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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물학적으로 고구마는 메꽃과, 감자는 가지과에 속한다.

한국에서는 고구마나 감자를 ‘서薯’라고 하는데, 생김새가 마와 비슷하여 그렇다.

제주도와 완도를 비롯한 도서 지역에서는 고구마를 감자 또는 감재라고 부르기도 한다.

고구마가 감자보다 60년이나 빨리 들어왔지만 감자가 이름을 선점한 것이다.

둘을 통틀어 ‘감저甘藷’라고 부르는 데에서 생긴 혼란 탓 같다.

 

고구마는 조선 영조 때인 1763년 일본에서 들어왔고, 감자는 순조 때인 1824년 간도에서 두만강을 건너 들어왔다.

고구마는 남쪽에서 왔다 하여 ‘남저’라 하거나, 조선통신사 조엄(1719~1777)이 가져왔다고 ‘조저’라고 불렀다. 이에 반하여 북쪽에서 온 감자는 ‘북서’라고 불렀다.

 

고구마라는 이름은 일본 쓰시마 지방의 ‘고코이마(孝行藷)’가 변했다는 설과 완도 고금도의 지명에서 유래했다는 설이 있다.

그 내용을 자세히 살펴보면, 고금도에서 유래되었다는 설은 옛날 조선시대 장흥의 천관산에 살며 축지법에 통달한 위魏 처사라는 사람이 고금도 삼개문에 살고 있는 성成 처사를 자주 찾아가 글과 재주를 겨루며 살았는데, 등거산 아래 득암리의 김 처사가 끼어들며 세 사람은 절친한 사이가 되었다. 그러던 중 어느 날 일본인들이 해난 사고로 표류한 것을 이들이 구해주니 고마움의 뜻으로 고구마 종자인 남감저(南甘藷) 를 주고 돌아갔다. 세 처사가 이것을 심어 먹으며 이웃한 고금도 주민들에게도 종자를 나누어 주었는데, 이것이 전국으로 퍼졌 나가 이름이 고금마(古今麻)가 되었다는 것이다.

 

둘째, 고구마가 조선에 처음 소개된 것은 1663년 김여휘 등이 오키나와에 표착해 껍질이 붉고 살이 희며 맛이 마와 같은 음식을 먹었다는 조선왕조실록의 기록이 있다. 한국에 고구마가 본격적으로 수입된 것은 그보다 100년 뒤인 1760년쯤이다. 조선 후기 이광려는 중국의 <농정전서>를 통해 고구마를 알게 되었는데, 이것이야말로 백성을 위한 작물이라 여겨 보급하고자 하였으나 실패했다. 그러나 그의 친척인 동래부사 강필리가 재배에 성공하여 마침내 각지로 보급되었다. 강필리는 고구마 농사의 전파에 힘쓰는 한편, 최초의 고구마 전문서인 <감저보>까지 지었다. 그뒤 김장순은 남부 지방에서만 재배되던 고구마를 경기 지방에서 시험재배하여 그 연구 결과를 <감저신보> 로 저술하고, 서유구는 <종저보>를 저술하며 호남 지방에 보급되도록 힘썼다. 1900년대 이후에는 고구마가 전국적으로 재배되었다

 

예조참의였던 조엄이 통신사로 일본에 가던 도중 대마도에서 고구마를 발견하고 수입했다고 한다. 그의 기행문 <해사일기>에 당시의 일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다.

“대마도에는 감저라는 것이 있는데, 이것을 ‘효자마’라고도 하고 왜음으로는 ‘고귀위마’라고 한다. 이를 구하여 동래의 교리배에게 전하고자 한다. 일행 가운데 제 나름대로 이것을 구한 사람이 있다. 이것이 모두 잘 자라서 우리나라에 퍼진다면 문익점의 목면처럼

백성들을 매우 이롭게 할 것이다. 동래에서 잘 자라면 제주도 및 그 밖의 여러 섬에도 전파시켰으면 좋겠다.”

 

한편, 조선후기 참봉 이광려는 중국의 ‘농정전서’를 통해 고구마를 알게 되었는데, 이것이야말로 백성의 작물이라 여겨 보급시킬 뜻을 세웠다. 그리고는 중국행 사신이나 역관을 통해 고구마를 수 차례 부탁했으나 번번히 그 뜻을 이루지 못했다.

“일본에 간 사신에게 고구마를 갖고 오도록 부탁했는데, 아마도 힘들것 같다. 내 생각으로는 동래와 부산 일대에 고구마를 재배하는 민가가 있을 것 같다. 그곳에 가서 샅샅이 뒤져보면 반드시 있을 터인데, 내가 병약해 갈 수 없음이 안타깝다.”

그의 집 사랑방을 드나들던 강계현이 이 말을 듣고 노자 없이 길 떠난 지 3개월 후 고구마 한 그루를 얻어 서울로 돌아왔으니, 이것은 이참봉네 앞마당에서 가꾸어졌다. 마침 동래부사가 된 친척 강필리에게 부탁해 몇 그루를 더 얻어 본격적으로 재배했으나 실패를 거듭했고, 다만 이에 자극을 받은 동래부사 강필리가 재배에 온 힘을 기울여 동래지방에서 성과를 거두게 되었다.

이외에 김장순, 선종한 등도 고구마의 재배를 위해 노력했다. 서호수, 유중임, 박제가, 서유구, 서경창 등은 고구마 재배법을 기록한 책을 통해 그 보급에 힘썼다.

 

고구마 유래설은 이렇게 두 가지이고, 모두 일본에서 들어왔다고 한다. 한국의 토종 물고구마와 밤고구마의 교배종이 호박고구마이며, 최근에는 자색고구마 등이 개발되었다.

 

 


[감자]
한국에는 이규경의 <오주연문장전산고(五洲衍文長箋散稿)>에 따르면 1824∼1825년 사이에 명천의 김씨가 북쪽에서 가지고 왔다는 설과 청나라 사람이 인삼을 몰래 캐가려고 왔다가 떨어뜨리고 갔다는 설이 있다. 이 설로 미루어 보면, 중국에는 19세기 초보다 더 빠른 시기에 전래되었을 것이다.

한국에 감자가 도입된 것은 조선 순조 24~25년(1824~1825)에 만주 간도 지방으로부터 도입되었다고 알려져 있으며, 서울에는 1883년 선교사에 의해 처음 재배되었다고 한다. 감자의 명칭은 중국어로 마령서라 하여 한 포기를 그대로 파내어 들어올리면 말방울처럼 보인다는 뜻으로 그런 이름이 붙여졌는데, 감자라는 용어는 북방에서 온 고구마라는 뜻인 북방감저에서 자연스럽게 나온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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