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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약이나 잡으려고 2시쯤 찾아갔는데, 지금 당장이 아니면 다음주 수요일에나 진료가 가능하다는 이야기에 정신이 아득해졌다. 부랴부랴 아내에게 연락해서 아이를 데리고 오자고 결정했다. 접수대 직원은 너무나도 사무적이어서 사람이 싸가지가 없어 보일 정도였다. 아이가 5일 동안 먹지를 못해서 시급하여 지금 아이를 데리고 오니 조금 늦더라도 사정을 좀 봐달라고 애원해도, 30분 뒤 예약자가 있어 곤란하다며 그렇게 급하면 옆에 다른 병원을 알아보라고 대응하였다. 확 뒤집어엎고 싶었으나 참았다. 접수할 때는 아이의 주민번호를 맞게 적었는데도 아니라며 몇 번이나 다시 확인해 보라고 하지 않나. -사실 원인은 접수대 직원이 글자를 잘.못. 본 것이었음. 어찌나 황당한지 확 쎄려 막 쳐 버리고 싶더라- 

내가 막 버팅기고 난감한 기색을 마구 뿜은 덕에 내가 먼저 들어가 사전조사를 받고 아이가 도착하는 대로 진료를 시작하기로 했다. 의사와 이야기를 마치고 나오니 접수대 사람이 이야기한 예약자가 와 있길래, 내가 그 사람에게 정중히 사정을 이야기했다. 그는 흔쾌히 괜찮다고 하더라. 접수대 사람이여, 보았는가? 이런 융통성과 배려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병원에 찾아오는 위축되거나 급한 환자에게 첫인상부터 확 구길 필요가 뭐 있다고 그러는지 모르겠다. 이 병원은 접수대 사람부터 바꿔야 할 것 같더라. 

어린이집 낮잠 시간에 불려 나와 잠이 덜 깬 아이가 황급히 도착하여 진료실에서 의사와 함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었다. 의사가 “집에서 누구랑 살아요?” 질문하니, “연풍이요.”라고 답했다. "연풍이가 누구니?" "개요." 그 질의응답이 너무 귀여워, 우린 하하하하 웃었는데, 아이는 그게 그렇게 싫었는지 그 이후부터 기분이 확 상해서 돌아오는 내내 화가 나 있었다. “엄마 아빠가 웃고 놀렸잖아!” 하면서. 그걸 풀어주느라 또 한참을 애먹었다. 

아무튼 정신과 의사에게서 들은 말은 별 게 없었다. 난 더 구체적이고 실용적인 이야기를 들을 수 있지 않을까 기대했는데, 아이의 상태가 이러니 너무 억지로 먹이려고 힘겨루기하지 말고 인정하고 자연스럽게 대하라는 게 요지였다. 그리고 앞으로는 놀이치료를 하는 게 좋겠다며 그건 부설 시설에 따로 일정을 잡으라고... 저, 저기요. 그건 지난 5일간 천당과 지옥을 오가며 저희도 내린 결론이고요. 그보다는 좀 더 구체적으로 앞으로 생활과 식사를 어떻게 해야 하는지 궁금하고 난감한데... 하긴 이건 정신과에서 다룰 일이 아니겠구나 싶었다. 

다시 접수대에 나와 또 기분이 상했다. 놀이치료사가 직접 연락할 텐데, 지금 치료중이고 계속 바쁘니 언제가 될지 모르지만 연락할 때까지 기다리란다. 그리고는 지금까지도 연락은 전혀 없다. 이렇게 바쁜 곳이라니 굳이 애써 가야 할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냥 놀이치료만 하는 것뿐이라면 상담센터로 가는 쪽이 나을 것 같다. 거긴 찾아오는 사람의 이름도 다정히 불러주더라. 그 작은 행위가 정신이 지친 사람들에게 얼마나 큰 영향을 줄지 생각해보라. 비용이나 진행과정 등을 문의해 본 뒤 병원 쪽으로 갈지 상담센터로 갈지 결정하기로 했다. 난 후자가 더 나을 것 같긴 하다.

덧붙임: 아이는 조금씩 먹을 것에 대한 거리감을 좁히고 있다. 어제는 어린이집에서 국물에 으깬 밥도 입에 넣고 -조금 먹은 것 같다고 하는데 알 수 없음- 친구가 주는 젤리도 좀 먹었단다. 나랑 병원에서 돌아와 방방장에 가서는 쿠키아이스크림의 쿠키도 먹었다. 또 저녁엔 스프와 함께 평소 좋아하던 찜닭에 들어간 당면도 먹지 말고 그냥 맛이나 보라고 주고, 미역국물도 주었다. 정말 당면을 혀로 핥으며 맛이나 보다가 입에도 넣었다 그러다 아주 조금 먹은 것 같기도 하다. 미역국물은 다 먹었고 스프는 1/3 먹었다. 
저녁 놀이로는 옥수수알도 뱉고 쌀도 뱉고 밥도 뱉는 놀이를 했다. 일단 입에 넣는 행위에 비중을 두었지, 먹고 안 먹고는 중요하지 않다. 그냥 뱉기 심심하니 씹어서 뱉어 보자고 유도해 그렇게도 했다. 물론 아직 삼키지는 않는다. 그래도 이 정도가 어딘가. 많이 좋아졌다. 내일은 또 한 걸음 내딛어 보자. 아빠랑 엄마가 옆에서 같이 갈 테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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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식이 목에 걸린 트라우마로 린양이 금요일부터 월요일까지 4일을 굶었다. 정확하게는 물과 주스와 요구르트 같은 액체류와 스프 한 숟가락, 아이스크림 같은 유동식만 먹고 버텼다. 아이가 갑자기 먹을 걸 거부하며 입에 넣지를 않으니 미치고 환장하겠더라. 이렇게 아무것도 안 먹으면 죽는다는 이야기부터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아야 한다는 위협적인 이야기를 해도 목에 음식이 걸려서 죽을 것 같다며 먹지를 않으니 강제로 먹일 수도 없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었다.

아이가 먹기를 완강히 거부하여 아무 일도 할 수 없게 되자, 현실을 인정하고 이 아이를 살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백방으로 찾아보았다. 다행히 비슷한 사례를 몇 년 전 티비에서 방영된 프로그램을 통해 알게 되었다. 먹는 행위에 대해 안심하고 안정을 찾기 전까지는 어떤 노력도 필요가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그래서 아이에게 지금 상황을 이야기해 이해시키려 노력하며 본인이 먹을 수 있다고 생각하는 음식을 중심으로 섭취하도록 마련해서 공급했다.

오늘 아침에는 심리적인 문제인 만큼 조금이나마 도움이 될까 새벽 5시 반부터 아침에 줄 미음을 준비하고, 6시가 조금 넘어 문제가 시작되었던 식당에 찾아가 예전에 여기서 나누어주는 사탕을 먹다 목에 걸린 경험이 있는데 안 좋은 기억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되도록 사탕을 함께 부수려 한다며 사탕을 얻어 왔다.

7시 반이 가까워 아이가 일어났고, 자연스럽게 목에 걸려서 아프게 했던 것들을 함께 혼내주자고 하며 망치를 가져와 사탕을 부수고, 또 젤리도 목에 걸린 적 있으니 함께 가위로 산산조각을 내고, 떡도 칼로 싹둑싹둑 자르는 퍼포먼스를 행했다. 그리곤 휴지에 싸서 창밖 저 멀리 내던지도록 하면서 목에 걸려 아프게 했던 것들을 모두 버리니 무서워하지 말라고 엄마와 아빠가 혼내주고 지켜주겠다고 안심을 시키려 노력했다.

그러한 일의 효과일까? 어제는 한두 숟갈 먹기도 싫어하던 미음을 서너 숟가락 넘게 받아먹더니 혼자서도 몇 숟갈이나 신나게 떠서 먹었다. 아니면, 어제 미음은 맛이 없다는 얘기에 영양분을 공급할 겸 탈수도 막으려 소금으로 좀 짭짤하게 간을 하고 풍미를 더하려고 참기름을 넣은 덕이었을까? 어쨌든 준비한 미음의 반 정도를 먹었다. 여기서 "먹었다"는 행위 자체가 정말 중요하다. 

등원 준비를 마치고 어린이집에 가는 길에 아이가 한걱정을 했다. 자기는 밥을 못 먹는데 강제로 밥을 먹으라고 하면 어떻게 하나, 친구들은 모두 밥을 먹는데 자기도 먹고 싶지만 못 먹어서 어떻게 하나 등등 "먹는다"는 행위에는 아무 거리낌이 없지만, 목에 걸려 큰일이 날까 두려워하는 모습을 보였다. 아무 걱정 말라고 집에서는 엄마와 아빠가 지켜주고, 어린이집에서는 선생님이 대신 지켜주며 다롱이라는 애착인형도 함께 가서 용기와 힘을 줄 거라고 안심을 시키는 데 중점을 두었다. 어제 미리 선생님들에게 아이의 상황을 알리고 도움을 요청하였기에 아이가 도착하자 원장과 담임 선생님이 나와서 효린이에게 이런저런 이야기를 하며 데리고 들어갔다. 그 모습을 보면서 오늘 아침의 일과 함께 조금 안도감이 들었다.

아이를 어린이집에 보내고 돌아오는 길에 나도 모르게 눈물이 쏟아졌다. 슬프고 걱정되는 마음에 흐르는 눈물이라기보다는 안도감을 느끼며 아이가 잘 이겨내기를 바라는 마음에 쏟아진 눈물이었다. 집에 들어와 잠시 큰소리를 내며 엉엉 울었다. 눈물에다 콧물까지 흘러 얼굴이 엉망이 되었지만 마음은 좀 후련해졌다. 

오늘 아이는 점심과 간식을 어떻게 했으려나? 하루아침에 좋아지지는 않을 거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이따 저녁과 내일 이후를 대비하기 위해 열량과 영양이 부족해지지 않도록 먹을거리를 마련해야겠다. 단백질과 지방이 부족해질 수 있으니 단백질쉐이크와 올리브유나 참기름 등을 알아보고, 우유를 준비하고, 홍삼 음료와 주스 등을 주문했다. 이 상황이 너무 길어지지 않았으면 좋겠다. 

힘내, 효린아. 너는 이겨낼 수 있어. 엄마와 아빠가 응원하고 도울게. 걱정하지 마. 먹는 건 즐거운 일이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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