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안산에 살면서 5년 만에 오늘 처음으로 청룡사에 갔습니다.

성태산 밑자락에 자리한 이곳은 현재 안산1대학의 뒷편입니다. 이곳까지는 자가용으로 갈 수도, 걸어갈 수도, 301번을 타고 갈 수도 있습니다. 헌데 301번을 타려면 요금이 1500원(카드로)이나 하니 조금 아깝군요. 멀리서 오신다면 상록수역에서 슬슬 걸어가셔도 됩니다. 15분이면 충분합니다.

 

안산1대학 옆쪽의 안골길이란 곳으로 쭉 들어가면 청룡사 표지판이 나옵니다. 

 

이 절이 생긴 지는 50년 정도일 거라 추정합니다. 그걸 알 수 있는 것이 바로 절 주변에 서 있는 송덕비에 있습니다. 그 송덕비에 따르면, 의림이공진환선생송덕비義林李公鎭煥先生頌德碑라고 적혀 있습니다. 당연히 이진환이란 분의 공덕을 칭송하는 내용이지요. 그 뒷면의 내용은 대략 이렇습니다. 원래 이곳 일동一洞 안산1대학을 둘러싼 일대는 인근의 수리산에서 산세가 시작하여 명당 자리로 알려져 왔겄다. 그래서 예전에는 구룡九龍골이라 불리었으니, 아홉 용이 여의주 하나를 둘러싸고 꿈툴거리는 형상의 지세地勢인 것이다. 그런데 언제부터인지는 몰라도 조선 말기쯔음 이곳에 타성붙이들이 슬그머니 들어와 자리를 잡기 시작했는디! 아마 철종 때부터 안동 김씨들이 여그를 장악하면서 오랫동안 여그의 대성大姓인 이씨 집안이 무너지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러다가 이 송덕비의 주인공 의림 이진환 선상이 외지에 나가 사업에 크게 성공해부렸지. 아마 건축가로 60년대 이후 군사정권의 국가발전계획과 대규모 건설사업에서 엄청난 실적을 쌓았지. 그래서 이 선생이 자기가 번 큰돈으로 안동 김씨에게 빼앗겼던 땅을 다시 사들이고, 청룡사라는 절까지 지어서 부처님께 바쳤다고 하는 설이 전해져 내려오고 있지요.

 

헌디, 사람들 사이에 오가는 이야기로는 안동 김씨의 묘지를 이장해 가라고 공고를 냈는데도 옮기지 않은 무덤은 그냥 파서 골짜기 어느 한곳에 모다서 화장했다고 하네요. 또한 안동 김씨 세력을 약하게 하려고 마약을 풀기도 했다는 흉흉한 소문도 돕니다. 그런 걸로 봐서 뭔가 평탄하게 일이 추진되지 않았음을 짐작할 수 있지 않나 합니다.

 

아무튼 안산에서 찾아볼 수 있는 몇 안 되는 절이니 한 번 찾아볼 만합니다.

 

청룡사에 오르면 안산이 한눈에 내려다 보입니다. 바로 앞의 큰 건물이 안산1대학, 앞산이 구룡공원이 자리하고 있는 구룡산입니다. 그러니 거기부터 여기까지 구룡골이라 불린 것이지요. 왼쪽으로 보이는 아파트의 물결은 원래 바다였을 것입니다. 맑은 날 오르면 산세까지 훤히 볼 수 있을 테니 더 좋겠네요.

 

 

이곳에는 200년 가까이 된 느티나무도 서 있습니다. 일동에 있는 보호수가 어디에 있나 했더니 여기에도 한 그루 자리잡고 있었네요. 그 옆으로는 잘 어울리게도 산신각이 버티고 서 있습니다. 이 성태산의 산신께서 굽어살피시고 계십니다.

성태산은 한자로는 城台山이라고 합니다. 성이란 뜻과 별이란 뜻이지요. 왜 그런지 몰라도 일동 쪽에는 별과 관련된 한자 지명이 많습니다. 제가 사는 점성占星골도 그렇고 이곳의 태台도 그렇습니다. 점성에 대해서는 왈가왈부 여러 의견이 많습니다. 이곳이 바닷가였던 만큼 큰 무당이 많았고, 그래서 점을 치는 사람이 많다는 뜻에서 점섬(占島)이라고도 하고, 별을 보고 점을 치던 곳이라고 점성占星이라 하기도 하고, 저는 한때 점심을 먹는 곳이라 점섬이 아닐까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그때 그 사람들을 만나지 않는 이상 제대로 기록된 문헌자료도 없어 알기 힘듭니다. 원래 부르던 지명도 한자로 옮겨적으면서 본뜻이 흐려진 경우도 많구요. 지명을 제대로 추적하려면 고어도 많이 알아야 하기에 어렵기만 합니다. 어쨌든 일동에는 별과 관련된 지명이 참 많습니다. 제가 이 동네 사는 것도 다 그런 뜻이 맞물린 것은 아닐지...

 

150년된 느티나무. 안산의 보호수는 대부분 이 정도 나이입니다. 수암 쪽은 역사가 깊은 만큼 더 오래된 나무가 몇 그루 있지요. 하지만 철저한 개발 도시 안산의 다른 곳에서는 100~200년 정도 된 나무도 찾아보기 어렵습니다. 그나마 그런 나무가 서 있는 곳은 개발에서 소외된 곳, 옛 마을이 있던 자리들뿐이지요. 그래서 더더욱 노거수를 찾아보기 힘듭니다. 현재 보호수로 지정된 노거수는 20그루 정도인데 더 찾아보아야 하지 않을까 합니다. 물론 저 혼자 멀찌감치 떨어져 있는 나무가 아니라 사람과 함께 어울려 그늘도 주고 푸르름과 단풍도 안겨 주는 나무로요.

 

나무 뒤편으로는 산신각 바로 옆에 조그만 제각이 또 하나 있습니다. 거기에서 무슨 제사 준비가 한창이었는데, 시간에 쫓겨 무엇 때문에 준비하고 있는지 물을 새도 없이 후다닥 산으로 올랐습니다. 

 

 

처음 오르막길이 가팔라서 그렇지 그 길만 올라서면 오르기 쉬운 길이 이어집니다. 그도 그럴 것이 성태산은 150m 정도의 작은 산이기 때문이지요. 보통으로 걸을 수 있기만 하다면 산책길이라고 봐도 됩니다.

그런데 이곳에는 옛 산성이 하나 숨어 있습니다. 전에 안산문화원장을 했던 분께서 성태란 이름에서 성이 있었을 것이라 추정하고 이곳을 뒤져 찾아냈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그냥 '돌이 많구나'라고 생각하고 지나갔을 곳인데, 아는 사람에게는 그런 게 보이나 봅니다. 

 

성태산 정산 부근에 굴러다니는 성벽의 돌들. 그냥 돌이 많은 곳 아니야? 라고 생각하신다면 오산. 이 돌들로 성벽을 쌓았다고 한다.

 

이 산성은 그 축성 양식으로 보아 신라의 축성 기술이라고 합니다. 신라가 중국과 교역하는 통로를 확보했을 무렵 쌓은 것인가 봅니다. 허나 그 규모로 보아 전투를 위한 성이라기보다는 감시초소 정도의 역할을 하는 곳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그도 그럴 것이 이곳이 서해를 감시할 수 있는 전략적인 요소이기 때문입니다. 저기 현재 열병합발전소가 서 있는 곳의 별망성이 그렇고, 잿머리 성황당이 그렇고, 모두 서해를 감시하고 방어하기 위한 목적의 장소였습니다. 이곳도 그 연장선이 아닐까 합니다. 혹시 군포의 봉수골과 이어지는 것은 아닐지도 모르겠네요.

 

그럼 안산이 중요한 해안 방어 기지이자 수산물 생산 기지였을 당시의 모습을 상상이라도 할 수 있게 몇 장의 사진을 볼까요.

 

아래는 노적봉에서 본 고잔동 쪽의 모습입니다. 아파트가 가득 들어선 곳 모두 물이 들고나는 바다였습니다. 상상할 수 있으신가요?

 

롯데마트를 중심으로 시선을 조금 더 왼쪽으로 옮겼습니다. 군데군데 불쑥불쑥 솟은 산 말고 바닥은 모두 바닷물이 들고나는 곳이었을 겁니다. 이것이 그대로 일동까지도 이어졌겠지요.

 

 

아래는 잿머리성황당에서 바라본 시화공단의 모습입니다. 물론 이곳도 모두 바다였습니다. 상대적으로 일동, 성포동 쪽보다는 더 드넓은 바다였지요. 이곳에서 지나다니는 배를 감시했다고 합니다.

 

아래 사진은 제일골프장 뒷산에 올라 찍은 것입니다. 높은 건물이 들어선 곳은 원래 다 바다였다고 생각해도 됩니다. 그럼 대략 지형이, 그리고 바다가 머릿속에 그려지시지 않나요?

 

아마도 아래와 같은 모습이었을 겁니다. 물론 산세가 더 이어져 있었을 테고, 그래서 바다가 이만큼 넓지는 않았겠지요. 이 사진은 탄도에서 바라본 누에섬입니다. 지금은 풍력발전기가 세워져 있다고 하네요.

 

 

성벽이었던 돌무더기를 보고 살살 걸어가면 갈림길이 나옵니다. 여기서 오른쪽은 반월저수지 쪽으로 내려가는 길이고, 왼쪽으로 난 길을 택해 조금만 걸어내려가면 점성고개가 나옵니다. 그곳에는 아래와 같은 표지판이 서 있지요.

 

 

네, 이곳에서 수암봉까지 걸어갈 수도 있고, 바람들이 농장까지 걸어갈 수도 있습니다. 그냥 중앙병원 쪽으로 내려가도 되고, 반월저수지로 가도 괜찮지요. 선택은 자유, 마음이 흐르는 대로 따라가십시오.

 

 

 위 사진을 클릭하시면 더 크게 볼 수 있습니다. 보이시나요. 한 1km 정도 15분 거리라고 나옵니다. 길게 잡아도 20분이면 청룡사에서 점성고개까지 갈 수 있습니다. 가까운 쉬는 날, 날이 좋으면 한 번 걸어보세요.

 

728x90

'농담 > 雜다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쌀국수 좋아요~  (0) 2010.05.07
드디어 두부까지 나왔다.  (0) 2010.05.03
4월 10~11일 일소 부리기  (0) 2010.04.12
예산 버들국수  (0) 2010.03.06
그날도 비가 왔다.  (0) 2010.03.04
728x90

안산은 원래 유명한 포구가 있던 곳이었습니다. 얼마나 유명했는지 왕실에서는 안산어소라는 곳을 설치하여 어물과 소금을 안산에서 가져다 먹었습니다. 지금 그런 흔적을 찾으라고 한다면, 성포동의 성포가 포구의 이름이라는 것과 안산에 오래 사신 분들의 머릿속에나 남은 사리포구의 기억과 얼마 전 수자원공사에 항의해 농성하신 별망성 포구의 분들 ... 등등입니다. 이제는 간척 사업과 공단이 들어서면서 모두 싸그리 사라졌지만 말이죠.

그래도 그나마 남은 문헌자료와 그림이나 사진으로 그때의 흔적을 추적할 수 있습니다. 그 가운데 아주 유명한 것으로는 단원 김홍도의 '매해파행'이란 아래의 그림이 있습니다. 매해파행은 한글로 풀면 젓갈 팔러 가는 여인네들입니다. 

 

 

그런데 그림을 자세히 보면, 항아리를 이고 가는 여인도 있는가 하면 광주리를 이고 가는 여인도 있고, 태반은 뭔가 다른 걸 이고 갑니다. 아무튼 이로 미루어 매해파행은 꼭 젓갈만 팔러 가는 여인들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생선이나 소금도 팔러 가는 여인을 통틀어 말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런데 그러한 것들을 보면 모두 바다에서 나오는 것이니, 그걸 콕 집어서 소금이라고 한마디로 표현할 수 있지 않을까요? 그래서 그네들이 다니던 길을 '소금길'이라고 이름을 붙였습니다.

그럼 그 길을 따라가 보겠습니다.

 

당시 장사꾼들이 여러 곳으로 여러 길을 따라 갔겠지만, 저는 군포로 가는 길을 택했습니다. 귀농운동본부의 본부장이신 정용수 선생님의 말씀에 따르면, 어렸을 적 안산에서 소금장수나 어물장수가 고개를 넘어 본인의 집에도 많이 왔다고 합니다. 군포나 안양으로 나가 장사하다가 다 팔지 못하고 안산으로 돌아가는 길에 종가집에 들러 짐을 부리고 가는 사람도 있는가 하면, 아예 처음부터 종가집을 목표로 오는 사람도 있었다고 하네요. 그러면 어머니께서는 그 사람들을 소홀히 대하지 않고 다 받아주셨다고 합니다. 그런 이야기를 듣다보니 자연스레 고개 넘어 군포 쪽으로 가는 길을 생각하다가, 특히나 전국귀농운동본부가 군포로 이사까지 와서 겸사겸사 한 번 걸어가자고 했습니다. 마침 오늘 그런 기회가 되어 개를 데리고 집을 나섰습니다.

참, 여러 길 가운데 선택한 곳은 집에서 가까운 점성고개입니다. 이곳 말고 제가 아는 곳은 바람고개가 있는데, 바람고개는 텃밭과 수암 사이에 있는 고개입니다.

 

 

점성고개로 가려면 먼저 중앙병원으로 가야 합니다. 중앙병원 뒷산이 바로 점성고개입니다. 

 

 

중앙병원 정문을 바라보며 왼쪽을 보면 월강사라는 절이 있습니다. 그곳을 향해 뚜벅뚜벅 걸어갑니다.

 

 

월강사를 왼쪽에 놓고 조금 오르면 오른쪽으로 중앙병원을 끼고 도는 길이 있습니다. 그리로 접어들면 점성고갯길로 들어섭니다.

 

 

길을 따라 가다보면 조금 가파른 언덕길을 만납니다. 이 길은 중앙병원에 입원하신 분들도 자주 산책을 하고, 등산객도 심심치 않게 볼 수 있습니다. 그리고 산악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도 어쩌다가 만날 수 있지요. 아, 그리고 산속에 만들어 놓은 텃밭도 볼 수 있지요.

 

 

가파른 언덕을 헉헉 대며 몇 분 오르면 그것도 끝이 납니다. 그럼 곧 정상에 다다르게 되지요.

 

 

사진에 환자분들이 걸어 올라오는 길이 중앙병원에서 오는 길입니다. 검은 옷을 입은 분이 내려가는 길로 올라가면 정상 쪽이지요. 고갯길 정상에는 이정표가 하나 서 있습니다. 상록수역 근처 가스공사로 가는 길과 텃밭과 너구리산을 지나 수암봉으로 가는 길, 그리고 반월저수지로 넘어가는 길, 사방으로 갈 수 있는 점성고개 정상입니다.

 

 

오늘은 반월저수지로 넘어가는 길로 갑니다. 가파르다고는 하나 쉬엄쉬엄 10분이면 오를 수 있습니다. 중앙병원에서 오르는 길은 안산시에서 콘크리트로 포장도 하고 이래저래 관리하여 아무렇지도 않으나 고개를 넘어 반월저수지 쪽으로 가는 길은 전혀 관리가 되지 않고 있습니다. 그래서 지난 여름 폭우에 푹 패인 길이 그대로 방치되어 있습니다.

 

 

이 길을 따라 조금 내려가다 보면 산골짜기에 만들어 놓은 두 배미의 논이 보입니다. 그 아래로는 한우를 키우는 축사가 있지요. 그래도 생각보다는 냄새가 많이 나지는 않았습니다. 참, 유럽과 FTA가 체결되었다고 하네요. 이번에는 축산을 하는 분들에게 큰 피해가 예상된다고 합니다. 핸드폰과 자동차를 팔아서 먹고 사는 나라의 운명일까요?

 

 

걷다보면 금방 축사까지 이릅니다. 그런데 축사 옆에는 열대 식물이 하나 자라고 있어 이채롭습니다. 저게 겨울을 날까요? 어떻게 여기 살고 있는지 궁금합니다.

 

 

축사를 지나면 위로 고속도로가 지나갑니다. 그 아래로 난 굴다리 아닌 굴다리를 지나야 합니다.

 

 

굴다리를 지나면 왼쪽으로 기독교 계통에서 하는 공동묘지가 있습니다. 이렇게 시끄럽고 차가 쌩쌩 달리는 곳에 묘지라... 죽어서도 편히 쉴 것 같지 않은 곳이지만 도로가 거미줄처럼 뻗고 있는 실정이니 어딘들 편안한 곳이 있을까요. 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옆으로 무덤이 참 많이 보입니다. 풍수가 다른 게 아니라 산맥과 수맥이 제대로 뻗는 것이라고 본다면, 지금 우리나라에서 제대로 된 명당이 어디 있을까 싶습니다.

 

  

조금 내려가면 착한고기라는 상호의 고깃집이 하나 보입니다. 그 아래에는 한옥 형식으로 건물을 새로 짓고 있는데 그곳도 고깃집인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이런 구석에 고깃집이 있네요. 축사에서 소를 잡아 바로 여기에 낼까요? 이제는 어디를 가든 고깃집 천지입니다. 이 고기들이 다 어디서 오나 모르겠습니다. 제가 나이는 많이 먹지 않았지만, 어렸을 때 생각하면 삼겹살은 언감생심이고 명절이나 생일날 고깃국에 뜬 고기 조각 몇 점이나 먹었지 지금처럼 고기를 먹은 적이 없습니다. 촌에 살아서 그럴까요? 산 하나 넘어 양계장에 가서 죽은 닭을 싸게 사오거나 양동이를 들고 가 조심스레 낑낑 대며 달걀을 가지고 오던 기억, 아니면 닭발을 사다가 집에서 양념해서 먹은 기억, 도랑에서 메기나 미꾸라지를 잡아 먹거나 붕어나 빠가사리, 모래무지 같은 걸 잡아 먹은 기억, 벌집을 갖다가 애벌레를 볶아 먹은 기억, 가재를 잡아다 아궁이에 구워먹던 기억, 겨울이면 꿩이나 토끼를 올무와 농약 묻힌 콩으로 잡아다 먹은 기억, 둠벙에서 개구리를 잡아 먹은 기억이 전부입니다. 이렇게 고기가 넘치는 세상이 될지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아무튼 계속 길을 갑니다.

 

 

고깃집을 지나 내려가면 왼쪽으로 군포시 대야동이란 표지판이 서 있습니다. 그리고 그 뒤로는 반월저수지의 수문이 보입니다.

 

 

반월저수지를 끼고 쭉쭉쭉 걸어갑니다. 저 멀리 태을봉의 레이다 기지가 보입니다. 저 멀리 보이는 길의 굴다리 아래로 지나면 수리사 쪽으로 가는 길입니다. 그리로 가도 귀농본부까지 갈 수 있고, 그냥 반월저수지를 끼고 쭉 걸어가도 귀농본부까지 갈 수 있습니다. 시간 여유가 많거나 더 좋은 경치를 바라시거나 먹을거리를 바라시는 분은 굴다리 아래쪽을 지나 가시면 모두 만날 수 있습니다. 저는 시간이 없어 그냥 반월저수지를 끼고 쭉 걸어갔습니다. 참, 이 길은 자전거로 가셔도 정말 좋습니다. 예전에 흙먼지 풀풀 날리는 2차선 길에서는 느낄 수 없는 편리함 같은 거시기가 있지만, 그때는 이곳에 포장마차도 많고 그랬던 기억이 나서 꼭 좋지만은 않습니다. 그래도 아직 반월저수지 주변이 이런저런 음식점이 많이 있으니 지나가다 목이 마르시면 들러서 한 잔 하셔도 좋을 겁니다. 

 

 

그렇게 걸어걸어 갈치저수지 쪽으로 방향을 잡으면 곧 귀농본부로 가는 길을 만납니다. 아래 사진에 보이는 작은 로타리 건너편은 군포 개울건너밭입니다. 오른쪽의 기찬오리 쪽으로 방향을 잡고 걸어가시면 종갓집 바깥채에 자리 잡은 전국귀농운동본부를 찾으실 수 있습니다.

 

 

오늘은 이 정도로 소금길을 마치겠습니다. 저는 아직 가보지는 않았는데 이곳에서 고개를 또 넘으면 군포 시내로도 나가고 안양으로도 나가고 한답니다. 그곳은 여기 살지 않아서 따로 시간을 내지 못했지요. 언제 기회가 되면 안산에서 함께 모여 점성고개 넘어 속달로, 속달을 지나 안양으로, 안양을 지나 수리산을 넘어 안산으로 돌아오는 여정을 떠나볼까요?

 

 

월강사-반월저수지 30분

반월저수지-귀농운동본부 40분(수리사 쪽으로 갈 경우 40분 정도 더 걸림)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