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의 애기 구덕. 그리고 일본의 그것.
정말 둘은 놀랍도록 닮아 있네. 한국과 일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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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명환, 이영식 공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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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고 4
와츠지 데츠로和辻哲郞와 풍토
-풍토론의 가능성을 열며 쿠라타 타카시鞍田崇
아이인 나의 기억에는 모내기가 끝나기까지는 마을사람들이 별로 괴로워 보이지 않았다. 아이에게 노동의 괴로움을 뚜렷하게 보인 건 모를 내고 1-2주 뒤에 시작하는 논의 김매기 노동이었다. 그것은 7월 중반부터 8월 상순에 걸쳐서 여름의 삼복 시기로, 그 기간에 심은 모의 뿌리 주변의 흙을 뒤집어서 잡초가 번성하는 걸 방지한다. 이 김매기를 3번쯤 반복하는 사이 벼는 맹렬한 기세로 자라기 시작한다. 그렇게 해서 겨우 목표에 도달하기까지 경작자들은 땡볕 아래의 논 안을 기어다니지 않으면 안 된다. 나는 그것을 풀섶의 후끈한 열기를 뿜는 논의 옆에서 보고만 있지 못하고, 역시 마을 의사의 아들로서 이 노동으로 생기는 급병의 현상을 경험하고 있었다. 그것은 더위, 즉 일사병의 여러 가지 형태였던 것 같은데, 대개는 밤중에 명렬한 복통 등을 일으키고 너무 급하면 의사를 부르러 왔다. 논의 김을 매는 계절에는 매일 밤 한 명이나 두 명의 급병인이 발생했다. 그러한 관계로부터 나에게는 농경 노동 가운데 논의 김매기가 가장 맹렬한 노동이라는 인상이 남았다. (와츠지 데츠로 <자서전의 시행>)
이처럼 (유럽에서) 여름의 건조함과 겨울의 습윤함은 잡초를 몰아내 온땅을 목장답게 한다. 이것은 농업 노동의 성격을 규정하지 않을 수 없다. 일본의 농업 노동의 핵심을 이루는 건 '김매기'이다. 잡초의 제거이다. 이것을 게을리하면 경지는 금세 황무지로 변한다. 그뿐만 아니라 김매기는 특히 '논의 김매기'란 모습으로 드러난다. 그것은 일본에서 가장 괴로운 시기 -따라서 일본의 주택 양식을 결정하는 시기, 즉 폭염이 가장 심한 삼복 무렵에 꼭 그때를 번성기로 삼는 꿋꿋한 잡초와 싸운다는 걸 의미한다. 이 싸움을 게을리하는 건 농업 노동을 내버려두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유럽에서는 마침 이 잡초와의 싸움이 필요하지 않다. 토지는 한번 개간되면 언제까지나 고분고분한 토지로 인간을 따른다. 틈을 보아 스스로 황무지로 전화되는 일이 없다. 그래서 농업 노동에서는 자연과의 싸움이란 계기가 빠져 있다.
와츠지는 무슨 이유로 일본적 풍토를 열대 계절풍의 그것과 동일하다 보았을까? 그것은 '와츠지의 계절풍이란 것은 순수한 기후학적 개념이 아니라, 인간이 생활을 영위하는 '논'과 뗄 수 없이 결합된 인간 존재의 주체적 표현이 되는 풍토 개념의 하나이기 때문이다. (시마다 요시히토 '풍토 사상의 가능성 -일본적인 근원적 반성-')
와츠지가 고향의 선배 야나기다에게 개인적으로 어떤 영향을 받았는지 나는 상세하게 조사하지 못했는데, 와츠지의 <풍토>는 야나기다의 벼농사 문화론을 근거로 하는 것처럼 보인다. 벼농사라는 건 풍토 그것이라 말하기보다도 어느 풍토에 입각한 농업기술이며 생업기술이다. 벼농사에 대응하는 풍토가 존재한다. 와츠지는 그것을 '계절풍'으로 인식하고, 다시 세계사적 시야 안에 넣어 '사막'과 '목장'을 함께 풍토의 세 유형으로 다시 파악했다고 이해할 수 있기 때문이다. (앞의 논문)
건축이란 진짜 자연에 쌓아 놓는 제2의 자연이다. 건축을 직업으로 삼는 자가 환경에 대해 말할 때에는 이 점을 명심해야 한다. (렌조 피아노 <항해일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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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12월 30일, 날씨는 맑지만 바람이 강해 춥다. 먼저 어제 날이 저물어 보지 못한 성읍 2리쪽을 돌아보기로 했다. 여기도 중산간이니 기대할 만하다. 차를 타고 오르는 길은 좋은 드라이브 코스다. 이 길도 곧 확장공사를 한다고 하니, 이런 경치를 볼 수 있는 날도 얼마 남지 않았다. 아기자기한 맛이 있어 참 좋은데...
성읍 2리는 올라가보니 목장 지대였다. 농사는 그리 많이 짓지 않고 말을 키우는 곳이 많았다. 경치가 좋아서 그런지 별장 식으로 지은 듯한 집도 꽤 보였다. 그래도 차에서 내려 이 마을을 한참 돌다가 다시 표선 쪽으로 내려갔다. 다음 목적지는 제주민속촌마을을 가보기로 했다. 관광객들이 아침부터 참 많이 왔다.
제주의 전통 뗏목, 테우. 보기에는 위험해 보이지만, 이런 배가 오히려 뒤집히는 일이 없다고 하니 신기할 따름이다.
물이 귀한 제주에서는 빗물도 허투루 버리지 않고 이렇게 받아서 썼다.
눌. 뭍에서 낟가리라 부르는 것과 같다. 바람이 많은 곳답게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돌로 매달아 놓았다.
제주의 옛 민가. 옥수수를 주루룩 달아놓았는데, 제주에서 옥수수를 이렇게 많이 심었다는 이야기는 들어보지 못했는데...
조 같은 씨앗을 심은 뒤에는 이 섬피를 끌고 다니며 흙으로 덮었다.
제주의 장독대. 제주의 장독은 그 색도 독특하다. 흙이 다르기 때문이겠지.
제주의 부엌. 역시 굴뚝이 따로 없다. 벽은 그을음으로 검게 그을렸다. 메주를 저렇게 달아놓으면 그건 괜찮았을려나?
세간이 참 단촐하다는 느낌이 들어 한 장 찍었다.
아이들이 돌릴 수 있도록 마련해 놓은 맷돌.
김칫독을 묻어 놓은 곳도 아닐 테고, 정확히 뭔지 잘 모르겠다.
그 옛날 라이터나 성냥이 없을 때 썼다는 불씨를 보관하는 도구.
이것도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죽은자의 집, 상여.
벼를 훑어서 털던 그네.
제주의 보습. 밭에 돌이 많아서 그런가 뭍의 것보다 좁다.
남태. 씨앗을 심고 흙을 다지는 용도로 쓰던 것.
표선 민속촌을 구경하고 세화1리 쪽으로 향했다. 이곳은 지난 여름 제주에서 토종 조사 사업을 하면서 만났던 고옥화(76) 할머니께서 살고 계신다 한다. 일단 집 앞 담장에 있던 나팔꽃의 씨앗을 채집했다. 고옥화 할머니께는 제주의 옛 이야기를 많이 들었다. 아래는 그 내용이다.
지금은 피를 가는 사람이 있을까 모르는데, 옛날에는 피쌀이라 하여 송당이나 성읍에서 많이 했다. 피쌀은 3번을 방아 찧어서 체로 고르는데, 맛이 좋다. 포근하니 입에 넣으면 보드라운데, 먹고 나면 배가 일찍 꺼진다. '송당 목장'에서 아직도 피를 가는 것 같다. 습기가 많은 데는 피, 어느 정도 있는 데는 산듸, 없는 데는 조나 고구마를 심었다. 여름에는 한 달에 한 번 돗거름(돼지거름)을 냈다. 보리에 돗거름을 섞어서 뿌리고, 말이나 소로 밟는다. 사람이 있냐 없냐, 거름이 있냐 없냐에 따라 씨를 심는 법이 달라졌다. 거름이 없으면 그냥 쫙쫙 뿌리고, 있으면 하나로 섞어서 들고 뿌렸다.
그 아들 분께서 같이 자리하여 말씀하시기를, 내가 42세인데도 어렸을 적에 하루 두 끼 먹은 적이 거의 없었다. 형편이 좀 나은 편이었는데도 그랬다. 제사 때나 쌀밥을 먹을 정도였고, 겨울에는 보리범벅이나 메밀범벅을 자주 먹었다. 좋은 메밀쌀은 제사 때 쓰고, 후진 것으로 두 번 세 번 갈아서 고구마범벅에 넣는데, 그러면 색이 거무티티해진다. 고구마절간은 뱃때기라고 불렀다.
따뜻한 커피를 얻어 마시며 이야기를 듣고 인사를 드리고 나와 근처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그냥 기사식당 같은 곳이었는데 다른 어느 곳보다 인심도 후하고 맛있으며 값도 쌌다. 나중에 제주를 다시 찾으면 꼭 다시 들르고 싶은 곳이다.
점심을 먹은 뒤에는 계속 표선면 일대를 누비고 다녔으나 별로 소득은 없었다. 아니 전혀 없다. 그래서 아까 들은 송당 목장으로 피를 찾으러 가기로 했다. 송당 목장을 지도에서 찾아 산으로 올랐다. 조금 헤매다가 송당 목장에 도착하니 어느덧 해가 뉘엿뉘엿 지려고 한다.
송당 목장 사무실로 들어가는 길.
목장 사무실을 찾아가 관계자 분을 만났다. 피는 사료로 쓰려고 심고 있는데, 현재 반장님이 집에 씨를 보관하고 있어 이곳에는 없다고 한다. 그래서 다시 찾아오기는 어렵고 하여, 우리가 피를 찾는 목적을 말씀드리고 주소와 발송비 명목으로 비용을 드리고 왔다. 이 피는 이후 집으로 돌아갔을 때 틀림없이 배달되었다.
이제 어느덧 마지막 날이 되었다. 내일은 비행기 시간도 있고 하여 여기저기 많이 다니지는 못할 테니 말이다. 한 달에 걸친 기간이 마지막이라니 지난 기억이 새록새록 난다. 참 시간이 빠르기도 하다.
송당 목장은 전체 넓이가 여의도의 몇 배나 된다고 한다. 이 드넓은 초지에서 말과 소가 다니며 한가로이 노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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