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가 어디 감히! 그럼 소는 누가 키워?” 모 개그 프로그램에서 남자는 하늘이라고 주장하는 한 개그맨의 대사다. 젊은 세대에서 유행어로 패러디되고 있는 이 대사처럼 옛날엔 정말 ‘며느리는 소 잘된 집안에서 얻으라’는 속담이 있었다.   
 우리 선조들은 소 앞에선 그 소가 불쾌하게 여길 말까지도 삼가며 조심했다. 또 요즘처럼 추울 때는 무명 헝겊으로 속을 대어 만든 짚옷을 소에게 입혔으며, 시루떡을 외양간에 차려놓고 소의 무병을 기원하는 풍습도 있었다. 소는 농사짓는 데 가장 큰 기여를 하는 가축인 만큼 그 같은 대우는 당연했다.     

 ▲ 버섯을 재배하기 위해 이파리를 옮기고 있는 잎꾼개미들  

설날 때마다 가족끼리 모여서 하는 윷놀이도 실은 우리 조상들의 농사에 대한 바람으로 만들어진 민속놀이다. 넓은 토지를 차지하고, 계절이 윷판의 말처럼 빨리 바뀌어 농사가 잘 되기를 바라는 마음이 그 속에 들어 있다.   

지금으로부터 약 1만년 전에 처음 시작된 농사는 인간의 삶을 가장 획기적으로 바꾼 인류 최대의 발명품이었다. 동물처럼 사냥과 열매를 채취하는 생존 시스템에서 벗어나 농사를 지음으로써 인간은 더 이상 새로운 곳을 찾아서 떠돌 필요가 없게 되었다.   
가을에 한꺼번에 수확한 농작물은 잉여 생산물이 되어 그것을 누가 더 많이 차지하는가에 따라 계급이 나누어졌다. 그로 인해 부(富)가 형성되고 그것을 서로 차지하기 위한 전쟁이 일어났다.   빗물이 아닌 강물로 농사를 짓기 위해 관개사업을 벌이게 되었으며, 그에 따라 대규모의 정치 조직이 필요해지고 도시와 국가가 등장했다. 또 잉여 농산물을 마음대로 쓸 수 있는 지배 계급의 지원으로 인해 예술가 같은 직업도 생겨나게 되었다.   농사를 지을 시기를 정확히 알기 위해 계절의 변화를 관찰하게 되었으며, 그로 인해 태양과 달과 별을 관측하는 우주과학도 태동할 수 있었다.    


 지구상 최초의 농사꾼   

이처럼 농사는 인간의 모든 걸 바꾸어 놓았다. 하지만 알고 보면 지구상에서 최초로 농사를 발명한 동물은 인간이 아니라 개미이다.    아메리카 대륙의 열대 지방에 서식하는 잎꾼개미는 인간보다 무려 5천만년이나 앞서 농사를 시작했다. 잎꾼개미들이 농사를 짓는 방법을 보면 정말 인간과 똑같다.      

 ▲ 농사를 짓는 것으로 밝혀진 점균류 D. discoideum  

열대 삼림의 이파리를 동굴 속으로 운반한 뒤 톱날 같은 이빨로 이파리를 펄프처럼 잘게 썬다. 그 다음 효소가 들어 있는 배설물과 잘 섞은 후 미리 깔아놓은 마른 잎 위에 골고루 펼친다. 이 과정은 마치 농부가 봄에 씨를 심기 위해 밭을 갈고 거름을 주는 것과 흡사하다.   
그 다음 개미들은 버섯을 거기다 심어놓고 버섯들이 잘 자라게 주변을 깨끗이 청소하며 보살핀다. 버섯이 빠른 속도로 성장하면 개미들은 거기서 단백질과 당분이 듬뿍 들어 있는 균사체라는 곡식을 수확한다.   
버섯을 경작하는 개미들은 농약을 칠 줄도 안다. 버섯을 직접 돌보는 일개미들의 몸에는 스트렙토마이세서라는 박테리아가 붙어 있다. 이 박테리아는 버섯의 성장을 촉진하며, 다른 기생 곰팡이의 성장이나 포자 형성을 막아주는 역할을 한다. 개미 동굴 안에서 잘 성장하는 버섯들도 개미들을 제거하면 금방 죽어버리는 것은 그 때문이다.   
한 군락당 500만~800만 마리의 개체들이 모여 사는 잎꾼개미의 동굴에는 약 1천 개 이상의 방이 있는데 그 중 400개의 방이 버섯 재배농장으로 사용된다.   
이들이 이파리를 직접 먹지 않고 버섯 농사를 짓는 데는 이유가 있다. 열대 삼림의 이파리들은 생물체를 병들게 하는 독성 화학물질을 갖고 있는데, 유일하게 이 물질들을 소화 흡수할 수 있는 것이 버섯이다. 이 때문에 개미들은 이파리를 직접 취하지 않고 버섯을 키워서 먹이로 활용하는 농사를 짓게 되었다.   또 개미 중에는 인간처럼 축산업을 하는 개미도 있다. 식물의 즙을 빨아먹고 사는 진딧물을 소 떼처럼 몰고 다니며 먹이 활동을 돕고 그들의 천적인 무당벌레로부터 보호해준다. 그런 다음 개미는 진딧물 꽁무니에 바짝 다가가서 더듬이로 배를 톡톡 치는 신호를 보내 진딧물의 몸속에서 나오는 꿀을 받아서 마신다.   


 농부와 닮은 아메바   

그런데 최근 미국 라이서대 연구진이 네이처지에 발표한 연구결과에 의하면, 아메바도 농사를 짓는다는 사실이 새로 밝혀졌다. 평상시에는 단세포 생물로 생활하다가 먹이가 떨어져 새로운 장소로 이동할 때는 수만 개의 개체가 뭉쳐 다세포 구조체를 형성하는 특이한 아메바인 점균류 중 토양에 서식하는 D. discoideum이 바로 그 주인공이다.   
이 점균류는 먹이인 세균을 다 먹지 않고 일부러 사육하다가, 새로운 장소로 이동할 때는 그동안 사육한 세균을 수확하여 챙긴다. 그리고 새 거주지에 도착하면 챙겨온 세균을 꺼내 다시 그곳에 씨를 뿌린다는 것.   
이 농부 아메바들은 씨에 대한 집착이 아주 강한 것으로 드러났다. 연구진이 이들에게 새로운 식량을 제공하자 식량의 일부를 비축해 두었다가 다른 장소로 이동할 때 가지고 가는 행동을 보였기 때문. 이는 새로 이동한 장소에 충분한 식량이 없을 경우를 대비해 씨를 뿌리기 위한 행동이라고 연구진을 해석했다.   
 또한 이 아메바들은 농사를 짓지 않는 아메바에 비해 이동 거리가 짧은 것으로 밝혀졌다. 그것 또한 유목민과 달리 정착 생활을 하는 농부와 닮았다.  그러나 농사를 지어 여유로운 생활을 하는 대신 이들이 치러야 하는 대가도 있었다. 연구진이 먹이가 풍부한 지역에서 농부 아메바와 농사를 짓지 않는 아메바의 번식률을 비교해본 결과, 농부 아메바의 번식률이 낮은 것으로 나타났다고 한다.    이처럼 번식률이 낮은 것은 농부 아메바가 만일의 경우를 대비해 식량을 비축해둠으로써 생식력이 감소되었기 때문이다.    
 또 하나 재미있는 것은 똑같은 D. discoideum이라도 야생에서 사는 개체만 농사를 짓는다는 사실이다. 지금 대부분의 연구실에서 사용하는 D. discoideum은 1930년대에 발견되어 실험용 생물로 개발된 것으로, 야생에서 사는 개체와는 달리 농사를 짓지 않는다고.   이들이 농사를 짓는다는 사실이 그동안 밝혀지지 않는 것은 야생 D. discoideum을 갖고 연구하는 과학자들이 별로 없기 때문이라는 게 연구진의 설명이다.   만약 이 연구결과가 사실이라면 잎꾼개미는 그동안 지니고 있던 지구 최초의 농사꾼이라는 타이틀을 이들에게 넘겨주어야 할지도 모른다.    현미경으로 자신을 들여다보고 있는 인간들에게 이 아메바들이 다음과 같은 대사를 읊조리는 소리가 들리는 것도 같다. “인간들이 어디 감히 농사를 발명했다고 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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