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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부가 세상을 바꾼다-자연과 땅과 인간의 공생을 위하여


감사의 말을 전하며

이 책의 초고를 보고 소중하고 비판적인 지적과 충고를 아끼지 않으신 많은 분들에게 감사를 드린다. 그 중에도 특히 테드 벤톤(Ted Benton), 제임스 모리슨(James Morison)과 노먼 업호프(Norman Uphoff)를 소개하고자 한다. 그들은 





용어 해설


용어 해설에서 나타나는 용어들은 이 책의 각 장마다 이탤릭체로 되어 있다.


Adat-인도네시아와 말레시아의 통치 시스템과 토착 문화


Agroecology-농업 시스템에서 생태적 관계


Antimicrobial(또는 antibiotic)-인간과 가축을 세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한 독성 물질


Apomixis-무성생식을 통한 모본 식물체의 정밀 복제


Autopoiesis-스스로 조직하고 스스로 만드는 생명 활동 시스템


Bioregionalism-생태적 한계 안에서 이뤄지는 통합적 인간 활동


Biotechnology-DNA의 전이를 수반하는 살아있는 것과 그렇지 않은 것들에 대한 분자의 변화. 여기에서 DNA의 전이란 한 유기체로부터 다른 유기체로 바뀌는데 새로운 특성의 표현을 받아들이는 것을 뜻한다.


Carbon sequestration-싱크대로 물을 빨아들이듯이 대기에서 이산화탄소를 흙과 나무로 빨아들이는 것.


CBD-생물 다양성 협약


Cloning-다른 유기체 DNA의 정확한 복제를 통한 개체의 생산


Common property resource-자원은 사람들의 제한된 그룹에 의해 공동으로 이용된다. 대개는 그들이 이용하는 데 지역적으로 발전해 온 규칙과 함께....


Cryptosporidium-병원체는 가축과 야생동물, 그리고 오염된 물로부터 발생한다.


CSA-지역 사회 지원 농업


DFID-국제 개발 부서(영국)


Diverscape-생태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다양한 조경


Enclosure(또는 inclosure)-유럽의 농경지 중 공동으로 관리되면서 누구에게나 열려있어 소농들이 개별적으로 필요한 만큼 작은 규모로 생산에 이용되던 땅이 강제로 지주들에 의해 사유화되고 울타리쳐진 변화를 말한다.


ESA-환경적으로 민감한 지역


Eutrophication-물의 부영양화로 조류가 급속히 증가하는 것, 농산물 공급망의 전체적인 붕괴, 최악의 경우로 탈산소화를 통한 완벽한 삶의 붕괴


Extensionist-농민과 농학자들이 정기적으로 만나는 농업 전문가들


Externality-소극적이든 적극적이든 직접 지불 또는 보상금 없이 개인 또는 집단을 위한 복지 및 일자리에 영향을 주는 어떤 조치


FAO-먹거리와 농업 단체(영국)


Fen-가끔 범람하여 강 옆의 축복받은 땅


Food security-건강을 위해 적절하게 다양한 먹거리의 충분한 공급


Foodshed-다양한 친환경 농장에서 공급하는 지역적이면서 자립적인 먹거리 시시템. 이 농장들은 소비자들과 경제적이면서도 공동체적인 연대로 연결되어 있다.


GM-유전 조작


Hectare-2.74에이커와 같은 면적


HFS-하트포드(Hartford) 푸드시스템(미국)


ICIPE-곤충 생리학 및 생태학 국제 기구


IFPRI-국제 먹거리 정책 연구소


Integrated pest management-전염병 관리를 위한 다양한 방법, 특히 살충제를 사용하지 않거나 최소화하는 방법의 활용


Megajoule(MJ)-에너지 단위로 1MJ는 4.2키로칼로리(kcals)와 같다.


Microfinance-지역 사회에 의해 유지되는 작은 금융 시스템, 종종 외부의 펀드와 연결되기도 한다.


Modernist-단일한 방식, 탄력적이지 않는 단작 시스템


Monoscape-생태적으로 또는 사회적으로 다양성이 없는 조경


Multifunctional-먹거리 생산만이 아니라 많은 부수적 효과를 갖고 있는 농업시스템


Nutrition transition-새로운 다이어트를 채택하려는 사람들에게서 나타나는 도시화 증가 효과. 특히 점점 육식은 늘고 전통 곡식은 줄고 있는 소비 행태에서 잘 드러난다.


Public gools-한 집단의 구성원에 의해 소비된 것이 그 집단의 다른 구성원으로부터 주어질 수 없는 재화나 서비스. 또는 그 재화나 서비스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집단의 다른 구성원에 의해 소비될 수는 있다.


Rhizobia-흙 속에서 질소를 고정하는 토양미생물


Salinization(염류축적)-흙 속에서 염류가 축적되는 과정, 이는 젖은 땅에서 과도한 관개를 했을 시, 또는 마른 땅에서 목초를 제거했을 시에 잘 일어난다.


Satochi-자연과 인간 관계에서 위대한 다양성의 실현 사례로 주목받고 있는 일본의 한 지역 풍광


Semiochemical-보균성의 벌레, 맹수, 기생충을 퇴치하거나 또는 끌어들이는 화학물질로 식물체에서 추출한다.


SRI-쌀 증산 시스템


Stakeholder-어떤 활동과 기관에서 특별한 지분과 이해를 갖고 있는 개인 또는 집단


Subak-발리 관개협동조합


Transgene-관행 육종에 의해 한 유기체에서 그것과는 다른 것으로 변이한 유전자. 


Watershed-한 지점에서 배수가 되는 지형


WHO-세계 건강 협회


Zero-tillage-깊게 뒤집어엎는 경운을 하지 않는 농법으로 씨를 점뿌림 직파하고 표토에는 순환적인 피복으로 덮여있다.





혁명을 향한 서문


우리 농업과 먹거리 시스템에 뭔가 문제가 생기고 있다. 지난 세기 동안 생산성 증가면에서 놀라운 진보를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기아와 영양실조에 허덕이고 있는 사람들이 수억 명에 이른다. 반면 또 다른 수억 명의 사람들은 너무 많이 먹고 있을 뿐만 아니라 나쁜 음식으로 인해 병들고 있다. 환경은 피폐해지고 있으며 최근까지 발전해 온 농업 시스템의 많은 부분이 또한 악화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별 탈 없이 농업을 통해 다른 부분으로 새로운 희망을 퍼뜨리고 그리하여 사회와 문화와 사람들을 생태적인 원리로 새롭게 엮어나갈 수 있을까? 이 책은 어떤 점에서는 새로운 아이디어를 제시하지는 않는다. 많은 사람들이 지난날 농업 시스템에서 지속가능하면서 생산적인 두 가지의 상반된 과제를 위해 싸워왔다. 그 과정에서 성공적인 사례를 만들어 왔던 몇몇 부분의 과정을 살펴보면 그리 새로운 얘기를 하고 있는 것은 아니다. 그럼에도 뭔가 새로운 것을 제시하고 있는데, 우선 지난날 얻은 성과들이 오늘날 많은 장소에서 새롭게 퍼져가고 있으며, 수백만명 쯤 되는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지역에서 제법 큰 규모의 성과를 얻어내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책을 쓰고 있는 나의 목적은 인간들의 이런 숨은 노력을 많은 사람들에게 알리려는 데 있다. 나는 그림 같은 경관을 가진 써포크Suffolk와 에세스Essex에서 살며 일하고 있는데, 이곳은 영국 서쪽과 경계하고 있는 지역으로 튜더 시대의 양모 도시였으며 오랜 고대의 흔적들과 곳곳에 펼쳐져있는 작은 농경지들, 그리고 고요히 흘러가는 강물을 품고 있는 지역이다. 나는 또한 어린 시절을 사하라 사막의 남쪽 끝에 펼쳐져 있는 모래와 초원 지대에서 자랐다. 그곳엔 야생동물이 바글거리고 바오밥나무와 아카시아 나무들이 점점이 흩어져 있는 아름다운 경관을 지닌 지역이었다. 나는 그곳에서 개발과 산업화된 지역의 많은 커뮤니티에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얘기도 하고 함께 노동할 기회도 가졌었다. 대부분 의견차가 팽배하고 때로는 자기 스스로를 비하하거나 노골적으로 맹비난하는 것을 드러내기도 했다. 나는 이 책에서도 그들의 얘기를 쓰고자 한다. 그들이 개인이든 집단이든 어떻게 변신의 길을 선택했는지, 그리고 그들은 지역과 주변 경관을 바꾸는 데 어떻게 성공했는지를......

나는 또한 현재 산업화된 농업에는 큰 문제점을 갖고 있음을 구체적인 증거를 대어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주고 싶다. 그 농업이 생산성 증대에 큰 성과를 드러냈고 그 시스템조차 효율적이면서 합리적인 것임에도 말이다. 그럼에도 나는 이런 나의 문제의식을 독자들에게 널리 알리고자 한다. 왜냐하면 먹거리의 문제란 특정 대상에게만 영향을 주는 게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 영향을 끼치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매일, 매주 소비자로서 먹거리를 구매한다. 우리가 어떤 구매를 선택할 때는 우리가 농업 생산 시스템에 관해 어떤 선호도를 갖고 있는지에 관한 정보를 보내주게 된다. 그렇지만 이렇게 보내진 정보가 뭘 의미하고 어떤 영향을 끼치는지 우리는 알 길이 없다. 우리가 먹거리를 소비하면 그 먹거리가 시작된 그곳의 환경과 커뮤니티와 경관에 근본적으로 영향을 안 미칠 수 없음에도 말이다.

유럽 농사에 관해 가장 오랜 자료에 따르면 농사agriculture란 agri와 culture라는 두 개의 말이 합쳐진 것으로 보인다. 더불어 먹거리란 그것을 생산한 문화와 커뮤니티의 생명적인 부분이 표현된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산업화된 농사가 지배적이 된 오늘날 먹거리는 한낱 하나의 상품으로밖에 비춰지지 않게 되고 그에 따라 농사 자체도 공장의 생산 라인에 맞춰 이뤄지게 되었다. 내가 던지고 싶은 문제제기는 바로 이점에 있다. 우리는 충분히 먹거리도 생산하면서 동시에 문화culture를 원래의 뜻, 곧 agri-culture로 돌릴 수는 없는 걸까? 우리는 지속가능한 농사 시스템을 과연 창조할 수는 없을까? 그것도 충분히 효율적이고 공정하면서 친환경적이고 공동체적인 농사를 이해하는 것에 기초한 시스템에서 말이다.

21세기 초기를 벌써 한발짝 벗어나고 있는 이 상황에서 이런 의문은 나에게 비판적인 선택을 하게 만드는 것 같다. 인간은 대략 600세대에 걸쳐 농사를 지어왔다. 그 역사를 통해 볼 때 먹거리의 생산과 소비의 대부분은 문화와 사회적 시스템과 바로 연결되어 있음을 알 수 있다. 먹거리 음식이란 매우 특별한 의미를 띄고 있다. 밭을 갈고, 초원, 숲, 강과 바다n 그러나 마지막 2, 3세대에 걸쳐 우리는 산업의 원리에 맞춰 농사 시스템을 개조하는 데 성공했다. 그 시스템은 확실히 단위 면적당 더 많은 식량을 생산하고 같은 노동 시간에 비해서도 이전보다 더 많은 생산량을 만들어낸다. 그리고 그것은 상당히 효율적인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다만 여타 다른 심각한 부작용들 곧 흙의 고갈, 생명 다양성에 대한 위협, 수질 오염, 그리고 사람 건강의 훼손과 같은 심각한 부작용들을 배제한다면 말이다.

12,000년이라는 농사의 역사 기간 동안 대부분은 안정된 시기를 지나왔지만 짧게는 뿔쑥 갑작스런 변화가 끼어들기도 했다. 이는 사람들의 생각과 행동 방식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다주었다. 우리는 지금 그 변화의 갈림길에 서있다고 나는 생각하고 있다. 지속가능한 농업은 자연을 최선의 상태로 보호해주고 사람들의 지혜와 공동체 능력을 최고조로 이끌어주었다. 그리하여 사람들로하여금 더욱 희망을 갖게 했다. 그러나 그것은 조용한 혁명일 수밖에 없었다. 왜 그럴까? 그런 농사는 대체로 경제성을 높이기도 힘들거니와 또한 그래서 수익도 별로 기대할 수 없으며 그렇게 농사지었다가는 가난이 필수적으로 따라다니는 것처럼 비춰지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런 농사를 짓는 농부들의 목소리는 사회 제도나 계획을 수립하는 데 별로 반영되지도 않는다. 이런 조용한 혁명이 과연 우리들을 제대로 이끌어갈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는 사람들은 드물 것이다. 또한 그래서 지속가능한 농사가 전 세계 모든 농부들에게 적절한지도 우리는 자신할 수가 없게 되었다. 그러나 한 가지 내가 알고 있는 것은 그 농사의 원리와 원칙은 폭넓게 적용될 수 있다는 점이다. 한번 이런 원리와 원칙이 받아들여진다면 그것은 자신이 일군 자신만의 환경에서 먹거리를 생산하며 새로운 방법을 찾아낸 사람들의 공이 될 것이다.

우리는 알고 있다. 차면 기울고 빈곳은 채워지기 마련인 균형의 원리를 말이다. 그래서 뭔가 새로운 하나가 생기는 곳이 있다면 어딘가에서는 뭔가 하나가 손실되는 곳이 있기 마련이다. 새로 도로가 나면 멀리 떨어진 대형마트로 장보러 가기가 쉬워진다. 그러나 그 도로는 불법 벌목꾼이 아름드리 우람한 나무들을 베어가기 쉽도록 이용될 수도 있다. 살충제를 쓰지 않는 농장에는 생물 다양성이라는 이득을 얻을 수 있지만 반대로 생산물 수량이 적어질 수 있다. 새로운 친환경 농사 방법이 개발되면 그것은 다른 한편 더 많은 노동력을 투입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잔일을 많이 하는 여자들 어깨에까지 무거운 짐을 더 짊어지게 해야 하는 일이기도 하다. 그러나 지금껏 말한 바와 같이 장점이 있으면 단점이 있는 균형의 원리가 늘 심각한 문제를 야기하는 것만은 아니다. 전 세계에 걸쳐 공동체에 의해 일구어 낸 진보적 성과들을 잘 살펴보면 거기에는 자연을 보호할 뿐만 아니라 더욱 자연을 진보시키면서 더 많은 먹거리를 생산하는 것이 가능함을 알 수 있다. 말하자면 경제적 효율성을 떨어뜨리지 않고 인간적이면서 자연적인 시스템 안에서도 다양성을 보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책에서는 성공적인 진보의 이야기들을 소개하고 있다. 그렇지만 애석하게도 나는 그것들을 온전히 소개할 수가 없다. 결과적으로 볼 때 그런 시도들은 불행하게도 부분적인 영향만을 끼쳤을 뿐이다. 또한 그것이 왜 그런지 문제점과 모순을 모두 다 꼼꼼하게 살펴 볼 틈도 없었다. 나는 몇몇 공동체 사회가 전통적이라든가 토착적이라는 이유로 그들은 왠지 자연과의 관계에서든 공동체 구성원 상호관계에서든 무조건 선하다는 인상을 주게 될까 저어된다. 어떤 공동체의 행동을 보면 때로는 그들이 생태적 파괴자로 비춰지기도 한다. 서로 다른 규범들은 사회적으로 다양한 것처럼 보일 수 있을지는 몰라도, 지난 세기 동안 많은 사람들이 반대해 온 불평등한 관계로 비춰지기도 한다. 어쨌든 이 책에서 나의 목적은 사회적이고 생태적인 모순 앞에서 무엇이 가능한지를 보여주고자 하는 것이다. 가능하다고 해서 모든 것이 완벽할 필요는 없다. 그렇더라도 독자들이 이 책을 통해 확실한 증거와 명쾌한 분석을 찾아낼 수도 없을 것이다. 이 책의 말미에 가면 훌륭한 자료들이 소개되고는 있지만 전반적으로 이 책에서는 사진이나 표로 정리한 자료들이 그리 많지는 않다. 그러나 여기의 이야기들은 믿을만한 자료와 방법들에 근거하고 있으며, 자신이 처한 특수한 환경을 뛰어넘는 중요한 의미를 지니고 있기 때문에 나는 그 얘기들이 설득력을 갖고 있다고 생각한다.

친환경농업과 생태주의가 세상을 진보시킬 수 있다는 점을 믿지 않는 사람들로부터 비난이 쏟아질 것을 나는 예상하고 있다. 물론 나는 교조적인 대안을 제시함으로써 힘들게 얻은 이 나마의 모든 성과를 무로 돌리고 싶지는 않다. 실질적인 진보는 과거에 이뤄낸 최선의 것들을 종합하여 계승 발전시킨 것으로부터 온다는 것, 뿐만 아니라 환경과 인간의 건강에 심대한 침해를 가한 것들은 철저히 제거되어야 한다는 것, 그리하여 오늘날 우리에게 유용한 최고의 지식과 기술을 사용함으로써 가능하다는 것이다.

지속가능한 농업 혁명은 지금 세계를 새로이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데 중요한 힘이 되고 있다. 그러나 그것은 쉽게 이뤄지지 않는다. 많은 농업 정책들 중에는 별로 도움 되지 않는 것들도 있다. 대개의 기관들은 지역민의 목소리를 잘 들으려 하지 않는다. 그들이 다만 가난하고 궁벽하다는 이유만으로 말이다. 대부분의 기업들은 아직도 환경에 들어가는 비용 대비 최대 이익을 내는 것은 책임있는 행동을 취하는 것이라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국가  또는 지역 정책의 변화는 아직도 첫 걸음을 뗀 정도일 뿐이다. 정부 기구는 어떤 뭔가를 희망하지만 그들이 취하는 정책적 의지는 경제적 이득을 보장할 수 없다. 경제문제에서 구조적으로 드러나는 왜곡들 곧, 사리의 추구, 불평등한 거래 관계, 부패, 심각한 부채, 이익의 극대화, 환경 악화, 그리고 전쟁은 혁명을 부추기는 시스템 변화의 가능성을 감소시킨다.

그러나 우리는 이런 심각한 문제들을 해결하려고 굳이 애쓸 필요가 없다. 변화란 사람들이 그것들을 충분히 원할 때 가능해진다. 그때가 되면 이런 문제들을 극복하려는 사람들의 집단적 개혁의지를 확실하고도 크게 목소리 낼 수 있다. 독자들은 이 책을 통해 산업국가와 그 반대편에 있는 농경과 공동체 사회를 짧게 여행할 수 있게 될 것이다. 나는 독자 여러분들이 이 책에서 소개되고 있는 성공 스토리들이 어느 정도는 존경을 받을만하다는 것을 인정하길 희망한다.

1장에서 나는, 숲과 농경지와 먹거리 시스템이란 원래부터 사유화될 수 없으며 우리 모두에게 주어지는 공동의 재산이라는 사실을 말하고자 한다. 그럼에도 농업의 발전 과정을 추적해보면 농경이란 자연으로부터 멀어지는 과정이었음을 솔직히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것이 숲을 없애버리거나 심각하게 침해했었던 때를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인류는 오랜 역사 기간 동안 자연으로부터 규정되어 왔지만 이제는 반대로 자연을 규정하고 있다. 그러나 우리는 산업화에 접어들고부터는 땅과 자연에 관한 이야기와 추억, 그리고 그 언어를 잃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연과 들녘이 여전히 우리의 농경과 먹거리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런 단절이 더욱 중요한 문제로 다가오는 것 같다.

2장에서는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의지하고 있는 자원들로부터 사람들은 어떻게 힘없이 쫓겨났는지, 또 그렇게 피폐되고 파괴된 숲이 얼마나 황페해졌는지 그 어두운 측면을 소개하고 있다. 현대 문명의 이런 자연에 대한 강탈은 때로는 경제 성장이라는 미명하에, 때로는 자연보전이라는 미명하에 행해지고 확대되었다. 단지 생명 다양성을 보호하기 위해 꾸며진 보호 지역은 또 다시 우리를 우리가 필요로 하고 쓸모 있게 쓸 수 있는 자연으로부터 단절시켰다. 동시에 현대 농업은 효율성을 높이기 위해 단작이라는 농업을 만들어냈고, 그에 따라 가난한 소농들은 또 다시 많은 것들을 잃어야 했다. 문화적으로 중요한 자연 경관과 다양성을 위한 재활용은 긴급한 과제로 대두되고 있다.

3장에선 농업 시스템의 투자 대비 수익에서 실질적인 경제적 전망을 신중하게 협소화시키고 있다. 먹거리의 실질적인 물가는 외형을 상당히 키웠지만 또한 부정적인 효과를 가져왔다. 그 대신에 건강과 환경의 파괴라는 대가를 치루게 된 것이다. 음식은 그것을 생산하는 데 들어가는 비용을 확인하기 어렵고 측정하기 어려운 탓에 그 비용은 늘 저평가되어 왔다. 자연 그 자체가 주는 상품과 서비스에 대해 화폐의 가치를 부여할 수 있는 것은 오로지 경관 하나뿐이다. 그러나 그것은 지속가능한 시스템과 그렇지 않은 시스템과의 상대적 가치의 어떤 것을 우리에게 말해주며, 거기에 더해 국가가 취해야만 하는 국가적 정책 방향의 한 부분임을 가리켜준다. 드문 경우이지만 지금까지 정부 측의 좋은 홍보문구들은 지속가능한 먹거리 생산 시스템을 지원하기 위한 효과적이고 일관성 있는 정책으로 발전했다.

4장에선 지속가능한 농업으로 기아상태를 어떻게 탈출했는지를 보여준다. 우리는 알고 있다. 화석 연료에 근거한 현대 기술이 농업에서 생산성을 증대시켰다는 것을. 그러나 비용이 많이 드는 이른바 고투입 방식은 최빈국이나 극빈층은 엄두도 낼 수 없는 일이다. 지속가능한 농업은 가장 자연적인 방식과 자재를 사용하는 데서 그 방법을 찾아야한다. 나아가 농부들이 쌓아온 지식과 기술, 그리고 공동의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집단의 힘을 추구하는 데에서 방법을 찾아야 한다. 그러한 방법들은 흙을 건강하게 살려주고 수질의 상태를 좋게 만들어주며 농약에 대한 의존도를 떨어뜨려 준다. 이런 것들이 함께 할 때 새로운 체계는 다양성과 생산성 둘 다를 해결해 줄 것이다. 그러나 당연히 이런 과정에서는 의미있는 성과들을 약화시킬 위협적인 요소들이 많을 수밖에 없다.

제5장은 이른바 온전한 음식(Whole Food)에 주목한다. 산업화된 나라들은 대체로 자신들의 농업 구조가 상품 생산 체계로 전환한 것을 자랑으로 여기고 있다. 반면 현재 시골에선 생물 다양성이 빠르게 감소되고 있는 것처럼 전통 가족 노동도 빠르게 사라져 가고 있다. 동시에 소비자들이 먹거리에 지출한 대가 중 농부들이 차지할 수 있는 부분은 계속적으로 줄어들어 간다. 생태적 지역에서 소비자와 연대하여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드는 일은 새로운 관계를 재창조하는 일이다. 농민시장, 공동체가 지원하는 농업, 박스 셈(box scheme)과 농민그룹들은 가능한 홍보거리에 도움주고 있다. 비록 지자체의 정책과 민간의 운동이 적절한 조건을 만들어준다 해도 이런 일들이 하나의 요인만으로 시스템 변화를 가져올 수는 없다. 

제6장에선 유전자 조작에 대해 다루고 있다. 유전자 조작과 생명 공학을 평가하지 않고는 농업의 혁신을 다루기는 힘들다. 누가 지금의 농업 공학을 주도하는지, 그 기술이 과연 가난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될 수 있는지, 또한 과연 그것은 환경에 부정적인 영향을 주지는 않는지 등은 모두, 여러 형태의 유전 조작과 이후 세대에 걸친 그 영향에 대해 우리가 물어야 할 중요한 질문이다. 이 새로운 아이디어들이 차이를 갖든 말든 이 질문에 대해 그들은 우리에게 말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라도 우리는 각 경우에 맞는 생명 공학을 다루어야 한다. 그리고 우리는 환경과 건강에 대한 그것의 잠재적 위험에 대해서도 주의 깊게 평가해야 한다. 그것은 마치 지속가능한 농업 시스템에 어떤 기여를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일지는 몰라도, 그것이 가난한 사람을 위한 정책과 연구 시스템, 제도를 만들기에는 매우 어려울 것이다.

제7장에서는 생태 교양을 확대하기 위한 사회적 학습 시스템을 발전시킬 필요에 대해 역설하고 있다. 자연과 땅에 대한 우리의 지식은 매우 천천히 발전했다. 농업이 아주 세세할 만큼 생태적 이해를 필요로 한다면 사회적 학습과 참여 시스템은 매우 필요조건이 된다. 이는 신뢰에 바탕한 상호 관계를 발전시키고 관행적인 규약과 표준 그리고 나아가 그것을 제도화된 형태로까지 발전시키기도 한다. 이렇게 새로운 관행들은 수자원, 미생물, 숲과 세균 등을 집단적으로 관리하기 위해 지금도 계속 만들어지고 있다. 10년 넘게 40만 개 그룹의 출현을 포함한 집단적인 시스템은 거대한 개인적 변화를 불러일으킬 수 있다. 어떤 경계를 넘어서지 않고는 지속가능성을 향한 진보는 일어날 수 없다. 

제8장은 그런 선을 뛰어넘은 개인과 다양한 사례들을 선별해 소개한다. 그런 사례들은 결국 외적인 혁신까지도 불러일으킬 수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우리의 고정 관념은 자연을 살리는 데 실패했고 그리하여 우리를 다시 위험에 빠뜨리고 있다. 우리의 생각과 행동 방식을 바꿀 수만 있다면 우리는 과연 새로운 다른 것을 창조할 수 있을까? 알도 레오폴드Aldo Leopold가 제안했듯이 우리는 저 산 속의 늑대처럼 사고할 수 있을까? 그러나 아직도 영웅적인 변화는 충분히 가능하다. 우리가 이런 경계를 뛰어넘을 필요를 느끼고 있다면 말이다. 많은 사람들은 여전히 지속가능성에 대해 호의적이다. 긍정적인 말과 태도를 좋아하듯이..... 실제로는 국가 차원에서 농업과 농촌, 먹거리를 위한 정책과 제도를 혁신적으로 바꿔나갈 대안은 없다. 하지만 그 대안은 매우 긴급하다. 주저할 시간이 없다. 곧 다가올 농업 혁명의 시간이 바로 우리 앞에 와 있다.

목차


감사를 전하며

특별한 용어의 정리

혁명을 위한 서문


1. 잃어버린 경관, 되찾은 경관

2. 단순 경관

3. 실제의 가치

4. 모두를 위한 식량

5. 복원

6. 유전자 조작을 둘러싼 논란

7. 생태적 문맹

8. 국제 변경을 넘나들기


참고

인덱스

잃어버린 경관, 되찾은 경관




굽은 강가에는 아주 오래된 목초지가 펼쳐져 있다. 30헥터 정도되는 이 늪지대는 잘 알려져 있는 바와 같이 하나의 유적이나 다름없다. 근처 교회의 첨탑은 600년 동안 마을의 가로수 넘어 보이는 이 들녘의 경관을 지켜보아 왔다. 어디서나 볼 수 있는 아주 평범한 풍경인 이곳은 온전하게 보존되어 왔다. 180페니지fennage 단위로 나뉘어 있는 이 땅은 누구나 소를 방목할 수 있는 공동 소유의 땅이다. 혹독한 편동풍이 스칸디나비아로부터 불어오면 푹 꺼진 초원은 눈으로 뒤덮인다. 여름이 되면 당신은 노란색의 예쁜 미나리아재비 꽃으로 뒤덮인 카페트를 걷거나 아니면 자주색의 벌난초가 산재해 있는 마른 초원을 에둘러 돌아갈 수 있을 것이다. 가을이 되면 비가 며칠 내리고 강물은 넘쳐 초원 위로 흐르고 난 후 하늘은 맑게 개이고 그리고 나면 초원은 빛이 난다. 벌레 떼를 쫓느라 이리저리 파리채를 휘두르며 저녁을 맞는 길고 긴 밤이 오면 부엉이는 먹이를 찾아 부엉부엉 소리를 내며 날아다닌다. 강 어디에선가 들려오는 첨벙하는 소리는 신비의 동물 수달이 살고 있음을 우리에게 상기시켜 주곤 했다. 바로 이 늪지대는 울타리에 갇힌 농장과는 분명히 다른 존재이며 오랜 세월 동안 이렇게 존재해 왔다.

평범하기 그지없지만 이 초원은 사실 많은 점에서 매우 소중한 존재다. 숲과 함께 이 초원은 별 가치 없어 보일는지 몰라도 그것을 요긴하게 사용하고 있는 지역 사람들과는 매우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다. 그래서 또한 이 초원은 사람이 아닌 다른 뭇 생명들에게도 정당한 사용 권리를 부여하고 있다. 그러나 최근 이런 권리는 광범위하게 무시되기 시작했다. 그 결과 땅은 침식되고 우리의 권리도, 자연과 생명의 권리도 침식되어 갔다. 음식이 상품화되면서 사람들은 대부분 그곳이 먹을거리와 문화를 생산하는 곳이라는 사실을 더 이상 느낄 수 없게 되었다. 자연과 경관이 어우러진 농업 및 먹거리 시스템은 누구에게나 주어진 평범한 유산이며 또한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부의 한 형태였다. 그것들은 우리 모두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며 그래서 어떤 점에서는 우리 모두의 일부이기도 하다. 세계 어디에서든 아름다운 자연 경관이란 인간과 자연의 교감, 상호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그것들은 역사를 통해 자신을 드러내어 왔으며 우리의 문화와 의식 속에 깊게 자리하고 있다. 영국 농촌의 목가적인 풍경에서부터 일본의 다양한 사토치里地까지, 아시아의 계단식 논밭과 나무와 채소가 있는 텃밭에서부터 아프리카의 사바나에서 아마존 숲까지, 그것들은 지역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안정적이고 지속가능한 공공의 재산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었다. 또한 그것들은 지역민들 누구나 알고 있으면서 편안하게 느끼는 곳, 지역민들이 활동하고 삶을 누리고 있는 곳에 놓여져 있었다.

우리는 어떤 것에 대해 소유권을 갖고 있다고 느낄 때 그것이 설령 엄밀히 따져 합법적이지 않다 하더라도 우리의 생계를 그것에 의지하고 있다면 우리는 그것을 정성껏 돌보고 가꾸게 된다. 그것을 또한 우리가 잘 돌보고 잘 살피고 그 가치를 고마워한다면 우리는 외부의 위협으로부터 그것을 지키려 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그것을 잃거나 또는 잊어버려서 그것을 더 이상 돌보지 않는다면 힘 있는 기득권자들이 이런 공공의 재산을 전용하기가 더 쉬워진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자신들의 경제적 이득을 위해 필요하다면 그것들을 과감하게 파괴하기도 한다. 1만년이 넘는 동안 농부들은 세심하게 일일이 자연을 통제하고 관리하면서 버려진 황무지를 개간해 왔다. 그러나 그 세월의 반 밖에 되지 않는 지난 시간 동안 모든 것이 변했다. 농촌의 개발과 공업화를 부른 급속한 현대화는 우리의 땅과 음식 사이의 생태적인 연결 고리들을 무참히 부셔버렸다. 그리고 공공의 재화에 대한 공동 소유의 의미와 그를 지켜내려는 의지와 행동의 조직화를 억압해버렸다.

때때로 그런 단절은 의도적이기도 했다. 국가는 허가 없이 자원을 사용하는 사람들에 대해, 관행적인 규범을 따르지 않는 토지에 대해 특별한 단서 조건을 부과한다. 그들은 거친 이주자, 밀렵꾼 또는 무단 점유자들이다. 그리고 그들은 고리타분하고 미개한 사람들이며 그들의 땅은 불모지나 다름없다. 경관이란 것은 그들의 그러한 복잡한 자연의 다양성과 사회적인 다양성을 깨끗하게 청소하고 만들어진 것들이다. 생울타리와 늪지도 청소되었고 골치만 아픈 소수 종족과 가난한 빈민그룹도 함께 청소되었다. 이런 경관이 있는 곳에는 실질적이면서 드러나지 않은 공유지가 둘다 존재한다. 인도의 70만개 마을 대부분은 공식적으로 등록된 공유지를 갖고 있었다. 많은 지역민을 위한 필수적인 먹을거리의 원천과 연료와 사료 그리고 약품 등은 빼고 말이다. 북유럽에서 천년동안 공동 경작의 땅과 그곳에서 행해진 집단 농사가 공동체를 지켜왔다. 남유럽에선 아직도 고지에 있는 넓은 땅에서 가축들이 방목되고 있다. 영국과 웨일즈에는 8천개 이상의 공유지가 아직도 남아있다. 그 면적은 50만 헥터 정도나 되며 여러 세대에 걸쳐 지속성과 영속성을 지켜오고 있다. 그것들 대부분은 점점 증가하고 있는 공업화 경관에 비교하면 매우 고풍스런 풍경 그 자체를 연출하고 있다.

요즘 사람들의 생각과 관의 정책들을 보면 음식과 농사를 자연으로부터 분리시키려는 경향을 다분히 갖고 있다. 어떤 점에서는 오히려 그 분리를 더욱 가속시키기도 한다. 공유지들이 인클로우져 운동에 의해, 강제적인 초원 확장 정책에 의해 전용된 것처럼 먹을거리를 생산할 수 있는 공유지들은 강제로 강탈당했다. 오늘날 먹을거리는 광범위하게 문제점을 안고 있는 생산체계에 의해 재배되고 있다. 예컨대 그것은 바로 오염된 환경, 오염된 사회와 경제 등을 말함은 너무도 당연하다. 그럼에도 아직도 많은 사람들은 그 사실을 알고 있지 못할뿐만 아니라 다른 한편에선 너무 과도하게 신경을 쓰고 있어서 본질을 놓치고 있는지도 모른다. 환경과 건강이 망가지면서 그로인해 치러야 하는 손실 비용은 매우 엄청나다. 익명성과 균일성으로 만들어지는 음식 시스템의 결과는 비만과 다이어트 관련 질병들인데 그것에 시달리는 사람들은 자그마치 세계 인구의 10분의 1이나 된다. 그리고 반대로 7분의 1은 끊을 수 없는 가난과 기아에 허덕이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그렇다면 지속가능한 생각과 실천이 제시할 수 있는 대안은 무엇일까? 먹을거리에 대해 누구나 매일 느끼는 신뢰의 상실을 뒤집을 수 있는 대안이 있을까? 그리하여 소중하고 아름다운 우리 주변 자연의 경관들이 사라지는 것을 막을 수 있는 대안은 없을까? 그리고 자연과 문화를 다시 농사의 영역으로 끌어들여서 안전하고 풍부한 먹을거리를 생산할 수 있게 할 수는 없을까? 이런 질문들은 이 책에서 풀어야할 숙제들 중 일부이며 이는 농업에서 가장 의미있는 혁명과 긴밀하게 연관되어 있는 것이라 나는 믿는다. 몇 가지 주제가 제기될텐데 그 중 하나인, 자연과 경관에 대한 전통적 지식이란 우리에게도 익숙한 것이면서 동시에 우리에게 통찰력을 주고 특별한 환경을 풀어가는 데 밑받침이 되어 준다는 사실이다. 공동체는 그러한 지식과 노동을 함께 나누는 것으로, 지속 가능한 실천 곧 지역적으로 재활용이 가능한 자산을 만드는 일에 관여하는 일과도 같다. 이 책에서 다루는 공업화된 농업, 이른바 현대 농업이란 단일한 방법, 경직되고 단작화된 것이기 때문에 땅에 대한 많은 지식들을 파괴해 왔다. 그리하여 먹을거리를 단지 상품으로만 취급하게 되고 자연을 인간으로부터 분리된 존재인 것처럼 취급함으로써 공동체와 문화의 결합을 끊어버릴 우려를 안게 되었다. 그래서 자연과 지속가능한 먹을거리 생산 시스템은 재창조되어야 한다. 우리가 새로운 지식과 이해를 넓힐 수 있다면, 그리하여 더욱더 사람과 자연 사이의 유대 관계를 발전시킬 수 있다면 말이다.


세계적인 먹을거리 문제

그러나 왜 자연과 문화에 대한 이런 생각들은 농업과 뗄레야 뗄 수 없는 문제일까? 확실히 우리는 식량이 어떻게 증산되어 왔는지 알고나 있는 걸까? 개발도상국에서는 1960년대 초부터 식량 생산이 눈부시게 발전해왔다. 공업화된 나라에서 가장 최근의 농업혁명, 그리고 바로 직전의 녹색혁명을 통해서. 그리고 나서 전 세계 식량 생산은 145퍼센트나 증가했다. 아프리카에서는 140퍼센트 증가했으며 라틴아메리카에서는 거의 200퍼센트 증가했고, 아시아에서는 눈부신 280퍼센트 증가를 기록했다. 가장 기록적인 증가는 중국에서 일어났다. 자그마치 다섯배라는 기이한 기록을 세운 것인데 이는 대부분 1980년대와 1990년대에 일어난 일이었다. 그러나 미국은 40년 이상 동안 두 배밖에 늘지 않았고 서유럽에서는 고작 68퍼센트 증가했을 뿐이다.

같은 기간 동안 세계 인구는 30억에서 60억명으로 늘었다. 다시 일인당 농업 생산은 인구 증가보다 빨랐다. 1961년, 개인별로 볼 때 식량은 평균 25퍼센트가 남았다. 이는 비록 숫자 놀음처럼 보일런지 모르지만 거기에는 지역 간 중요한 차이가 숨겨져 있다. 아시아와 라틴 아메리카의 일인당 식량 생산은 각각 76퍼센트와 28퍼센트 증가하는 데 머물렀다. 그러나 아프리카는 1961년 때보다 10퍼센트 적은 식량 생산을 보이면서 더욱 좋지 않은 상황에 놓이게 되었다. 중국은 같은 기간 동안 다시 3배의 식량 증산을 보여주었다. 공업국에서는 전체적으로 비슷한 패턴을 보여주고 있다. 일인당 대략 40퍼센트 증가를 드러내었다.

그러나 생산 총량에서 이뤄낸 이런 성과들은 기아에 허덕이는 인구의 비율을 약간 줄여주었을 뿐이다. 21세기로 넘어가는 지금의 전환기에 세계적으로 거의 8억명의 사람들이 기아에 허덕이고 있거나 식량을 충분히 얻기 힘든 상황에 처해있다. 개발도상국에서는 그 비율이 놀랍게도 18퍼센트에나 육박하고 있다. 그 중 3/1은 동아시아와 동남아시아가 차지하고 있고, 나머지 3/2 중 반은 남아시아, 또 다른 반은 사하라 사막 이남의 아프리카가 차지하고 있다. 그리고 20분의 1은 각각 라틴 아메리카와 카리브, 북아프리카와 극동에서 차지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거기에는 약간의 반가운 진일보가 존재하고 있다. 영양실조에 걸린 사람들은 1970년에 9억6천만명이었는데 그 중 개발도상국의 3/1이 포함되어 있다. 그때부터 평균 일인당 영양 섭취는 하루 2,760키로칼로리로 17퍼센트 증가했다. 그러나 거기에는 꽤 많은 사람들이 그보다 적은 것으로 목숨을 이어가고 있는 현실이 감추어져있다.(사하라 남쪽 아프리카의 대부분인 33개의 나라들은 아직도 일인당 하루 영양 섭취가 2,200키로 칼로리 미만에 머물고 있다.) 넘어야 할 산은 아직도 멀고 먼 것이다.

거기에는 또한 공업화된 나라에서도 중요한 식량 문제가 있다. 세계에서 가장 큰 식량 수출국이자 생산국인 미국에는 1천만명의 사람들이 기아에 시달리거나 매우 위태로운 식량 부족 상황에 처해 있다. 더욱이 그 외 2천3백만명의 사람들이 기아의 언저리에서 맴돌고 있으며 그들이 지속적인 기아 상태에 빠져있지 않을 때만 빼고는 그들에게 식량 공급은 늘 불안정한 상태에 놓여 있다. 이 가운데 4백만명의 아이들이 굶주리고 있으며, 나머지 1천만명은 적어도 일년의 한 달은 굶주림에 시달려야 한다. 더욱이 불길한 조짐은 공업화된 나라에서 7명 중 한 사람은 병적인 비만에 빠져있다는 사실이다. 사망 원인으로 10명 중 5명은 음식과 관련되어 있는데, 가령 심장발작과 같은 심장 질환, 주요 암질환, 뇌경색, 당뇨병, 그리고 동맥경화 등이 그것이다. 놀랍게도 비만은 개발도상국에서 더 증가추세에 있다. 특히 브라질, 칠레, 콜롬비아, 코스타리카, 쿠바, 멕시코, 페루와 튀니지.

문명의 이기에서 볼 때 인간은 위대한 진보를 이뤄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에게 좋은 일보다는 나쁜 일이 더 많이 생기는 것만 같다. 전체적인 인구증가율만큼, 적어도 21세기 후반부까지, 식량에 대한 절대적인 수요 또한 증가했다. 수입의 증가는 사람들이 더욱더 많은 기회를 구매하려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는 음식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게 한다. 그러나 우리의 음식이 변화하는 만큼 음식의 형태에 대한 수요 또한 매우 빠르게 변화한다. 특히 증가하는 도시화는 사람들로 하여금 새로운 음식을 더욱 갈구하게 만드는데, 특히 육식을 더욱 갈구하고 반대로 전통 곡식과 그밖의 음식-미국 북캐롤리나 대학의 교수인 배리 폽킨Barry Popkin은 이를 영양의 천이nutrition transition라고 불렀다-을 적게 먹게 만든다.

세계적인 음식 체계에서 가장 중요한 변화 중에 하나는 축산물의 소비 증가로부터 올 것이다. 고기 수요는 2020년이 되면 두 배로 뛸 것으로 예측된다. 그리고 이는 농업에 큰 변화를 몰고 올 전망이다. 가축은 복합영농 체제에서 중요한 위치를 갖고 있다. 음식만이 아니라 사람이 먹지 못하는 농사 부산물을 순환시키기 위해서 더욱 그렇다. 그러나 농부들은 점점 가축을 집약적으로 사육하기가 쉬워지고 값싼 곡식으로 가축을 먹일 수 있다는 사실을 잘 알게 되었다. 그러나 이는 사실 알고 보면 매우 비효율적이다. 가령 1킬로그램의 소고기를 생산하기 위해서는 7킬로그램의 곡물이 필요하고, 돼지고기는 4키로가 필요하고 닭 같은 가금류는 2키로가 필요하다. 특히 대안적이고 효율적인 초지 방목 제도만큼이나 이처럼 비효율적인 것이 또 어디 있단 말인가. 

이런 음식 소비 형태의 변화는 곡물 수요량을 급격하게 늘려가게 만들 것이다. 별로 좋지 않은 소식은 바로 공업국과 개발도상국 사람들간의 음식 소비의 차이가 앞으로도 계속 지속될 것이라는 사실이다. 현재 공업국에서 년간 일인당 음식 수요는 곡물이 550킬로그램인 반면 고기는 78킬로그램이다. 그에 반해서 개발도상국은 곡물이 260킬로그램, 고기는 30킬로그램에 머물고 있다. 이런 차이는 우리 모두에게 심각한 우려를 갖게 하고 있다.


공유지와 연고

인간 역사를 통틀어 인간들의 삶은 하루라도 땅에서 벗어난 적이 없다. 유인원에서 분화된 이래 인간들은 35만 세대 동안 수렵 채집인으로 살아왔다. 그리고 600세대 동안은 농업인으로 살아왔고, 세계에서 일부 국가이기는 하나 8에서 10세대동안 공업인으로 살아왔으며 최근 후반부에서 와서는 대략 2세대 동안 공업화된 농업인으로 살아왔다. 우리는 여전히 자연과 긴밀한 관계에 놓여있다. 그럼에도 공업국에 사는 우리들 대부분은 그 사실을 잘 깨닫고 있지 못하다. 개발도상국에서는 많은 사람들이 여전히 자연에 깊게 묶여 있으며 비참할 정도로 가난과 빈곤에 갇혀있다. 공간에 묶여있다는 것은 하루 한끼밖에 겨우 해결하지 못하는 사람들에게는 별로 원하는 삶의 방식이 아니다. 더군다나 먹을 게 없고 책도 없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지 못하는 경우는 더욱 그러하며 자존심마저 내버려야 할만큼의 막벌이에 허우적되면 또한 더욱 그러할 것이다.

인간이 자연 그대로의 자원을 활용해 오는 동안 인간은 늘 집단(공동) 행동을 취해 왔다. 물을 끌어다 쓸 때, 노동을 나누고 판매 전략을 짤 때, 목축업자가 초원에서 협동노동을 할 때, 그리고 어촌의 어부 가족과 그들의 가족공동체가 어업 자원을 관리할 때 울력의 한 형태로 사람들은 늘 공동 노동을 선택했다. 그러한 울력의 형태는 많은 지역 조직에서 제도화되었는데, 가령 씨족 또는 인척 관계나 물 소비자 모임, 사회 감시팀, 여성들 스스로 돌보는 그룹, 청년, 귀농 실습 모임, 교회, 나무 협회, 노동 교환 협회 등을 통해 제도화되었다.

그런 모임을 통해서 건설적인 자원 관리 규칙과 규범들은 많은 문화 속에서 뿌리를 내렸다. 예컨대 이집트와 메소포타미아와 인도네시아의 집단적인 물 관리에서부터 안데스와 마른땅 아프리카의 목축까지, 북아프리카 로마와 남서부 북미에서 물을 끌어들이는 일에서부터 아시아와 아프리카의 숲 속 화전농경 시스템까지, 유럽의 공유지에서부터 일본의 이리아이치iriaichi까지 광범하게 존재했다. 지난 10년 이전만 해도 농촌과 농업 발전에서 지역적 제도화의 중요성이 인정되는 일은 매우 드물었다. 개발도상국과 산업국의 정책은 집단과 공동체보다는 개인들의 행동을 바꾸는 데 집착하는 경향이 있다. 또는 전통적인 공유지 관리는 불필요한 것으로 여기기 때문에 그보다는 자산을 통치하는 데 집착하려 한다. 그리고 동시에 현대 농업은 점점 농촌 공동체와 환경 모두를 파괴하고 있다.

고대에서부터 현시대에 이르기까지 농부들과 평론가들은 토지와 사람 사이의 깊은 유대가 갖는 중요한 의미를 강조해왔다. 2200년전 로마 작가인 마르쿠스 카토Marucus Cato는 자신의 책 Di Agri Cultura의 서두에서 농부에 대해 높은 평가를 아끼지 않았다.


우리 조상들은 농부를 가치 있는 사람으로 평가했는데, 농부야 말로 훌륭한 전문가요, 훌륭한 경작자라 했다. 이런 평가는 마땅히 받아야 할 가장 높은 극찬으로 받아들여졌다.


그는 또한 말했다. “당신이 방문하는 시골마다 살아있는 토지는 당신을 기쁘게 할 것이다.” 로마의 농민 작가들 곧 카토Cato, 바로Varro와 콜럼멜라Columella는 농사를 두가지로 나눠 표현했는데 그것은 토양agri과 경운cultura의 뜻이 합쳐진 것으로 해석한 것이다. 여기서 경운은 문화를 뜻하는 culture의 의미로 그것이 농사의 의미에서 제거되고 농사가 상품 생산으로 왜곡된 것은 매우 최근의 일이다.

농사를 중심으로 문화와 공동체에 대해 가장 위대하고 가장 오래토록 기록했던 나라는 바로 중국이다. 그 중 李文華Li Wenhua라는 사람이 B.C 1600-800년 동안 상나라에서 서주 왕조까지 어업과 축산, 임업, 농경을 망라해서 매일매일 기록한 것이 가장 오래되었다. 그 뒤 B.C 400년에 멘시우스Mensius는 이렇게 말했다.


“만일 한 가족이 누에를 치는 조그만 오디뽕나무 밭을 갖고 있고, 마당에는 양식이 될 가축이 자라고 있으며, 곡식으로 이용할 밭이 적당하게 잘 가꿔지고 있다면, 그것은 매우 풍요로운 것이어서 전혀 굶주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될 모습이다.”


자연 그대로의 자원을 지속가능한 방법으로 사용해야 할 필요성을 가장 최초로 인식한 사람 중에 하나인 그는 또 이렇게 말했다.


“숲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으면 목재와 장작은 늘 풍부하게 공급될 것이다. 적당히 큰 구멍으로 짜진 그물로 호수에서 고기를 잡으면 고기와 거북은 모자람이 없을 것이다.”


그 이후 다양한 사상가들이 지은 歷史春秋와 齊民妖術과 같은 책에서 공동체 경제에 대한 농적인 가치를 극찬하고 있으며, 환경 파괴 없이 먹을거리를 가장 지속가능하게 생산하는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또한 이 책들에는 토양을 비옥하게 하기 위한 윤작과 녹비 만드는 법, 자원에 대한 공동 관리 규칙들을 소개하고 논에서 물고기 키우는 법, 거름 사용법 등을 소개하고 있다. 李文華는 이어 이렇게 말했다.


“이야말로 목가적인 생생한 풍경 묘사이며 다양한 농촌 경제의 풍요로운 현장을 보여 주는 것이다.”


그러나 세기 후반부 들어 고대인들의 관념들을 단지 미신 내지는 민속 전통일 뿐이라고 폄하한 데카르트 식 환원주의와 계몽주의가 많은 것들을 변화시켰다. 그 중 16~17세기 후반 동안 프란시스 베이컨, 갈릴레오 갈릴레이, 르네 데카르트와 아이작 뉴턴의 실험과 관찰과 이론 등 모든 면에서 일어난 과학의 발전은 기계론적 환원주의, 실험적 탐구와 실증과학을 낳았고 이른바 과학혁명이라 할만한 일들을 만들어 냈다. 이 일련의 역사적 사건들은 그야말로 위대한 진보를 이끌어냈고 엄청난 영향력을 발휘했지만 이면에는 이로 인해 불행하게도 자연과 인간 사이에, 적어도 우리들 마음 속 어떤 부분에서 오래토록 이어질 갈등과 분열을 초래했다.

내가 나중에 얘기하겠지만, 19세기와 20세기의 농부들, 생태주의자들, 자연을 그리고 자연을 논하는 작가들은 새로운 사조들의 교만함을 지탄하는 한편 복고를 지향했다. 하지만 그것은 무거운 바위를 산꼭대기에다 올려놓아도 다시 굴러떨어질 것을 알면서 끝없이 바위를 끌어다 올려놓아야 하는 시시핀Sisyphean의 싸움과도 같았다. 아직도 자연과의 불가분의 관계를 이어가고 있는 사람들은 세계 여기저기 흩어져 있는 토착 원주민들이었다. 인류 문화와 자연과 땅이 이어가고 있는 유대감의 다양성을 가장 종합적으로 모아놓은 것이 바로 다렐Darrell 포세이Posey의 700페이지에 이르는 “생명다양성의 문화적, 정신적 가치”라는 책이다. 전 세계적으로 300여명에 가까운 저자들을 포함하고 있는 이 책의 하이라이트는 바로 “모든 생명의 보전이 갖는 문화적이고 정신적 가치의 중요성”이다. 지구 상의 이런 목소리는 인간이 자연과 관계를 맺으면서 서로 간에 이해와 존경으로 끈끈하게 그리고 폭넓고 친밀하게 유대감을 갖고 있음을 보여준다.

호주의 Poliding Tribe의 헨리타Henrietta 포마일Fourmile은 이렇게 말한다.


“인간이 땅을 경작함으로써 토지만 생기는 것은 아니다. 그에 근거해 이뤄지는 모든 생명의 순환도 그럼으로써 비로소 가능해지는 것이다. 인간이 토지에서 자기와 다른 특별한 종을 사냥하고 수집하는 일은 미래까지 포함한 지금의 현재를 잘 보전하는 데 달려있다. . . 호주에서 종종 야생생물이라 불리는 것들을 보면 사실 야생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우리가 늘 보전하고 지속적으로 지켜가야 할 것들이다.”


보츠와나에 있는 바칼라하릴Bakalaharil 부족의 페라Pera는 자원을 사용하고 유지하는 자신들의 태도를 지적했다.

“우리가 먹는 음식 중에 일부는 야생에서 왔다. 과일도 그렇고 고기도 그렇다. . . 우리는 늘 종자를 편한 마음으로 보전해 왔지만 어떤 수집자들은 보전이란 전혀 먹지 않는 것이라 한다. 그러나 우리에게 보전이란 그것을 먹는 것을 뜻한다. 그러나 우리는 그것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내일도 내년에도 그것을 변함없이 먹을 수 있다.”


유목민 사미Saami의 요한 매티스 튜리Johan Mathis Turi 는 노르웨이 북극에서 


“순록은 이곳에서 자연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 나는 자연이 주는 무엇이든 사냥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우리의 일상적인 삶은 순록 주변을 맴도는 것이었는데 이는 우리만의 특이한 시간관리 방법이었다. 어떤 일들이 생겨났는지 아주 특별한 세부 사항 또는 특별한 발생 사건들을 설명하기란 나에게는 힘든 일이다. 이는 나의 일상적인 삶, 나를 둘러싼 자연은 매우 종합적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모든 것을 품고 있다. 우리는 이를 ‘랏완투아’lotwantua라고 말하는데 이는 모든 것을 품고 있음을 뜻한다.”


이와 유사한 관점이 북캐나다 이누이투 사람인 감마일리 킬루키시하Gamaillie Kilukishah이다. 미카 마이크Meeka Mike가 번역한 것에 따르면,


“당신은 토지와 동물과 식물 간의 변함없는 유대 관계 속에 있어야 한다. . . 감마일리는 성장기에 동물들로부터 생존하는 방법을 배웠듯이 동물들을 존중하는 방법을 배웠다. 동시에 그는 동무들을 친절하게 만나듯이 동물들을 친절하게 대하는 법을 배웠다.”


이누이투인의 이런 관점은 북극 어디에서든 통하는 평범한 얘기다. 피크렛 버크Fikret Berke는 캐나다 동부 아sub-북극 사람들인 크리Cree족이 어떻게 비버, 북미산 순록과 물고기를 세심하게 관리하는 지 그 방법을 기록했다. 약 4,000~5,000년 전 빙하가 그 지역을 분리시킨 이후 한 번도 크리족은 지역내에서 그들이 먹는 종을 멸종시킨 적이 없다. 버크는 이렇게 말한다:“사냥꾼은 종의 숫자가 어떻게 변천해왔는지 또 종의 서식지와 그들의 먹이사슬에 대한 전문가나 다름없다.” 특히 비버를 관리하는 그들의 방법은 매우 지혜롭다. 크리족 커뮤니티는 먼저 비버 사냥을 감독하는 집사나 비버 사냥 대장을 임명한다. 그는 옛날 사람들의 비버 사냥법이나 비버가 현재는 얼마나 많이 있는지를 아는 전문가이자 비버 사냥할 때의 신호법과 규칙을 이끌어갈 줄 아는 사람이다. 사냥법의 핵심은 균형을 유지하는 데 있다. 만일 비버들이 너무 많아서 버드나무와 포플러가 한계점에 다다를 만큼 감소하기 시작한다면 비버들은 다시 많은 수가 사라지게 되고, 그렇게 되면 전체적인 시스템이 다시 복구되는 데 많은 세월이 걸릴 것이다. 크리족의 관리법에는 생태계를 보호하기 위해 사냥을 4년마다 한 번씩 하는 것이 있다. 버크는 이런 균형을 지키는 크리족의 특이한 방법을 소개하고 있다. “이들의 사냥법을 원리적으로 말하면 사냥꾼이 아닌 동물을 통해 사냥을 조절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그래서 마치 사회적 관계처럼 사냥꾼과 동물 사이에는 마치 사회적인 상부상조 관계가 존재한다. 크리족에게는 사람과 동물 간에 근본적인 차이는 없다. 

몇몇 사람은 공동 자원의 붕괴를 불가피하다고 믿기도 한다. 피할 수 없는 비극처럼, 또는 30년보다 더 이전에 이미 그것을 경고했던 가렛 하딘Garrett Hardin처럼 말이다. 가축을 더 투입하면 이익을 끌어낼 수 있기 때문에 공유지에서 다른 소들의 방목을 강요당했다고 느끼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그 비용은 공유지를 사용해왔던 모든 사람들에게 떠 넘겨졌다. 현대 관점에서 보면, 오염원을 배출하는 사람들은 온실가스를 지속적으로 배출하면서 눈앞의 이익을 챙기면서도 오염을 줄이기 위한 비용 또는 환경개선 분담 비용을 지불하지 않으려는 것과 비슷하다. 그렇지만 그 비용은 우리 모두 뿐만 아니라 기후 변화로 인한 비용을 지불해야 할 미래 세대도 함께 부담지게 되어 있다. 다른 이론가들은 거의 다 비관적이다. 만자 올슨Mansur Olson은 강요 또는 회유책이 아닌 한 ‘계산적이고 사적 이익을 추구하는 개인들은 공공 또는 공동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는다.’고 했다. 이는 바로 무임승차객의 문제를 제기하는 것으로 이익을 취하면서 그것을 다시 환원하지 않으려는 개인들을 말함이다. 무임승차는 늘 사람들을 유혹한다. 

국가가 공공의 재산을 민영화거나 개발전략에 직접적으로 개입해야 한다는 논리는 잘 파악해야 하다. 이런 국가의 의지는 100년 동안 지속되어 왔는데 20세기 말 모더니즘 실험에 와서는 더욱 가속되고 있다. 그러나 아직도 세계 곳곳에 생산적인 공유지는 유지되고 있다.

지역 내 뿌리를 내리고 있는 공동체 조직들이 없어지면 지역 내 천연 자원은 더욱 훼손당하게 되어 있다. 인도에서는, 공공 자원에 대한 관리 체계가 약화되면서 과잉개발, 빈곤한 양육비, 건강 악화라는 점에서 지난 반세기 넘게 중대한 문제가 관찰되었다. 지역의 공동체 조직들이 사라지게 되면 국가는 지역 내 자원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게 된다. 자원이란 지역 사람들에 의해서는 관리될 수 없다고 판단하기 때문에 그런 착각은 광범위하게 일어난다. 그러나 이런 방법으로는 지역의 환경과 지역 사람들에게 돌아갈 이익이 별로 없다. 그래서 문제의 핵심은 자연과 공동체의 위기로 인한 공유지의 비극을 우리는 어떻게 피할 수 있는가에 달려 있다. 그럼에도 이런 지역들에서 매우 많은 영웅적인 민주화 사례들이 만들어지고 있으며 왜 그곳엔 농사와 먹을거리 시스템에 대한 새로운 미래의 희망이 증가하고 있는지 알 수가 있다.


만들면서 동시에 만들어지다


땅과 자연의 깊은 소통이 우리에게 무슨 가치가 있는지 잘 느끼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들에게 그것은 토착 원주민 또는 외딴 오지의 부족민을 위한 것 아닌가? 유용한 의미와 가치가 과연 자연과의 소통이라는 추상적인 관념에서 나올 수 있는 것인가?하는 의문을 갖고 있다. 그러나 무엇보다 우리는 현대 도시 사회에서는 결코 자연을 충분히 누릴 수 없는 것처럼 보인다. 도시에 사는 사람들은 시골의 전원생활을 잃어버린 것을 아쉬워한다. 그들은 어쩌다 주말이나 일요일에 시골에 놀러가기도 하지만 다시 돌아오지 않고 그곳에 머물러 살고 싶은 욕망을 느끼곤 한다. 산업사회에서 환경단체의 회비는 결코 비싸지 않지만 조금씩 늘고 있다. 시골에 고향을 두고 있는 많은 개발도상국의 도시 사람들은 경험상 시골로 가려고 하지 않는다. 만일 당신이 나이로비에서 다카까지에 있는 도시의 거주자들에게 "당신은 어디에서 살고 있습니까?“라고 물어보면 그들은 아마도 되도록 시골 마을의 이름을 대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가족은 아직도 농사를 짓고 있으며, 그들은 농장과 자기 가족을 위해 도시에서 돈을 벌고 있다. 이것이 어쩌면 눈에 보이는 실질적인 소통일지 모른다.

그러나 여전히 자연과 깊은 소통은 기본적인 권리이자 필요이다. 그러나 그 소통이 끊어지고 그래서 우리는 그것의 소중함을 스스로 버리고 나면, 그 후에는 다만 가끔 찾아가는 방문이나 아니면 어릴 적 추억으로만 만족한다. 그러나 그것은 아직 거기에 존재하고 있다. 그리고 그것은 여전히 가치를 갖고 있다. 도시의 공동체 농장이 정신적으로 건강이 좋지 않은 많은 사람들에게 마음의 평화와 가치를 안겨다 준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 아닐까? 우리는 한 평생을 살면서 자연을 가꾸고 자연은 우리를 가꿀 것이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자연과의 소통이 낳은 새로운 산물의 하나라 볼 수 있다. 우리가 자연으로부터 분리된다면 우리는 갑자기 뭘 할 수 있는 게 없다. 만일 그렇게 된다면 우리는 우리끼리 우리 안에서 뭔가 전혀 다른 황무지를 개간해야 한다.

우리가 만든 공간 위에서 우리의 창으로 보는 세계는 모두 우리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멀리서 보면 그 세계는 물론 어떤 너무 뻔해서 시시하게 만들어진 것보다는 대단할지 모른다. 그러나 이는 우리의 스케일이 아니다. 비록 그것의 영향이 종종 더 대단할지 모르나 우리는 오히려 더 지역적으로 존재한다. 우리가 우리 주변에서 볼 수 있는 것들은 다 우리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다. 농업 경관도 분명이 만들어진 것들이다. 그것이 아시아의 산 구릉에 만들어진 다랑이 논이든, 북미의 대초원 농장이든, 유럽의 완만한 구릉지에 조그만 밭들이 조각보처럼 이어져 펼쳐진 밭들이든, 다 마찬가지다. 그러나 대부분의 자연적인 경관, 야생의 경관조차 또한 사실 자연과 인간 간의 상호 작용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라 보아야 한다. 진실로 완벽한 야생이라고 할만한 숲은 거의 없다. 대부분 인간의 작용에 의해 영향 받아 왔다. 심지어 아마존의 열대우림과 북단 툰두라의 수풀림조차도 말이다. 이상하게도 인간과 자연과의 상호 소통에 대한 현대의 논쟁들은 대부분 자연이 인간에 의해서 영향받은 것에만 초점이 맞춰져 있다. 그런데 사실 그것은 방정식의 두 번째 부분, 그러니까 우리는 인간보다는 특히 자연 그 자체에 의해 만들어졌다는 사실을 완전히 받아들이지 않는 것과 같다.

우리는 또한 우리가 먹는 음식들에 의해 만들진다. 다시 그것들은 자연을 만들고 그 원천에 의지한다. 우리는 우리가 인정하든 말든, 그 음식 시스템이 지역적이든 거리가 멀리 떨어져있든, 우리가 알고 있는 이런 시스템에 영향을 받고 있다. 우리는 당연히 음식 그 자체에 의해 만들어진다. 음식이 없이는 우리는 존재할 수가 없다. 그것은 있으면 좋고 없어도 그만인 그런 것도 아니며 당연히 무슨 패션 스타일 같은 것도 아니다. 우리가 음식을 선택하면 그것은 본질적이든, 비본질적이든 우리와 자연에 영향을 미친다. 우리가 선택한 음식 중에 하나는 자연에 좋지 않은 영향을 주고 또한 우리 몸에 좋지 않은 질병을 가져다줄 수 있다. 그렇지만 다른 하나는 우리를 건강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지속가능한 먹거리 생산 시스템으로 자연도 지속가능하게끔 만들어 줄 수 있다. 이것은 단순히 이분법을 말하고자 함이 아니라, 자연에 대한 이런 근본적인 연관성을 받아들이게 됨으로써 우리는 나 자신만이 아니라 집단적이면서 전 지구적인 안목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이런 자연과 인간의 근본적인 상호 소통은 철학적이면서 정신적이고 동시에 물질적이다. 우리가 음식을 구입하게 되면 그 음식 생산시스템도 동시에 구입하는 셈이다. 실제로는 음식을 먹으면서 우리는 동시에 그 음식을 만들어낸 풍광도 소비하는 셈이다. 그러니까 하나 이상을 소비하는 것은 그 이상이 생산되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생산 시스템이 부정적인 쪽으로 영향을 미친다면, 구체적으로 말해서 생산 시스템이 근거하고 있는 자원을 돌보지 않는다면 우리는 결국엔 재앙으로 내 몰리게 될지 모른다. 다른 한편 만일 우리가 자연을 더욱 살찌우는 농업 생산 시스템의 음식을 선택한다면, 동시에 그것이 음식을 생산하면서 자연도 보호하는 것이라면 이는 더욱 우리를 재앙이 아닌 지속가능한 길로 인도할 것이다. 우리는 지금 이런 새로운 길을 만들어야만 한다. 우리는 그 길을 걸으면서 또한 우리 자신을 변화시켜갈 것이다. 우리는 적응하면서 진보할 것이고 자연과 인간의 새로운 소통이 이뤄질 것이다.

그것이 좋은 것이든 나쁜 것이든 다 포함해서 자연은 이런 소통을 통해 수정되고 다시 다듬어질 것이다. 그러나 자연을 파괴하고 나서 인위적으로 보호한다고 특정 주제로 만든 공원으로 꾸며놓았을 때 가장 최악의 경우가 생길지 몰라 걱정은 된다. 손해날 일을 걱정할 필요는 없다, 원래 것보다 더 좋게 만들 수 있다고 말할 수는 있을 것이다. 그러나 자연이 인위적으로 꾸며졌을 때 결과는 너무 참람하다. 풀과 나무는 플라스틱으로 만들어지고, 모래는 바닷가 해안을 새로 만드는 데 수백만톤씩 깔려지며 바위는 자연스럽게 보이게 한답시고 시멘트로 위장해 만들어진다. 그러나 이것들은 자연의 본질을 외면하고 참으로 이해할 수 없는 일이며 도시적인 삶에 색다른 맛을 줄지라도 결코 자연의 가치를 축소시키지는 못한다. 그것은 위대한 의미와 가치를 지닌 실제 세계를 단지 디자인한 것일 따름이다.


소통할 수 없는 이원론

자연이 우리의 일부분인가, 아니면 우리는 초월적 존재인 정원사의 한 관리 대상일뿐인가? 아니면 어쨌건 인간으로서 우리는 자연과 동떨어진 독립된 존재인가? 이는 유럽인들에게 새로운 사고방식을 던져준 뉴튼의 역학과 데카르트의 기계론적 자연관, 곧 계몽주의 시대 이후 많은 철학자들과 과학자들, 사상가들에게 던져진 질문들이었다. 결과적으로 그것은 많은 사람들 마음속에 자연과 점차적 소통의 단절을 가져다주었고, 자연과 인간이라는 분리된 두 개의 독립체를 심어주게 되었다.

최근 몇 년 동안 지속가능성에 대한 관심이 증가하면서 환경문제, 종다양성, 그리고 많은 다양한 유형학은 얕든 깊든 녹색 사고방식의 범주를 발전시켜왔다. 안 네스Arne Naess는 얕은 생태학을 자원 활용의 효율성에 집중된 접근법으로 이해한 반면 깊은 생태학은 생명중시 가치를 위한 보존을 능가한다. 다른 유형학은 도널드 워스터Donald Worster의 제국적이고 아르카디안적인 생태학을 포함하고 있으며 아울러 자원과 보존을 위한 전인적 학파도 포함하고 있다. 한동안 근본적인 분열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자연은 우리와 독립적으로 존재하는가, 그리고 그것은 포스트모던한 것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아니면 포스트모던한 조건의 한 부분으로 규정할 수 있는가. 과학적인 생태주의자들에게도 자연은 존재한다. 그러나 포스트모더니스트에게 그것은 모든 문화적인 해석에 다름 아니다. 진실은 확실히 자연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사회적으로 그것이 우리에게 의미하는 바를 해석한다. 그러한 의미와 가치는 시대를 넘어 그리고 다른 인간들 그룹들의 관계를 넘어 변화한다.

인간을 자연으로부터 분리한 경직된 이원론은 많은 위험한 요소들을 갖고 있다. 우리는 자연 속에 운명적으로 묶여있기보다는 그래서 그 시스템의 한 부분이기보다는 독립적인 관찰자이자 객관적인 존재라고 주장한다. 우리는 세계와 상호작용하고 세계는 우리와 상호작용하는만큼 세계에 대해 알고 있다. 그래서 이런 우리의 관점이 아무리 잘났다 해도 우리는 다른 사람의 생각들을 들을 줄 알아야 하고 그들의 행동을 주의깊게 살펴봐야 한다. 문제는 자연이 마치 공원의 울타리처럼 경계선을 가지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는 사실이다. 자연에선 늘 부분보다 전체가 더욱 중요하고 다양성이라는 중요한 결과를 낳기 때문에 그 점에서 볼 때 자연을 울타리 짓는 일은 많은 문제를 야기한다.

이는 필연적으로 고립된 보호 지역을 만들어낸다. 가령 인디언 보호구 같이 사회적으로 고립된 지역이라든가, 또는 차이나타운 같은 지역, 국립공원 같은 자연 고립지역, 과학실험을 위한 특수 지역, 동물원 같은 보호 지역 같은 것들이 그것이다. 이런 고립된 보호지역이라는 관념은 사람과 자연의 소통으로부터 우리를 단절시킨다. 그리고 종다양성과 종의 보존이란 특정 한 장소에서도 존재할 수 있으며 그 외 다른 장소에서는 산업적인 농업 생산이 이루어져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 생산 활동이 당신에게 고작 맛있는 몇 조각의 음식을 제공해준다는 것 때문에 그로인해 공공의 자연 경관이 훼손되는 것을 당신은 받아들일 수 있을까? 당연히 아닐 것이다. 이런 고립 지역은 늘 위협적인 울타리 아래에 놓이게 마련인데 이렇게 작은 규모에서는 생태적으로도 그렇고 사회적으로도 독자 생존하기 힘들 수밖에 없다. 그것들은 다만 그들을 보호한다는 얄팍한 명분으로 작용하기도 하는데, 사실 그 작은 공간에서 원래 있었던 자연의 역사가 지속되도록 한다 하지만 그것은 자칫 더욱 더 큰 파괴를 정당화할 수 있다.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는 이원론은 또한 그 자신에 의한 자연 훼손을 막을 기술을 발명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뭐라 정의하기 어려운 이 대담한 전망은 전체적으로 보고 그것을 재구성할 방법 찾기를 포함하고 있다. 인간과 자연을 분리하는 데카르트의 ‘이분법either-or'은 많은 인류 문화에 대해 낯선 관념을 남겼다. 그러나 우리를 배후조종자로 자리 잡아준 그것은 자연으로부터 인간을 분리하는 모더니스트들의 사상일뿐이다. 페루의 아세닌아Asheninha에서 아프리카 자이르Zaire의 숲속 거주자들에 이르기까지 사람들은 그들 자신을 더 큰 전체의 한 부분으로 본다. 그들의 자연에 대한 태도는 변증법적이고 유기체론holistic적이며 양자택일의 ‘이분법either-or’이 아닌 ‘서로 함께both-with’에 기초하고 있다.

페루의 열대우림 속 아라쿰부Arakmbut 족에 대해 앤드루 그레이Andrew Gray는 “인간과 동물 그리고 영혼에 이르기까지 그곳에는 모두가 서로 묶여 있는 집단적 삶의 한 부분으로서 고립된 종이 하나도 없다’고 말했다. 신화와 제사는 두 가지 차원의 내적인 상호관계를 잘 표현해주면서 그것을 더욱 강하게 묶어주고 있는데, 두 가지 중 현실적인 차원은 사냥꾼이 사냥해온 짐승과 그 고기를 나눠주는 방법과 같은 것을 말하고, 다른 하나인 정신적 차원은 짐승과 인간과 영혼의 혼미한 관계를 뚜렷이 구별하는 것을 말한다. 유형 무형으로 가장 잘 알려진 소통 중의 하나는 호주 원주민들의 고대 전설 ‘꿈의 시대Dreamtime’의 얘기이다. 호주의 원주민은 3만년 넘게 살아왔다. 그동안 서로 다른 언어를 가진 약 250개의 집단들이 자신들의 환경과 함께 평화적인 관계를 발전시켜왔다. 데비드 베넷David Bennett은 이렇게 말한다.


원주민들은 자신들의 조상들과 직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믿었다. 왜냐하면 조상들은 자신들의 고향과 분리할 수 없는 관계를 맺고 있으며, 자신들 또한 자신들의 고향과 직접적인 관계를 맺고 있기 때문이라고 믿었다.


이러한 관계는 이른바 고대 전설의 시대인 ‘꿈의 시대Dreamtime’, ‘머나먼 꿈 속Dreaming’에서 만들어진 것으로 풍광 속에서 자연과 하나로 살던 고대인들의 가치와 이상, 그리고 표준을 형성했던 때였다.

원주민 집단들은 조상들에 의해 일구어진 자신들의 대지가 어떻게 창조되었는지 그에 관한 신화를 다 갖고 있다. 이런 신화들은 지금도 사람들을 토지와 깊게 관련짓고 있다. 그런 토지는 양도할 수가 없다. 그것은 상품이 아니기 때문인데 그래서 교환될 수도 없다. 많은 일들이 그곳에서 일어나고 벌어지며, 사람들은 그곳에 삶을 투자하고 끊임없는 토지와의 소통을 이어간다. 그런 토지를 소유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기 때문에 어떤 점에서는 모두 다 토지를 소유하고 있는 셈이다. 베넷이 말한 대로, “토지를 사용하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고향’인 토지를 지속가능하도록 관리하고 지켜가야 할 공동의 책임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런 토지를 물려받은 지금의 후손들은 당연히 지켜야 할 공공의 책임과 바람을 얼마나 많이 저버렸는지 그것을 생각하면 할수록 참으로 슬픈 일이 아닐 수 없다.


들녘이라는 관념

버려진 땅이라는 관념은 19세기 중반 사람들의 마음을 자극했다. 그 중에도 자연과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철학을 제기했던 헨리 데이빗 소로우Henry David Thoreau와 존 미르John Muir라는 작가들의 영향력이 컸다. 이 관념은 사람들이 행복해지는 데 갖고 있는 황무지의 가치를 인식시키면서 더 커져갔다. 토지 없이 우리는 아무 것도 아니며 토지와 함께 우리는 삶을 누리고 있다. 소로우는 1851년 이런 유명한 말을 남겼다. “황야에서 산다는 것은 이 세상을 지키는 일이다.” 미르는 이런 말을 했다. “황야는 필수품이다. 산 공원과 인디언 보호지역은 목재와 수원의 원천으로서 뿐만 아니라 삶의 원천으로서도 유용하다.” 그러나 로데릭 나쉬Roderic Nash, 맥스 오웰슬레저 Max Oelschaeger, 시몬 슈마Simon Schma와 다른 많은 평론가들은, 황야에 대한 이런 관심은 빼앗기지 않은 땅을 지키는 것보다 더 많은 것을 선사해줄 것이라고 했다. 그것은 더욱 심오한 아이디어를 품고 있는데, 실제로 존재하지 않아서 한 이미지에 불과하더라도 그로부터 북미와 유럽인들에게 자연의 근본적 가치를 깨닫게 할 수도 있다. 

그 후 발견된 풍광이 처녀지인지 사람 발길이 닿은 땅인지 상관없이 논쟁은 더욱 격렬해졌고 원주민들의 죽음 뒤로 남겨졌다. 황야는 원래부터 그 자리에 존재했었나? 아니면 우리가 그것을 만들었는가? 환경 역사가인 도널드 워스터Donald Worster는 북미에 대해, "그 대륙은 단지 성별을 표시하기에는 종이 꽤 다양하여 형용하기에도 꽤나 쉽지 않다"는 것을 지적했다. 다시 말해, 오로지 그들이 만들었기 때문에 이 아이디어는 하나의 실수라는 것을 말하는 의미는 아니다. 그럼에도 황무지, 가령 요세미티 계곡은 인간의 손에 닿지 않았다고 말하는 것은 옳지 않다. 이런 자연이나 서식지는 아하니치나 다른 원주민 그리고 동식물상의 가치를 높이기 위한 관리 노력들에 의해 의도적으로 조성되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헨리 데이빗 소로우는 관찰자로부터 자연을 분리시킨 기계론에 대한 근본적인 비평을 하면서 자연 속에서 복합적으로 얽혀있는 존재로서 인간과 문화에 대한 그의 생각을 발전시켰다. 소로우는 자연과 인간 사이에는 유기론적인 소통으로 엮여있다고 생각했다. 자신의 「자연 역사」에서 소로우는 '직접적인 교류와 공감'에 의한 배움을 극찬하고, 경험에 입각해 도출되면서, 연역과 귀납의 과학으로 엮여진 현장 지식의 과학을 강조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인간 손에 닿지 않은 처녀지라는 핵심 아이디어를 포기하지 않았다. 자신의 고향인 메사추세츠가 일찍부터 이세기 동안 식민화된 적이 있었고 그곳의 자연과 지역 원주민들을 길들이는 긴 역사를 갖고 있었음에도 말이다. 

자연은 우리가 개인적으로 벗어날 수 있는 어떤 것이다. 소로우는 걸으면서 느끼는 리듬과 주위를 세심하게 관찰하는 일을 극찬했다. 


땅을 경외감을 갖고 바라보라..... 여기에는 인위적으로 가꾼 사람의 정원이 없다. 내가 선물로 받아 이곳으로 갖고 들어온 지구본 말고는 말이다. 그것은 잔디밭도 아니고, 목초지도 아니며 초원도 아니고 숲도 아니다. 당연히 농경지도 아니고 쓸모없는 땅도 아니다. 그것은 지구라는 행성이 가져다 준 신선하고 자연적인 표토 바로 그것이다. 영원히 그래왔던 것처럼 계속 그렇게 만들어져 왔고 앞으로도 계속 만들어질 것이다.


여기에서 서술하고자 하는 중요한 것은 독자에 대한 큰 영향력을 가진 소통의 비극적 묘사와 본질적 가치이다. 그것은 아마 자연을 구성했던 다른 것은 제외하고 소로우가 주목한 ‘선물하지 않은 지구본’과 ‘신선하고 자연적인’ 것에 대한 작은 대가일 것이다. 이 숲은 물론 앞선 사람들의 어떤 방법에 의해 만들어졌을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사람이 우연히 지나치기 전까지 그냥 있었던 황야의 한 자투리가 아니라 사람과 자연의 협동 결과물이다.

‘사람 손이 가지 않은 경관인가’, ‘아니면 그것은 관리된 경관인가’라는 질문은 아마도 불필요하고 장황한 논쟁을 유발할 수 있는 쓸모없는 잘못된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자연 속에서 일부이자 자연의 조정자라는 개념 아닐까? 때때로 그러한 조정은 전혀 아무 것도 하지 않는 것을 뜻하기도 하는데, 그러니까 아무 손길이 닿지 않은 ‘거친’ 상태의 경관으로 남기는 것, 또는 아마도 도시의 이웃 간에 마지막 남은 방어용 나무들이나 들녘의 생울타리 정도의 의미일지 모른다. 그렇지만 오히려 조정이란 경관에 대한 적극적인 접근이자 세밀한 관리를 의미하는 것 아닐까. 또는 그것은 땅에 대한 강력한 재구성이 아닐까. 그것이 좋은 것이건 나쁜 것이건 말이다.

전혀 손길이 닿지 않고 완전히 새로운 것이 실제로 존재하는지 아닌지는 중요한 문제가 아니다. 자연은 우리 없이도 존재하면서 또한 우리와 함께 형성되고 재형성되는 존재이다. 오늘날 존재하는 모든 것들은 음으로 양으로 인간의 손에 의해 영향받고 있다. 인간의 숫자가 늘어날수록 인간의 영향은 더 커질 것이고, 인간의 소비 패턴이 그 영향을 더욱 복잡하게 만들어 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지금도 여전히 전혀 손길이 닿지 않은 땅이 존재하며 매우 특이한 방법으로 우리에게 다가오는 경우가 존재한다. 어떤 것은 남극 대륙과 같은 대륙적인 경우도 있다. 그 외 다른 것들은 대부분 지역적으로 존재한다. 가령 숲 속의 화전이라든가 바다 어귀의 해수 소택지, 또는 이해하기 힘든 도시 속 텃밭 등 이 모든 것들은 특별한 의미를 갖고 개별적으로 존재한다.

이는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자연은 개별적인 형태로 존재할 수 있음을 암시한다. 만일 우리가 강을 따라 펼쳐진 목초지를 가로질러 걷는 동안 잠시의 평화를 느낀다면 그것은 만들어진 자연, 곧 원시의 처녀지는 아니지 않은가? 원시의 처녀지란 하나의 관념이고 심오하면서 매력적인 존재이다. 뭔가가 경관을 만들고 있다면 그것은 거의 관찰하기 힘든 매우 미묘한 것일 수 있다. 니겔 쿠퍼Nigel Cooper는 다음과 같이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자연이 어떻게 자연보호구역일 수 있는가, 자연이란 개념이 어떻게 영국이라는 나라에 위치하고 있는 특별한 장소일 수 있는가, 그것이 니켈이 말한 ‘공생 장소’companion place로서 역사성을 가진 자연 공원, 사람 손길이 닿지 않은 원시 지역, 생물 다양성이 보존되고 있는 곳이라 하더라도 말이다. 우리의 농업 경관, 곧 투입한 만큼 많은 농업 생산물을 가져다 주는 곳에서 생물 다양성과 처녀지를 보존하려는 인식과 노력은 다양하게 펼쳐지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원시림과 대초원과 산악을 만들고 그것을 겪은 그들에 의해 매우 소중해졌다.

우리는 이런 모든 상황 속의 한 부분으로 연결되어 있으면서 자연과 토지에 영향을 미치고 또한 그것에 의해 영향 받고 있다. 그러나 ‘야생의 땅’이란 아무도 밟지 않은 완전히 인간으로부터 떨어져 있어 무엇보다 훌륭한 완전한 새 땅이라는 관점의 하나다. 사람들은 아이러니하게도 바로 그 속으로 들어가고 싶어 한다. 우리 앞에 펼쳐진 자연 경관이 어떻게 만들어졌는지를 이해하는 것은 진실과 다른 어떤 아이디어를 활용할 때 크게 문제가 된다. 한 아이디어는 이럴 수 있다. 곧 어떤 지역이 야생 땅이어서 그곳의 원주민들은 그로부터 떠나야만 한다. 반면 다른 아이디어에 따르면 어떤 지역은 개발될 가능성이 많아 지역 원주민들은 토지를 빼앗겨야 한다. 야생의 땅이란 말은 여러 의미들을 함축하고 있는데 대체로 사람들의 발길은 없고 야생의 동물들만이 출현하고 있는 곳을 뜻한다. 그러나 또한 그것은 사람들로 하여금 어떤 느낌과 감동을 일으키게 하는 그 어떤 것을 품고 있기도 하다. 로데릭 네시Roderick Nash는 특별히 유럽식 관점을 소개하고 있다. “어디로 가야할지 몰라 길을 잃고 갈피를 잡을 수 없는 곳, 이른바 야생의 땅, 처녀림이라 할 수 있는 곳”, 그러나 이런 정의는 삭막한 도시의 경관을 정의하기에 맞는 것일지 모른다. 중요한 것은 정의하지 않고 실제 있는 그대로, 그러나 우리가 생각한 그대로를 그에 관해 이야기를 하는 일이다. 



야생에 대한 추억과 이야기

풍경이란 이야기로 가득찬 곳이다. 그것은 우리가 돌로 또는 나무로 만들었다는 의미이며 처음부터 끝까지 우리 모두 함께 그 이야기를 만들었다는 의미이다. 이런 창조성은 자연을 위해 가외의 생명을 부여해주며 우리가 자연에 대해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지를 알려주고 자연에 의해 우리가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보여준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여전히 말하고 있다는 것이 얼마나 좋은 일일까? 벤 오크리Ben Okri는 자신의 책 이야기를 말하는 즐거음에서 아프리카를 말하고 있다.


“모든 것은 하나의 이야기이고, 이야기의 모든 저장소이다. 거미들, 바람, 낙엽, 나무, 달, 침묵, 힐끗 봄, 늙은 남자의 신비, 한밤중의 부엉이, 어떤 신호, 나뭇가지 위의 하얀 돌, 홀로 나는 노란 새의 징조, 불가해한 죽음, 가식적이지 않은 웃음, 강가의 달걀들은 모두 이야기로 가득 퍼지고 차고 있다. 아프리카에서는 비밀스런 욕망과 감정의 한쪽을 열게 될 때, 일이란 이야기 그 자체여서 그들은 이야기를 저장하며 그리고 그들은 꿈이 정당한 순간 바로 이야기를 만들어낸다.”


나는 나이지리아에서 태어나서 어린 시절을 그곳에서 보냈기에 아프리카의 이야기들을 많이 알고 있다. 그 때를 생각해보면 동물들과 함께 지냈던 기억이 가장 생생하다. 아마도 다른 대개의 어린이들도 나와 마찬가지일 것이다. 목욕탕에 뱀이 나타난 일, 숲 속에서 산책 중에 만난 사자, 길게 뻗은 빈 수영장에서 전갈에 쫓기던 일 등.... 또한 총에 맞아 죽은 거대한 쥐가 기억이 나는데 얼마나 큰지 주둥이에서 꼬리까지가 거의 내 키에 맞먹었다. 그리고 역시 총에 맞아 죽은 놈으로 지붕 위를 어슬렁어슬렁 걸어다니는 포악한 삵괭이도 있었다. 새장에는 노래하는 새, 큰 개, 애완 원숭이, 당나귀, 그리고 해질녘 아무런 소리없이 날아오는 과일박쥐도 있었다. 이런 기억들은 겨우 어린 시절을 보여주는 흐릿하기만 한 슈퍼-8 필름에 불과할지 모르나 여전히 많은 진실들을 증언해주고 있다.

아프리카는 어디에서든 그 어떤 곳보다 많은 얘기들을 품고 있다. 오크리의 암시처럼 어떤 점에서는 너무 많은 게 문제겠지만 너무나 많은 얘기들을 잃어버린 산업적 풍경들이 오히려 더 문제다. 우리는 이제 더 이상 그 심오한 의미를 알지 못하고, 또한 오래된 그 방법들을 모른다. 대부분은 잊혀졌거나 까먹었을 것 같다. 그러나 우리가 최근 10여년 동안 산업적 풍경 위에다 덧칠한 이 이야기들은 변형되어 너무나 이상한 얘기들로 왜곡되고 말았다. 올리버Oliver 레캄Rackham이 “나는 특히 잃어버린 기억에 영향 받았다. I am especially concerned with the loss memory.”에서 말한 것처럼 풍경 속에는 의미가 존재하고 있으며, 그래서 풍경이란 우리의 뿌리와 문명의 성장을 기록하고 있다. 

많은 작가들은 우리가 발견의 시대와 재발견의 시대 사이에 존재하고 있음을 말하고 있다. 우리는 근본적으로 의존적인 존재이며 인간이란 자연의 일부분임을 너무나 잊고 살아가고 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자연의 한계에서 벗어나 살고 있다고 착각하고 있다. .... 종종 한 꾸러미로 해서 비싸게 공급되는 음식은 흙이라는 원천에서 나온 흙의 일부분이며, 또한 거기에는 깃털 또는 비늘, 피, 그리고 흠집의 흔적들이 있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는 우리가 먹고 사용하는 물과 에너지의 원천을 잊고 있으며, 우리가 배설하는 쓰레기와 똥오줌이 또 어디로 가는지 잊고 있다. 참으로 우리는 잊고 있는 게 많다.


여기에는 어떤 생명이 있다. 우리가 이런 진실을 모르고 있는 동안 우리는 지구를 통제하고 있다는 이상한 이야기를 너무도 쉽게 믿게 되었다. 스즈키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찾아야 한다.” 이는 또한 토마스Thomas 베리Berry의 숙제이기도 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그것은 이야기에 관한 하나의 질문이다. 우리는 지금 선한 이야기를 갖고 있지 않아 곤란에 처해있다. 우리는 이야기 속에 존재하고 있지만 그에 딱 어울리는 옛 이야기는 더 이상 유효하지 않다. 그럼에도 아직 우리는 새로운 이야기를 배우지 못하고 있다.‘ 일 잘하고 큰 말 중에 하나인 서퍽 말의 고향 서퍽Suffolk은 영국 동부에 있는 지역으로 늘 생명 가득한 초원의 풍경이 펼쳐진 곳이었다. 오늘날 이곳엔 말 대신에 트렉터와 콤바인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고 생명의 풀들은 단지 잡초로 취급 받고 있을 뿐이다. 우리는 또 잊어버린 것이다. 이를 우리는 진보라고 할 수 있을까? 아니면 우리는 이를 두고 자연을 잘 이용하고 개발하기 위해 가치있는 새로운 길을 찾은 것이라고 할 수 있을까?

자연에 대한 풍부한 지식, 자연의 유용성과 의미를 잃어버렸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러한 이야기들을 다시 찾는 데에는 많은 시간이 걸린다. 그것들은 수많은 경험과 최소한의 통찰력, 그리고 그런 의의를 서로 나눌 줄 아는 것으로부터 만들어진다. 자연에 관한 이야기를 말할 필요성과 요구를 더 이상 찾지 못하게 되면 이야기의 줄기는 깨지고 만다. 당연히 그것은 숲의 나무를 베고 물을 오염시키며 흙을 강 속으로 침식시키게 하는 자들의 손에 달려 있다. 그러나 이웃과 함께 일하는 농부들, 농장과 직접 연결된 소비자들, 풍경을 즐기며 산보를 즐기는 사람들간에 공동체적 연대가 존재하게 되면 새로운 이야기를 창조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다. 그것은 나아가 잃어버린 것을 대체할 새로운 이야기를 재창조하는 것조차 가능하게 해줄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아직 우리는 토양과 자연에 대한 전통적인 지식과 우리가 현대 과학지식이라고 말하는 것 사이에서 혼란을 계속 겪고 있다는 사실이다. 우리는 대체로 같은 과학 지식 속에서 특별한 문제를 느끼지 않고 모순된 지식을 분명히 갖고 있다. 

10년 전, 케냐에서 공무원을 대상으로 교육할 때 나는 참가자들에게 그들이 알고 있는 전통 지식의 사례들을 열거해보라고 제안했다. 우리의 목적은 지역 사람local people들의 통찰력과 지식의 가치가 반영된 고도로 훈련된 전문가를 만들어내기 위한 것이었다. 이는 단지 전통지식이 더 좋은 것이라고 말하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은 충분히 들을만하고 또한 그래서 다른 지식, 곧 더 과학적이고 원초적인 것과 어울릴만한 가치가 있다는 것을 말하려는 것이다. 외딴 벽지에서 전통 공동체 생활을 하던 사람들은 콩과 식물이 토양 속에서 공기 중 질소를 고정하는 근류균과 상호작용하고 있는 자세한 구조를 알 수 없었다. 또한 그들은 오염원으로서 화학약품에 대해 이해도 할 수 없었다. 그들이 알고 있는 것은 개인적이면서 동시에 집단적인 경험의 축적으로 만들어지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구전을 통해 재편집되기도 한다. 작열하는 적도의 태양아래 첫 번째 시간에 우리는 익히 잘아는 관용어, 아이디어와 얘기들을 40개 이상 모았다. 그 중 많은 부분이 나무와 관련된 것들이었다. 곳에 따라서 아카시의 나무껍질은 말라리아 치료에 이용되었고, 그 재는 우유 생산을 촉진하고 맛을 좋게 해주는 효과가 있었다. 그외 나무들로 만드는 재는 곡식 재배하는 데 다양한 병을 예방하고 풀을 억제하는 데 뿌려졌다. 크로톤croton이라는 나무는 집 근처에 심지를 않았는데 그 나무의 뿌리가 집으로 뻗어들어오면 집 안 사람 누군가가 죽을지도 모른다는 믿음 때문이었다. 다른 어떤 곳에서는 여성들이 불임에 걸리게 된다 하여 숲 속 나무들로 결코 침대를 만들지 않은 데도 있었다. 에리트리나라는 나무는 아이들 볼거리를 치료하는 데 마법적인 소재로 각광받았다. 개 중에는 경험적인 근거 없는 미신적인 얘기이거나 아이디어인 경우도 있는 게 사실이다. 그러나 어떤 것이 근거 없는 미신에 불과한 것인지 아니면 더욱 더 진실된 것인지 구별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영국에서 식물과 동물에 관한 대부분의 전래이야기들은 1천년에서 2천년 전까지 켈트족, 로마, 앵글로 섹슨과 북유럽 전통에 뿌리를 두고 있다. 가령 떡갈나무 같은 것은 마술과 연관되어 있었고, 그 외 호랑가시나무(또는 iron tree)는 마녀를 격퇴하는 나무라 했으며, 그래서 번개와 불로부터 보호하는 나무라 했다. 다른 중요한 나무들의 예를 들어보면 딱총나무는 켈트 종교에서 성스러운 나무로 여겼고, 물푸레나무는 질병을 치유하는 나무로 유명하며 자작나무는 마녀의 공격을 막을 수 있고 산사나무는 우유생산량을 촉진하고 번개를 예방해주고, 주목나무는 묘지식물로서 죽음과 관련된 나무로 여겼다.

리처드 메베이Richard Mabey는 자신의 책 로라 브리테니카Flora Britannica에서 현존하는 12,000개의 교회 외에 잉글랜드와 웨일즈에 있는 약 500개의 교회 경내에는 교회 나이만큼이나 오래된 주목 나무가 심어져 있다고 했다. 최소 1000년 이상 된 그 오래된 나무들에는 많은 이야기와 전설, 그리고 문화가 축적되어 있다. 그 중 떡갈나무는 특별한 의미를 갖고 있는데, 예컨대 ‘떡갈나무의 심장은 우리의 배이며 떡갈나무의 심장은 우리의 남자들이다’라는 뱃노래는 2세기 이상에 걸쳐 국민적인 민요 중 하나였다. 떡갈나무는 아직도 많은 교회에서 볼 수 있듯이 잎으로 만든 화환을 만들 수 있게 해주고 이교도 ‘그린 맨’ 조각품으로 위장되기도 한다. 어떤 식물들은 공동체와 가족 문화에 깊게 관련되어 있는데, 특히 산앵두나무로 알려진 빌베리를 채집하는 관습이 대표적이다. 가령 8월이 되면 데번Devon 서머셋Somerset, 슈롭셔Shropshire 서리Surrey 주, 맨 섬Isle과 페나인 산맥 일대에 걸쳐 사람들은 온 가족과 함께 베리를 채집하기 위해 황무지로 떠나곤 한다. 이 채집에 나선 사람들은 온 정성을 다했다. 서부의 한 여성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는 그것을 온갖 정성을 다해 캤다. 마구잡이로 한 것이 아니었다. 거기에는 우리의 내일이 달려 있다는 것을 되새기면서....”

야생식물은 더 이상 생계를 유지하는 데 필요한 재료가 아니다. 영국인들은 야생식물 없이도 굶주림에 시달리지 않으며 그것을 옛날처럼 약으로 쓸 필요도 없다. 그러나 야생식물들은 여전히 문화적으로 중요한 의미를 갖고 있다. 우리가 사먹는 랩포장 과일이나 전자레인지 밥은 단지 상품일뿐이다. 그러나 많은 야생식물들은 마베이Mabey가 말한 것처럼 여전히 폭 넓은 중요성을 갖고 있다.


“식물은 문명이 시작된 이래 실용적인 쓰임새만큼이나 상징적인 증표를 나타내는 데에도 중요하게 쓰였다. 식물은 탄생과 죽음, 수확과 축제, 그리고 행운과 불행의 징조를 표현하는 증표로 쓰였으며, 또한 국가만이 아니라 마을과 이웃, 하다못해 개인의 피난처까지 그 위치와 정체를 표현하는 강력한 증표로 쓰였다.”


서양호랑가시 나무와 겨우살이는 기독교 축제와 이방인 축제 양쪽 다 관련되어 있다. 5월의 꽃은 그것을 집 안으로 가져 들어오면 좋지 않은 일이 생기고, 데이지는 아이들이 즐겨 화환으로 만들어졌으며, 말과 같은 조류와 솔방울은 날씨 예측에 사용되었고, weld와 woad는 청색과 노란색 염료를 만드는 데 쓰였으며, 샘파이어(미나릿과 식물)는 유리 공장에서, 실버위드(뱀딸기류)는 발이 아플 때, 노간주나무와 자두나무는 진토닉 맛을 내는 데, 헬레보레hellebore는 벌레 잡는 데, 쐐기풀은 관절염에, 그리고 호랑가시나무는 말을 몰 때 말을 제압하는 데 사용되었다. 자세히 들여다보면, 가장 흔한 동식물들, 아니면 경험적으로 증명된 낯설고 기이한 것들과 관련된 전통 문화를 찾는 일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우리가 식물과 동물들에 대해 알고 있는 지식은 비범하기까지 하다. 그것들은 우리를 공간과 연결시키주는 고리이며 추억을 정체성으로 연결시켜주는 고리이고 신화를 현실적 의미로 연결시켜주는 고리이다. 모든 것은 전통적이거나 아니면 오래된 것이다. 가령 최근엔 생활 의자나 말 구유를 만드는 데 금 간 젊은 버드나무가 폭넓게 쓰이는 것이라든가, 세계 1차 대전에서 기원한 것으로 전쟁 사상자들을 기억하기 위해 빨간 양귀비를 옷에 꽂는 것 등이 그것이다. 분명한 것은 이렇게 식물과 동물들을 문화적으로 활용하는 것에는 경제적 목적 이상의 것이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식물이 영원히 사라진다거나 나무가 잘리고 풀들이 떠나버린다면 문화 또한 그 상황과 관련될 수밖에 없다. 마찬가지로 그와 관련된 문화 지식들이 사라졌을 때 그리하여 뭔가 다른 것들로 대체되었을 때, 생물 다양성을 지키기 위한 여러 근거들도 사라지게 된다. 많은 농촌의 전통과 축제들이 더 이상 우리 현대 세계에서 어떤 중요성도 갖지 못하는 것은 매우 슬픈 일이다. 일찍이 그것들은 공동체 삶에서 중심적인 부분이었는데 말이다.

그러나 그런 다양한 지식과 중요성은 자연 자체가 다양할 때만이 제대로 의미가 살아날 수 있다. 통제하기 쉬운 대단위 단일경작은 자연의 산물인 야생의 음식을 보관할 창고도 없으며 자신들을 위한 문화적 가치들을 보관할 틈도 없다. 그것들을 원하지도 필요로 하지도 않는다. 그래서 그것들이 떠나버려 잃어버린 것은 단지 겨우 한 두 가지의 풀들이 아니다. 그것은 문화의 그 어떤 것, 사람을 땅과 연결시킨 문화적인 그 어떤 것인데 영원히 우리는 그것을 잃어버려 먼지 쌓인 책 속에서나 잠시 볼 수 있을 뿐이다. 


경계 지역에서 언어와 추억

자연과 우리 지구에 대한 많은 이야기들은 지역 방언, 곧 사투리 말들 속에 녹아 있다. 언어와 토지는 인간이라는 존재의 정체성의 중요한 부분이다. 그런데 지금 그것들은 현재 심각한 위협에 처해있다. 오늘날 구어로 쓰이고 있는 말은 5,000~7,000개나 되는데 그것은 대략 10,000명보다 많은 사람들의 반쯤 되는 숫자이다. 그 나머지, 약 3,400개의 언어는 8백만명의 사람들이 쓰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그것은 세계 인구의 1퍼센트 중 10분의 1에 불과하다. 상위 10위에 들어가는 음성 언어는 지금 세계 인구의 약 반을 차지하고 있다. 이처럼 풍부한 언어의 다양성은 점점 사라지고 있는 작은 공동체들에 의해 유지되고 있는 것이다. 지역적인 생태와 문화적 전통은 지금 현재 존폐의 위기에 처해있다. 여기에는 참으로 부도덕한 순환 시스템이 존재하고 있다. 언어가 위협을 받고 있는 것처럼 환경에 관한 많은 추억과 이야기들도 위협을 받고 있다. 일찍이부터 지역적인 지식은 주류 언어로 번역되고 있지 않으며 더욱이 루시아 마피Lusia Maffi 주에서 그러했듯이 지배적인 언어는 모든 것을 빨아들이는 지배적인 문화의 틀에 따르기 마련이다.

그래서 우리는 점점 환경과 자연의 변화를 표현하는 능력을 잃어가고 있다. 비록 우리가 그것을 관찰할 수는 있더라도 말이다. 천천히 그 모든 것은 사라져가고야 만다. 개리 나브한Gary Nabhan과 그 동료들은 미 남서부에 있는 소노란 디저트Sonoran Desert의 토호노 오담Tohono O`odham(파파고Papago로 예전에 알려진)의 어린이들이 자신들의 언어 및 문화가 사막과 연결고리를 어떻게 잃게 되었는지 설명하고 있다. 설령 그들이 고향에서 썼던 언어를 듣는다 해도 그들은 전통적인 이야기를 알 길이 없다. 또한 더 이상 오담에 있는 흔한 나무와 동물들의 이름을 알 수 없게 되었다. 비록 그들이 텔레비전에서 볼 수 있는 아프리카 사바나 큰 동물들의 이름은 알 수 있으면서도.... 나브한은 이런 기억 상실을 ‘경험의 멸종’이라고 부른다.

이런 상실은 또한 땅의 고갈이나 난개발에 의해 더욱 촉진된다. 소노란 디저트에서 펠리페 몰리나Felipe Molina는 자신의 백성들, 야키족Yaqui이나 요메족Yoeme들은 전통 의례를 치룰 수가 없게 되었다는 알게 되었다. 그것은 전통적으로 이어져 오던 지역 식물들이 사라졌기 때문이다. 토지는 비(非)요메에 의해 정착되고 다른 목적으로 전용되었다. 생명다양성은 멀리 사라지고 지역 원주민들은 단지 그것을 지켜볼 뿐이다. 그러나 그들은 지구적인 차원에서는 전혀 힘이 없다. 자연에 대한 정신적이고 물리적인 그들의 끈끈한 유대는 지금 위협을 받고 있다. 그러나 겉보기에 우리는 사라져 가는 그것을 결코 지켜보지만은 않을 것이다.


야키족은 인간적인 공동체란 소노란 디저트 세계에서 살고 있는 모든 토착 생명들과 함께 그 속에서 존재한다고 늘 믿고 있다. 그 세계는 살아있는 식물, 동물, 새들, 물고기, 하다못해 바위와 봄까지 포함하고 있다. 이 모든 것들은 살아있는 공동체의 한 구성원으로서 존재한다. 야키족은 그것을 야생 세계, 곧 후야 아니아huya ania라고 부른다.


이런 문제들은 모두 다 연결되어 있다. 루시아 마피는 이렇게 설명한다.


요메 원로들은 환경이 피해를 당하면 제사를 치룰 방법밖에 없는데, 그러나 그것은 오히려 전통 언어와 지식을 잃는데 기여를 할 뿐이었고 지역 생태계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는 불합리한 순환시스템을 만들어낼 뿐이었다.


나에게 경계지역은 새로운 환경에 대해 아이디어를 뽑아내는 곳이라는 개념을 주었다. 결과적으로 둘다 변화했는데, 윌리엄 크로논William Cronon과 그 역사학 동료들은 경계지역에선 새로운 형성이 빠르게 발생한다고 주장한다. 집단들의 서로 다른 정체성은 멀리 떨어진 곳에서 생기기 마련이다. 그곳에서 사람들은 이미 서로 다르게 존재하면서 뒤섞이고 합쳐지기도 하지만 분명히 다르게 존재한다. 미국의 경계지역에 대해 사람들은 말한다. “아주 오랜 경계지역에서 자기 형성이란 오늘에 이르기까지 매우 지역적인 삶을 사는데 계속적으로 마주치게 되는 아주 중요한 도전이다.” 서부 경계지역에 사는 사람들은 자신들을 ‘야생wilderness’, ‘주인 없는 땅free-land’으로 밀어넣었듯이 자신들이 누리는 문화적 가치의 대부분을 유럽과 그들보다 먼저 동쪽에서 건너온 선배들로부터 빌려 온 것이었다. 물론 그들은 또한 오래된 곳에서 새로운 경관을 강요하듯이 설치해놓았다. 원 소유자들을 정복이라는 폭력으로 쫓아내어 울타리에 가두는 강압을 통해서 만든 것이었다. 새로운 이야기와 신화들은 이런 행동들에 위대한 정당성을 부여해주는 역할을 했다. 기존 경관에 대한 아이디어 중 하나는 멀쩡한 그것을 다른 경관으로 뒤바꾸는 것이었다.

경계 지역을 연구한 역사학자 프리드릭 잭슨 터너Frederick Jackson Turner가 선구적인 것은, 인종차별주의 등 문제점을 밝힌 이후 많은 아이디어와 관점을 이끈 것만이 아니라 무엇보다 경계지역 자체가 반복되고 있다는 점을 정확히 지적했다는 점 때문이다. 경계지역은 자연을 꾸미고 사회를 디자인하는 곳으로 참된 인간적 관계와 문화를 해체한다는 점에서 공통적이다. 그리고 그것은 많은 사람들이 인정할 틈도 없이 빠른 속도로 확산되어가고 있다. 카펫처럼 자연과 인간이 낱줄, 씨줄로 잘 짜여져서 우리 발 밑을 따뜻하게 받쳐주는 것과 같은 자연의 혜택이 인위적인 꾸밈에는 우리 모두에게 돌아오는 것이 없다. 나는 이 쯤에서 경계지역이 무엇인지, 경계지역이 어디에 존재하는지를 정의하는 것에는 별 관심이 없다. 다만 그 쓰임새가 토지 하나에 대한 하나의 가치는 빠르게 다른 것으로 대체되어 간다는 관념에 있다는 것뿐이다. 현대에 와서 경계지역이란 한편 산업화된 현대농업의 확장에 의해, 다른 한편 토지에 대한 지역적 협력과 연대성의 상실에 의해 특징지어진다. 문제는 그렇게 경계지역이 밀어부쳐지는 것이 마치 진보인양 비춰지는 것이다. 그것은 사실 상실과 파괴로 이어지는 침탈의 확장일 뿐인데도..... 윌리엄 브래드포드가 메이플라워호에서 내렸을 때 그는 ‘흉축하고 황폐한 야생’을 보았다. 경계지역에 선 그 개척자는 새로운 삶을 일궈나가야 할 뿐만 아니라 자신의 생존을 위해 야생의 나라와 싸워나가야 했다. 나쉬Nash가 그렇게 했던 것처럼:


경계지역에서 있었던 셀 수 없는 일지와 기록들에 따르면 야생은 ‘개척자 군대’에 의해 ‘정복’되고 ‘진압’되어야 할 적에 불과했다. 그런데 그와 같은 태도는 현 세기에도 계속되고 있다.


물론 실제로도 경계지역에선 늘상 혼입이 있기 마련이고 그곳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것은 새로 만들거나 기존 것을 개조하는 두 가지 행위일 뿐이다. 경계지역에서 행해지는 그런 것들은 구문화와 연결된 것도 있겠지만 어떻게 바꿔가야 하는지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를 가져다 주기도 한다. 경계지역의 혜택을 누릴 사람은 거래나 또는 소통을 위한 새로운 기회를 찾는다. 이렇게 해서 새롭게 만들어진 연계는 새로운 문화 교류 대화 형태를 띌 수 있다. 예컨대 오해와 정복으로 점철된 초기 미 북동부 역사에서 영국과 프랑스는 교역과 신뢰를 얻기 위해 이러쿼이Iroquois족(뉴욕 조 중부에 살았던 인디언 5부족 연합)의 의전과 그들이 쓰는 비유, 그리고 언어를 배웠다. 그러나 결과적으로 그곳에선 확실한 승자와 패자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경계지역이 ‘자유’를 상징하는 것 같지만 사실 그것은 차지해야 할 토지에 불과하며 그래서 그것은 부득이 대립과 폭력의 상징이기도 했다. 크로논Cronon과 동료들은 이렇게 말한다.


때로는 개인에 의해 자행되기도 하고, 때로는 미 합중국의 군대의 힘에 의해 자행되기도 했다. 새로 경계선이 그어진 그곳엔 총과 검과 피로 얼룩진 어두운 그림자가 늘 드리워져 있다.


오늘날 그런 경계지역의 행위들은 남아메리카, 아프리카, 아시아 그리고 현대 농업 기술에 압도되고 있는 자연환경, 곧 열대우림과 늪지와 구릉과 산악에서 자행되고 있다. 얻는 것은 고작 먹을거리 한 종류인데 잃는 것은 얼마큼인지 알 수가 없다. 그러나 무엇보다 여전히 중요한 것은 우리 안에 있는 경계지역에 대한 인식이다. 우리는 우리의 세계를 방어하고 또한 동시에 우리가 필요로 하는 먹을거리를 얻기 위한 방법을 찾으려면, 우리는 각자 여행을 떠나야 한다.


누가 그 이야기를 말했는지 그것이 중요하다


누가 그 이야기를 말했는지는 매우 중요한 문제이다. 토지 한 뙈기 또는 자연풍광은 그것과 상호 소통했던 사람들에게 많은 의미를 준만큼 많은 것들을 포함하고 있다. 산업화된 현대의 풍광 곧 이른바 인위적 풍광monoscape은 많은 의미를 담고 있지 못하다. 그에 반해서 다양한 풍광diverscape은 많은 것을 품고 있다. 비록 많은 것들이 우리에게 그것이 진실이라고 믿게 하려고 하지만, 땅에 대한 한가지 이야기가 꼭 유일한 것은 아니다. 유럽인들이 태평양과 오스트랄리아에 제일 먼저 자신들의 전략을 가지고 왔을 때 그들은 그곳 자연풍광과 사람들을 만났다. 그러나 그들은 원주민들에게 박물관의 골동품 이상 가는 위대한 가치를 그들에게 부여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들은 원주민들을 포획하여 노예로 바꾸어 버렸다. 그리고 그들은 자신들의 이야기를 그 땅에 심었다. 오스트랄리아 원주민들이 적어도 15,000 세대에 걸쳐 그 땅을 밟고 다녔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아무런 의미가 없었다. 어디 그뿐인가? 유럽 문화 이상 가는 규모로 축적된 지식, 이해, 매력적인 이야기들조차 그들에겐 별 의미가 없었다. 파울 카터Paul Carter가 묘사한 것처럼 캡틴 쿡과 ‘첫 방문자들first arrivers’들은 빈 공간, 곧 문명할 수 있고 뭔가를 설치할 수 있는 무주공산을 봤다. 호주의 자연풍광은 역사를 기다리고 있었고, 새로운 이야기가 그곳 위에 덧칠해지고 창조될 것이었다. 그들은 자신들이 본 모든 곳에 새로운 이름을 붙였다. 넉달에 걸쳐 100개의 만, 곶과 섬들에 이름을 맘대로 붙인 것이다. 카터는 말한다. “쿡에게 안다는 것과 이름을 붙인다는 것은 동일한 것이었다.” 한번 발견된 장소는 처음으로 이름이 붙여졌고 그리고 나서 그것들은 알려지기 시작했다. 그곳 자연풍광은 그렇게 알려졌고 그럼으로써 다시 개조되기 시작한 것이다. 쿡은 깊고 검은 흙을 바라보면서 말했다. “저렇게 훌륭한 목초지는 본적이 없어!” 그 목초지는 고향의 그것처럼 푸근해 보였고 존 뮤어John Muir's가 보았던 ‘야생’ 목초지의 느낌 그 자체였다. 그런데 그 목초지는 원주민인 인디언들이 불을 이용해 만들어놓았던 곳이었다.

새로운 곳, 그러나 실제로는 이미 오래전부터 있어왔던 곳에 이름 붙이는 일은 수십년간 빠른 속도로 진행되었다. 탐험가들이 내륙 안쪽으로 힘차게 자신의 길을 만들어 갔듯이. 이를 카터Carter는 ‘의미있는 이름을 붙인 주거지역의 암시조차 권위를 부여한다. .... 영역을 확대하면서 지역을 차지하는 일은 자연환경을 개발하는 일이나 마찬가지였다. 그것은 새 지역을 자기네 정돈된 질서 안으로 끌어들이는 일이었다.’ 그 새로운 이야기는 퍼져갔고 글로 쓰여졌으며 옛것은 아무 관심도 없이 사라지고 말았다. 동시에 자연풍광에 담긴 지역의 이야기들을 찾는 일에 대해선 별 관심이 없었다. 천 키로미터 정도의 먼 거리와 천 년 정도의 긴 세월의 사이를 이어주는 노래에 대해서도 관심이 있을 리 없었다. 그 노래는 자연풍광이 문화와 정체성과 공동체와 뗄레야 뗄 수 없는 관계임을 표현한 것이었다. 하나를 취했겠지만 모든 것은 사라지고 말았다.

쿡이 이 땅을 밟은 지 229년이 지난 오늘날 나는 필Phil과 수지 그라이스Suzie Grice와 함께 그들의 양과 시리얼 농장이 있는 서부 호주에 서 있다. 그들은 생태적으로 자연풍광에 대해 탁월한 관점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현대농업이 어떤 문제를 일으켰고 자기 가족과 이웃들을 어디로 끌고 갔는지 우려스런 눈길로 바라보았다. 짧은 2백년 동안 현대농업과 토양 관리법은 경제적 이익을 지속적으로 가져다 주었다. 그러나 또한 그만큼 환경과 토지에 대해 적지 않은 피해를 가져다 주었다. 필은 이렇게 말한다. “두 세대 이전 땅 소유자들과 그들의 아버지들은 숲을 파괴하고는 그곳을 농경지로 바꾸었다. 지금 나는 그곳에다 할 수 있는 한 토종 채소들로 바꿔 심으려 한다.” 퍼스Perth 남서부 260킬로미터나 되는 벨거랩Balgarup 강 저수지 둑 아래쪽에 그 농장이 있다. 그곳은 고대의 자연풍광을 그대로 띄고 있으며 깊게 풍화된 흙을 품고 있다. 그런데 아무리 눈을 까 뒤집고 보아도 옛 흔적은 사라지고 지금은 옛날과 많이 달라져 있었다. 1990년까지 40년 동안 85퍼센트의 자연 식물들이 저수지 주변에서 사라졌다. 그 과정에서 엄청난 충격이 수문학(水門學)과 지역 생명다양성 모두에게 가해졌다. 흙과 물은 염류화되었으며 그리하여 농사 자체가 불가능해졌다. 변경 지역에서 농사에 들어가는 생산 비용이 높아짐으로써 농부들이 써야 하는 농자재는 고갈되어갔다.

벨거랩 저수지 둑 아래쪽에서 농사짓는 18명의 농민 그룹이 만들어졌는데 그들은 14,000헥타의 땅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들은 호주 서부에서 활동하고 있는 대지보전Landcare 그룹 400개 중의 하나였다. 그들이 제일 먼저 행동에 옮긴 것은 토양 침식 지역을 조사하는 것이었다. 토양 침식이 얼마나 심각하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아무도 알고 있지 않았기 때문이었다. 그들은 600헥터가 넘는 땅이 사막화와 염류화 또는 침수 피해를 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는 너무나 놀라고 말았다. 그 이후 필과 그의 동료들은 20,000개의 나무를 심었으며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100키로미터에 걸쳐 새로운 울타리를 세웠다. 그리고 70키로미터에 이르는 배수로와 둑을 쌓았고 그 땅에다 다년생 풀들을 심었다. 나무와 풀들은 모세관 효과로 지하수를 뽑아 올리는 데 도움이 되고 더불어 염류화 효과도 떨어뜨린다. 그러나 자연풍광 전체에 대한 숙제는 아직 매우 심각하다. 서부 호주에는 1900만 헥터에 이르는 밀과 양목장이 펼쳐져 있는데 일찍이 그 중 거의 6백만 헥터의 땅이 염류로 인한 사막화 피해를 당하고 있다. 2010년엔 다른 3백만 헥터의 땅이 또 피해를 입을 것으로 보이며 40개에 이르는 밀 농사 지대의 농촌 도시가 위협에 처하게 될 것으로 보인다. 이 오래된 자연풍광, 곧 일디림Yildirim 블록의 바위들이 25억년의 세월 동안 떠 받치고 있는 저수지는 더욱 철저한 재 디자인이 필요하다. 생각을 바꾼 위의 농부 그룹들은 과연 지금 새로운 이야기를 쓰고 있을까?

물론, 쿡이 무엇을 봤고, 나중에 뮤어가 시에라 네바다에서 무엇을 봤는지는 자기들이 무엇을 알고 있었느냐에 따라 좌우되었다. 만약에 당신이 야생을 믿는다면 그러면 당신은 뭔가를 볼 것이고 또한 거기에 이름을 붙일 것이다. 만약에 당신이 목초지를 목가적인 풍경의 한 부분으로 알고 있다면 그러면 당신은 더 쉽게 뭔가를 보게 될 것이다. 만약에 당신이 밭으로 개간한 곳에서 토종 식물을 보게 되면 당신은 그것을 쓸모없는 풀로 생각해 뽑아버리고 말 것이다. 그러나 자연풍광을 다시 쓴다는 것의 효과는 단지 일방적인 과정일뿐이라고 믿는 것은 잘못이다. 버나드 스미스가 18세기에 태평양 원주민들이 발견한 것에 관해 지적한 것처럼 유럽에 대해 느겼던 그들의 충격은 아마도 유럽인들이 태평양에 전달해 준 문화와 질병만큼이나 대단했을 것이다. 타이티 사람인 오마니Omani가 1774년 영국에 퍼노Furneau 제도의 왕과 함께 도착했을 때 스미스에 따르면 그는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는 상류사회 모임에 자연스런 소박함을 뽐내며 참석했는데 곧 영국 사회에서 명사가 되었다.” 더욱 중요한 것은 그의 출현으로 제국에 대한 새로운 국내 비난 여론이 일어났다는 사실이다. 제국은 그런 소박한 사람들의 ‘재산을 훔쳤다’는 사실이 알려졌으며 그리하여 영국 사회의 치부까지 알려지게 되었다. 십년 후 팔라우Palau 제도 중 한 추장의 아들이 헨리 윌s슨Henry Wilson과 함께 영국으로 돌아왔는데 또 다시 그들도 많은 갈채를 받았으며 영국 사람들의 자기반성을 이끌어냈다. 

그렇지만 여전히 거기에는 한 풍경화를 통해 묘한 잘못된 신화가 깔려있었음을 알 수 있게 해준다. 스미스에 따르면 그 그림은 ‘새로운 이주 정착민들이 원주민들에게서 소외감을 느낄 수밖에 없었던 땅에 대한 매혹적인 약속을 환기’시키려는 내용이었다. 고귀한 태평양 섬사람들은 그 이야기를 숨기고 있었는데 그들은 전통적인 의복을 입고 전통적인 의식과 춤을 추며 그 배는 해안가에 사뿐히 밟으며 도착한 영웅들로 가득차 있었다  


그들의 도착은 점점 더 총과 폭력을 동반했으며 그들이 오래 체류할수록 그 사회와 자연은 더욱 파괴되었다. 그러한 조직적 파괴는 확실히 조심스런 교류보다 더욱 일상적으로 행해졌다. 조지 마일Geroge Mile은 이주자들에 의한 북미 원주민에게 강요된 발언권 박탈에 대한 관심을 아주 비슷하게 묘사했다. 그들이 오랜세월 동안 자신들의 이야기를 해왔지만 갑자기 그들은 말을 하지 않았다. 어느 정도 그들은 귀고할만큼 침묵했지만 그보다는 더 자주 마크 트웨인Mark Twain과 같은 사람에게 조차 슬프게도 침묵했다. 마크가 말하길 그들은 ‘침묵했으며 뭔가 은밀한 것을 감추며 때로는 비열해 보이기도 했었다.’

문제는 대부분 북미 원주민들의 문화는 문자 없는 구두 문화였다는 사실이다. 체로키Cherokee 부족의 알파벳 같은 경우 시쿼야Sequoyah 카운티에 살았던 부족으로 19세기초에 와서야 젊은 인디언들에 의해 만들어졌을뿐이다. 그것은 1828년 북미 최초의 인디언 신문의 발행을 이끌었으며 인디언 자신들의 이야기를 소개하는 데 매우 성공적이었다. 그러나 조지아 주는 그 편집장을 구속하고 신문을 몰수했다. 6년 후에. 그리고 나서 “체로키의 대변자Cherokee advocate”로 다시 등장한 게 1843년이었고 체로키의 수도 탈히쿼Talhequah에서였다. 1854년까지 이어지다 문을 닫았으며 다시 1870년대 중반에 복간되어 1906년까지 지속되었다. 그기고 800~1000명에 이르는 체로키의 독자들은 결국 자신들의 언어로 된 신문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18세기와 19세기 동안 마일즈Miles에 따르면 거의 모든 북미 원주민 공동체들은 자신의 언어를 읽고 쓸 수 있었다고 한다. 뉴펄들랜드의 믹맥Micmac족에서 플레인plain의 수Sioux 족에 이르기까지, 남서부의 나바호족Navajos과 야키족Yaquis, 캘리포니아의 루이제노스Luisenos에서 아틀란틱의 이누이트족과 알류투족Aleut에 이르기까지.

그것은 물론 잃어버리기 쉬운 것들이었다. 우연이든 의도적으로든. 결국 이야기는 말로 전해져갔다. 그것들이 떠나버리자 자신들의 이야기를 억압하는 사람들에 대해 반대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면 우리는 잃어버리고 만다. 왜 자연 경관에 뭔가가 존재하는지, 왜 그것은 의미있게 쓰이는지, 그리고 어떤 이유로 우리는 그것을 돌보아야 하는지를.


맺는말

이 장에서 나의 목적은 지속가능한 농업혁명의 모습을 그리는 것이었다. 농업과 식량 시스템을 제시함으로써. 그리고 그것들이 형성하고 있는 농업경관은 우리 모두에게 주어진 평범한 유산이었다. 우리 인류의 모든 역사에서 우리는 자연에 의해 만들어졌다. 답례로 우리는 자연을 일구었다. 최근에는 자연을 일군다는 것은 파괴적인 행위가 되었다. 그것은 식량이 상품이 되면서 그렇게 되었고 더 이상 그것은 문화의 한 부분이 아니었다. 지금의 산업사회에 와서 우리는 우리의 언어를 잃고 있으며 나아가 땅과 자연에 대한 추억과 이야기를 잃어가고 있다. 이런 분리는 그것들이 집요한 이원론으로 이끌어가기 때문이다. 자연은 사람들로부터 분리되었고 그래서 자연은 더 이상 야생 속에 있질 못하게 되었다. 그리고 경제는 성공할 수 있었다. 근본적이고 중요한 농업적인 식량 시스템을 고려하지 않고서도

2장. 단일경관Monoscope



경관 속의 어두운 면

‘경관landscape’이라는 말은 네덜라드로부터 16세기에 영어로 먼저 들어갔다. 그 때는 네덜란드인이 적극적으로 자신들의 땅을 배수를 위한 새로운 기술적 방법들을 조종하고 재설계할 때였다. 경관, 독일어로 ‘landschaft와 같은 그 말의 의미는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공간이라는 뜻과 즐거운 대상이라는 뜻도 함축하고 있다. 경관은 화가와 시인들을 자극했으며 그들의 디자인은 하나의 아이콘처럼 유명한 관점들을 만들어냈다. 위대한 운동들이 일어났고 우리는 그 아름다움과 완벽을 찬양했다. 종종 경관 자체에 대한 묘사는 폭넓은 인식을 얻게 했고 그리하여 문화가 되었으며 실제 경관 그 자체만큼이나 중요한 것이 되었다.

경관 자체는 또한 사회적 건축물이라는 사실을 잊기는 너무도 쉽다. 그 속에 담긴 다른 많은 의미와 함께. 풀이 무성한 작은 언덕은 멀리 떨어진 숲과는 달리 사람의 눈길을 끈다. 다른 관찰자에게 그 언덕은 고대에 중요한 의미를 가졌던 봉분의 하나처럼 보일지 모른다. 나쁘게는 최근 전쟁범죄의 몸통을 숨겨주는 것으로 보일지도 모른다. 황금밀 밭은 유럽의 지평선을 늘려주었고 풍년이 든 해에는 헥타르 당 12에서 15톤을 생산할 수 있었다. 그렇지만 아직도 백성들은 여전히 배가 고팠다. 20세기 중반 현대의 농업혁명은 경관을 폭넓게 넓혀놓았으며 식량생산의 수준을 전례에 없는 수준으로 끌어올렸다. 세계적인 식량 생산은 40년 동안 2000년까지 145퍼센트 성장했다. 비록 인구 증가를 고려한다면 25퍼센트에 불과할지라도. 그러나 우리 모두가 아는 것처럼 이 놀라운 ‘성공’은 여전히 8억명의 배고픈 사람들을 만들어냈다.

경관은 많은 재난을 숨기고 몰인정하고 야만적인 행동이 사람들에 대해 사람들에 의해 저질러졌다. 우리는 오래된 경관을 즐거운 마음으로 지켜보지만 아직도 그것들은 많은 것들을 품고 있다. 종종 그것들은 문화 전체에 대해 매우 중요한 무언가를 구현하고 있기도 한데, 그 문화란 예컨대 중부 유럽의 어둡고 미스테리한 숲 또는 북미와 중앙아시아의 넓은 대초원과 스텝지대, 또는 스펙타클한 아시아의 계단식 논들이 그것이다. 스테판 다니엘Stephen Daniel과 데니스 코스그로브Denis Cosgrove는 이렇게 말한다. “하나의 경관은 하나의 문화적 이미지다”라고. 그것은 관찰과 분리를 다 표현하는데 이해에 대한 많은 코드와 수준을 품고 있는 어떤 것이다.

예술 역사가 존 배럴John Barrell은 ‘경관의 어두운 면The Dark Side of the Landscape'에서 경관의 이중적인 무언가를 표현하고 있다. 영국의 목가적인 경관은 자연 속의 하모니와 지속성의 이미지를 비춰주고 있다. 이는 경관에 대한 로마적인 관념의 토대였다. 가까이 가서 보라, 많은 화가들의 작업은 땅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 사람과 사람들 사이의 관계, 특히 부자와 가난한 자의 사이에 대해 질문을 제기한다. 이 질문들은 폭넓게 적용되었다. 18세기와 19세기 동안 많은 화가들은 부자들에 의해 고용되었다. 그래서 그들이 경관의 불안정한 구성을 표현하려 했던 사실은 매우 놀라운 일이다. 소수의 화가들은 가난한 오두막집과 같은 시골집을 그렸고 동시에 같은 동네 사는 경관 소유자인 젠틀맨을 그렸다. 그렇지 않으면 경관 속의 집을 그렸는데 그 속에는 힘들게 일하는 노동자가 살고 있었다. 그 중 몇몇은 행복하게 사는 모습도 있었다. 노동자는 끊임없이 일을 했고 만일 그들이 일을 놓게 된다면 당신은 그 장면이 바랠지 모를까 걱정하게 될 것이다. 배럴은 말했다. “부자가 자비롭기 위해 권력을 차지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자비로움조차 억압의 한 방법이기도 하다.”

이 경관들 속에는 뭔가 패러독스가 있고 긴장감이 있다. 우리는 매우 뿌리 깊고 끈질긴 문화적 경관 아니면 적어도 뭔가 영원성을 표현하는 것을 찾고 있었다. 그러나 그에 대한 사회적 양상은 매우 뿌리깊은 불평등과 가난을 집요하게 드러냈다. 이는 사회적 변화없이 경관을 보전하는 일은 단지 그림의 역할 중 반일 뿐이라는 믿음을 믿게 하는 좋은 이유가 된다. 우리가 나중에 보겠지만 최근 지속가능한 농업과 함께 중요한 진보의 모든 것은 사회적이고 자연적인 변화 양쪽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 기간 동안 그러나 조화롭고 유기적으로 잘 조직된 사회를 창조하는 아이디어는 끊임없는 고된 노동과 노동자들이 전제되어야 했다. 배럴에 따르면 노동자들이란 그들이 자신들의 공간으로서 지켜야 할 경관과 우리 사이를 개입하지 않는 존재들이라 했다. 그들은 또한 곤란 속에서도 억지로 기분 좋은 척 하기도 한다. 물론 거기에는 확실히 해석의 차이가 있다. 어떤 사람은 인간은 자연 속의 일부로서 묘사되었다고 말하는 반면 다른 사람은 인간은 노동 외에는 할 것이 없다고 지적하기도 하고, 그들이 전망 주시하기를 멈춘다면 바로 훈계하려고 할 것이다. 문제는 초원과 경관에 대한 로마적 관념에 있는데 그것은 ‘어디서든 자연의 열매는 아무런 노력없이도 쉽게 얻을 수 있다는 농촌 생활의 희망’으로 이뤄진 게 경관이라는 관념이다. 이는 당연히 말도 안되는 거짓이다.

배럴에 따르면 게인보로Gainborough와 같은 위대한 예술가들은 우연인지 기획한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극도의 가난을 끌어들인 그것을 그는 마치 세계 최고인 변함없는 세계 속의 붙박이로 표현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경관들 속에는 또 다른 중요한 진실이 존재한다. 예술가들은 단지 다양성을 표현할 뿐인데, 큰 집, 낡은 수녀원, 또는 나무로 만든 교회, 그리고 지주와 지친 노동자들, 그 외 숲과 초원, 옥수수밭과 갈아놓은 밭, 초원과 목초지 등이 그것이다. 경관 미술은 다양성이 없이는 아무 것도 아니다. 현대의 산업화된 농업의 비극 중 하나는 경관에 자연적 다양성이 상실되었다는 점이다.


영국 공유지로부터 쫓겨나다

경관 그 자체는 공동의 재산이다. 그것은 당연히 즐길 수 있으며 당신이 그것을 볼 수만 있다면 그 진가를 알아볼 수 있을 것이다. 공유지라는 관념은 연대를 표현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공유지가 갖고 있는 가치로부터 집단적으로 또는 개인적으로 그것을 즐길 수 있다. 수백년 동안 유럽에는 두 가지의 공유지 관리 유형이 있었다. 그 중 하나는 1천년 동안 존재했던 열린 경작지 공유지 시스템이다. 그리고 자연산 자원의 공동관리이다. 나무숲, 목초지, 황야, 강변가 해변 등이다. 이 시스템에는 지역민은 방목권을 갖고 있다. 연료로 쓰기 위해 이탄 덩어리를 채취할 수 있고(토탄 채굴권) 집을 짓기 위한 나무를 구할 수  있으며(벌목), 도토리와 너도밤나무 열매를 따고(돼지 방목권) 낚시를 할 수 있었다(어업권).

수년간 그러나 공유지의 두가지 형태는 점차적으로 울타리가 둘러쳐지고 사유화되었다. 공유지는 쓸모없는 땅이라는 관점을 퍼뜨리고 그것을 명분삼아 미친듯이 국가와 지주들이 자행했다. 그 결과는 경관이 참담하게 변했다는 사실이다. 특히 18세기와 19세기 초에 걸쳐. 지역적인 인클로우즈는 좀더 일찍 17세기에 일어났다. 더욱이 의회에서 인클로우즈 법이 제정되면서 더욱 가속되었다. 그 때가 18세기 초였다. 1845년 전까지 마지막 인클로우즈 법이 만들어지기까지 2750개의 법률이 만들어졌다. 동시에 히스heath, 무어moor와 같은 ‘황무지waste’와 공유지는 1760년대와 1840년대 사이에 1800개의 법률을 통해 인클로우즈되었다. 광역 정부의 부처장은 3000개가 넘는 교구에서 경관을 재설계할 것을 지시했다. 결과적으로 2백75만 헥터의 공유지가 인클로우즈 되었는데 그 가운데 1백82만 헥터의 땅은 누구나 이용할 수 있는 열린 땅으로 곡식밭이었고 나머지 93만 헥터의 땅은 ‘황무지’였다. 영국UK 전체적으로 보면 농경지는 1800만 헥터의 땅이 있었다. 그 가운데 거의 4백만 헥터의 땅이 현재 곡식 농경지로 경작되고 있고 약 50만 헥터의 땅이 아직도 공유지로 놓여있다.

역사가들은 오랫동안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권력, 곧 인클로우즈를 주도했던 권력을 소개했으며 그를 위해 그들은 민족적(국가적) 발전을 위한 주장과 빈부격차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힘있는 미사여구를 이용했다. 그 때 농경 작가들은 농업의 사적인 이익 창출에 대해 별 이견이 없었다. 그러니까 공유지 활용을 반대하고 공유지를 사유화하여 생기는 사적인 이익을 지지했던 것이다. 그들 대부분은 인클로우저로 인한 사회적 손실을 무시했다. 그리고 그들은 토지를 공동으로 이용하여 생기는 경제적 낭비를 의도적으로 확대 해석했다. 곡식밭으로 활용하든 황무지로 활용하든. 저명한 “영국의 농사English Farming"라는 책에서 로드 에늘Lord Ernle은 12명의 주목할만한 작가를 소개했는데 16세기와 17세기의 얘기였다. 그 중에는 피체르베르트Fitzherbert, 하트립Hartlib, 호우톤Houghton 리Lee, 무어Moore, 노던Norden, 테일러Taylor와 튜저Tusser 등이 포함되어 있다. 그들 모두는 인클로우즈를 ‘합법적’이고 ‘칭찬할만한’ 일이라 평가했으며 공유지를 쓸모도 없고 낭비적인 것에 불과하다고 지적했다. 

시간의 묘사는 단호했다. 실바노스 테일러Silvanous Taylor는 말했다. “가난이란 게으른 서민들에 대한 신의 불쾌감으로 인한 것이다.” 연단에서 조셉 리Joseph Lee 목사는 이렇게 의견을 피력했다. “서민이란 게으름을 발전시키는 자다”, 그리고 아담 무어Adam Moore는 “공유지에는 소들이 넘쳐나 질병을 부르는 해충 하우스나 다름없다. 여기에서 가난이 생기고, 맹인, 절름발이, 피로에 지친자, 닥지닥지 딱지투성이, 가축역병, 부패 등을 부른다.”라고 말했다. 존 노든John Norden은 마찬가지로 편협하게 치우쳐 말하기를 “황무지와 공유지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거의 또는 전혀 노동하지 않는 사람들이며 그들은 거의 귀리 맥주와 썩은 유청 없이는 살 수 없는데 그것은 마치 문명적인 삶에 대해 전혀 무지하며 종교적인 삶에 대해서도 매우 야만적인 삶과 같다. 그래서 어떤 면에서 보면 매우 통탄할만하니 개혁하기에 마땅할 수밖에 없다.” 이런 관점이 지배적임에도 불구하고 전해오는 민요의 한 구절이 오늘날에도 불려지고 있다는 것은 참으로 놀라운 일인데, 그것은 어떤 깊은 진실을 말해주고 있는 것 같았다. ‘법이 공유지 서민들을 철창에 가두었는데, 거위는 누가 공유지에서 훔쳐갔을까, 큰 도둑은 도망을 갔는데, 누가 거위에게서 공유지를 훔쳐갔을까.’

몇몇 작가들은 ‘경제적 소득에 사회적이고 도덕적인 손실을 포함해야 할지 모른다’고 했다.  소수의 운동가들이 서민들의 권리를 방어하려고 했고 폭 넓은 변화를 요구하는 운동이 일어났으며 그들은 더욱 폭넓은 공공의 목적을 위해 토지의 많은 면적을 되찾으려 노력했다. 제라드 윈스턴리Jerraqrd Winstanley와 그 동료들은 새로운 공동체 사회를 만들려고 시도했다. 그것은 1649년의 일로 템즈강가 월톤Wolton on Thames 근처의 지역에서 일어났다. 그들은 시민전쟁에서 찰스 1세의 패배를 떠올렸다. 그 전쟁에서 시민은 자신들의 땅을 백성을 위해 소유할 권리가 있음을 공표했다. 공유지의 자원도 당연히 포함해서. 그러나 그들은 실수했다. 그리고 페어팩스Lord Fairfax 경의 군인들이 자신들의 막사를 불지르고 그것들을 던져버렸다. 세월이 흘러, 윌리엄 코베트William Cobbett는 1820년대에 쓴 자신의 책 “Rural Rides"을 쓰는 동안 빈곤과 경관, 그리고 자원에 대한 접근에 대해 매우 중요한 무언가를 정리했다. 단작경관, 곧 ‘monoscape’에서 그는 말했다.


원래 생울타리도, 도랑도, 공유지도, 풀도 없었다. 그리고 가엾은 노동자는 그 많은 숲속의 잔가지 하나도, 돼지와 소에게 풀 먹일 자투리 공간 하나도 소유하지 못했다. 지금 이런 삭막한 곳에서 만나는 얼굴과 그리고 인근의 삼림지대의 숲에서 만나는 상기된 얼굴 사이에는 무슨 차이가 있을까?


유럽에서는 농업분야에서 17세기 후반에서 18세기와 19세기 초에 이르기까지 아주 놀라운 변화가 있었다. 농업혁명으로 알려진 이는 가장 최근까지 쳐서 거의 유일무이한 일이었다. 영국에서 약 150년 넘는 기간에 걸쳐 작물과 축산의 생산 증가는 3배에서 4배에 이르렀다. 가령 파종기의 개발이라든가, 순무와 콩과 작물과 같은 새로운 작물의 도입, 비료의 기술, 작부체계, 선택적 방목 축산, 배수 시설, 그리고 관개법 등이 농부들에 의해 기술적 진보가 이끌어졌다. 그리고 그런 기술들은 출판도 되어 관광과 농한기를 통해 다른 사람들과 농부들에게 퍼져나갔고 엄격한 실험에 의해 지역 조건에 맞게 적용되기도 했다. 그렇지만 이 기간 동안 ‘낭비’는 결코 후진성의 상징 이상은 아니었다. 위대한 개혁가이자 작가인 아더 영Arthur Young은 ‘고트족과 반달족’을 인클로우즈 하는 것에 반대하는 세력으로 바뀌어 불리어졌다. 그는 십일조 세금 위원회 보조원으로서 서퍽Suffolk 주의 황야지대는 단지 가시금작화gorse로 뒤덮인 걸기적거리기나 하는 곳으로 토끼나 양 방목장 외에는 전혀 쓸모가 없는 곳이라 지적했다. 인클로우즈 이후 가난한 농부들은 그동안 길렀던 가축들을 팔아야 했다. 자기들 농장 이외의 곳에서 풀을 먹일 권리를 잃어버렸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들에겐 최소한의 방목을 할 아주 작은 땅이 주어졌지만 제인 흄프리Jane Humphrie에 따르면 그들은 ‘선술집에서 술에 취해 술 값을 치르느라’ 그마저 땅을 팔아야 했다. 

시인 존 클레어John Clare는 잃어버린 것에 대해 자신의 느낌을 썼을 때 그는 하나의 예외였다. 그 시대의 대부분의 평론가들은 인클로우즈에 의한 경제적 수익에 대해서만 얘길했다. 그러나 그에 반해 그는 오랜 세월동안 쌓여온 추억의 상실을 슬퍼했다. 열린 공유지의 시스템이 700년 동안 지속되어온 그것을 한꺼번에 잃어버린 것을. 1824년 그의 잡지에서 클레어는 무엇을 잃어버렸는지 이렇게 썼다.


농장을 산책하고 우리의 삶이 고스란히 담긴 소중한 농장과 그곳에서 멀리 떨어진 숲속 계단길을 보라.....나의 우정어린 보살핌으로 가득한 그러한 것들이 내 눈앞에서 사라진 것을 보는 것은 참으로 가슴 아픈 일이 아닐 수 없으며 지금 세상에는 남은 게 아무 것도 없어져 버렸다. 지난 해 랭글리Langley의 관목은 사라졌고, 오랜 산사나무는 1백년 이상 더 오래 서 있었지만 지금은 시들어 죽어가는 모습이 역력하다. 집시와 양치기, 목동은 모두 자신들의 역사 이야기를 간직하고 있으며 그것은 기억이 잊혀지기 전까지는 계속될 것이다.


스타일과 이름있는 고목만 사라진 것이 아니라 기억조차 사라진다. 그것들은 한동안, 아마도 몇 세대 동안은 지속될 것이겠지만 결국엔 복구되지 않고 사라지고 말 것이다. 인클로우저는 소농과 서민의 권리를 박탈했으며 그들 대부분을 도시 한복판의 노동자로 마구 밀어넣었다. 그리하여 사람과 토지 사이의 단절이 대규모로 시작되었고 그것은 오늘날까지도 지속되고 있다.


습지와 숲을 둘러싼 승자와 패자

동부 잉글랜드의 낮게 드리운 소택지에서 들을 수 있는 배수로 이야기는 얼마나 빠르게 사람들이 승자가 되거나 패자가 되었는지를 잘 묘사해주고 있다. 첫 번째로 습지의 주된 배수로는 농업을 발전시키기 위해 헨리 8세와 엘리베스 1세 여왕 통치 시절에 만들어졌다. 그리고 적어도 17세기 전까지 그것은 그 유명한 대단위 주거지로 만들려는 시도가 아니었다. 28만 헥타르의 어마어마한 습지가 펼쳐져 있는 그곳은 동부 잉글랜드의 6개 지방에 걸쳐있다. 지역민들은 원래 수렵인이고 채집인이었다. 그들은 평소 ‘너벅선punt’으로 여행하거나 말을 타고, 낚시로 물고기를 낚기도 하고 버드나무 땔감을 하고, 더불어 거위와 오리를 기르며 살았다. 그러나 그 당시 공식적인 평가들에 따르면 이 지역은 더러운 흙탕물과 혐오스러우며 지저분한 야생동물로 가득찬 곳인데다, 진흙탕이 느리게 뿜어져 나오는 이 비생산적인 습지는 게으르며 거지나 다름없는 종류의 야만적인 사람들에게 편한 피난처나 되어주는 곳이었다.

17세기 초, 입법 위원들이 정부에 의해 지명되었고 이들에 의해 빠르게 배수로를 설치하기 위한 새로운 법률이 제정되었다. 네덜란드에서 잉글랜드까지 배수로를 설치하는 일을 맡았던 코넬리우스 버뮤딘Cornelius Vermuyden은 얼 베드포드Earl Bedford와 함께 배수로 작업에 착수했다. 기술적이고 사회적인 차질 때문에 10년이 흘렀음에도 1649년에 새로운 배수 시스템, 곧 높은 강바닥과 수문, 강둑 그리고 댐이 완성되었다. 버뮤딘은 새로 사유화된 땅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보고했는데, 무수히 많은 양들과 소 그리고 다른 동물들 옆으로 밀과 다른 곡식들이 재배되고 있었지만 그 전에는 전혀 그런 장면은 있었던 적이 없었다고 했다. 그러나 그 일은 그렇게 단순하지 않았다. 이런 변화는 서민들과 늪지 사람들을 근대화 시기 동안 반으로 줄게 만들었다. 그들은 제빵소를 부수고 방앗간을 불질렀으며 배수로를 메워버렸다. 어떤 경우 그들은 자신의 권리를 지키기도 했다. 에널Ernle은 매립, 개간으로 폭동이 일어났던 1714년 전까지 그것은 중지되지 않았다는 것을 지적했다. 그러나 이런 항의는 별로 효과가 없었다. 사적인 이해를 위해 울타리가 쳐지고 배수로가 파진 것에 비해....

이 기간이 지나자마자 곧 공유 자원에 의지해 살던 사람들의 권리를 박탈한 가장 악명 높은 주State의 사례가 뒤따라 나타났다. 이는 1723년 5월 월덤 블랙Waltham Black 법률 이른바 ‘블랙 법률’이 영국 의회에서 통과되고 나서 직후의 일이었다. 탁월한 문장가인 역사가 톰슨EP Thompson은 자신의 기사에서 권력자들이 자신들이 만든 억지춘향격의 정의라는 것으로 숲에 대한 권리를 어떻게 강제적으로 빼앗았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 기사는 ‘블랙Blacks’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곧 ‘사악하고 질 나쁜 사람들이 위장해’ 들어와 사슴이 살고 있는 왕립 숲을 약탈하려 하였고 숲 관리인들과 전투까지 벌인 사람들이라고 하고 있다. 결정적으로 블랙 법률은 50개에 달하는 중형 범죄를 만들어냈고 동시에 자신들의 정의를 합법화하는 데 성공하여 더욱 확장되었다.


톰슨은 레온 레치노비치 경Sir Leon Radzinowicz이 내린 20세기 중반의 판결을 인용하고 있다. “매우 의심스런 일이 아닐 수 없다. 방금의 법률을 포함해 많은 조문과 함께 형법을 가지고 있는 나라인지 말이다.”

다시 그 시절의 여론에 따르면 서민들이 숲과 벌채지와 들판을 파괴하고 고의적으로 다른 자원들 특히 사슴을 비롯한 사냥감과 물고기를 훔치기 일쑤였다고 한다. 이런 것들이 그들을 밀렵꾼, 밀수업자로 만들었다. 단지 그들은 시골에서 생계를 유지하려고 한 것 뿐인데. 이렇게 억울하게 당하기만 한 이들에 대해 이 기록들이 말해주는 것은 무엇일까? 그들은 노동자, 종업원, 정미소 주인, 여관주인, 자영농, 대장장이, 푸주간주인, 목수, 정원사, 역마소직원, 양복장이, 구두수선공과 수레 목수들일뿐이다. ‘거듭해서 말하자면 그들은 단지 토지를 소유한 독립자유농이었으며, 때로는 한 교구보다 더 많은 구획으로 흩어져 숲과 들판 옆의 쏠쏠한 방목지와 공유지 권리를 소유하고 있었다.’ 그 중에는 당연히 한량한 대 농장주나 대 지주는 없었다. 톰슨은 그 법령에 대해 이렇게 평하고 있다. 야만적이고 극악무도한 것이라고. 18세기 거의 내내 그 법률은 상류 사람들의 공유지 자원에 대한 것만이 아니라 그것으로 가족들의 생계를 이어온 사람들에 대해 더욱 노골적이면서 독점적 권리를 강화했다. 그것은 또한 빠르게 성장하는 브리튼 제국 때문인데 그것은 세계의 다른 많은 곳곳에서 자신들의 사상과 영역을 형성해가는 데 도움을 주기 때문이다.


인도에서 공유지 장악

초원 공유지의 인클로우즈 곧 습지와 목초지 땅을 장악하려는 시도는 곳곳에서 갈등과 분쟁을 유발했다. 역사들에 의해 잘 정리된 글들이 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아직도 여전히 같은 행동을 하고 있다. 때로는 보전이라는 이름으로, 아니면 종종 다수확 농사를 한다는 미명으로. 그러나 사회적 갈등은 이런 새로운 시스템의 성공에 의해서 초래되기 일쑤다.

마다프 가드길Madhav Gadgil과 라마찬드라 구하Ramachandra Guha의 인도의 생태 역사에 대한 예리한 분석을 했던 “토지를 가르다This Fussred Land"에서 사회적 변화와 생태적 변화의 본질적인 상호의존성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는 매우 중요한데 자연과 인간 사이에 이런 생명의 연계성에 초점을 맞춘 역사는 매우 드물기 때문이다. 저자가 인디아에 대해 지적한 것처럼....


많은 여러 방법에서 잘 정돈되어 유용한 자원들이 전체적으로 심각한 위협 아래 놓여있다. 사슴이나 영양은 사냥 수렵꾼들이 사냥할만큼 남은 게 거의 없다... 양치기 대부분은 인도 반도에서 양들을 먹일만한 목초지를 찾기 힘들어 양지키기를 포기해야 했다. 인도 북동부의 이동 경작자들은 과감하게 휴경기를 줄여야 했다...... 대체로 농민들은 자신들의 땔나무를 태울 화덕에 나무 대신 짐승의 똥을 태워야 했던 반면 밭에는 거름으로 쓸 똥이 부족했다. 그리고 지하수위는 빠르게 떨어져 갔다.


최근 10년 동안 인도에서 공유지의 물적 자원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다. 그것들은 농촌 사람들의 생계를 잇는데 매우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데도 말이다. 여느 곳에서와 마찬가지로 빈민은 볼 수 없는 거의 모든 지역에서 그것들은 방치되고 있거나 난개발되거나 아니면 사유화되곤 했다. 황무지 마을에 대한 요다NS Jodha의 30년 연구는 공동 목초지와 숲과 습지, 공동 타작마당과 마을 연못과 하천 등에서 변화가 얼마나 과감하게 벌어졌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그는 가난한 사람들이 거의 대부분을 공유지 자원에 의지하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이 공유지 자원은 매년 가족 당 200일의 고용효과를 제공했고 대략 그것은 연 수입의 5분의 1을 차지했고 가축 사료와 전체 연료의 5분의 4를 차지했다. 그러나 재산이 많은 부자들 대부분에게 그것은 수입의 2퍼센트밖에 제공되지 않았다. 가뭄이 심한 시기에도 공유지는 가난한 사람들에게 더욱 더 중요했는데, 그것은 공유지 자원으로부터 수입의 40~60퍼센트를 얻을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토니 벡Tony Beck과 캐디 나이스미스Cathy Naismith는 공유지 물적 자산이 갖는 통화 가치를 따졌다. 계산해 보았더니 그것은 인도 농촌 수입으로 자그마치 년 미화 50억 달러에 달했다. 가구 당으로 계산하면 미화 200달러에 가치가 있는 것이었다. 요다Jodha의 획기적인 연구에 따르면 농촌 사람들, 특히 가난한 서민들에게 이런 자원의 근본 가치는 더욱 확연해지고 있다. 이들 연구에 의하면 공유지는 농촌 생계에 12~14퍼센트 정도 기여하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그 정도의 비중이라면 아주 가난한 가정에게는 매우 큰 위치를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특히 여자와 아이들에게는 더욱 더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할 것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또한 그런 공동 자산 체제의 지위와 면적은 지난 50년 동안 점차적으로 감소해왔음을 인정한다. 마치 인권이 점차적으로 박탈되고 지역 권력이 약화되어 온 것과 맥을 같이 했다.

요다 마을에서 공유지 면적은 1950년대 이래 마을 당 40~55퍼센트까지 떨어졌다. 증가하는 인구수를 고려해 볼 때 이는 거꾸로 공동체의 단위 면적에 의지하고 있는 사람 숫자는 세배로 증가했음을 의미한다. 애석하게도 이런 변화는 전통적인 집단 관리법의 붕괴가 수반되었음을 의미한다. 이 시기에 걸쳐 지역적으로 순환 방목지의 규정을 만들어 통제와 사용을 감시하는 사람들을 가진 마을의 숫자는 80개에서 여덟 개로 줄어버렸다. 이를 위반할 경우 1980년대까지만 해도 과태료나 세금을 매긴 마을이 55개가 되었지만 이후에는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사용자의 공동체적 의무는 우물과 경계 울타리를 집단적으로 보전하는 데에도 적용되었지만 그것조차 73개의 마을에서 12개의 마을로 줄어들었다.

이와는 다른 이야기가 있다. 가드길Gadgil과 구하Guha는 우리에게 식민지 이전에는 인도에서 왕궁이 어떻게 코끼리 숲과 사냥금지 구역 옆에 세워졌는지 얘기 해주었다. 그리고 어떻게 종교가 사회구조를 디자인하고 천연자원을 신중하게 사용하는 데 어떤 역할을 하는지에 대해서도 얘길 해주었다. 그들은 오늘날 인도 동부의 오릿사Orissa주가 있는 지역의 3세기 경 포고령을 인용했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의료는 사람뿐 아니라 동물에게도 유용하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약이 되는 허브, 과일나무, 뿌리와 괴경 식물들을 원래 잘 사는 땅에서 채집하여 적응하기 힘든 현재의 땅으로 옮겨 심어야 한다. 그럴 때는 자 이제 구멍을 파고 그늘을 드리우는 나무들을 사람과 동물 둘 다에게 유익하도록 길가 옆에다 옮겨 심어야 한다.


시간이 지나면서 공동체는 지역마다 천연 자원을 신중하게 이용하도록 특별한 통제와 규정들을 발달시켜왔다. 종종 유명한 가문들은 숲을 지키는 역할도 했다. 그밖에 다른 곳에선 모든 것을 거둬들여 자기 집으로 옮겨다 놓으려한 것과는 사뭇 다른 모습이었다. 사냥에 대한 통제는 일반화된 일이었다. 덫에 걸린 임신한 동물들 가령 사슴 같은 놈들을 풀어주는 것 등이 그런 사례였다. 이런 공동체 규제는 식민시기 동안 일련의 억압 하에서도 유지되었다. 목재는 유럽으로 수출되었고 국내 철로망 확장하는 데 침목으로 쓰였다. 히말라야의 숲 전체는 점점 더 파괴 위험에 빠져들었고 인도의 남부 산악의 상당한 면적이 벗겨져 나갔다.

야생의 공유지 자원은 아직도 나라 발전을 위해서 시골의 많은 사람들에게 매우 중요하다. 가난한 사람은 공유 자산에 가장 크게 의지하고 있으며 그것은 마치 그들이 정치적 힘과 가장 거리가 먼 것과 비슷하다. 그래서 그들은 이 공유자산이 도용되거나 손실되는 것을 막을 수가 없었다. 많은 사람들은 공유지가 쓸모없는 존재라 주장하고 있다. 그들의 눈에 그것들은 별로 생산적이지도 않은데다, 대체로 집단적인 제약이 너무 많고 무임 승차자들이 너무 많기 때문이었다. 그것은 광범위한 사유화 또는 인클로우즈의 결과였다. 이는 그리 놀라운 일이 아니다. 아마 18세기 동안의 영국에서이든 또는 20세기 동안의 인도에서든. 어쨌든 패배자는 늘 가장 가난한 사람이었다. 어떤 경우 이는 의도적이었지만 다른 경우에는 우연이기도 하면서 불가피한 결과였다. 인클로우즈 동안 공유지의 권리를 가진 사람들은 돈을 펑펑 쓰거나 그렇게 해서 다시 땅을 돌려주어야 하는 결과를 초래하기도 했다. 이 강탈의 역사는 오래, 깊게 그리고 고통스럽게 지속되었다. 슬프게도 그 역사는 오늘날 보전과 농업 현대화라는 이름으로 지속되고 있다.


동남아시아에서 공유지 철학의 실패

동남아시아의 논은 세계적으로 놀라운 일 중에 하나다. 맑은 날 반짝 거리는 하늘색 논의 찬 물 위에서 흰 백색 눈의 왜가리가 그 풍경을 신사처럼 가로질러 날아간다. 회색의 구름이 하늘을 낮게 드리울 때 논의 경관은 운치 있는 분위기를 자아내기에 충분하다. 경사가 가파른 언덕에는 다랭이 논이 놀라울 정도의 정밀도로 경사지를 깎아놓았는데 마치 수놓은 듯 층 지어 놓은 케잌 같다. 집단 의지로 이런 경관과 물을 잡아놓았다는 것에 큰 감명을 받지 않을 수 없다. 이런 농법이 개발되었을 때 그것을 기록해 둔 사람이 아무도 없었다는 것은 확실하다. 발리에서 관개 수답 농사가 처음으로 기록된 것은 서기 882년의 일이었다. 그 이후 영웅적 규모의 경관 관리는 발리의 평등주의자들인 사와sawah의 벼 시스템에 의해 만들어졌다.

관개 협동조합인 수박subak은 관개 수로망의 유지와 물의 할당을 책임지고 있었는데 수답농사는 한 사람이 혼자서 책임지기에는 너무 복잡했기 때문이다. 수박의 구성원은 소유하고 있는 땅의 규모와 상관없이 한 표씩 똑같은 권리를 갖고 있었다. 흙의 비옥도는 재, 유기물과 똥을 이용해 유지되었으며, 대나무 막대, 소음을 내는 바람개비, 깃발과 색테이프는 새들을 쫓아내 새 피해를 막아주었다. 벼는 두레로 수확되었고 곳간에 저장된 후 필요할 때만 팔았다. 그 체계는 1천년 이상 지속되었다. 그런데 눈 깜짝할 사이에 이뤄진 1960년대와 1970년대의 쌀 현대화는 이런 생태적이고 공동체적인 관계에 큰 충격을 가져다주었다. 농약은 익충을 대체했고, 비료는 소와 전통적 토양 관리를 대체했으며 트랙터는 지역 노동 조직을 대체했고 정부의 결정은 지역의 결정을 대체했다.

이런 변화의 이익은 다음과 같았다. 현대화된 각종의 벼 50퍼센트 이상 증산되었다. 비록 최고의 조건 하에서만 가능했지만. 그 쌀 종자는 그런데 기후와 물 사정에 따라 매우 민감했다. 세균과 질병은 증가했는데 그것은 연작에 의한 결과였으며 또한 포식성 물고기와 개구리가 농약 때문에 제거된 결과였다. 농부들은 소를 팔았다. 소는 더 이상 땅을 갈고 거름 만드는 데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기계화된 도정기는 쌀 탈곡과 정미를 담당했던 여성 두레를 배척했다. 현대화된 쌀은 수확 후 가격이 떨어졌을 때 바로 팔려나갔다. 이는 다음과 같은 변화를 의미했다. 남자들은 많은 현찰을 손에 쥘 수 있게 된 반면 여자들은 쌀 곳간 열쇠를 꼭 쥔 채 한 해의 먹거리 안정을 더 이상 도모할 수 없게 된 것이다. 한 때 완벽하게 통제했던 민주적인 수박 조직은 정부 기관에게 결정권을 빼앗겼다. 그것은 경작 방법을 결정하고, 파종일과 관개를 위한 투자를 결정하는 권리였다. 논농사의 고용감소는 농촌 사람들로 하여금 일자리를 찾아 이곳저곳 헤메게 만들었다. 재화는 더 이상 종교적인 의례를 통해 부자로부터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분배되지 않았다.

인도네시아와 말레이시아의 섬과 반도는 또한 아닷adat이라 불렸던 뛰어난 문화체계의 고향이었다. 이는 토착적인 지식과 믿음 이상을 포함하며 합법적 시스템 이상을 포함하고 있다. 사바Sabah에서 카다잔Kadazan 공동체의 패트릭 세군다드Patrick Segundad가 말한 것처럼 그것은,


모든 사람들이 알아야 하는 공동 재화에 대한 하나의 불문율이다. 아닷은 어떻게 우리의 자원을 나눌 것인가에 대해 중요할 뿐만 아니라 어떻게 우리는 살 것인가에 대해서도 중요한 존재다. 그것은 관리라는 개념이기보다는 두 가지 일이 동시에 일어난다고 할 수 있다. 당신이 어떤 것을 관리하려고 하면 당신이 관리하는 것은 동시에 당신을 관리하는 것이 된다. 한 개인은 더욱 큰 단일 행동의 한 부분이자 더 큰 균형과 조화의 한 부분이다.


이것이 핵심이다. 아닷은 사람들과 자연의 상호작용에 영향을 주는데 반대로 사람은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으로부터 영향을 받는다. 살파리나 가포Salfarina Gapor는 최근 보르네오의 사라와크Sarawak 해안 지역에 사는 멜라나우Melanau 사람들에 대한 연구를 완성했다. 이 연구에 따르면 아닷은 영혼과 인간과 동물과 식물 사이의 조화를 의미한다. 또한 그것은 사회적 고통분담과 상호부조 시스템, 그리고 토지와 종 다양성을 보호하는 도덕적 윤리를 가리킨다. 멜라나우의 주요 산물은 사고sago 야자다. 아닷은 최선의 관리 전략을 조정하는 데 영향을 미친다. 현대 벼농법을 같은 지역 안의 다른 곳에서 비교를 해보면 그 차이가 현저하다. 사고의 주된 천적은 원숭이와 흰개미와 맷돼지다. 이식할 때 농부들은 둘레를 깨끗이 정리한 후 미끼용 야자나무 한 그루를 심는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 몇 가지 종류의 식물을 심는데 가령 가렵거나 쓰거나 독이 있는 것들을 심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들을 3일 동안 방치해 두고 원숭이와 맷돼지에게 야자나무에 접근하도록 하여 나무가 맛이 없다는 것을 알게 한다. 농부들은 그 때쯤 나머지 사고 야자를 심는데 그러면 원숭이는 야자보다는 벌레를 먹게 된다. 그러나 가포는 아닷이 심각한 위협에 노출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요즘 많은 젊은 사람들은 그런 사실을 잘 알지도 못하는데다 현대 농업과 대규모 단작 농장은 전통농업의 생태계에 대한 깊은 지혜를 설명하지 못한다는 것도 알지 못한다. 생태적이고 문화적인 지혜가 사라질 위협 하에 놓여 있다는 것은 매우 우려스러운 일이 아닐 수 없다.

 

현대의 강탈

대륙마다 강탈에 대한 비극적인 역사를 갖고 있는데 그것은 대개 토지와 그것의 한 부분, 곧 공유자산 같은 것들에 대한 사용권이다.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인 옐로우스톤의 어두운 면은 크라우Crow와 소손Shoshone이라는 아메리카 원주민이 미 연방 군인들에 의해 자신들의 땅으로부터 쫒겨났다는 사실이다. 그 당시 그들은 44년 동안 스스로 그 공원을 관리해왔다. 오늘날 유사한 강탈은 보호지역으로 지정된 공원에서 계속되고 있다. 자연 자원을 보호한다는 가정은 그 지역 주민들을 쫓아내야 가능하다는 전제를 깔고 있는데 이는 인류 전 역사에 걸쳐 녹아있는 고정 관념이다. 지역에서 관리의 실수라도 생기면 이는 정착 농민이 아닌 유랑민과 다른 토착 종족들을 쫓아내는 구실로 이용되었다. 국가는 다양한 가치 판단적인 선입견의 용어들을 구사했는데, 가령 인도의 불가촉천민, 중국의 소수, 필리핀의 문화적 비주류, 인도네시아의 이방인처럼 고립된 사람들, 타이완의 원주민 부족, 보르오네의 토착 부족민, 그리고 페니슐라 말라야시아 등이다. 낸시 리 펠루소Nacy Lee Peluso가 지적했듯이, "그 용어들은 보통의 쓰임새보다는 특별한 용어 사용자들의 의지에 의해 정치화되었다.“

이들은 대부분, 유목민, 목축민, 화전민, 수렵 채집민, 집시, 그리고 일자리 찾아 떠도는 사람들로 국가의 입장에선 다루기 곤란한 존재들이다. 국가는 그들을 정착시키려 하거나 정착민들을 그들 지역으로 이주시키려고 한다. 가령 이는 인도네시아 외부로 1980년대 동안 자바의 쌀 품종을 강제로 ‘이식transmigrasi' 시키려 했던 것과 유사하다. 자신의 쌀 문화와 경관으로부터 쫓겨난 자바인들은 새로운 지역에 정착했지만 사실 그곳은 벼농사하기에는 적합한 곳이 아니었다. 그리고 그곳은 이미 원주민들로 꽉 차 있었다. 갈등은 불가피했고 그 과정에서 도태된 집단은 결코 이득될 게 없었다. 이런 변화는 18세기와 19세기 동안 영국에서 쫓겨난 이주민들, 곧 인클로우즈 동안 자신들의 땅을 잃어버린 후 대부분 가벼운 범죄자로 전락한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주었다. 그 경범죄자들은 호주로 옮겨졌는데 그곳에서 그들은 원주민들로부터 땅을 빼앗았다.

이런 강제 식민은 사람들에게 큰 상처를 안겨주게 되어 있다. 카이첼라 디페라Kaichela Dipera는 보츠와나Botswana의 무칼라하리인데 칼라하리의 사냥금지 구역에 사는 부시맨에 대해 이렇게 말한다.


쫓겨난 경험은 그것을 기억할 때마다 당신을 매우 고통스럽게 할 것이다. 왜냐하면 당신이 오랫동안 살아왔던 그곳에서 떠나야 하기 때문이다. 그들은 식물이 무엇 때문에 존재하는지, 말하자면 식물은 물과 음식의 원천임을 그들은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은 새로운 장소로 옮겨갈 때 완전히 자신들의 문화로부터 단절되게 된다. 또한 그들은 새로운 곳으로 가서 다시 새로운 문화를 만들기 시작해야만 한다.


실제로 그런 단절은 고통 이상의 것이다. 그것은 삶의 의미, 그리고 수 세대 동안 계속된 배제의 기억에 대한 사람들의 마음을 제거한다.  

동 아프리카의 사바나 지역은 야생 동물들에게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곳이다. 여전히 그것은 목축민들과 그들의 소, 그리고 지역의 야생동물들 간의 오랜 공진화의 결과로 만들어진 것이다. 한쪽이 없어지면 나머지 다른 한쪽은 고통을 겪게 되어 있다. 케냐의 마사이족이 자신들 땅으로부터 쫓겨난 후 새로 만들어진 공원에는 다시 심어진 관목숲과 삼림지대가 조성되었고 거기에는 영양이 먹을 것조차 별로 남겨지지 않았다. 더욱 황당한 문제는 농업의 발전에 의해 저질러졌다. 가장 악명 높은 것 중에 하나가 탄자니아에서 발생했다. 탄자니아는 밀 농장을 건조한 바소투 평원에 1960년대 말부터 1990년대초까지 조성했다. 이 평원은 3만명보다 더 많은 바라바익Barabaig 목축민들의 고향이다. 그들의 문화는 가축을 지키고 가축의 먹이와 그들 전 영토에 걸쳐 흩어져 있는 물과 소금을 공동으로 이용하는 것에 근거하고 있다. 여덟 번 순환 방목 체제로 이뤄진 복합적인 목초 순환 시스템은 일정한 땅을 오랜 기간 사람과 동물들로부터 쉬게 해줌으로써 남용으로 인한 피해를 예방했다는 것을 의미한다. 공동체의 모든 구성원들은 공동의 땅을 사용할 수 있으며 그것은 관습권과 개인 및 씨족과 지역 집단의 의무에 의해 보장되었다. 바라바익처럼 가혹한 환경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자신들의 목숨을 의지해 온 땅에 대해 존경심을 가져온 전통을 갖고 있다. 그들의 선배들은 말한다. “우리는 땅을 존경하고 가치있게 여긴다. 우리는 영원히 그것이 보존되길 원한다.”

그러나 바소투 평원에서 밀을 재배하기 위해 약 4만 헥터의 가장 비옥한 땅을 바라바익으로부터 분리했다. 몇 년 동안 이 농장들은 나라가 필요로 하는 밀 수요량의 반을 공급했다. 가까스로 투자 수익률에 초점을 맞춘 프로젝트 평가서가 도착했다. 그에 따르면 거의 투자 자본의 40퍼센트가 돌아왔는데 그것은 ‘탄자니아 경제에서 매우 수익성 있는 것’이었음을 보여준다. 그러나 만일 사회적, 환경적으로 강력한 충격이 찾아오면 그 때는 매우 다른 양상이 드러날 것이다. 찰스 레인Charles Lane은 지역민들에게 가해진 최초의 충격에 대해 보고서를 쓰는 데 몇 년을 보냈다. 비록 밀 농장이 그들 땅의 8/1만을 차지하고 있지만 이는 가장 방목하기 좋은 땅이었으며 그래서 그로 인한 손실은 매우 결정적이었다. 가장 비옥한 땅에 접근하지 못하게 됨으로써 전체적으로 순환 방목 시스템은 위태롭게 되었는데 그 결과 가축 수는 급격하게 감소되었다. 그들의 성스런 무덤들은 갈아엎어졌으며 수확 후 땅이 헐벗은 것만큼 침식은 성스런 바소투 호수에 토사를 메웠다. 문제는 이주자들이 근본적으로 목축민들과 그들이 공동방목장을 관리하는 특성을 잘못 이해했다는 사실이다. 목동들은 땅의 생산성이 어떻게 변화하는 지 평가를 하면서 그에 따라 움직였다. 그리고 이를 이해하는 데 실패한 사람들은 땅이란 비어있거나 잘못 관리되고 있는 것이라는 착각에 빠져들곤 했다. 한 연구에 따르면, ‘그 사업은 경계지역에서 이뤄지는 개발 노력의 많은 특성을 담고 있다. 전통적인 목축민들은......그 사업에 노동자로 흡수되거나 대체되고 있었다. 이전에 방치되어 있던 땅은 경작지로 바뀌어 가고 있었다.’ 그 사업은 지금은 문을 닫았지만 원주민에 대한 그 효과를 여전히 지속되고 있다.



인도에서 산림의 권리와 보호

인도에서 자연 파괴에 대한 관심은 1864년 국가의 정책 입안자들에 의해 공식화되었는데 그들은 제국산림부를 창설했으며 일년 후 최초의 인도 산림법을 만들었다. 이는 산림에 대한 안정된 국가통제의 확대를 명확히 했으며 그것은 1990년초까지 지속되었다. 그 때 공동 숲관리라는 아이디어가 정책지원으로 주어졌다. 19세기 내내 산림은 제국 권력 자체로부터 폭넓게 위협을 받고 있었다. 그러다 시간이 흐르면서 지역 원주민들의 지역 자원에 대한 무능한 관리가 부각되기 시작했다. 산림법은 자연 자원을 이용하는 지역 원주민의 관습권을 받아들일 아무런 준비가 없었다. 그리고 그 맹점은 1세기 이상 지속되었다.

그러나 관료들은 허락되지 않은 권리와 화전과 방목의 승인된 특혜를 구별했다. 가드길Gadgil과 구하Guha는 그런 특혜를 ‘정부가 정책적으로 사람들의 편의를 위해 승인’한 것이었음을 지적했다. 실제로 국가는 모든 산림을 합병하여 완벽히 통제해야 한다고 주장한 사람들에서부터 관습적인 사용이 존재했던 곳 또한 합법적 권리로 인정해야 한다는 관료까지 그 해석들은 다양하다. 가드길과 구하에 따르면 최초의 감찰관 다이어트리치 브랜드Dietrich Brande는 영국의 뉴포리스트New Forest에 대한 공동사용권과 인도의 산림 속 토착민들의 권리와 그들에 의한 숲 관리법 차이를 비교한 실용주의자였다. 그는 국가에 의한 제한된 산림 매입을 옹호했으며 또한 산림에 대한 공동 규칙과 신성한 산림들 간의 네트워크 확장에 대해 적절하게 평가를 했다.

그러나 브랜드는 놓친 게 있었다. 1878년 인도의 산림법 제정 이후 산림부에게 숲관리와 형벌권을 부여함으로써 또 다른 시대가 도래하는 상황이 벌어짐을 몰랐던 것이다. 1878년과 1900년 사이, 설계된 국립 숲 규모는 36,000에서 200,000 제곱킬로미터까지 확장되었다. 그 중 40퍼센트가 보호 숲으로 지정되었다. 독립 이후 총 규모는 250,000제곱킬로미터로 확대되었다. 그동안에 산림부는 수익성이 높은 부처로 진화했다. 이는 산림부로서 자원 관리보다, 생물다양성의 보전보다는 수익에 의존하는 부처로 평가하게 만들었다. 예상대로 이는 야생 자원에 의지해 사는 사람들, 그러니까 수렵 채집민, 이동하며 농사짓는 사람들, 정착농민들, 숲 자원으로 집을 짓거나 바구니. 악기, 가구, 직조기, 무두질, 염색 장인들을 하찮은 존재로 만들어버렸다.이렇게 권리를 배제, 부정한 것은 불가피한 결과를 초래했는데 원주민들이 자신들 땅을 되찾기 위해 투쟁에 나선 것이다. 20세기 마지막 20년에 걸쳐 국립공원과 보호지역의 확대로  허용되지 않거나 허용된 바 없는 지역 자원의 이용이 매년 600,000ha의 비율로 지속되었으며 그 결과 수천의 사람들이 강제로 쫓겨났다. 이는 수많은 항의와 집회 그리고 반발을 불러일으켰다. 1980년초 100건 이상의 충돌이 보고되었다. 인도의 국립공원과 보호지역에서. 나중에 1990년대초 칸하Kanha와 나가홀Nagarhole 국립공원의 넓은 지역에 마을사람들이 불을 지르는 일까지 벌어졌는데 숲의 임산물을 채취하지 못하게 사람들의 접근을 막은 결과였다. 아쌈Assam에서 지역민들을 쫓아낸 지역을 호랑이 보호지역으로 지정하자 이에 대한 지역민들의 분노와 반란으로 숲 관리인들이 내쫓겨 났으며 마디야Madya 프래데쉬Pradesh에서 호랑이와 버팔로 보호지역을 침입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그곳은 이미 52개 원주민 마을이 강제로 쫓겨난 지역이었다.눈치 빠른 전문가들은 별로 효과 없는 보전 방법이 도입되었음을 간파했다. 철통 같은 보호지역 예산의 대부분은 비행기, 라디오, 무기, 운송장비, 무장 경비원들의 월급, 야간안경과 밀렵 방지기구 등을 지불하는 데 쓰였다. 그것들은 대개 생태적으로 비생산적인 것이었다. 케올라데오Keoladeo 가나의 라자스탄 국립공원에서 바라트푸르Bharatpur 습지는 많은 새들, 곧 겨울 철새인 거위, 오리와 멸종 위기에 처한 시베리안 두루미들의 안식처였다. 버팔로 방목의 금지는 두루미를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1982년에 실행되었는데 지역주민과 경찰들 간의 안타까운 죽음까지 불러온 폭력적인 분쟁을 유발했다. 그럼에도 금지 조치는 더욱 강화되었고 그 사이에 참새피라는 풀이 번지기 시작했다. 참새피는 물새들의 호흡을 방해했으며 서식 환경을 악화시켰다. 그러자 원숭이가 풀을 제거하도록 불도우저 역할로 투입되었다. 그러나 이는 결코 버팔로만큼의 효과를 내질 못했다. 최근에 마드하프 가드길Madhav Gadgil이 말했던 것처럼 그런 문제를 해결할 진보적인 대안이 나왔는데 바로 ‘마을 사람들로하여금 손으로 직접 풀을 매게 해야 한다’는 것이었다.아무튼 지역민들의 불만은 1980년대 동안 현재 가장 유명한 환경운동 단체의 하나인 칲코Chipko의 창설로 이어졌다. 그 운동은 히말라야 지역주민들이 알라카난다Alakananda 계곡에 있는 자신들의 나무를 베어오지 못하게 된 것이 발단이 되었다. 그리고 정부에선 별 상관없는 스포츠 제품 회사에게 숲의 독점적 사용권을 부여해주었다. 칲코의 의미는 힌두어로 ‘포옹’하다는 뜻으로 마을 사람들은 바로 자기들이 보호하려는 나무들을 위해 이 말의 뜻을 그대로 실천했다. 이 아이디어는 단순하면서도 설득력이 있어 우타 프라데쉬Uttar Pradeshr를 통해 특히 남부 인도 전역으로 빠르게 퍼져나갔는데 그 지역은 아피코Appiko 운동(이도 또한 카나다Kannda 말로도 ‘포용하기’)으로 유명해진 곳이었다. 그곳엔 환경적이면서 사회적인 두 개의 중요한 운동이 있었다. 그 운동은 사람들이 무엇을 돌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었고 또 그것을 위해 사람들은 무언가를 하려고 했다. 공동 숲관리라는 관념이 생긴 것은 바로 이 운동으로부터 시작되었으며 드디어 1990년대 초에 이르러 행정 정부의 지원을 받아내기에 이르렀다. 자연 자원에 대한 책임성이 사람들에게 주어진다면 사람들은 그것을 이용해 생산성도 증대시키고 또한 거기에서 나온 수익을 독점하지 않고 공정하게 배분한다는 것이 이로써 분명히 증명되었다. 그리고 그런 권리를 남에게 양도한다고 해서 산림 자원의 비극적 파괴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보호지역과 국립공원에서 자연 보호야생이라는 관념은 매우 설득력이 있어 야생보호의 아버지로 많이 알려진 존 미르John Muir의 저서 중 핵심을 차지하고 있다. 그는 미국에서 태어났고 그곳에서 1914년 죽을 때까지 그곳에서 살았으며 그의 저작과 그의 주장은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을 만들어냈다. 그는 1892년 시에라 클럽Sierra Club 창설을 도왔는데 오늘날 600,000명 회원을 가진 큰 조직이 되었다. 많은 논평가들은 미르가 자주 언급한 야생에 관해 상세하게 설명했다. 1869년부터 그는 시에라 네바다Nevada 산을 5년 동안 식물과 동물과 지질학을 연구하며 유랑생활을 했다. 미르는 양치기와 함께 다녔는데 그는 수천의 양떼를 작은 언덕에서 높은 산 꼭대기까지, 때로는 머시드Mercde와 투울럼니Tuolume 강의 상류와 요세미티 계곡에서 떨어지는 장관의 폭포수까지 돌아다니는 사람들이었다. 미르는 요세미티를 일종의 ‘공원 계곡’이라 불렀고 자연의 창조성을 찬사해 마지 않았는데 ‘이 건강한 야생에 어떤 문제가 일어날 수 있을까.... 자연의 방법이란 얼마나 훌륭한가. 아름다움을 뛰어넘어선 그 아름다움이란 또한 얼마나 깊은가.’그러나 이는 인간에 의한 만들어진 경관이었다. 특히 아화니치Ahwahneechee라는 인디언 원주민이 만든 것으로 그들은 불을 이용해 요세미티의 초원을 조성했다. 미르는 경관에 끼치는 사람들의 영향을 간파했다. 그는 길에서 만난 양치기와 지역 원주민들의 행동을 세심하게 관찰했다. 그러나 이런 깨달음은 다른 많은 논평가들에게는 볼 수 없는 것으로 그들은 미르의 눈에 비친 야생을 그저 처녀지로만 볼뿐이었다. 미르는 사빈Sabine 소나무 숲을 마주쳤는데, 그가 양치기로부터 들은 바에 의하면 소나무의 열매, 곧 송화가루도 ‘굴파는 인디언’에 게 요긴한 먹을거리로 채집되었다. 이 숲은 저절로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니었다. 그 숲은 채집자들에 의해 보호되었고 유지 되었다. 미르는 야생 루핀lupin, 섹서프레이지saxifrage와 뿌리 등을  채집하는 여자들을 볼 수 있었는데 그 풀들은 유용한 먹거리가 될 수 있는 다양한 종으로 기록된 것들이었다. 거기에는 새들이 쪼아먹던 헤즐넛과 도토리를 포함해 다람쥐와 토끼, 딸기류, 메뚜리와 검은 개미, 말벌과 꿀벌의 애벌레, 그리고 ‘탄수화물을 풍부하게 함유한 뿌리, 씨앗 그리고 껍질들’도 많았다. 한번은 7월초 쯤 어느날, 미르와 그의 동료들은 양고기 말고는 먹을거리가 떨어졌다. 배고파 힘겨운 가운데 먹을거리가 공급되길 기다리면서 미르는 이렇게 풍요로운 자연 경관 앞에서 먹을거리를 찾을 수 없는 자신들을 한탄했다. ‘인디언처럼 우리도 양치식물과 섹서프레이지의 줄기, 백합의 구근 등으로부터 녹말 얻는 방법을 배워야 한다. 우리의 교육은 이를 오랜세월 무시해왔다.’미르는 미 원주민의 경관에 대한 조심스러운 태도를 소개했다.“얼마나 많은 세기 동안 인디언들은 아무도 알지 못하는 이 숲들을 돌아다녔을까, 아마도 엄청 돌아다녔을텐데.... 그들은 자기들이 살던 흔적들을 남기지 않았다는 사실이 참으로 신기해보였다. 인디언들은 얼마나 천천히 걸어다녔는지 새와 다람쥐보다 더 자연경관에 상처를 입히지 않았다... 백인들 대부분의 행동들, 특히 금광 하류지역에서 행한 그들의 행동은 너무나 달랐다. 그들은 단단한 바위를 폭발해 길을 만들었으며 급류 하천에 댐을 만들어 길들이더니 협곡의 방향을 돌려버렸다.”그는 또한 미 원주민들이 ‘멋진 기념물인..... 숲속 사냥터를 불을 이용해 만들었다.’고 소개했다. 그래서 미르의 를 너무 비판하는 것은 무례한 일이 될 것인데  미르만이 아니라 소로우Thoreau 같은 다른 야생 작가들, 곧 태고적 자연의 흔적들을 보호해야 할 의무를 스스로 가진 사람들에게 자연이란 본질적 가치를 지니고 있으면서도 현재 많은 위협 속에 있는 존재였다. 1872년 옐로우스톤과 그 후 1890년 요세미티에서 독자들의 상상력이 세계 최초의 국립공원의 창설을 이끌게 한 것은 그들의 영감어린 저작이었다.문제는 우리를 자연으로부터 분리시킨 영구보전이라는 관념에 있었다. 모순되게도 이는 매우 근대적인 문제로 이 작가들도 반대했던 것들이었다. 그 주장은 다음과 같다. 자연이 우리로부터 분리된 것처럼, 그래서 그것은 철저하게 안전한 울타리 속에서 보호되어야 한다. 인간의 행위로부터 멀리 떨어져서. 만일 그것이 그렇게 보호될 수만 있다면 그때 우리는 자연경관 주변에서 행해지는 경제개발의 위협 앞에서도 어깨를 으쓱할 것이다. 이는 소수민족의 사상이면서 하나의 단순 소박한 이야기로, 한 장소에서 농사를 지어 먹거리를 생산하게 하고 원하는대로 하게끔 하는 것이다. 더욱 더 생산이 많아질수록 야생과 공원에는 부담이 적어지는 것은 아니다. 이런 이분법적인 사고와 행동, 곧 농사와 자연의 보전을 나누는 것은 악영향을 줄뿐으로 그것은, 농경지의 자연이란 아무런 가치 없는 것이라는 관념에 근거한 것이다. 그러나 매년 멕시코를 오가는 십만의 군주나비 또는 도시의 정원에서 번창하는 생물다양성은 어떠한가? 그것은 또한 야생이란 인간에 의해 형성되지도 않고 간섭받지도 않는, 그런 방법으로 유지되어야 하는 것이라는 관념에 근거한다. 이는 심각한 분리의 신화이며 심각한 위험으로 우리를 이끈다. 그것은 연대를 위해 지금 당장 다시 생각해야 할 문제이기도 하다.세계 최초의 공식 보호지역이 1872년 3월 1일 지정되었는데, 미국 대통령 율리시스 그랜트Ulysses Grant가 옐로우스톤처럼 북서부 와이오밍의 900,000헥터의 땅에다 만들었다. 그 다음엔 1885년 뉴욕주가 산림보호를 위해 애디론덱Adirondack족이 살고 있던 거의 300,000헥터의 땅이 지정되었다. 어느 경우이든 자연과 야생 보전이 주목적은 아니었다. 옐로우스톤의 경우 주목적은 간헐온천과 온천지를 개발하는 데 사기업을 제한하는 것이었다. 동부의 뉴욕시의 관심은 음용수 공급을 유지하는 것이었다. 이 보호지역들은 1890년 요세미티 국립공원의 설계를 따라한 것으로, 1891년에는 대통령이 더 많은 산림보호 지역을 만들기 위해 허용했던 토지법령을 개정했다.(나중에 국립숲이라 이름 붙여졌다.) 나중에 벤자민 헤리슨 대통령이 5만 헥터보다 더 많은 15개의 보호지역을 선포했다. 그러나 반전이 곧 따랐는데 가령 목재 추출을 합법화하기 위해 1897년 산림관리법이 제정된 것이다. 그런 진전과 반전은 오늘날에도 지속되고 있다. 지난 세기 동안 공원과 자연 보호는 야생이든 경관이든 자연을 보호하는 데 최고의 의미를 가진 것이었다. 2001년 유엔 보호지역 리스트에 보면 세계적인 공식보호지역은 12,754개나 되었다. 면적으로는 1천3백만 평방킬로미터에 이르렀는데 그것은 브라질, 중국, 미국의 면적보다 큰 것이다. 1950년대 말까지 유엔 리스트에는 10년마다 300-400개가 지정되었다. 1960년대에는 1000개보다 더 많이 늘어났고, 1970년대에는 2500개, 1980년대에는 3800개로 늘었다가 1990년대에는 1800개로 증가 개수가 줄었다. 세계 보호지역 모니터 센터는 추가로 17,600개의 보호지역을 그 데이터베이스에 기록하고 있다. 그것은 최소한의 기준인 유엔의 1,000헥터보다 작은 규모로 총 면적에 다른 28,500평방 킬로미터를 더한 것이다. 총 30,000개의 보호지역은 지금 전 세계 면적의 8.83퍼센트에 이른다. 보호 지역을 지정하고 있는 191개의 나라 중 36개는 보호지역으로 자기네 영토에서 10-20퍼센트를 차지하고 24개의 나라는 20퍼센트보다 더 많다.보호지역은 지속가능한 관리와 자원의 활용을 위해 엄격한 보호지역에서부터 6개 유형으로 나뉘었다. 전체 보호지역의 3분의 1, 곧 숫자로는 10,700개와 규모로는 7백만 평방킬로미터에 이르는 이 지역은 자연 자원의 지역적 이용을 허용하지 않는 1-3의 범주에 속해 있다. 개발도상국의 7,322개 보호 지역 중 25퍼센트는 아시아와 태평양 지역에서 철저하게 보호되고 있고, 28퍼센트는 아프리카에 그리고 40퍼센트는 라틴아메리카에서 보호되고 있다. 이곳에는 많은 지역주민들이 여전히 자신들의 모든 가축 또는 일부를 위해 야생 자원의 이용을 요구하고 있다. 보호지역에서 1천3백만 평방킬로미터 가운데 엄격히 보호되고 있는 7백만인 46퍼센트는 아프리카, 아시아와 라틴아메리카에 있다.(표 2.1 참고)이는 엄청난 면적의 땅으로 많은 사람들을 쫓아낸 결과였다. 문제는 낸시 리 펠루소Nancy Lee Peluso가 언급한 것처럼 다음과 같다. ‘관리되고 있는 생물다양성은 현재 많은 사람들이 우려를 금치 않는 실질적인 생물다양성 감소에 대해선 거의 언급하고 있지 않다. (맹그로브 숲처럼) 10년 또는 100년 동안 인간에 의해 확실하게 점령되어버린 야생동물의 거주지도 마찬가지로...’보호지역을 지정한 근본적인 개념은 ‘자연적’ 상태 곧 인간이 접근하지 않은 상태의 ‘보전’이다. 아투로 고메즈 펌파Arturo Gómez Pompa와 안드레아 카우스Andrea Kaus가 지적했듯이 이들 지역은 ‘완전히 원시적 환경 곧 인간의 간섭 이전부터 존재했던 것과 같은, 우리가 즐겁고 우리가 사용하기 위해 보전될 필요가 있는 정교하게 균형잡힌 생태계이다.’ 그렇다고 보호지역이 전혀 쓸모없다고 말할 수는 없다. 최근 한 연구, 그러니까 5,000헥터에 달하는 93개의 국립공원 또는 22개의 열대지방 나라들에서 규모로는 그보다 더 큰 공원을 연구한 것에 따르면 보호지역 공식 지정이 생물다양성 과제에 효과적이었음이 밝혀진 것이다. 연구 대상이 된 모든 공원은 5년 이상 된 것이었고 주제는 인간의 간섭에 대한 연구였다. 10개 중 7개의 공원에는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그 사람들 중 반은 공원 일부의 정부 소유권에 대항하는 정주민이 살고 있었다. 여전히 공원의 10분의 8 이상은 설립되었을 때처럼 많은 식물로 덮여있었다. 공원들은 근처 비지정 지역보다도 덜 강등된 치안 수준 때문에 문제가 되고 있다. 비지정 지역은 가령 불법적 벌목을 막기 위한 치안유지 활동이 활발히 이뤄지고 있는 지역이다. 가장 효율적인 공원은 경계를 확실하게 표시하고 정부의 권위와 지역 공동체 사이에 호의적이고 돈독한 관계를 갖고 있는 곳이다.자연은 확실히 인간의 간섭 이전부터 잘 존재해 왔고 우리가 사라진 뒤에도 그렇게 잘 존재할 것이다. 그러나 우선 대부분의 경관이란 근본적으로 인간의 상상과 실천에 의해 형성된 것이라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이는 자연과 인간이란 함께 다정스런 춤을 추는 떼려야 뗄 수 없는 한 짝꿍이라는 것, 그래서 그것의 결과물은 우리 주변에서 매일 보고 접할 수 있다는 사실이다. 반대로 그렇지만 우리는 모든 자연을 인간과 환경 연계성의 새로운 산물이라고 성급히 결론 내려서는 안된다. 베어드 칼릭코트Baird Callicott와 그의 동료들은 보존 생물학을 위한 중도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다. 양 극단은 논쟁하는 데 필요한 은유적이고 수사적인 유용한 장치일뿐이다. 그러나 실제로 대부분의 사람들은 극단 사이의 일정한 스펙트럼 위 어딘가 서 있다. 거기에는 야생동물과 같은 것도 존재하고, 그래서 거기에는 보호하고 통제할 필요도 존재한다. ‘야생’ 자연이라 하더라도 대부분은 인간이 개입하여 생긴 일종의 창조물로, 전 세계적으로 대부분의 생물다양성은 인간 주도형 생태계 안에서 존재한다. 이는 인간적인 결정과 전망의 중요성을 얘기하는데, 그것은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킴으로써 상황도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과 비슷하다. 그러나 우리는 이 관계, 곧 자연과 인간의 관계를 다시 바꾸고 싶어하는 것은 아닌가? 마치 연금술처럼 우리는 생각지도 않은 전혀 다른 결과를 상상할 수 있을까?근대주의와 모노스케이프미르와 서로우가 야생에 관해 글을 쓰고 있을 즈음에 브랜드Brande는 인도의 산림정책을 설계하고 있었고, 최초의 국립공원이 미국에서 만들어지고 있었으며 마지막 인클로우즈가 영국에서 종을 쳤다. 그리고 일본은 에도 시대의 막을 고하고 있다. 에도는 19세기 세계에서 가장 큰 도시였다. 백만명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살고 있었고 인구밀도가 오늘날 도쿄보다 세배나 더 컸다. 3백년 가까이 에도는 놀라운 예술성과 문화적 혁신을 일으켰는데 그것은 주류 일본 예술 전통을 낳았다. 예를들면 다례, 꽃꽂이, 노와 카부키 드라마, 독특한 스타일의 건축, 도시 디자인과 풍경화 등이 그것이다.건축가 키소 쿠로카와에 따르면 ‘에도는 꽃들의 도시로 알려졌다.’ 그리고 에도는 혁신의 대명사이며 또한 녹색의 도시 공원과 정원의 대명사였다. 쿠로카와는 가장 중요한 에도의 모습 중의 하나는 유기체 자연의 잡종 디자인이었다고 믿는다. 다양성이란 선한 것이고 뭔가 만들어진 작품은 도시 또는 농촌 공간에서 이용될 수 있었다. 이는 혼동을 일으키지는 않았는데 조화의 원리가 만들어지려는 무언가를 결정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양성은 또한 통합을 의미했다. 그리고 서로 다른 요소들을 함께 불러오는 시너지 효과의 과정은 부분들의 합보다 더 큰 전체를 창조한다.일본 차 문화의 단순성은 우리에게 경관을 어떻게 디자인해야 하는 지에 관해 어떤 중요한 시사점을 말해 준다. 최초의 기록에 따르면 다실은 디자인된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자연스럽게 덧붙여지는 과정을 통해 만들어졌다.’ 차를 내오는 주인장은 오로지 지역적으로 유용한 재료를 사용했다. 그들은 아주 단순한 대상에서 아름다움과 조화를 찾을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 가령 나무들, 잘려나간 가지들 또는 벌레 먹은 판자들이 그것들이다. 여기에서 중요한 점은 이런 재료들은 복합적인 의미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예컨대 소박한 초가지붕은 봄에 화려한 벚꽃을 떠올리게 할뿐더러 가을에 반짝이는 단풍잎을 떠올리게도 한다. 이는 에도의 다의적인 코드로서 바로 단순성과 조화가 일련의 살아있고 변화하는 경관 부호들을 만들어낸다는 점이다. 이 속에서 다양성이 시간을 초월해 풍부해지는데 바로 사람들이 만들어낸 증가하는 변화에 대응하는 시스템과 비슷하다 할 수 있다.일본의 풍경화가들은 서양의 동시대 풍경화가들보다 의지가 강했다. 서양의 화가들은 여러 가지의 틀을 선택했는데 가령 폭이 넓은 스크린 또는 길이가 긴 양피지 등이었다. 일본 화가들이 그린 풍경은 늘 조화로운 녹색의 언덕으로 거기에는 핑크빛 벚꽃 숲으로 뒤덮여 있곤 했으며 가운데에는 황금빛 안개를 끼고 있었다. 이 언덕은 사토야마의 신화와 미스터리가 베어있는 곳으로 이는 깊게 일본 문화에 뿌리박혀 있으며 사토치라 불리는 시골 전망의 한 부분이기도 하다. 이 사토치는 위대한 다양성의 상징으로 표시된 지역으로 인간과 자연의 관계의 다양성, 그리고 자연과 인간의 상호 공존이라는 관념을 상징하기도 한다. 그것은 또한 푸루사토furusato를 포함하고 있는데 그것은 오래된 주거지로 사람들에게 특별한 감정을 느끼게 해주는 공동체의 공간이었다. 그 속의 많은 사람들은 평민들로 이리아이치iriaichi라 불렸으며 그들은 20세기 중반까지 생태적인 파괴없이 지속되었다. 전반적으로 그것은 문화적으로 중요한 다양한 경관이었는데 그것을 이루는 것들은 논과 과수원 나무들, 숲과 언덕과 그리고 강과 높은 산들이었다. 그러나 오늘날 사토치는 현대화된 경제 개발의 위협 하에 놓여있다.이는 근대주의가 만들어낸 단순 경관의 문제이다. 그것은 근본주의의 일종으로 한 가지의 길만을 제시한다는 점과 또 다른 가능성의 길은 배제하기 때문이다. 단순 경관은 일종의 장애 시스템이라 할만하다. 그것은 한 가지 점에서는 좋을 수 있다. 그러나 사람들은 그것들을 위해 별로 주의를 기울이지 않는다. 사실 단순경관은 그것이 드러난 만큼보다도 별 가치가 없다. 가치란 대체로 소수의 이해당사들에 의해 트집잡히고 포착되기 때문이다. 가난은 단작 문화 속에서 지속되며 그것은 확실히 많은 공동체 곧 우리가 전통적이라고 불리길 원하는 공간에서 드러나고 있다. 거기에는 또한 사회적인 불평등이 존재하고 그것은 야생의 단작문화의 중심부에서 핵심적으로 드러난다. 그것들을 ‘야생’과 ‘처녀지’로 만들기 위해 거기에 살고 있는 사람들을 쫓아낸다. 그들은 관광객들에 의해 쫓겨났다. 관광객이란 새로 부여된 질서를 갖춘 자연과 실제 경관에서 체험을 즐기기 위해 방문한 사람들이다. 그에 반해 다문화적인 접근은 다름을 받아들이고 전체적인 가치를 받아들일 줄 안다.내가 현대라는 용어를 현재의 농업 시스템을 표현하기 위해 사용할 때 나는 그것을 세속적인 의미라기보다 오히려 철학적인 의미로 사용한다. 그런 시스템들은 확실하게 현대적인데 그것들은 우리가 현재 갖고 있는 것들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더욱 중요한 것은 그것들은 근대주의이라는 사실이다. 왜냐하면 그것들은 단일 코드의 시스템이기 때문이다. 쿠르카와는 1981년 영국 런던의 국립아카데미에서 연 ‘에도 시대의 예술’ 전시회의 디자이너였다. 그는 이렇게 확실하게 말한다.“나는 어떤 의미에서 근대를 거부하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그것이 어떻게 경직되어 갔는지, 그리고 그것이 어떻게 모든 유연성을 잃어버리게 되었는지를 보았을 때, 나는 근대주의의 약점을 공격한 사람들과 협력하기를 압박 받는다.”근대주의의 농업은 일종의 단일 코드이다. 그것은 한 가지(의 음식)을 생산하고 또 그것을 잘 한다. 그것은 지역적인 전통에 근거하지 않으며 그것은 장소도 가리지 않고 융통성도 없으며 단일 문화적이다. 다양한 경관은 반면 더욱 많은 요소들을 품고 있으며 이 요소들간의 연결도 풍부하고 그래서 더 강력한 상승효과의 에너지를 갖고 있다. 탈 근대는 더욱 공존적이며 쿠르카와가 말한 것처럼 “양극 사이의 중재 공간에서부터 많은 창조적 가능성들이 일어날 것이다.”경관이란 서민적이다. 그러나 오늘날 그것은 지역적인게 아니라 세계적인 이해에 의해 만들어지고 있다. 이런 세계적인 서민들은 결코 지역의 특별한 요구에 대응할 수 없으며 또한 어떤 점들이 나쁜 것으로 밝혀져도 그것을 빠르게 개선할 수가 없다. 그런 세계적인 경관의 서민은 ‘단일사용’과 ‘단일경작’이 가져다주는 효율성에 익숙해져 있다. 우리는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이런 문제들을 다시 제자리로 돌려달라는 요구로부터, 그리고 보전과 생산이라는 이분법의 틀을 벗어나는 것으로부터 새로운 길을 찾고 있다. 축적되어 온 상태로서 경관을 말하는 사람은 그로부터 앞으로의 전망까지 끌어낸다. 만일 그것이 경관을 위한 하나의 전망을 정의하고 돈을 걸만큼 힘이 있다면 그 때 우리는 한 가지 유형의 결과를 얻게 될 것이다. 만일 그것이 날카로운 전망을 천재스럽게 발전시켜온 개인과 그룹이라면 우리는 매우 다른 어떤 것을 얻게 될지도 모른다.원래 위치로의 회복경관이라는 용어는 전원을 그림으로 표현한 의미를 갖고 있다. 비록 역설적이지만 오랜 세월 동안 변함없이 경작을 일구어 온 경관에는 심각한 불평등이 지속되어 왔을지 모른다. 그래서 사회적인 변화 없이 보전되어 온 경관은 어떤 면에서는 반 쪼가리의 그림일 수 있다. 자연적이고 사회적인 영역 및 양쪽의 상호관계와 연결 모든 면에서 변화가 필요하다. 궁극적으로 변화는 우리가 원하는대로 필요하다.19세기 중반 소로우는 자신의 저작에서 인간에 의해 자연이 파괴되는 것에 대해 심히 우려를 금치 못했다. 왜 자연을 보호하고 보전해야 하는지, 그리고 있는 상태로 있는 것의 의미를 왜 이해해야 하는지 강조했다. 그는 도시를 떠나 메사추세츠 숲 속 월든 호수가로 들어갔다. 그곳에서 26개월 동안 그는 자신의 자연을 자신의 것으로 회복시켜 놓았다. 숲 속의 삶에 대해 설명할 때 그는 도시에 살던 때와 비교하며 자신의 관점을 설명했다. 문명화된 자연과 자연에 대한 경제적 수탈, 단순한 삶과 맑은 자연의 소리, 그리고 심오한 침묵을 비교 탐구했다. 자연을 아무도 발 들이지 않은 야생으로서가 아니라 특별한 공간으로서 예찬한 그는 “나는 숲으로 들어갔다. 나는 그렇게 살기를 원했고 삶의 진수를 그곳에서 접하고자 했다. 그리고 자연이 가르치는 바를 배울 수 없었다면 내가 죽게 되는 날 나는 나의 삶을 제대로 살아오지 않았음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그의 사색은 자신을 바꿔놓았다.“때때로 여름 아침이 되면...... 나는 해 뜰 때부터 점심 때까지 햇살 가득한 현관 앞에 앉아있곤 했다. 그리고 나는 소나무와 히코리나무 그리고 붉나무 한 가운데에서 몽상에 빠져들기도 했다. 아무도 찾아오지 않는 고독과 정적 속에서 새들이 집 주변을 소리없이 휙 스쳐가거나 주변에서 노래를 했다..... 그리고 나는 그 시절 어두운 밤이 되면 옥수수처럼 성장을 했다.”그는 세심한 관찰을 통해, 또한 자신의 콩밭을 일구는 일을 통해 자연이 가져다주는 친근함을 깨달았다. “누군가 다정하고 호기심 많은 한 친구가 이렇게 여러 다양한 종류의 풀을 가져다 주었네!”소로우가 원래 자신의 저작에서 다루고자 했던 것은 자기 스스로 결정한 여행의 여정과, 스스로 기꺼이 겪었던 경험과 그 속에서 발견한 비전, 그리고 그가 활동했었고 그가 다시 돌아갈 도시의 사람들에게 의미있는 이야기들이었다. ‘나는 적어도 내 스스로의 경험을 통해 이런 것들을 배웠다. 만일 누군가 자신의 꿈대로 과감하게 자신의 삶을 실현시켜간다면, 그리고 자신이 설계한대로 삶을 살기위해 노력한다면 그는 보통의 시간 속에서도 뜻밖의 성공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의 관심은 어떻게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을 살 것인가와 그리고 어떻게 좀 더 자연과 가까운 관계를 통해 이를 더욱 개선시킬 수 있는가에 있었다. 한 세기가 더 지난 후 또 다른 자연주의 작가 배리 로페즈Barry Lopez도 유사한 자연과의 연대감을 드러내보였다. ‘여행을 통해, 나는 사람들의 희망과 꿈이란 한낱 바람이나 고독한 야생 동물들 그리고 돌과 툰드라 지대의 하얀 들녘만큼이나 대지의 일부분에 불과할 뿐이라고 믿게 되었다.자신이 누리는 경관에 대한 이런 자신감은 세계를 초월하여 어디서나 흔하게 볼 수 있는 일이다. 데비드 아놀드David Arnold는 유명한 벵갈의 시인이자 소설가인 빈드라나스 타고르Rabindranath Tagor가 1894년에 쓴 글을 인용하고 있다.“대부분의 사람들은 그저 밋밋하고 평범한 벵갈을 별로 좋아하지 않았지만, 나에게 그 나라의 들과 강은 너무 아름답게만 보였다. 해질 무렵 둥그스름한 천장 같은 고요한 하늘 끝은 라피스 라즐리(lapis lazuli, 청색보석)의 고블릿(goblet, 포도주잔)을 닮았다. 반면 오후의 정적인 분위기는 나에게 세계 전체를 감싸고 있는 금빛 사리 속 실루엣을 떠올리게 한다. 그런 마음을 그렇게 꽉 채울 다른 곳이 과연 또 어디에 있을까?”그러나 타고르는 또한 이와 다른 고통스러운 진실도 알고 있었다. 그리고 그는 사회적이면서 생태적으로도 연관된 위협을 걱정했다. ‘집집마다 류머티즘에다 다리는 붓고, 말라리아로 몸은 덜덜 춥거나 열병에 걸린 아이들로 넘쳤다. 아무도 아이들을 구할 사람은 없었으며 아이들은 그저 끊임없이 울기만 했다.’경관을 뜯어 고쳐 재조성한다는 발상은 위와 같은 사회적인 위협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실제로 이 말에는 뭔가 납득할만한 합리적인 관점은 별로 없다. 이는 오늘날의 새로운 지속가능한 농업혁명에 의한 변화가 왜 중요한지를 보여준다. 문화적이고 자연적인 경관은 몇몇 권력이 빈자들의 손에 넘어갔기 때문에 가능했다. 그들은 새로운 세계를 낳는 연금술사들이었다. 우리가 사람들과 자연과의 새로운 연대를 위한 단단한 고리를 끼워야 하는 것은 이런 개인들의 열망이자 전설이다. 최근 많은 선구자들이 자연에 부담을 주지 않으면서 필요한 음식을 구하는 법을 알게 해 준 것은 우리의 행운이다, 그것은 가능한 일이지만 어려운 일이기도 하다. 지속가능성을 향한 길은 산업화로부터 소외된 지역의 사람들에 의해 개척될 것이며 결국 그것은 우리 모두에게 적용될 것이다.나는 자이언트 재규어의 신전 탑 위에 서 있던 적이 있었다. 그곳은 티칼Tikal의 바닥에서 96미터 떨어진 곳으로 오랜세월 동안 버려진 마야제국의 수도였다. 아래에는 왕관모양을 한 거대한 열대림 나무들이 펼쳐져 있고, 그 나무들의 가지는 거미 원숭이가 튀고 사방으로 흩어져 금이가고 부러졌다. 폭풍 하나가 과테말라의 페텡Peten 숲을 가로질러 강력한 비바람으로 나를 후려쳤다. 곧바로 나는 방향을 아래쪽으로 돌려 수직 사다리 계단을 내려가 피라미드의 완만한 경사를 따라 어질어질한 걸음을 내딛으며 내려갔다. 나는 멀리서 이곳까지 와서 처음 야생을 목격했을 때의 생각을 잊었을지 모른다. 페텡 숲은 결국 200종의 포유동물과 500종의 조류 등 생물 다양성이 세계적으로 풍부한 지역 중 하나이다. 나는 지금까지 야생에 대해 좋지 않은 것만 빼고 외경심을 갖고 있었다. AD 250-900의 마야 골든 시기 동안 티칼은 홀로 1만에서 4만까지의 백성을 감당해왔다.마야 문명의 이유를 알 수 없는 붕괴 이후 원주민들은 화전식 농사를 짓고 살았다. 숲에서 밭을 일구어 2년 동안 농사짓고 나면 새로운 장소로 가족들이 옮길 때 버려졌다. 시간이 갈수록 인구는 늘어났고 다른 사람들도 숲을 일구기 위해 들어오자 농부들은 휴경 기간을 단축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그들은 이전에 일구었던 밭으로 돌아가야 했는데 그 기간이 짧아져 토양의 비옥도가 자연적으로 회복되기에는 시간이 짧았다. 농업과 숲은 둘다 압박을 받기 시작했고 생산성은 떨어졌으며 숲은 점점 사라져갔다.그러나 페텡 숲 가에서 농부들은 신비한 콩을 재배했는데 그것은 열대림을 보호하고 토양을 개선시켜주었다. 몇 십년 전 그 벌벳 콩(무크나 퓨리언Mucuna pruriens)은 중앙아메리카에 소개되었는데 아마도 아시아에서 미국을 거쳐 들어온 것 같다. 온두라스와 과테말라의 몇몇 비정부기구, 특히 1980년대와 1990년대 동안 세계 이웃World Neighbors, 코세차Cosecha와 센트로 마야 등이 무크나를 옥수수와 함께 경작하면 상당히 곡식 생산량을 증가시킨다는 것을 발견하기 전까지는 그것은 널리 퍼지지 않았다. 중요한 것은 무크나가 토양을 더욱 개선시켜준다는 사실이다. 무크나는 매년 헥타르 당 150킬로그람의 질소를 고정시켜주었다. 농부가 전혀 투입해 준 것이 없는데도. 헥타르마다 또한 매년 50-100톤의 바이오메스를 생산했다. 또한 무크나는 시들어 죽으면 토양에 녹비로 깔아졌으며 잡초를 억제하고 토심을 깊게 해주었다. 페텡 열대우림이 보전될 수 있었던 비결은 이 콩 안에 있다. 토양의 지력을 증진시켜주면 농부은 더 이상 새로 밭을 만들기 위해 숲은 태울 필요가 없어진다. 농사를 위해 토양을 개량하는 것은 매우 어렵고 힘든 일이어서 농부들은 늘 대안을 찾으러 노력한다. 토양을 건강하게 개선하려면 농부는 생각과 실천하는 법을 바꿔야 한다. 그들은 같은 장소에 머물러 사는 것의 장점을 알고 있다. 그래서 자식들과 자신들을 위해 밭을 가꾸는 데 많은 정성을 들인다.세르지오 루아노Sergio Ruano와 함께 티칼에 처음 선지 7년 후, 나는 농부들이 새로운 정착 방법을 얼마만큼 발전시켰는지 살펴보기 위해 다시 그곳을 돌아봤다. 나는 다른 동료와 함께 센트로 마야, 쥬안 카를로스Juan Carlos Moreira에서 가까운 우스마친타Usumacinta 강과 과테말라와 멕시코 경계지역까지 걸었다. 그 지역은 놀라울 정도로 생물 다양성이 풍부한 지역이었다. 숲 안쪽에는 조용하고 으스스한 대성당이 있었다. 공기는 습하고 무거웠으며 우거진 숲 무성한 잎 사이로 뚫린 작은 구멍을 통해 햇빛이 겨우 비집고 내려왔다. 놀랄만큼 우연의 일치로 이들도 같은 이름인 라 펠리치다드La Felicidad 조합 또는 행복 조합이라 불렸다. 실질적으로 정치적이고 행정적인 국경지역에서 250명의 농부들이 현재 무크나를 재배하고 있으며 정착농과 지속가능한 농업을 위해 국경지역을 넘나드는 모험을 시작했다. 나는 가비노 라이바Gabino Leiva에게 콩 거름에 관해 물어보았다. 그들은 그에 대해 “콩 거름은 풀들을 죽이면서 작물들이 무성하게 잘 자라도록 도와준다. 이는 우리가 필요로 하는 핵심이며 콩은 또한 흙의 생산성을 높여주도록 거름을 만들어준다.”고 했다. 이는 기술적으로 매우 쉽다. 적은 비용과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흙을 개선하면 열대림을 보전할 수 있으며 사람들이 살고 있는 단작 경관을 개선시켜준다.거기에는 물론 복잡한 요소들이 많이 존재한다. 숲은 여전히 벌목꾼들의 엔진톱 위협하에 놓여있으며 가족농들은 아직도 시장에 접근하기 힘든 상태에 놓여 있고, 새로운 정착 농업 시스템을 적용하면 이는 유목 농업 시스템과 관계된 지식과 절정에 다다른 생명다양성의 포기를 의미했다. 더욱이 지속가능한 농업을 향한 이러한 진전은 그와 무관한 현재의 정책들에도 불구하고 꾸준히 진일보하고 있다. 우리가 만일 정책을 주도할 권리를 얻게 된다면 어떤 일들이 벌어질까?마무리이 장에서 나는 경관을 둘러싼 어두운 면들을 다뤘다. 역사를 통틀어 배제로 인한 슬픈 이야기는 늘 있어왔다. 그들은 가난하고 힘없어 자신들의 생계를 의지하던 자원과 삶터에서 배제되어야 했다. 이런 배제는 이후 경관이 그림처럼 예쁘게 포장되어 그 배제가 사람들에게 잊혀지기는 매우 쉬워졌는데, 그 안에는 또한 필연적인 경제적 발전이라는 신화가 깔려있어 더욱 배제는 사람들의 뇌리에서 사라졌다. 배제는 농업의 현대화와 보전 지역의 설정에서부터 지작되었다. 그것은 사람들이 필요로 하고 가치있게 사용했던 자연으로부터의 단절을 수반했다. 보전 지역의 3분의 1, 곧 7백만 평방킬로미터에 이르는 지역에선 지역 주민들의 자원 이용을 허용하지 않았다. 자연 공간의 회복은 오늘날 절실한 과제로 주어지고 있고 작은 규모이지만 일정 부분 진전이 있는 것도 사실이다. 시스템의 변화는 그러나 집단적인 실천을 필요로 한다. 그것은 적절한 기술과 지식을 갖춘 온전한 공동체에 의해 가능하며 또한 적절히 국가적이고 국제적인 정책의 지원도 있어야 할 것이다.Soon after this period, there followed one of the most notorious examples of state disenfranchisement of people felying on th resources of the commons. This was the passing, in May 1723, of the Waltham Black Act, or just 'Black Act', by the English parliament. In his compelling account, the historian E P Thompson describes how those in power took to new extremes their justification for wresting contral of forests. The act described the 'Black' as 'wicked and evil-dispose men going in desguise to pillage the royal forests of deer and do battle with forest officers, which were then extended by successive legal judgement. Anyone found with their face 'black', or who might 'appear in any forest, close, park, or in any warren, or on any high road, heath, common or down', was now likely to be charged with a capital offence.흔히 미국같은데서__동서로 뚫린 길을 번호를 붙여서 street 이라하고 남북으로 뚫린길은 avenue라고 하는데 길에 이름이 붙어서 Sunset Boulevard라고 하는데 영국에서는 가로수가 늘어선 길을 줄여서 Boulevard 라고 한다는데, Close 는 길이 연결되지를 않고 가다가 끝이 막힌길을 이름을 붙여 Sunset Close 이런식으로 쓴다지 Park 흔히 공원이라고 쓰이지만 앞에 소유자의 이름이 붙어서 Park를 쓰면 일종의 앞서의 대정원을 가르키는게 되고 당연히 넓은 들판과 나무등이 심어져 있겠지. 영화 “순수의 시대” 나 “오만과 편견 ” 같은 영국 미국 상류사회가 배경이 되는 영화를 보면 감이 옮. 미국에 가면 80년대 우리나라 고층 아파트에 맨션 이란 것을 붙였듯이 미국에도 아파트이름에 common 이란 걸 붙이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는데 사실 영국에서는 마을의 넓게 트인 땅 굳이 말하자면 공유지 또는 공원 이라고 할 수 있는 그래서 앞에서 말한 park가 사유지라면 common은 공유지 인거지 그럼 HYde Park는 뭐냐라는 물음 이 당근 나오겠 지 원래 Hyde Park는 왕실 정원이었는데 찰스 1세 때 왕실공원을 런던 시민용으로 공개했다가 공화국때에 몰수 ·매각되었다가 왕정복고와 함께 다시 시민공원으로 복귀된거지! Heath는 황야를 말하는건데 “테스”라는 영화에 마지막 장면인가에 보여지는 배경이 이런델거야 .농경지가 아닌 잡초가 우거진 그런 땅. 그 다음에 미국에서는 high way 영국에서는 high road 라 하나본데 간선도로를 말하는건데 굳이 우리식대로 말하면 국도가 되겠지 Warren이란 말은 문맥에 따라 다르게 쓰겠지만 여기 문맥에서는 토끼 사육장이라기보다는 야생 조수를 기르는 넓은 땅으로 보면 될 것 같아 아 그리고 끝의 down은 고유명사적으로는 남부잉글랜드의 나무없이 풀만 나는 구릉지를 가리키지만 일반적으로 쓰일때는 넓은 고원을 가리키기도 해 ! 이상 더운데 건강 잘 챙겨라 그리고 나 널널한 사람 아냐 단어같은 이런 것 알아서 해3장. 실질적인 보장먹을거리 비용우리가 매일 빵을 굽거나 살 때 그 실제 가격을 보고 놀란 적이 있을까? 우리는 당연히 음식 가격이 싸야 좋아한다. 당연히 비싸면 불평을 늘어놓게 될 것이다. 실제로 음식물 가격때문에 로마 시대에도 폭동이 일어난 적이 있었다. 국가는 오랜 세월 시장에서 음식물 가격을 싸게 유지하려고 개입해왔다. 그리고 실제로 그 개입 정책들은 성공적이었음을 역사는 우리에게 말해준다. 대부분 산업화된 나라들이 음식에 지출하는 가계 예산 평균을 보면 최근 10년 동안 계속 감소해 왔음을 알 수 있다. 음식은 상대적으로 다른 재화들에 비해 싸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은 아직도 음식이야말로 모든 사람들에게 꼭 필요한 것이라 음식이 싼 것은 이로운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우리는 참으로 위험한 신화를 믿어왔다. 음식은 싸지 않다. 그것은 단지 가게에서 싸게 보일 뿐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음식에 숨어있는 비용을 생각하지 않아도 되기 때문이다. 여기서 숨어있는 비용이란 무엇인가? 농업에 의한 생산물이 결과적으로 환경과 사람 건강을 위태롭게 만들고 그것을 사회가 책임을 지게 되는 것이 바로 그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실제로 음식을 살 때 세 번을 지불하게 된다. 한번은 가게에서, 또 한번은 세금으로, 그것은 농부들에게 지불한 보조금 또는 농업 발전에 지불하게 되며, 마지막 한번은 부차적인 효과로 환경과 건강을 개선하는 데 지불한다. 이런 비용들이 사회적으로 다양한 곳에서 지불되기 때문에 음식이 싸게 보이는 것이다. 경제적으로 그런 실제 비용은 가격에 반영할 수는 없다.그렇다고 음식물 가격이 가게에서부터 비싸야 한다고 말하는 것은 아니다. 부자를 무시한다고 빈자를 처벌할 수 없는 것과 같이. 농업발전 지원기금을 확보하기 위해서는 세수를 활용하는 것이 어쩌면 진보적일 수 있다. 그러나 세수를 올리려면 부자에게 세금을 상대적으로 더 많이 거둬야 하고, 반면 음식에 상대적으로 돈을 더 써야 하는 가난한 사람에게는 음식물 가격이 낮게 매겨질수록 이익이다. 그런데 이 이상한 공정성은 현대 농업 시스템이 초래한 심각한 왜곡을 직면했을 때 흔들릴 수밖에 없다. 그 왜곡은 경제적으로 환경과 건강의 비용을 크게 부담지을 때 더욱 커진다. 이 비용을 지불하는 사람들과 기관은 공정하지도 못하고 효율적이지도 못하다. 만일 우리가 음식물의 실제 비용을 다 합산할 수 있다면 우리는 산업화된 현대 생산 시스템이 지속가능한 시스템과 비교되기를 싫어하는 이유를 알게 될 것이다. 이는 우리가 그 비용이 다르게 쓰이는 것을 허용하기 때문인데, 가령 악화된 건강 문제, 상실된 생물다양성과 수질 오염 등이 농부로부터 그 비용을 가져가고 그래서 농부들이 생산한 음식물의 비용이 농부들에게 돌아가지 않거나 팔려진 소비자 가격에 반영된다. 최근까지도 우리는 이런 사회적 파급 효과에 가격을 매기는 방법을 모르고 있다.우리가 농업을 단순한 음식물 공장 이상의 가치로 인정할 때, 실제로 농업은 많은 부분에서 다원적 기능을 갖고 있다는 것을 인정할 때, 그러면 농부는 단지 음식을 생산한다는 한가지 역할은 할 뿐이라는 생각은 바뀌어야 한다. 물론 농업 모두가 다 다원적 기능을 하는 것은 아니다. 현대농업은 농사에 대한 편협한 관점을 만들어냈으며 그것이 우리를 잘못된 길로 인도하고 있다. 산업화된 나라의 농촌 환경은 중병을 앓고 있으며, 우리가 먹는 음식은 좋은 점보다 나쁜 점이 더 많다는 사실은 거의 확실하고 우리는 여전히 음식은 싸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다음 소개하는 내용은 50년 전보다 더 이전에 쓰인 글로 바로 현대의 산업화된 농업이 출현하기 직전의 얘기다.“왜 영국 농업 정책에 대해서 논란이 많은지, 왜 농부들은 미래의 희망을 보장받고 있지 못한 걸까?..... 2차 대전 후 이 섬나라 사람들은 음식의 안전성 문제를 근심하고 있으며, 여전히 공공적인 정책 의지가 있음에도 농업은 불안과 난맥상태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있다.”이 글은 동 시대의 위기에 대해 기록한 정부 차원의 조사 문서를 공개한 내용이다. 또 그것들은 아스터Astor 경에 의해 1945년에 쓰여진 것으로 아스터와 로운트리Rowntree가 농업에 대해 재조명한 것을 소개하기 위한 것이었다. 이 문서는 복합적인 방법을 표준화된 농사로 교체하는 것을 비판하고 있다. 이 문서의 필자들은 ‘제대로 농사를 짓기 위해선 당신은 토양을 비옥하게 유지해야 한다. 토양을 비옥하게 유지하려면 당신은 복합 영농 시스템을 필요로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들은 농사란 전체적으로 시스템을 건강하게 유지해야만 성공할 것이라는 것을 믿었다. 특히 초기에는 토양을 비옥하게 관리하는 것이 중요했다. ‘분명히 토양의 건강과 비옥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을 하는 것은 건전한 태도일 뿐만 아니라 평범한 상식이기도 하다.’그러나 몇몇 증인들에 따르면 문서는 ‘전문화되고 기계화된 농사’를 필요로 한다는 것에 대해 인정하지 않았다. 흥미롭게도 농림부는 당시 폭넓게 복합 영농이라는 아이디어를 지원했다. 그러나 결국 공적 보조금은 먹거리 생산 증가를 독려하는 것이 우선되었고, 이를 위해선 복합영농 시스템보다 단작 시스템을 적용하는 것이 훨씬 쉬웠다. 1947년 농업 법령이 제정됨으로써 농업의 현대화 및 단작화를 향한 본격적인 추진력이 준비되었다. 그것은 자연의 자원을 의미있게 이용했던 본래의 농사로부터 멀어지기 시작한 첫걸음이었다. 조지 스텝레돈George Stapledon은 초원에 대한 연구로 작위를 받은 영국의 과학자로, 그는 자신의 시대를 통찰력 있게 파악하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단작을 반대하고 다양성을 옹호한 것으로 유명하다. 그는 1941년 ‘먹거리 및 가장 싼 작물을 생산하기 위해 설계된 무의미한 단작 시스템은 말 그대로 한 때 비옥했거나 잘 일구면 충분히 비옥할 수 있는 수백만의 땅을 수탈했다’고 주장했다. 그는 마지막 해, 곧 1947년 법령이 제정된지 10년 후 그는 이렇게 말했다.“오늘날 기술은 예측할 수 없을 만큼 하루가 다르게 마구 발전하고 있다. 놀랍게도 아마 농사보다 가장 생산적인 것은 없을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모든 자산을 협소한 전문화에 투자하고 있으며 새로 떠오르는 기술 시대는 자유로운 야생마를 목줄에 묶어두려 하고 있다.”이런 글들은 저명한 정치인과 과학자들로부터 나온 통찰력 있는 내용들이다. 그러나 이 내용들은 오늘날 새로운 농업의 발전을 위한 고사 상에는 올릴 필요가 없는 것들이었다. 농업에 대한 새로운 아이디어가 많은 사람들로부터 관심을 모으기 시작했기 때문이다.농업만이 갖고 있는 다원적 기능우리는 늘 묻는다. 무엇 때문에 농사짓지? 당연히 먹을거리를 생산하기 위해서지. 그리고 우리는 그로써 좋은 먹거리를 얻게 되거든. 농업이 대단한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은 우리의 평가방법이 매우 미시적일 경우에 한해서만 그랬다. 농업은 경제적인 관점에서 보면 매우 독특한 영역이다. 그것은 먹거리를 포함해 옷감, 오일, 목재 등을 생산하는 것보다 더 그 이상의 것을 담고 있다. 또한 그것은 지역, 국가, 그리고 지구적인 경제와 생태계에 엄청난 충격을 가했다. 이 충격은 긍정적일 수도 있고 부정적일 수도 있다. 부정적인 측면은 참으로 걱정스러운 일이다. 농장에서 용탈되어 나온 양분과 농약은 먹는 물을 오염시켰으며 그로 인한 비용은 물 소비자자들이 지불해야 했다. 오염 유발자가 해야 할 일을 말이다. 그래서 오염 유발자는 자신들이 배출한 폐기물 정화 비용을 지불하지 않아서 이익이 되고 자신들의 그런 행동을 바꾸게끔 하는 어떤 인센티브도 없어서 더 좋았다. 농업을 독특한 것으로 만든 것이 그것을 성공하게 만든 자산에 영향을 끼쳤기 때문이다. 성공을 이끌어온 모든 농업의 시스템은 그것이 보유하고 있는 총 주식 자산에서 나온 서비스 가치를 배경으로 하고 있었다. 그 자산은 다섯 가지로 분류할 수 있다. 자연적, 사회적, 인간적, 물리적, 재정적 자본이 그것인데 지금은 더욱 중요한 것으로 인식되고 있다.자연적 자본은 자연의 상품과 서비스를 생산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먹거리(야생에서 채집한 것 또한 농사지은 것과 수확한 것 다)를 비롯해 나무와 옷감 등도 포함되어 있다. 자연적 자본에는 식수도 포함되는데 식수의 공급과 통제, 폐수의 처리, (질소)동화와 분해; 양분 순환과 고정; 토양 생성; 세균의 생물학적 방제; 기후 통제; 야생동물의 서식지들, 폭풍 대책과 홍수 범람 예방; 탄소 격리; 수분(受粉, 꽃가루받이), 오락과 여가 등도 자연적 자본에 포함되는 요소들이다. 상호부조와 같은 집단 실천으로 이어지는 사회적 자본은 사회의 구성원들을 통합하는 기여를 한다. 규범을 포함해 사회적 자본으로 구성된 사회적 자산은 사람들로 하여금 서로 협력하게 만드는 태도와 가치를 중요시 한다. 가령 신뢰 관계, 호혜와 의무, 상호 공유와 후손에게까지 물려줄 상식적인 규제와 통제 등이 그것이다. 이것들은 집단과 네트워크로 연결되어 있고 또한 그렇게 구성되어 있다.인간적자본은 개개인들에게 속한 자산의 총량으로, 그 개인들의 지식과 기술, 건강과 영양상태 등의 축적에 근거하고 있다. 인간적 자본은 이런 개인들의 자산을 제공하는 것에 의해 촉진된다. 가령 교육기관, 의료서비스와 성인교육 기관 같은 것들이다. 인간의 생산성은 생산적인 기술들간의 상호 작용, 그리고 다른 사람들과 상호 작용하는 능력에 의해 증대된다. 지도력과 조직화 기술은 특히 더 유용한 다른 자원을 창출하는 데 중요하다. 물리적 자본은 물질적 자원을 만드는 인간의 창고로, 가령 건물, 또는 집과 공장, 시장의 하부구조, 수리 공사, 도로와 다리, 도구와 트랙터, 의사소통과 에너지와 운송시스템 등이다. 이런 모든 재원들은 또한 더욱 더 생산적인 노동자를 만들어낸다. 금융적자본은 회계적인 컨셉이다. 그것은 생산성 자원 그 자체라기보다는 일종의 촉진제 역할 같은 것이다. 그래서 그것은 재화와 서비스에 대한 누적된 요구를 드러내며 저축과 신용 등의 재정 시스템을 통해 구축된다. 예를 들면 연금, 결제 송금, 복지수당, 연구 장려금과 보조금 같은 것들이다.농업시스템이 투입한 것에 매우 영향을 받는다면, 생명의 피드백 회로는 출력에서 투입까지 관철되어 일어난다. 도널드 워스터Donald Worster의 참 농사에 대한 세 가지 원칙은 이런 아이디어를 포함하고 있다. 참 농사는 사람들을 건강하게 만들고, 사회를 더욱 좋은 방향으로 이끌며, 그리고 지구가 갖고 있는 생명의 네트워크를 지속하게 해준다. 그는 이렇게 말한다. “새로운 농업에 대한 필요성은 생태적으로 합리적인 길이라는 점에서 도덕적 의무와 상식에서부터 농사에 이르기까지 우리를 풀어주지 않는다. 참 농사는 토양을 사용하면서 토양을 보호한다.” 그래서 지속가능한 농업 시스템은 자연에 대해서만이 아니라 사회적이고 인간적 자본에 대해 긍정적인 효과를 미친다. 반대로 자원을 잠식하고 후손이 쓸 것까지 남기지 않는 지속가능하지 않은 농업과는 상이하게 다르다. 가령 먹거리를 생산하면서 토양을 침식하는 농업 시스템은 먹거리 비용을 높이는 경향이 있다. 그러나 유기물 함량의 축적을 통해 토양에 탄소를 축적하는 시스템은 기후변화에 대응하는 데 기여를 한다. 마찬가지로 다양한 농업 시스템은 농장에서 병해충을 통제하는 데 폭넓게 생물 다양성을 풍부히 하기 때문에 야생의 천적들을 불러들이는데 반해 단작 농업 시스템은 야생의 천적들을 배제시킨다. 일자리를 만드는 농업 시스템은 지역 자원을 개발하고 효과적인 작업을 통해 경제를 진작시켜 사람들을 도시로 몰리게 하지 않고 시골로 귀농하게 하는 데 기여를 할 것이다.농업은 그래서 근본적으로 다원적이다. 농업은 먹거리도 생산하지만 먹거리 외의 것들도 동시에 생산하는데 이는 다른 경제 영역에서는 있을 수 없는 일이다. 산업국가와 개발도상국의 핵심 정책 과제는 식량생산을 높일 뿐만 아니라 그것을 지속적으로 유지 관리하기 위한 방법을 찾는 데에도 있다. 그러나 역시 질문의 핵심은, 그런 방법이 긍정적인 효과는 더 축적시키고 부정적인 것은 확실하게 제거할 수 있느냐에 달려 있다. 그러나 그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과거 농업 발전이 농업의 다원적 기능을 무시할 뿐만 아니라 점점 더 커져가는 외적 비용도 무시하려는 경향이 있었듯이 말이다.이는 우리를 지속가능한 농업에 대한 단순하고도 명괘한 정의로 이끈다. 자연의 재화와 서비스 중 환경에 위해를 가하지 않는 가장 유용한 방법은 농사짓는 일이다. 지속가능한 농사는 자연적인 방법과 과정을 통해서 이를 실천한다. 가령 자원 순환, 질소 고정, 토양 재생과 자연적 병해충 통제 등으로 그것은 먹거리 생산 과정 안에서 이뤄진다. 그것은 또한 재생가능하지 않은 자원의 사용을 최소화하는데 환경에 위해를 가하고 농부와 소비자의 건강에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 나아가 농부의 지식과 기술을 더욱 더 유용하게 만들어줌으로써 농부의 자립도를 재고해주고 더불어 일상적인 생활 문제를 푸는 데 사람들의 협동 노동력을 생산성 있도록 만들어 준다. 이를 통해 지속가능한 농업은 다양한 공공의 재화 생산에 기여하는데 예컨대 수질 정화, 야생동물 보호, 토양 속 탄소 축적, 홍수 예방과 경관 보존 등이 그것이다.외부성에 대한 화폐 가치대부분의 경제적인 활동은 환경에 영향을 주게 되어 있는데 그것이 ‘청정’ 환경의 이용 또는 투입에 의한 자연자원의 이용이든 오염물질을 정화하는 일이든 마찬가지다. 이런 식으로 환경을 이용하는 비용을 이른바 외부성externality이라고 부른다. 외부성은 경제활동의 부차적 효과로 인한 결과이기 때문에 그것은 시장에 대해 외적이며 그래서 그로 인해 발생된 비용은 생산자와 소비자에 의해 지불된 가격의 일부분이 아니다. 그런 외부성이 가격에 반영되지 않을 때 그것은 시장을 왜곡하게 된다. 그것은 사회적으로 비용이 많이 드는 경제활동을 촉진함으로써 왜곡하는 것인데 사적인 이익이 많이 날수록 그 영향은 더 심해지게 된다. 외부성의 유형은 농업 부문에서 드러날 때 더 심각해지는 특징이 있다. 그 비용은 종종 무시되기도 하며 시간차를 두고 또한 종종 발생한다. 그것은 또한 종중 이해관계가 없는 집단에 타격을 주기도 하고, 그 외부성을 생산한 사람의 정체성은 알려지지 않기 마련이다.실제로 농업적인 외부성의 경제적 비용에 대해 인증된 자료는 적다. 그 비용은 다른 경제부문으로 너무 분산되어 영향을 주기 때문에 인증된 자료라 해도 매우 부분적일 수밖에 없다. 그것은 자연 재화와 서비스에 대해 알기 위해서도 필요하고, 여러 면에서 알려지지 않은 다양한 재화들을 잃어버렸을 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알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현재의 경제 회계 시스템이 자연 자원의 현재와 미래의 가치를 과소평가한 이래로 이는 그 숙제를 더욱 어렵게 만들었다. 가령 오염으로 인한 처리 비용을 계산하는 것은 상대적으로 쉬운 일이지만 여름날 종달새의 노래소리가 사라짐으로 해서 발생되는 비용을 계산하기란 매우 어렵다.몇몇 연구들에 따르면 최근에 중국과 독일, 네덜란드, 필리핀, 영국과 미국에서 농업의 부정적인 외부성에 대한 비용을 계산한 바 있다.  그 계산이 가능하다면 농업의 가장 효율적인 유형이 무엇인지에 대한 우리의 인식은 금방 바뀌게 될 것이다. 필리핀의 ‘국제 쌀 연구소’ 연구원들은 현대의 쌀 경작은 사람들의 건강유지 비용을 많이 지출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들은 농약에 노출된 벼농사 농부들의 건강 상태를 조사했는데 눈, 피부, 폐와 신경계 교란의 증가로 인한 의료비가 매우 증가했다고 진단했다. 해충 방제의 경제성을 포함해 그들은 현대의 고투입 방제시스템이 농부들을 두 번이나 고통스럽게 한다는 것을 알았다. 예를 들면 계절별로 농약을 9번 살포하던 그들이 통합적인 해충 방제 전략을 쓰던 때보다 농약을 적게 쓰게 되었지만 건강 악화로 인한 비용은 어느 때보다 가장 많이 쓰고 있다. 농약의 사용을 통해 긍정적인 생산의 이점을 기대했던 사람들은 비싸진 건강 비용에 압도되고 말았다. 자연적인 방제법을 이용한 쌀 생산은 사람 건강과 지속가능한 음식 생산에 긍정적으로 기여함으로써 농사의 다원적 가치를 보여주었다. 에섹스Essex 주립 대학에서 우리는 최근에 영국 농업의 부정적인 외부성을 연구하기 위한 새로운 틀을 발견했다. 이 틀은 부정적인 환경과 건강 비용을 평가하기 위한 일곱가지의 비용 카테고리를 사용한다. 여기에서 부정적이라 함은 물, 공기, 토양과 생물다양성을 오염시키고 농약과 세균 및 병원균에 의해 사람들의 건강이 입는 피해를 말한다. 비용에 대한 평가와 피해를 분석하는 것은 단지 외적인 비용만을 계산할 뿐인데, 농부에 의해 초래된 사적인 비용, 곧 농약 남용으로 인한 잡초와 해충의 내성의 증가 같은 비용은 포함되지 않는다. 우리는 현대화되고 산업화된 영국 농업의 외적인 비용을 보수적으로 평가해서 거의 매년 최소 15억에서 2십억 파운드로 계산했다. 올리비아 하트리즈Olivia Hartridge와 데비드 퍼스David Perce라는 학자들은 매년 십억 파운드 이상으로 현대 농업의 비용을 잡았다. 이는 사회적 비용으로 오염을 유발한 사람들에게 지불된 보조금 같은 것들이다. 매년 대기 오염으로 인해 3억 1600만 파운드의 비용이 발생하고 수질 오염으로는 2억 3100만 파운드, 생물다양성과 환경파괴로는 1억 2600만 파운드, 토양 오염으로는 96000파운드 그리고 사람들의 건강에 대한 피해 비용으로는 7억 7700파운드의 비용이 발생하고 있다. 이와 비슷한 분석 틀을 미국에 적용하면 매년 거의 130억 파운드의 비용이 발생하는 것으로 추정한다.이런 비용은 어떻게 해서 발생되는 것인가? 농약, 질소와 인산, 토양, 농사 폐기물과 세균들은 농장과 오염된 땅과 물에서 발생한다. 비용은 오염물질을 제거하여 정화시키는 식수 배달 회사에 의해 발생된다. 그리고 그것은 물에서 토양까지 부영양화 등으로 오염된 농업용수를 정화하는 데 지불된다. 경영비와 자본으로 지불되는 영국의 식수 회사를 이용하면 우리는 법적 기준 이상의 잔류 농약을 제거하는 데 매년 1억 2천 5백만 파운드의 외부 비용을 지불한다고 평가했다. 그리고 질산염을 제거하는 데에는 1천6백만 파운드, 토양을 정화하는 데 6천9백만 파운드, 크립토스포르디움Crytosporidium이라는 기생충을 제거하는 2천3백만 파운드가 지불된다. 정책목표가 모든 오염물질을 완전히 제거하는 것이라면 이 비용들은 훨씬 더 많이 지불될 것이다.농업은 또한 대기 오염에도 영향을 주는데 네 종류의 가스를 배출하기 때문이다. 가령 가축들이 뱉어내는 메탄가스, 거름에서 발생되는 이산화질소 가스, 그리고 축분과 거름에서 나오는 암모니아와 에너지와 화석연료 사용, 토양의 탄소 유실 등이 그것이다. 결과적으로 이것들은 기후 온난화(메탄, 이산화질소와 이산화탄소), 성층권의 오존층 훼손(이산화질소), 토양과 수질의 산성화(암모니아)와 부영양화(암모니아)를 일으키는 원인이 된다. 이런 가스들로 인한 비용은 대략 4억 4천4백만 파운드에 이른다. 건강한 토양은 농사에 필수적이다. 그러나 현대 농업은 먼저 겨울 곡물의 경작을 통해서 토양의 침식을 가속화한다. 또한 그것은 초원의 경작지화를 촉진하고 생울타리와 토지의 경계 제거 및 초지의 과도한 방목을 부추긴다. 그 외의 비용은, 비와 바람에 의해 유실된 토양이 도랑을 막고 도로를 덮쳐 남의 재산에 피해를 주고 교통사고를 유발하기도 하며 홍수와 범람의 위험도 높이고 인산, 질산염과 농약에 의한 수질을 오염 등으로 발생한다. 이런 비용들은 매년 1천4백만 파운드로 형가되고 있다. 토양 속 유기물질 중 탄소는 초지가 경운되고, 농경지가 과도하게 경운될 때, 빠르게 유실되고 있는데 그 때문에 8천2백만 파운드가 매년 외부성 비용이 추가 발생되고 있다.영국에서 현대 농업은 야생 동물들에게 심각한 충격을 가하고 있다. 풍요로운 목초지의 야생화 가운데 90%보다 많은 것들이 사라졌고, 그 뿐만아니라 황야지대, 저지대 소택지, 계곡과 습지의 2분의 1이 사라졌으며 고대부터 보전되어 왔던 저지대 숲들과 생울타리들 중 3분의 1에서 2분의 1까지 사라졌다. 종 다양성 또한 농사짓는 주거지 현장에서 감소하고 있다. 배수로와 비료 사용의 증가는 꽃이 풍부한 목초지를 한 두가지 풀만 자라는 초원으로 만들었다. 그래서 고지대에서 과도하게 방목하는 일은 종 다양성을 감소시키고 제초제는 곡식 들녘에서 다양성을 훼손시킨다. 생울타리는 1980년대와 1990년대 사이에 매년 18,000킬로미터씩 사라졌다. 농지에서는 특히 새들이 고통을 받았다. 1995년까지 25년 동안 9가지 종의 개체수가 반 이하로 떨어졌다. 종 다양성 보전 계획 하의 종과 서식처 복원 비용은 야생생물과 서식처 훼손을 위해 쓰였다. 그 외에는 생울타리와 돌담, 벌집들을 되살리는 비용으로도 쓰였는데 매년 1억 2천 6백만 파운드가 소요되었다.농약은 생산, 운송, 가공에 종사하고 있는 농부에게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친다. 또한 공공의 목적으로 경작지에 살포하는 작업인부에게도 나쁜 영향을 끼친다. 농약에 대해선 여전히 불안감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생산 과정 마다 위험부담이 각자 다르고 만성적인 영향에 대해 이해가 부족하기 때문이며(가령 암을 초래하는 원인을 명확히 농약이라고 하기 힘든 것), 거기에는 감시망의 부족과 의사의 오진도 한몫 한다. 이런 이유들 때문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매년 농약으로 인해 피해를 당했는지 그 숫자를 명확히 제시하는 것은 매우 어렵다. 정부에 대한 자발적인 보고에 따르면 100-200의 사건이 매년 영국에서 발생했다. 그러나 최근 정부의 2000여명의 농약 사용자에 대한 조사를 통해 5퍼센트가 최소 한 개의 증상을 보고했고 그들은 지난 해 의사에게 상담을 받은 적이 있는 사람들이었다. 그리고 10퍼센트는 대부분 두통에 시달렸는데 의사와 상담을 한 사람들은 아니었다. 이들로 인해 발생되는 비용은 매년 1백만 파운드에 달했다. 농약으로 인한 만성적인 질병은 그 비용을 더욱 산정하기 힘들다. 농약은 음식과 물을 통해 섭취된다. 이는 공공재에 대한 일정한 위험성을 상징한다. 현재 과학적인 지식으로 농약이 암의 원인인지 아닌지 단정하기는 불가능하다. 농업에서 생기는 다른 심각한 건강 문제는 음식을 통해 감염되는 질병과 항생제 내성,  BSE-CJD 등이다. 영국 농업에서 이런 외적 비용은 매우 심각한 수준이다. 그것들은 무엇이 효과적인 가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농업이 매년 공적인 보조금을 받는 금액은 30억 파운드에 이르고 아직도 경제외적으로 150억 파운드의 효과를 내고 있다. 우리가 대안을 갖고 있지 않다면 우리는 이런 비용을 받아들어야 할 것이다. 그러나 모든 경우에는 선택할 여지가 있기 마련이다. 농약은 물에 스며들어 가지 않는다. 실제로 농약은 많은 농장 시스템에서 전혀 사용될 필요가 없다. 영국의 농약 시장은 5억 파운드에 이른다. 아직도 우리는 식수에서 잔류농약을 제거하는 데 1억 2천만 파운드를 지불하고 있다. 우리는 종다양성과 경관을 해치는 농사는 필요 없다. 항생제를 남용하고 감염의 위험이 많은 공장식 밀집 축산도 필요 없다. 그렇다고 모든 비용이 지속가능한 생산 방법에 의해 즉각적으로 제거되어야 할 대상은 아니다. 소들은 여전히 메탄가스 트림을 하고 있고, 그것은 소들의 트림을 막는 반추동물의 생화학을 과학자들이 수정할 수 있도록 동물들이 도와줄 때까지 계속될 것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심각한 왜곡은 어떤 명쾌한 생각이나 확고한 정책, 그리고 용기있는 농부들의 실천으로 해결될 수 있는 것이 확실하다.물과 습지에서 집약적 생산이 갖는 부차적 효과현대 농업에서 자연의 경관을 리모델링하는 데 생기는 문제 하나는 중요한 자연의 특색과 기능이 상실된다는 점이다. 수로는 자연 경관을 길들이면서 가장 자연을 남용하는 것 중에 하나다. 습지는 물을 빼서 말리고 강물은 직선화 또는 준설하고 지하수는 퍼내어 쓰는데 이는 과도한 비용과 적자 운영으로부터 농장의 생산성을 보장하기 위한 것으로 이 결과 강과 호수와 바다는 오염되고 말았다. 다시 한번, 농장은 단지 먹거리 생산을 위해서만 중요할 뿐이라는 협소한 관점이 두 번째 문제를 야기한다. 국립 연구소 회의에 따르면 4천 7백만 헥터의 습지가 미국에서 지난 2세기 동안 말라 버렸다. 그 중 내륙 민물의 85퍼센트는 지금 인공적으로 관리되고 있다. 그렇게 해서 농민들에게 수익을 올려다 줄 새로운 농지가 만들어졌다. 그러나 습지가 제거되면서 습지가 제공했던 많은 가치 있는 것들이 또한 사라졌다. 가령 습지가 종다양성을 위한 서식처가 되어준다든가 토양에서 유실된 양분을 잡아준다든가 범람을 막아주는 것 등인데 이는 바로 자연 경관이 갖고 있던 중요한 특징이자 기능이었다. 도널드 워스터Donald Worster는 캔사스 지방의 이미 길들여진 카우 크릭Cow Creek 원주민들이 30미터 반경 안에서 잘 살고 있는 것에 대해 이렇게 묘사하고 있다. “우리는 더 이상 이제 그런 경관을 볼 수 없게 되었다. 우리는 다만 창문 넘어 제방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19세기 내내 도시는 강가까지 확장되었고 초기 개척자들은 대지를 밀 경작지로 바꾸었다. 결국 강이 자연적이고 규칙적으로 범람하는 일이 옥토를 가져다주는 반가운 일이 아니라 단지 도시에 경제적인 피해를 안겨다 주는 아주 반갑지 않은 현상으로 받아들여졌다. 범람을 둘러싼 구설수와 범람을 막기 위해 지출된 비용은 1941년 마지막으로 아주 큰 범람이 발생하여 공병대로 하여금 4미터 높이의 제방둑을 쌓게 할 때까지 10년 동안 계속되었다. “오늘날 착한 캔사스 사람들은 오랜 시간 동안 카우크릭Cow Creek을 정복해 관리하며 인디언과 들소와 캐나다 두루미와 영양을 지배해 왔다. 그리고 갑자기 그것들은 캔사스 사람들의 삶에서 사라지고 말았다.” 이는 단지 경고의 일부였다. 자연 경관이 갖고 있는 가치있는 기능이 사라졌을 때, 또는 낯선 뭔가로 대체되었을 때 지역 사람들은 지난날의 추억들이 매일매일 좀먹고 들어가고 있음을 깨닫게 될 것이다. 젊은 사람들은 알 수 없지만 나이든 사람들은 힘든 나날을 보내야 할 것이고 세상을 뜰 때까지 그 날들은 계속될 것이고, 그러는 사이에 우리는 모든 것을 잃고 말지 모른다.유럽에서 강 유역은 강가의 많은 목초지를 포함한 뜻으로 쓰인다. 이 공간은 강물이 넘쳐 범람하는 지역으로 범람이 지난 늦은 겨울이나 초봄에 곡식을 생산하는 데 생산적으로 쓰였다. 더 중요하게는 강물이 넘쳤을 때 물은 초원에 저장되기 때문에 주거지나 또는 그 외 다른 홍수 취약 지역에 피해를 주지 않는다. 그러나 먹거리 생산을 증진하느라 이 목초지 대부분은 경작지로 바뀌었다. 동시에 강물은 인공 제방을 통해 더 이상 범람하지 않게 되었고 경작지 면적은 확장되었으며 자연 경계는 제거되고 주택은 지반이 약한 강가 땅 위에 세워졌다. 이제 비가 오면 지반이 약한 지역의 범람은 더 심해졌다. 평상시의 비도 마치 “폭우”가 쏟아진 것처럼 보였는데 실제로 이는 주변 경관을 변하게 만든 큰 원인이 되었다. 독일의 리엔크 반 데르 플로에그Rienk van der Ploeg와 동료들은 목초지의 상실과 증가하는 주거지 범람의 상관관계를 보여주었다. 한 세기가 지나 제일 큰 범람 12개 중 6개는 1983년에 발생했다. 그들은 목초지의 경작지 사용에 의한 생물다양성의 변화가 범람의 주 원인이라는 것을 증명했다. 특히 영구적이었던 목초지가 1960년대 중반 이래 약 1500만 헥터의 경작지로 바뀐 것이 대표적이었다. 이 땅에서 표토를 덮고 다지는 것은 겨울 동안 물을 가둬둘 가능성을 더욱 줄이기만 할 뿐이다. 4500만 헥터에 이르는 습지는 1940년대 이후 물이 강제 배수로 빠져버렸다. 그리고 빗물을 임시로 가둬둘 유수지가 없어지자 비가 오면 빗물은 빠르게 하천 유량을 증가시키는 원인이 되었고 범람할 가능성을 더욱 높여주었다. 1993년과 1995년 두 번의 범람으로 인해 발생된 비용은 거의 20억 마르크에 이르고 반 데르 플로에그는 이에 경작지가 다시 영구적인 목초지로 전환하는 것은 경제적으로도 환경적으로도 매우 유익한 일이라고 결론을 내렸다. “농업의 생산성을 계속 높이는 일은 거꾸로 환경적인 부담을 더욱 키우는 원인이라는 것을 꼭 알아야 한다. 앞으로 농장 조성 정책은 환경에 대한 주의를 더욱 기울여야 한다. 일본은 습지에서 농사짓는 일이 얼마나 의미있는 일인지 사례를 보여주고 있다. 바로 관개하여 짓는 논농사가 그것이다. 일본의 매우 많은 강우량은 고산 지대에서 한 두달도 채 안되는 기간 동안 쏟아 붓는다. 이 많은 물이 매우 짧은 시간에 바다로 흘러가는 것을 보면 이는 많은 시골들이 심각한 범람 위기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지만 쌀농사는 이 많은 물을 가두는 중요한 유수지를 제공해준다. 일본에는 2백만 헥터보다 더 많은 논이 존재하고 있고 이 논들은 매년 1천톤의 물을 가두고 있다. 코시가야 시 유역은 도쿄의 북쪽 25킬로미터 떨어진 곳으로 도시 가까운 논들은 지난 4반세기 지나 끊임없이 주거지로 바뀌어 갔다. 그러나 1970년대 중반 이래 논농사 지역이 약 1천헥터 감소한 만큼이나 범람하는 일이 증가했다. 매년 1천에서 3천 채의 집이 물에 잠겼다. 생태 유역 전체를 놓고 볼 때 숲과 농장이 가파른 언덕에 만들어지면 그것은 물의 흐름을 늦춰주고 완충하는 매우 대단한 효과를 가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산사태를 최소화해주는 것으로 밝혀졌다. 다양성은 그래서 매우 중요하다. 요시타케 카토와 동료들이 말했던 것처럼.“농촌 지역의 전통적인 마을은 주거지와 논과 곡식 밭 그리고 숲이 있는 언덕과 산을 품고 있는데 그것은 모두 경관과 연결되어 있다. 시스템은 그들 모든 부분들에 바탕하고 있다. 고지대의 경작의 감소는 숲의 파괴로 이어지고 전체적인 생태 유역의 안정성을 위협하게 된다.”중국에서 지난 50년 동안 곡물 생산을 위해 성토한 50만 헥터의 습지는 약 500억 세제곱미터 홍수의 물을 저장할 수 있는 공간의 상실을 의미했으며 미화로 200억 달러라는 홍수 피해가 1998년 발생한 주된 이유도 바로 이 때문이었다. 많은 농경 시스템에서 토지의 과도한 집약적 이용은 토양 유기물의 급격한 감소와 토양 침식이라는 결과를 낳았다. 결국 그것은 농업 그 자체의 자생력을 위협한 결과를 초래했다. 남아시아에서는 농지의 4분의 1이 물에 의한 침식의 영향을 받고 있으며 5분의 1은 바람에 의한 침식, 6분의 1은 염류와 침수에 의한 피해를 입고 있다.습지와 수로의 가치를 덧붙이자면, 우리는 그것들이 타격을 받거나 파괴되었을 때 얼마나 많이 잃는 것인지를 계산할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것은 결코 사소한 숙제가 아니다.경제학자들은 습지의 가치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렇지만 여러 연구에 따르면 습지에 의지해 사는 각각의 생명체들은 습지 생태계에 양분을 동화하고 분해하는 데 수백만 달러의 가치를 무료 서비스로 제공할 수 있다. 최근 미국 농무부 연구는 습지의 화폐 가치를 매년 헥터당 30만 달러로 평가했다. 또 다른 평가 방법으로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습지를 방문하는 데 비용을 지불하는지 조사하는 것이다. 단순히 관광하기 위해, 아니면 다양한 생명체들을 촬영하기 위해, 아니면 그것들을 사냥하기 위해 지불하는 비용을 계산하면 될 것이다. 미국에서는 5천만명의 사람들이 매년 100억 달러의 돈을 습지의 다양한 동식물 군상을 구경하고 사진 찍는 데 지불한다. 3천1백만의 낚시꾼들은 160억 달러를 고기 잡는 데 지불하며 3백만의 물새 사냥꾼들은 거의 7억달러의 돈을 매년 사냥하는 데 지불하고 있다. 최근 경제학의 메타 분석에 의하면 유럽에서 사람들이 습지와 수로에서 레크레이션 서비스를 받기 위해 기꺼이 지불하는 돈은 평균 일인당 매년 20에서 25파운드에 이른다고 하고 있다. 그래서 다른 목적으로 변질된 습지는 단위 헥터 당 적어도 공공을 위한 20파운드의 돈이 상실되고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물론 이런 평가에는 한계가 있다. 화폐 가치가 모든 사용 가치를 대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농사로 인한 부가적 영향 중 가장 심각한 것은 양분의 과잉과 침출, 그로 인한 수계(水系)의 오염이다. 부영양화는 물의 양분 과잉을 표현할 때는 쓰는 말로 그것은 조류의 지나친 확대를 초래하거나 먹거리의 전체적인 시스템을 파괴한다. 그리고 가장 심각한 문제는 산소를 결핍시켜 모든 생명을 박멸한다는 점이다. 가장 악명 높은 사건은 죽음의 지역으로 불린 멕시코 걸프만에서 있었던 일로, 5천에서 1만8천 제곱미터의 바다가 양분 과잉으로 인해 수중 생명들이 모두 몰살당한 일이다. 미시시피 분지에서 양분을 남용한 농사 비용은 루이지아나의 고기 잡는 가족들에 의해 발생했다. 아직도 이로 인한 비용 손실을 책임지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그 비용을 비료 가격에 반영하거나 집약적 축산 활동에 반영하였다면 우리는 그런 오염 행위들에 더욱 더 많은 관심을 갖게 될 것ㅇ디다. 우리는 최근에 영국 엑세스Essex 대학에서 이뤄진 물의 양분 과잉으로 인한 비용 연구를 접하게 되었다. 부영양화는 호수가나 강가 주변의 생태적 자산 가치에 좋지 않은 영향을 끼치며 물가 스포츠를 위한 수자원의 레크레이션과 어메너티 가치를 절감시킨다. 가령 낚시와 그 외 일반적인 어메너티, 곧 산업적인 이용, 관광산업, 상업적인 수경 재배, 고기잡이와 조개잡이 등이 그것이다. 그 외 추가 비용은 다양한 사회적 행동, 곧 합법적인 단체 또는 불법적인 단체 등의 행동을 통해 발생된다. 전체적으로 우리는 영국에서 매년 영양과잉으로 인한 비용을 1억 3천만에서 1억 7천만 파운드로 평가한다.산업화된 농업과 식품 질병대체로 굶주림을 정복한 산업 국가에서 질병의 주요 원인이 음식 때문이라는 사실은 일종의 슬픈 아이러니다. 우리는 너무 많이 먹는다. 그리고 우리는 나쁜 음식을 먹고 그로 인한 식품 질병을 얻게 된다. 유럽에서 10에서 20퍼센트의 사람들은 비만에 걸려있다. 이른바 비만지수가 기준치 30이 넘는다. 세계 건강기구(WHO)는 유럽에서 헬스 비용 중 2에서 7퍼센트가 비만에서 온다고 평가한다. 그리고 한 미국의 연구는 전체 비만 인구가 무게 10퍼센트를 줄이게 되면 2에서 7개월로 기대 수명을 늘릴 수 있다고 주장한다. 더불어 그로 인해 일생동안 일인당 2에서 6천 달러의 이익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 심각한 병은 균형 잡히지 않은 음식 습관과 긴밀하게 관련되어있다. 그것은 인슐린비의존형 당뇨병non-insulin dependent diabete을 비롯해 뇌졸중, 관상동맥성 심장질환과 일부 암을 포함해 그 현상은 점점 늘어나고 있다. 그렇지만 많은 이런 건강상 문제들은 소비자들의 선택에 영향을 미친다. 매일 다섯 가지의 과일과 채소를 먹게 되면 많은 건강 문제들을 예방할 수 있지만 우리는 다양한 이유로 그렇게 하지 않는다. 그러나 우리는 음식으로 인해 병을 얻게 될 때는 이미 선택할 수가 없다. WHO는 1억3천만의 유럽 사람들이 매년 음식에 의해 병에 걸리고 있다고 평가하는데 주로 생물학적 원인이 대부분이다. 특히 살모넬라, 캄필로박터, 리스테리아균, 대장균 살모넬라 계통은 가장 일반적인 병원균으로 일부 나라에선 90퍼센트의 경우가 이로부터 발생하고 있다. 전 세계에 걸쳐 설사는 식품 질병 중 가장 흔한 증상이며 사망과 영유아 성장장애의 주요 원인이기도 하다. 캄필로박터와 살모넬라 감염의 사례가 유럽에서 증가 추세에 있다는 증거가 있다. 물론 그렇게 증가되고 있는 것에는 더욱 개선된 감시 시스템도 한 몫 했지만 말이다. 식품 질병은 미국에서 더 심하다. 아마도 그것은 산업화된 농업, 그 중에도 특히 축산의 증가로 더욱 가속화되었다. 미 정부의 질병 통제센터Centres for Disease Control에 따르면  7천6백만명의 사람들이 미국에서 매년 식품 질병에 시달리고 있고 그 중 30만명 이상이 병원에 입원하고 5천만명이 죽고 있다. 이로 인한 비용은 아주 심각하다. 국립 아카데미의 제약 연구소와 미 농무부 및 세계 건강기구WHO는 미국에서 그런 질병으로 인해 발생되는 비용을 매년 340억에서 1100억 달러로 계산하고 있다. 영국 정부의 식품기준청은 매년 5백만 건의 식중독이 발생하는 데 한 건 당 평균 85파운드의 비용이 발생하고 있으며 거기에는 건강 서비스와 업무 손실로 인한 비용도 포함되어 있다. 또한 그로 인한 총 비용을 계산하면 매년 4억 파운드 이상 든다고 한다. 이 자료들을 계산해보면 4명의 미국인과 1명의 영국인이 매년 식중독에 걸리고 있다는 것을 제시하고 있다.식품 질병의 일부는 갑각류, 조개류에서 발생하고 있고, 다른 일부는 큰 규모의 급식소와 식품 유통 과정에서 발생한다. 그러나 최초의 감염은 농장에서 일어나는데 그것은 성장 촉진을 위한 항생제 남용과 관련이 깊어 사람들의 불안감을 더욱 증가시킨다. 공장식 사육장에서 키우는 집약형 축산, 육계를 위한 우리와 대형 양돈 장들은 더욱 감염을 촉진하고 확산시키고 있다. 세계 보건 기구WHO가 말한 것처럼 “가장 큰 위험은 고기를 생산하는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다. 건강을 위협하는 가장 심각한 근원은 이로부터 온다. 가령 살모넬라, 캄필로박터, 에콜리와 에르시니아Yersinia 등이 대표적이다.” 식품 생산의 첫 시작에서부터 감염의 근원이 심각하게 오염되어 있는 것이다. 미국의 농무부는 동물농장에서 세균에 의한 감염의 수준이 매우 높다는 것을 알았다. 특히 육계용 양계와 칠면조가 심하다. 식중독을 일으키는 클로스트리디움Clostridium 속은 가축 무리의 30~40퍼센트에서 발견되고 캄필로박터는 거의 90퍼센트에서 발견된다. 살모넬라는 20~30퍼센트에서, 스타필로코코스는 65퍼센트에서 발견된다. 이 정도는 일부 유럽 국가들에서도 발견되는데, 네덜란드와 덴마크에서 돼지의 90퍼센트 이상과 소에서는 거의 50퍼센트가 캄필로박터에 오염되었다. 가축에 의한 이 정도의 감염을 놓고 볼 때 고기 소비에서 질병이 온다는 것은 아주 자연스러운 일이고 놀라운 일도 아니다. 미국에서 돼지와 소에 의한 질병 발생은 매우 낮은 편이지만 여전히 이 가축들 가운데 3에서 30퍼센트나 보균되고 있는 네 종류의 병원균이 문제다. 심상치 않은 이 문제는 아주 싼 음식들에 대한 욕망을 기저로 초래되는데 항생제 내성으로 더욱 악화되고 또한 가축들의 성장 촉진을 위한 항생제 남용과 약 처방전의 남용으로 더욱 촉발된다. 2만 3천톤의 항생제가 매년 미 전역에서 사용되고 있고 이 중 11,000톤이 가축들에게 쓰이고 있으며 이중 5/4가 바로 성장 촉진을 위한 것이다. 영국에서는 항생제의 1,200톤이 매년 사용되고 있는데 이중 40퍼세트가 사람에게 쓰이고 있으며 30퍼센트는 농장의 가축들에게 투입되고 있으며 30퍼센트는 애완동물과 말들에게 투여되고 있다. 현대 농업에서 쓰이고 있는 항생제의 5분의 1과 다른 항미생물제만이 임상질환의 치료법에 쓰이고 있고 5분의 4는 예방과 성장 촉진을 위해 쓰이고 있다. 미국의 질병 통제국에선 ‘항균제에 대한 내성이 미국의 공공 보건과 임상 문제에서 심각한 수준이 되고 있는데 의학연구소에 따르면 항생제 내성으로 인해 매년 3천만 달러의 비용이 발생되고 있다고 보고하고 있다. 영국의 상원은 조사위원회를 통해 경고를 더욱 강화하고 있는데 최근에는 ’가축에 대한 경솔한 항생제 남용으로 인해 사람들의 건강을 여전히 위협하고 있으며,,,,, 항생제가 없던 시절로 돌아갈 희망찬 전망에 직면할지 모른다‘고 보고하고 있다. 유럽과 북미 양쪽에서 가장 일반적인 항균제 내성의 형태는 가축에 사용하는 항생제 계통으로 이는 인간 환자에게도 사용된다. 일부 항생제, 곧 플루오르퀴논fluorquinone과 아보파친avopacin(가금류 감염을 다루는 데 쓰이는 데 성장 촉진제와 같다)은 오늘날 사람들에게 저항성 질병을 눈에 띄게 증가시키는 것과 관련이 깊다. 플루오르퀴논 저항성은 캄필로박터의 감염이 왜 네덜란드에서 그렇게 흔해졌는지 그 이유를 알게 해줄 주된 인자일 것이라 추측된다. 세계보건기구WHO가 말했듯이, “캄필로박터 계통은 오늘날 개발도상국에서 가장 흔한 세균성 장염의 원인인데 대체로 가금류 고기 소비와 관련되어 있다.” 그 나라들에는 값 싼 닭고기 같은 것은 없다. 경관이란 문화적으로도 매우 가치 있는 것이며 경관으로 얻을 수 있는 심리적 가치도 농사라는 행위에서 나올 수 있는 것들이다. 그것들은 당연히 금전적인 가치로 대체할 수 없는 것들이다. 그러나 서식지와 경관을 관리하고 조성하는 농부들에게 대가를 지불하기 위한 정부의 노력을 포함해, 많은 사람들이 농촌지역을 자주 방문하고 그들이 그곳을 방문할 때 많은 비용을 지출하는 등의 형태로 대가를 지불하는 대체물들이 쓰이고 있다. 영국에서 환경과 경관에 대해 긍정적인 효과를 가진 몇몇 농업환경 정책 연구들이 시도된 적이 있었다. 이 계획들은 농촌지역의 긍정적인 특성들과 뭇 생명들의 서식처들, 그러니까 개발로 잃어버린 것들과 아직 잃어버리지 않은 것들을 복원하고 보호하기 위한 것이었다.영국의 농업 환경 계획들은 생물다양성을 포함해 경관, 수질, 문화유적 보호에도 혜택이 돌아가도록, 그리고 접근성 향상에도 도움이 되도록 여러 형태로 준비되었다. 이로 인한 혜택은 계획 시행구역에서부터 구체화될 것이며 방문객과 일반 국민에 이르기까지 모든 이에게 혜택이 돌아가도록 지속되어갈 것이다. 가상평가와 비슷한 여러 평가방법을 이용해 매년 가구 당 돌아가는 혜택을 조건부 순위와 실험을 선택해 평가해보니, 환경적으로 가장 민감한 지역(ESAs)에서는 2파운드에서 30파운드까지 그 혜택이 다양하며 심지어 영국 동부에 있는 노폭Norfolk 주에는 140파운드까지, 스코틀랜드 서부의 고지대에는 무려 380파운드에 높게 평가되기도 했다. 우리가 집집마다 돌아가는 혜택을 10파운드에서 30파운드 사이에서 잡는다면 그리고 이것이 농업에 의해 만들어진 모든 경관에 대한 평균 혜택을 대표한다면 이는 국가적으로 볼 때 2억파운드에서 6억파운드의 혜택이 발생되는 것을 뜻한다. 이를 헥타르 단위로 표현하면 매년 20파운드에서 60파운드의 혜택이 농지와 초원에서 발생된다는 계산이 나온다.한편으로 이는 좀 과대평가된 듯 하다고 볼 수도 있는데, 농업환경 계획이 이미 가치가 높게 평가된 일정한 경관을 대상으로 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것은 매우 저평가 된 것일 수 있는데, 안전한 농산물, 토양 보전, 온실가스 절감, 풍부한 생물다양성 시스템과 같은 이점들이 제대로 인정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것들은 또한 경관 전체에 대한 것보다는 계획의 결과물에 초점이 맞춰져 있다. 다양한 자료들을 제공하는 연구가 거의 없는 것도 문제다. 영국의 한 연구는 친환경 유기농 농장과 관행 농장을 비교 연구했는데 유기농 농장은 헥타르 당 매년 외형적으로 75파운드에서 125파운드까지 생산했다. 이는 토양과 야생 생명들을 건강하게 지켜주는 이익 효과까지 포함한 것이었다. 유럽에는 3백만 헥타르의 유기농 농장이 있어 매년 외형적으로 3억 파운드의 가치를 생산하고 있다. 이는 유럽 전체에 걸쳐 많은 유기농 농장 시스템에서 같은 유의미한 효과가 창출되고 있다고 가정한 것이다.시골 지역을 방문하는 사람들의 숫자는 우리가 경관의 가치를 얼마나 높게 평가하는지 볼 수 있는 지표이다. 영국에는 매년 농촌지역에 당일 또는 숙박하는 방문객들이 약 4억3천3백만에 이르고, 바닷가를 방문하는 사람들은 1억1천8백만에 이른다. 방문객들이 지출하는 평균 비용은 영국에 당일 방문하는 손님의 경우 대략 17파운드에서 숙박객의 경우 33파운드에 이르고 해외로 나가는 숙박객의 경우 58파운드에 이른다. 이는 5억5천1백만명이 농촌지역과 바닷가를 방문하고 이들이 매년 140억파운드를 지출한다는 얘기가 된다. 이는 농업에 매년 제공하는 공적 보조금보다 3.5배나 더 많은 규모로 이는 우리가 경관을 얼마나 많이 높게 평가하는지를 보여주는 것이다. 청정한 수질이 필요하다면 농업 경관의 가치는 더욱 높아질 수 있다. 뉴욕 주가 캣스킬 델라웨어Catskill-Delaware 주에 있는 종합 수원지 50만 헥터의 땅에 지속가능한 농업을 지원하는 것처럼 말이다. 뉴욕 시는 마실 물의 90퍼센트를 이 수원지에서 얻고 있는데 매일 약 60억 리터의 물에 이른다. 그런데 1980년 말 뉴욕 시는 마실물을 더 얻기 위해 정수시설을 새로 건설해야 하는 일이 생겼고 건설 비용만 50억 달러에서 80억 달러의 비용이 들고 운영비는 매년 2억달러에서 5억달러가 추가로 들어가야 했다. 수원지로 토사와 농약과 영양분과 세균 그리고 살균제가 흘러드는 것을 막기 위해 농경지 3/1이 농사를 못 짓게 되었다.대신에 뉴욕시는 농부들과 공동 협의해서 결정하는 길을 선택했다. 1990년대 초 수원지 농업위원회Watershed Agricultural Council 설치를 통해 정부와 민간단체 간의 두 가지 목적, 곧 마실 물 확보와 지속가능한 농촌경제를 보호할 목적으로 농부들과의 파트너쉽을 지원했다. 가외 비용 절감을 최대화할 지역 문제 해결책 모색은 개별 농장과 함께 전 농장을 계획하는 일에 영향을 미쳤다. 목표치 85퍼센트의 오염 감소를 주도하고 있는 프로그램의 최초 두 번째 단계에서 약 1억 달러가 들어갔는데 이는 정화 시설과 매년 운영 비용 중 작은 부분에 불과했다. 공동의 농업환경 관리라는 접근 덕에 납세자는 물론 지역 농부들, 그리고 환경과 지역 경제에도 좋은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 다만 놀라운 것은 이런 식의 문제 해결 노력은 여전히 매우 드물다는 사실이다.농업의 탄소 배당금우리가 지금 세계 어느 곳에서나 직면하는 가장 큰 환경 문제는 인위적인 온실가스의 배출이 늘어나면서 생기는 기후 변화이다. 기후 변화는 경제와 생태계에 지장을 줄 뿐만 아니라, 바다 수면을 상당히 상승시켜 해변가 땅을 잠기게 하고 그것은 나라 전체에까지 영향을 줄만큼 위협적이다. 그 속도를 늦추고 나아가 이 변화를 되돌려 놓기 위해 우리는 인간의 인위적인 가스 배출을 감소할 필요가 있다. 대기로부터 탄소를 고정하거나 사냥할 방법도 찾아야 한다. 지속가능한 농업은 배출 감소와 탄소 제거를 통해 기후 변화 감소에 중요한 기여를 할 것이다. 탄소 팽창으로 인해 형성된 국제 시장과 마찬가지로 제거된 탄소는 농부들을 위한 중요한 새로운 수입원일 수 있다. 화석연료를 직접적으로 이용하는 농업 시스템은 탄소 배출에 기여한다. 투입하는 데 쓴 에너지의 직접적 사용은 제조와 수송(특히 화학비료와 농약)하는 데 에너지를 집약하고 토양을 경운하게 되면 토양 속 유기물이 손실된다. 농업은 또한 탄소의 축적이고 그 탄소는 유기물이 토양에 축적될 때 손실을 보상해 준다. 또는 표토 밑 부엽토와 같은 부산물은 순환의 고리로 작용하고 화석연료를 대체할 수 있는 에너지 원으로 이용된다.유렵과 북미에서 오랜 세월 동안 진행된 농사의 경험은 토양 속 유기물과 탄소가 집약적 경운으로 인해 고갈되고 말았다는 것을 시사한다. 그러나 두 곳 다 지속가능한 관리 방법을 쓰게 되면 얼마든지 되살릴 수 있다. 가장 유의미한 성과는 이른바 혼농임업의 경작지 보존에서 찾을 수 있다. 혼농임업에는 토양 속 유기물과 표토 밑 부엽토의 축적으로부터 생긴  부산물이 존재한다. 초지에서 이뤄지고 있는 윤작, 경운하지 않는 농사법, 콩과와 퇴비의 이용, 그리고 짚과 똥의 재활용 등은 탄소를 사냥하는 데 상당한 효과를 낸다. 오늘날 지속가능한 농업 시스템은 매년 헥타르 당 300~600킬로그람의 탄소를 축적할 수 있다는 유력한 증거를 보여주고 있고, 나무를 초지와 곡식 재배 시스템의 간작으로 심을 때는 헥타르 당 수 톤의 탄소를 축적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일종의 경제적 영역으로 흡수된 농업은 또한 직간접적인 화석연료의 사용을 통해 탄소 배출을 촉진한다. 질소 비료 사용의 증가와 함께 농사에 투입되는 전체 에너지 중 90퍼센트 이상 가는 관개와 동력 에너지, 곧 산업화된 농업은 결국 에너지 효율을 점점 떨어뜨리게 된다. 지속가능한 것과 상업적인 생산 시스템 사이의 차이점은 커지고 있다. 저투입 또는 유기농 쌀을 생산하는 방글라데시, 중국, 그리고 남미는 관개를 통해 쌀을 생산하는 미국보다 15배에서 25배의 에너지 효율을 보여주고 있다. 유럽의 산업화된 고투입 시스템을 통해 생산한 곡물과 채소는 단위 당 3,000에서 10,000 메가줄megajoule의 에너지가 생산하는 데 소비된다. 그러나 지속가능한 농사에서 곡식과 채소는 톤당 500에서 1,000 메가줄의 에너지만 소비된다.곡물의 집약 경운은 토양 속 유기물과 탄소함량 소비를 촉진한다는 것은 오늘날 잘 알려진 사실이다. 반면 최근엔 적당 경운과 무경운 시스템을 적용하면 탁월한 생육을 보여준다는 것이 밝혀지고 있다. 특히 미국에서 더 그러하다. 이 경운 시스템은 표토에서 영구적이거나 반영구적인 유기물 덮개를 유지해준다. 그 기능은 토양을 햇빛과 비와 바람의 작용으로부터 물리적으로 보호해주고 토양 속 생물군을 지켜준다. 그리고 결국 토양 침식을 감소시키고 토양의 유기물과 탄소 함량을 개선시켜준다. 무경운 시스템과 녹비로 콩과식물과 덮개 식물의 사용은 토양 속 유기물과 탄소 축적을 촉진시켜준다. 또한 무경운 시스템은 기계 사용으로 인한 화석연료의 사용을 줄임으로써 부가적 이익을 가져다 준다. 무경운과 함께 집약 경작은 매년 300에서 600킬로그람의 탄소를 헥타르 당 축적시켜주는 결과를 낳는다. 혼작과 덮개 작물을 활용한 시스템은 1,300킬로그람의 탄소를 헥타르 당 더 축적할 수 있다.  1997년 유엔 기후변화기본협약에 의한 교토 의정서가 일종의 국제적인 정책 컨테스트를 개최했는데 그것은 기후변화를 다루기 위한 탄소 고정 확대와 탄소 배출 감소를 위한 것이었다. 그 의정서와 2001년 본, 그리고 마라케쉬 협정 하에 재정적이고 기술적인 이전 원칙이 토지 관리 프로젝트와 계획을 위해 수립되었다. 17편의 논문이 나라들로 하여금 공동 이행 프로젝트를 통해 배출 감소 단위와 배출 감소(또는 상쇄)를 인증받도록 했다. 온실 가스를 완화하려면 많은 나라들이 참여해야 비용이 적게 들기 때문에 이론적으로는 공동 이행 작업이 지구적인 목표를 달성하는 데에는 비용효율이 높은 구조이다.그렇지만 기후변화로 인한 엄청난 충격을 예방하기 위해서 탄소 고정은 꼭 영구적으로 이뤄져야 한다. 만일 보존 경운 하에 존재했던 토지가 별안간 갈아엎어진다면 토양 속 탄소와 유기물이 만들어낸 모든 성과는 사라지고 만다. 이는 탄소 거래 시스템을 바꾸는 데 큰 도전이나 마찬가지인데 영구적인 배출 감소 또는 영구적으로 탄소를 고정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이런 불확실성에도 불구하고 탄소 은행, 거래소, 거래 시스템은 2000년 동안 드러났다. 탄소 거래 시스템 초기에는 대체로 톤당 신용가치를 2달러에서 10달러 범위 안에서 결정되었는데 실제 고정된 탄소의 가치는 톤당 훨씬 더 높다. 중요한 정책적 관심은 어떻게 영구적이고 무한한 탄소 고정 방법을 확보하느냐, 또 어떻게 탄소의 누출을 막을 수 있느냐에 집중되고 있다. 가령 삼림 벌채 또는 경운하지 않았던 경작지의 재경운을 어떻게 막을 수 있을지, 얼만큼의 탄소 양을 인정할 수 있는 건지, 탄소 고정의 비용을 부가적 효과의 결과 또는 농업의 다원적 가치의 결과로 정당화될 수 있는 건지에 집중되고 있다.우리는 아직도 얼마나 많은 탄소가 어느 정도의 경제적 가치로 고정될 수 있는 건지 잘 모른다. 실증적인 증거는 상대적으로 적고 실질적인 경험은 훨씬 더 제한적이다. 확정된 지불 수준 시스템도 없다. 다른 미해결 문제는 지역과 관련되어 있는데 이는 탄소 고정을 위한 가장 유리한 투자 방법과 관련된 것이다. 예를들면 지속가능한 시스템을 만들기 위한 투자는 온대 지역보다 열대 지역에서 비용이 적게 드는데, 온대 지역이란 산업적인 농업이 일반화된 곳을 말한다. 산업화된 지역에서 개발도상국으로 재정적 지원을 하는 것은 지구적인 이익을 널리 퍼뜨리는 데 탁월한 그물망이 될 것인데, 이는 가난한 농부들을 이롭게 해 주는 것과 같은 효과를 낼 것이다. 비용 면에서 농부들이 혼자 부담하는 ‘탄소 농부’가 되지는 않을 것이 분명하다. 그러나 탄소를 축적하는 시스템은 또한 많은 공공재를 공급해주고 있는데 이는 수자원에서 생물다양성과 수질 정화를 개선하는 효과를 내기도 한다. 정책 입안자들은 총 지불 규모를 증가시키기 위하여 이런 공공재에 가격 매기는 방법을 찾으려 할 것이다. 그래서 탄소는 농부들에게 중요한 신 수입원으로 부각되고 있는데 이는 그들을 지속가능한 실천으로 유인하는 효과를 내고 있다.더 좋은 정책을 위하여농업의 이런 외적 비용과 이익은 중요한 정책적 의문을 일으킨다. 특히, 농부들은 먹거리 이상으로 생산하는 공적 이익을 위하여 공적 지원을 받아야 하는지? 오염의 주범인 개인들과 기관들은 환경과 인류 건강을 회복하기 위한 지불을 해야 하는지? 그리고 이 두 개의 의문과 그에 따라 수립된 원칙은 ‘생산자는 받고 오염자는 주는’ 원리로 자리 잡았다. 그리고 그들은 산업화된 나라든 개발도상국이든 동시에 중요하다. 유용한 세 가지 정책 도구의 범주가 있는데, 고문과 기관의 도구; 규제와 합법적 도구; 그리고 경제적 도구가 그것이다. 실제로 효과적인 오염 통제와 원하는 공공재의 공급은 이 세 가지 접근법의 혼합과 동시에 각 분야의 통합을 요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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