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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텃밭농사

고양이가 밭에 오다

by 石基 2013. 6. 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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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2012년) 농사의 가장 큰 사건이라고 하면, 역시나 가뭄보다 토끼가 밭에 출몰한 일이다.

밭 아랫쪽에 양어장이 하나 있는데, 거기에서 토끼탕을 손님들에게 제공한 적이 있다. 그때 여러 마리의 토끼를 키우다가 이제 몇 마리 안 남은 상태였다.


그런데 그 토끼들이 토끼장을 탈출하는 사태가 벌어진 것이었다!

그것도 무려 암수 한쌍이 탈출을 했다.


이놈들이 귀여워 보여서 좋게만 보고 있었는데, 아뿔싸 농사에 피해를 줄 줄이야 누가 알았겠는가.

특히 이놈들이 콩잎을 좋아해서 콩을 심고 나자 밭에 출몰하며 콩잎을 마구 갉아먹었다.



이것은 토끼가 아닌 새들에게 떡잎을 뜯어먹힌 콩이다. 그래서 작년에는 이걸 피하고자 콩 모종을 내서 옮겨심었다. 그런데 세상에 토끼들이 나타나서 마구 콩잎을 갉아먹는 것이 아닌가.




새를 피하려고 일부러 모종을 키워서 옮겨심었는데 그걸 토끼들이 갉아먹은 것이다. 

이건 마치 쓰레기차 피하다가 똥차에 치인 격이랄까.


그때부터였을 것이다. 토끼와의 추격전이 시작된 것이.

마침 나에게는 충직한 견인 연풍이가 있었다.


토끼와 추격전을 벌이는 데에 큰몫을 한 연풍이. 늘 밥만 축내다가 이때 비로소 자신의 밥값을 했다. 토끼를 만난 이후 '토끼'라는 단어를 알아듣기 시작했고, 밭에 갈 때마다 한참 밭에서 토끼를 찾느라 귀를 쫑끗거리며 경계를 늦추지 않았다.




그러나 토끼들이 얼마나 날랜지 모른다. 연풍이가 잡을 만하면 휙 방향을 바꾸고 펄쩍 뛰는 통에 겁이 많은 연풍이는 토끼 뒤꽁무니만 좇아다니지 물지도 못하고 제대로 잡지도 못했다.


그래, 할 수 없이 주인에게 이야기했다. 토끼 단속 좀 해 달라고.

그렇게 몇 번의 요청이 들어간 이후 주인의 조치로 토끼들이 밭에 오지 못하도록 그물망이 쳐졌다.


그러나 아직 그 새끼들이 남아 있었다. 암수가 탈출한 이유가 사랑의 도피 행각을 위함이었던 것이었다!



구석구석 토끼를 찾아다니는 연풍. 이때는 참으로 CSI 과학수사대 못지 않게 꼼꼼하더라. 잘한다, 연풍!




이때부터 연풍이는 더욱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새끼들은 작고 느린 만큼 연풍이가 충분히 구석으로 몰아갈 수 있었다. 

이놈들이 뛰어야 벼룩. 연풍이는 놀라울 만큼 새끼 토끼를 한 마리씩 한 마리씩 몰아갔다.

거기에 내가 거들어 한 마리를 잡아 주인에게 넘기고, 또 한 마리를 잡아 주인에게 넘기고... 모두 다섯 마리의 새끼를 잡아서 아무 대가 없이 주인에게 넘겼다.

지금 생각해보면 내가 여유만 됐으면 토끼장을 만들어 키웠어도 될 놈들이었다.



연풍이가 구석으로 몬 새끼 토끼를 붙잡았다. 연풍이의 저 호기심 어린 눈을 보라. 줘도 물어죽이거나 그러지 못하는 평화견. 흐음.



한참 새끼 토끼들을 추격하여 구석으로 몰아붙인 뒤 지친 연풍. 눈이 붉게 충혈되고 혀는 길게 빼고 있지만, 여전히 눈길은 토끼들이 숨어 있는 곳으로 향하고 있다. 정말 재미있게 놀더라는... 콧잔등에는 톱밥이 한가득이다. 새끼 토끼들이 자신들의 은신처로 거름을 만들기 위해 쌓아놓은 톱밥더미에 굴을 팠다. 그곳을 헤집고 뒤지고 다니느라 온몸에 톱밥이 한가득. 으으...



톱밥은 이렇게 한방에 날려 버린다! 멋지다!





이렇게 하여 한바탕 토끼 소동이 끝났다.

사실 토끼들의 덕을 본 일이 있다.

2012년에는 엄청나게 가물어서 콩 모종을 옮겨심고 제대로 물을 주지 않으면 다 타들어가 죽기 십상이었다.

그런데 난, 물을 주지 않는 게으른 농부일 뿐이고... 그렇게 콩은 그냥 죽어버리기 쉬운 조건이었다.

그런데 뜻하지 않게 토끼들이 나타나 잎을 갉아먹으면서 자연스럽게 가뭄에 적응하기 좋은 상태를 만들어준 것이다.

이런 것이 바로 전화위복, 새옹지마가 아니겠는가!

지금에 와서 돌아보면 토끼들이 고맙기도 하다.



그러나 후유증도 있었으니... 연풍이가 이 다음부터 토끼만 보면 잡으려고 해싸서 귀찮아졌다. 산책로에서 만나는 토끼집에서 토끼들이 나타나자 홱! 하고 돌아보는 중.



'야, 토끼. 너희 나와! 내가 잡는다! 나와라.'




올해는 아무 일도 없이 넘어가는가 했다.

그런데 웬걸... 작년에는 토끼들이 골치를 썩히더니 올해는 고양이다.

이놈들 내가 조와 기장을 심으려고 헛골을 타 놓은 곳에 똥을 싸고 지롤이다!



양 옆으로 고구마를 심고 가운데는 헛골을 타서 조를 심었다. 이 움푹 패인 곳을 자기들 화장실로 알았던 것일까? 고양이 자식들이 나타나 똥을 싸놓기 시작했다.




그래. 똥이야 뭐 놔두면 삭으면서 거름이 된다고 치자. 

그래도 생똥이 작물에게 좋지 않다는 것은 자명한 사실... 거기다 이놈들이 똥 싸려고 흙을 파헤치고 덮는 과정에서 작물을 해치는 일이 발생하고 있다는 것이 더 문제이다. 으, 이 고양이 자식들아!



처음엔 개똥인가 했는데, 냄새와 똥을 처리한 습성으로 보아 개똥이 아니라 고양이똥이 확실하다. 개는 땅을 파서 똥을 싼 뒤에 잘 파묻지 못한다. 물론 뒷발로 흙을 차서 대충 똥을 덮기는 한다만 고양이만큼 정교하지 못하다.




가만, 이것도 전화위복이 되지 않을까?

올해는 콩을 모종을 만들지 않고 모두 곧뿌림을 했다. 그만큼 새들에게 노출되어 먹히기 쉬운 조건이란 말이다. 

그런데 이렇게 밭에 고양이들이 수시로 들락거리면 새들이 무서워서 피하지 않을까?

즉, 곧뿌림한 콩이 새들에게 먹히지 않고 무사히 자랄 수 있는 것은 아닐까.

흠, 지켜봐야겠다. 고양이들이 화장실 사용료로 새들에게서 콩을 지켜주기만 바란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이 자식들 다 죽었으! 다시 한 번 연풍이 출동이다!



뱀다리; 뭐 사람도 밭에 와서 똥 싸더라. 한 두 달 전인가? 화장실이 2분 거리에 떨어져 있는데, 얼마나 급하셨는지 거길 놔두고 밭고랑에 똥을 누었다. 왜 그랬는지는 지금도 도무지 알 수 없다. 쩝, 사람 새끼나 고양이나 똑같네. 똥이 거름이 되라고 풀을 잔뜩 덮어주긴 했는데, 그 부근은 뭔가 늘 찝찝하다. 흠.



이 아래에 있는 것을 상상하지 마시오. 뭔가 거름이 되고 있는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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