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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유명한 희귀 씨앗을 판매하는 사이트에 "두보르스키안 벼"라는 게 올라와 있다. 스키안? 러시아 쪽인가 싶어서 설명을 보니 러시아인가 우크라이나인가 그쪽에서 재배하던 벼로서, 헝가리 사람이 밭벼로 재배하던 것이라 한다. 

https://www.rareseeds.com/duborskian-rice/reviews/?fbclid=IwAR1E2wHvb6l5H-O1AZPhX4mIfTz2tQL9dZsrG0zWby7cy5mmJSKk2ooTi-o


어떻게 거기까지 흘러갔을까? 과거 일제강점기 연해주 지방으로 이주한 조선 농민들의 짐보따리에는 볍씨가 들어 있었다고 한다. 만주 지방으로 이주한 사람들은 물론, 연해주 지방으로 이주한 조선인들도 그곳에서 적당한 땅을 찾아 논으로 풀어서 벼농사를 지었다는 것이다. 그들 덕에 세계 농업사에서 벼 재배의 북방한계선을 가장 위쪽까지 끌어올린 일이 일어났다. 말이야 쉽지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연해주에서 벼농사를 짓던 고려인들은 스탈린의 강제이주 정책으로 시베리아 횡단 열차에 태워져 중앙아시아 쪽으로 옮겨 갔다고 한다. 그때에도 그들의 짐보따리에는 볍씨가 들어 있었다. 시베리아 횡단 열차를 타고 추위와 배고품에 시달리면서도 볍씨만은 절대 까먹지 않고 그대로 지켰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그렇게 강제 이주된 곳에서 고려인들은 또, 적당한 땅을 찾아 벼농사를 지었다. 그들의 근면한 농사는 중앙아시아에서 명성을 크게 떨쳤고, 소련 정부에게서 많은 상도 받았다는 이야기를 텔레비전에서 본 기억이 난다. 

혹시, 우크라이나에서 헝가리로 건너온 것 같다는 이 볍씨가 당시 고려인들이 소중하게 가지고 갔던 그 볍씨에서 온 것은 아닐까? 그런 상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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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조생종 벼들이 고려인들과 함께 중앙아시아에 뿌리를 내린 이유가 본문에 나온다.

"한국의 시월과는 다른 이 지역의 기후는 아침 저녁이면 벌써 초겨울의 기온이다."


일본 농학자들의 조사에 의하면, 조선의 벼들은 대부분 조생종이 많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다음과 같은 이유 때문이겠다. 하나, 가능한 지역에서는 대개 맥류와 이모작을 행하기에 모내기가 늦어질 수밖에 없고, 그에 따라 일찍 여무는 품종이 유리했다. 둘, 관개 사정이 여의치 않기에 -빗물에 의존하거나 조그만 둠벙 등으로 해결- 6월 말에서 7월 초쯤 찾아오는 장맛비가 관개용수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여, 그 시기를 전후하여 모내기하는 것이 유리했다.

지금이야 물 사정 때문에 모내기를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으니 -최근의 기후변화로 인한 가뭄의 영향을 빼고- 모내기는 점점 더 빨라지고, 그만큼 재배기간이 길어짐에 따라 중만생종이 더 많은 선택을 받고 논이란 공간을 차지하게 되었다. 조생종은 강원도 지역처럼 추위가 일찍 찾아오는 곳이나, 추석맞이 햅쌀을 출하하려는 농가를 빼고는 잘 선택하지 않는 시절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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