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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 쇼유 라멘



일본이 2차대전에서 항복했을 때 폐허가 되었다. 미국의 폭격으로 200만 채의 건물이 파괴되거나 부수어지며 굶주린 일본인들은 식량을 점점 암시장에 의존하게 되었다. 이러한 거대한 도시의 암시장에서 라멘은 일본 요리의 중요한 부분으로 떠올랐다.  

Japan Quarterly에 의하면 라멘은 중국 이민자들이 19세기 들어 일본에 처음으로 소개했는데, 원래는 중국식으로 구운 돼지고기를 얹은 국수였다. 1945년 12월, 일본은 42년 만에 최악의 벼 수확량을 기록했다. 조선(원문엔 중국인데, 중국은 일본의 식량생산기지의 역할을 한 적이 없기에 글쓴이의 오류라 생각하여 조선으로 고쳤음)과 타이완의 전시 식민지에서 발생한 농업 손실로 인해 쌀 생산량이 급감했다. 이는 일본의 쌀에 기반한 식문화에서 밀 국수가 중요해진 요인이었다.

전쟁에서 일본이 패전한 뒤, 미군은 1945-1952년까지 이곳을 점령했따. 식량난에 직면하여 미국인들은 엄청난 양의 밀을 일본으로 수입하기 시작했다. 1948-1951년까지 일본에서 빵 소비는 26만2121톤에서 61만1784톤으로 증가했다. 그런데 밀은 대부분의 일본인이 암거래 음식 노점상에게서 먹었던 라멘으로 흘러갔다. 일본에서 암시장은 전쟁통에 존재해 왔다. 그러나 전쟁의 마지막 몇 년 동안과 점령 기간 동안 점차 매우 중요해졌다. 정부의 식량배급 체계가 예정보다 20일 늦게 운영되면서 많은 사람들이 생존을 위해 암시장에 의존했다. 


도쿄 신바시의 암시장, 1946년


1945년 10월까지, 도쿄에는 약 4만5천 개의 암시장 매대가 존재했다고 추산된다. 또한 도쿄는일본에서 가장 유명한 암시장인 아메요코쵸Ameyokocho가 있는 곳이기도 했다. 도시 중심의 철로 아래에 위치한 이곳은 사탕부터 라멘과 옷까지 모든 걸 파는 노천의 진열대로 가득 찼다. 이런번잡한 환경에서 노점상은 특유의 차르멜라라는 피리 소리로 자신의 존재를 알리며, 국물과 물을 끓이는 냄비와 함께 국수가 담긴 서랍을 지닌 바퀴 달린 음식 카트인 야타이에서 라멘을 팔았다. 미국산 밀과 돼지기름이 풍부하여 가격도 저렴했다. 

그 당시, 점령 기간 동안 식당에서 음식을 사고파는 건 불법이었다. 이는 배급을 통제하려고 일본 정부가 전시에 시행하던 야외의 음식 노점 금지를 미국인들이 계속 유지했기 때문이다. 그래서 라멘을 만드는 밀가루는 제분업체에서부터  노점상에게서 보호비를 강탈하던 야쿠자가 길거리 매대의 약 90%를 통제하던 암시장으로 비밀리에 보내졌다. 점령 기간 동안 수천 명의 라멘 노점상이 체포되었다. 


상품을 몰수하는 경찰, 1949년.


하지만 1950년, 정부는 음식 노점상에 대한 규제를 완화하고 밀가루의 거래에 대한 통제를 없애기 시작했고, 이로 인해 라멘 노점의 수는 더욱 증가했다. 기업들은 국수와 고명, 그릇, 젓가락까지 갖추어진 야타이 완점품을 노점상에게 임대하기까지 했다.  

오늘날 팔리고 있는 수많은 종류의 라멘과 달리, 당시의 라면은 간단했다. 뉴욕 브루클린에 있는 오사카나Osakana에서 라멘 요리를 강습하는 Jonathan Garcia에 의하면, 이 시기에 라멘은 쇼유(간장)에 기반한 국물에 돼지고기, 닭고기, 니보시niboshi (말린 정어리)를 조합하여 만들었다.  양념을 하는 건 국물 냄비에 섞었고, 노점상은 하루종일 그걸 보충했다. 요즘 라멘은 국물을 붓기 전에 쇼유나 다른 재료와 함께 개별적으로 양념을 한다. 

지방과 강한 풍미가 풍부한 음식은 “보양식”으로 알려지게 되었다고 <라멘에 대한 알려지지 않은 역사(Untold History of Ramen)>의 저자인 교수 George Solt 씨는 말한다. 라멘은 전통적인 일본 요리인 해초에 기반한 자극적이지 않은 국수 국물과 아주 달랐다.  코베 야마테 대학에서 일본의 전통 식문화 교수이자 일본 음식에 대한 글을 쓰는 오쿠무라 아야오Okumura Ayao 씨는 예전 1953년 처음으로 라면을 먹고 충격을 받았는데,  “이 국물을 먹고는 더 커지고 강해지는 것 같았다”고 회상한다.


일본 후쿠오카에서 라면을 파는 야타이


미국인들도 밀과 동물성 단백질의 영양학적 우수성을 적극 홍보했고, 라멘은 영양가가 높다는 신망을 얻으며, 배급에 지친 사람들에게 환영을 받았다. 그리고 불경기에 라멘 야타이를 운영하는 일은 소규모 창업이 아직 가능했던 몇 안 되는 기회 가운데 하나였다. 폭격을 당한 도시에서 노동자 계급이 야타이 주변에 모여 라멘을 먹으면서, 점차 라멘은 도시의 생활과 연관이 되었다. 

라멘은 아마 오늘날 일본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식일 것이다. 도쿄에만 약 5천 곳의 라멘 가게가 있다. 그러나 경제적 필요성, 미국의 밀, 중국 요리의 영향이란 과거의 조합이 라멘을 주류로 나아가게 했으며, 이후 일본이 먹는 방식을 영원히 바꾸어 놓았다. 


https://www.atlasobscura.com/articles/how-did-ramen-become-popula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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돼지값 폭락에도 1월의 수입량이 12월 대비 35%가 늘어났다. http://t.co/Dx7MuSGss4

 

그 이유는 수입 돼지고기가 엄청 싸졌기 때문이다.

그것은 미국산 돼지고기에서 성장촉진제가 기준치 이상으로 검출되는 바람에 러시아에서 수입을 금지하며 미국산 돼지고기 가격이 폭락한 것. http://www.foodsafetynews.com/2013/02/russia-to-ban-u-s-meat-over-ractopamine-residues-this-month/

 

이때를 기회로 옳다구나 수입업자들은 수입량을 35%나 늘린 것이다.

 

정부는 이를 적절히 통제해야 하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다. 왜냐, 한미 FTA 때 체결한 돼지고기 긴급수입제한조치(세이프가드)가 8700여 톤으로 이미 그 양을 초과해 수입했지만 이건 냉장육에만 해당한다는 사실. 한국은 미국산 냉동육만 수입한다는 점.

 

정말 웃프지 않은가?

 

*이상 "손석희의 시선집중"에 나온 이야기로 트위터 아이디 @sandul88 님이 올린 트윗을 기반으로 재구성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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