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시대에 가부장제에 근거한 공동체가 운영되던 모습을 보면, 그 안에서 기근이나 흉년에 대비하여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한 축은 역시 지역 유지나 지주층이 아니었을까 한다.
그만큼 그네들을 어떻게 공동체 질서에 편입시켜서 활동하도록 하느냐가 중요한 관건이었는데, 이것이 조선 말기가 되면서 나라 질서가 어지러워지자 통제되지 않는, 즉 무한 이기심을 채우는 상황으로 나아가면서 공동체 질서가 완전히 망가진 것이 아닌가.
거기에다 새로 들어온 일제와 근대적 질서는 스스로 무언가 재편하고 정리를 하기도 전에 조선 사회를 완전히 끝장내 버렸고, 그렇게 수동적으로 근대사회로 접어들게 되었다.
여기서 제기하고자 하는 것은 흔히 공동체의 복원이라고 할 때, 그것이 어떠한 공동체인가에 대한 적확한 상이 없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과거의 공동체 그대로를 의미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그렇다면 과연 공동체는 무엇이든 올바른 것인가? 공동체는 만능인가에 대한 반성과 함께 어떠한 공동체를 말하는 것인지 확실하게 할 필요가 있겠다. 이와 연관하여 얼마 전 김종철 선생이 강연에서 과거 가부장제에 입각한 공동체 질서를 이야기하다가 세간의 비웃음을 샀던 일을 잊을 수 없다. 솔직히 나도 그러한 공동체라면 좀 거시기하다.
즉, 그것이 공동체이든 공동체가 아니든 민주적이고 경제적으로 공정하게 운영되는 원리와 원칙만 있다면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닌가 하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과연 공동체는 바람직한 것인가, 공동체만 이루면 되는 것인가?
또 하나는 과거의 지역 유지나 지주층과 같은 현재의 집단을 어떻게 포섭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공산혁명처럼 그냥 목을 치고 처단할까? 그런 사회가 오래가지 못하는 것은 물론, 문제를 안고 있다는 사실은 이미 역사에서 증명되었다. 조선시대에 그들을 포섭할 수 있었던 것은 역시 농업이 근간인 사회이다 보니 노동력 제공이 가장 큰 역할을 하지 않았을까? 지금도 그 사실에는 변함이 없지만 지금은 워낙 다양한 방법으로 충당할 수 있으니 그때와 상황이 좀 다르다고 볼 수도 있겠다.
어쨌든 지난날 양반 가문이었던 집안의 이야기를 들어보면 양반, 그거 아무나 하는 것이 아니었다. 사회적 지위와 부를 쌓는 만큼 공동체에 정신적으로 물질적으로 희생해야 했다. 그러한 일이 자연스럽게 잘 이루어질 때 공동체는 그만큼 건강하게 잘 유지가 되었다.
그런데 지금은 어떠한가? 지금의 지도층이라는 집단은 어떤 식으로 포섭하거나 강제해야 할 것인가? 맘씨 좋고 유식한 부유층을 만나 우리의 뜻에 동참하자고 설득하거나, 아니면 그러한 사람이 공동체를 주도하도록 할 것인가? 지금 시대에 그러한 일은 어불성설이 아닐까 한다.
마지막으로 신자유주의의 시대에 공동체 질서를 어떻게 운영해 나아가느냐가 문제일 것 같다. 공동체로 소박한 경제질서를 유지하며 살고 싶지만 그렇게 살 수 없는 세상임은 만천하가 다 아는 사실이다. 아니, 산속이나 농촌 깊숙이 푹 박혀서 세상의 체계와 상관없이 유유자적하게 살아간다면 아무 문제가 되지 않는다. 솔직히 귀농자 중에 그런 사람이 없지 않다. 그런데 그렇게 살아가는 것이 모두에게 통용될 수 있는가?
아무튼 생각하면 할수록 참 어려운 문제이고 답도 잘 안 보인다. 어려운 수학문제가 사람에게 도전정신을 안겨주고 그걸 풀었을 때 희열을 느끼듯이, 이 문제 또한 그러한 유형이 아닌가 한다. 평생 살아가면서 풀어야 할 문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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