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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촌진흥청에서 상당히 재밌고 흥미로운 조사결과를 발표했습니다. 농촌진흥청에서는 1971년부터 2013년까지 10년을 주기로 계속해서 전국의 논에서 발생하는 잡초들을 조사해 왔다고 합니다. '풀과의 전쟁'이라는 속설처럼 적을 알아야 전쟁에서 이긴다는 맥락에서, 어떤 풀이 자라는지 알아야 그 풀을 효과적으로 제거할 수 있기에 조사했다고 합니다. 오늘 그 결과를 발표해서 눈길을 끕니다.


먼저 1970년대에는 마디꽃, 쇠털골, 물달개비 같이 한해살이 풀이 주를 이루다가, 1980년대에 접어들면서는 피를 방제하는 제초제가 확산되며 논에서 피를 찾아보기 힘들어졌다고 합니다. 대신 물달개비, 올미, 벗풀 같은 잎이 넓은 풀들이 그 자리를 차지했다고 하네요.



마디꽃


쇠털골


물달개비


올미



이런 양상은 1990년대가 되면서 또 바뀝니다. 1990년대에는 한해살이와 여러해살이 풀을 한방에 처리할 수 있는 제초제가 널리 사용되면서, 한해살이 풀은 상대적으로 찾아보기 힘들어지고 올방개, 올미, 벗풀 같은 여러해살이 풀이 끈질기게 살아남았다는 보고입니다.



올방개


벗풀



그러던 것이 2000년대에는 슬슬 제초제에 약한 마디꽃이나 쇠털골은 순위 밖으로 밀려나고, 제초제에 내성이 생긴 물달개비가 가장 많이 발생하고 다음으로는 올방개와 피, 벗풀이 뒤를 이었다는데요. 재미난 건 가장 최근인 2013년의 조사결과입니다. 약 4년 전 행한 조사에 의하면, 제초제에 확실히 내성이 생긴 피와 물달개비가 논에서 자라는 풀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올방개와 올챙이고랭이, 벗풀 순서대로 많이 발견되었답니다. 최근 논을 구경하면 피가 너무 많이 자란 논들이 많아서, '저 논은 쌀값이 얼마 안 되니까 농사에 관심이 없어 피를 방치했나?' 하는 생각을 했는데 그것이 아니라 피가 이제는 제초제를 쳐도 죽지 않아서 그런 것이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이제 피를 확실히 죽일 수 있는 그런 제초제가 개발되겠지요? 농약 말고 다른 방법으로 풀을 없앨 수도 있던데 그런 방식은 도입하지 않으려나 모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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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까운 일본에서는 녹조가 생기는 논에 소나무 가지를 꺾어다 꽂아 놓는 방법을 이용해 문제를 해결하는 움직임이 널리 퍼지고 있단다.


일본의 농민들이 이야기하기를, 녹조가 생기면 가장 큰 문제는 제초제가 통하지 않아 피와 같은 풀 문제가 심각해진다는 점이다. 그를 해결하기 위해서라도 녹조의 발생을 줄이는 것이 중요하단다.


이러한 녹조가 발생하는 이유는 역시 풍부한 유기물 때문이겠다. 농사를 지어야 하니 논에 거름을 넣어야 하고, 그 거름이 양분이 되어 녹조가 쉬이 발생하는 원인을 제공하는 것이다. 이 농민들도 매년 논에 유기물을 많이 넣고 있는데, 이렇게 소나무 가지를 꽂은 다음부터 녹조가 발생하지 않거나 덜하다고 한다. 


또한 녹조의 발생이 물의 흐름과 수온과도 관계가 있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물이 가로세로로 넓게 퍼지는 곳에서는 아무래도 소나무 가지의 효과가 더 좋은데, 그렇지 않고 한 방향으로만 흐르는 곳에서는 수온도 높고 효과가 덜하다는 증언이 이어진다. 즉, 논에 댄 물의 온도차가 높으면 높을수록 녹조가 훨씬 더 잘 발생한다고 한다. 논의 수평을 잘 잡는 것이 녹조의 발생을 줄이는 데에도 중요하다는 말씀이시겠다.


아무튼 그 원리가 무엇 때문인지 밝혀 보겠다는데 나까지도 궁금하다. 


동네 어르신에게 들은 이야기 중에는 논의 물꼬에다 밤나무 가지를 가져다 꽂아놓으면 해충이 죽어 병에 덜 걸린다는 말도 들은 적이 있다. 왜 그런지 밝히지 못하여 아직은 믿거나 말거나 수준이지만, 언젠가 그러한 옛 농사법들의 원리가 꼭 밝혀지면 좋겠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의 주소로 들어가 보시길 바란다.


http://lib.ruralnet.or.jp/cgi-bin/ruralhtml.php?DSP=video!gn!201408_1.htm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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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cafe.naver.com/eastempirecafe/64?viewType=pc



재배 역사가 오래되고 환경적응성이 뛰어난 피는 타가수분, 서식환경의 변화, 제초제 처리와 같은 지속적인 스트레스 등의 원인으로 種間잡종과 種內變異가 심하고 다양한 생태형이 존재하기 때문에 분류와 학명 사용에 학자간 견해차가 있는 등 다소 어려움이 있다. 고조선 시대부터 재배되어 오던 다양한 재래 식용피 품종들이 산업화 과정을 거치면서 많이 소멸되고 지금은 잡초 또는 사료작물로써 이용되고 있는 실정이다. 그러나 식품으로서의 새로운 기능성, 간척지, 척박지 등 한계지에서의 토양 피복과 보호작물로서의 우수성, 생물 다양성에 대한 기여도 등 피에 대한 가치와 평가도 재조명 되고 있다. 우리나라에 분포하는 피에 대한 체계적인 분류는 여러 학자들에 의해 시도 되었는데, 외부형태적 변이(전 등, 1988), 잡초생태학적 분류(이 등, 2004), 종자의 제1포영의 형태(김 등, 1989) 등 다양하게 진행되었다. 또 일본의 Yabuno(藪野; 1975, 1983, 1996)와 미국 캘리포니아에서의 Norris(1996) 등도 피의 분류에 연구한 바 있다.


이 등(2004)이 전국 41개 지역 46종의 외부형태적 특성이 다른 피를 수집하여 분류를 시도한 결과 외부 형태적 특성(초형, 초장, 분얼형태 및 정도, 소수의 형태, 망의 유뮤, 엽장, 엽폭, 화서 형태 등) 만으로는 변이의 폭이 너무 커서 분류가 곤란하여 종자의 제1포영(苞潁)형태와 크기에 따라 분류한 결과 우리나라의 피는 식용 1종(E. utilis), 야생 3종(E. crus-galli var. crus-galli, E. crusgalli var. oryzicola, E. oryzoides) 등 총 4종으로 분류되며, 돌피와 물피의 변종과 일부 생태종들은 종자 제1포영의 형태와 크기로도 분류하기가 곤란하여 피의 분류는 아직도 미완성인 숙제로 남아있다.

 

식생활의 변화, 시대 및 지역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피는 조선시대 까지만 하더라도 오곡(五穀)의 하나였고 재배면적만도 10만㏊에 달했다는 기록이 있다. 피는 벼가 잘 안되는 북쪽지방, 다른 작물이 잘 자라지 못하는 땅이나 계절에 재배가 가능 했기 때문에 중요한 구황작물로 쓰였으며, '피아골(전남 구례)'이란 지명도 피를 많이 재배한 데서 유래한 것으로 보아 피는 우리나라 전역에서 흔히 재배되고 볼 수 있는 작물이었으나 1960년대 말 이후 급격한 산업화와 쌀 자급으로 인해 식용으로 소비는 거의 없어졌다.


일제 강점기에 개인적인 소신과 열정으로 타카하시노보루[高橋昇]가 집필한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에 의하면 제주도, 강원도, 평안도, 황해도, 함경도 등지에서 피의 재배와 이용이 일반화 되에 있고 북족으로 갈수록 피의 이용 비율이 높아지며, 일본으로 2천섬을 수출하고 만주 등지로부터 3천섬을 수입하였다는 기록으로 볼 때 피는 조ㆍ메밀ㆍ옥수수ㆍ귀리 등과 같이 중요한 잡곡(雜穀)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으며 피의 이용도 다양해서 피밥, 피떡(피가루+밭벼가루 1:3), 피엿 등으로 사용할 정도로 우리에게는 중요한 식량자원 이었음을 알 수 있다. 며칠을 굶어 처량한 모양새를 설명하는 속담에 ‘사흘에 피죽 한그릇도 못 얻어먹은 듯하다’속담이 있을 정도로 피는 다른 식량작물에 비해 맛과 영양에 비해 천대받아 온 듯하고, 지금은 식용으로 재배하는 경우가 거의 없으며 논에서는 성가신 잡초로 취급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에는 피가 생육기간이 짧고, 중산간지, 간척지, 척박한 저습지 등 토양을 가리는 성질이 적고 생육에 필요한 물 요구량도 적으며 특히 육종이 덜 이루어진 원종에 가까운 관계로 병충해에 강한 특징과 다른 작물이 가지지 못하는 일부 아미노산이나 광물질이 함량이 뛰어나 현대인의 기능성 식품으로서의 가치도 조금씩 밝혀지고 있다. 또 일부 조류의 우수한 사료로 취급받기도 하지만 가장 중요한 것은 사료작물로서의 잠재성이다. 피는 벼보다 배수나 비옥도에 대한 적응성이 강하고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저습 한계지역이나 홍수 다발지역, 간척지 등 토양을 가리지 않고 잘 자라고 수량, 기호성 및 품질도 높기 때문에 벼 대체 사료작물로 매우 적합하다.

한편, 피는 잡초로 취급 받게 되는 순간부터 사람으로부터 괄시 당하고 보이는 데로 제거 당하는 신세로 전락 했음에도 불구하고 종자가 빨리 성숙되고 익는 데로 탈립되어 물에 떠 다니며 적당한 장소를 만나면 아무조건에서나 발아되는 특성으로 무장하고 꿋꿋이 살아가고 있다. 예를 들어 벼(japonica type)는 북방형 식물, C3)이고 피는 남방형 작물(C4) 임에도 불구하고 벼 재배 논에서 살아 남기 위해 벼를 생물계절학(phenology)적, 형태학적으로 모방하는 생리적 형태로 진화되어(Wilson, 1979), 전 세계에 걸쳐 논 벼 생산에 성가신 잡초로 살아 남았다(Holm 등, 1977). 산소가 없는 조건에서도 발아할 수 있었기 때문에 무논에서 벼와 경쟁하며 살아 남을 수 있었고, 메뚜기가 싫어하는 trans-Aconitic Acid 를 생산하여(Maki Katsuhara 등, 1993) 살아 남은 것을 보면 종족 보존을 위한 실로 눈물겨운 몸부림이라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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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30일, 날씨는 맑지만 바람이 강해 춥다. 먼저 어제 날이 저물어 보지 못한 성읍 2리쪽을 돌아보기로 했다. 여기도 중산간이니 기대할 만하다. 차를 타고 오르는 길은 좋은 드라이브 코스다. 이 길도 곧 확장공사를 한다고 하니, 이런 경치를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 참 좋은데...

 

성읍 2리는 올라가보니 목장 지대였다. 농사는 그리 많이 짓지 않고 말을 키우는 곳이 많았다. 경치가 좋아서 그런지 별장 식으로 지은 듯한 집도 꽤 보였다. 그래도 차에서 내려 이 마을을 한참 돌다가 다시 표선 쪽으로 내려갔다. 다음 목적지는 제주민속촌마을을 가보기로 했다. 관광객들이 아침부터 참 많이 왔다.   

제주의 전통 뗏목, 테우. 보기에는 위험해 보이지만, 이런 배가 오히려 뒤집히는 일이 없다고 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물이 귀한 제주에서는 빗물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이렇게 받아서 썼다.

 

 

눌. 뭍에서 낟가리라 부르는 것과 같다. 바람이 많은 곳답게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돌로 매달아 놓았다. 

 

 

제주의 옛 민가. 옥수수를 주루룩 달아놓았는데, 제주에서 옥수수를 이렇게 많이 심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는데... 

 

 조 같은 씨앗을 심은 뒤에는 이 섬피를 끌고 다니며 흙으로 덮었다.

 

제주의 장독대. 제주의 장독은 그 색도 독특하다. 흙이 다르기 때문이겠지. 

 

 

제주의 부엌. 역시 굴뚝이 따로 없다. 벽은 그을음으로 검게 그을렸다. 메주를 저렇게 달아놓으면 그건 괜찮았을려나? 

 

 

세간이 참 단촐하다는 느낌이 들어 한 장 찍었다.  

 

 

아이들이 돌릴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맷돌. 

 

 

김칫독을 묻어 놓은 곳도 아닐 테고, 정확히 뭔지  잘 모르겠다.

 

 

그 옛날 라이터나 성냥이 없을 때 썼다는 불씨를 보관하는 도구.

 

 

이것도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죽은자의 집, 상여. 

 

 

벼를 훑어서 털던 그네. 

 

제주의 보습. 밭에 돌이 많아서 그런가 뭍의 것보다 좁다. 

 

남태. 씨앗을 심고 흙을 다지는 용도로 쓰던 것.

 

 

표선 민속촌을 구경하고 세화1리 쪽으로 향했다. 이곳은 지난 여름 제주에서 토종 조사 사업을 하면서 만났던 고옥화(76) 할머니께서 살고 계신다 한다. 일단 집 앞 담장에 있던 나팔꽃의 씨앗을 채집했다. 고옥화 할머니께는 제주의 옛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아래는 그 내용이다.

지금은 피를 가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는데, 옛날에는 피쌀이라 하여 송당이나 성읍에서 많이 했다. 피쌀은 3번을 방아 찧어서 체로 고르는데, 맛이 좋다. 포근하니 입에 넣으면 보드라운데, 먹고 나면 배가 일찍 꺼진다. '송당 목장'에서 아직도 피를 가는 것 같다. 습기가 많은 데는 피, 어느 정도 있는 데는 산듸, 없는 데는 조나 고구마를 심었다. 여름에는 한 달에 한 번 돗거름(돼지거름)을 냈다. 보리에 돗거름을 섞어서 뿌리고, 말이나 소로 밟는다. 사람이 있냐 없냐, 거름이 있냐 없냐에 따라 씨를 심는 법이 달라졌다. 거름이 없으면 그냥 쫙쫙 뿌리고, 있으면 하나로 섞어서 들고 뿌렸다.

그 아들 분께서 같이 자리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42세인데도 어렸을 적에 하루 두 끼 먹은 적이 거의 없었다. 형편이 좀 나은 편이었는데도 그랬다. 제사 때나 쌀밥을 먹을 정도였고, 겨울에는 보리범벅이나 메밀범벅을 자주 먹었다. 좋은 메밀쌀은 제사 때 쓰고, 후진 것으로 두 번 세 번 갈아서 고구마범벅에 넣는데, 그러면 색이 거무티티해진다. 고구마절간은 뱃때기라고 불렀다.

따뜻한 커피를 얻어 마시며 이야기를 듣고 인사를 드리고 나와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냥 기사식당 같은 곳이었는데 다른 어느 곳보다 인심도 후하고 맛있으며 값도 쌌다. 나중에 제주를 다시 찾으면 꼭 다시 들르고 싶은 곳이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계속 표선면 일대를 누비고 다녔으나 별로 소득은 없었다. 아니 전혀 없다. 그래서 아까 들은 송당 목장으로 피를 찾으러 가기로 했다. 송당 목장을 지도에서 찾아 산으로 올랐다. 조금 헤매다가 송당 목장에 도착하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한다.

 

송당 목장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

 

목장 사무실을 찾아가 관계자 분을 만났다. 피는 사료로 쓰려고 심고 있는데, 현재 반장님이 집에 씨를 보관하고 있어 이곳에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찾아오기는 어렵고 하여, 우리가 피를 찾는 목적을 말씀드리고 주소와 발송비 명목으로 비용을 드리고 왔다. 이 피는 이후 집으로 돌아갔을 때  틀림없이 배달되었다.

이제 어느덧 마지막 날이 되었다. 내일은 비행기 시간도 있고 하여 여기저기 많이 다니지는 못할 테니 말이다. 한 달에 걸친 기간이 마지막이라니 지난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참 시간이 빠르기도 하다.

 

 송당 목장은 전체 넓이가 여의도의 몇 배나 된다고 한다. 이 드넓은 초지에서 말과 소가 다니며 한가로이 노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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