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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농법

제주, 농작물도 사람도 말라 죽는다

by 石基 2013. 8.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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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른장마로 인한 가뭄으로 고통받는 제주의 농민들...

머리털 나고 처음으로 제주를 찾아가 깜짝 놀란 것은, 중산간에서도 대규모로 농사를 짓는다는 사실... 그리고 그것이 모두 지하수에 의존해서 이루어진다는 사실... 이었다. 그러면서 제주의 지하수 의존도가 너무 높아 큰 문제가 일어나지는 않을까 우려스러웠다. 

최근 기후변화의 영향으로 제주에서 심심치 않게 가뭄 소식이 들린다. 제때, 제대로 비가 내리지 않으면 지하수가 없어 농업에도 심각한 타격을 입는다는 것이 그 소식의 골자이다.

관개방법을 효율적으로 고치지 않고서는 이대로 지속가능하지 않을 것 같다.
제주에서는 나름 저수지도 만들고 열심이지만, 그런 근대적 방식으로 공급량 자체를 조금 늘린다고 해서 해결될 문제는 아닌 듯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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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뙤약볕에 농사짓는 것을 포기한 농민들이 마을회관에 모여 쉬고 있다.


뜨거운 햇볕이 내리쬐는 30일 오후 3시. 제주시 애월읍 유수암리. 한참 농사를 지을 시간에 마을 사람들이 농장에 있지 않고 마을회관에 삼삼오오 모여 있다.

“물 안 나오난 사람이 말라 죽엄서.(물 안 나와서 사람이 말라 죽어가고 있다)” 한 주민이 더위를 못 이긴 듯 연신 부채질을 하면서 말했다.

“밭에 나가도 할 일이 어서. 물이 나와사주. 다 손 놔부러서.(밭에 나가도 할 일이 없다. 물이 나와야지. 일을 포기했다)” 또 다른 주민이 기자에게 말을 건넸다.

마을 주민들은 일을 하고 싶어도 농업용수가 나오지 않아 일을 못하고 있다. 도대체 왜 물이 나오지 않는 것일까?

유수암리는 대부분의 주민들이 노인들이다. 중산간의 조그마한 마을이다. 이들 주민들은 주로 감귤 농사나 콩 농사를 짓는다.

마을의 콩밭으로 향했다. 뜨겁게 내리 쬐는 햇볕은 둘째치고라도 땅바닥에는 이글거리는 열기에 숨이 막힌다. 사람이 숨이 막힐 정도니 식물들은 얼마나 힘들까?


 


 

▲ 가뭄으로 땅이 메말라 농작물이 자라지 못해 농민들의 시름이 깊어지고 있다.


1시간 가량 마을의 농경지를 둘러봤다. 물을 뿌리는 스프링클러는 멈췄다. 밭마다 농작물은 힘을 잃은 채 축 늘어져 있다. 일부는 노랗게 말라 죽어가고 있었다. 밭에서 일하는 농민은 찾아볼 수도 없다. 말 그대로 ‘황폐해진 상황’이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상황이 이런데도 최근 이 곳에 농업용수가 제대로 공급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오랜 가뭄으로 인해 농업용수 조차 말라버리고 있는 것이다.

“난 물 안줭 내불엄서. 물 계속 못 주민 결국엔 거둘 것도 어실껀디. 무사 일 나가사크라 게. (난 물 안 주고 내버려둔다. 물을 계속 못 주면 결국엔 거둘 것이 없을 텐데. 왜 일을 나가겠냐.)” 강희춘(79) 할머니는 마을회관에 앉아 먼 산을 바라보며 한숨을 지었다.

“올해 농사 망쳐부런. 큰일 나서. 겐디 이거는 비가 와사주. 나라도 어떵 못 헌다 게. 기우제까지 지내신디 무사 안 왐신고 게.(올해 농사 망쳤다. 큰일 났다. 그런데 이일(농사일)은 비가 와야지. 정부도 해결하기 힘들 것이다. 기우제도 지내는데 비는 왜 안 오는지.)” 강 할머니는 푸념 석인 말을 이어갔다.

현재 유수암리는 농업용수를 하루는 아랫동네에, 하루는 윗동네로 번갈아가면서 뿌리고 있다. 워낙 들어오는 양이 적다 보니 골고루 물을 뿌리려면 어쩔 수가 없는 결정이다. 이렇다 보니 햇볕이 가장 뜨겁게 내리쬐는 낮에도 물을 뿌릴 엄두조차 나지 않는다.

이종환(67) 유수암리 이장은 “가뭄으로 용출량이 워낙 적다 보니 물이 턱없이 모자란다. 조금 있는 물도 나눠 쓰고 있다. 버티기 힘들다”고 하소연했다.

지난 10일에는 물 공급이 힘들어 질 것을 우려해 공사한 농업용수 관을 새로 연결한 신설분 통수식도 있었다. 그러나 단 보름 만에 고철쓰레기로 전락해 버렸다. 당시 물은 옮기던 수관에 이제는 물이 메말라 버렸기 때문.

기름진 땅을 꿈꾸던 중산간 주민들의 가슴에 비수가 꽂힌 셈이다. 주민들은 비가 오지 않는 야속한 하늘만 탓할 뿐, 더 이상 할 수 있는 방법이 아무것도 없다. 그러니 손을 놓는 수밖에.

이 이장은 “다음 달이면 식수도 부분 단수된다고 한다. 농작물은 물론 우리는 어떻게 사나 걱정이다. 먹을 물도 농사지을 물도 없다”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 텃밭에 심은 고추와 호박이 오랜 가뭄으로 잎이 말라버렸다.


이날 제주 지역의 낮 최고기온은 36.6℃. 올해 들어 최고기온이다. 게다가 14일 동안 발효됐다가 이틀 동안 숨죽여 있던 폭염주의보가 다시 발효된 지 이틀이나 됐다. 그야말로 찜통더위의 연속이다.

이달 한 달간 제주 지역에 내린 비의 양이 지난해의 최저 3% 수준. 제주지방기상청에 따르면 지난 1일부터 28일간 도내 강수량 분포를 조사한 결과, 고산 6.1㎜, 제주 14.7㎜, 성산 16.4㎜, 서귀포 18.8㎜다. 지난해 각각 195.1㎜, 207.3㎜, 169.9㎜, 195.5㎜인 것과 비교하면 3.1~9.7%로 극히 적다.

비가 연이어 오지 않은 날을 나타내는 ‘연속 무 강수일수’도 이달 한 달간 19~22일을 기록해 가뭄현상이 심화되고 있다.

이처럼 가문 여름은 제주지역 중산간에서 보기 힘든 일. 때문에 중산간 지역에는 물 부족으로 몸살을 앓고 있다. 농업용수는 이미 바닥을 드러냈다. 마실 물도 언제 끊길지 모른 상황이다. 농민들의 가슴은 거북 등껍질처럼 갈라져버린 땅처럼 찢어지고 있었다.

하늘도 무심한지, 이런 상황에도 반가운 비 소식은 여전히 깜깜 무소식. 기상청은 다음 달 초까지 많은 비는 없을 것이라는 ‘청천벽력’ 같은 예보도 내놨다.

기상청 관계자는 “북태평양 고기압이 강한 세력을 유지할 것으로 예상됨에 따라 다음 달 초순까지 제주도 지방은 대류불안정에 따른 국지적인 소나기를 제외하고 본격적인 비가 내릴 가능성이 적다”고 예보했다.

이 이장은 “여기 살아오면서 이렇게 가문 여름은 드물었다. 제주 중산간 하면 시원한 곳으로 잘 알려져 있는데 지금 이렇게 더우니 그 명성도 사라졌다. 어떻게 버틸지 걱정이다”며 “다음 달부터 식수도 부분 단수 되는데. 어떻게 살아가라는 건지 모르겠다. 하늘도 무심하시다”며 하늘만 쳐다봤다. 


[제이누리=이소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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