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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 밑질까봐 먹지도 않고 씨를 받는 마음 

 

 

 

2008년 12월 3일, 날씨는 맑지만 엄청 춥다. 차에서 내리면 손이 곱는 일이 생길 정도다. 추운 날씨와 상관없이 오늘은 여느 날보다 조금 이른 8시 20분부터 조사를 시작했다. 이제 길상면을 훑을 차례다.

아침을 먹고 처음 들른 마을은 난저울. 한 집에 들어가니 이 추운 날 이른 아침부터 할머니 세 분이 모여 김장을 하고 계신다. 왠지 젊은 사람이 해야 할 일을 하시는 듯해 맘에 걸린다. 혼자 사는 할머니 김장을 도와주려고 모이셨단다.

 

 할머니 세 분이 혼자 사는 할머니의 짐을 덜어주고자 모이셨다. 꽤 추웠는데 찬물에 일하시니 고생이 많으셨을 거다.

 

 

다들 바쁘셔서 더 묻지 않고 행로를 길정저수지 방향으로 잡은 뒤, 그 길에 있는 장촌과 야촌을 둘러보려고 출발했다. 꼬불꼬불 산길을 올라서 보니, 길정저수지 근처는 팬션이며 전원주택 같은 것이 잔뜩이다. 그래서 야촌은 더 볼 것도 없이 장촌으로 기수를 돌렸다.

허나 장촌도 사정은 비슷했다. 이곳은 대규모 축사들이 자리하고 있어 집도 별로 없고, 토종도 없었다. 다음 목적지로 이동하는 길에 인삼밭에서 인삼을 캐는 할머니들을 만났다. 이 추운 날 고생이 많으시다. 강화도가 인삼이 유명하다는 말만 들었지, 이렇게 진짜 인삼을 본 것은 오늘이 처음이다.

 

 뭘 먹고 자랐길래 인삼이 저리 통통한지 모르겠다. 할머니들은 이 마을이 아니라 저 멀리서 차를 타고 오셨단다. 이렇게 나와들 계시니 집집마다 찾아가도 사람이 없었나 보다. 날이 추워 중무장하시고, 한켠에는 불을 때고 있었다.

 

 

오늘은 영 시원찮으려나... 슬쩍 걱정하며 효자터라는 마을로 접어들었다. 말 그대로 효자가 살던 곳이란다. 이곳은 길상면 길직리로서 여기 325번지에 사시는 우병옥(52) 아저씨 댁에 가서 첫 성과를 올렸다. 농사지으랴 유해조수 퇴치에도 힘쓰랴 아주 부지런하신 분이셨는데, 나물콩, 녹두, 재팥, 적팥을 얻을 수 있었다. 거기에 덤으로 직접 이것저것 넣어 만드셨다는 배즙을 얻어 마셨다. 일반 배즙하고는 다른 것이 꽤 괜찮았다.

조사를 마치고 돌아가려는데 아저씨께서 저기 밭 주변에 야생콩이 많다며 그것도 한 번 보고 가라고 하신다. 그래서 차로 이동해 확인한 결과 그냥 흔히 볼 수 있는 새콩이었다. 하지만 그렇게 주변을 유심히 보고 다니시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다시 차에 올라 가는데 마당에서 삽을 들고 일하시는 할머니를 보았다. 길직리 410번지의 신금례 할머니다. 밭을 정리하면서 굴착기가 하수관을 꾸겨놓아 물이 빠지지 않아 공사하고 계셨다. 혼자 삽 들고 일하시기에 좀 거들어드리고 토종 이야기를 꺼냈지만 신통치 않았다. 워낙 정신이 공사에만 가 있으셔서 그렇다. 대신 하우스에서 본 3년 전 동네 할머니에게 얻어 오셨다는 큰박을 차에 실었다.

 

몇 가지를 얻긴 했지만 성과가 영 별로다. 오늘 구한 건 한 번쯤은 이미 구한 것을 워낙 수집할 거리가 없어 혹시나 하는 마음에 봉투에 담은 것들뿐이다. 며칠 도니 거기서 거기인 걸까? 새로운 것이 나오지 않으면 그만큼 흥도 떨어진다. 뭐가 자꾸 나오고 그러면 그 재미에 힘든 것도 잊고 시간도 훌쩍 건너뛰지만, 그렇지 않으면 힘만 들고 피곤하고 축 처진다. 오늘은 지금까지가 그랬다.

다음 행선지는 관사말이다.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옛날에 관사가 있던 동네일 거라 짐작했다. 어느 예쁘게 꾸민 집 옆의 밭에서 세 분이 끝물 고추를 따는 데 여념이 없다. 다가가 물으니 얼마 전 이곳으로 귀농해서 오늘은 고추를 따려고 동생 식구들을 불러다 일하고 있다고 한다. 물론 토종도 물으니 그런 건 없다고 한다. 하는 수 없이 그 옆집으로 발걸음을 돌렸다.

그런데 이 걸음이 큰 행운을 가져올지 누가 알았으랴! 마침내 토종 왕국을 찾았다. 이번 강화도 조사의 가장 큰 성과라면 바로 이 집이리라. 길상면 길직리 450번지에 사시는 구준회, 유준례(61) 아주머니 댁이 바로 그곳이다. 이 집에서만 100년이 넘게 살고 있는 터줏대감이신데, 인천의 계산동에서 20년쯤 살다가 다시 고향집으로 들어오셨단다. 바로 이 집에서 무려 14가지나 새로운 것을 보았다. 몇 년 전 불의의 사고로 아저씨께서는 다리가 불편하셨는데, 어떻게 이렇게 꼼꼼히 부지런하게 그것도 허투루가 아니라 제대로 농사를 지으셨는지 참 대단하시다. 두 분께 어찌 이리 농사를 잘 지으시는지 비결을 어쭈니, "씨 밑질까봐 계속 심고, 많이 나면 먹고 아니면 씨 밑질까 그냥 씨만 남긴다"고 하신다. 씨를 사랑하는 마음을 그대로 느낄 수 있는 대답이다. 먹는 거보다 씨가 우선이라니 말이다. 

 

 구준회, 유준례 내외 분. 정말 부지런하고 꼼꼼하신 농부시다. 뒤에 보이는 탈곡기로는 밭벼를 턴다고 하신다. 이번에 전통농법으로 여기에 취재를 가기로 했으니, 귀농통문에 실리는 글을 기대하시라~

 

 

먼저 이곳에서 수집한 목록을 열거하면 다음과 같다. 강낭콩, 늦깨, 흰콩, 덩굴콩, 적팥, 흰밥밑콩, 청불콩, 검정밥밑콩, 강낭콩, 단호박, 단호박, 멧짝호박, 강화마늘, 속노란고구마, 속노란자주색고구마. 돌아서서 가려다 혹시...... 하고 물으면 또 하나가 튀어나오고, 또 돌아서서 가려다 물으면 또 나오고... 그렇게 이 집에서만 한 시간 반 동안 있었다. 다른 집에 가야 시원찮았던 판에 여기서 이렇게 많이 얻었으니 다행이다. 시간이 아깝지 않은 곳이다.

강낭콩은 7~8년 정도 된 검정색과 키가 작고 갓이 얇아 밥에 넣어 먹기 좋고 맛있지만 대신 수확이 적은 것이 있다. 이렇듯 먹기 좋고 맛있는 건 수확이 적은 게 특징이라고 한다. 늦깨는 추석 전에 수확하기에 그렇게 부르고, 흰콩은 어머니께 대물림 받은 것으로 9월 말에 거둔다. 덩굴콩은 흰색이고, 적팥은 보통 팥보다 색이 옅은 편이었다. 흰밥밑콩은 추석에 수확하는데, 밥밑콩으로도 쓰지만 송편소로 쓰면 좋다고 한다. 그에 비해 검정밥밑콩은 서리태로서 늦게 거둔다. 청불콩은 겉은 카키색 비슷한데 속은 파랗다. 나물콩으로서 추석에 먹고, 일찍 익으며 껍질이 두껍고 병에 강하다고 한다. 단호박은 골이 있는 마름모꼴과 타원형 두 종류가 있다. 마늘은 30년 이상 심고 있는데, 단단하고 크다. 그렇지만 저장성도 좋고, 키가 별로 크지 않다는 특징이 있다. 해마다 주아도 심어 건강한 씨를 유지한다. 이 마늘은 어찌나 매운지 눈에 들어가면 눈도 못 뜰 정도라면 자부심이 대단하시다. 사람들도 한 번 사다 먹으면 그 맛 때문에 끊이지 않고 또 찾는단다.

 

 유준례 아주머니의 보물. 여러 씨앗을 깡통에 잘 담아 그 안에는 수확한 해와 이름을 적은 쪽지를 넣어 혹시 잊을지 모를 위험까지 방지하신다. 얼마나 꼼꼼하고 깔끔하게 잘 갈무리해 놓으셨는지 모른다. 감동 그 자체.

 

 

1시, 점심을 먹고 다시 조사에 나섰다. 길상면사무소에서 초지진 쪽으로 가는 84번 도로를 타고 가다가 오류골에 들렀다. 큰길 옆이라 그런지 별로 신통한 것이 없다. 그래도 호박 하나가 눈에 띄어 그거 하나 얻어서 다시 차에 올랐다. 그 건너편에 있는 감오간이란 마을로 머리를 돌렸다. 꼭 무슨 감옥간 같은 이름이라 동네 할머니께 이 동네 이름이 왜 이러냐고 물었지만 시원한 해답을 얻지 못했다. 그 할머니가 사시는 곳에서 피마자와 차조를 얻었는데, 성함을 여쭈니 남 부끄러워서 말해 줄 수 없으시단다. 곧 갈 사람 이름을 적어서 뭐하냐시며... 피마자는 좀 덜 여문 상태였다. 올해 늦게까지 따뜻하다가 갑자기 추워지면서 이 모양이 되었다고 한다. 차조는 무지 퇴화를 했는지 손가락 길이도 안 되었다. 안완식 박사님께서는 그래도 잘생긴 것만이 아니라 못생긴 것도 모아다 연구하면 뭔가 새로운 게 나올지도 모른다며 챙기라고 하셨다.

 

차조를 털고 남은 이삭 자루와 검불. 다 쓰러져가는 집에 할머니 홀로 살고 계셨다. 앞으로 우리의 농촌은 어떻게 될까? 그 앞날이 두렵다.

 

 

 

다시 큰길로 나와 초지진 쪽으로 달렸다. 그 길목에 장흥리 산14번지에 사신다는 고금순(66) 할머니가 장사를 하고 계셨다. 여기 나와 있는 건 모두 본인이 직접 농사지어다 내와서 판다고 하신다. 그 품목이 워낙 다양해서 잘 기억이 나지 않는데, 이곳에서 아주 커다란 호박과 나물콩을 구입했다. 장사하는 곳이라 그냥 얻을 수 없어 좀 깎아서 샀다.

 

 마늘을 까는 고금순 할머니. 우리가 나타나 장사를 하시다 살 것 같지 않았는지 또 어느새 일을 손에 잡고 계신다. 부산스럽다 싶을 정도로 바지런함이 몸에 배신 듯하다.

 

 

초지진이 있는 곳은 초지리라고 한다. 이곳에서는 별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들이 넓고 교통이 편리해서 그런지 파면 파 하나만 몇 천 평씩 심어서 내다파는 농사만 발달하고 텃밭에 먹으려고 이것저것 심는 건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한없이 시간만 흐르고, 가끔씩 차에서 내려도 빈 손으로 다시 차에 올랐다. 지루하게 시간을 보내는 하품 나오는 상황이 계속되었다.

 

그러다 길상면 초지리 1226번지, 토저골이라 부르는 깊숙한 동네에 들어서자 상황이 조금 나아졌다. 역시 길이 잘 뚫리면 신식 문물이 밀고 들어오며 오래된 것들을 몰아내나 보다. 기를 쓰고 신작로를 뚫는 이유가 거기에 있을 거다. 이 집에 사는 고복희(76) 할머니는 이제 무릎이 많이 아파 농사를 잘 못 짓는다고 하신다. 그래도 자식들 입에 들어갈 거라며 몇 가지는 놓치지 않고 아픈 몸으로 계속 농사를 짓고 계셨다. 밥에 넣어 먹으려고 1975년에 이곳에 들어와 계속 심는다는 완두, 손주들 잘 먹는다는 옥수수, 황차조와 이른 들깨, 땅콩을 얻었다. 씨를 얻어오면서도 미안한 맘이 들어 혼났다. 뭐 하나를 줘도 그냥 듬뿍듬뿍 퍼 담아 주신다. 나를 보고는 군에 간 손주가 생각나시는지 가다가 먹으라며 땅콩을 한 움큼 쥐어 주머니에 넣어 주신다. 연신 허리 굽혀 인사를 드리고 떨어지지 않는 발걸음을 옮겼다.

 

이제 몸이 많이 불편하다는 고복희 할머니. 마루가 얼음장처럼 차갑던데... 왜 우리나라의 마루는 차가울까? 따뜻하게 고치면 안 되나? 이것이 늘 의문이다. 옛날 사람들이 다 생각이 있어서 그랬을 텐데, 요즘 생활방식은 그때와 다르니 그에 맞춰 바꿀 수는 없을까? 그러려면 물론 돈이 많이 들겠지...

 

고복희 할머니가 툇마루에 말리고 있는 호박. 이것도 다 자식들 입으로 들어가겠지. 그놈의 자식이 뭔지... 아직 길러보지 않아서 모르겠지만, 이쁜 만큼 애물단지임이 틀림없을 것이다.

 

 고복희 할머니 댁의 완두. 꼬투리채 달아놓으면 벌레가 잘 끼지 않는다고 한다.

 

 고복희 할머니까 쓰시는 발쇠스랑. 이런 다양한 농기구가 요즘은 사라지고 있어 아쉽다. 사람이 몸으로 일하는 시대가 아니라서 그럴지도 모른다. 그 지역에 맞는, 또 그 사람에 맞는 다양한 농기구는 시대가 변하고 그에 따라 대장간이 하나둘 사라지면서 공장에서 대량으로 찍어 철물점에서만 파는 현실을 낳았다.

 

 

이제 해도 저물어 가고, 마지막으로 선두리만 돌아보면 오늘의 일정은 끝이다. 아니 이번 1차 강화도 조사도 이것으로 끝난다. 저무는 해를 보니 집 생각이 더 간절하다. 조금만 지나면 드디어 집으로 돌아간다.

선두리에서는 크게 성과가 없었다. 해안 쪽은 확실히 팬션이며 관광지가 자라하면서 농사의 형태도 많이 바뀌었다. 70대 이상인 할머니들에게나 가야 뭔가 하나라도 나오지 아니면 거의 없다. 그렇게 찾은 선두리 924번지의 조금순(81) 할머니. 이 분께 살이 트는 게 특징인 홀애비콩을 얻었다. 이게 하얗지만 맛있어 밥에 넣어 먹는단다. 이 콩을 옆집 색시에게 얻으셨다고 한다. 그래서 그 색시를 찾아나서니, 색시는 벌써 쉰이 넘은 아주머니다. 할머니에게는 어린 색시 그대로 머릿속에 남아 있나 보다. 아무튼 아주머니께 콩의 유래를 물으니 하점면 망월3리에 사시는 친정아버지 유봉현(80) 어르신께 가면 자세한 걸 알 수 있단다. 자연스레 다음 2차 강화도 답사 때 찾아갈 곳이 생겼다. 다음 숙제로 남겨 놓고 이제 강화도를 떠나 집으로 돌아가자. 집에서는 아내가 맛있는 걸 해 놓고 기다리겠단다.

 

 선두리 조금순 할머니 댁에서 바라본 해질녘 강화도의 갯벌과 바다. 저무는 해를 보면 집 생각이 더 간절해지는 건 나만 그런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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흙살림 전통농업위원회 구술취재팀은 지난 6월 20일 강원도 평창 약물산 토종농장에서 서리태, 쥐눈이콩, 찰기장 등 잡곡류 80종류를 재배하고 있는 이기철(57세) 선생을 만났다. 이 분은 평창에서 태어나 농사를 짓다가 5년 정도 사업을 하기 위해 상경, 80년부터 다시 고향으로 내려와 농사를 짓고 있다. 농사를 짓기 시작했을 때부터 토종종자 보존과 교육․홍보에 뜻을 두고 다양한 사업을 펼치고 있다. 97년에 농어업인대상을 받았고 신지식농업인상도 받았으며 한국농업전문학교 현장교수도 역임했다. 주요 생산품은 찰기장, 찰현미, 찹쌀, 흑미, 자광미, 오리쌀, 맛쌀, 찰옥수수, 서리태, 붉은팥, 쥐눈이콩, 메주콩 등이다.




- 먼저 반갑습니다. 저희는 흙살림 전통농업위원회 구술취재팀입니다.

= 멀리까지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네요.


- 전통농법 취재에 선생님을 추천받았습니다. 토종종자를 많이 가지고 계신다고 들었습니다.

= 예, 몇 가지 있어요. 지난해에는 서산에 수수를 공급했지요. 수수 중에 키가 작은 종자가 있는데 그것이 가을이 되니 빨갛게 익으면서 새도 오고 해서 보기 좋다고 하더군요. 그래서 올해는 청주에도 수수를 공급해주고, 문경에는 조를 공급했어요.

 수수가 종자만 해도 80~90 여 가지가 있어요. 빗자루 만드는 수수도 따로 있구요. 빗자루 만드는 수수는 모양은 좋은데 수확은 별로래요. 어떤 종자는 달리면서 꼬부라져요.


- 재미난 것이 많네요. 그럼 수확은 어떻게 합니까?

= 이게 꼬부라지면서 거리가 생겨요. 그걸 베서 걸어요. 그리고 일반 먹는 건 장목수수라고 해서 중국에도 있는데 이게 맛이 제일 좋아요. 그런데 키가 커서 바람에 넘어지고 해서 그걸 많이 안 심고, 현재 우리가 먹는 것은 단목수수를 많이 심어요.


- 단목수수는 키가 얼마나 작습니까?

= 한 키가 안 돼요.

 그리고 호랑당콩 이라고 해서 중국에서 나오는 알록달록 한 것이 있어요. 이거를 울타리 에 쭉 심어요. 콩이 크고, 꽃이 빨간데 껍질이 호랑이처럼 알록달록 하다고 해서 호랑당콩 이라고 해요.

 울타리콩 이라는 건 과거에 울타리에 넝쿨이 뻗어 올라가는 걸 몽땅 울타리콩 이라고 했어요. 그 중에 알록알록 한 것도 있고, 빨간 것도 있고, 자주색도 있고, 약간 긴 것도 있고, 한 30 여 가지 있는데 여러 가지가 있죠. 지금 까치콩 같은 것은 우리나라에서 없어졌어요. 아주 옛날부터 있던 것인데 그게 소득이 안 돼서 그렇죠.


- 왜 그런가요. 소출이 적은가요?

= 소출이 적은 것보다 한 사람이 몇 만 평해서 쫙 해야지 그건 울타리에서 하나 영글면 따고 하나 영글면 따고 그래서 안 하죠. 울타리콩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 콩은 영글면 껍칠 채로 따요. 그래서 껍질을 까면 심이 나오는데 그걸 마늘쫑처럼 그냥 기름에 볶아서 양념해 가지고 껍질 채로 먹어요. 그걸 까치콩이라고 해요.

 그 다음에 조개콩 이라고 해서 조개처럼 납작해가지고 조개가 혓바닥 내미는 것처럼 나오는 것이 있어요. 그게 조개콩 이라고 하는데 그것도 껍질 채로 먹을 수 있어서 여러 가지 요리가 나와요.


- 지금도 재배하나요?

= 재배하는데 외국에 가도 찾아보기 어려워요. 국내와 중국에만 있는 것 같아요. 조개콩은 자주색이 나고 모양도 예쁜데 한군데에 50 ~ 60개가 열려요. 달린 다음 한꺼번에 여무는데 꽃도 자주색, 줄기도 자주색, 열매도 자주색, 알맹이도 자주색인데 관상용으로 좋죠. 하나를 심으면 담 하나를 다 덮을 정도로 왕성해요. 그런데 이 지역에서는 잘 여물지가 않고 계속 잎사귀만 뻗어가고 꽃만 피지 여무는 시기가 늦어요. 그래 그게 작년까지 있었는데 작년에 열매를 늦어서 못 따서 없어졌어요.


- 그럼 종자은행에도 없나요?

= 네. 그래서 그거를 중국이나 그 쪽에 가면 있지 않을까 해요. 옛날에도 이 지역 1개 군에 한 두 군데 있을까 말까 했어요.


- 다른 지방에도 없나요?

= 다른 지방은 다녀보지 않아서 모르죠. 외국에는 없어요.


- 외국에는 자주 다니시나요?

= 일 년에 두 달 정도는 종자도 구하고, 일도 볼 겸 나가죠.


- 그럼 일 년에 한 번씩 선생님 찾아뵈면 좋은 얘기 듣겠네요. 얘기를 들으니 할아버님 영향을 많이 받으신 것 같은데, 할아버님 얘기 좀 해주실 수 있나요?

= 할아버지는 이조 말에 벼슬하다가 일정 때 수배가 내려서 진안 용담군에 숨어 사시다가 만주로 가셔서 독립운동 하면서 한약방을 차리셨어요. 약방을 차리시니까 거기가 독립군 운동 본거지가 된 거래요. 그러다가 해방이 돼서 들어오시니까 땅이 있나 집이 있나 해먹을게 없어서 떠돌이 한의원으로 전국을 다니시다가 여기서 자리 잡은 거래요. 여기 오시니까 그때부터 전국에서 손님이 오는 거래요. 저는 어릴 때부터 할아버지 심부름을 했어요. 약을 만들어 봉투에 담고, 약을 썰으라면 썰고, 산에 약을 캐러 가시면 따라가서 약을 캤지요. 할아버지께서는 평생을 그렇게 사셨어요.

 할아버지께서 뭐라고 하셨냐 하면 곡식으로 약이 되는게, 예를 들어서 수수는 칼슘이 풍부하기 때문에 옛날에 애기 백일 때 수수떡을 해주잖아요. 돌 때도 해주고. 붉은 색은 액을 물리친다고 해서 그렇다는데 그게 수수는 칼슘이 풍부해서 애들 뼈가 자라는데 최고 필수 보약인 원리래요. 애들 이유식에 반드시 수수가 들어가잖아요. 그래서 수수는 그런 식으로 작용한다는 걸 어렸을 때부터 안 거죠.

 그 다음 검은색은 노화를 방지하고, 붉은 색은 또 심장을 건강하게 한다고 하시고. 그러다 보니까 할아버지가 설명하신 대로 심은 거지요. 그렇게 조금조금씩 심어가지고 온 몸은 힘들어도, 도시민들 견학오고 이런 식으로 운영했어요. 지금은 집사람도 나가있고 혼자 운영하기 힘들어서 회원제로 몇몇 나눠주고 해요.


- 그럼 회원들이 종자 보존회 식으로 있는 건가요?

= 예, 우리가 봄에 종자를 나눠줘서 심고 가을에 수매를 해요. 그래서 그거를 가공하고 포장해서 판매를 해요. 이건 하나의 보존차원에서 하기 때문에 큰 영리가 안 되니까 국가에서 지원해주고 지자체에서 지원을 해줘요.


- 현재 농장에 주력이 있고 보조가 있겠지만 몇 종류나 하시나요?

= 곡식류는 한 100여 가지 하고, 풀․약초류를 100여 가지 하고, 나무를 한 300여 가지 해요. 한 두 그루만 심어서 보존하는 거래요.

 그리고 귀리 있잖아요. 현재 식용 귀리는 남한에서 재배를 안 하고 있어요. 사료용만 재배하지.


- 식용과 사료용이 종자가 다른가요?

= 다르죠. 식용 귀리는 이북 함경도 쪽에 있을 거예요.


- 운영하고 계신 농장 소개 좀 부탁드립니다.

= 제가 한 4만평 정도 농사를 짓고, 임야는 7만평 정도 됩니다. 주 작목은 흑미, 자황미 이고, 보라밸리 라는 감자와 야콘, 옥수수 농사를 짓고 있죠.


- 보라밸리는 일반 감자와 특별한 차이점이 있나요?

= 다이어트 식품으로도 좋다는데 저희는 녹즙용으로 써요. 자주감자로 개량한 건데 자주감자랑 다르게 속까지 보라색 이래요.


- 보라밸리는 특징이 무엇인가요? 수확이 특별히 많은가요?

= 수확은 그렇게 많지 않아요.


- 옥수수는 어떤 종류가 있나요?

= 옛날 재래 찰옥수수 하고, 두메 찰이라고 해서 강원도에서 개발한 찰옥 2호가 있고, 그 다음에 알록알록한 것이 있어요. 보라색 나고 빨간색 나고 하얀색이 섞인 게 있고, 그 다음에 빨간색이 있어요.


- 이 옥수수들은 선생님이 다 개량하신건가요, 아니면 원래 있는 종자인가요?

= 아니요. 옥수수는 교배를 잘 이뤄서 돌연변이가 나와요. 자기가 원하는 걸 다 만들 수 있어요.


- 옥수수 종자는 어떻게 유지합니까?

= 어떻게 하냐면 예전에는 가리왕산에 차를 가지고 올라갔어요. 봄에 콩이나 옥수수를 가지고 깊숙한 곳에 가서 개간해서 풀 뽑고, 가지고 간 헌비닐 덮어 놓고 옥수수를 심는다고, 그럼 가을에 가면 짐승이 따먹고 사람이 따먹고 해도 종자보존이 되는거죠. 지금도 그렇게 하는데 원체 입산을 못하게 하니까 격리를 못해요. 그래서 봄에 산나물 뜯으러 가서 하는 경우도 있고 허가를 받아서 가는 경우도 있고 해요.

 그리고 자광미도 돌연변이래요. 이게 종자가 개량돼서 나온 게 아니고 아무 논이나 외국도 마찬가지고 자생을 해요. 이게 원원종이거든. 벼를 베거나 차를 끌고 다니다 보면 똑같은 벼 중에 이삭이 크다든지 색깔이 다르면 그걸 채취를 해요. 그걸 가지고 와서 스티로폼 상자에 재배를 해요. 한 이삼년 재배해서 종자가 고정이 되면 논에다 심는 거죠. 이걸 좀 더 깎으면 흑미와 마찬가지로 흰쌀이 나와요.


- 기장은 어떻게 농사를 지으십니까?

= 기장은 모종으로 해도 잘 살고 농사짓기도 쉬운데, 가장 어려운 게 새가 잘 먹어요. 새를 쫓을 수 있는 방법만 있으면 기장은 성공해요. 그래서 우리 같은 경우는 만 평 정도를 하늘에 1미터 간격으로 줄을 매가지고 깡통을 달아서 사람이 지키죠. 허수아비도 필요 없고 총을 쏴도 필요 없고 다 필요 없어요. 직접 쫓아도 사람이 와서 쫓을 때 뿐 이래요. 콩새라고 해서 요래 작은 그 새가 기장을 전문으로 먹는데 덤불 밑에 살아요. 옛날에는 찔레 열매를 먹고 살았는데 요즘은 찔레 열매가 얼마 없잖아요. 이 새가 없어졌는데 기장만 심으면 어디서 나타나는지 몇 백리 밖에서 날아와요. 이 새가 쫙 날아오면 하늘이 안 보일 정도로 날아와요. 그래서 못 심어요.


- 기장하고 조는 어떻게 다릅니까?

= 기장은 이삭이 벼이삭 같은데 조는 완전히 틀리죠. 색깔은 둘이 똑같은데, 알이 기장이 좀 굵어요.


- 깡통을 매달면 새피해는 어느 정도 막나요?

= 그래도 한 50% 정도래요.

 기장이 그렇고 그 다음에 곡식 중에 메조가 지금은 귀해요. 왜 그런가 하면 찰진 것은 소화도 잘 되고 해서 사람들이 많이 찾는데 메곡식은 안 그래요. 그런데 소화가 잘 된다는 건 빨리 분해된다는 얘기래요. 그럼 별 기능을 못한다는 거예요. 그래 약으로 쓰는 건 메옥수수, 메조, 메기장 이죠. 근데 지금 메기장은 세계적으로 없어요. 중국 쪽에 있다고 해서 알아봤는데 없어요. 종자은행에 수십 번을 드나들어도 메기장을 못 구했어요. 메수수는 제가 종자은행에서 얻어다 심었는데 10알 주더라구요. 10알을 심으니까 3알갱이 나와요. 이게 오래 묵어서 그런 거래요.


- 그럼 지금 메수수는 얼마나 퍼트리셨나요?

= 우리만 보존 하고 있어요.


- 판매는 하고 있습니까?

= 판매는 안 하죠. 대학교 연구하시는 분들이 가끔 연락이 돼서 오면 파는 경우는 있어요.


- 선생님 그럼 종자 얘기 좀 더 해주시죠. 어떤 종자를 어떻게 보존하고 보급하시는지요.

= 붉은 팥을 동지에 액운을 물리친다고 죽을 쑤어 먹잖아요. 그런데 점쟁이들이 점을 칠 때도 이거로 쳐요. 그런데 원래는 용의 눈알 이라고 하는 팥으로 점을 치는 거래요. 용의 눈알이 알록달록 하답니다. 그래서 이걸 용의 눈알이라고 하는데, 이걸 던져서 하얀 알하고 빨간 알 중 많이 나오는 걸 보고 점을 한답니다. 그리고 팥으로 점을 하는 건 장래를 보는 게 아니고 귀신하고 관계되는 점을 할 때만 팥으로 하는 거래요. 그런데 아무거나 다 붉은팥으로 하는 건 다 가짜래요. 그런 데로 무지하니까 그래요. 그런데 용의 눈알이 시중에서 인기가 없는 이유는 붉은팥으로 음식을 하면 붉어져야 하는데 흰 게 섞여서 붉어지지가 않아서 그래요. 실질적으로는 유래도 깊고 토종이고 좋은데 먹는 사람 선호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지.


- 맛도 더 좋은가요?

= 맛도 더 좋아요. 거뭇거뭇한 것도 있는데 그걸 용의 눈알 재팥 이라고 해요.

 그리고 그루팥이라고 있어요. 보리를 심고 나서 후작으로 심는 팥이래요. 늦게 심는다는 거죠. 그루팥은 하지 지나서 심어요.

 그 다음 이팥이 있어요. 이건 몸이 붓거나 신장하고 관계있는 병에 특효약 이예요.


- 이팥의 이가 무슨 뜻인가요?

= 글쎄요. 옛날부터 이팥 이라고 해서 잘 모르겠는데 쌀 같이 생겨서 이팥이라고 하는지 모르겠네요. 그런데 이게 하얀 게 있고 빨간 게 있는데, 빨간 게 약이 된대요.

 그 다음에 약콩․쥐눈이콩․서목태 라고 하는 게 있는데, 이걸 가장 흡수하기 좋은 법은 현미식초에 삼 사일 정도 담가뒀다가 냉장고에 넣어놓고 하루 20알 씩 먹으면 콜레스테롤이 내려간다고 하죠.

그 다음 대표적인 울타리콩은 약간 갈색이래요. 그리고 그보다 진한 색을 밤콩이라 하죠.

또 푸른색이라서 청태라 하는 콩가루를 내서 먹는 콩이 있어요. 토종 찰콩은 떡에 넣거나 엿 해먹을 때 쓰는 거구요. 그 다음에 아주까리콩도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건 강정해서 먹어요. 콩도 이렇게 용도가 다 틀려요. 그 외에도 수십 가지가 있어요.


- 콩 종자만 몇 종류를 가지고 계신가요?

= 콩이 한 47가지 정도 돼요.


- 모두 토종인가요?

= 다는 아니래요.


- 다양한 종자를 보존하는 일이나 교육사업을 하시는 일이 힘들지는 않으신가요?

= 그래서 항상 차에 가지고 다니고, 이전에 살림집 보면 천장에 달아놔요. 왜 그렇게 하냐면 과거에는 종자를 처마에 달아놨어요. 종다래끼라고 하죠. 종자를 담는 다래끼라고 해서 종다래끼라고 했는데 거기에 담아서 사방에 매달아 뒀죠,

 그리고 예전부터 내려오는 말에 씨앗을 뿌릴 때 넙적한 그릇에 담아서 뿌리면 안 된대요. 그래 오목한 그릇에 담아서 뿌려야 결실이 잘 된다 해서 꼭 종다래끼에 건사를 했어요. 거기에 건사를 하면 통풍이 잘 되잖아요. 메주도 마찬가지고 모든 것이 짚을 가지고 이용했어요. 감자도 보면 짚에서 균이 나와서 감자가 더 잘 돼요. 그래 농업에서는 짚을 이용하는 게 많아요.

 그리고 아까 옥수수 얘기했는데 옥수수를 하짓날 아침에 심으면 결실이 되고, 오후에 심은 것은 결실이 되지 않는다고 합니다. 옛날에는 절기를 중요시 했잖아요.

 그리고 입하가 지나서 낱알을 뿌리는 건 비렁뱅이 팔자라고 해요. 입하 전에 모든 곡식이 땅 속에 다 들어가야 한다는 거죠. 그런데 요즘은 온실이니 뭐니 해서 많이 바뀌었지만 실질적으로 그래요. 이게 그렇게 심는 시기도 틀리고 거두는 시기도 다 틀리죠.

 나는 이걸 돈을 목적으로 하는 건 아니고, 하나의 취미하고 사명감, 그러니까 자부심이지. 내가 토종잡곡으로다가 신지식인농업상을 받았거든요. 그게 토종잡곡으로 우리나라에 제일 유명한 사람이다 하는 건데 내가 저걸 받아놓고 지금은 안 한다고 하면 하나의 사명감을 잃어버리는 거죠. 이걸 하면서 지금 뭘 느끼냐면, 지금 옆에 하우스 작업을 하는 곳에 전통 농기구를 전시할거래요. 여기서 학생들을 데려다 체험학습을 하고 있어요. 그런데 체험할 수 있는 시설이 몇 개 안 돼서 나머지는 구경만 해요. 그래서 몇 명이 체험하는 동안 나머지는 전시관을 보고, 돌아가면서 체험할 수 있게 하려는 거죠. 요즘 체험학습이라고 해서 박물관을 가는데, 다 유리관 속에 진열만 해놓고 만지지도 못하게 하고 그냥 노천에 놔두고도 만지지 말라고 하죠. 그게 무슨 체험학습 이예요. 그건 견학이지. 체험을 하기 위해서는 실제 학생들이 해봐야 하는 거죠. 그래서 여러 사람들이 해 볼 수 있게 자꾸 준비하는 거예요.

 종자 같은 경우 원칙적으로는 완전히 말려서 진공포장 해서 냉동실에 보관해야 하는데 이거는 그냥 샘플로 학생들 오면 보게 하죠. 학생들이 연수를 들어오면 큰 마루에 한 삼 백 가지 진열을 해놓고 내가 가운데 서서 짚으면서 설명을 해줘요.


- 선친께 농사를 많이 배우셨다고 하셨는데 전통농사법을 쓰고 있는 게 있다면 어떤 것이 있나요?

= 저희는 유기농을 하기 위해서 차광막을 풀이 나온 다음에 헛골에다 깔아요. 남들은 제초제를 써서 죽이는데 우리는 제초제를 안 쳐요. 그런 쪽으로 하기 위해서 풀 잡는데 저걸 쓰는 거래요. 저게 돈이 많이 들어서 도하고 군하고 농림부에 얘기를 해서 보조를 받아가지고 우리가 평창군 전체에 나눠줘요.


- 차광막은 폭이 얼마나 되고 어떻게 사용하시는 건가요?

= 55센치 정도 되는데 그걸 고랑에 깔면 나온 풀은 죽고, 풀이 나오지 않죠. 한 10년 정도 쓸 수 있어요.


- 보온덮개는 어떤가요?

= 보온덮개는 무겁고 말아서 보관하기 어렵고, 비가 오면 무게가 많이 나가잖아요. 차광막은 그런게 없어요. 가벼워서 풀이 안 눌릴 것 같지만 나일론이라 열을 받아서 저절로 풀이 삭아요.


- 전통농법과 무슨 관련이 있는 건가요?

= 전통농법은 김을 매야 하잖아요. 그런데 지금 시골에 김을 맬 사람이 없잖아요. 그래서 제초제를 친다 이거예요. 제초제를 치면 토양 버리죠, 농산물 버리죠, 몸 버리잖아요. 그러니까 그 대용으로 저걸 쓰는 거죠. 전통농법으로 농사짓는 것은 다 개량됐다고 봐야죠.

그래도 우리는 옛날처럼 소로 가는 건 아예 못 하지만 파종하는 건 종다래끼에 씨앗 넣어서 하는 경우는 더러 있어요. 그거하고 괭이로 묻는 건 마찬가지로 해요. 그리고 수확은 도리깨로 떠는 것도 마찬가지로 하죠. 다만 과거에는 산에서 풀을 베어서 퇴비를 만들어서 썼는데 현재는 사다가 쓰는 건 달라졌지요.


- 잡곡 농사를 지을 때 어려운 점은 무엇인가요?

= 채소는 기계화가 됐는데 잡곡은 손으로 해야 하는 것이 어렵죠.


- 잡곡을 심을 때는 비닐을 깝니까?

= 비닐을 안 깔죠. 뭐 전통적으로 비닐을 안 깔고 심었으니까 전통방식으로 하는 거죠. 예를 들면 배추 같은 걸 비닐을 안 하고 했을 때는 병충해도 많고 잘 자라지 않는다구요. 상품가치는 떨어지는데 비닐을 깔고 화학비료 주면 배추가 맛이 없듯이 그래요.


- 그럼 어떤 식으로 농사를 지으시나요?

= 콩농사 같은 경우 먼저 콩을 골에다가 심고 풀이 첫 번에 나오면 비가 온 다음에 인걸이로 끌어서 그 흙을 양쪽 가로 넘겨요. 콩이나 옥수수는 반드시 복토를 해줘야 돼요. 그렇게 흙이 넘어가면 골이 반대로 되잖아요. 그 다음에 아이김을 맨다고. 왜냐하면 콩씨를 7~8개 씩 들어간 걸 세 개씩 남겨놓으려면 솎아야 되고 없는 데는 모종을 하고. 그렇게 하고 나서 풀이 약간 날 때 차광막을 깔아요. 골 넓이가 보통 70센치 정도 되는데 55센치 깔거든요. 그럼 한 10센치가 남잖아요. 남는 곳이 콩이 있는 자리예요. 포기 사이에서 풀이 나긴 더러 나지만 그때는 콩이 이기죠. 콩은 그늘을 많이 지기 때문에 금방 풀이 자라지 못해요.


- 처음부터 고랑에다 차광막을 깔고 심는지 알았는데 그게 아니네요. 그럼 인걸로 골을 먼저 치고 애벌 김매기 하고 솎아 줄 거 솎아 주고 저걸 까는 거군요. 수확할 때는 도리깨로 하고요.

= 예, 그렇죠.


- 콩농사에 대해서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실 수 있나요?

= 콩은 파종 적기가 제일 중요해요. 5월 10일에서 25일 사이에 심어야 하죠. 이건 전국이 거의 비슷한데 남쪽 같은 경우는 5일 정도 늦어도 괜찮지요. 콩을 이때 심는 이유는 너무 일찍 심으면 냉해를 입고 장마 지나서 꽃을 피게 해야 돼서 그래요. 장마 때 꽃이 피면 수분이 안 돼요. 완두콩은 냉해 피해가 없어서 일찍 심어도 괜찮아요. 올콩과 늦콩은 심는 것은 같은데 일찍 거두냐 늦게 거두냐 하는 수확 시기에만 차이가 있어요.

 다음으로는 순지르기가 중요해요. 보통 본잎이 6잎 나올 때 순지르기를 해주는데 많이 심으면 일일이 셀 수가 없으니 그냥 파종하고 2달 지나서 무조건 낫으로 대가리를 치죠.

 그리고 콩에는 밑거름으로 유기질 퇴비를 줘요. 축분은 질소질이 너무 많아서 안 돼요. 보통 300 평당 2톤 정도 주고 거기에다 콩 전용 복합비료를 주는데 이건 300 평당 6포를 줘요. 복합비료를 주면 무농약 인증은 되는데 유기농 인증은 받을 수 없어요. 거름은 전년도에 고추나 배추를 키워서 거름을 많이 준 밭이면 유기질 퇴비는 안 주고 복합비료만 줘요.

 콩은 되도록 육묘를 하는 게 좋아요. 육묘를 하면 인건비도 줄이고 김도 덜 맬 수 있어요. 여기서는 35일 동안 육묘를 하는데 직파를 하면 35일 지나서 김을 매야 하는데 육묘를 하면 그 수고를 안 해도 되니까 인건비도 줄고 좋죠. 그리고 모든 곡식은 비닐 멀칭을 하면 두둑에 심고 안 하면 골에 심어요.


- 토종종자들을 수집이나 보관은 어떻게 하셨나요? 조부님께 받은 것이 많은가요?

= 그렇죠. 거의 다 받은 거죠. 어머니 계실 때는 옥수수만 해도 한 50가지 심었는데 지금은 많이 없어졌죠.


- 이 일을 하시면서 귀찮게 여러 가지를 하냐, 크게 하나만 하면 돈 벌텐데 하시지는 않나요?

= 왜요. 지금도 다 그러죠. 식구들이 반대를 하지만 지금은 많이 따라와요. 그리고 학생들이 와서 신기해하는 걸 보면 기분 좋아요.


- 지금 이 일을 거의 혼자 하시다시피 하는데 뜻있는 사람이나 뜻있는 단체와 같이 종자를 보존하는 일을 하실 생각이 있으신가요? 혹시 그렇게 하고 계신 분이 있나요?

= 현재는 두메농산물 생산자 협회라고 해서 조직이 있어요. 한 52농가가 있어서 그 분들이 우리가 종자를 팔고 그 사람들이 사다가 심어가지고 여기서 수매해서 포장해서 팔아요. 그러다 보니까 한 사람이 여러 가지를 가지고 있지 않고 몇 가지씩 다 가지고 있죠.


- 다른 지역에도 종자를 보존하는 분들이 계신가요?

= 그쪽에는 없어요.


- 이 지역에서 농사가 안 되는 종자도 가지고 계신가요?

= 농사가 안 되는데 가지고 있을 수가 없죠. 곡식류는 안 되는 데가 없어요. 채소류가 안 되는 게 많아요.


- 작물 외에 가지고 계신 것 중에서 소개해 주실 만한 것이 있나요?

= 골담초 라고 있는데 그게 신경통에 좋은 약초래요. 

 자작나무는 나무를 삶아서 먹어도 좋고, 잎사귀를 나물로 먹어도 위에 좋고, 물을 받아먹는게 위장병에 특효죠. 특히 곡우날 받는게 좋아요.

 산마늘은 뿌리가 아니라 잎을 먹어요. 항암 작용이 있다고 하죠. 이게 몇 백 년이고 크는데 뭐가 문제냐면 한 알 심으면 2~3년 있다가 새끼를 피는데 그럼 잎사귀 3개 중에 하나를 따야지 그 이상 따면 열매가 안 달려요. 이걸 심기 위해서는 8년 정도는 농약이나 비료를 주면 안돼요. 그래서 산 같은 데서는 된다는 거죠.

 질경이 있잖아요. 질경이 씨가 약명으로는 차전자 거든요. 세계적인 보약 중에 최고 보약이래요. 질경이씨를 장복으로 하루 한 스푼 정도 가루를 내서 먹으면 무병장수 한다잖아요. 가장 좋은 약품인데 지금은 가장 천대를 받고 있어요. 사람이 연명하던 음식인데 너무 먹어서 이제는 지겹다는 거죠. 요즘 사람들은 좋다하면 먹잖아요. 지금 내가 그걸로 개발해서 이게 좋다하면 너도 나도 먹을 거래요. 요즘은 모든 게 유행이잖아요. 병도 유행, 음식도 유행, 약도 유행.


- 마지막으로 할아버님에게 배웠다는 내용을 말씀해주셨으면 합니다. 할아버님이 병을 고치기 위해서는 먹는 것으로 고쳐야한다 하셔서 종자를 보존하셨던 이야기 좀 해주십시오.

= 옛날에 의술이 발달하지 않았던 때는 맥을 본다고 하잖아요. 그런데 할아버지는 절대 맥을 짚지 않아요. 왜 맥을 안 짚냐고 하니 당시는 버스가 없어서 걸어오잖아요. 걸어오고 긴장한 상태에서 맥을 보면 맥이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않아서 오진을 할 수 있다는 거죠. 그 다음에 환자 얼굴을 봐요. 흰색이냐 검은 색이냐. 그 다음에 손가락이 기냐 짧으냐 그게 체질상 뭐다 하시면서 그걸로 판단을 다 해요.

 그리고 항시 할아버지는 걷는 걸 강조하셨어요. 그 다음에 약을 주면 먹지 말라는 것이 있어요. 콩이나 메밀음식이 그래요. 메밀은 보약이 되는 게 아니라 독약 이래요 메밀이 속을 훑어 내려서 그렇다고 해요. 또 술은 알콜기가 피가 흐르는 양을 조절하지 못하게 한대요. 소고기는 괜찮은데 돼지고기, 닭고기는 절대 먹지 말라고 하시고, 담배 태우지 말고 우유 마시지 말고 이러면 무병장수 한다는 거예요. 이 다섯 가지만 가려도 굉장히 도움이 된다는 거예요. 단백질이 풍부한 걸 먹지 말라는 건 단백질은 모든 병의 먹이가 된대요.

 메밀음식을 먹을 때는 반드시 무를 먹으라고 하셨죠. 왜냐하면 메밀의 독을 해독하는 건  무래요. 호박의 독을 해독하는 건 새우젓이고요.

 건강한 사람이 먹을 때는 괜찮은데 안 좋은 사람은 먹지 말라고 하셨어요. 병이 있는 사람이 이런 음식을 먹으면 몸에 부작용이 있으니까 약을 먹을 때 먹지 말라고 하신 거죠..

 그리고 이팥이 독을 해소시켜요. 상처가 나거나 하면 옛날에 약이 없을 때는 이팥을 짓찧어서 바르잖아요. 그럼 독을 빼냈어요. 잣나무 송진을 따서 상처난 데 하면 새나지 않고 금방 나아요.

 녹두도 같은 류래요. 수술환자 퇴원하면 녹두죽이 최고인 원리래요.


- 이제 마무리를 하겠습니다. 언제부터 농사를 시작하신 겁니까?

= 여기서 농사짓다가 서울서 한 5년 살고 80년에 다시 왔어요. 살다가 나갔다가 결혼해서 다시 들어왔죠.


- 유기농은 언제부터 하셨고, 계기가 있으신가요?

= 80년부터 시작했어요. 74년에 농사를 지었는데 그때는 제초제를 쳤어요. 그때는 앞서 가는 농민들이 제초제를 쳤어요. 제초제를 치는데 덩치가 커서 방제복을 입기가 어려웠어요.  그래 운동화를 신고 제초제를 치는데 이거를 몇 만평 농사를 지니까 몇 일을 두고 했지요. 그랬더니 손톱, 발톱이 이상해지는 거래요. 그러면서 아프기 시작했는데 그냥 피곤하고 늘 그래요. 처음에는 이게 제초제 독인줄 몰랐지. 한 2~3년 하고 나서 자꾸 심해져 가지고 뭘 생각했냐면 미군이 베트공 소탕작전 할 때 치던 제초제를 그때 생각한 거요. 제초제가 독이로구나 환경농업을 해야겠다 해서 유기농업 창설할 때 82년도에 창립멤버로 들어가서 시작한 거예요. 그러다 보니까 오래됐고 전문가가 되다 보니까 평창군 전체에 유기농 자재를 공급하고 유기농에 대한 교육도 하고 하게 됐지요.


- 마지막으로 하나만 묻겠습니다. 화학 농약이 아니고 유기농 농약을 팔고 있는데 실제로 몸에 해롭지 않은 농약이 효과가 있나요?

= 글쎄요. 우리도 그걸 공급은 하는데 저는 그걸 안 써요. 왜냐하면 벌레가 죽잖아요. 그럼  생명체가 죽으면 독약이지. 단지 생물에서 추출했다 뿐이지 어차피 독약은 독약이라고 생각해요.


- 그럼 오랜 시간 동안 좋은 말씀 잘 들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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