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방글라데시의 산간 지역에서 밭벼 농사를 짓는 농민들. 수확에 한창이다. 낫으로 벼를 베어 머리로 고정시킨 바구니에 휙 뒤로 던져 넣는 모습이 인상적이다. 


그렇게 수확한 벼 등의 곡식은 절구질을 하여 껍질을 제거하고 먹는다. 나무 절구와 공이 등이 예전 한국에서도 쓰던 것과 비슷하다. 



다음은 인도의 벼농사 모습이다. 못자리에서 여성들이 모를 찌고, 남성은 겨리질로 논을 써리고 있다. 써레 같은 것도 한국에서 예전에 쓰던 것과 흡사하다. 논농사 모습은 어디나 비슷한 것일까? 아니, 농사짓는 모습은 어디나 비슷한 것일지도.



족답식 탈곡기를 이용해 벼의 낟알을 떠는 모습. 저 탈곡기는 안 쓰이는 곳이 없는가? 한국에서도 과거 엄청나게 사용하던 것이다 .




무언가를 심고 있는 모습인데 무언지 모르겠다. 골을 타서 거기에다 심는다. 대파 같은 것일까? 저런 자갈밭에 무얼 하는 것인지 가서 물어보고 싶다.




연출된 사진이라는 티가 많이 나지만, 못자리와 거기에서 모를 찌고 있는 여성들의 모습에서 볼 바가 많다. 한 여성은 대야를 뒤집어 의자 대신 사용하고 있다. 못자리의 규모로 보아 본논이 엄청나게 큰 것 같다. 




역시 아시아는 벼농사가 주를 이룬다. 모내기하는 모습이 너무나 인상적이다. 일렬로 늘어서 못줄 등과 같은 걸 이용해 모를 내는 것이 아니라 아무렇게나 서서 막모를 내고 있다. 예전 조선의 모내기가 이와 비슷했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새로 정비한 논두렁이며, 모내기를 마친논과 이제 모내기를 하려고 모를 던져 놓은 논, 그리고 아직 못자리가 남아 있는 논이 모두 흥미롭다. 이 날은 아마 비가 오는 날인가 보다. 파란색 옷은 그래서 우비인 것 같다. 한 사람은 우비가 없어 그냥 우산을 쓰고 일하고 있다.






필리핀의 물소. 코를 꿴 모습이며 멍에 등이 한국의 일소와 닮았다. 



미나리인지 고수인지를 옮기고 있는 필리핀의 농부.






인도네시아의 모내기 모습. 길다란 다 자란 모를 심는 것과 못줄을 띄우지 않고 대나무(간격을 표시했는지는 모르겠다)를 이용해 모내기하는것이 눈에 들어온다. 한 그루에 포기 수는 3포기 안팎인 듯하다. 이런 방식도 모두 한국의 예전 농사와 닮았다.



티모르. 무슨 일을 하는지 정확히 모르겠다. 갈아놓은 논에서 줄을 띄우고 있는 것 같긴 하다. 





베트남. 물소에 올라탄 아이가 보인다. 어릴 적 시골에서 저러고 놀기도 했는데...




곡물을 옮기고 있는 베트남의 농부.



베트남 북부의 농민 같다. 써레로 밭의 흙을 고르게 펴는 모습이다. 아이들도 괭이를 들고 돕겠다고 나섰는가 보다.





옥수수를 선별하는 미얀마의 농민.







중국의 농부가 닭들에게 모이를 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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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팔의 벼농사 모습을 보자.


먼저 지난해 잘 갈무리해 놓은 볍씨를 꺼내 못자리를 만든다.





못자리에서 모가 어느 정도 크면 물을 떼서 말린 뒤 모내기를 위해 모를 찐다.

적당한 크기로 모를 쪄서 단을 묶어 놓으면 됨. 

그런데 이게 보통 일이 아니다. 뿌리가 쫙 흙을 붙들고 있어서 잘 안 떨어진다는 것이 힘듦.

바랭이나 피 같은 풀을 뽑는 것과 마찬가지라고 보면 된다.






모를 쪄서 단으로 묶어 놓으면 그걸 모내기하는 논으로 나른다. 

논 여기저기에 적당한 간격으로 던져 놓음. 그것은 모내기 할 때 동선을 최대한 줄이기 위해서이다.





모내기를 하기 전에는 이렇게 논에 거름도 좀 내다가 펼치고...





논도 쟁기질로 갈아엎은 뒤 물을 담아 잘 나라시(물이 한쪽으로 쏠리지 않도록 바닥을 고르게 만드는 일) 해야 한다. 

일제강점기에 나라시라는 말이 널리 퍼져서 아직도 쓰는 분들이 많다. 나부터라도 안 써야지.

네팔의 이 지역에서는 겨리 써레로 바닥을 고르게 써린다.





그러고 나면 모내기에 들어간다. 

논 옆에 있는 소쿠리에 쪄 놓은 못단을 담아서 옮겼나 보다.





조선에 들어온 일본인들이 본 조선의 모내기도 이러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못줄을 잡고 모내기하는 걸 옛날 방식의 농사로 생각하지만, 사실 그렇지 않다.

못줄을 이용한 줄모 내는 방식은 일제강점기 근대 농업이 들어오면서 퍼진 농법이다.

예전에는 못줄을 띄우지 않고 막모라는 걸 냈다.

그건 오로지 경험이 많은 농부의 감에 의존하는 농법이다.

어찌 보면 규격화되지 않은 낙후된 농법이라 할 수도 있고, 어찌 보면 아주 효율적인 농법이라 할 수 있다.

전적으로 모를 내는 사람의 연륜과 경험, 기술에 의존하기에 그렇다. 사람이 뛰어나면 뛰어날수록 더 좋은 성과를 낸다는 말이다.

근대 농법은 사람보다 체계와 규격 등이 더 중요해진다. 체계와 규격에 맞추어 교본대로 농사를 짓기만 하면 된다. 더하고 말고도 없다. 딱 그대로 따르면 예상했던 만큼의 결과가 나온다.

근대 기술이란 것이 모두 그렇지 않은가.





벼를 수확해서 마당에서 잘 말린다. 

벼의 건조 과정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밥맛이 달라진다.

일본의 밥맛이 좋은 이유는 이걸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최고의 밥맛을 내는 조건을 잘 맞추기 때문이다.





잘 말린 벼는 방아를 찧어 쌀로 만든다.

거기에서 검불과 싸라기 등을 분리해 내야 하는데...





이렇게 키질을 하면 된다.

보기에는 간단해도 막상 해보면 정말 어려운 기술이다.

채소 농사는 심어서 재배하는 과정이 어렵다. 수확해서 먹는 과정은 정말 간단하다.

반대로 곡식 농사는 심어서 재배하는 과정이 쉽다. 하지만 수확해서 먹는 과정이 정말 까다롭다.





마지막으로 오이밭에서 참을 준비하는 모습.

이것은! 한국의 토종 오이랑 똑같다. 네팔의 오이도 조선오이와 같은 계통이었어.

마운틴 듀가 인상적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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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공부모임에서 잠깐 이야기가 나왔던 모를 찌는 모습입니다.

이 사진은 1968년 5월 닐 마샬로프라는 주한미군이 안양 인근에서 찍은 것이라고 합니다.

그 당시만 해도 기계보다는 손모내기가 주요 방법이여서 모가 지금보다 훨씬 큽니다.

적어도 40~50cm는 되어 보이네요. 요즘은 이렇게 길게 키우면 기계에 걸리기 때문에 더 어릴 때 옮겨 심습니다. 왜 아이도 이사 다니면 적응하기까지 몸살을 좀 앓듯이 모도 그러지 않을까 합니다.

 

 

못자리도 지금은 그냥 모판에 씨를 붓고 비닐로 터널을 만들어 키우는 반면, 이때만 해도 그냥 못자리논에다 바로 키웠습니다. 그래서 모를 쪄야 할 필요가 생기는 것이지요.

모를 쪄서는 모내기할 때 들기 쉬운 만큼의 분량씩 볏짚으로 묶어 놓습니다.

그럼 아래 사진에 있는 지게에다 이걸 실어서 본논에 옮기면 됩니다. 

 

이 사진을 통해 1968년까지만 해도, 그것도 서울 인근인 안양에서도 아직 논에다 못자리를 만들고, 모를 찌고, 손모내기를 했다는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참 귀한 사진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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