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법의 차이가 미꾸라지 개체군에 미치는 영향"이라는 논문이 2010년에 발표된 적 있다. 


이에 의하면, 관행농업의 논보다 유기농업의 논에서 2-2.5배 정도 많은 미꾸라지가 발견되며, 또한 논이 위치한 환경에 따라서도 달라진다고 한다. 




매우 흥미롭다. 역시 농약과 화학비료가 생태계의 생물다양성에는 악영향을 미치는가 보다.


http://210.101.116.28/W_files/kiss3/09404963_pv.pd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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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벙이란 단어를 처음 들었던 것은 6~7년 전쯤이었다. 논에 붙어 있거나 논 안의 한 귀퉁이에 있는 웅덩이에서 물고기나 개구리를 잡아서 먹었던 기억 속에서나 존재하던 것이 비로소 제 이름을 얻는 순간이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지역마다 덤벙(경북), 둠뱅·툼벙(전남), 둠벙(경기, 충청, 경남)이란 이름으로 불리고 있었다. 한마디로 둠벙은 논이나 그 주변에 있는 그리 크지 않은 물웅덩이를 가리키는 말이다.


이러한 둠벙은 원래 농업용으로 만들어져 중요하게 활용되었다. 수리시설이 좋지 않았던 시절에는 논농사에 없어서는 안 될 ‘물,’ 즉 농업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매우 긴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논에 물이 좀 난다 싶은 곳에는 꼭 둠벙을 팠다. 이에 대해 전남 담양군 시목마을의 신현만 이장은 이렇게 이야기한다.


“옛날에는 샘(관정)이 없으니까 물 쓰려고 논마다 팠지. 지금은 저수지가 안골 하고 쇳대에 2개나 있고, 샘을 파서 참 발전했지. 그전에는 물 땀시 농사 못 지었어요. 물 없어 논 못하는 곳은 서숙(조) 갈고 메물(메밀) 심고 그랐어요.”


과거 수리시설이 부족했을 때에는 가능한 곳에서는 그렇게 둠벙을 팠기에 거의 모든 논에 둠벙이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둠벙을 파 놓으면 그나마 물 걱정을 한시름 덜 수 있었다. 둠벙의 물을 모내기에 맞추어 농업용수로 활용하려면 맞두레를 이용해 논바닥으로 퍼야 했는데, 그 일은 손이 잘 맞는 사람끼리 해야 했다.


그러다가 관정을 뚫기 시작하면서 양수기로 지하수를 마음껏 퍼 쓰고, 커다란 저수지가 생기며 안정적으로 물을 공급받을 수 있게 되었다. 근대적 기술이 널리 보급되면서 둠벙의 효용가치는 크게 떨어졌고, 쓸모를 잃은 둠벙은 결국 경지정리와 함께 농촌의 경관에서 거의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쓸모없는 둠벙을 유지하기보다는 논을 조금이라도 늘려 벼 한 포기라도 더 심어 먹는 것이 훨씬 이롭다고 생각한 탓이다.


그래서 현재 전국에서 가장 활발하게 둠벙 조성사업을 벌이고 있는 전라남도의 친환경농업과에서도 이 사업의 초기에는 애를 많이 먹었다. 전라남도 친환경농업과의 이춘봉 계장의 말을 들으면, “전남에서는 생명식품생산 2차 5개년 계획(2010~2014년)을 실시하여 무농약과 유기농을 전체 농업의 45%까지 끌어올리려 하고 있습니다. 그중 공약의 하나로 생태둠벙을 2014년까지 500개 조성하려고 합니다. … 처음에는 주민들이 파려고 안 했습니다. 둠벙 하나에 30평쯤 할애하는데, 그걸 싫어해서 동네 땅에나 하지 내 땅에 하지 말라고 했습니다.”



담양군 시목마을의 둠벙. 2004년에 전남도의 지원으로 조성된 이곳은 마을에 오폐수처리시설을 설치하며 생긴 마을땅에 만들어졌다.



둠벙이 기르던 생명들


그런데 둠벙의 또 다른 중요한 가치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둠벙이 논을 둘러싼 생태계의 생물다양성을 풍부히 하는 동시에, 농민들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의 역할도 했다는 사실이다. 둠벙이 단순히 농업용수만 확보하는 곳이 아니었다는 말이다. 인간에게 가장 중요한 영양분이라면 크게 탄수화물과 단백질을 들 수 있다. 탄수화물이야 곡식을 통해서 구한다지만, 단백질은 콩이나 고기 등을 통해 얻을 수 있다. 헌데 그 옛날 고기 한 번 구경하기가 쉽지 않던 시절, 바닷가가 아닌 내륙에서 농사를 지으며 단백질을 공급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다야 조금만 나가면 물고기며 어패류 등이 널려 있어 흉년이 와도 굶어죽는 일은 없었고, 산간 지역에서는 그래도 덫이나 올무를 놓든 사냥을 하면 고기 냄새라도 맡을 수 있었다.


내륙의 농업지대에서 쉽게 구할 수 있는 콩이란 좋은 단백질 공급원은, 사실 어디 동물성 단백질에 비하랴. 남의 살인 고기의 그 짜릿한 맛에 콩이 비할 바가 못 된다. 애기들한테 콩과 고기를 놓고 먹여보면 대번에 고기에만 입을 뻐끔뻐끔 벌리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러한 고기에 대한 갈증을 그나마 해소시켜주었던 것이 둠벙이다. 다양한 생물들 ㅡ미꾸라지를 필두로 붕어, 새우, 심지어 민물장어까지ㅡ 이 깃들어 살던 둠벙에 대한 기억을 시목마을의 노농들에게서 들어보자.


“둠벙에는 미꾸라지가 그렇게 많았어. 가을에 벼갈이(벼베기)하고 잡아서 추어탕 끓여놓으면 그렇게 겁나 맛있어. 미꾸라지는 찬바람이 나야 제맛이 나. 샘(둠벙) 밑에 물을 조금만 푸면 한 빡께쓰씩 잡았어. 붕어, 피리(피래미), 중태기도 있고, 자라에 장어까지 살았지. 새우도 겁나 많고. 그걸 산태미(삼태기)를 대고 풀을 질근질근 밟아서 확 들어 잡고 했지.”


농민들은 둠벙이 품어 키운 물고기며 새우 등으로 고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며 동물성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었을 것이다. 지금도 중국의 남부 지역이나 동남아시아에서는 ‘벼논양어’라는 형태로 논에서 벼와 함께 물고기를 키워 먹는 문화가 남아 있다. 그 모습을 가만히 들여다보면 노농들이 기억하고 있는 일과 하나도 다름없이 꼭 들어맞는다. 하지만 이제는 도처에 널린 게 고기이고, 그것도 너무 값싸게 생산되어 고기 맛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없으니 둠벙의 그런 가치도 사라져 버렸다. 둠벙이 제공하던 단백질도 쓸모없어졌다는 말이다. 결국 둠벙은 대대적인 경지정리 사업과 함께 그 생명을 잃어버리게 된다.



경지정리 사업으로 논이 반듯하고 커지며 농기계를 이용한 작업이 수월해졌다. 그로 인해 생산성은 급증했으나 논의 다양한 기능은 사라지게 되었다.



논에 사는 긴꼬리투구새우. 논에서 농약의 사용이 많아지면서 사라졌다가 최근 친환경농업이 확산되면서 다시 논으로 돌아오고 있다. 한때는 멸종위기종으로까지 지정되었으나 다시 개체수가 늘어나면서 해제되기도 했다. 이놈들이 아침이면 분주하게 논바닥을 훑고 다녀 흙탕물을 일으키는데, 그 덕에 풀이 덜 나는 효과를 얻을 수 있다. 또한 이들의 똥은 좋은 거름이 되었을 테고, 건강한 생태계를 유지하는 데에도 도움이 되었다. 



둠벙, 생태계의 연결고리


둠벙이 사라지면서 논의 생물다양성은 감소하게 되었다. 물론 그것이 둠벙 하나가 사라졌기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둠벙의 역할 중에는 벼를 심고 한 달 반쯤 지나 실시하는 중간물떼기 때, 논에서 살던 수생생물들이 잠시 피신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한다는 점도 있다. 이제는 그런 수생생물이 혹여 논에서 살더라도 어디로 도망가 있을 수 있겠는가. 또한 농약과 화학비료의 영향도 무시할 수 없을 것이다. 그래도 점점 친환경농업이 확산되면서 이러한 부분은 조금씩 나아지고 있는 추세이다.


무엇보다 생태계의 연결고리가 파괴된 것이 가장 큰 요인일지도 모른다. 이제는 시멘트로 발라버린 농수로에서는 수초도 살지 못하고, 그러니 자연히 수초에 꼬이는 플랑크톤 등도 사라지고, 그를 먹이로 삼는 물고기 등도 사라진 지 오래이다. 또한 물고기들이 오갈 수 없을 정도로 높이 만들어진 저수지와 하천의 둑도 생태계의 연결고리를 무참히 끊어놓았다.


“지금은 미꾸라지를 구경도 못해. 이 미꾸라지가 개울에서부터 올라와요. 지금은 다 막아 버려서 올라올 수가 없어, 물만 내려가지. 쬐까 뛰어봐야 벼룩이여. 장마철에 비가 오면 막 뛰어올라서 하늘에서 떨어진다고 했어. 길가에 막 튀어오르고, 집 앞마당까지 막 떨어졌다니께.”


장마철이면 하늘에서 미꾸라지가 쏟아지기라도 한 듯 펄떡펄떡 뛰는 미꾸라지들이 앞마당까지 떨어졌다는 노농들의 추억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당시에는 인간이 사는 집도 철저히 고립된 인공의 건축물이 아니라 자연생태계의 일부였다는 말일 것이다. 하늘이 비를 내리면 이를 숲이 머금었다가 샘과 계곡으로 내뿜고, 이를 인간이 집 안으로 끌어들여 생활용수로 활용한 다음 농수로와 개울로 내보내면 수생식물이 이를 정화했다. 그리고 거기에는 물고기를 비롯한 다양한 수생동물들이 모여 살았다. 이렇듯 인간의 집도 자연생태계의 일부였을 것이다. 이렇게 하나의 거대한 연결고리가 형성되어 막히거나 끊이지 않고 하나로 이어졌다. 논이나 둠벙은 그 연결고리 안에 존재하던 하나의 요소였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연결고리가 거의 모두 끊어져 버렸다. 집에서 나오는 생활하수는 오폐수처리시설로, 사람과 가축의 똥오줌은 정화조로 들어가 격리되어 처리된 뒤 버려진다. 농수로는 시멘트로 발라져 숲과 집과 논을 연결하고 다양한 생물들의 서식지 기능을 잃고 물만 전달한다. 이처럼 각개격파 당한 듯 곳곳에 끊어져버린 물의 생태체계로 인해 둠벙을 조성하더라도 하나의 고립된 섬으로만 존재할 가능성이 크다.




관정과 농수로 현대화. 이로 인해 논과 그를 둘러싼 생태계는 고립된 섬으로 남게 되었다.



둠벙은 죽었다?


물론 둠벙에 대해 낭만적으로만 접근할 수는 없다. 현재 농민 인구는 291만 명으로 전체 인구의 5.8%밖에 되지 않는다. 과거 둠벙이 논마다 존재하던 시절의 농민 인구는 전체의 60~70% 정도에 이르렀다. 더구나 지금의 농민들 가운데 35% 정도는 고령층이다. 즉 그때만큼 일손이 많지도 않은데 둠벙처럼 관리에 품이 필요한 또 다른 일을 벌이기가 어렵다. 또한 조금이라도 생산량을 늘려야 했던 시대의 요구가 있었고, 이는 지금도 유효하다. 이런 상황에서 둠벙은 어떤 의미를 지닐까? 새로운 볼거리, 체험거리를 제공하는 수준일까? 물론 관광자원의 역할도 현재의 농촌을 생각할 때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이다. 사실 그것이 현재로서는 둠벙의 가장 주요한 목적인지도 모르겠다.


그래도 2012년의 봄가뭄은 둠벙의 잃어버린 가치가 되살아나는 계기가 되었다. 수리시설이 취약한 산간, 도서 지역의 경우 둠벙 덕에 가뭄을 극복할 수 있었다는 보고가 이루어지며 전남에서는 현재 그러한 지역을 중심으로 둠벙을 조성하고 있다. 또한 늦었지만 둠벙이 수질을 정화하며 생물다양성을 풍부하게 하는 중요한 가치가 있다는 연구들이 하나둘 발표되고 있다. 문명의 이기의 등장, 농촌사회와 농업 생산환경의 변화 등으로 둠벙의 실용적 가치는 현재 그 쓰임이 다했다고 볼 수 있다. 그러나 그것이 둠벙의 완벽한 죽음을 뜻하는 것은 아니다. 언젠가 다시 그 가치가 주목받을 날이 올지도 모르는 일이다. “둠벙은 죽지 않았다. 다만 사라졌을 뿐이다.”



경지정리된 마을의 논을 바라보며 옛일을 회상하는 시목마을의 어르신들.




함께 보면 좋을 글


<논 중간 낙수기에 미꾸라지 피난처로서 둠벙의 기능 평가>, 김재옥 외

“고맙다, 둠벙”, 농민신문, 이승환·임현우

민물새우 사는 생태연못 둠벙을 아십니까?”, 과학동아, 윤신영

논 생태계의 보물창고, 둠벙”, 농촌진흥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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둠벙. 논과 그 주변에 있는 그리 크지 않은 물웅덩이를 가리키는 사투리.

 

이러한 둠벙이 예전에는 농업용 목적으로 만들어져 중요하게 활용되었다. 바로 수리시설이 좋지 않았던 시절에는 논농사에 필수적인 물, 즉 농업용수를 확보하는 것이 아주 긴요한 일이었다. 그래서 예전에는 논에 물이 좀 난다 싶은 곳에 꼭 둠벙을 팠다. 어지간한 곳에는 그렇게 둠벙을 파서 거의 모든 논마다 있을 정도였다. 이렇게 둠벙을 파 놓으면 그나마 물 걱정을 한시름 덜 수 있었다고 한다. 모내기철이 다가오면 둠벙에 고여 있는 물을 맞두레를 이용해 논바닥에 퍼올렸는데, 그 일은 손이 잘 맞는 사람 둘이 해야 했다.

 

그러다가 관정(지역에선 샘이라 표현)을 뚫어 양수기로 지하수를 마음대로 퍼 쓰는 등의 근대적 기술이 널리 보급되면서 둠벙의 효용가치가 크게 떨어졌고, 결정적으로 쓸모를 잃은 둠벙은 경지정리와 함께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둠벙이 있던 자리에 벼 한 포기라도 더 심어 먹는 것이 훨씬 이로웠던 것이다.

 

농업용 목적 이외에 둠벙이 지닌 또 하나의 중요한 가치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둠벙이 논을 둘러싼 생태계의 생물다양성을 풍부히 할 뿐만 아니라 그를 바탕으로 하여 사람들에게 중요한 단백질 공급원이 된다는 점이다. 그 옛날 고기 한 번 제대로 먹지 못하던 사람들이 바닷가가 아닌 내륙에서 농사를 지으며 단백질을 공급받기란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바다야 나가면 물고기며 어패류 등이 널려 있어 흉년이 와도 먹을 것이 있었고, 산간 지역이야 덫이나 올무를 놓든 사냥을 하면 고기 냄새라도 맡을 수 있었다.

내륙의 농업지대에도 콩이라는 좋은 단백질 공급원이 있었다지만, 어디 동물성 단백질에 비하랴. 남의 살인 고기의 그 짜릿한 맛에 콩이 비할 바가 못 된다. 그런데 그러한 고기에 대한 갈증을 조금이나마 해소시켜주었던 것이 바로 둠벙이다. 다양한 생물들 ㅡ미꾸라지를 필두로 붕어, 새우, 심지어 민물장어까지ㅡ 이 기대어 살던 둠벙. 농민들은 이 둠벙이 품어 키운 물고기며 민물 새우 등으로 고기에 대한 갈증을 해소하고 동물성 단백질을 보충할 수 있었다. 그런데 이제는 도처에 널린 게 고기이고, 너무 값싸게 생산되어 고기 맛을 보지 못하는 사람이 없으니 그런 가치도 떨어져 버렸다. 둠벙이 제공하던 단백질도 무용하게 된 것이다. 그래도 어른들 기억 속에는 그때 둠벙에서 잡아서 먹었던 미꾸라지만큼 맛있는 것이 없었다며 한켠에 자리하고 있다.

 

그런데 둠벙을 통해 생물다양성이 풍부해지려면 중요한 것이 있다. 바로 그 주변 생태계의 환경이 뒷받침되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제는 시멘트로 발라버린 농수로에 수초도 살지 못하고, 그러니 자연히 수초에 꼬이는 동식물성 플랑크톤 등도 사라지고, 그를 먹이로 삼는 물고기 등도 사라진 지 오래이다. 또한 물고기들이 오갈 수 없을 정도로 높이 만들어진 저수지와 하천의 둑도 생태계의 연결고리를 무참히 끊어놓고 있다. 장마철 비가 내리는 날이면 하늘에서 미꾸라지가 쏟아지기라도 한 듯 펄떡펄떡 뛰는 미꾸라지들이 집 앞마당까지 떨어졌다는 어른들의 추억은 거짓이 아닐 것이다. 그만큼 당시에는 인간이 사는 집들도 철저한 인공 건축물이 아니라 자연생태계의 일부로 존재하고 있었다는 말이다. 집 주변의 샘에서 솟은 물이나 계곡 상류에서 흐르는 물을 자연스럽게 집 안으로 끌어들여 생활용수로 활용하고, 다시 집 앞이나 동네의 연못으로 생활하수가 흘러가면서 자연스럽게 정화된 뒤 다시 개천과 논밭으로 들어갔다는 것을 생각하면 인간의 집도 자연생태계의 일부였다는 사실이 그리 놀랍지도 않다.

산이 머금은 물이 샘솟는 논에는 둠벙을 파고, 그렇지 않고 개울로 흐르는 곳에서는 물길을 내서 둠벙으로 붙잡아 논으로 물을 넣었다. 논물은 다시 지하수로 스며들거나 물꼬와 농수로를 통해 자연하천으로 이어졌다. 이렇게 하나의 거대한 연결고리가 형성되어 막힘이나 끊김 없이 하나로 이어졌다. 논이나 둠벙은 그 연결고리 안에 존재하는 하나의 요소였을 뿐이다. 그러나 지금은 그러한 연결고리가 거의 모두 끊어져 버렸다. 집에서 나오는 생활하수는 오폐수처리시설로, 사람과 가축의 똥오줌은 정화조로 들어가 격리된다. 농수로는 시멘트로 발라져 관계망이 끊어졌고, 논물로는 양수기로 퍼올리는 지하수가 더 중요해졌다. 이처럼 각개격파 당한 듯 곳곳에 끊어져버린 하천 체계로 인해 이제는 다시 둠벙을 조성한다 하더라도 하나의 고립된 섬밖에 안 된다. 너무나 빈약한 모습이다.

 

이런 조건에서 둠벙을 조성하여 얻을 수 있는 최대의 효과는 무엇일까? 볼거리를 제공하는 수준일까? 둠벙의 새로운 가치인 관광자원의 역할도 농촌을 생각할 때 무시할 수 없는 중요한 가치이다. 그리고 사실 그것이 둠벙을 새로 조성하는 주요 목적인지도 모르겠다. 이제 농사에서 갖는 둠벙의 실용적 가치는 여러 문명의 이기로 인하여 그 쓰임이 다했다고 볼 수 있다. 물론 언젠가 그 가치가 다시 주목받을 날이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한 여지는 남겨두어야 하리라.

 

최근 몇 년 사이 둠벙의 새로운 가치에 주목한 전라남도에서 서서히 둠벙이 부활의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나는 오늘 전남도청에 가서 그것을 확인해 보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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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농사를 지어 쌀을 주식으로 삼은 한국인에게 논은 다양한 의미를 지닌다.


먼저 논은, 당연히 먹을거리를 주는 공간이다. 그런데 지금이야 '논=벼'라는 공식을 떠올리지만, 원래 예전의 논은 벼만 사는 곳이 아니었다. 논에는 물장군도 살고, 물방개도 살고, 개구리도 살고, 올챙이도 살고, 우렁이도 살고, 거머리도 살고, 드렁허리도 사는... 즉 다양한 생물들이 함께 어우러져 살던 공간이었다.


드렁허리는 이렇게 생겼다. 처음 보는 사람은 징그러워 할 수도 있는 생김새... 하지만 이 놈이 사는 논은 그만큼 건강하고 깨끗한 생태계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농민들은 이 놈을 귀찮은 존재로 인식했다. 그도 그럴 것이 물을 담는 것이 중요한 논두렁에 드렁허리가 구멍을 파고 살기 때문이다. 이게 구멍을 파면 그리로 귀한 논의 물이 빠져나가기 때문이다. 그런 구멍은 다시 논흙이나 풀더미 등으로 얼른 틀어막아야 한다. 그러지 않다가는 논의 물이 다 빠져나가기 십상이다. 얼마전 드렁허리와 관련하여 좋은 다큐멘터리가 방송되었다. 시간과 돈이 허락하는 분은 꼭 한 번 보시길 바란다(http://goo.gl/fpHKh)



그러던 것이 독성물질(농약)을 사용하는 농법이 퍼지면서, 또 농수로 등을 시멘트로 포장해 버리면서 그네들의 서식지가 사라져 논에서는 벼만 사는 공간이 되었다. 물론 지금도 풀이 자라고, 이러저러한 동물들이 깃들어 살기는 한다. 그런데 예전처럼 그들은 논의 '주인'이 아니라 '방문객'을 면하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친환경 농업이 퍼지면서 그러한 논에서는 다양한 생물들이 돌아오고 있다는 반가운 소식이 들리기는 한다(http://blog.daum.net/stonehinge/8724728). 하지만 여전히 그 비율은 미약할 뿐이다. 유기농 인증을 받아 출하되는 곡류의 무게가 단 4만4000톤(http://goo.gl/CQ6xn). 곡류 전체를 아우르는데 그래도 쌀이 대다수일 테니 그 전체를 쌀이라고 놓고 봐도 통계청에서 발표한 2011년 전체 벼 생산량 422만4000톤의 1% 정도밖에 안 된다. 앞으로 그 비율이 더 높아지면 논에서도 훨씬 다양한 생물들이 함께 살 수 있을 것이다. 



다음으로 논은 홍수를 막는 댐의 역할을 수행한다. 한국은 여름에 집중호우가 쏟아진다. 이걸 모르는 한국인은 없을 것이다. 그런데 이렇게 여름철 집중적으로 쏟아지는 비가 벼에게는 생명의 물이 된다. 그 장마비를 쭉쭉 빨아먹으면서 쑥쑥 자라는 것이 바로 벼의 생장 특징이다. 그래서 논은 그 시기에 많은 물을 담는 것이 유리하다. 물론 그렇다고 논에 계속 물을 대놓기만 하면 안 된다. 뿌리도 한 번씩 콧바람을 쐬면서 숨을 쉬어야 튼튼하고 건강하게 자랄 수 있다. 아무튼 그렇게 논이 붙드는 물의 양이 2000년의 논 면적을 기준으로 연간 26.2억 톤이라 한다. 이게 어느 정도의 양이냐면, 소양강댐과 대청댐의 저수량과 같은 양이다. 그러니까 논만 잘 보존하고 농사를 지어도 대형 댐을 몇 개 짓지 않아도 되는 셈이다. 그런데 요즘 논이 여러 이유로 사라지고 있다. 개발 바람에 그러기도 하고, 논농사가 수지타산이 맞지 않으면서 논을 밭으로 바꾸고 있기도 하다(http://blog.daum.net/stonehinge/8727371). 그렇게 되면 우린 또 다시 대형 댐을 지어야만 할지도 모른다. 댐이 생기면 수몰되는 마을과 농경지가 생기고, 거기에 살고 있던 사람과 여러 생물들이 쫓겨난다. 지금도 이런 일은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여기 내성천에 영주댐이 만들어져 수몰된다는 마을과 사람들의 이야기를 보라 (http://goo.gl/7KcCW).




또한 수질을 개선시키고 산소를 공급하며 뜨거운 여름철 한낮의 열기를 식혀주는 역할도 한다. 하나하나 모두 이야기하기가 손가락이 아프다. 이 글은 이런 논의 공익적 기능을 이야기하려고 시작한 것이 아니지 않은가! 이 글은 바로 추어탕을 이야기하려고 시작했다. 추어탕!


추어, 즉 미꾸라지는 아주 재미난 생물이다. 아가미 말고 장으로도 숨을 쉴 수가 있어 물이 마른 곳에서도 진흙만 있으면 그리로 파고들어가 살아남을 수 있다. 또 그 미끌미끌한 몸통을 쥐는 감촉이란... 잡아보지 못한 사람은 말을 하지 말자. 

어린 시절 반도를 하나 들고 개울가나 농수로에 가서 돌덩이를 옮겨다가 물길을 막는다. 그러면 물이 점점 줄어들고 거기로 반도를 들고 뛰어들어가 고기몰이를 시작하는 것이다. 여기저기 수풀이 우거진 쪽을 발로 쑤시고 덤벙덤벙 뛰면서 반도가 있는 쪽으로 고기를 몰아서 결정적 순간 팍 들어올리면... 반도 위에 고기들이 펄떡펄떡 뛴다. 재수가 좋은 날은 메기를 잡기도 했다. 그렇게 잡은 고기로 매운탕을 끓여먹는 것이 여름철 동네 아이들의, 그리고 어른들의 재미이자 좋은 영양 공급원이 되었다. 굳이 개를 잡지 않아도 필요한 열량을 그렇게 섭취했다. 물론 그래도 어른들에게 최고의 보양식은 개였다. 그건 부인할 수 없다.


그렇게 미꾸라지를 잡기도 했다. 하지만 미꾸라지의 참맛은 논에서 잡는 것이었다. 논은 앞에서도 말했듯이 항상 물을 채워놓는 것이 아니다. 그렇게 농사짓는 사람은 초짜이거나 게으른 농부다. 진정한 농부는 벼의 상태를 봐가면서 '중간물떼기'라는 것을 한다. 중간에 한 번씩 물을 빼서 뿌리가 공기를 만나 숨을 쉬면서 더 뻗어 나가도록 하여 벼가 잘 자라도록 돕는 행위다. 그렇게 물을 뗄 때가 바로 논에서 다양한 먹을거리를 장만하는 때이기도 하다. 미꾸라지를 잡기도 하고, 붕어를 잡을 수도 있다. 미꾸라지를 잡아 먹기에 적당한 때는 이들이 겨울을 나려고 살을 찌우는 가을철이다. 특히 늦가을에는 진흙 속으로 파고들어가 겨울을 날 수 있도록 포동포동 살을 찌운다. 그렇게 살을 찌워 먹기 좋은 시점이 바로 벼를 베는 무렵과 겹친다. 보통 7월부터 먹을 수 있고 11월이 끝물이다. 곧 가을이 제철인 셈이다. 그래서인지 미꾸라지를 뜻하는 한자인 자는 물고기에 가을을 뜻하는 한자를 조합해서 만들었다. 즉 미꾸라지는 바야흐로 가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물고기인 셈이다. 그건 다른 여느 물고기보다 그 무렵에 먹는 것이 제맛이기에 그럴 것이다.


논바닥에서 꿈틀꿈틀거리는 미꾸라지를 보라. 이 어찌 징그러운가, 먹음직스럽지. (사진 http://goo.gl/FYavy) 



미꾸라지를 일부러 논에서 키우지는 않았지만, 생명이 어우러지는 논에서는 당연하게 만날 수 있는 생물이었다. 논에서 일부러 물고기를 양식하는 형태의 농법도 있다. 이를 바로 '벼논양어'라고 한다. 중국의 한 소수민족은 그렇게 논에서 잉어를 양식하여 시장에 내다팔기도 하고, 자신들이 먹을 양식을 마련하기도 한다. 이에 대한 '슈퍼피쉬'라는 훌륭한 다큐멘터리가 있으니 참고하시길 바란다(http://goo.gl/QnxrV). 

한국에서도 그런 방식을 활용하여 먹고 살아왔다. 논에서 벼만 재배하여 수확해 먹은 것이 아니라, 붕어도 잡고 다슬기와 우렁이도 잡아서 국도 끓여 먹으며 살아왔다는 말이다. 그리고 그 가운데 하나가 바로 추어탕이란 말씀이다. 지금 이러한 방식을 되살려서 논에서 벼도 재배하면서 미꾸라지도 길러 농가소득도 꾀하고 논의 생태계도 건강하게 하려는 움직임이 있다(http://blog.daum.net/stonehinge/8726973). 여기는 언젠가 꼭 찾아가서 취재를 하려고 생각중인 곳이다. 그때 더 자세한 이야기를 올리도록 하겠다. 그 방식의 장점은, 벼 이외의 미꾸라지를 소득원이자 영양 공급원으로 삼을 수 있다는 점만이 아니다. 바로 논도 건강하게 만들어 벼가 농약이나 비료에 의존하지 않아도 잘 자랄 수 있게 한다는 데에 큰 장점이 있다. 미꾸라지가 다니면서 흙탕물을 일으키면 작은 풀들이 제대로 자라기 어려워진다. 또 벼에 해를 주는 작은 벌레를 잡아먹고 소화를 시켜 똥을 사면, 그 똥이 자연스레 거름이 되어 벼가 먹고 자란다. 누이 좋고 매부 좋고, 도랑 치고 가재 잡고, 일석다조의 효과가 일어나는 것이다. 참, 이들이 모기의 유충을 잡아먹어서 인간에게 병을 옮기는 것도 예방하고 줄일 수 있다는 점도 잊지 말자.


모두 먹고 살자고 하는 짓 아닌가. 미꾸라지가 참 좋은 역할을 하지만 그것도 먹어야 제맛이다. 논농사가 전국 각지에 퍼져 있는 만큼 미꾸라지를 이용한 추어탕도 지역에 따라 다양한 요리방법이 있다. 크게는 남원을 중심으로 한 전라도식, 원주를 중심으로 한 강원도식, 그리고 서울 깍쟁이들이 즐기던 서울식, 털래기라고도 부르는 경기도식, 청도 또는 대구를 중심으로 한 경상도식으로 나뉜다. 하지만 크게 나누었을 때 그렇다는 말이지, 마을마을마다 집집마다 자신들만의 요리법과 즐기는 방법이 천차만별이다. 그래서 그걸 한데 묶는 것이 잘못된 것은 아닐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잡아라, 잡아라, 미꾸라지 잡아라!


 

남원을 중심으로 한 전라도식 추어탕이 현재 한국에서 가장 대중화된 추어탕이라 할 수 있다. 그건 바로 전라도 사람들이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면서 서울로 많이 이주한 것과 깊은 연관이 있다. 떠난 사람이 많은 만큼 서울로 올라온 사람이 많고, 그들이 서울에서 남원식 추어탕을 만들어 먹으면서 가장 널리 퍼졌기 때문이다. 이 전라도식 추어탕은 들깨가 들어간 구수하고 걸쭉한 국물이 특징이다. 처음 시작은 1959년 경남 하동 출신의 서삼례 할머니가 남원의 광한루 옆에 있는 예전 육남시장 근처에서 추어탕 식당을 시작하면서 퍼졌다고 한다. 지금도 남원의 그 부근에 가면 수많은 추어탕 집이 영업을 하고 있으니 즐겨 보시길 바란다. 전라도식은 미꾸라지 육수에 된장과 다진 마늘, 생강즙을 넣고 끓인 다음 시래기와 파, 미나리, 부추, 토란대, 숙주 등을 넣은 뒤 들깨를 충분히 넣어 걸쭉하게 만들고 들기름을 넣어서 향을 더하는 것이 특징이다. 

 

경상도에서도 추어탕을 널리 즐겨 먹었다. 그런데 경상도식이 퍼지지 않은 것은 앞서 이야기했듯이 이주민이 적었기 때문이다. 지금도 경상도는 그냥 그 동네에서 살아가도 충분하지 않은가. 인구 비율에서 전라도의 몇 배나 되는 크기를 자랑할 정도로 말이다. 추어탕 요리법이 전국적으로 널리 퍼지지는 못했지만, 그게 역설적으로 그 동네가 먹고 살만했기 때문이라는 점을 보여주니 참 재밌는 역사다. 경상도식은 1950년대 초 상주 출신의 천대겸 할머니가 문을 연 대구의 상주식당과 1963년 청도의 김말두 할머니가 문을 연 의성식당이 그 시작이라고 꼽는다. 이 경상도식 추어탕은 미꾸라지를 으깨거나 미꾸라지 외에 여러 민물고기에다 된장을 풀고 우거지나 배추를 넣은 맑은 국물이 특징이다. 부산이나 경남 지역에서는 우거지나 배추말고도 토란대와 부추, 산초나 방아잎 등을 넣기도 한단다. 방아잎은 여름이 덥고 습한 경상남도에서 많이 활용하는 향신료이다. 일본에 가도 이와 비슷한 모습을 흔히 볼 수 있다. 아마 덥고 습하여 질병을 예방하거나 벌레를 쫓기 위하여 강한 향이 나는 음식을 먹는 듯하다. 동남아 사람들의 체취를 맡아 본 적이 있다면 쉽게 이해할 것이다. 참, 청도식은 미꾸라지보다 여러 민물고기를 더 많이 사용한단다. 청도는 역시 논보다는 계곡이 더 발달했기에 그럴지 모르겠다. 논이 있어도 저 큰 하천 옆에 들이 넓은 곳에 발달한 논과는 흙의 성질이 다를 것이다.


사진만 봐도 침이 꼴깍... 먹고 싶다... 청도식 추어탕...(http://goo.gl/2nqQF)



경기 북부 지방에서 발달한 경기도식 추어탕은 미꾸라지 털래기라고도 부른다. 그쪽에서는 추어탕보다 털래기라고 해야 알아듣는다는 사실을 잊지 말자. 이건 미꾸라지 매운탕의 일종으로, 무와 다시마를 우려낸 육수에 미꾸라지나 민물고기를 통째로 넣고 고추장을 풀어 끓인 다음에 여기에다 수제비나 소면을 넣어 어죽과 비슷하게 만들어 먹는다. 털래기는 여러 재료를 털어 넣고 끓여서 먹는다는 데에서 유래했다는 믿거나 말거나 하는 이야기가 있다. 

 

서론이 너무나 길었다. 사실 원주 가서 추어탕 먹고 왔다는 자랑을 하려고 글을 시작했는데 쓸데없이 주르륵 길어졌다. 이런 제길.

 

50년의 역사를 지닌 원주식 추어탕의 원조는 원주 복추어탕 집이라고 한다. 이 집의 특징은 된장 외에 묵힌 고추장을 풀어 미꾸라지의 잡내를 없애는 점이다. 거기에 강원도에서 흔하게 농사지어 구할 수 있는 감자와 미나리, 버섯, 시래기, 부추, 다진 마늘 등이 들어간다. 원래는 미꾸라지를 통채로 사용하는 것이 원주식이라는데, 손님의 기호에 따라 갈아서 내주기도 한다. 아무튼 다른 곳과 달리 '감자바우'라고 불리는 강원도라는 걸 내세우는 양 추어탕에 감자가 들어간다는 점이 매우 이채롭다. 감자가 들어간 추어탕=원주식이라고 생각해도 좋다.


밑반찬이 아주 깔끔하게 나온다. 겉절이도 맛있고, 열무김치도 일품이다. 뭐니뭐니 해도 살짝 얼은 동치미는 그 맛이 캬! 동치미 사랑해요. 엉엉. 



추어탕이 나오기 전까지 튀김을 시켜 먹었다. 아주 합리적인 점이 반 접시(6000원)만 시킬 수 있다는 것이다. 솔직히 두세 명이 가서 한 접시를 먹기에는 양이 좀 부담스러운데 이 정도 양은 별 부담없이 즐길 수 있어서 참 좋았다.


 

보이는가, 이 원주식 추어탕의 위엄이! 경배하라! 과연 된장만으로 맛을 낸 것이 아니라 고추장을 푼 모습을 빛깔로 확인할 수 있다. 그리고 버섯과 감자가 동동 떠 있는 모습을 보라. 이것이 바로 원주식 추어탕이다.



이 원주 복추어탕의 위치는 원주시 개운동에 자리하고 있다(주소 : 강원 원주시 개운동 406-13). 원주에 간다면 꼭 한번 먹어보시길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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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과 개울에 미꾸라지가 살던 그 시절엔 모기를 잡아먹기도 했겠지?

지금의 논과 농수로엔 미꾸라지가 많이 살고 있을까?




<앵커 멘트>

물이 고여있는 곳에는 모기 유충들이 번식하는데요.

살충제 보다 미꾸라지가 모기 박멸에 더 효과적이라는 연구 결과가 나왔습니다.

박광식 의학전문 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도심 속 하천에 미꾸라지를 풀어줍니다.

모기 유충을 잡기 위해섭니다. 

<인터뷰>박춘선(서울 양재동): "모기도 잘 죽고, 자연도 살리고 참 좋은 것 같습니다."

아파트 정화조에도 미꾸라지를 풀어 넣습니다.

모기가 번식하는 대표적인 곳이 바로 정화조이기 때문입니다. 

<인터뷰> 민경일(서울 서초구보건소 건강관리과): "이렇게 방제를 하고 나서 한 2~3달 후에 다시 와서 확인해보면 모기 유충 밀도가 상당히 작아진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서울대 연구팀 분석 결과 정화조에서 미꾸라지 한 마리가 하루 동안 모기 유충 천백 마리를 잡아먹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또 살충제의 경우 초반 효과는 탁월하지만, 나중에는 약성분이 희석돼 평균 27~75% 모기 유충을 제거했지만, 미꾸라지는 평균 81~100% 방제효과를 보였습니다. 

<인터뷰>안용준(서울대 응용곤충학과 교수): "미꾸라지가 아가미 호흡하고 장 호흡을 하기 때문에 실제로 정화조에서도, 특히 폭기식 정화조에서는 100%, 20일 이상 생존이 가능하였습니다."

따라서 1차적으로 살충제를 살포해 모기 숫자를 크게 줄이고, 2차적으로 미꾸라지를 방사해 모기 방제효과를 극대화시킬 수 있단 이야깁니다. 

게다가 미꾸라지가 살충제의 3분의 1 수준으로 비용도 저렴해 친환경적이면서도 경제성까지 갖췄다는 평갑니다.

KBS 뉴스 박광식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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