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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것이 자연 세계를 이윤을 만드는 기계로 만들었을 때 발생하는 일이다.




현대의 가장 인상적인 상징은 자동차나 스마트폰이 아니다. 그건 치킨 너겟이다. 닭은 이미 미국에서 가장 인기있는 육류이며, 2020년까지 지구에서 가장 선호되는 고기가 될 것이다. 미래의 문명은 우리가 지금 인간세(Anthropocene)라고 부르는 것에 대한 표식인, 인류가 연간 500억 마리의 조류를 해치운 흔적을 발견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 소비의 극적인 변화에 대한 책임은 일반적인 인간의 활동이 아니라 자본주의에 달려 있다. 비록 우리가 그걸 경제 체계라고 이해하도록 교육을 받았지만, 자본주의는 인간 노동의 계층만 조직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는 권력과 자본을 결합시켜 자연 세계를 이윤을 만드는 기계로 바꾸어놓을 때 발생하는 것이다. 사실 우리가 자연을 이해하는 방식이 자본주의에 큰 영향을 준다.


모든 문명은 "우리"와 "그들" 사이의 차이를 일부 표현해 왔지만, 자본주의에서만 "사회"와 "자연" 사이에 경계가 있다. –식민주의에 깊게 뿌리를 내린 폭력적이고 단단히 단속하는 경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 시대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자본주의는 독특한 이진법의 질서를 창출했다. "자연"은 철학자의 마음 속에 있는 "사회"와 유럽 제국들의 정책, 그리고 세계 금융센터의 반대어가 되었다. "자연"은 정복자와 자본가들이 받아들이기를 기다리는 공짜 선물의 막대한 개척지, 이윤의 장소였다. 

이는 여러 가지 이유로 자연에 대한 위험한 관점이었는데, 특히 그것은 모든 종류의 인간과 동물의 삶을 동시에 악화시켰기 때문이다. 우리가 "값싼 자연"이라 부르는 것에는 숲과 들과 하천만이 아니라, 대부분의 인간까지 포함된다. 콜럼버스와 산업혁명 사이 몇 세기에 걸쳐, 노예화되고 고용관계를 맺은 아프리카인, 아시아인, 토착민 및 사실상 모든 여성은 "자연"의 일부가 되었다. –그리고 그 결과 저렴하게 다루어졌다. 인간이 그런 약간의 관심으로 다루어지는데, 다른 동물들이, 특히 우리가 먹어치우는 걸로 끝나는 그들이 자본주의에서 더욱 악화되는 건 놀라운 일이 아니다. 

동물은 식단 변형의 5세기 동안 중심에 있었고, 이는 2차대전 이후 급격히 가속화되었다. 현대 세계의 창조는 신세계로 소와 양, 말, 돼지, 닭을 이동시키는 데 달려 있었고, 1492년 이후 미생물과 군인, 은행가의 살인적인 진출을 강화시켰다. 식량학자 토니 바이스Tony Weis 씨가 잘 표현한 문구인 자본주의의 "생태학적 발자국"은 그 이후 급진적으로 세계화되었다. 바이스 씨는 1961년 이후 반세기 동안 1인당 육류와 달걀 소비는 2배가 되었고, 도축된 동물의 수는 80억에서 640억으로 8배가 되었다고 한다. 

그들의 먹을거리가 어디에서 왔는지에 대한 낭만적인 시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조리되지 않은 고기는 가공된 것보다는 오히려 날것처럼 보인다. 정반대이다. 사료와 유지종자 작물은 바이스 씨가 "산업형 곡물-유지종자-축산 단지"라고 하는 것의 일부를 형성한다. 곡물 시장은 고기를 저렴한 음식이 되게 할 뿐만 아니라, 금융 상품으로 만드는 걸 가능하게 했다. 예를 들어, 돼지 옆구리살의 선물 계약은 그들이 변형시키는 작물들의 균일화, 균질화 및 산업화를 필요로 한다. 다른 말로 하면, 슈퍼마켓의 생고기는 정교하고 집약적인 자본주의 생태계에 의해 조리된다.  

이윤이 있는 곳에, 효율적으로 실현하려는 모든 동기가 있다. 현대의 육류 생산체계는 유정란과 4kg의 사료 봉지를 5주 만에 2kg의 닭고기로 바꿀 수 있다. 칠면조 생산기간은 1970-2000년 사이 거의 절반으로 줄어, 알에서 16kg의 칠면조가 되는 데 20주면 된다. 다른 동물들은 번식과 집중적인 사료 공급, 세계적 유통망의 조합을 통하여 비슷한 진전을 이루었다. 육류 소비가 지속적으로 증가한 결과는 지구적 사건이기도 하다. 모든 인위적 이산화탄소 배출의 14.5%가 가축 생산에서 발생한다.

물론 육류 생산의 환경에 대한 결과는 산업형 농업의 총결산에 영향을 주지 않는다. 자연은 단지 동물을 끌어오고 공장식으로 사육하는 웅덩이이며, 그들의, 그리고 우리의 쓰레기를 쏟아 버리는 곳일 뿐이다. 위험은 환경문제로 "공장식 축산"을, 사회문제로 "공장식 생산"을 보는, 자연과 사회 사이의 분할을 현실로 믿는 데 있다. 사회문제는 환경문제이며, 그 반대도 마찬가지이다. 

닭들은 스스로 너겟으로 변하지 않는다. 자본가들은 값싼 노동이 필요하다. 1492년 유럽인이 신세계에 침공하자, 노동력은 토착민들의 육체에서 그 자신을 드러냈다. 16세기 후반, 스페인 사람들이 현재 볼리비아의 위대한 은 광산인 포토시Potosí에서 은 생산을 되살리려고 필사적으로 노력했을 때, 그들은 토착민을 가리키는 단어로 자연(naturales)을 사용하기 시작했다. 고된 노동과 기도를 통하여 그 토착민과 노예화된 아프리카인들은 신성한 대속을 찾을 수 있었고, 심지어 미래의 언젠가는 평등하게 사회로 진입할 수 있을지 모른다고 했다.

노동은 결코 재미있지 않았다. 각각 영어의 명사 "work"로 번역되는 프랑스어 travail와 스페인어 trabajo의 어원을 살펴보면, 그들의 라틴어 뿌리는 "괴로움이나 고통으로 고문을 당하고 괴로움을 당한다"는 trepaliare이다. 그러나 노동이 작동하는 방식은 변화했다.

천 년 동안 대부분의 인간은 땅과 바다와 대략 친밀한 관계를 통해 살아남았다. 그렇지 않은 사람들조차 노동의 과업과 대상에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었다. 인간의 생존은 어부, 유목민, 농부, 치료사, 요리사 및 삶의 그물망에 직접 연결된 방식으로 자신의 노동을 경험하고 실천하는 다른 많은 사람들의 조각나지 않은 전체론적 지식에 달려 있었다. 예를 들어, 농부는 토양과 날씨 유형, 씨앗에 관해 알아야 했다. 즉, 파종부터 수확까지 모든 걸 알아야 했다. 그게 노동이 즐겁다는 걸 의미하지는 않는다. 노예는 잔혹하게 다루어졌다. 또한 노동의 관계가 공정하다는 걸 의미하지도 않는다. 길드의 장인은 도제를 착취했고, 군주는 농노를 착취했으며, 남성은 여성을 착취했고, 노인은 젊은이를 착취했다. 그러나 노동은 생산에 대한 전체론적 의식과 더 넓은 세계의 삶과 공동체와 연결되는 것이 전제였다. 

16세기에 그것이 변화하기 시작했다. 진취적인 네덜란드 또는 영국의 농민 -그리고 마데이라 제도, 그 다음 브라질, 설탕 농장주- 은 가공식품에 대한 국제적 시장의 성장과 점점 관련이 깊어지고, 그에 상응하여 노동 시간과 수확 사이의 관계에 더 많은 관심을 쏟았다. 국제적 시장은 지역의 변형을 촉발시켰다. 영국의 토지는 증가하는 농촌 인구를 지탱하고 지원하며 살아남게 한 공유지에서 "자유롭게" 한 인클로저를 통해 통합되었다. 이러한 새롭게 추방된 소농들은 자유롭게 다른 일거리를 찾을 수 있었고, 실패한다면 자유롭게 굶거나 투옥될 수 있었다.

이 역사는 현대의 치킨 너겟에 그대로 남아 있다. 가금류 노동자들은 보수가 매우 적다. 미국에서 패스트푸드 치킨에 소비하는 1달러당 2센트가 가금류 노동자에게 간다. 알라바마의 한 연구에 의하면, 날개를 자르는 직원의 86%가 생산라인에서 되풀이되는 칼질과 구부림 등으로 고통스러울 때 직원을 찾기 어렵다고 한다. 노동력의 격차를 메우기 위하여, 일부 치킨 사업자는 1시간당 25센트로 감형 노동을 활용한다. 오클라호마에서 치킨 회사의 임원들은 노동과 신앙의 식민주의적 융합으로 돌아가, 2007년 Christian Alcoholics & Addicts in Recovery(CAAIR 시설)라는 중독 치료센터를 설립했다. 재판관이 중독자를 감옥 대신 치료시설로 안내하고, 회복 프로그램은 노동자를 공급할 준비를 한다. CAAIR 시설에서는 회복 치료의 일환으로 기도에 치킨 생산라인에서 무급 노동을 추가해 놓았다. 당신이 치료 기간 동안 충분히 열심히 일하고 기도했다면 사회로 다시 들어가도록 허락할 것이다.



CAAIR 시설의 입원자는 대부분 젊은 백인이었는데, 가금류 노동자의 대다수는 유색인종이다. 라틴계 이민자는 미국 농업의 핵심 노동력인데, 그들의 저렴한 노동이 배달된 건 두 가지 부문의 계층 구조조정으로 가능해졌다. 미국의 경우, 하나는 노동조합의 힘을 파괴하고 노동조합으로 조직된 노동자를 저임금의 이민 노동자로 대체하려는 새로운 공격적인 육류포장 기업들이 보인 1980년대의 강력한 활동이다. 다른 하나는 1994년 이후 북미 자유무역협정(Nafta)에 의해 멕시코의 농업 체제가 불안정해지자 저렴한 이주 노동자가 유입되었다. –자본주의 생태계에 의해 미국 국경의 한쪽에서 다른쪽으로 추방된 실업자.

두 국가 사이의 지도에 있는 국경은 매우 효과적인 관념이다. 최근 극우에 의해 공포를 강화하고 확산시키는 데 활용되었고, 자본가들이 더 저렴하고 이익이 되는 노동자를 찾는 데에는 훨씬 더 오랫동안 활용되었다. 자본주의에서는 국가의 영토, 지역의 소유지, 새로운 이주노동자가 동시에 생산된다.

이주노동자와 함께 엘리트는 뜨내기 빈곤층에 대한 두려움을 갖게 되었다. 17-18세기 영국에서 이러한 공포는 방랑 상태에 대한 가혹한 법률을 낳고, 강제된 빈곤으로 인한 최악의 결과를 개선하기 위한 자선단체가 발전하게 된다. 투옥된다는 위협으로 빈곤층은 인간의 지능과 힘, 손재주를 취한 활동인 임금노동으로 이동했고, 시간을 측정하는 새로운 방법인 또 다른 근대의 발명을 사용하여 생산적인 노동을 하도록 훈육되었다.  

노동의 실천이 자본주의 생태계를 형성한다면, 그 필수적인 기계는 기계적 시계이다. 돈이 아닌 시계는 노동의 가치를 측정하는 핵심기술로 부상했다. 임금을 위해 일하는 것이 자본주의의 특징이라고 생각하기 쉽기 때문에 이러한 판별은 중요하다. 그렇지 않다. 13세기 영국에서는 경제활동 인구의 1/3만이 생존을 위해 임금에 의존했다. 그 임금은 모든 것을 새로운 시간 모델에 의존하게 하며 삶과 공간과 자연을 구조화하는 결정적인 방법이 되었다. 

14세기 초, 새로운 시간의 모델은 산업 활동을 형성하고 있었다. 현재 벨기에의 이프로Ypres 같은 섬유제조업 소도시에서, 노동자들은 활동이나 계절의 흐름이 아니라 추상적, 선형적, 반복적인 새로운 종류의 시간에 의해 스스로 통제된다는 것을 발견했다. 이프로에서 노동 시간은 작업 교대의 시작과 끝에 울리는 소도시의 종소리에 의해 측정되었다. 16세기까지 시간은 분과 초의 규칙적인 똑딱 소리에 의해 측정되었다. 이 추상적인 시간은 모든 것을 형성하게 되었다. 노동과 놀이, 수면과 기상, 신용과 돈, 농업과 산업, 기도까지 말이다. 16세기 말쯤 영국의 교회 대부분에는 기계식 시계가 달렸다. 

스페인의 아메리카 대륙 정복은 그들의 거주민들에게 공간과 시간에 대한 새로운 개념을 가르쳐 주었다. 유럽 제국이 침투하는 곳마다, 기독교의 의무와 시계를 모르는 "게으른" 원주민의 이미지가 나타났다. 단속하는 시간은 자본주의 생태계의 중심이었다. 1553년 초 스페인 왕조는 주요 식민지 도시에 "적어도 하나의 공용 시계"를 설치하기 시작했다. 또 다른 문명은 그들 자신만의 정교한 시간 규칙이 있었지만, 새로운 노동 체제는 토착의 시간과 자연 세계와의 관계를 추방시켰다. 마야의 달력은 하늘을 통해 해석한 우주 안의 인간의 배치에 대한 풍부한 정보를 제공받는 시간의 복잡한 계층구조이다. 스페인 침략자들은 이런 범위에서만 그걸 존중했다. 그들은 자신들의 식민지 공격을 달력의 신성한 순간과 일치시켰다. 

사회역사학자 EP Thompson 씨가 자신의 뛰어난 연구인 <시간, 노동-규율, 산업 자본주의(Time, Work-Discipline and Industrial Capitalism)>에서 시간의 지배구조가 특정한 논리를 따른다는 걸 관찰했다. "성숙한 자본주의 사회에서 모든 시간은 소비되고, 시장에 내놓고, 사용되어야만 한다. 단순히 '시간을 보내라'는 건 노동 인력에게 불쾌감을 안겨준다." 더 큰 생산적 목표를 위한 특정 활동들의 연결은 시간 도둑질을 허용하지 않으며, 시계의 규율은 지구에 대한 폭력에 의해 시행되었다.  

새로운 주제에 대한 자본주의의 가치와 구조를 가르치는 일은 식민지 기업의 핵심적 부분이었다. 한 정착민은 1859년에 토착 호주인들이 "현재 …  'Nip Nip'이나 정착민의 연간 정기적 양털깎기 시간으로부터 시간을 세는 이점이 있다. 이는 그들이 전에 가지고 있지 않던 년을 정하는 형태로 그것을 공급하는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월이나 달이 그들을 만족시켰다."고 적었다. 그러나 시간의 규정은 또한 저항의 초점이었다. 또 다른 정착민은 일기장에 이렇게 적었다. "오늘 저녁 웅장한 코로베리Korroberry [원문대로. 호주 원주민의 코로보리corroboree 같다. 활기차고 정신적인 모임]가 있었다. – 나는 그것이 일요일이라고 말하면서 그들을 단념시키려 노력했다.– 그러나 그들은 '검은 녀석 일요일 없다(black fellow no Sunday)'고 말했다." 왜 저항인가? 그들은 그 노동이 도둑질의 대상임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식민지 주민들은 그들의 노동을 착복하고 있었다. 

시간의 규정에 대한 싸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미국 가금류 생산라인에서는 1분당 140마리의 가금류를 처리하도록 속도를 제한하는 연방법이 있다. 산업계는 이 제한을 없애려고 로비활동을 벌이고 있다. 속도가 200bpm에 가까운 브라질과 독일의 공장과 경쟁할 수 있도록 말이다. 먹을거리의 오염과 노동자의 부상이 높아질 수 있다는 우려가 더 많은 죽은 닭에서 얻는 특정 이익보다 더 중요하다.  

자본주의는 늘 가능한 모든 종류의 노동 체계를 동시에 실험해 왔다. 예를 들어,  1630년대 브라질의 설탕 플랜테이션은 방글라데시의 섬유 산업을 말하듯이 현대적 산업 운영으로 쉽게 인식될 수 있다. 자동차 생산라인의 조립자가 단순화되고 교환할 수 있는 부품을 조립하고 패스트푸드 노동자가 표준화된 햄버거를 제조하는 것처럼, 아프리카 노예들이 설탕 대규모 단작이란 단순화된 경관의 전문화된 일자리에서 일했다. 

현대 공장의 이면에는 늘 착취의 층이 존재했다. 공장 관리자들은 다양한 종류의 노예적 노동과 천연자원의 약탈을 통해 획득한 원자재로 일하고, 그들 모두 보통 여성에게서 공짜의 가사노동을 제공받던 노동자보다 월급이 많았다. 세계적 공장은 세계적 광산, 세계적 농장, 세계적 가족에게 의존한다. 

그러므로 오늘날도 노예제가 지속된다. 유엔의 한 기관인 국제노동기구(International Labour Organization)는 오늘날 노예로 약 4000만 명의 사람들이 있으며, 그들 대다수는 여성이고 강제로 결혼을 당한다고 추산하고 있다. 콩고 민주공화국의 전시 작전캠프에서는 가상 경제의 이면에 있는 물리적 기반시설에 전력을 공급하는 탄탈륨 같은 희토류 금속을 공급한다.

그러나 경영진이 이윤을 창출할 새로운 방법을 모색하는 것처럼, 노동자도 저항할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한다. 초기 자본주의의 엄청난 상품 개척지 –설탕, 은, 구리, 철, 목제품, 어류, 곡물– 는 유럽과 그 식민지의 노동 통제전략의 실험구역이었으며, 항상 분쟁의 공간이었다. 파업, 반란, 협상과 저항은 자본주의 노동 규율의 적용을 특징으로 했다. 노동에 의한 모든 저항은 기계를 도입하는 새로운 이유였다. 현대 노동 체제와 기술은 초기 현대 노동자들의 실험과 전략, 저항의 호된 시련으로부터 출현했다.

과거와 현재의 공장에서 노동자의 동요와 노예의 반란은 그들이 저항의 표현이기 때문만이 아니라, 자본주의 생태계에 저항하는 항의이기 때문에 연결되어 있다. 모든 세계적 공장은 세계적 농장이 필요하다. 산업형, 기술 및 서비스 기업들은 번창하기 위하여 노동력과 저렴한 자연의 추출에 의존한다. 캘리포니아 쿠퍼티노에서 디자인한 당신 아이폰의 앱은 독립적인 소프트웨어 기술자를 자기-착취하여 코드화하고, 휴대폰 자체는 중국의 가혹한 작업장에서 조립하고, 콩고에서 비인간적인 조건에서 추출된 광물을 사용했을 수 있다. 현대의 제조업은 계층적이고, 동시적이며, 상이한 노동 체제에 의존한다. 그리고 그에 대항하는 모든 저항 행위에 대응해, 자본주의는 다시한번 노동의 국경을 이동시켰다. 

노동자에 대한 지배권은 저렴한 먹을거리와 모든 냄비에 닭고기를 주겠다는 약속에게 도움을 받았다. 값싼 먹을거리는 수천 년 동안 질서 유지의 중심이 되었다. 그러나 자본주의 생태학에서 그 질서는 지구의 변형을 통해 유지되어 왔다. 

15세기 이후, 일부 토지는 특정 종류의 작물과 작부체계가 독점하는 영역이 되었다. 대규모 단작의 들판은 현금 수입을 가져오도록 디자인되었다. 또 다른 지역은 도시의 자본가들에게 더 잘 봉사하도록 자신의 토지에서 추방당한 사람들을 수용하기 위해 남겨두었다. 그것은 자연과 여성, 식민지가 주는 공짜 선물에 의해 뒷받침되는 더 값싼 소농의 임금으로 지원이 되는 산업의 저임금과 함께, 항상 사회적으로 불안정한 지리였다. 19세기와 20세기의 혁명이 노동자에게 착취에 대한 대안을 약속하여 제공한 이후, 도시의 폭동과 공산주의에 대한 자본주의의 두려움은 극도의 흥분에 다다랐다. 이 실존적 불안을 완화하고자, 정부와 재단은 불평등이나 착취를 해결하지 않았다. 그 대신 그들은 값싼 음식을 제공하고 도시의 배고픔을 억누르기 충분할 만큼 풍성하게 자라는 작물의 개발에 자금을 지원했다.  

농촌이 아니라 도시였기에 정치인을 난처하게 하는 굶주림은 매우 중요했다. 세계 대부분의 기아 문제가 집중된 농촌 지역의 사람들을 위한 먹을거리와 고용에는 거의 관심이 없었다. 굶주림은 빈곤층이 도시로 와서 그것이 분노로 변하여 잠재적으로 폭동으로 이어지고 저렴한 자연의 통치를 문제삼을 경우에만 정치적으로 문제가 되기 시작했다. 부르주아지가 지배와 노동자의 정지상태에 대한 곤란한 사태를 우려한 데에서, 우리는 녹색혁명으로 알려진 사건의 기원을 발견하게 된다.  

목표는 도시 지역에 아낌없이 유입될 수 있는 다양한 곡식을 육종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혁명은 단순하게 작물학의 변화가 아니었다. 마법의 씨앗 이상이 필요했다. 농민들에게 그 작물을 재배하도록 하기 위하여, 각국 정부는 농업 유통 관련기관을 통해 작물을 구입하면 보조금을 지급하고, 관개를 위한 기반시설을 설치하며, 대안적인 먹을거리 체계를 둘러싼 정치적 반대를 억압해야 했다. 20세기 초중반의 녹색혁명은 많은 소농과 토지가 없는 노동자 운동의 혁명적인 정치 목표인 포괄적인 토지와 농정 개혁을 막기 위해 고안된 개혁안이었다. 


'저렴한 음식은 수천 년 동안 질서 유지의 중심이 되었다.'  -뉴욕시의 99센트 상점에서. Photograph: Alamy Stock Photo



힐끗 보면 녹색혁명은 성공한 것처럼 볼 수 있다. 세계적으로 1950-1980년 사이 곡물 생산과 수확량(단위면적당 생산량)은 2배 이상이 되었다. 인도의 밀 수확량은 1960-1980년 사이 87%가 증가했고, 이는 1935년 이후 20년 동안 미국의 옥수수 재배 농민들이 경험한 것과 비슷하다. 1960년대와 1970년대 세계의 곡물 수출량이 295% 증가하면서 이 모든 먹을거리의 상승분이 세계 시장에서 거래되었다. 이것이 성공의 측정기준이라면, 국가의 보조금과 폭력을 통해 먹을거리를 저렴하게 만드는 정치적 노력이 효과를 거둔 것이다. 

그러나 그 놀라운 결과로도 굶주림을 줄이지는 못했다. 인도에서 밀 생산이 급증했지만, 인도인들이 먹는 양은 거의 개선되지 않았다. 특히 농업에 의존하는 경제에서 기아는 사람들이 빈곤한 상태이면 끝나지 않는다. 그걸 구입할 여유가 없으면 얼마나 많은 곡물이 있든지 상관이 없다. 실제로 1990년부터 2015년까지 가공식품의 가격은 신선한 과일과 채소보다 훨씬 덜 올랐고, 오늘날 거의 모든 나라에서 인구의 극빈층은 하루에 다섯 가지 신선한 과일이나 채소를 구입할 여유가 없다는 건 세계적 현상이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에 속한 국가의 노동자들이 2차대전 이후 국민소득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증가하긴 했지만, 1980년대에 그 양상이 바뀌었다.  이는 학자들이 적합하게 "임금 억압"이라 부르는 반노동정책의 직접적 결과였다. 신자유주의 시대의 저임금을 감안할 때, 저렴한 먹을거리는 단순히 임금 비용에 비례하지 않고 가격 면에서 직접적으로 저렴하다고 보는 것이 합리적이다. 멕시코에서 가격이 극적으로 하락한 식료품의 하나로 닭고기가 나타난 건 우연이 아니다. 북미 자유무역협정과 기술 및 미국 대두 산업과의 직접적 결과이다.

북미 자유무역협정은 원래 농산물은 제외했는데, 농업에서 도시의 산업 회로로 이동시켜 농민을 "현대화"하고자 했던 멕시코 정부의 주장으로 포함되었다. 그 전략은 효과가 있었다. 멕시코의 깜페시노campesino(소농) 농업 경제는 2003년 전국으로 확산된 엘 깜포 노 아구안따 마스El Campo No Aguanta Más(농촌에서 더 이상 가져갈 수 없다)라는 항의시위에서 증명되듯이 무너졌다. 미국 농업을 위한 이주 회로와 노동력 공급원이 된 게 그 결과이다. 그러나 최소한 치킨은 저렴하다.

여기에서 우리는 저렴한 먹을거리 체제에 관한 중요한 점을 알게 된다. 그들은 사람들에게 먹을거리를 주거나 잘먹일 거라고 보증하지 않는다. 먹을거리와 관련된 나쁜 건강과 영양실조의 세계적 영속이 그것을 증명할 수 있다.  자본주의의 농업 국경은 남반부의 사람들 대부분에게 약 75%의 먹을거리를 제공하는 세계의 소농을 계속 압박하고 있다. 그러나 아마존 유역의 농업 개척을 추진하고 전 세계의 소농을 추방시키는 현재는 황량하지만, 21세기에 자본주의의 5세기에 걸친 먹을거리 체제에 치명타를 날릴 새로운 묘안이 나타났다. 기후변화가 그것이다.

국경이란 이미지는 토지에 대해서만 생각하게 된다. 그러나 지난 200년 동안 매우 다른 종류의 국경 운동이 있었다. 온실가스 배출을 위한 매립장으로서 대기권이란 공유지의 인클로저이다.  21세기에 농업과 임업(환금작물을 위한 토지 정리를 포함)은 온실가스 배출의 25-33% 정도를 기여한다.

이는 불가피하다. 왜냐하면 농업과 임업은 근본적으로 에너지 집약적이며, 더욱 그렇게 되었기 때문이다. 울타리로 둘러쌀 대기권의 공유지는 더 이상 없으며, 기후변화의 비용을 자본주의의 거래원장으로부터 지킬 뚜렷한 방법이 없기 때문에 그건 큰 문제이다. 18세기 중반 영국의 농부들에게 그랬듯이, 생산성 증가가 둔화되며 비틀거리고 있는 세계적 농장에서보다 더 명확한 곳은 없다. 새로운 농업혁명에 대한 농생명공학의 약속은 공허하기보다 훨씬 나쁘다. 새로운 수확량 급등을 산출하는 데 실패하고, 글리포세이트와 기타 독소에 견딜 수 있는 슈퍼잡초와 슈퍼해충을 새로 만들고, 세계의 기후 체계에서 진행중인 변화를 주도하는 저렴한 먹을거리 모델을 떠받치고 있다. 

기후변화는 폐쇄적인 국경보다 훨씬 이상의 것을 의미한다. 그것은 쉽고 저렴한 자연의 종말이 아니라 극적인 반전을 가져오는, 저렴한-자연 모델의 내부파열과 비슷하다. 더 많은 연구결고로 입증되듯이, 기후변화는 농업생산성을 억압한다. "기후"는 가뭄, 폭우, 무더위, 기습 한파를 포함한 매우 다양한 현상을 가리킨다. 전형적인 신자유주의의 작물인 대두는 농학자들이 기후변화의 결과로 인한 수확량 억압이라 부르는 사건을 이미 경험했다. 논쟁의 여지가 남아 있지만, 여러 분석은 1980년대 이후 3%의 성장 감소 영역에 이를 것이라 한다. 그건 1981년부터 2002년까지 연간 50억 달러의 가치이다. 

더 나쁜 점은, 기후변화가 확고한 쇠퇴를 약속한다는 것이다. 연평균 지구의 기온이 1℃ 오를 때마다 세계적 농업에 엄청난 영향을 줄 위험이 더 커진다. 농업 수확량은 시간대, 작물, 위치 및 오늘날 엄청난 속도로 대기에 계속 불어넣고 있는 탄소의 범위에 따라, 다음 세기에는 5-50% 이상 감소할 것이다. 세계의 농업은 2050년까지 모든기후변화 비용의 2/3를 흡수할 것이다. 이는 기후와 자본주의 농업 모델 모두 갑작스럽고 돌이킬 수 없는 변화의순간 한복판에 놓여 있음을 의미한다. 

기후변화가 현대의 먹을거리 체계를 파괴하지 않을 것이라 상상할 이유는 거의 없다. 더욱이 산업형 먹을거리 생산은 전염병을 육종하는 장이 되고, 도출된 분석에서는 우리가 저렴함 육류를 얻는 동물의 밀집사육방식은 또한 인류를 약화시킬 수 있는 바이러스도 가져올 것이라 제시한다. 다시 말하지만, 이건 전혀 새로운 사실이 아니다. 초기의 현대적 기후변화와 페스트로 봉건주의가 종식되고 자본주의가 시작된 것처럼, 우리는 기후변화와 커다란 체계적 충격에 대한 취약성이 자본주의 생태계의 극적인 종말을 야기할 미래에 직면해 있다. 

우린 자본주의를 따르는 것이 더 좋지 않을 수도 있다는 역사를 잘 알고 있는 학생들이다. 전 세계에서 파시즘은 자유주의의 토양에서 출현했다. 그러나 정확하게 자본주의의 고지서가 만기된 것처럼, 지역사회들은 자본주의의 국경에서 저항하며 복잡하고 체계적인 대응을 개발하고 있다. 자본주의를 가능하게 만드는 7가지 저렴한 것들 -자연, 노동, 돌봄, 먹을거리, 에너지, 화폐, 생활- 각각을 둘러싼 대안을 개발하는 운동들이 있다. 전 세계적으로 부활하고 있는 노동운동에서, 먹을거리와 보상 및 지역의 경제주권에 대해 요구하는 흑인의 삶을 위한 운동에서,아니면 먹을거리와 돌봄, 자연과 노동에 관한 우려를 함께 가져오는 라틴아메리카의 소농 운동 비아 깜페시나에서 개발한 feminismo campesino y popular(인민과 소농의 페미니즘) 등이 싸우면서 공통적인 대안을 개발하고 있다. 

활동가이자 영국의 Reclaim the Streets 운동의 공동 설립자 John Jordan 씨는 저항과 대안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DNA의 이중가닥이다"라고 주장한다. 그 변화는 개발을 위한 자원과 공간이 필요하다. 우리가 자본주의 생태계에 의해 만들어진다면, 우리는 가장 기본적인 관계를 다시 하고, 다시 생각하며, 다시 체험하는 과정을 통해 서로를 생산하고 돌보는 새로운 방법을 실천함으로써 다시 만들 수 있다.



https://www.theguardian.com/news/2018/may/08/how-the-chicken-nugget-became-the-true-symbol-of-our-er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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