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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동광대장간 : 02-966-1114       서울특별시 동대문구 전농2동 99-1 

불광대장간 : 02-353-8543, 016-9211-8543     서울특별시 은평구 대조동 80-7  박경원 

동명대장간 : 02-487-3559    서울특별시 강동구 천호동 556-5

형제대장간 : 02-304-7156

충남공작소   02-2235-3107   서울특별시 중구 신당동 233-37 

광주대장간 : 02-2618-5155    서울특별시 구로구 고척1동 72-29    

 

 

 

 

경기도

동래 대장간 : 031-245-9894       정대봉   수원시 남문 지동시장 입구, 개천 왼쪽 100미터 거리 

드림종합상사 대장간  032-567-4509     김포시 양촌면 학운리 448-326  

화성대장간  :  019-294-3980                 용인시 처인구 양지면 송문리 480-2

해남대장간  :  031-527-3439                 남양주시 진접읍 내곡리 246-5

우전철물대장간  : 031-673-3254            안성시 성남동 203-15

수산대장간: 031-494-8118  경기 시흥시 도일로 117

명일대장간철공소: 031-241-8517  경기 수원시 팔달구 수원천로 213

안성대장간: 안성시 가현동

민속촌 대장간: 용인시 기흥구 보라동 94-2  

소사대장간: 경기 부천시 경인로 293

신시철물대장간: 이천시 장호원읍 서동대로8975번길 43-13

전통대장간: 안성시 장기로 24

충남대장간: 구리시 딸기원로8번길 56

광흥대장간: 광주시 역동로16

충북대장간: 031-752-7352   경기 성남시 수정구 산성대로 69번길 2 

 

 

 

 

강원도

둔내 늘봄대장간 : 033-342-1263  횡성군 둔내면 둔방내리 586 

양양대장간철물 :  033-673-3343   강원도 양양군 양양읍 성내리 77

형제대장간 : 033-745-2718   강원도 원주시 중앙동 42

흥전대장간 : 033-541-9321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 흥전리 63

근덕대장간 : 033-573-3751  강원도 삼척시 근덕면 광태리 102-1

평창대장간(대장철공소) : 033-332-3191   강원도 평창군 평창읍 하리 55-11

신흥대장간 : 033-434-4107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희망리 370-61

일품철물대장간 : 033-742-0222   강원도 원주시 중앙동 36-1

임계대장간 : 033-562-6426   강원도 정선군 임계면 송계리 633-25

대성대장간 : 033-433-1617   강원도 홍천군 홍천읍 진리 29-5

 

 

 

 

충청북도

증평대장간 : 043-836-4501   충청북도 증평군 증평읍 중동리 85-17 최용진

보은대장간: 043-544-1400 충북 보은군 보은읍 죽전리 227-8

남다리대장간: 043-542-1084 충북 보은군

삼화대장간: 충북 충주 무학1길 24

 

 

 

 

충청남도

허창구 대장간 : 041-545-6075  아산시 온양1동 16-28

홍성대장간 : 041-632-3272   충청남도 홍성군 홍성읍 대교리 386-2

예당철공(대장간) : 041-335-7306  충청남도 예산군 예산읍 예산리 329-19

대한대장간: 042-284-9284  대전 동구 원동 107-55

용신대장간: 대전 동구 인동 43-2 이호일

한밭대장간: 대전 유성구 용계동 산47-8 

연산대장간: 논산시 연산면 연산리 399-3

아성대장간: 서천군 한산면 충절로1173번길 21-1

대휘철공소대장간: 서산시 율지9로 8

오송대장간: 연기군 서면 월하리

 

 

 

 

전라북도

한일민속대장간 : 063-283-6231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서완산동2가 128-4

광명대장간:  063-284-3913   전주시 완산구 서완산동2가 126-1     

이리대장간 : 063-852-7531   전라북도 익산시 평화동 111-1

송기대장간 : 063-263-4040   전라북도 완주군 고산면 읍내리 572-3

정읍대장간 : 063-537-0605   전라북도 정읍시 시기동 409

남원대장간: 남원시 주천면 송치리 변재선

태성대장간: 남원시 금지면 요천로 406-1

우리대장간: 무주군 무주읍 장터로2

장수대장간: 장수군 장수읍 오일장

 

 

 

 

전라남도

진남대장간 : 061-642-7333   전라남도 여수시 광무동 918-8

신광철공소: 광주 광산구 송정동 5일장 인근 

신월대장간철물: 장흥군 장흥읍 토요시장1길 49  

구례대장간: 구례읍 오일장

 

 

 

 

경상북도

정일대장간철물 : 054-748-6108

월성 대장간 : 경북 영천시 054-334-4568  

영주대장간 :  054-631-5754 경북 영주시 구성로 197

영천대장간: 대구 중구 태평로89

남경대장간: 대구 중구 태평로 103

 

 

 

 

경상남도

대장간: 055-584-1129  경상남도 함안군 가야읍 말산리 470-2

삼거리대장간 : 055-742-0748 경상남도 진주시 옥봉동 759

삼성공작소: 이평갑선생 통영  강구안 문화마당 건너편 뒤 골목 안쪽 시민탕 인근

언양대장간: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남부리 124-2

울산성남대장간: 울산 울주군 언양읍 남부리

신광대장간: 부산광역시 부산진구 전포동

꼴통대장간: 부산 사상구 감전동 949-11

고령대장간: 고령군 대가야읍 시장3길 29

건천대장간: 경주시 건천읍 건천시장1길 12-10

월성대장간: 영천시 강남길 44-1

서부시장 대장간: 진주 서부시장

 

 

 

 

제주도

원일대장간 : 010-2714-0400, 자택 : 064-742-0440 한림읍 한림오일장

거로민속대장간: 제주시 화북이동 3090-1

제주전통대장간: 제주시 서사로185-1  064-753-0371 / 010-3639-43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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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르고 벼렸던 대장간에 다녀왔다.

철물점의 농기구는 어딘지 모르게 허약하다. 이 경우에는 싼 게 비지떡이 딱 맞다.

대장간에는 무엇이 있을까? 전주 지역의 대장간을 찾아갔다.


공교롭게도 두 대장간이 나란히 붙어 있어서 한번에 구경할 수 있어 좋았다.


먼저 한일민속대장간.


이곳의 대장장이는 할아버지였다.


국가에서 인정받은 자격증도 있었다. 어르신 말로는 본인이 40년 넘게 이 일을 하셨다고 한다.





이것저것 구경하다가 조선낫과 호미를 한 자루 샀다. 둘을 합쳐 8천원. 싸기도 엄청 싸다.



다들 차에 이렇게 낫 한 자루씩은 가지고 다니는 것 아닌가?




바로 옆에 있는 용머리고개 대장간도 들렀다.


이곳의 대장장이는 젊다! 물어보니 가업을 이어받으셨다고 한다. 

"가업 아니면 이런 일 할 사람 없어요."라고 하시는데 씁쓸했다. 내 입장에서는 참 중요하고 필요한 일인데 이것이 모두 사라질지도 모른다니... 모두 똑같이 생긴 공장제 호미와 낫을 들고 일해야 하다니...



젊은 분이라 그런지 인테리어도, 제품도 새로운 것이 많이 보인다. 젊은 감각이 돋보인다.




또 충동구매를 해버리고 말았다. 작은 조선낫과 호미 한 자루. 두 개를 합쳐 7천원.


어딘가 쓸데가 있겠지?



전주에 오니 대장간도 많고 좋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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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지고 있는 직업 대장장이. 

농기구를 사려고 철물점이라도 가면 값싼 중국산 호미와 낫이 차고 넘친다.

좋은 농기구를 구하고자 지방의 장터에 아직 남아 있는 대장간을 찾아가도 썩 마음에 드는 농기구를 만나기란 어렵다.


10년 전쯤인가, 농사짓는 사람들과 함께 일본으로 유람을 간 적이 있다.

모두들 일본 농기구에 뿅가서 몇 개씩 사들고 돌아온 기억이 난다.

그때 사온 농기구는 특별히 벼르는 일이 없어도 아무 문제 없이 그대로 사용하고 있다.

그저 일본의 쇠를 다루는 기술과 그걸로 벌어먹고 살 수 있는 환경이 부러울 뿐이다.


아래 글을 보면 일본 대장간의 사정도 그리 녹록치 않다는 것을 엿볼 수 있다.

그래도 이런 규모의 대장간이 지금까지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는 사실이 부러울 뿐이다.

눈을 씻고 찾아봐라. 한국에서 이런 곳을 찾을 수 있는지... 없다는 데에 500원 건다!


아무튼 글 말미에 나오는 후쿠시마 사고 이후 농사짓는 사람들이 늘었다는 이야기는 참으로 흥미롭다.

역시 사람은 바닥을 쳐야 뭔가 변화가 일어나는 것 같다.

한국도 2008년 광우병 사태 이후 도시농업에 대한 관심과 참여가 확 높아진 기억이 난다.

또 다른 전환점이 다가오겠지. 그날이 오든 안 오든 난 오늘도 씨앗을 뿌리고 가꿀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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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장장이 사토시 아이다 씨의 사무실 벽에 걸려 있는 수많은 일본식 낫과 괭이 등으로부터 이 사람이 범상치 않다는 걸 알 수 있다. 


철제 날 괭이의 나무 손잡이를 들고 그는 “이게 보여요? 이건 야마나시현에서 포도나무의 껍질을 긁는 데 쓰려고 만든 겁니다. 옆에 있는 삼지창은 치바현의 땅콩 재배 농민을 위해 만든 것이고요. 그리고 저기 있는 길고 얇은 날의 농기구는 초봄에 교토에서 죽순을 캐는 데 쓰는 겁니다.” 아이다 씨의 말에 따르면, 일본에는 특정한 목적과 지역, 토양, 계절에 따라 사용하는 약 1만 가지의 농기구가 있다. 


51세의 아이다 씨는 푸른 산의 다락논에서 고품질 쌀을 생산하는 것으로 유명한 일본 니가타현 산조시에 있는 소규모 농기구 대장간인 아이다 합동공장의 대표이다. 이 마을은 17세기 이후부터 대장장이들의 공동체로 유명했는데, 지금도 부엌칼부터 분재가위까지 전문적으로 작은 금속을 가공하는 사업의 중심지이다. 오래된 목조건물에 있는 이 공장은 1930년 타다오 아이다 씨의 할머니의 시숙이 되는 사람이 설립했다. 이곳에서는 매년 14만 가지의 농기구와 부품 등을 손으로 제조한다.



모종삽... 그저 아름답다고밖에...



삼지창... 이걸로 땅콩을 캔다고 함. 좋은 농기구를 보면 욕심이 나서 시골 장터에 갈 때마다 대장간을 들르지만, 이런 건 품질은 결코 보지 못했다. 부럽다.



손낫... 이런 거 하나 정말, 꼭 갖고 싶다.



바깥의 조용한 골목을 지나 들어서니, 공장보단 농가처럼 보이는 작업장이 나타난다. 1층짜리 농촌의 민가 양식(전통적으로 농민들이 거주하던 형태)의 기와지붕을 인 높은 천장을 지닌 60평 규모의 이 건물은 약 70년 전에 지어졌다. 작업장 안은 재료와 기계로 정신이 없었다. 


대장간의 일꾼들 —귀마개와 고글을 끼고, 이마에는 땀을 닦는 수건을 묶었다— 은 부지런히 타고 있는 석탄 위에 금속을 녹였다. 40년 된 빛이 바랜 회녹색 기계들, 먼지 낀 시계, 어울리지 않는 의자와 주문을 가득 적어 놓은 칠판이 70년 된 농기구 제조 작업장을 대변하고 있다.


꼼꼼함과 정밀함에 전통 공예를 융합하여, 17명의 직원 —20세부터 77세까지— 이 4천 종의 다양한 농기구를 생산한다. 각각의 농기구는 일본열도의 산악 지형부터 토양, 기후, 작물의 종류에 따라 알맞게 만들어진다. 그들의 모든 작업을 잘 보여주는 것은 약 3500가지의 괭이이다. 봄철 죽순을 캐는 데 쓰는 괭이부터, 남성용 전통의상의 외투인 톰비와 비슷하게 생겨 그 이름으로 불리는 가벼운 종류의 괭이까지 다양하다.


각 농기구는 단순하고 기능적이다. 일본의 나무 손잡이는 카시라 불리는 떡갈나무로 만들어진다. 날카로운 날의 강철과 쇠날은 왜 그 옛날 닌자들이 농기구로 치명적인 무기를 만들었는지 이해할 수 있게 한다. 


일꾼들은 우뚝 솟은 기계로 가득 찬 비좁은 방에서 가장 중요한 작업이 이루어지는 좀 더 넓은 옆방으로 이동하기 전 농기구의 형판을 자르면서 일을 시작한다. 여기에서 그들은 집게로 뜨거운 석탄 위에 있던 금속을 집어 커다랗고 시끄러운 자동 망치 기계에 두들겨 멋지게 농기구를 만든다. 


옆방은 더 조용하다. 여기에서 일꾼들은 나무의자에 등을 구부리고 앉아 금속을 연마하여 날카롭게 날을 간다. 마지막으로 미리 구입한 나무 손잡이에 농기구를 끼운다. 


이러한 농기구는 평생 쓴다. 공장에서는 해마다 수천 개의 농기구를 수선하기도 한다.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 이후 수요가 줄긴 했지만, 새로이 젊은 농부들이 농기구를 찾기 시작했다.



총 17명의 직원 가운데 쇠를 연마하는 3명의 직원.



공장의 설립자이자 현재 사장인 사토시 아이다 씨의 삼촌 타다오 아이다 씨. 




“농기구는 오래 사용할수록 주인의 몸에 맞게 길듭니다”라고 금융 판매원을 하다가 28세부터 이 사업을 시작한 아이다 씨가 설명한다. 


아이다 씨가 채소농사용 괭이를 집어들어 날을 살피자, 그의 근육질 팔뚝이 20년 넘는 대장간 일로 잔뼈가 굵은 그의 경력을 알 수 있게 한다. 


“농기구 만드는 일은 쉽지 않아요”라고 그는 말한다. “연륜과 체력과 기술이 필요해요. 농기구 만드는 법을 배우는 데에 10년 정도 걸리죠.”


최근 공장에서는 새로 작은 공간을 마련하려고 한다. 여기에는 경제적, 사회적 요구의 변화를 반영해 제품을 다각화하여 정원용 도구를 제조하는 기계를 들일 것이다. 급속한 고령화로 농민 인구가 꾸준히 감소하는 한편, 대량으로 생산된 중국산 제품과 경쟁해야 한다. 


거기에다 2011년 후쿠시마 핵발전소 사고가 발생하며 농민들의 수요가 급락했다. 한때 농산물로 유명했던 일본 북동부 현의 생산 —과 그에 대한 수요— 가 방사능 오염에 대한 공포로 확 떨어졌다.



공장 입구. 상호는 아이다 합동공장.



타다오 씨의 부인 에미코 아이다 씨.



사무실에 전시되어 있는 괭이, 낫, 쇠스랑 등의 모습.




그러나 재해의 여파 속에서 새로운 유형의 농부가 나타났다. 아이다 씨는 방치된 농지를 개간하여 직접 농사짓는 일본의 젊은이들의 농기구에 대한 요청이 늘어나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사람들의 사고방식이 핵발전소 사고 이후 바뀌었어요” 그는 말한다. “식품안전에 대해 엄청 신경을 쓰고 있죠. 사람들은 안전한 과일과 채소, 쌀을 먹고자 해서 스스로 자기 먹을거리를 재배하기 시작했어요.”


현재 20살짜리 조카에게 대장 기술을 가르치고 있는 아이다 씨는 “무슨 일이 있더라도 사람은 늘 먹어야 살 수 있을 겁니다. 농기구는 사라지지 않을 거예요”라고 덧붙인다.




http://modernfarmer.com/2013/09/pitchfork-perfect/?utm_source=rss&utm_medium=rss&utm_campaign=pitchfork-perfec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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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져 간 명물

대장간 경운기 콤바인 등 기계화 영농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절, 우리사회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대장간, 그 속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쇠를 치던 대장장이, 이제는 모두가 떠나 갔지만 그때 그 대장간은 아직도 우리의 가슴에 남아 아련한 추억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이른 봄, 먼동이 틀 무렵이면 어김없이 들리던 소리가 있었다. 「타당탕 타당탕, 때로는 탕탕 탕......」, 대장장이가 불에 달구어진 쇠를 모루(쇠를 올려놓고 두드릴 때 받침대 역할을 하는 쇳덩이)에 놓고 망치로 두들겨 호미, 낫, 괭이, 쇠스랑 등의 농기구나 문고리, 칼, 돌쩌귀, 편자(말 발굽에 붙이는 쇠) 등 각종 생활도구를 만들던 소리였다. 농사철이 가까워지는 2∼3월이면 대장간의 일손은 더욱 바빳다.

대장장이의 기술은 쇠를 달구고 망치질과 담금질로 무쇠나 고철에 생명을 불어 넣는 일, 그들은 기구의 쓰임새에 따라 열처리 방식도 달리하고 쇠의 강도를 조절하는 담금질(쇠를 달구었다가 찬물에 넣는 것)도 달리했다. 하지만 온도조절이나 쇠의 강도나 굵기를 재기는커녕, 눈대중 하나로 쇠를 달구고 또한 뒤집고 깎아내고 망치질과 담금질을 대충대충 해 내도 누구나 주문한 기구는 어김 없이 탄생, 대장장이의 기술은 과히 달인에 가까웠다. 우리지역 조상들은 대장간에서 농기구 등을 새롭게 만드는 작업을 성양한다고 했는데 이는 모양새를 새로 갖춘다는 뜻의 성양(成樣)으로 표현했음직하다.

대장간

1960년대만 해도 시골지역 웬만한 마을마다 한 곳 정도 있을 만큼 쉽게 눈에 띄던 대장간. 이곳에 없어서는 안될 것이 풀무(bellows)였다. 화덕에 공기를 분사시키는 역활을 담당했던 풀무는 가장자리가 쉽게 휘도록 돼 있었고 경첩으로 연결된 상자를 통해 안쪽으로 공기를 팽창시키면 밸브를 통해 공기가 화덕으로 유출, 연료가 불에 잘 타도록 했다. 당시 쇠를 녹이던 연료는 대부분 나무였기에 풀무질은 필수쉼없는 풀무질에 쇠도 녹고 애환도 녹였고 농기구를 성양하러 온 사람은 풀무질을 담당, 쉬엄쉬엄 풀무채를 밀고 당기면 어느새 시우쇠(무쇠를 불려서 만든 쇠붙이의 하나)는 선홍색으로 달아 올르며 화덕속의 쇠도 녹고 가슴속의 애환도 녹았다.

풀무는 중세시대 처음 발명, 다양하게 개발돼 대장간이나 제철소의 용철로(熔鐵爐)외 연소 속도를 증가시키는데 사용됐고 리드오르간이나 파이프오르간에도 사용됐다. 대장간에는 가장 단순한 형태인 직사각형 수동 풀무가 사용됐는데 이는 1980년대 중반, 전동모터가 생겨나며 대부분 자취를 감추기 시작, 이제는 그 어디서도 풀무의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대장간이 불야성을 이룬 것은 지난 1960∼1970년대, 건설업계가 호황을 누릴 때 기초공사에 필요한 철근 구조물이나 각종 기구 등을 생산했다. 특히 이때 대장장이는 쉬지 않고 쇠를 두드리면 동네 아이들은 쇳밥을 줍기위해 이곳으로 몰렸다. 쇳밥을 줏어 모아 엿장수에게 갖다 주면 달콤한 엿을 쥐어주기 때문이었다.

대장간 2

쇳밥의 큰 조각은 다시 녹여 쓰이지만 맛있는 엿에만 눈이 먼 아이들은 대장장이의 눈길을 피해 슬쩍 슬쩍 하나 둘 쇳밥을 슬쩍 훔쳐 냈다. 그러나 채 식지도 않은 쇳밥을 줏다가 손을 데이기도 일쑤, 그것은 붉은 쇠가 혓바닥을 날름거리던 대장간의 진풍경이었다. 새벽부터 화덕에 불을 지피고 식사를 거르면서도 하루해가 모자라 밤에는 호롱불로 성양하던 대장장이, 그들은 돈벌이의 목적 보다는 농사철 이전에 농민들의 기구를 고쳐야 한다는 의무감과 그 기구가 농민들의 만족을 얻어내야 한다는 장인(匠人) 정신에 비지땀의 고달픔도 인내 속에 묻고 살았다.

그러나 이 대장간은 지난 80년대 농기구의 급속한 발달, 각종 주물(鑄物)을 생산하는 공장 건립 등에 따라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 현재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우리 곁에서 사라져 버렸다. 경운기 콤바인 등 기계화 영농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절, 우리사회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대장간, 그 속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쇠를 치던 대장장이, 그 곁에서 풀무질에 여념 없던 시골의 할아버지, 슬금슬금 눈치 보며 쇳밥 줍기에 정신 없던 개구장이들, 이제는 모두가 떠나 갔지만 그때 그 대장간은 아직도 우리의 가슴에 남아 아련한 추억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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