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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처음 토종 씨앗을 조사, 수집하러 다닌 게 2008년 말이었다. 지금이 2019년 초니까 만으로 10년을 채운 셈이다. 


그동안 여러 사정으로 현장을 떠나 있어 잘 느끼지 못했지만, 오늘 순천시 외서면을 다니면서 확실히 깨달았다.


지난 10년 사이에 농민은 더욱 늙고, 농촌은 더 쇠락했으며, 농업은 쇠퇴한 느낌이다. 




토종 씨앗을 지키는 최전선의 할머니들은 지난 10년 동안 더욱 늙어 이제는 말귀를 못 알아듣는 지경이 되셨고, 심지어 지난해까지는 심었는데 이제는 아파서 싹 버려 버렸다는 말이 계속해서 들렸다. 최전선에서 씨앗을 지키던 사람들이 뒤로 뒤로 나가떨어지고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할아버지가 돌아가셔서, 할머니가 돌아가셔서 씨앗은 다 지웠다는 이야기도 계속 들린다. 늙은 농민 한 사람의 죽음은 씨앗의 소멸로 이어진다는 말이 입증되고 있었다. 


작년에 경기도의 한 곳을 다니면서 토종 씨앗이 별로 보이지 않는 걸 보며, 여기는 수도권이니까, 서울 사람들이 와서 별장 식으로 사는 곳이니까 그렇겠지 하고 생각하고 넘겼는데, 농촌 중의 농촌인 이곳에서도 그와 다르지 않은 상황을 보고 큰 충격을 받았다. 이제 정말 마지막의 마지막까지 와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해 말에 일본에 가서 일본은 토종 씨앗이라는 게 없고 그나마 뜻이 있는 사람들이 토착화시킨 씨앗을 지키는 걸 보며 우리와 참 다르구나, 우린 그나마 낫구나 생각했다. 하지만 오늘 돌아다니면서 보니 우리도 이제 일본과 다르지 않은 현실임을 깨달았다. 


농민은, 농촌은, 농업은 이제 어떻게 될까? 또 어디로 가게 될까? 나는 잘 모르겠다.



남쪽이라 가을에 파종한 보리콩이 흔하게 보인다.



마을에서 사람들이 하나둘 떠나고 나면 이 마을나무도 힘을 잃고 쓰러질지 모른다.



감자들이 따뜻한 날씨를 참지 못하고 심어 달라 아우성이다.



씨앗을 하려고 걸어 놓은 옥수수. 퇴화되지 않게 하려면 좋은 놈으로 최소 2개 이상을 마련해 놓는 것이 좋다.



모르는 사람이 보면 얼핏 녹두라고 착각할 만하다. 그 생김새 때문에 녹두팥이다.



여기는 과거 꽤나 큰 마을이었나 보다. 반룡리. 들돌이 마을회관 옆에 놓여 있었다. 어디 시험 삼아 들어보았으나나는 실패하였다. 



벌교를 품고 있는 고장답게 지천에 널린 것이 꼬막 껍질이다.



2008년 12월, 이 모습을 보며 태어나서 처음 들어가 본 제주의 마을의 어느 집에서 본 태극기가 중첩되었다. 원래 회관에는 이렇게 태극기를 늘 게양하던가? 아니면 순천만의 풍습일까? 여순 사건 등이 저절로 떠올랐지만 묻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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