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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느 때처럼 산책을 하며 지나는데... 한때 연풍이와 친하게 지내던 동네 암컷의 낌새가 이상하다.

한동안 보이지 않길래 어디 가서 죽었나 살았나 궁금했는데, 예쁜 집과 함께 목줄을 차고 살고 있는 게 아닌가?!

그런데 얘가 전과 다르게 우리를 보고 으르렁거리며 위협적으로 짖는 것이었다.

원래 얘는 겁이 너무 많고 조심스러워서 사람만 보이면 도망가기 바빴던 개이기에 별일이 다 있다 싶었다.


그러면서 '혹시?' 하는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지난 여름 이 암컷을 새로이 만났던 일이며... 서로 불꽃처럼 연애하던 일이며... 싸우고, 또 화해했던 일을 떠올릴 때 의심이 갈 만하지 않은가. 


그런데 세상에... 혹시나가 아니라 역시나였다!

암컷이 새끼를 낳은 것이다!


이렇게 한 놈이 어미와 함께 입구에 누워 있는 것을 발견했다.

아니, 며칠 전 혹시나 해서 몇 번을 지나다니며 살폈지만 보지 못했는데, 이제서야 발견했다.

새끼를 보여주지 않으려 애쓰는 암컷을 요리조리 기웃거리며 살펴보니, 한 서너 마리가 집 안에 더 있는 걸 확인했다.


이 사실을 알고는 계속 마음이 무겁다.

아들놈이 결혼도 하기 전에 애가 생겼다고 하면 이런 맘이겠지.

더구나 암컷이 살고 있는 집은 형편이 그리 넉넉치 않은 것이 한눈에도 드러나는 곳인데, 이 새끼들을 다 건사할 수 있을까?

연풍이 자식은 왜 암컷을 건드려서 이런 문제를 일으키는 것인가.

내가 싫어도 할 수 없이 중성화 수술을 해야 하는 걸까? 문지방만 넘는 힘만 있어도 여자를 밝힌다는 수컷들이기에 이를 심각하게 고려해야 한단 말인가.

아무튼 이제 겨울도 다가오는데 저 새끼들을 모두 어떻게 하면 좋단 말인가... 하는 고민이 가장 컸다.


그래서 마음을 먹고 문을 두드렸다.


"계세요. 계세요."


한 60대 초중반의 할아버지가 나오셨다. 몸이 불편하시네 싶었는데, 지체장애가 있다고 하신다.

이러저러한 지난 사정을 이야기하니 안 그래도 동네에 저렇게 생긴 개가 없는데 어디서 저런 새끼들이 나왔는지 궁금하셨다고 하신다.

그렇게 이야기하는데 아침부터 술냄새가 풍긴다. 어제 과음을 하신 건지, 아침에 반주를 하신 건지는 모르겠지만, 단칸방에서 개 한 마리를 키우면서 정을 나누며 사는 분이셨다.

안 그래도 저 새끼들을 어떻게 할지 걱정이었다면서 할 수 있다면 분양을 해달라고 먼저 이야기하신다.

나도 그런 고민 때문에 찾았는데 마침 잘 되었다.




새끼가 몇 마리냐고 물으며 꺼내달라고 하자, 모두 6마리라고 하신다!!! @,,@

세상에나... 많이도 낳았다. ㅡ,,ㅡ


한 마리 두 마리씩 꺼내시기 시작하는데, 어후 이 자식들... 너무 귀엽다. ㅜㅜ

과거 연풍이의 어린 시절과 똑같이 생겼지 무언가.

왜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손주들을 보면서 그렇게 예뻐라 하는지 알겠다.손주들의 모습에서 자기 자식의 모습을 발견하고는 그러는 것이리라. 손주가 아무리 예뻐도 자기 자식이 더 예쁜 법이다. 손주는 자기 자식이 낳아서 예쁜 것이지.



이놈들을 모두 꺼내놓으니 성격이 드러난다.

꾸물꾸물 여기저기 다니며 호기심을 보이는 놈, 멀뚱하니 이게 무슨 일인지 어리둥절한 놈, 무서워서 웅크리고 있는 놈, 그냥 두리번거리는 놈....



그래도 잠에서 깨자마자 하는 일은 먹을 걸 찾아가는 일이었다.




할아버지가 그래도 없는 살림에 새끼들을 위해 신경을 많이 쓰셨다.

사료도 사다가 먹이고, 오뎅도 구해서 이제 막 이빨이 나서 이유식을 해야 하는 새끼들을 위해 놔두고 그러셨다.

에잇, 너무 죄송하네.

수컷들은 정말 반성해야 한다. 이건 인간 남성도 마찬가지이다. 그 인간 남성을 키운 부모도 그렇고 새끼를 낳아 기르는 암컷, 인간 여성을 더 위해줘야 하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암컷 먹으라고 가져다 준 간식에 관심을 보이는 놈도 있더라. 얘가 바로 유일한 암컷 강아지.

그래도 어젯밤 갖다준 사료를 암컷이 꽤 먹었구나. 



참, 그러고 보니 암컷의 이름도 알지 못하고 있었다.

꽤 조심스럽고 겁이 많아서 곁에 한번도 다가가지 못했다.

유일하게 연풍이만 자유롭게 같이 놀러다녔을 뿐이다.


암컷의 이름은 "삼순이". 

데리고 온 지는 이제 2~3년 정도 되었다고 한다.

나는 이 암컷이 혹시 연풍이의 자식은 아니었는지 걱정했다.

그만큼 너무나 둘이 닮았기 때문에 그랬는데, 그건 아니었는지 다행이다.

근친상간이 일어날 뻔했지 무언가.




여섯 마리의 새끼들을 하나하나 모두 사진에 담지는 못했다.

어찌나 계속 쉬지도 않고 꼬물꼬물 다니는지 사진을 찍기가 어려웠다.


사료를 밟고 진격의 강아지!


어미를 쭐래쭐래 따라가는 강아지!


그러다가 쭈욱 기지개를 편다! 귀엽다아! 




얘는 무척 소심한 성격이다. 




가장 호기심이 왕성한 강아지. 잠시도 쉬지 않고 여기저기 다니며 관찰하고 냄새 맡고 그런다.

나한테도 계속 앵겨서 떼어놓느라고 맘이 너무... 어릴 때 연풍이가 이랬다. 그래서 밭에서 키우려고 데려온 놈인데 결국 우리집에 눌러앉아 살게 되었다. 얘가 가장 연풍이와 비슷한 성격을 보여주었다.




아따 고놈 귀여워 죽겄네.



뭘 빤히 쳐다보냐? 사람 마음 아프게. 미안하다...



얘가 문열이인지 가장 약해 보였다. 괜찮겠지? 튼튼하게 무럭무럭 자라라! 네 아비도 문열이였단다. 그런데 지금 이렇게 건강하게 잘 살고 있지 않느냐.



마지막으로... 이 강아지들 틈에 끼어도 같은 배에서 나온 줄 착각할 정도로 닮은, 연풍이의 어린시절 모습.

2005년 10월 20일, 우리집에 처음 왔을 때의 모습이다. 이때가 생후 한달 반 정도 되었을 때임.



이 강아지들을 분양합니다.

혹시 이 글을 보고 정말 토종 발바리 한 마리가 키우고 싶다고 생각하는 분은 댓글이나 메일로 연락을 주시기 바랍니다. stonehinge@hanmail.net


참고로 연풍이의 고향은 충북 보은입니다. 삼순이도 연풍이와 많이 닮은 발바리입니다. 이 두 어미, 아비의 현재 모습으로 볼 때, 강아지들은 다 커도 몸길이 50~60cm에 몸무게는 4kg 정도가 될 것 같습니다. 강아지들은 현재 20cm로 한뼘 정도의 크기입니다.


요즘 품종 있는 애완견들이 넘치면서 이렇게 생긴 토종 발바리들은 쉽게 찾아보기 힘들지요. 시골 장에나 가야 어르신들이 데리고 나온 새끼들에서 찾아볼 수 있을까 도시에서는 거의 보기 어려워졌습니다.

연풍이와 산책을 나가면 나이 드신 분들은 모두 이런 말씀을 하십니다.


"저게 옛날이 키우던 개지."

"옷을 아주 잘 입고 나왔구나."

"저런 개가 똑똑해."

"쟤는 사람으로 태어났으면 국회의원 감이야. 어찌나 사람을 반기면서 돌아다니는지 몰라."


아시는 분은 알겠지만, 얘네들이 무지하게 영리하고 주인 잘 따르며 음식 가리는 것도 없고 키우기가 좋습니다. 

<나는 똥개다>라는 기사를 보면, 모란시장에서 몇 십년 동안 개를 팔아온 황인술 할머니는 이렇게 말합니다.


"(내가) 순종도 팔아봤는데 얼마나 약한지 사 간 사람들이 찾아와서 물어내라고 난리였어. 똥개는 튼튼하거든. 나중에 탈이 없어. 그래서 난 똥개만 데리고 나와."



연풍이의 씨가 끊이지 않고 이어졌다는 데에는 감사하나, 현실적으로 이 여섯 마리의 강아지를 거두는 일이 너무 힘드네요.

좋은 주인을 만나 잘 살 수 있기를 바랄 뿐입니다.

관심 있으신 분은 잘 생각해 보시고 연락주세요. 기다리겠습니다.


뱀다리... 

얘네는 주인 할아버지의 형편상 병원에는 한번도 가지 않았습니다. 처음 만나시면 병원에 가서 예방접종 몇 번 맞추어 주세요. 동물병원에서는 5번까지 맞아야 한다고 하지만, 제가 겪어보니 3번만 맞추어도 충분하더군요. 물론 한번도 맞지 않고 잘 사는 강아지들도 있고, 1~2번만 맞아도 큰 문제가 없긴 합니다. 말 그대로 예방접종이니까요.


할아버지께서 2달 정도 암컷이 새끼를 잘 돌볼 수 있게 신경을 써주신 만큼 작은 최소한의 성의표시가 필요할 것 같습니다. 원래 강아지를 데려갈 때 사료값으로 돈을 챙겨주는 것이라고 하네요. 할아버지는 분양할 일이 걱정이라 그냥 가져만 가도 고맙다고 하시는데, 그래도 조금이라도 챙겨드리는 것이 도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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