 농사를 짓자고 마음먹었죠. 가만히 생각하니 유기농은 기본이겠고, 무엇보다 종자가 중요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런 생각에 부지런히 전국으로 산나물 씨앗을 모으러 다녔습니다. 솔직히 산에 다니면서 뿌리도 캐오고 했습니다. 요즘은 사람이 안 다녀서 숲이 너무 많이 찼습니다. 가만히 놔두면 산나물은 자연스럽게 없어집니다. 그러니 사람이 그 상태에 가장 가깝게 보존해 주는 것도 의미가 있지 않습니까. 그렇게 모은 씨앗이 한 200여 가지 됩니다.
그리고 이곳에 본격적으로 내려온 것은 지난 2006년 11월입니다. 내려와서 창고 같은 집을 조금 손봐서 살고 있습니다. 이제 슬슬 집을 지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 그럼 귀농을 하신 셈이네요?
= 저는 귀농이라는 말을 별로 좋아하지 않습니다. 도시 사람들이나 고향 사람들에게 귀농이라고 하면 꼭 실패한 사람이라고 인식합니다. 그래서 저는 귀농이라는 말보다는 귀향이라고 합니다.
제가 내려오면서 세운 원칙이 세 가지 있습니다. 처음 1년 동안에 초기 자본을 많이 투자하면 대부분 금방 실패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가더군요. 그래서 첫째, 집을 짓지 않는다. 둘째, 처음 1년 동안은 땅을 사지 않는다. 셋째, 농협 조합원에 가입하지 않는다. 이런 원칙을 세웠습니다.
농협 조합원에 가입하면 이자도 싸고, 돈을 끌어다 쓰기도 쉽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다 보면 금방 망가집니다. 그래서 지금 만 1년째 다 되어 가는데 아직 조합원에 가입하지도 않았습니다. 주변 분들은 돈도 싸게 빌릴 수 있고 하니 얼른 가입하라고 합니다. 하지만 가만히 보니 다들 농협에서 쉽게 돈을 끌어다 썼다가 힘들어 하더군요.

 

- 산채원을 만들 생각은 어떻게 하셨는지요?
= 제가 80년대 말 대학을 다니며 생활도서관 운동을 했습니다. 그 이후에도 정보 관련 운동을 해서 정보력에는 어느 정도 자신 있어요. 그래서 FTA 이후에도 살아남을 수 있는 농사가 무엇일지 2003년부터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축산, 원예, 주곡 같이 여러 농사가 있지만 그 시대는 이제 거의 끝났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여기에 승부를 걸면 답이 안 나와요.
그렇게 생각하다 보니 산과 관련된 이 분야만이 FTA와 상관이 없더군요. 아직 그네들이 산은 모르는 거지요. 우리나라는 국토의 70%가 산이라고 하는데, 여기에 무한한 자원이 널려 있다는 걸 그네도 모르고 우리도 잘 모르고 있습니다. 우리의 산에 FTA에서 살아남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특히 제가 어릴 때부터 나물을 잘 알았습니다. 어렸을 때 나물을 먹고 싶으면 소죽 쒀 놓고 호미나 칼 들고 나물 뜯으러 다녔습니다. 그러면서 많이 배웠죠. 지금 우리 주변에 널려 있는 풀이나 나무가 모두 나물이고 약입니다. 옛말에 소가 먹는 건 다 나물이라고 했지요.

 

- 산채원을 만들면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 고향에 내려와서는 마을 사람들에게 믿음을 주려고 노력했습니다. 처음에는 고생도 많았습니다. 마을에서 호응도 안 해주고, 배운 놈이 여기서 뭐하냐고 형과도 사이가 틀어질 정도였습니다. 계속 노력해야 하는 문제지요. 저는 영농조합법인 사람들에게 소비자가의 95%를 책임져 주려고 합니다. 나머지 5%는 영농조합법인 운영비로 쓰고요. 그 정도 보장해 주지 않으면 절대 안 따라옵니다.
요즘 농촌은 저희 마을도 마을 분들 몇 분과 함께 같이 뭘 하려고 해도 모두 노인들뿐입니다. 예전에는 세 마을 합쳐서 150호가 넘었습니다. 저쪽 송단 1리는 조릿대가 많아서 예전에 국내의 복조리를 모두 만들던 곳입니다. 저도 어릴 때 무지하게 만들었습니다. 그러던 것이 지금은 다 합쳐서 20호가 안 됩니다. 그나마 독거노인이 많아서 사람은 27명쯤 됩니다. 일할 수 있는 사람이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골짜기마다 있던 논밭이 다 묵었어요. 그래서 이곳 산골은 25~30년은 다 묵은 논밭입니다. 하지만 그게 자원입니다. 그런 땅은 비닐도 쓰지 않고, 농약도 치지 않고, 화학비료도 주지 않은 곳이지 않습니까. 말 그대로 청정 지역입니다. 더군다나 여기는 강원도처럼 골프장이니 스키장도 없습니다. 그게 얼마나 망쳐 놓습니까.
여기는 겹겹이 산이 둘러 있는데, 바로 옆은 곡성이고, 이쪽으로 넘어가면 담양, 저쪽으로 넘어가면 순천입니다. 이곳이 그 중간 지점이라는 것이지요. 그만큼 여기는 종이 다양합니다. 옛날부터 백아산에는 없는 게 없다고 했습니다. 그만큼 살아 있는 동네입니다. 특히 이곳이 고려삼의 시배지이기도 합니다.
제가 이곳에 산양삼(山養蔘)을 많이 심었습니다. 예전에 장뇌삼이라고 아시지요. 그 이름의 어감이 좋지 않다고 이제 공식 명칭으로 산양삼이라고 바뀌었습니다. 삼씨가 1kg에 150만원입니다. 이걸 지금 이곳에 5ha를 심어 놓았습니다. 내년에는 정부 보조를 좀 받아서 20ha까지 늘릴 예정입니다.

 

- 산나물은 어떻게 기르시나요?
= 저는 웬만한 씨앗이나 나무는 다 산에 심습니다. 저희 집 뒤를 ‘가는골’이라고 합니다. 골짜기가 가늘게 길다고 가는골이지요. 길이가 한 1km 이상 될 겁니다. 지금 이곳을 정리해서 구석구석에 그동안 모은 산나물이며 산양삼을 잔뜩 심어 놓았습니다.
보통 밭에 산나물을 심으면 퇴비도 주고 어떻게 해봐야 금방 쇠서 뻣뻣해집니다. 하지만 이걸 산에 넣으면 베고 또 베고, 어떤 것은 5~7번까지 거둘 수 있습니다. 그만큼 시설을 하건 어떻게 하건 이런 곳보다 산에 들어가는 것이 좋다는 것이지요. 또 산에는 굳이 퇴비를 안 줘도 그 자체로 영양이 많아서 걱정 없습니다. 산흙 자체가 부엽토 아닙니까. 오히려 산에서 그걸 긁어다 밭에 줘야 하는 거 아닙니까.
요즘 왕겨나 톱밥으로 퇴비를 만드는데, 저는 그걸 믿지 않습니다. 왕겨는 다 농약치고, 톱밥에는 윤활유가 섞여 있으니까요. 그래서 삼을 심으려고 나무를 벨 때도 기계톱은 쓰지 않는 것이 좋습니다. 시간이 오래 걸리더라도 직접 하는 게 좋습니다. 진짜배기로 농사지어서 대통령도 쉽게 먹을 수 없는 명품을 만들려고 한다면 그렇게 하는 거지요.

 

- 경운 같은 것도 필요 없나요?
= 경운은 따로 할 필요가 없습니다. 처음에 한 번만 갈아주면 그대로 심고 끝입니다. 대신 풀을 매야 하니까 호미질은 해야지요. 사람들은 경운해야 하니 트랙터를 사라고 하지만 저는 필요 없습니다.
그리고 산이 우거지지 않도록 관리도 해줘야 합니다. 아까도 말씀드렸듯이 손대지 않으면 산이 우거져서 나물이 살 수 없습니다. 그런 문제는 솎아베기를 해서 자연스레 해결합니다. 이제 산도 우리가 가꿔 줘야 합니다.
중요한 건 나물의 특성을 알고 그에 맞는 조건을 갖춰 줘야 한다는 점입니다. 예를 들어 여기서는 딱주라고 하는 잔대는 양지쪽에서 잘 자라서 정상 부분에 심어야 합니다. 그리고 산나물은 황토는 별로 좋지 않습니다. 물빠짐이 좋은 사질양토가 가장 좋습니다.
풀이 많아 어떻게 하나 생각하실지 모르지만 걱정 없습니다. 오히려 밭보다 관리하기가 더 쉽습니다. 밭 같은 경우 10번이고 20번이고 매려고 맘먹으면 매 줘야 합니다. 하지만 산은 1~2번만 매면 끝납니다. 그러니 면적이 넓어도 걱정 없이 할 수 있는 겁니다. 그래서 이 마을의 골짜기가 500ha 정도 되는데 그걸 제가 다 일구려고 합니다. 또 재 넘어 관음사 들어가는 곳의 땅은 절땅입니다. 그곳이 450ha인데, 그곳도 임대하려고 합니다. 그곳은 지금 우리 법인하고 다른 법인하고 함께 운영하기로 합의하고 계획을 세워 놨습니다.
또 정선 쪽에 사는 사람과 얘기해서 그곳에 산사랑 산채원을 만들기로 했습니다. 아무래도 기후에 차이가 있으니 여기는 빨리 나와서 빨리 사라지지만, 강원도 쪽은 이곳과 다른 때 나오지 않습니까. 또 장흥 쪽에도 얘기를 하고 있습니다. 겨울에 산채가 먹고 싶으면 장흥에서 해결할 수 있으니까요. 이렇게 1년 내내 도시 소비자들이 먹을 수 있도록 하려고 합니다. 하지만 원칙은 제철 음식입니다. 제철이 아닌 때 억지로 생산하는 것이 아니라, 생산되는 시기가 다른 곳을 확보해 제철로 만들려고 하는 겁니다. 지금 산채원은 도시 사람들도 이걸 먹을 수 있도록 규모를 늘리고, 함께 할 수 있는 농가를 확보하고 있습니다.

 

- 텃밭에 배추가 잘 자랐던데 비법이 있으십니까?
= 옛날에 농사짓던 방법을 따랐습니다. 옛날에 배추에 벌레가 끼면 불 때고 나온 재를 물에 섞어서 재운 다음, 위에 뜬 맑은 물을 배추에 줬습니다. 우리 배추에는 그래서 벌레가 하나도 없습니다. 또 벌레가 다 갉아먹었어도 이슬이 내렸을 때 재를 가지고 가 살살 뿌려 주면 한 일주일 정도면 다시 살아납니다. 지금은 일본이나 유럽에서 다 들여오지만, 이렇게 세계에서 유기농을 가장 잘한 것이 우리나라였습니다.
저는 고추를 기를 때 비닐을 치지 않습니다. 비닐을 치면 처음에는 잘 크지요. 수분도 잡아 주고, 햇볕을 받으면 더 따뜻해서 금방 크고 수확도 많습니다. 문제는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오면 생깁니다. 꽉 막힌 상태이니까 온갖 병균이 그곳에 생깁니다. 그것 말고 저는 일체 화학제품을 쓰지 않습니다. 그런 원칙을 지키면 우리 옛맛을 찾을 수 있습니다.
이 동네에서 고기를 잡을 때는 때죽나무 열매를 찧어서 물에 뿌립니다. 그럼 고기가 기절해서 둥둥 뜨지요. 그만큼 때죽나무는 좋은 살충제가 될 수 있습니다. 지금 그걸로 천연살충제를 만들어 보려고 연구하고 있습니다. 초피, 인진쑥, 때죽나무 열매, 소주를 섞으면 괜찮은 농약이 되지 않을까 합니다. 저는 이런 걸 개인이 아니라 흙살림 같은 곳에서 연구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정리 : 김석기(흙살림 전통농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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