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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 일찍 일어나서 하루종일 농장에서 지내며 열심히 일하고, 노동자와 파종, 수확, 판매, 교육을 관리합니다. 난 이 모든 일을 사랑한다."


쿠바에서 여성은 국가에서 먹을거리를 재배하고 분배하는 방식에 혁명을 일으키는 데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이다.  Photo by Sarah L. Voisin/The Washington Post via Getty Images




쿠바의 옛 농업 체계—규모화, 기계화, "현대화"— 는 소련에서 꾸준히 공급되는 자원에 의존했다. 1989년 이전, 소련은 석유와 비료, 농약, 가축 백신을 포함해 막대한 양의 농업 보급품을 보내, 사탕수수와 담배, 커피, 바나나 같은 쿠바의 환금작물 생산에 연료를 공급했다.  쿠바 정부는 환금작물의 수출을 우선시하고, 국가에서 소비하는 쌀, 콩, 곡물, 채소 같은 농산물의 80%를 수입했다. 북쪽으로, 미국은 1960년에 처음 수립된 쿠바에 대한 경제봉쇄인 엘 볼로케오el bloqueo를 시행하여 식량과 의약품을 포함한 상품이 사회주의의 섬으로 이동하는 걸 금지했다.  1989년 식량과 농자재의 공급원이던 소련이 붕괴했을 때,  쿠바는 큰 경제위기에 정신이 번쩍 났다. 식료품점의 선반에 들여놓을 식품 수입 없이 어떻게 1100만의 쿠바 인민을 먹여살릴 것인가? 어떻게 디젤 없이 트랙터를 운전해서 땅을 갈아엎는가? 어떻게 농민들이 화학비료 없이 수확량을 높일 것인가?  농업 생산은 급격히 감소했다. 국가의 농장과 공장 들은 폐쇄되었다. 가축은 죽어나갔다. 예전의 환금작물은 들에서 썩었고, 그 결과 수출을 통한 소득은 급락했다. 


공산주의 국가의 독재자 피델 카스트로Fidel Castro는 경제 위기를 엘 페리도 에스페셜El Período Especial 또는 평화의 시간 중 특별 기간이라 지칭했다. 그는 쿠바의 인민에게 자신이 가진 빈약한 공급품을 가지고 능동적으로 일하자고 축구했다. 놀랍게도 사람들은 다음과 같이 일했다. 그들은 화분과 옥상 등에서 채소와 허브를 재배하고, 뒤뜰에서 아보카도와 망고를 심고, 토끼와 기니피그 같이 작고 효율적인 육류 공급원을 키우기 시작했다. 쿠바 정부는 사탕수수와 커피같은 호화로운 환금작물 대신 식량작물에 우선권을 부여함으로써 국내의 식량위기에 대응했다. 토양을 갈아엎을 중장비가 없어 정부는 긴 뿔이 달린 황소를 이용해 땅을 갈아엎기 위해 젊은 세대의 구아히로와 소농이 필요했고, 이 오래된 기술을 가르치기 위해 공립학교를 설립했다. 


1989-1994년, 대안적인 농업은 쿠바에서 비주류의 이념에서 현실로 변형되었다.  쿠바 정부는 국가의 학자, 연구원, 지속가능한 농업기술자 들에게 농촌 지역만이 아니라 도시와 근교에서도 식량을 재배할 수 있는 지역적이고 유기적이며유용한 방법에 대한 전문지식을 제공하라고 촉구했다. 1990년대 후반 —정부의 정책의 노력과 더 중요하게는 기존 농민과 신규 농민의 누적된 작업 덕분에— 식량 생산은 점차 증가했고, 인민의 영양 섭취가 개선되며, 식량위기가 완화되었다. 


도시농업을 처음부터 시작한 에디스Edith 같은 여성들은 국가에서 식량이 재배되고 분배되는 방식에 혁명을 일으키는데 빼놓을 수 없는 부분이었다. 


난 상크티스피리투스Sancti Spíritus의 길모퉁이에서 택시를 불렀다. “워, 워, 워!” 운전기사가 끙끙 거리며 가죽 고삐를 뒤로 당겨 엔진을 감속시켰다. 나무 벤치 둘과 노란 플라스틱 지붕을 씌운 승객칸을 끄는 밤나무 빛깔의 말이 멈추었다.  소련의 붕괴와 석유 위기 이후, 말 택시는 접근성 좋은 운송수단이 되었다. 자동차보다 연료와 유지 비용이 적게 들고, 유기 폐기물을 생산한다는 이점이 있다.  말의 엉덩이에 쌀자루를 접어놓고 똥이 길에 떨어지기 전에 담는다.  하루에 두 번, 운전기사는 상크티스피리투스에 건립된 퇴비 수집장소에 말똥을 부려 놓는다. 내가 승객칸에 탔을 때, 낭만적인 바차타 음악이 라디오에서 흘러나왔다. 운전기사가 고삐를 가볍게 치자 거리를 따라 승객칸이 튀어오르고, 말발굽 소리는 음악에 맞춰 율동적으로 울렸다.  


운전기사는 자신의 택시에 소곤거리며 중앙광장에서 불과 10분 거리에 있는 아파트가 경계를 이루고 있는 도시농장 옆에 멈추었다.  Linda Flor, Beautiful Flower라는 커다란 간판 앞에는 에디스Edith라는 이름의 여성농민이 길가에서 기다리다 나에게 다정하게 손을 흔들었다.  에디스의 친구들은 그녀가 150cm가 조금 넘기에 라치키타La Chiquita, 즉 꼬마라고 불렀다. 50세의 농부는 세련된 옷을 입고 몸에 딱 붙는 검은 장화를 신고 작은 손에는 목장갑을 끼고 있었다. 그녀는 나중에 고백했는데, 농사일 말고는 춤을 좋아한단다. 그녀는 한번에 두 가지를 다 할 수 있는 옷을 입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김을 매고, 가지를 치고, 심고, 바차타와 살사, 머랭, 룸바를 추며 엉덩이를 흔들었다. 난 그녀의 따뜻함에 기대었다. 그녀는 내 어깨를 움켜잡고 인사하며 두 뺨에 입을 맞추었다. 그녀는 “Bienvenido, mi vida, 환영합니다”라 하고 “나의 삶”이란 쿠바의 애정을 표시하는 단어를 사용하여 말했다.  솜사탕 색깔의 주거용 건물 사이에 자리를 잡은 에디스의 도시농장은 2400평 규모이고, 길고 콘크리트로 바른 두둑에 꽃과 채소, 허브, 약초를 함께 재배한다. 그녀는 꽃을 재배해 증식하고 실험하는 걸 전문으로 했다.  “꽃이 내 영혼을 살려요!” 하고 열정적으로 노래했다. “영양은 위만 채워서 될 일이 아니라 영혼도 먹여살려야 해요.” 50가지의 꽃이 두둑의 가장자리를 따라 늘어서 있다. 분홍색 히비스커스, 큰 꽃의 해바라기, 장미와 카네이션의 다양한 색조 등. 농장은 균일한 소련의 건축양식으로 지어진 입방체의 아파트 건물과 매우 대조적이었는데, 쿠바 사람들은 카나리아 황색과 청록색, 라임빛 녹색 페인트를 칠해 놓았다.  주민들은 햇볕에 말리려고 발코니에 빨래를 널어 놓아, 에디스의 작물과 꽃을 바라보고 있었다.  


“여기가 20년 전에는 쓰레기장이었다는 걸 믿을 수 있나요?” 하고 에디스가 물었다.  “우린 무에서부터 농장을 시작했다. 무얼 재배할 흙도 없었다! 사람들은 이 땅에 쓰레기를 버리고 소각했다. 지금은 그들이 나에게 ‘어떻게 여기를 작물과 꽃으로 바꿀 생각을 했나요?’라고 묻는다.” 1980년대 에디스는 상크티스피리투스의 고등학교에서 생물교사로 일했다. 그녀는 1989년 소련의 붕괴로 인한 시련을 기억했다. 식품 시장의 선반은 텅 비고, 식량배급소에서 줄지어 기다리는 사람들, 도시민들은 채소나 곡물 같은 걸 광적으로 찾아다녔다. 에디스는 전쟁을 겪고 있는 것처럼 느꼈다. 긴 정전 사태를 견디거나 택시를 타려고 몇 시간씩 기다렸다. 그녀는 대량 생산이 중단된 이후 육류와 우유, 계란이 없어진 상태에 익숙해졌다. 정부는 배급제를 축소했다. 사람들은 돼지고기 대신 뿌리채소를 튀기고, 사용할 수 있는 커피의 양이제한되어 쪼개 말린 완두를 갈아 넣는 식으로 혁신했다.  특별 기간 동안, 쿠바의 성인은 몸무게가 4-14kg이 줄었다. 1990년대 영양 위기에 대응해 쿠바 정부는 에디스와 전국의 교사들에게 식량 생산을 위한 일련의 워크샵에 참가하라고 초청했다.  “그런 워크샵에서 난 농사를 좋아하게 되었다”고 에디스는 재잘거렸다.  “난 상크티스피리투스에 있는 정부의 채소농장에 파트타임으로 자원봉사를 시작했다. 거기에서 씨앗 갈무리 방법과 증식 기술을 배웠다. 난 가장 힘든 채소 씨앗을 선발하고 다양한 꽃 품종을 육종하는 일에 도전하는 걸 좋아했다.”


1994년, 쿠바의 농업부 장관 라울 카스트로Raúl Castro는 국가 전역의 도시에서 식량생산을 제도화하는 것에 대한 잠재력을 인정했다. 특별 기간 동안 정부는 옛 국영 농장과 플랜테이션에서 대량의 식량을 재배하고, 도시로 농산물을 운송하는 데 필요한 연료비를 충당하기 위해 애를 썼다.  식량위기의 해결책으로 카스트로는 국가의 도시농업 프로그램을 설립해, 쿠바인들이 마을과 도시에서 비어 있거나 방치된 공간을 식별하여 오르가노포니코organopónicos 또는 도시농장으로 변형할 수 있게 했다. 카스트로는 도시의 충분한 땅을 개조해 모든 도시민에게 5평방미터의 농지를 제공하고, 매일 300그램의 채소를 생산하게 하려 결심했다. 교사와 변호사, 간호사를 포함해 다양한 직업을 가진 쿠바 사람들은 하룻밤새 농부가 되어 뿌리채소와 잎채소, 과일, 약초, 사료를 재배하고, 육류와 달걀, 우유, 벌꿀을 생산하기 시작했다.도시농장에는 작은 판매대가 포함되어 있어, 농민들이 정부에게 많은 보조금을 받는 자신들의 농산물을 주변 지역의 사람들에게 판매할 수 있었다.   


상크티스피리투스에서 에디스는 버려진 땅을 찾기 위해 인근을 걸어다녔다. 그녀는  “왠지”라고 하며 궁금함에 머리를 갸웃거리고 “어떻게든 이 버려지고 방치된 곳을 언젠가 바꿀 수 있다고 꿈꿨다!” 쿠바 정부의 승인을 받은 뒤, 에디스는 혁명을 위해 싸운 반란군 전사였던 아버지와 은퇴한 쿠바 남성들의 작은 모임의 지원을 받았다.  “그들이 나를 도우려 한 유일한 사람들이었다”고 회상한다. “내 아들과 딸을 포함해 모든 사람들이 내가 미쳤다고 여겼다. 나한테 이렇게 말했다. ‘아오, 엄마. 중노동 때문에 다칠 거예요. 손 좀 봐요, 머리는 어떻고! 무얼 하고 있는지 좀 보세요!’ 하지만 난 그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생물 교사는 처음부터 다시 구축하고, 자신의 유기적 토양을 만들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그녀는 이웃 주민들의 지지를 얻고자 농지를 둘러싼 주거용 건물의 모든 문을 두드렸다. 에디스가 자신들의 주변에서 먹을거리를 키우겠다는 결심에 자극을 받은 사람들은 음식폐기물과 종이 등의 유기 폐기물을 그녀에게 주었다. 상크티스피리투스에 있는 분뇨 퇴비센터에서, 그녀는 택시 운전기사들에게서 말똥 자루를 수집했다. 그녀는 엄청난 양의 재료들을 쌓아 올렸다. 천천히 미생물들이 유기물을 분해해 폐기물을 검은 빛깔의 양분이 풍부한 부식질로 전환시켰다. 그녀는 퇴비를 두둑의 토양에 뿌리고, 새싹이 녹색의 머리를 흙에서 내밀어 빛나는 색이 펼쳐지는 광경을 지켜보았다.  Linda Flor는 점점 생산적이 되었다. 그녀의 직원들은 시내 전역에 먹을거리와 꽃바구니 리어카를 밀고 다니거나 거리의 작은 판매대에서 사람들과 직거래를 했다. 그녀는 농장일을 돕게 하려고 은퇴한 이웃들을 더 많이 고용했다. 1999년 상크티스피리투스에서 에디스와 다른 농민들이 지역민을 위해 약 50메트릭톤의 과일과 채소를 생산하여, 카스트로가 목표로 했던 매일 1인당 300그램을 초과했다.  


그 도시의 도시농부 대다수는 남성이지만, 에디스의 먹을거리에 대한 열정과 강한 직업윤리는 동료들 사이에서 존경을 받았다.  “때때로 여성이 농업에 종사하지 않는다거나 농업 리더십이 부족하다는 편견에 맞서며 일해야 했다.”고 에디스는 인정했다.  “그러나 나는 그런 잘못된 생각에 계속 맞서 싸우며 일해 왔다. 난 결정을 내리고 모범으로 이끈다. 난 나의 사회와 심지어 정부에게도 인정을 받았다.” Linda Flor에서 농사지은 지 5년 째, 에디스는  Edith에게 농업부 대표단이 공식적으로 찾아왔다. 그녀는 퇴비를 만드는 폐기물을 모으려고 지역사회와 함께 일한 방법을 관계자에게 설명하고, 씨앗을 선발하고 갈무리하며 파종하는 작은 작업 공간을 보여주었다. 그녀의 독창성과 수완에 감명을 받은 관료는 현재의 농지에 인접한 1200평의 토지를 추가로 수여했다.  2004년, 에디스는 상크티스피리투스의 지역 문화와 환경 재단이 주최한 워크샵에 참여했다. 이 워크샵은 지속가능하게 설계된 체계인 퍼머컬쳐를 쿠바의 도시와 농장 및 도시농업에 적용하는 데 중점을 둔 모임이었다. 그녀는 낭비를 최소화하고, 지역의 자원을 활용하며, 다양성을 증진하고,효율을 높이는 이론에 푹 빠졌다. 에디스는 농촌과 기타 도시 지역에 살고 있는 쿠바 사람들과 정보를 공유하고자 자발적으로 자원봉사를 하면서 현지의 조직에 기술을 교육하여 전수하기 시작했다. 쿠바와 멕시코, 에콰도르, 캐나다, 영국, 프랑스, 스웨덴 출신의 학생들 수백 명이 상크티스피리투스를 방문해, 에디스의 멋진 농장을 둘러보고 유기적 퇴비 만들기 기술을 배운다.  “난 교실에서 가르치는 일이 갑갑하다고 느끼곤 했다. 그러나 지금 밖으로 나와 농장에서 가르치니 더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들고, 학생들도 생동감을 느낀다. 나는 그들이 정보를 듣고, 배우고, 흡수하는 데 더 잘 적응한다고 생각한다”고 신중하게 에디스는 말했다.  “텃밭이 진정한 교실이기도 하다. 나는 쿠바의 여성, 농민, 교사가 되어서 매우 감사하다. 나는 일찍 일어나 하루종일 농장에서 지내며 열심히 일하고, 노동자와 파종, 수확, 판매, 교육을 관리한다. 난 이 모든 일을 사랑한다. 나의 일이 나의 삶이다.”




http://www.yesmagazine.org/planet/farming-and-food-for-the-soul-20180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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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련 붕괴 이후 쿠바의 농업은 그들이 처한 상황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을 선택하여 살아남기 위해 노력한 결과일 뿐이다. 그런데 그걸 가끔 우리도 본받고 따라야 할 무엇이라 여기는 경우를 볼 때마다 위태로워 보인다. 그건 북한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리고 또 전통농업이나 토종 종자에 대해서도 그렇다.


세상에 만병통치약은 없다고 생각한다. 만약 그런 것이 있었다면 우리가 지금 이렇게 살고 있지는 않았을 것이다. 가끔 광고에서 어떤 음식을 먹으면 어디에 좋다는 식으로 홍보하는 사례가 많은데, 그건 그저 믿음일 뿐인 경우가 다반사다. 간혹 실제로 좋아진 사람이 있을지 몰라도 그건 특수한 사례로 치부해야 하지 않을까.


농업이나 농법도 그와 같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상황에서 내가 할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이 무엇인지 고민하고 또 고민하며 실제로 적용하면서 수많은 실패를 거듭하는 와중에 자신의 길을 찾아가는 수밖에 없지 않은가. 누가 어떻게 해서 성공했다더라, 누구는 무엇을 했다더라 하는 말들이나 이론은 하나의 참고자료일 뿐 그걸 전적으로 똑같이 나에게 적용시킬 수는 없는 일이다. 


이상향은 없다. 그저 그런 곳이 있었으면 하는 바람이 있을 뿐이다. 세상에 절대적으로 옳은 농사란 없다. 자신의 상황에서 최선을 다해 살아남고자 노력하는 일뿐이다. 무엇이 절대선이라 내세우는 순간 그 이외의 모두를 적으로 만들 수밖에 없다. 그래서 사는 게 어려운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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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농가의 이야기처럼, Fernando Funes Monzote 씨도 가혹한 요소와 오랜 역경에 맞선 장엄한 투쟁으로 시작한다.


대학에서 농경제학을 전공한 Funes 씨는 4년 전 아바나 교외의 침식이 심하고 잡풀이 무성한 산허리에 정착하여, 바위 같은 흙에 우물을 파기 시작했다. 근처의 다른 농민들은 그가 미쳤거나 잘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농생태학"을 이야기하는 이 박사 나부랭이가 곧 쿠바의 농업 현실이란 벽에 부딪칠 것이라고 하면서 말이다. 


Funes 씨는 드릴이 없어서, 그와 조력자들은 바위층을 손으로 사용하는 연장으로 뚫어야 했다. 7개월 뒤 15m 정도 뚫었고, 그들은 차고 맑은 물이 나오는 샘을 맞닥뜨렸다.





Fernando Funes Monzote 씨가 도착한 일꾼들을 맞으며 웃고 있다. (Sarah L. Voisin/The Washington Post)




“저에게, 그건 농생태학에 대한 은유였습니다”라고 44세의 Funes 씨가 말한다. 그는 친환경적으로 농장을 관리하는 기술을 이곳과 네덜란드에서 공부했다. “손으로 매우 열심히, 그리고 꾸준히 일했고, 그 노력만큼 결과가 있었다.”


현재 Funes 씨는 가장 잘 나가는 쿠바 요리업계의 한 명이다. 그의 어머니 이름을 붙인 약 2만4천 평의 Finca Marta 농장에서는 아바나의 최고 등급의 소규모 가족경영 식당에 많은 유기농산물을 공급한다. 


Funes 씨는 물을 절약하도록 주의깊게 설계한 계단밭에서 60가지 이상의 채소와 과일, 허브를 재배한다. 그는 목초지를 구분하기 위해 "살아 있는 울타리"로 관목을 심었고, 그곳은 새들의 서식처도 제공한다. 그는 양봉으로 지난해 1.5톤의 꿀도 땄다. 


농장과 그곳의 관개체계는 거의 다 태양에너지로 운영된다. Funes 씨는 분뇨에서 나오는 메탄을 파이프를 통해 부엌의 난로로 보내 깨끗하고 푸른 불꽃을 내는 “생물침지기biodigester”를 가동한다. 


쿠바 농업에 대한 Funes 씨의 전망은 그 퇴보 때문에 급진적이다. 그는 자본주의 농업과 식량의 60~80%를 수입하던 1960년대 쿠바에서 구현되던 국영농장 모델에 대한 대안으로 나온 현명하고 자원 효율적인 장인의 농업을 지지한다.  


쿠바는 미국과의 관계를 개선하고 세계 경제에 다시 끼어들고자 하는 이때, Funes 씨는 위태로운 쿠바 농촌문화의 생존을 모색한다. 


그는 자신의 목표가 많은 사람들이 농사를 포기하고 도시 지역으로 이동했을 때 쿠바의 농민들이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시하는 것이라 한다. “쿠바의 농업이 다시 예전처럼 외국 기업에게 지배당하지 않으려면, 쿠바의 가족농이 자신의 농장에서 살아갈 수 있는 방법을 제공해야 합니다”라고 Funes 씨는 말한다. 그의 아버지는 작물학자였고 어머니는 생물학자로서, 두 분 모두 농업 부문을 연구하는 집안에서 성장했다. 


Funes 씨는 일주일에 두 번씩 러시아산 승용차로 아바나에 있는 24개 이상의 식당에 이탈리안 아루굴라, 체리토마토, 꽃상추 등의 신선채소를 배달한다.


이러한 농산물은 대부분의 쿠바인들은 잘 모르지만, 관광객과 외국인 거주자들을 통해 조금씩 알려져 돼지고기와 왕질경이를 주로 먹던 쿠바인들도 소비를 늘리기 시작했다. 


“더욱더 많은 쿠바인들이 이러한 채소들을 발견하고 그들의 지평을 넓히고 있습니다”라고 미국 대사관 근처에 2년 된 식당인 El Litoral의 수석요리사 Alain Rivas 씨는 말한다. Funes 씨의 농장에서 이곳에 신선한 유기농 샐러드의 식재료를 공급한다. 


8~10달러로, 샐러드가 좀 비싼 편이지만 자신의 고객이 지역에 많다고 Rivas 씨는 이야기한다. 


Rivas 씨는 먼저 Funes 씨와 상의해서 식단을 계획하곤 한다. 농장에서 식탁까지의 전례이다. 몇 년 전만 해도 쿠바 사람들은 핸드폰이 거의 없었다. 현재 Funes 씨는 요리사와 식당주, 여타 소비자들과 이메일과 문자메시지를 이용해 연락하며, 음식물쓰레기를 최소화하려는 계획을 짜고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쿠바 농민들은 이러한 방식으로 일하지 않는다. 신속하게 시장에 접근할 수단이 없기 때문에 많은 수확물이 손실될 것을 예상하고 과잉 생산을 한다. 이런 접근법은 겨울 영농철에 공급 과잉을 낳아 가격을 확 떨어뜨린다. 그런 다음 양상추와 토마토 같은 수요가 높은 채소는 카리브해의 뜨거운 햇살 아래 빠르게 상하여 재배자가 손실을 입고 싶지 않아도 여름 영농철에 다시 부족해진다. 


“문제의 일부는 더 효율적인 분배와 조정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고 Funes 씨는 말한다.


물론 다른 부분은 장비와 기술에 대한 더 나은 접근이다.


최근 쿠바의 국가 평의회 의장 라울 카스트로는 식량 수입을 줄이기 위하여 개인 농민과 협동조합에게 비생산적인 상태의 토지 수백만 핵타르를 넘겨주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실망스러웠다. 농산물 시장에 더 큰 풍요로움과 다양성을 가져왔지만, 특정 부분에 너무 많은 중개인들이 끼어들면서 가격이 뛰었다.  


쿠바 농업의 관료주의를 부수는 일은 농민들을 위해 생산량을 높이고 생산비를 줄일 수 있는 트랙터와 트럭, 기타 농자재를 수입해야 하기에 여전히 근본적으로 불가능해 보인다. 정부는 농기구와 기타 농자재 공급을 위해 도매시장을 창출하겠다고 약속했지만 아직 실현되지 않았다. 


Funes 씨는 그의 러시아산 승용차를 냉장트럭으로 업그레이드하고 싶어한다. 그는 사회적 사명의 일환으로 자신의 배달처에 출산 가정을 추가하고, 지역사회 지원 농업의 쿠바판으로 개별 가정에 매주 꾸러미를 배포하고 싶어한다. 


Funes 씨는 토지를 더 늘리지 않고 더 집약적인 방식으로 간단히 수확량을 높일 수 있다고 한다.  그리고 그는 다른 쿠바 농민들이 더 나은 농법을 받아들여 자신의 농지에서 농생태학을 조금이나마 시도해 보도록 하는 데 더 많은 관심이 있다. 


그는 “그 체계를 뭐라 부르든 중요하지 않아요”라고 말했다. “중요한 것은 자연자원을 활용하여 농민들이 자신의 토지에 뿌리를 내린 채 살아갈 수 있도록 하는 일입니다.”




출처 http://www.washingtonpost.com/rweb/world/an-arugula-growing-farmer-feeds-a-culinary-revolution-in-cuba/2015/08/21/35307864-407d-11e5-b2c4-af4c6183b8b4_story.html?tid=kindle-ap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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Organic farming is an important source of fresh produce in Havana, but that is a virtue born of necessity and in the countryside it is a different story.


Cuban men work in an organic vegetable garden near San Andres, Cuba. CREDIT: STEVE WINTER/GETTY



Havana, Cuba. In the capital city, any abandoned pocket of land has been reclaimed for growing organic fruit and veg, consumed fresh by local city dwellers. The country has become a poster child for organic food production, but the urban scene only tells a part of the story. The country is not, and never has managed to feed itself using organic farming.

To tell the story in full, “you have to go back to what Cubans call the ‘special period’, in the beginning of the 90s, after the Soviet empire had collapsed,” says Julia Wright, a sustainable agriculture researcher at Coventry University in the UK. Cubans turned to organic agriculture because its Soviet supply of fuel, fertiliser and pesticides was abruptly switched off.

Wright first visited Cuba in the late 1990s as a PhD student researching the country’s enforced organic switch. By that time, urban organic production was thriving. “I think that’s where the myth of Cuba being organic has come from,” she says. “When you visit, they take you around these urban plots and your picture of agriculture in Cuba is that it is organic.”

Seeing the rural Cuba is much harder. It took Wright six months to get government permission to visit some farms. In the Soviet era, these had been large, highly mechanised, chemical-intensive operations. Large-scale organic farming requires a set of skills that the Cubans simply didn’t posses. Even at the darkest point of the “special period”, the country still imported any agrochemicals it could. The government plan was to keep about a third of its agricultural land under intensive production, planted with key food crops. And throughout the crisis, Cuba continued to rely on imported food.

By the early 2000s, Cuba solidified its relationship with Venezuela, and more oil and agrochemical inputs started to flow back into the country. Official figures vary, but even now Wright’s best estimate is that 40-50% of the country’s food is still imported.

Wright hopes to export something, too. Organic Cuba might be a myth, but there are still plenty of sustainable agriculture pointers, such as its urban scene, that the rest of the world might learn from.

James Mitchell Crow is deputy editor of COSMOS.


http://www.cosmosmagazine.com/features/mythical-paradise-cub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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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groecology can double food production in entire regions within ten years, while mitigating climate change and alleviating rural poverty.”

This is the conclusion of Olivier de Schutter, U.N. Special Rapporteur on the Right to Food, in the presentation of his report in March 2011. This statement is based on his research around the world. In the report, he forcefully called upon states to adopt ambitious public policies for supporting agroecology.

For a long time now, agroecology has been promoted within La Via Campesina (LVC) as a paradigm for achieving food sovereignty. Demonstrating this commitment are the more than 40 peasant agroecology schools in existence or being built within the movement. If we are convinced that agroecology is the path, these centers respond to a question that always strikes us as urgent: “how can we spread agroecology?” In this context, the success of the Farmer-to-Farmer method used by the National Small Farmers Assocation (Asociación Nacional de Agricultores Pequeños—ANAP), the LVC member organization in Cuba, is an inspiring example for the movement. ANAP and LVC organized the biannual international encounter of the Farmer to Farmer Agroecological Movement from the 17th to the 24th of November 2013, which was an opportunity for La Via Campesina to learn more about Cuba’s successful experience.

Of the 80 foreign participants in the international encounter (in addition to over 200 Cuban delegates), half were representatives of member organizations of La Via Campesina: from America (Nicaragua, Guatemala, Panama, Colombia, Brazil, Chile, Argentina, Haiti, the United States, Canada, Mexico) and Africa (Mozambique, Mali, Zimbabwe). The vast majority of these delegates stayed on for an additional week to study the Farmer to Farmer methodology, in a special course designed by the professors of ANAP’s national school.





Farmer to Farmer: popular education meets agriculture


Farmer to Farmer breaks the conventional of vertical transfer of knowledge from the technician who arrives in the countryside to teach the “ignorant peasant farmer” what to do. Here the protagonist is the peasant farmer him or herself, with experiences to share based on his or her practical knowledge in his or her own terrain. The farmer becomes a “promoter”—with the job of reproducing his or her own knowledge.

A methodology born in Guatemala and later arriving to Mexico, Honduras and Nicaragua, it was in Cuba where Farmer to Farmer really “bore fruit”: reaching more than 100,000 families in only 10 years. The achievements of the methodology were visible to the participants in the international encounter, who were able to visit the agroecological farms of promoters in all 15 provinces of Cuba:

I learned a great deal and was able to get to know practices that I hadn’t seen before, such as vermicomposting and the use of micro-organisms. For me, it is of fundamental importance that these techniques become known across the world, by all farmers.”Mamadou Coulibaly (CNOP-LVC, Mali)

This is the proof that healthy food can be produced sustainably, in contrast to the myth we often hear that such production would be too slow and uncompetitive.” Nury Martinez Silva (FENSUAGRO-LVC, Colombia)

Learning from ANAP’s experience

In ANAP’s Niceto Pérez National Training Center, professors shared with participants what they do in terms of training of trainers. They dynamically showed the basic principles of the Farmer to Farmer methodology, as well as techniques such as the participatory assessment, which uses indicator systems to analyze farms, identify local problems and classify farms based on their level of agroecological integration. In working groups, course participants prepared workshop proposals on subjects like soil conservation, sustainable livestock-raising, ecological pest management, and native seed production and conservation. Since course participants had widely divergent levels of practical experience in popular education, the course identified the need to further develop trainings in popular education within LVC organizations and processes.

If there were one principle that especially stood out, it would be the first principle of Farmer to Farmer: start slowly and at a small scale. By achieving rapid success at small scales, people remain motivated and are more inclined to reproduce the experience, as well as share it with others.

Little people doing little things in little spaces can change the world.” -Eduardo Galeano.





More than a method, a movement


The truly impressive characteristic of ANAP’s national agroecological experience in Cuba is the amazing spread of small, local experiences. The “Special Period”—an economic crisis that initiated in Cuba with the fall of the Soviet Union in the early 1990s—forced the country to produce outside of the conventional model, abstaining from external inputs made unavailable by the economic blockade imposed by the United States. Despite this context, it was the transformation of a pedagogical methodology into a social movement that now appears to have been the key to the triumph of agroecology in Cuba.

That is what impressed me. I thought that agroecology was a state policy in Cuba but now I realize that it is a decision of ANAP! An organization that exists since 1961 and in which the entire leadership took on the responsibility of implementing agroecology and the method.” -Nury Martinez Silva (FENSUAGRO-LVC, Colombia)

If the movement is strong, the State has no option but to support it.” -Mamadou Coulibaly (CNOP-LVC, Mali)

As an organization, ANAP not only implemented the method as it existed—with farmer promoters and facilitators who organize trainings—but also added a new role, the coordinator, an ANAP cadre who acts at the municipal or provincial level to direct trainings and bring in allies among institutions and researchers working in the local territories where the movement is present. The entire system is maintained through ANAP’s cooperative structures at the base—each cooperative across the country has several promoters and a couple of facilitators, who work as volunteers unless the local cooperative is willing and able to pay them.

The relationship between ANAP and La Via Campesina

In a meeting with the top leadership of ANAP, the foreign LVC delegates presented their future plans, their commitment with Cuba and the ANAP, and also made petitions to ANAP.

The creation of a network of peasant agroecology schools in LVC is a key to the future strategy. Of these schools, the African schools in Mali, Niger, Mozambique and Zimbabwe, as well as the new Latin American schools in Nicaragua (IALA Mesoamerica) and Colombia (IALA Andina), were among the major examples debated during the course in Cuba. This network of schools needs to be understood globally, with all experiences analyzed and shared within LVC.

During the meeting, LVC declared its continuing solidarity with Cuba and in opposition to the economic blockade imposed by the U.S. government. In this sense, LVC committed itself to offer its capacities for international support. At the same time, LVC asked ANAP to widen its presence within LVC, given its inspiring example of successful implementation of agroecology at the territorial and social level. ANAP was asked to participate and take on an important role in the creation of the network of agroecology schools.

At the conclusion of the course, many spoke of the love that they felt for the Cuban people. “We share values,” said Ariel of CAN-LVC Colombia: “Dignity, Solidarity, Love and Unity!”





Rethinking agroecology…

It would be interesting to take an inventory of the agroecological practices in each country, and revalidate them in order to create a catalogue of the good agroecological practices within LVC. With that, we could defend agroecology everywhere, starting with our own countries.” -Mamadou Coulibaly (CNOP-LVC, Mali)

Over the duration of the course, it became evident that there needs to be more work done to clarify what agroecology means, in its systemic, integrated, holistic characteristics. In several moments, it was clear that agroecology is still sometimes understood simply as a technique. Agroecology is often presented as having three pillars: agricultural techniques, scientific research, and a social movement. Questions that emerge from the Farmer to Farmer methodology could be:

Should popular education be a fourth pillar of the agroecological proposal? Could this method, this educational philosophy, be a necessary condition for scaling-up agroecology? How can popular education help us re-think our organizations and structures? How can it modify our agricultural techniques, valuing them for their popular character? How can it change scientific research by seeing peasants as the scientists they are? In other words, wouldn’t agroecology be more coherent if we saw it, in all its aspects, from the perspective of popular education? This would mean that pedagogy needs to be in the center of all our processes, not only education and trainings, but also in organization and research.





Candles from Cuba to the world


Without a doubt, there is much road ahead before agroecology becomes the new paradigm for global agriculture, despite the public recognition of this need by the UN. The two past weeks in Cuba with ANAP left as many questions as lessons for LVC. How can Farmer to Farmer be applied in each specific context, within countries dominated by neoliberalism? How can we pressure our governments at all levels to adopt our definition of agroecology, as LVC is achieving with food sovereignty? How can we guide public policy toward this strategic objective?

I am leaving here thinking that the first task that I have after this course is to meet with the leadership of my organization and share what I have learned, so that they get as excited as I am, to begin to put this into practice with our base organizational structure.” -Nury Martinez Silva (FENSUAGRO-LVC, Colombia.

¡Globalize struggle, globalize agroecology, globalize hope!



더 읽을거리:

 Agroecological revolution. The Farmer-to-Farmer movement of ANAP in Cuba.

 Agroecology and right to food, Olivier de Schutter, UN report, MArch 2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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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 아바나. CC Flickr User weaver.


매일 런던 시내에서 3000만 개의 식사가 제공된다. 복잡하고 꽉 찬 일정의 생산, 수송, 분배 계획에 따라 수백 만 개의 상점과 식당에 수백 만 대의 트럭이 도착한다.

우린 이 체계가 절대 실패하지 않을 거라고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이 트럭들이 멈추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비현실적인 것처럼 들리겠지만, 그것이 일어났다 –그리 오래되지 않았다.

1989년, 쿠바의 열량섭취량 가운데 57% 이상이 소련에서 수입되었다. 소련이 붕괴되었을 때 쿠바는 하룻밤 사이에 자신의 인구를 홀로 먹여살리게 되었다 –아바나시에 사는 220만 명을 포함하여.[1] 그 다음은 놀라운 회복력과 혁신에 대한 이야기가 일어났다.

우리의 세계가 점점 도시화됨에 따라 우리의 농촌은 점점 절멸할 위기에 처하고, 우리의 화석연료에 대한 의존도는 점점 바람직하지 못한 상태가 되어, 어떻게 수십 억의 도시민을 먹여살릴 것이냐는 질문은 단지 사고실험에 지나지 않는 일이 아니게 되었다 –시급한 현실이다.

쿠바의 이야기는 우리에게 흥미로운 질문을 던져준다:  우리가 도시 설계에 주요 관심사로 식량 생산/분배를 배치하기 시작한다면 우리의 는 어떤 모습이 될까? 그리고 이러한 전망을 현실화하기 위해서 무엇을 해야 하는가?


이 1676년의 런던 지도는 런던의 중심부를 통과하는 동서로 뻗은 대로를 보여준다. Carolyn Steel 씨는 그걸 따라 있는 Cheapside, Poultry, Cornhill와 같은 다양한 도로명에 주목하는데, 그것이 런던의 중심적 식습관의 하나를 지칭한다. © Wikimedia Commons User Mike Calder. Via Ecos Magazine.


먹을거리와 도시

굶주린 도시(Hungry City)의 저자 Carolyn Steel 씨는 자신의 TED 토크인 “먹을거리가 어떻게 우리의 도시를 형성하는가(How Food Shapes Our Cities)”에서 도시화가 시작된 이후 어떻게 도시가 농업과 밀접하게 연관되어 있는지 설명한다 – 물론 이건 논리적이다. 어떻게 도시가 그것을 지탱할 만한 믿음직한 식량원 없이 번성할 수 있겠는가?

Steel 씨는 지도와 도로명을 보면 이러한 먹을거리가 사고팔리는 대광장 쪽으로 고대 도시에 먹을거리가 물질적으로 새겨놓은 경로를 볼 수 있고, 도시 스스로 어떻게 이러한 먹을거리의 유통을 촉진시키는 방향으로 건설되었는지 볼 수 있다고 지적했다(예를 들어 런던의 Friday street는 금요시장에서 생선이 팔리던 곳). 

물론 산업화가 모든 걸 바꾸어 놓았다. Steel 씨는 우리가 우리의 도시 안으로 이미 도축된 고기와 이미 집하된 채소를 들여오려고 철도를 사용하기 시작하자마자, 우린 “사실상 지형으로부터 우리의 도시를 자유롭게 했다”고 표현한다.

급작스럽게 우리의 도시는 놀라운 성장속도로 어떤 방향으로든 성장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은 오늘날도 그렇게 하고 있다. 그러나 대개의 경우와 같이 이러한 진보는 어두운 측면이 있다.

오늘날 전형적인 도시민은 어디에서 어떻게 먹을거리가 생산/분배되는지 모르고 있다. 우린 공장형 농장에서 우리의 슈퍼마켓으로 막대한 양의 먹을거리를 가져오는 거대하고, 강력하고, 이윤 지향적인 기업에 의존하게 되었다 – 그러나 그 전체 과정은 비밀스럽고, 매우 복잡하고, 전혀 지속가능하지 않다.




식도락가와 농민장터

농민장터와 유기 농산물의 문화적 저장소부터 옥상텃밭과 지역의 지역사회 지원농업의 확산까지, 꽤 많은 비율의 인구가 먹을거리 소비자와 생산자 사이의 물질적, 개념적 격차를 줄이려 노력하고 있다. 

그러나 이러한 풀뿌리 조직의 존재가 증가하고 있긴 하지만, 현재 우리의 경제와 정부를 통제하고 있는 대형 식량체계에 대한 대안을 제공해 나아갈 수 있는지 이해하기란 어럽다. “Stocking the City”의 저자 Chris Dehenzel 씨는 그것이 성공하기 위한 대안적인 식량체계의 종류는 “정책과 도시계획 차원에서 근본적인 구조적 변화”가 필요할 것이라 지적했다.

질문이 남았다: 정책/도시계획의 근본적 변화란 무엇을 말하는가? 답을 찾고자 쿠바로 눈을 돌려보자.



쿠바 아바나의 텃밭의 모습. Via CPULs.















쿠바의 사례

1990년대, 대규모 식량부족에 직면한 아바나의 시민들은 그들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을 했다 –자신의 삶은 스스로 해결하라.

발코니, 테라스, 뒷뜰, 공터에서 동네 사람들이 콩, 토마토, 바나나를 심기 시작했다 – 그들이 할 수 있는 곳에서 그들이 할 수 있는 걸. 2년도 안 되어 아바나의 모든 동네에 텃밭과 농장이 생겼다. [2]

정부는 이에 주목하고 이러한 노력을 뭉개버리는 대신 장려했다. 1994년 새로이 조직된 도시농업부(Urban Agriculture Department)는 몇몇 주요 활동을 맡았다: (1) 토지사용권이란 개념을 도시계획의 도시법안으로 개정하여, 불법으로 치부하지 않고 무료로 유휴지와 공공부지에서 식량을 생산하도록 변경했다; (2) 보급원을 훈련시키고 그들의 연결망을 확장하여 자신의 동네에서 텃밭농부들을 관찰하고, 교육하고, 북돋도록 했다; (3) 농자재와 정보를 제공하기 위해 “Seed Houses(농자재 상점)"를 만들었다; (4) 이러한 텃밭에서 수익을 내도록 직거래의 기반구조인 농민장터를 설립했다.[3]

1998년까지 아바나에는 공식적으로 인정받은 8,000곳 이상의 텃밭이 생겼다 –개인적으로 운영하는 텃밭부터 주 단위로 운영하는 농장까지 –모두 유기농업(어쩔 수 없이 농약이 수입되지 않아)이고 국가의 채소 가운데 약 50%를 생산했다. [2]



가능성과 가시성 

물론 쿠바는 완벽함과는 거리가 있어, 이러한 정책이 성공적으로 유지되거나 심지어 성공한 곳인지조차 의심스럽다(쿠바는 다시 외국의 수입에 의존한다. Raúl Castro 가 2008년 그의 형에게서 위임을 받았을 때, 그의 주요 공약 가운데 하나가 관료제와 비생산성으로 가득한 농업 부문을 부흥시키는 것이었다).

그러나 쿠바가 매혹적인 점은 필요성 때문이지만 다시 한 번 먹을거리가 수도의 형성에 중요한 요소라는 것이다. 하지만 필요한 것은 깊게 뿌리 박혀 있는 이전 식량체계의 완벽하고 강제적인 제거이다.

미국의 상황은 쿠바처럼 극심하거나 무시무시하지 않지만, 검토할 만한 몇 가지 유사점이 있다. 먼저, 현재 경제위기가 우리의 시대에 뒤처지고, 비효율적이며, 지속가능하지 않은 식량체계를 바꿔야 한다고 강하게 압박하고 있다. 둘째, 식량과 우리의 관계에서 일어나는 문화적 변화, 특히 증가하는 건강문제와 비만의 유행은 시민들이 스스로 직접 식량생산을 맡으려 하도록 만들고 있다.

쿠바에서 그 모든 것이 어떻게 시작했는가 – 위기에 대응하려고 행동하는 시민들이 참여했다. 도시농업은 도시를 먹여살리는 대안이란 가능성 이전에, 행동을 보일 수 있는 방법이다. 우리가 다시 한 번 도시 설계에 우리의 인도로 먹을거리를 넣는다면, 첫걸음은 –물질적 거리만이 아니라– 우리와 우리 먹을거리 사이의 개념적 거리를 단축시키는 설계를 사용하는 것이다.

어떻게 설계를 사용하여 먹을거리에 관현하여 도시를 바꿀 것인가? 다음 글을 기다려주길 바란다: 도시농업 2부: 거리를 설계하자

 


참고자료

[1] Warwick, Hugh. “Cuba’s Organic Revolution.”

쿠바의 유기농혁명.pdf

<http://forum.ra.utk.edu/Archives/Summer2001/cuba.pdf>

[2] Murphy, Catherine. “Urban Gardens Increase Food Security In Times of Crisis: Habana, Cuba.”

위기의시대,도시텃밭이식량안보를높인다.pdf

<http://www.flacso.uh.cu/sitio_revista/num3/articulos/art_CMurphy13.pdf>.

[3] Pinderhughes, Raquel, Catherine Murphy, and Mario Gonzalez. “Urban Agriculture in Havana, Cuba.” August 2000. <http://online.sfsu.edu/~raquelrp/pub/2000_aug_pub.html>.


출처 http://www.archdaily.com/237526/urban-agriculture-part-i-what-cuba-can-teach-us/

쿠바의 유기농혁명.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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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유기농혁명.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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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기의시대,도시텃밭이식량안보를높인다.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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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7년 피델 카스트로는 병석에서 일어난 뒤에 쓴 글에서, 식량을 생물연료로 쓰면서 "세계의 30억 이상이 기아와 갈증으로 너무 일찍 죽고 있다"고 했단다. Viva, Fidel!

 

 


다음은 생물연료로 인해 굶주리는 사람들이 발생하는 현실에서 식량안보가 우선시되어야 한다는 올리비에 드 슈터 씨의 기사. 카스트로의 말이 현실에서 어떻게 일어나고 있는지... (http://www.guardian.co.uk/global-development/poverty-matters/2012/oct/17/world-hungry-biofuels-food-security?CMP=twt_gu).

 

 



쿠바에선 그래서 일찍이 도시농업이 활성화되었다. 소련 붕괴 뒤에 찾아온 경제위기, 수입봉쇄를 해결하는 방안으로 '자급'을 선택한 것이다. <생태도시 아바나의 탄생>으로 유명하다. 

 




농사지을 수 있는 공간은 어떻게든 최대한 활용했다. 그리고 행정당국에서는 제도와 법을 마련하여 도시농업을 지원하기 시작했다(http://blog.daum.net/stonehinge/8726155).

 




1994년, 농업부는 최초로 도시농업을 제도화한다. 이로써 가정의 텃밭부터 대형 협동조합까지 농업부의 지원을 받고, 사람들은 농지를 분양받고 종자와 농사법 교육까지 받을 수 있었다.

 

 

 



쿠바에선 집에 이렇게 텃밭을 가꾸며 산다는... 한국은? 빈땅이 있으면 건물지어 돈 벌어 먹기에 바쁘지. 위기의 순간에 어느 도시가 더 탄력적으로 대응할 수 있을까? 무슨 말이 필요할까. 

 

 


 


도시농업 협동조합에서는 수많은 일자리도 창출했다. 노인 인력도 그곳에서 부지런히 일하고, 공무원보다 낫다고까지 한단다. 물론 쿠바의 독특한 상황이니까 가능한 이야기지만 말이다. 

 



그렇다고 문제가 없는 건 아니고, 토질이 좋지 않은 점이나 물 부족, 병해충 문제 등의 과제도 있긴 하다고... 또한 여전히 많은 식량을 수입하고 있는 상황이기도 하다.

 

 

 



쿠바라고 하면 입에 거품 물고 비판부터 하거나, 예수라도 본 양 칭송하거나 하는 두 극단이 있다. 그런 극단을 걷어내야지만 쿠바의 온전한 모습을 제대로 볼 수 있으리라. 도시농업에 관련해서도 마찬가지다. 문제는 늘 공존한다. 배울 점은 배우고, 고칠 점은 고치면 되는 것이다. 입에 거품 좀 닦고, 눈에 콩깍지 좀 벗겨라.

 

 

허나 확실히 도시농업이 활성화된 뒤 쿠바인의 식단의 질이 높아진 건 사실이다. 도시농업으로 예전보다 더 많은 신선한 채소를 먹을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이 지역 먹을거리의 힘이다.

 



도시농업이 얼마나 전세계적으로 붐이냐면, 도시문명의 상징 뉴욕에서도 일어나고 있다(http://goo.gl/HKvn7). 


재미나지 않은가, 쿠바의 아바나와 미국의 뉴욕에서 도시농업이 활발히 행해진다는 사실이... 요즘 한국에서도 여기저기 우후죽순처럼 솟아나고 있다. 무럭무럭 잘 자라고 퍼져서 대나무숲을 형성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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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산 바람들이 농장에서 실험하려고 만들고 있는 쿠바식 텃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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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서에서는 케냐와 방글라데시에서 논에 오리를 풀고, 곤충잡이 식물을 써서 벼 생산량이 높아지는 결과를 낳았다고 예를 든다.



어느 벼농사 농부가 산업형 방식 대신 오리를 써서 김매기를 시작했다. Photograph: Anupam Nath/AP




개발도상국에서 농부가 화학비료와 농약(pesticides)을 팽개치고 생태적인 농업으로 옮겨가면 식량 생산량을 10년 안에 2배로 올릴 수 있다고 유엔의 보고서에서 말한다( a UN report says)

케냐에서는 벌레잡이 식물을, 방글라데시에서 풀을 먹는 오리를 쓰는 논은 2050년까지 약 90억이 될 것이라 유엔이 이야기하는 세계의 700만 명을 먹이고 있다는 추천 사례의 하나이다.

유엔의 식량의 권리에 대한 특별 조사위원 Olivier de Schutter 씨는 식량가격 지수를 하락시키고 비용이 많이 드는 석유의존형(oil) 산업 방식의 농업으로 몰아가는 "농업은 기로에 서 있다"고 한다(industrialfarming).

지금까지 57개국에서 행한 생태농사 프로젝트는 땅심을 높이고 해충을 방어하는 자연적인 방법을 써서 평균 작물 생산량이 80% 올랐다고 입증되었다고 한다.

최근 아프리카의 20개국에서 프로젝트는 3년에서 10년 안에 작물 수확량을 두배로 올린다는 결과를 얻었다. 그러한 결과는 어디서나 크게 다르지 않을 수 있다고 덧붙였다.

드 슈터 씨는 자연적인 두엄이나 커피나무 숲에 그늘이 지게 하는 방법과 같은 조치를 들며 "건전한 생태적인 농사는 훨씬 생산량을 높이고 장기적으로 관행농업보다 더 효과적일 수 있다"고 한다.

또한 "생태농업"이 홍수, 가뭄, 보고서에서 이미 관개용수로 쓰기에 너무 염분이 높아진 바닷가 근처에서 신선한 물을 만들고 있다고 하는 해수면 상승을 포함하여 기후변화와 연관된 극단적인 기후 상태에 더욱 탄력적인 농장을 만들 수 있다고 믿는다.

혜택은 매우 적은 노동력을 농업에 투입하는 지역, 특히 사하라 이남의 아프리카에 가장 좋을 수 있다"고 한다. "또 라틴아메리카와 아시아의 일부에서 매우 유망한 경험을 여러 번 했다."

그는 "식량 생산비용은 석유값에 매우 민감하다"고 한다. 이집트와 튀니지의 격변은 일부 치솟는 식량가격에 대한 불만에 연결되어 있다(have been partly linked to discontent at soaring food prices). 석유값은 지난 화요일 1배럴에 약 115달러였다.

드 슈터 씨는 "만약 식량 가격이 조절할 수 있는 수준을 유지하지 못하면 사람들은 먹고 살 수 없을 것이다. ... 우린 점점 더 상태가 교란되고 개발에 실패한 상태가 될 것이다"라 한다.

아프리카에서 성공한 생태농업의 예로는 벌레를 물리치는 도둑놈의 갈고리(desmodium)나 된장풀(tick clover)을 심고, 동물 먹이로 쓰이는 네이피어그라스를 옥수수밭에 한켠에 심어 그것이 분비하는 끈끈한 액으로 해충을 잡고 벌레를 쫓는 수천 명의 케냐 농부가 포함된다.

그 연구는 또한 더 나은 연구, 교육과 지역적 지식의 사용을 필요로 한다. 인도네시아, 베트남, 방글라데시의 벼농사 농부에 의한 "농부 현장학교"는 35~92% 사이의 살충제 사용의 감소를 가져왔다고 한다.

De Schutter 씨는 또한 벼, 밀, 옥수수에 대한 의존으로부터 세계의 농사 생산에 다양화를 추천한다.

그러나 개발된 나라들은 빠르게 생태농업으로 전환할 수 없다. 왜냐하면 그가 "중독"이라 부르는 석유에 기반한 산업형 농업 때문인데, 하지만 세계는 장기적인 노력으로 생태농업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보고서는 쿠바가 1991년 소련의 붕괴로 값싼 농약과 비료의 공급이 대폭 줄어든 이후 어떻게 변화를 이루어냈는지 예를 든다. 생산량은 1990년대의 저점 이후에 농민이 더욱 생태적인 방법을 채용한 이후 올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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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바의 생태농업 1 - 기존 문헌으로는 아무것도 알 수 없다

 

 

 

쿠바의 생태농업은 진전하고 있는가

 

쿠바의 생태농업에 대한 책은 수없이 많이 나와 있다. 예를 들면 허드슨연구소(Hudson Institute) 세계 식량문제 연구센터의 데니스 에이브리Dennis Avery 소장은 <쿠바인은 거짓 음식으로 굶주린다(Cubans Starve on Diet of Lies)>에 이렇게 썼다.

 

“쿠바인은 1990년대 전반 소련의 보조금이 끊긴 뒤, 농업용 연료와 화학자재를 쓰지 않으며 스스로 자급하는 일을 영웅적으로 배웠다고 온 세계에 떠든다. 농민 협동조합, 생물농약, 유기비료를 자랑하고 있다. 지렁이 농법과 해충을 먹는 천적 벌, 그리고 트랙터를 대체하는 소 쟁기질도 자랑한다. 온 세계의 유기농업 활동가들은 여기에 정신이 팔렸다. 하지만 아바나에 주재하는 미국 이익 대표부 직원에 따르면, 현재 쿠바는 그 소비식량의 84%를 수입하고 있다는 점을 쿠바 농업성의 고위 관료가 스스로 인정한다고 한다. 유기농업이 성공했다는 말은 모두 거짓이다. 철의 장막 뒤에 앉아 있는 독재자가 자유세계를 속이려고 냉전시대처럼 행동한 것으로, 요란한 공산주의 방식의 커다란 거짓부리이다.”

 

이 에이브리란 사람은 오랫동안 유기농업을 비판하며 유전자조작 작물·농약·방사선을 쬔 식품·공업형 농업·자유무역을 지지하던 사람으로, <농약과 플라스틱으로 지구를 구한다 : 수확량이 많은 농업의 환경 승리(Saving the Planet With Pesticides and Plastic: The Environmental Triumph of High-Yield Farming)>(2000)라는 저작도 있다.

이와 관련하여 허드슨연구소에 자금을 대는 곳은, 아처 다니엘스 미들랜드Archer Daniels Midland, 콘 아그라Con Agra, 카길Cargill 등의 농산업 기업과 아메리칸 사이나미드American Cyanamid, 치바가이기Ciba-Geigy, 몬산토Monsanto, 신젠타Syngenta 등의 생명공학 및 농약 기업이다. 그가 바라보는 쿠바의 유기농업에는 꽤 삐딱한 면이 있다고 보는 편이 좋다.

 

한편, 쿠바의 유기농업을 오랫동안 지지한 피터 로제트와 미구엘 알티에리 박사는 쿠바의 생태농업을 절찬한다.

 

“우리가 아는 한 2008년 3번의 허리케인이 쓸고간 뒤, 쿠바는 그 소비식량(비공식 수치)의 55%를 수입하고 있다”며 쿠바가 식량을 수입한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그리고 최근 쿠바를 방문한 사람들이 수집한 사례 증거를 통해 쿠바의 유기농업 생산력이 최근 떨어졌다고도 기술한다. 그렇지만 에이브리가 ‘쿠바의 생태농업 모델은 붕괴 직전이다’라고 단언하듯이, 쿠바 생태농업의 실적을 칭찬하는 모든 보고서도 ‘커다란 거짓부리이다’라는 점을, 이를 의미하는 것이 아니냐고 질문을 던지며 이렇게 계속한다.

 

“쿠바는 기후 변동으로 가장 피해를 받고 있는 나라의 하나이다. 하지만 2008년 3번의 허리케인 피해에도 상관없이 식량 자급을 유지할 수 있다는 점은 인상적이다. 생태농업은 쿠바에서 성장하고 더욱 강화되고 있다. 쿠바의 자립 소농 ANAP의 회원 수의 약 절반인 10만 세대가 생태농업을 통한 다양화를 실천하고, 상업적인 산업형 농업보다 훨씬 많은 식량을 같은 면적에서 생산하고 있다. 이러한 가족농업의 대다수는 캄페시노 운동(Campesino a Campesino)의 일부로서, 20%의 토지만으로 국내 식량의 65% 이상을 생산한다. 이러한 쿠바의 경험에서 나온 자료는 단일 작물의 수확량이 아닌 총생산량을 고려하면, 대농보다 소농이 뚜렷하게 생산적이라는 점을 보여주는 연구를 확증한다. ANAP는 경험을 나누어 지역적 연구와 문제 해결 능력을 강화하는 데에 중점을 두고, ‘농민에게서 농민으로’라는 모델의 기술 혁신과 보급 과정을 통해 농민의 적극적인 참가에 특별한 관심을 쏟고 있다. 그리고 이 과정이 진행됨에 따라 더욱 소규모인 농민도 이 생태농업 혁명에 참가하고 있다. 현재 정부는 귀농을 바라는 가족에게 최대 13.5ha의 농지를 제공했는데, 10만 건의 신청이 들어왔다. 목표는 쿠바의 식량주권을 확실히 하고자 150만ha를 생태농업으로 관리하자는 것이다.”

 

“도시농업의 업적도 성장하고 있는데 참으로 대단하다. 38,3000개의 도시 농장이 5만ha의 유휴지를 포함한 곳에서 150만 톤 이상의 채소를 생산한다. 아바나와 산타클라라 등의 도시에서는 70% 이상의 신선한 채소를 공급할 정도다. 도시 농장은 화학 합성 물질을 전혀 쓰지 않으며 1평방미터에 20Kg의 수확량을 올린다. 세계의 다른 어느 나라도 식료품의 이동거리와 에너지 사용을 억제하고, 지역 농산물 소비라는 흐름을 이끈 이 효율적 수준만큼 성공하지 못했다.”

 

피터 로제트와 미구엘 알티에리 박사는 최근의 10개 주州에서 농장의 실정을 조사하며 몇 백 명의 농민, 농학자, 정책 입안자와 이야기하여 이러한 발전을 확증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그렇다면 왜 거시경제 측면에서 쿠바의 농업은 쇠퇴하고 있는 것일까? 로제트와 알티에리 박사는 “경제 봉쇄 때문에 인도주의적 식량 판매라는 암시장으로 미국에서 수입되는 식료품의 영향이 크다. 미국의 경제 봉쇄와 언제 일어날지 모르는 무력행사에 대항할 원조를 구하고자 쿠바 정부에서 어떠한 정치적 결정을 한 듯하다. 미국 기업에게 해마다 고액의 본질적으로는 필요치 않은 식료품을 대량으로 구입하고 있다. 이러한 수입 증가가 최근 쿠바의 전국 생산을 저하시키고, 그것이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이 대안을 결의하자고 주장하는 일로 이어졌다”고 주장하는데, 그만큼 이야기는 단순하지 않다.

 

쿠바의 유기농업이 어떤 상태인지를 확실히 하는 데에는 각각의 우량 사례만이 아니라 전체를 볼 수 있는 지역이 어떤 상황인지 조사하는 것이 도움이 된다.

 

쿠바의 문헌에는 이러한 사례 조사를 좀처럼 볼 수 없는데, 캐나다 어느 대학의 석사논문 수준에서도 학생들이 꽤 면밀히 조사했다. 아래의 내용은 인터넷에서 찾은 그러한 석사논문 가운데 하나로 그 개요를 소개하겠다.

 

 

애매모호한 쿠바의 유기농업 정의

 

쿠바는 유기농업의 선두로 간주된다. 그 경험은 <근대사에서 최대의 관행농업에서 유기농업으로 전환함>」(Rosset and Medea, 1994), <근대적 대규모 관행농업에서 준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려는 장대한 실험>(Rosset, 1997: 291), <유기농업으로 전환>(D’arcy, 2005), <유기혁명>(Warwick, 2001: 54)이라 불리고 있다.

유기농업과 지속가능한 농업 체계에서 쿠바가 세계에서 중요한 선구자임을 보여주는 문헌은 수없이 많다. 하지만 쿠바의 농업 부문에서 ‘유기’나 ‘지속가능’이라는 단어를 엄밀히 무엇을 뜻한다고 정의하는지는 쉽게 알 수 없다. 어느 때는 ‘쿠바 농업은 전체가 유기이다’라 하고, 또 어느 때는 ‘준 유기이다’ 하고, 또 어느 때는 ‘지속가능이다’ 하고, 또 어느 때는 ‘생태농업이다’ 기술한다. 이렇게 다양한 용어의 경계는 애매하게 얼버무린 채이다. 쿠바에게 유기농업이란 무엇을 뜻할까? 먼저 역사적 경과를 보도록 하자.

 

 

경제위기 이전부터 준비되었던 유기농업

 

쿠바의 농업은 소련의 원조를 받는 녹색혁명에 따른 근대적 생산 모델이었다. 근대농업의 기술은 개인 농가와 협동조합 농장보다 국영농장에서 더욱 성행했다. 경제위기 이전에 개인 농가와 협동조합 농장이 관리하던 농지는 전체의 20%에 지나지 않았는데, 전통적인 저투입형의 비교적 지속가능한 농법이 유지되어(Funes, 2002) 그것이 전국적인 차원의 고투입형 기술에서 전환하게 하는 바탕이 되었다. 또 다른 세계의 여러 지역과 마찬가지로, 쿠바에서도 1960~1970년대에 걸쳐서 환경 의식이 높아진다. 그 까닭은 DDT와 같은 농약의 나쁜 영향을 지적한 레이첼 카슨의 고전 <침묵의 봄> 등의 저작이 출판되었기 때문이다(Funes, 2002). 이 의식의 고양으로 1970~1980년대에 걸쳐 쿠바의 학회와 농업성(MINAGRI) 및 대학은 관행농업에 비판적인 입장이 되어 대안 기술을 개발하는 데에 연구의 중점을 두기 시작했다(Rosset, 1997; Warwick, 2001; McKibben, 2005). 이리하여 농장과 연구를 통해 경제위기 이후에도 쓰일 수 있는 자원이 준비되었던 것이다.

 

 

투입 자재의 전환

 

일반적으로 유기농업이란 화학비료와 농약 등을 유기비료 등의 생물투입자재로 대체하는 것이라 하며, 그것은 거의 모든 유기인증 규정의 핵심이기도 하다. 쿠바에서도 ‘투입자재의 대용이 새로운 농업의 핵심이다’라고 Funes(2002)는 기술하며, 이 성패가 유기농업의 지표라 할 수 있다고 지적한다. 이 대체는 ‘고투입형에서 저투입형 농업으로의 전환’(Rosset, 1997), ‘석유, 화학자재, 기계 등의 공업적 투입에서 대안에너지, 바이오 방제 유기체, 수소 등의 지역에서 생산된 지속가능한 투입자재로의 전환’이라고 기술한다(Rosset, 1997).

 

투입 자재의 대체에 대한 쿠바의 전환은 참으로 빨랐다. 하나의 예를 들면, 1991년에는 작물의 56%가 이미 바이오 방제로 처리되고 있었다. 이는 유기농업의 진전이고, 약 1560만 달러의 경비 절감으로 이어졌다(Rosset and Medea, 1994). 또 수소도 1990년에는 약 5만 마리였는데 2000년에는 40만 마리가 되어, 이것이 경작용으로 트랙터를 대체했다(McKibben, 2005).

 

 

전통기술도 근대기술도 함께 쓰다

 

유기농업은 반反근대라서 로우 테크의 저투입형 농업으로 회귀하는 것이라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전통농업이라고 하여 반드시 지속적인 것이 아니라, 실제로 매우 환경파괴적인 전통농법도 있다. 쿠바에서는 근대기술보다 자금이 들지 않기에(McKibben, 2005),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는 것의 일부로 전통농업으로 회귀하자고 적극적으로 장려되었다(Rosset, 1997; Nieto and Delgado, 2002). McKibben (2005: 64)는 쿠바의 준準유기농업을 고투입형 트랙터 농법에 필적하는 발명이라고 평가한다. 하지만 쿠바에서는 근대농법과 유기농법이 명확히 구별되지 않고, 현장 상황에 따라서 모두 존중된다. 가장 초보적인 전통농법도, 경제적 긴급사태에서 어쩔 수 없이 강구된 조치라고 하기보다는 현재의 농업 과제에 대응하는 다양한 기술의 하나라고 본다(Mart´ın, 2002: 69).

 

 

농장 규모

 

기계화 농업에서는 규모를 확대하는 쪽이 효율적이지만, 그러한 대규모 농업에서는 섬세한 경영 관리나 자원순환이 어렵다. 유기농업과 같이 지식에 기초하는 생산에서는 소규모인 쪽이 더욱 효율이 좋다(D’Souza and Ikerd, 1996). 이 때문에 유기농업에서는 대규모 유기농업이라는 발상 그 자체에 무리가 있다고 주장되는 것이다. 쿠바에서는 사탕수수, 카카오, 커피 등 대규모 플랜테이션도 유기농업으로 전환되고 있는데, 그 전환 속도는 소규모 농장과 협동조합 농장과 비교하면 더디다(Funes, 2002). P´erez and Echevarr´ıa(2002: 273)는 사탕수수와 담배 농장에 대해서 ‘대규모 농장에서 유기농업으로 가는 길은 아직 먼 것이 현실이다’라고 인정한다. 곧 대다수 대규모 농장은 아직도 관행농업인 채이고, 유기농업으로 전환하고 있는 것은 소규모 농가와 그 조직이다(Warwick, 2001; Ricardo, 2003). 유기농업에는 토지 특성에 따른 지식이 필요하여, 소규모 농가 쪽이 농지와 더욱 친밀하기 때문이다. 경제 위기 초기에는 대규모 국영농장이 해체되고 소규모로 바뀌는 농업 개혁이 이루어졌는데, 그것은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는 데에 도움이 되었다.

 

 

수출지향생산과 지역 농산물 먹기

 

유기농업에서는 지역 농산물 먹기가 수출 지향일지라도 큰 과제이다. 많은 유기농업 추진파는 지역 농산물 먹기를 중시하며 유기농업의 일부로 보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식량의 원거리 출하에는 환경 부하가 있어, 건전한 자급자족형 지역사회 만들기에는 지역 농산물 먹기가 빠질 수 없기 때문이다. 하지만 현실에서 라틴아메리카의 유기농업 대부분은 지역 농산물 먹기보다 선진국의 유기식품 시장을 지향한다(Raynolds, 2000; Gomez Tovar, 2005).

그러나 쿠바는 다르다. 유기농업으로 전환한 것은 지역의 식량안전보장의 달성(Rosset and Bourque, 2002; Funes, 2002)과 Perera(2002: 7)가 말한 ‘식량주권’의 중시와 함께 병행하여 진행되고 있다. 다만 지역 농산물 먹기를 중시하고 있기는 하나, 쿠바는 아직도 해마다 9억 달러나 농산물을 수입하고 있다. 1980년대의 식량 수입액은 1년에 10억 달러로 그다지 떨어지지 않았다. 그뿐만 아니라 국내 수요를 충족하고자 쌀, 밀, 밀가루, 고기, 우유, 콩 등을 계속 수입에 의존하고 있다(FAO, 2005).

 

Rosset(1997)는 경제위기 초기에 기아를 피하려면 이런 전환이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사실 경제위기가 시작되면 쿠바는 그 식량의 50% 이상을 수입해야만 한다(Nieto and Delgado, 2002). 갑자기 수입 식량의 침체로 인해 현지의 식량안전보장이 긴급 과제가 되었다. 현재 얼마나 되는 유기농산물이 생산되는 그 지역사회 안에서 직접 소비되지에 대한 통계는 얻을 수 없다. 그렇지만 비공식 평가를 통해서 생산된 지역에서 꽤 많이 소비된다고 알려져 있다(Alvarez, 2002; Funes, 2002). 그 식량의 얼마는 생산자가 직접 소비하고 있는데, 그밖에도 지역 내 유통이란 선택지가 있다. 1994년에 문을 연 민간의 농민시장이 그것이다. 그것은 정부의 배급제도를 보완하고, 어느 정도 가처분소득을 가진 사람들에게 현지 생산물을 판매할 기회를 생산자에게도 가져다주었다(Sinclair and Thompson, 2001; McKibben, 2005).

 

도시농업도 지역 농산물 먹기를 중시하고 있어, Altieri et al.(1999: 132)는 이를 ‘생산이 밀접하게 도시 주민과 결합되고, 도시에서 직접 영향을 받는 도시 및 도시 근교에서 생기는 모든 농업·가축 생산’이라고 정의한다. 1989년 이전도 자가 텃밭의 얼마는 도시부에서 식량원이 되었는데(Wezel and Bender, 2003), 이러한 텃밭은 저개발의 상징이라며 부정적으로 보는 경향이 있었다(Altieri et al., 1999). 그러나 소련이 붕괴된 뒤 가정과 지역사회의 텃밭이 식량위기에 대응하는 빠뜨릴 수 없는 수단이 되어서, 이런 의식은 급속히 변화해 나아갔다(Altieri et al., 1999; Chaplowe, 1998; Warwick, 2001). 현재는 가령 농사 경험이 거의 없는 시민도 지방정부에게 공짜로 식량생산용 토지를 얻을 수 있고, 많은 사람들이 신청하고 있다(Altieri et al., 1999). 현재는 몇 천 개의 도시 텃밭이 있어, 아바나시에서는 몇 만 명이 도시농업 부문에 종사하며, 2004년에는 30만 톤의 식량(과실과 채소의 대부분, 그리고 쌀과 고기도 꽤 포함)을 생산했다(McKibben, 2005). 도시농업은 매력적인 분야가 되어, Wezel and Bender(2003)는 임금이 높은 도시농업 부문에서 일하려고 국가공무원들이 전직하는 경향이 있다고 지적한다. 쿠바의 도시 텃밭은 현지 생산과 지역 안의 유통체계를 창조하는 것으로 지역의 식량안전보장을 개선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그리고 유기농업 모델의 주요 사례로도 인식되고 있다. 지역에서는 화학비료와 살충제의 사용이 금지되어, 결과적으로 땅심을 올리고 병해충을 방제하고자 도시 텃밭에서는 유기농법을 쓰게 되었다(Altieri et al., 1999). 마찬가지로 중요한 것은, 도시농업을 통해 창설된 지역 농산물을 먹자는 운동의 연결망이다. 그것은 지역사회 안에서 사회적인 관계망을 구축하자는 유기농업의 이상을 만족시키고, 식품 수송으로 발생하는 오염을 삭감하고 있다(Altieri et al., 1999). 게다가 재활용된 투입자재와 지역에서 이용할 수 있는 자재(지렁이두엄 등)을 쓰고(Altieri et al., 1999), 결과적으로 유기농업의 지지자들이 ‘더욱 깊은 형식의 유기농업’이라고 간주하는 닫힌 생산 체계를 만들어내고 있다.

쿠바의 유기농업이 지역 농산물 소비 연결망의 중시와 관련하여 지금까지 발전해 왔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렇지만 국가에서 수출용 유기농산물 생산을 계획하고 있는 움직임도 있다. 국제시장에서 받는 유기인증 농산물의 높은 가격을 이용하고, 사탕수수·카카오·커피·벌꿀·과일 등의 전통적인 돈벌이작물을 유기인증하려고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Funes, 2002). 이 수출 생산에 초점을 맞춘 전환에 의해서 유기농업이 의미하는 내용도 변화해 나아갈지도 모른다. “충분하지 않은 외환의 현재 경제 상태… 그것이 수출용의 유기농산물과 시장관리를 지지하고 있다(Funes, 2002: 23).” 그렇지만 수출 지향 샌산에 맞춰서 쿠바가 어떻게 움직여 갈지는 명확하지 않고, 수출 시장을 중시한 유기인증 농산물에 의해서 돈벌이작물을 수출하고 식량을 수입하려는 쿠바의 예전 입장으로 돌아갈지 어떨지도 알 수 없다.

 

 

쿠바에 유기농업 철학은 있는가

 

투입자재의 대체는 거의 모든 유기인증 기준의 기초를 이룬다. 하지만 유기농업에는 간단히 정의할 수 없는 어려움이 있다. 그것은 포괄적인 일련의 가치관과 이상주의이다. 유기농업은 순수하게 경제적인 이익으로부터, 사회와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깊은 철학적인 신념에까지 미치는 동기부여가 있다. 쿠바의 유기농업 모델은 주로 경제적인 동기부여와 수입자재의 대체에 기초하고 있다. 그렇지만 유기농업으로 전환하여 소규모 농장과 지역 농산물 먹기 운동의 연결망이 크나큰 역할을 맡았기에, 투입자재의 대체 모델보다는 훨씬 깊고 포괄적인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사실 쿠바에서는 포괄적인 유기농업으로 접근하고 있다는 증거가 있다. Funes(2002:23)는 투입자재의 대체만으로는 충분하지 않고, ‘서로 배가 되는 구조를 최대한으로 이용하려고 하는 유기농업과 지속가능한 모델에 바탕하며, 작물과 가축 생산·숲 관리 이외에 서브시스템을 통합적으로 일치시켜 조합하는 복잡한 생태농업의 체계를 개발하기 위해 움직여야 한다’고 주장한다. Garc´ıa(2002)도 투입자재와 특정 생산기술을 뛰어넘는 기본적이고 철학적인 차이를 포함한, 관행농업과 유기농업의 차이를 이야기하고 있다. 다름 아니라 생태농업으로 전환하는 것은 농촌에서 실시하는 보급 교육 프로그램의 내용을 개정하는 것만으로는 달성할 수 없다. 지속가능한 체계를 확립하는 데에는 농업을 고립된 단위로 간주하는 사상적인 심리상태를 여러 학문 분야가 연계된 포괄적인 접근으로 다가서는 것이 농업의 본질이라는 개념으로 전환되어야 한다.

 

쿠바의 유기농업에는 깊은 철학적인 기초가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증거는 있다. 그렇지만 앞서 말한 수출의 가능성에 맞춘 전환을 포함해, 이것과 받아들이지 못할 동향도 있다. 예를 들면 쿠바는 급속, 또 대규모 유기농업으로 전환하는 것을 찬미하고 있다. 하지만 그 한편에서 정부는 관행농업도 유지하고 있으며, 어쩌면 이후에도 계속 유지할 것이다(Funes, 2002). 유기농업이 실제로 얼마나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상세한 정보도 손에 넣을 수 없다. 관행농법과 비이오테크와 유기농업을 조합한다는 문제도 있다. 쿠바의 새로운 농업 전망의 핵심에 있는 것은 철학적, 도덕적 유기농업이리라. 그렇지 않다면 더욱 실용적인 접근에 지나지 않으리라.

 

McKibben(2005)는 평소에는 유기농업을 실천하다가도 감자에서 해충이 발생하면 화학농약을 쓰는 쿠바 농민의 사례를 들고 있다. 쿠바의 농민들은 올바른 먹을거리의 생산 방법이라는 강한 신념을 위해서 스스로 유기농업 생산을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실용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것이라면 어떠한 선택을 해도 상관없다고 생각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게다가 Warwick(2001)의 지적에 따르면 예방 원칙에 기초하여 밭에서 시험하는 것을 우선시하지 않는데, 쿠바에서는 바이오테크놀로지에 대한 연구도 꽤 이루어지고 있다(McKibben, 2005).

 

 

맺으며

 

쿠바의 유기농업에 대한 기존 문헌을 보아도, 쿠바인들이 어떻게 유기농업을 정의하며 어떤 관점으로 보는지 정확히 주장할 만한 충분한 정보를 얻을 수 없다. 문헌의 대부분은 신중한 과학적 조사보다, 오히려 사례 증거나 일반적인 인상에 기초하는 것으로까지 보인다. 기존 문헌을 분석하면, 쿠바의 유기농업 모델이 투입자재의 대용과 전통기술과 근대기술의 조합에 기초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농장의 규모와 구조로 말하면, 유기농업은 소규모 개인 농장, CCS, CPA, UBPC, 그리고 특히 도시 지역의 다양한 토지 소유 구조로 실천하고 있다(Rosset, 1997; Chaplowe, 1998; Altieri et al., 1999; Funes, 2002). 일반적으로는 대규모 국영농장보다 소규모 농장 쪽이 유기농업으로 신속히 전환하고 있다. 그렇지만 농장의 규모가 쿠바 유기농업의 요소라는 점을 보여주는 증거도 거의 없다. 또 쿠바의 유기농업 사상을 바탕으로 지역 농산물 먹기가 중시되고 있는지, 또는 현실적인 식량안전보장에 대한 일시적인 실용적 대응인지 아닌지도 알 수 없다. 더욱이 문헌에서는 쿠바인들이 사회와 자연에 대한 포괄적인 철학으로서 어떻게 유기농업을 보는지, 또는 거꾸로 경제적으로 동기부여된 투입자재의 대체수단이라고 보는지 결정적인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증거도 얻을 수 없다. 다만 가장 명확한 점은 현재 쿠바의 농업이 유기농업의 수많은 원칙과 실천(지렁이 양식, 부산물 재활용, 대체에너지 이용, 쟁기질·사이짓기·섞어짓기 보전, 축산학, 그리고 생물 방제, 생물 농약, 생물량 등 현지에서 생산되는 생물 투입자재)을 받아들여, 다른 나라보다 확실히 계통적으로 그것을 행하고 있다는 것뿐이다(Rosset and Medea, 1994; Rosset, 1997; Warwick, 2001; Funes, 2002; CIC, 2003).

 

 

written by 吉田太郞, translated by 김서방

 

【인용문헌】

(1) Erin Tace Nelson, A better World is possible: Agroecology as a Response to Socio-Economic and Political Conditions in Cuba, University of Waterloo, 2006. 

(2) Fernando Funes, Miguel A Altieri and Peter Rosset, The Avery Diet: The Hudson Institute’s Misinformation Campaign Against Cuban Agriculture, May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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