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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기후변화로 인하여 모든 것이 뒤죽박죽이 되어가고 있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봄꽃들은 순서를 잃고 한꺼번에 폭발하듯 피어나고, 달력을 보면 아직 봄인데 여름이 성큼 찾아오지를 않나, 겨울에 봄이 된 것 같은 날씨가 되기도 한다.

이에 따라 가장 혼란을 겪고 있는 것은 아무래도 자연 속에서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농사이리라. 아무리 첨단과학의 시대가 되어 시설하우스 안에서 자연과 격리되어 완벽하게 인공적으로 통제되는 농사가 시작되었다 해도 농사는, 흙에서 자라는 작물들은 자연의 영향을 가장 크게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이런 마당에 언제까지 달력만 쳐다보면서 농사일의 시종과 선후를 정할 수만은 없는 노릇이다. 옛사람들도 그러한 고민을 했던 것인지, 아니면 지금처럼 달력과 일기예보가 보편화되지 않았던 탓인지 우리와는 사뭇 다른 방법으로 농사일의 시기를 조절했다. 그것이 바로 풀 달력이다.

자연에서 자라는 풀과 나무들이야말로 자연의 변화에 가장 민감한 존재들이다. 그들에겐 자연의 변화란 곧 생존과 직결된 문제이기 때문에 그러할 것이다. 그래서 다른 무엇보다 풀과 나무들의 변화를 감지하며 그에 맞추어 농사철을 정하는 것이 어떻게 보면 달력의 날짜로 시기를 가늠하는 것보다 더 합리적일 수 있겠다.


옛사람들이 풀 달력에 대해 기술해 놓은 여러 자료가 있지만, 대충 훑어보면 그중에서 서유구 선생의 행포지杏蒲志가 가장 나은 것 같다. -하지만 솔직히 마음에 쏙 들지는 않는다.- 그래서 여기서는 행포지에 나오는 내용 중 도움이 될 만한 기록들을 나열해 보도록 하련다. 1825년에 저술되었다는 서유구 선생의 농서 행포지의 내용이 200년 가까이 지난 2017년에도 여전히 유효한 측면이 있는 것 같아 재밌다. 



1) 씀바귀의 뿌리가 살찌고 큰냉이가 싹트면, 봄보리를 뿌리고 대마를 심는다. 씀바귀와 큰냉이는 이나 들에서 자라는데, 한겨울에도 죽지 않다가 초봄에 땅이 풀리면 제일 먼저 싹이 나온다대개 씀바귀의 뿌리가 살찌기 시작하고 냉이가 싹트기 시작하면 농가는 이때에 비로서 봄보리와 대마를 뿌리는데, 춘분(양력 3월20일 전후) 앞뒤 며칠을 넘겨서는 안 된다.


2) 창포잎이 나오면 서둘러 가래를 맨다. 여씨춘추에동지 57일(2월 말-3월 초)에 창포가 나오기 시작한다. 창포는 온갖 풀 중에서 먼저 나오는 식물이다 했다. 논은 겨울을 지나면서 두렁이 무너진다. 그러므로 창포의 잎이 나오기 시작할 때 두렁을 수리해 물을 저장해야 하기에, 가래로 파는 일이 크게 일어나는 것이다.


3) 조팝나무 꽃향기가 나면 조와 수수를 파종하며(지금 기준으로 보면 조금 이르지 않은가 싶은데...), 개나리가 노랗게 피면 못자리에 볍씨를 뿌린다. 조팝나무는 2월에 흰꽃이 피며, 꽃이 마치 조의 낟알처럼 달리기 때문에 사람들이 조팝꽃이라 부른다. ... 개나리꽃이 무성하면 모판에 볍씨를 뿌릴 때임을 예상할 수 있다. 


4) 장미꽃이 필 때 목화를 파종할 수 있다. 장미꽃이 질 때쯤 목화의 싹이 난다. 목화는 비만 두려워하고 건조한 것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그러므로 세상에서는 목화 파종할 때 비가 오면 높이 매단다(두둑을 높인다는 뜻 같음)고 말한다.


5) 복숭아꽃이 떨어져 시들면 콩과 팥을 모두 파종할 수 있다. 산 남쪽에 콩 종류를 파종할 때, 복숭아꽃은 벌써 가지에서 떨어진다. 복숭아꽃은 4월에 피며 꽃잎은 여러 겹이며 분홍색이다. 꽃이 피는 시기는 진달래에 비하여 약간 늦고, 철쭉에 비하여 조금 이르다. 복숭아꽃이 떨어져 시들면 콩과 팥을 모두 파종할 수 있다. 대개 콩 파종은 늦게 심는 것을 꺼리지 않으니, 늦게 심으면 좀이 먹지 않아 알이 굵다(요즘은 대개 늦게 심는 편이다).


6)  매우가 사철나무류를 때리면 앙마(秧馬; 송나라 때 발명된 농기구라고 함. 모를 심을 때 씀.)를 부려야지 이웃에 빌려 줄 수 없다(이 기록은 다분히 중국의 기록을 그대로 옮긴 것 같다. 그래서 한국과는 잘 안 맞는 듯함). 4월에 내리는 비를 황매우(黃梅雨)라고 한다. 사철나무는 산중에서 자라며, ... 잎은 가죽나무와 비슷하다. 4-5월에는 가늘고 흰 꽃이 핀다. 황매우가 지나가고 사철나무가 꽃 필 때면 모내기가 바빠서 앙마를 다른 사람에게 빌려 줄 수 없다.


송대의 자료에 남아 있는 앙마의 모습


이것이 현대판 앙마인가?


7)  밤송이가 단단해지고 멍석딸기의 열매가 잘 익었을 때 모내기해도 절반 정도는 수확할 수 있다


8)  토란은 보리타작하는 소리에 싹튼다. 토란은 일찍 파종하지만 늦게 난다(약 한 달). 토란이 싹트기 시작하면 벌써 보리 벨 때가 된 것이다. 사람들은토란은 보리타작 소리를 들어야 나온다고 한다.


9)  밤나무의 잎이 비둘기를 가리면 목화를 뿌려 흙으로 덮을 수 있다. 곡우(4월19일 전후)와 입하(5월6일 전후) 사이에 목면을 파종할 수 있다. 이때 밤나무의 새잎이 나오기 시작한다. 그 여린 잎이 비둘기를 가릴 수 있을 만큼 자란 때가 바로 그 시기이다.


10)  찔레에 꽃이 피면 용두레와 수차를 준비한다. 이때에는 꼭 가뭄이 조금 있다(실제로 장마가 찾아오기 전 늘 가뭄이들곤 하더라). 그러므로 그때를 넘기려면 물을 대는 기구를 미리 준비해 야 한다.


11)  배추의 잎이 완전히 익으면 도리깨 소리가 시끄럽다. 봄에 파종한 배추가 6월이 되어 잎이 흐물흐물해지면, 보리 벨 때가 된 것이다. 그러므로 도리깨질 소리가 나면 봄배추의 잎이 다 사라진다.


12)  검정깨 꽃이 날리면 호미를 씻고 돌아온다. 검정깨는 6월에 꽃이 핀다. 검정깨의 꽃이 날리면 김매기가 끝난다.


13)  보리나 밀이 누렇게 되면 볍씨를 파종하고(앞에선 개나리 필 때를 이야기했는데, 이건 늦게 심는 벼를 가리키는 건지 어떤지 모르겠다), 벼가 누렇게 되면 보리나 밀을 파종한다. 가을이 또한 봄이니, 어느 때인들 쉬랴. 


14)  들국화가 시들고 울타리의 박을 갈랐다면, 벼를 수확하여 작은 언덕에 가득 채운다. 울타리의 박을 이미 갈랐다면 바로 벼를 수확할 때이다(수확 시기야 품종마다 조건마다 다를 테니 이건 그냥 참고하고 넘어가도 될 듯).



아무래도 당시의 농서들이 중국의 기록들을 베끼고 또 거기에 조선의 사정을 덧붙이고 하다보니 검증되지 않은, 이건 맞지 않는 것 같은, 알쏭달쏭한 내용도 꽤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래도 위의 내용들은 참고할 만하니 그렇게하고, 정말 중요한 건 실제로 지역별로, 농가별로 어떠한지 해마다 잘 관찰하여 상세히 기록하는 것이 최고이겠다. 그래서 농사일지를 잘 쓰는 일이 참으로 중요하다! 그러나 나는 기록의 소중함을 알면서도 잘 기록하지 않는다. 게으름이 병이다.


농사일지 잘 쓰는 법에 대한 책도 나오면 좋겠다. 일본은 우스개로 리모컨 사용법까지 책으로 낸다고 하지 않는가. 농담이 아닌 것이 이런 책도 얼마전에 나온 적 있다(http://www.aladin.co.kr/shop/wproduct.aspx?ItemId=1004420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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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세기 무렵 제작되었다는 로마의 달력이다.

 

여기에는 축제일, 황도대, 달의 위상 등이 기록되어 있다. 즉, 농사에 아주 중요한 역할을 했을 것이라 추측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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랭부르 형제라는 화가 삼형제가 있다. 각각의 이름은 헤르만(Hermann), 폴(Pol), 얀(Jan)이라 하는데, 조각가 아널드 반 랭부르(Arnold van Limbourg)의 아들로, 지금의 벨기에 중부 브라반트(Brabant) 주의 네이메겐(Nijmegen)에서 태어났다. 언제 태어났는지, 그리고 어떻게 살다가 갔는지 자세한 사항은 알려져 있지 않다고 한다. 


부르고뉴 공국(Principality of Burgundy)의 궁정 화가였던 말루엘(Jean Malouel, 플랑드르의 화가. 1397~1415년에 활동)의 조카이기도 하여,  아버지가 죽은 뒤에는 그 삼촌 밑에서 자랐다.


1400년 무렵 파리에서 금세공인의 견습생이 되었고, 1402~1404년에는 폴과 얀이 파리에서 부르고뉴 공작을 위하여 일하면서 파리 국립도서관에 소장된 <성서 교훈(Bible Moralisée)>에 삽화를 그린 것으로 짐작된다.

1404년 부르고뉴 공작이 죽고 얼마 뒤, 이들은 부르고뉴 공작의 형제인 베리(Berry) 공작의 화가로 채용되었다는 기록이 남아 있으며, 1416년 당시의 유행병에 걸려 형제가 차례로 죽었다고 한다.

베리 공작을 위해서는 삽화가 많은 성무일과서(聖務日課書, 당시 널리 쓰인 개인 기도서)를 만들었다. 그런데 이들의 작품으로는 "아름다운 시도서(時禱書)"(1403~1413년)와 "베리 공작의 매우 호화로운 성무 일과(Très Riches Heures du duc de Berry)"(1415~1416년)라는 두 작품만 알려져 있다.

이 가운데 "베리 공작의 매우 호화로운 성무 일과"는 15세기 프랑스 회화 중에서도 뛰어난 걸작으로 꼽힌다. 채식 사본 미술에서 역사적 의의를 지니는 작품의 하나로, 이른바 ‘국제 고딕 양식(Internatuonal Gothic Style)’ 가운데 최고로 꼽힌다. 이 작품에는 12개월의 달력 그림이 널리 알려져 있는데, 여기에는 다달의 노동을 묘사한 세밀화가 곁들여져 있다. 이 그림들의 풍경 묘사가 보여주는 참신함은 회화사에 획기적인 것이라고... 


지금부터 그 그림들을 살펴보려고 한다. 마치 우리의 농가월령가 같은 그런 느낌을 준다. 
이 그림을 통해 14~15세기 프랑스의 사람들은 한 해를 어떻게 살았는지 엿보도록 하자.


먼저 1월. 베리 공작 집안의 신년맞이 행사 모습이다. 잔치를 벌이며 서로 선물을 교환하고 있다.
식기가 번쩍번쩍 금이라는 것에서 이 집안의 부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런데 상 위의 요리는 쥐인가? 뭐지? 



2월. 전형적인 겨울의 모습이다. 

여인들은 아궁이에 모여 앉아 불을 쬐고 있다. 그런데... 그녀들 속옷을 입지 않아서 성기가 그대로 드러나 있다. 당시 여자들은 속옷을 입지 않았던 것인가?

남자들은 숲에서 나무를 해서 장에다 내다팔고 있다. 겨울에 남자가 땔감을 하는 일은 동서를 막론하고 마찬가지구나. 

양들은 우리에 모여 추위를 이기고, 까마귀가 날아와 낟알을 주워먹고 있다.



3월. 농사가 시작된다. 

포도나무에는 거름을 준 뒤 지주를 세우고 있다. 밭에서는 바퀴가 달린 겨리쟁기로 땅을 갈고, 쟁기질이 끝난 곳에서는 봄밀인지를 뿌리려는 농부가 보인다. 쟁기질을 말이 아닌 소로 했다는 점에 주목.



4월. 서로 반지를 교환하는 젊은 연인의 모습. 그 배경은 샤또 드 두르당이다. 

정원에는 꽃이 피고, 강에서는 그물을 이용한 고기잡이가 한창이다. 



5월. 말을 탄 젊은 귀족들의 행렬. 배경에는 베리 공작의 파리 거주지인 넬 호텔이 보인다. 다들 월계수를 머리에 장식한 것인가?



6월. 목초 수확. 긴낫과 갈퀴, 거름대 같은 농기구가 이채롭다. 배경에는 생트 샤펠 성당과 씨테 궁전이 보인다.



7월. 양털을 깎고 밀을 수확한다. 밀을 베는 낫은 목초를 베는 것과 달리 짧고 둥근 날이 달려 있다. 아무래도 목초보다는 정교함이 요구되기에 차이가 있겠지. 배경은 푸아티에 성이다.



8월. 밀을 수확해 단을 묶어서 마차에 실어 나르는 농민의 모습과 대조적으로, 매사냥에 나선 귀족들의 한가로움이 대비된다. 농민은 그냥 냇가에서 발가벗고 멱이나 감는 것이다.



9월. 포도 수확으로 바쁜 농민들. 달구지에 당나귀까지 내다가 포도를 나른다. 배경에는 샤또 드 소뮈르.



10월. 밀 씨뿌리기로 바쁜 농민들. 써레로 밭을 고르면 그 주변으로 까마귀와 까치가 모여들어 벌레를 잡아먹는다. 트랙터로 논을 갈면 백로들이 그 뒤에서 먹이를 잡아먹는 모습과 똑같다. 아무튼 쟁기질하고 나서 농민이 밀씨를 뿌린다. 

밀을 다 뿌린 곳에는 새들의 피해를 막고자 허수아비와 끈을 쳐놓은 것을 볼 수 있다. 허수아비에게는 특별히 활을 들려주어 새에게 더 큰 위협을 가하려고 했나 보다. 배경은 루브르라고 한다.



11월. 도토리 줍기와 그를 주워먹는 돼지의 방목. 도토리를 우리는 묵으로 쑤어 양식으로 활용했는데, 여기서는 그저 돼지의 먹이였을 뿐인가? 돼지를 감시하는 개의 충직함이 눈에 띈다.



마지막으로 12월. 멧돼지 사냥 모습. 




이 그림만으로 당시의 생활상을 자세하고 꼼꼼하게 알 수는 없다. 물론 그 목적이 농민들의 한 해 살이를 알리거나 그들에게 농가월령가처럼 어떤 지침을 주려고 하는 것이 아니라, 공작의 아름다운 기도서를 만드는 것이었기 때문이다.  

그래도 어렴풋하게나마 600년 전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살았구나 하는 것 정도는 느낄 수 있으니, 소중한 자료가 아닐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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