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현대의 인류는 그 어느 시기보다도 풍요로운 축복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대형마트나 시장에 가면 진열대마다 먹을거리들이 넘쳐나고, 식당에 가도 식재료가 끊이는 법 없이 줄기차게 요리가 나온다.


그런데 과연 우리는 풍요로운 것이 맞는가?

우리가 먹는 음식에 쓰이는 식재료들을 가만히 놓고 보면 그렇다고도 하기 어렵다.

양은 많아졌지만 질과 다양성에서는 오히려 과거보다 못하다고 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생산과 유통, 분배를 도맡는 기업들이 그것을 장악하면서 연구기관에서는 그들의 목적에 맞는 품종과 농법을 개발하기에 바쁘고, 정부는 경제성장과 발전이라는 명목으로 그들의 이익을 잘 반영할 수 있는 정책을 시행하곤 한다.

대규모, 대량, 대형 같은 '거대한' 시대에 우리는 '강요된 풍요' 속에서 선택권을 박탈당하고 있다.

자유로운 선택을 위해서는 개인이 스스로 해결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조그맣고 다양한, 그래서 선택지가 넓어질 수 있는 일은 지금 시대에 불가능한 것인가?

위기의 시대라는 말이 나돌고 있다. 이때 우리가 새로운 방향으로 나아가야 한다면 바로 그러한 쪽으로 향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마지막으로 문학적, 은유적 표현이 많아 의역이 난무하니 영어 실력이 되는 분들은 원문을 보시길...

---------





존 벙커(John Bunker) 씨



매년 가을 미국 메인 주의 COMMON GROUND Country Fair의 지속가능한 농업의 멋진 농산물 코너에 존 벙커 씨는 별난 사과를 진열해 전시한다. 지난 9월, 다시 한 번 가능한 한 크기와 모양, 빛깔 등이 다양한 사과를 가져갔다. 울퉁불퉁하고 작고 노란 건 웨스트필드(Westfield) 시크노퍼더(Seek-No-Further)라 하고, 자주빛의 자두 비슷한 건 블랙 옥스포드(Black Oxford)라 하며, 크고 붉은 줄무늬가 있는 건 울프리버(Wolf River), 토마스 제퍼슨의 과일 가운데 하나인 아소포스 스피첸버그(Esopus Spitzenburg)라는 것도 있다. 벙커 씨는 메인 주에서 "사과를 퍼뜨리는 사람" 또는 간단히 "사과 남자"로 알려져 있고, 반무명 상태에서 여러 해 동안 고난을 겪으면서도 그는 결코 더 요구한 적이 없다. Fedco Trees의 카탈로그를 통해 30년 전 우편주문 회사를 설립한 벙커 씨는 풀뿌리 사과 혁명의 씨앗을 뿌렸다. 


긴 주말 내내, 벙커 씨의 빛나는 사과들로 가득한 탁자에 사람들이 끌려오는 것을 보았다. 백발에 이가 빠진 체구가 작은 할아버지가 벽돌색의 사과를 가리키며 "볼드윈(Baldwin)!" 하고 외쳤다. 이 사과는 1933~1934년 지독히 추운 겨울이 이를 무명의 상태로 처박아 넣기 전까지 미국에서 가장 중요한 사과 중 하나였다. "그건 최고야!"


금발의 여성이 놀라서 블루 페어메인(Blue Pearmain)을 들어올렸다. 그녀는 "블루 페어메인"이라며 경탄했다. "엄마가 마당에 한 그루 가지고 있었어."


또 다른 여성은 파운드 스위트(Pound Sweet)의 모습에 말문이 막혔다. "할머니가 파운드 스위트를 가지고 있었지! 할머니는 내가 빨래를 널 때마다 그걸 하나씩 줬어."


그냥 향수가 아니었다. 농가의 정보광들이 농장 계획에 벙커 씨의 축복을 받으려고 늘어섰다. "나는 사과를 따서 그대로 먹는 용도로 세 그루의 카바나(Kavanagh)와 두 그루의 콕스 오렌지 피핀(Cox's Orange Pippin)이 있고, 빵을 굽는 데 쓰는 울프 리버, 겨울 저장용 블랙 옥스포드가 있지만, 나를 완전히 만족시키지는 못해요. 사과주스용으로는 무얼 추천하나요?" 62세의 벙커 씨는 뉴잉글랜드 슬레이트로 만든 것 같은 커다란 목소리로 조언을 해주었다.


대부분 땅을 산 뒤 진입로나 마당에 사과나무를 심으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다가왔다. 일부는 벙커 씨에게 아이폰에서 사진을 보여주기도 했다. 메인 주의 Common Ground Country Fair부터 여러 로타리 클럽과 그가 강연하는 역사학회까지 벙커 씨가 다니는 모든 곳에서는 수수께끼의 사과를 식별해 달라고 요청을 받는다. 그는 기꺼이 해주는데, 그가 정말로 찾고 있는 것은 자신이 식별할 수 없는 사과나무이다. 그는 사과 탐정인 것이다. 


1800년대 중반 미국에는 식량작물로 개발된 수천 가지 품종의 놀라울 만큼 다양한 사과가 있었다. 그러다가 공업형 농업이 그 세계를 부수어 버렸다. 사과산업은 전 세계적으로 홍보하는 몇 가지만 남겼고, 나머지는 잊혀졌다. 그들은 상업적으로는 멸종했지만, 생물학적으로는 완전히 멸종하지 않았다. 


버려지더라도 사과나무는 200년 이상 살 수 있어, 쉘 실버스타인의 <아낌없이 주는 나무>처럼 소년이 돌아오기를 참을성 있게 기다린다. 약 200년 정도의 수령인 늙고 구부러진 메인 주 할로웰(Hallowell)에 있는 블랙 옥스포드 나무에는 아직도 짙은 자주빛의 사과가 가을마다 달린다. 뉴잉글래드의 북부와 애팔래치아 산맥, 조니 애플시드가 사랑한 오하이오의 리버 벨리 같은 곳 —불도저도 도망간 농업의 한계지— 에서, 이러한 100년 이상의 나무들이 존재의 경계에서 깜박거리며 버티고 있다. 그들의 정체는 현재의 자택 소유자들에게는 수수께끼이곤 하다. 그리고 존 벙커 씨는 그 나무들이, 그리고 그가 사라지기 전에 최대한 구하려고 마음먹었다.


사과의 품종에 관해 이해하는 데 중요한 것은 사과는 씨앗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는 점이다. 사과의 과일은 모수, 즉 어미나무의 일회용 자궁인데, 거기 들어 있는 씨앗은 새로운 개별체로서 그 각각은 어미와 알 수 없는 아비에게서 받은 유전자가 독특하게 조합되어 있다. 그 조합은 봄에 벌들이 꽃가루를 묻혀 날아다니면서 수정이 되어 이루어진다. 그 씨앗이 나무로 성장하면, 거기 달린 사과는 부모와 닮지 않을 것이다. 그 사과들은 크기와 붉기, 당도 같은 품질은 우연히 재현될 수 없는 아주 특별한 유전자의 배열이 필요하기에, 시고 작고 녹색을 띠곤 할 것이다. 그러한 묘목이 미국 농촌의 비포장도로 등지에 줄지어 서 있다. 


특정 나무에 달리는 사과를 좋아해서 그와 같은 나무가 더 많이 있기를 바란다면, 그걸 복제해야 한다. 원래의 나무에서 가지를 잘라서 살아 있는 밑나무에 접을 붙여 자라게 하는 것이다. 이것이 사과 품종이 대대로 이어지는 방법이다. 모든 매킨토시(McIntosh)는 존 매킨토시가 1811년 자신의 온타리오 농장에서 발견한 원래의 나무에 접을 붙이거나 접을 붙인 것에 다시 접을 붙인 것이다. 모든 그래니 스미스(Granny Smith)는 마리아 앤 스미스(Maria Ann Smith)가 1800년대 중반 호주의 자기 퇴비더미에서 발견한 묘목에서 유래한다. 


현재 미국에서 많이 재배하는 사과 품종들.


그런데 때때로 그러한 묘목 가운데 하나가 특별한 무언가를 생산하곤 한다. 접붙이는 기술이 확산되면서, 그런 특별한 나무가 발견되면 복제되고 이름이 붙여졌다. 1800년대까지 미국은 세계의 다른 어떤 곳보다 각 지역의 기후와 수요에 맞춤한 많은 품종의 사과가 있었다. 어떤 건 7월에 익고, 어떤 건 11월에 익었다. 어떤 건 지하 저장고에 6개월이나 저장할 수 있었다. 어떤 건 빵 굽기나 양념에 최고였고, 대부분은 생으로 먹기에 너무 떫어 사과발효주로 만들었다. 농장에 정착하고 서쪽으로 이동하면서 수백만 개의 사과 씨앗을 심었던 미국 식민지의 사람들에게서 여러 가지 사과가 사라졌다. 그 방법을 선도한 것은 존 채프먼(John Chapman), 일명 조니 애플시드였다. 그는 혼자서 많은 개척지의 묘목장에 수많은 씨앗을 심었는데, 이주자들을 끌어들일 생각으로 무상불하지의 일부에 50그루의 사과나무와 배나무를 심기 시작했다. 접목을 이해했다고 해도 이주자들은 아마 별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그 사과 중 일부는 생으로 먹고, 더 많은 돼지를 먹이거나 발효시키려고 재배했지만 어느 일이나 너무 까다로웠다. 

벙커 씨는 이 시기를 위대한 미국의 농업혁명이라 부른다. "이런 일들이 일어났을 때 미국 농무부나 대학(land grant college)도, 과수학회(pomological societies)도 없었죠." "풀뿌리 운동이었습니다. 농민들이 육종가였죠." 농업이 공업화되면서 과수원의 규모가 더욱더 커졌다. 주의 농업지도서비스는 과수재배자들에게 맛과 향을 희생시키며 장거리 운송에 견딜 수 있는 몇 가지 품종에 집중하여 반짝이고 붉은 과실을 크게 생산하라고 장려한다. 오늘날 수많은 특별한 사과들이 사라지고 단지 몇 가지가 시장을 지배하고 있다. 

벙커 씨가 자신의 빛나는 사과를 전시하는 걸 보면, 사과에 대한 우리의 의식이 점점 좁아졌다는 것이 떠오른다. 이 다재다능한 과일의 종류가 점점 줄어들고 있다. 진로를 바꿀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전시 A: 해리슨 사과(Harrison apple), 뉴저지 주 뉴어크의 자랑, 1800년대 초반 전성기를 구가함, 세계에서 가장 좋았던 샴폐인 같은 사이다를 만듦. 그러나 해리슨처럼 좋은 사과발효주를 만드는 고탄닌 품종의 대부분이 금주령으로 사라졌다. (최근 부활한 사과발효주는 주로 생식용 사과로 만들어 맛이 없다.) 그러나 1976년 벙커 씨와 사과를 찾는 동료 중 한 명이 오래된 해리슨 사과나무 한 그루를 뉴저지 리빙스턴에 있는 문을 닫은 사이다 공장 부지에서 찾아, 그걸 접목하여 현재 새로운 세대의 해리슨 사과나무가 열매를 맺기 시작했다. 피노 누아르라는 포도주를 다시 발견한 것과 같은 이야기이다. 



왼쪽부터: 롤프(Rolfe), 울프 리버(Wolf River), 옐로우 벨플라워(Yellow Bellflower), 로드 아일랜드 그리닝(Rhode Island Greening), 블루 페어메인(Blue Pearmain), 카바나(Kavanagh)



농업생물다양성의 보존에 대한 일반적 논거는 단일작물이 병해충에 의해 전멸할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그리고 실제로 옛날 사과의 일부는 사과 부패병에 대한 저항성 유전자가 있으며, 현대 과수원의 또 다른 재앙에 유용하는 것이 입증되고 있다. (사과는 다른 작물보다 더 많은 농약이 필요하고, 그것이 현대의 사과 품종을 유기농으로 재배하기 어렵게 한다.) 그러나 꿈 같은 소리라고 무시하지 마라. 세계는 우리가 수많은 개성의 다양한 사과를 경험할 때 조금 더 즐거워질 것이다. 


벙커 씨의 사과에 대한 사랑은 1972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때는 그가 콜비(Colby) 대학을 졸업한 뒤 메인 주 팔레르모의 마을에서 척박한 땅을 구해 농사를 시작한 해이다. 첫 해 가을, 그는 대부분은 무시했지만 십 몇 년 전 심어 당시 전성기에 이른 나무에서 사과가 익어가는 것을 발견했다. 그는 그걸 따기 시작했다.

"나는 마을에서 찾았고, 결국 메인 주와 다른 곳에서 이 나무를 만난 적도 없는 사람에게서 선물받은 것 같아요. 난 내가 이렇게 하리라곤 생각하지도 않았어요." 시간이 지나면서 "난 지구에 와서 모든 사과나무를 재배하고 결실을 이루는 놀라운 경험해보자고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리고 자신의 영역으로 나를 데려가 가진 것을 보여줄 고풍스러운 나무들이 옛 도로의 여행길에 나를 내려주었죠. 난 누군가의 문을 두드렸고, 다음은 당신도 알듯이 그들과 함께 먹었죠. 그건 끝없이 선물을 받는 것 같아요. 그리고 난 이에 대해 어떤 책임이 있을까, 아니면 그냥 즐기고 가 버릴까 생각하기 시작했어요."

그래서 그는 Fedco Trees를 설립했다. 이곳은 매년 희귀한 사과를 선택해서 그것이 덜 희귀해지도록 시도한다. 그가 이 잃어버린 고리의 하나를 찾으면, 그걸 Fedco의 묘목장에 있는 어미나무에 접을 붙이고 몇 년 뒤 그 나무를 판매한다. 벙커 씨는 지난 30년에 걸쳐 80~100품종을 망각으로부터 구했다고 추산한다. 그의 수사 기법은 줄기 주변의 구멍의 깊이를 공부하는 것부터, 접붙이는 흉터를 위한 원줄기를 확인하고 오래된 묘목장 목록과 역사적 기록들을 심사숙고하는 것까지 모든 것을 아우른다. 

그는 사과가 유래한 마을의 구멍가게에 "수배" 전단지를 붙이고, 역사학회의 모임에도 나누어준다. 전단지에는 "살아 있길 바랍니다: 내러갠싯 사과(Narragansett Apple). 요크 카운티에서 마지막으로 목격! ... 1873년 메인 주 벅스턴의 Jacob H Harmon의 농장에서 유래함"이라 적혀 있다. 그런 다음 사과에 대한 그림과 설명 아래에 호소한다. "당신이 이 사과의 소재를 안다면 제발 Fedco에 연락해 주세요." 



그는 메인 주 윈스롭(Winthrop)의 자랑인 페어뱅크스(Fairbanks)와 네이키드 림드 그리닝(Naked Limbed Greening)처럼 100년 동안 들어보지 못한 한때 사랑받던 사과를 찾기를 꿈꾼다. 그의 현재 성배는 너무 맛있어서 1870년대에 영국으로 수출되었다고 하는 풍부한 맛의 노란 사과 블레이크(Blake)이다. 옛날 카탈로그와 원예 관련 도서에 따르면, 블레이크의 과육은 "질 좋고, 아삭하며, 파삭파삭하고, 약간 신" 맛으로 1800년대 중반 메인 주에 널리 퍼졌다. 블레이크 나무는 다른 사과나무들이 사과가 떨어지는데 반해 끝까지 달려 있는 특이한 점이 있었다. 벙커 씨는 2011년 12월 포틀랜드 근처의 들판에 있는 노란 사과로 덮여 있는 오래된 나무를 발견하고는 혹시 블레이크가 아닐까 기대를 했다. 그곳은 1870년대 J.H. Blake가 소유했던 곳이기도 했다. 하지만 그 나무는 블레이크가 아니라고 판명되었고, 여전히 탐험은 계속되고 있다.

설로(Thurlow) 씨는 예전 플레처(Fletcher) 타운의 중심지였다 버려진 교차로로 벙커 씨를 데려가 오래된 비틀린 나무를 가리키며 "내가 어릴 때 저 사과를 먹곤 했어요"라고 말하다. 그 나무는 거의 죽었다. 지상에서 약 5.5m 높이인 이 나무는 살아 있는 가지가 하나에, 몸통은 5cm 정도 너비의 껍질만 살아 있었다. 과실도 달리지 않았지만, 벙커 씨는 관심을 보였다. 몇 달 뒤 그가 돌아와 가지 몇 개를 가져가서 농장의 어미나무에 그걸 접붙였다. 몇 년 뒤 설로 씨와 그 나무는 모두 세상을 떠났지만, 접목한 것은 무럭무럭 자라 몇 년 뒤에 처음으로 과즙이 많은 그린 플레쳐 스위트(green Fletcher Sweet)라고 이름을 붙인 사과가 달렸다. "훌륭한 사과예요"라고 벙커 씨는 말한다. "굉장히 멋진 독특한 맛이 있어요." 현재 벙커 씨는 어린 플레처 스위트 사과나무를 링컨빌(Lincolnville)에 돌려주었다. 벙커 씨의 발견 가운데 최고의 하나는 자신의 연구에서 링컨빌 지역에서 유래한 것으로 나타난 플레처 스위트(Fletcher Sweet)였다. 2002년 그는 링컨빌 역사학회의 사람들과 만났다. 그들은 그 사과에 대해 들어본 적이 없었지만, 뉴잉글랜드 북부의 여러 다른 오래된 마을처럼 숲으로 재생된 링컨빌의 일부를 플레처 타운이라 부른다는 걸 알고 있었다. 학회의 회원이 지역 신문에 "플레처"라고 부르는 옛날 사과를 찾고 있다는 기사를 썼다. 79세의 클라렌스 설로(Clarence Thurlow)라는 사람이 그 신문을 읽고 "플레처에 대해 들어본 적은 없지만, 플레처 스위트가 있던 곳은 알아요"라고 전화했다. 

이것은 사과의 마법이다. 클라렌스 설로와 접목하지 못하면 새로운 걸 기를 수 없없는데, 그의 나무는 쉽게 복제되어 메인 주로 반환되었다. 현재 난 플레처 스위트를 한 입 베어 물고 설로가 80년 전 소년이었을 때 경험한 바를 그대로 알 수 있다. 나는 뉴타운 피핀(Newtown Pippin)을 씹을 수 있고, 토마스 제퍼슨이 파리에서 친구에게 편지를 쓰며 "여기는 우리의 뉴타운 피핀과 비교할 만한 사과가 없다"고 아쉬워한 바를 이해할 수 있다.  

"그건 사과에 관한 것이면서 사과에 관한 것이 아닙니다"라고 벙커 씨는 자신의 작업에 대해 말한다. "나는 사과의 역사에 관하여 이야기했는데, 그거 압니까? 이건 농업 유산에 대한 내용이기에 매우 정치적인 이야기입니다."

그 유산이 위험에 처해 있다. 산업화된 식량체계가 우리를 극소수의 사과 품종에 제한할 뿐만 아니라, 스위탱고(SweeTango) 같은 새로 출시되는 사과의 대부분이 그걸 육종한 사람에게 지적재산권이 있는 "클럽 애플(club apples)"이다. 재배자들은 특정한 그 나무를 재배하고 판매하려면 계약서에 서명해야 하고, 모든 사과에 대해 로열티를 지불해야 한다. 자신의 사과를 통제하는 농민들의 시간이 숫자로 세어질 수 있게 되고, 지식의 사슬을 끊는 일에 대한 생각으로 벙커 씨는 고심하고 있다. 그는 "우리가 상호작용할 때, 지구에서 함께하는 우리의 능력은 수천 년 동안 사람들이 하던 모든 물건으로 함축된다"고 한다. "우린 언어를 발명하지 않았다. 우린 옷을, 길을, 농업을 발명하지 않았다. 우린 우리에게 주어진 것을 단지 받았을 뿐이고, 다음에 올 사람에게 줄 뿐이다."


COMMON GROUND Country Fair의 말미에, 나는 다시 찾으려는 그 이상의 사과가 있는지 궁금해지기 시작했다. 괴상한 봄 날씨에 최근 사과의 생산이 최악이었다. 많은 나무에서 과실이 달리지 않았고, 평소보다 적은 사람들이 벙커 씨에게 자신들의 수수께끼를 가져왔다. 어느 멋진 젊은 부부가 우리에게 다가왔다. 그들은 어쩐지 아미쉬 같아 보였다. 남자는 조끼와 밀집모자를 쓰고, 여자는 손으로 짠 리넨을 입었다. "이름 중에 '유령(ghost)'이라는 게 있나요?" 남자가 물었다. "우린 최근 가디너(Gardiner)에 오래된 나무가 좀 있는 땅을 샀어요. 95세인 이전 소유자가 그 이름을 알려줬습니다. 하나는 '유령'처럼 생겼어요."

벙커 씨는 "유령"에 가까운 이름을 가진 어떤 토종 사과도 생각할 수 없었다. 한 달 뒤, 그는 고스트 사과를 조사하려고 여행을 떠났다. 그는 가디너의 집을 보자마자 희망이 샘솟았다. 그곳에는 전형적인 옛날식 헛간이 있었고, 앞마당에는 수령이 많은 배나무가 몇 그루 보였다. 50그루의 크랩(crab) 사과나무들이 집에 그늘을 드리웠다. 

단풍나무들이 집 뒤편을 장악했지만, 그들 사이에 일정한 간격으로 질서정연하게 서 있는 오래된 유령들을 볼 수 있었다. 약 30그루의 옛 과수원이었다. 대부분은 죽었으며, 일부는 차츰 죽어가고 있었다.

유령은 스노우(Snow)의 틀린 이름임이 판명되었다. 1600년대 프랑스 정착민들이 재배하던 밝고 붉은 캐나다의 사과인 스노우는 매우 일반적이었다. 이 사과는 매킨토시에 가장 좋은 어미나무로 알려져 있다. 그 이름은 눈처럼 흰 과육에서 왔다. 벙커 씨는 "또는 유령처럼 흰"이라고 생각에 잠기며 말했다. 그는 흔히 보기 어려운 미국의 오래된 사과 품종인 갈색에 솜털이 있는 락스베리 러시트(Roxbury Russet)를 확인했다. 어디서나 그랬기에 그는 특별히 실망하지는 않았다.

그런 다음 옛 과수원의 가장자리를 따라 적어도 수령이 150년은 된 비틀린 나무에 다가갔다. 과실이 달리지는 않았지만, 땅 위에 이십여 개의 황금빛 사과가 떨어져 있었다. 벙커 씨는 하나를 주워서 손에 들고 살펴보았다. 그 사과는 황갈색 점에 자루 부분에는 황갈색 무늬가 있었으며 둥글고 단단했다. 그는 전에 이런 사과를 본 적이 없음을 즉시 알아채고, 전율과 함께 혹시 블레이크를 발견한 것은 아닌지 궁금했다. 매우 적은 수의 샛노란 사과들이 150년 전 메인 주에서 재배되었다. 그런데 그 과육이 "질 좋고, 아삭하며, 파삭파삭하고, 약간 신맛"인가? 그는 사과를 한 입 베어 물었다. 사각, 사각, 사각, 사각. 이것이 블레이크임을 밝히려면 더 오랜 수사 작업이 필요할 것이다. 그는 더 나은 상태의 과실을 얻기 위해 내년 가을에 돌아올 것이다. 그러나 그는 이 위대한 미국의 농업혁명이란 유령이 더 이상 유령이 아님을 강하게 직감했다.



전국의 사과 탐정 모임(아래 지도를 클릭하시오) 

위의 사과 그림은 <Apples of New York>, Volume 1 Volume 2, 그리고 U.S. Department of Agriculture Pomological Watercolor Collection에서 가져옴. 



http://goo.gl/RJIE1

728x90
728x90

"캘리포니아~ 아몬드~ 영양 많은 알칼리성! 블루~ 블루~ 다이아몬드~ 고소한 맛, 아몬드!" 라는 광고의 노래를 기억하는가? 조영남 씨가 기타를 메고 나와 부르는 노래이다. 

모르는 사람은 여기를 들어가서 보시길 바란다. http://www.adic.co.kr/gate/video/show.hjsp?id=I71304


아몬드가 마치 땅콩과도 비슷하게 생겨서 흔히 '아몬드는 땅에서 달리는 것 아냐?'라고 생각하기 쉽다.

하지만 절대 그렇지 않다는 사실.


아몬드는 땅에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 나무에서 달리는 열매의 씨앗을 말린 것이다!

자, 아래의 사진을 보라. 아몬드는 이렇게 나무에서 달린다.



이 아몬드 나무는 장미과로서, 원산지는 터키나 이란과 같은 서아시아 일대로 알려져 있다.

장미과이기에 그 꽃 또한 무척이나 어여쁘다는 사실을 우리는 잘 모르고 있다.



아몬드꽃이 마치 벚꽃과 비슷하지 않은가?

그렇다. 벚꽃도 바로 장미과로서 아몬드와는 친척 사이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친척으로는 사과나무도 그렇고, 배나무도 그렇고, 복숭아나무도 그렇고, 앵두나무도 그렇고, 살구나무도 그렇다. 장미과는 참으로 많은 친족으로 구성되어 있다. 


일찍이 반 고흐는 1890년 자신의 유화에서 이 아몬드꽃을 표현한 바가 있다. 

오며가며 어딘가에서 한번씩 본 적이 있는 그림일 것이다.


반 고흐. 암스테르담 국립박물관 소장.


어떠한가? 아몬드는 땅에서 달리는 것이 아니라는 말을 이제는 알겠는가?

그나저나 한국에서는 아몬드를 재배하는 곳이 어디 없을까... 나도 아몬드꽃을 직접 보고 싶다.


 



728x90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