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친환경 쌀 생산량은 2010년 기준 무농약 22만9230톤, 유기농 2만5491톤으로 총 39만5752톤이다. 이는 전체 쌀 생산량 429만5000톤 가운데 9.2%를 차지한다. 그런데 그 가운데 유기농의 비율만 따지면 전체 생산량의 0.6% 정도뿐이다. 이렇게 생산된 유기농 쌀은 대부분 생협 등으로 유통된다.
현재 유기농 시장의 소비자는 크게 환경과 농업을 고려하거나 농민운동 등에 뜻을 두고 소비하는 사람들과 일부 프리미엄 건강식품의 개념으로 구매하는 사람으로 나뉘는 듯하다. 유기농업의 확산에는 결국 어떻게 생산비 절감하여 가격을 낮추느냐가 관건이라고 볼 수 있다. 운동 차원에서 유기농산물을 사서 먹는 데에도 한계가 있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들에게 매력적으로 다가가려면 결국에는 몸에도 좋고 가격도 싼 그런 상품이 될 수밖에 없을 것이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다는 것이 또한 현실이다. 그렇다고 관행농처럼 생산방식을 가져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하지만 당장 유기농업의 확산을 이야기하는 건 배부른 소리일 수도 있다. 2011년 기준 현재 한국의 곡물자급률(사료곡물 포함)은 1990년 43.1%에서 22.6%로 급락했다. 이는 OECD 국가 중 최하위에 해당하는 수준으로서, 선진국들이 대개 식량자급률 100% 이상인 것에 비교하면 암담하다. 더구나 국내에서 생산되는 쌀(밥쌀용·가공용 포함)의 자급률이 83%까지 떨어졌고, 밥쌀용 쌀의 자급률도 94.8%로 떨어졌다. 즉 위기의 순간이 찾아오면 우리 중 일부는 밥도 먹지 못한는다는 뜻이다.
거기에 우려를 더하는 것이 1995년 220만ha였던 한국의 농지면적이 점차 감소하여 2010년 182만ha로 줄었다는 사실이다. 올해 상반기에만 다른 용도로 전용된 농지면적이 7018ha(여의도 면적의 약 8.3배)에 달하는데, 해마다 이렇게 많은 농지가 사라지고 있다. 즉 농사를 짓고 싶어도 농사지을 수 있는 땅이 없다는 것이다. 사실 농촌에 가보면 놀고 있는 땅이 꽤 많기는 하다. 그런데 그런 곳은 기계가 들어가기 어려운 곳, 즉 편하게 농사짓기 쉽지 않은 곳이 대부분이다. 이런 곳은 기계를 사용할 수 없어 천상 손이나 축력으로 농사지을 수밖에 없는데, 지금 그렇게 농사지었다가는 굶어죽기 십상이다. 이런 곳은 그냥 자신이 먹는 걸 생산하는 자급농에게나 어울리는 땅이지 농업을 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불리한 곳이다.
땅이 있어 농사짓는다고 해도 어려움은 남는다. 바로 수입산 농산물과 관련된 문제 때문이다. 2010년 배추 가격이 급등하자 이명박 정부에서는 그를 막기 위해 신선농산물에 할당관세를 예외없이 적용했다. 이를 통해 외국산 농산물이 값싸게 한국 시장으로 들어올 수 있었다. 당장 배추 가격 상승이라는 발등의 불은 껐지만, 그로 인해 위기에 몰린 국내 농업은 벼랑으로 떠밀렸다. 국내 농산물 가격의 상승을 수입 농산물의 유입으로 막는다는 처방은 오히려 국내 농산물 시장에 혼란을 야기했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한국은 2002년 칠레와 FTA 협상을 맺은 이후 지난 10년 동안 45개국과 8개의 FTA를 체결했다. 특히 농업 강국인 EU를 비롯한 미국과의 FTA로 농업 분야에 피해를 입기 시작했다. 여기에 끝판왕이라 할 수 있는 한중 FTA의 체결이 기다리고 있다. 농협경제연구소와 농촌경제연구원 등에 따르면, 한중 FTA 체결로 고추, 마늘, 양파, 배추, 인삼 등 13개 과수와 채소 품목의 10년간 피해액이 최대 12조원에 달하고, 임산물은 연평균 4211억원, 양돈업은 최대 2607억원의 피해가 예상된다고 한다. 그래도 정부에선 FTA를 멈출 생각이 없고 계속하여 강력히 추진 중이다. 이 문제는 문재인 후보가 대통령이 되었다고 해서 크게 달라지지 않으리라 본다. 그동안 국책사업이라고 하는 대형 사업에 민주당이 대처한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노무현 대통령 때 새만금 사업과 대추리 미군기지 이전 문제를 보라. 이미 진행이 되고 있는 국익을 위한다는 사업에 민주당도 새누리당과 다를 바 없이 대처했다. 그래서 난 FTA에 대해서도 마찬가지일 것이라 본다.
자, 그럼 이제 할 수 있는 일은 무엇이 있을까? 망했다고 복창하고 농촌을 떠나 도시로 이주하자. 슬프지만 방법이 없다. 물론 정부에서 FTA대책으로 돈을 투입한다지만 그 돈으로 혜택을 보는 건 분명 소수의 지역유지들일 테고, 농업은 급속히 구조조정이 들어갈 것이다. 식량자급률이란 건 개나 줘야 할지도 모를 일이다. 아니면 이제 한국의 농민들도 유럽의 농민들처럼 되는 길이 있다다. 이른바 농업선진국이 되는 것이다. 이는 농업경쟁력 강화라는 이름으로 적극 추진되고 있다. 하지만 겉보기에는 화려하나 속은 글쎄... 농업은 강해질 것이다. 그러나 농촌은 사라질 것이다.
오늘은 시장에 나가서 국산 들깨가루를 사려고 돌아다녔는데 모두 중국산뿐이었다. 가게 주인의 말에 따르면 가격에서 배 이상 차이가 나니 손님이라면 그 비싼 걸 사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래서 상인들도 국산이 아닌 중국산만 가져가 놓는다고 한다. 중국산이 얼마나 싸냐면, 고추를 예로 들면 국산 고추가 600g에 1,5000원 정도인데 중국산은 4000원밖에 하지 않는다. 거의 4배 정도 차이가 난다. 우리가 착한 가격을 좋아하며 착한 소비를 할 때, 한쪽에서는 나가 떨어지는 농민이나 생산자가 있을 것이다. 착한 건 다 이유가 있다. 맛 좋고 값싼 식당이 있을까? 아마 원재료가 싼 걸 쓸 것이다. 그리고 그건 대개 중국산일 것이다. 식당 주인들도 남는 게 있어야 먹고 살 테니 어쩔 수 없는 구조다.
중국산 고추에 밀리면서 한국의 고추 재배면적은 여느 해의 4만8913ha에서 2011년에는 4만2574ha로 감소했다. 이에 따라 고추자급률도 2000년 91%에서 2010년 51%로 급락했다. 이는 앞으로 일어날 기후변화로 더욱 떨어질 전망이다. 몇 십 년 동안 농사지은 베테랑 농부들도 지금의 기후변화에는 두 손 두 발 다 들 정도로 대처할 방법이 없다고 한다. 그래서 지금 농촌에서는 조금 무리해서라도 빚을 내서 고급 시설하우스 재배로 돌아서고 있다. 300평짜리 시설하우스 하나 설치하는 데에 1억은 우습게 넘는 비용이 들어간다. 거기서 사시사철 보일러를 때면서 공장처럼 농산물을 생산해야 이익을 남길 수 있는 구조다. 그를 설치하는 데 드는 비용 이외에 온실가스라든지 토양악화와 같은 문제로 인한 비용은 아예 고려하지도 않았다. 그런 것까지 감안한다면 엄청난 고투자 고에너지 소모 사업이다.
조만간 우리는 국산 농산물을 구하고 싶어도 구하기 힘든 그런 날이 올지도 모르겠다. 이미 정부의 농업정책에서도 농업경쟁력이란 이름으로 유기농에 국산이라는 프리미엄까지 붙은 초고급 식재료를 생산하는 쪽으로 방향을 잡은 듯하다. 박근혜 정부의 농업정책을 통해 이러한 흐름은 더욱 거세고 더욱 빨라질지도 모르겠다. 그나마 문재인 후보의 공약이 조금 더 나았는데, 현실에서 어떻게 풀어낼지 알 길이 없음으로 일단은 묻어두기로 하자.
벼농사도 어려움이 존재하기는 마찬가지다. 2005년 300평 규모로 논농사를 지으면 54만5776원을 벌었는데, 2010년에는 43만4162원으로 11만1614원이 줄어들었다. 이를 소비자 물가상승률을 고려하여 계산하면 벼농사의 소득이 40% 정도 떨어진 셈이다. 그렇다고 규모를 더 늘려서 생산량을 늘릴까? 이는 어불성설이다. 화성에서 논 9만평을 빌려서 농사짓는 분이 트랙터나 콤바인 같은 농기계에 사용되는 기름값만 1년에 2000만원이 넘는다. 여기에 비료, 농약, 종자 등 농자재를 포함하면 1년에 5천만원은 넉넉히 들어간다. 규모가 큰 만큼 쌀을 많이 생산하지만, 추곡수매제도가 폐지되어 스스로 판로를 개척해야 하고, 이외에 농기계가 고장난다든지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가 닥치는 등의 가외비용이 발생하면 본전도 뽑기 어려워지는 것이다.
물론 그에 대비하여 농작물 재해보험이라든지 논농사에는 직불금이란 게 있는데, 특히 직불금 제도는 이명박 정부의 장관 예정자 청문회에서도 터졌듯이 실제로 농사짓는 사람이 아니라 지주가, 그것도 부재지주가 꿀꺽해도 모른다는 맹점이 있다. 또한 농작물 재해보험도 가입할 수 있는 작물의 품목이 한정되어 있다. 아무튼 농민들 땀 묻은 돈 뺏어먹는 인간들은 진짜로 나쁜사람이다. 결국 농사지어도 돈이 안 되는 건, 요즘 석유가격 상승으로 인해 생산비 자체가 급등한 것이 한 원인이다. 농약이니 비료니 농기계니 모두 석유에 기반하여 굴러가는 것이다. 거기에 농산물이 물가상승의 원흉으로 지목되는 등 미친 듯이 오르는 생산비만큼 수익을 뽑지 못하는 구조가 또 하나의 원인이다. 세번째는 기후변화의 영향도 빼놓을 수 없다. 앞에서 언급했듯이 노농들도 날씨를 종잡을 수 없어 농사짓기 힘들다고 혀를 내두를 정도로 지금의 기후변화는 심각하다. 도시민들에겐 그냥 비가 많이 오나 보다 하는 정도일지 몰라도 농사짓는 사람들에겐 그것이 치명적인 피해를 입힌다.
이제는 농사는 아무나 짓는 일이 아닌 세상이다. 할일이 없으니 농사나 지으라는 말을 함부로 하지 말아야 한다. 그리고 농사짓는 사람을 우습게 여기는 언행도 삼가해야 한다. 그래도 농민은 아직까지는 누구보다 어렵고 귀한 일을 하는 사람들이다. 그들은 여전히 누군가의 먹을거리, 곧 생명을 책임지는 사람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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