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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생산하는 농산물 가운데 40%는 농장이나 식탁에 오르면서, 또는 유통이나 가공 과정에서 폐기처분된답니다. 가격이 맞지 않아 유통시키는 게 생산비도 건질 수 없는 상황이면 그냥 밭에서 갈아엎어지는 배추나 버려지는 토마토, 또는 냉장고 한쪽 구석에서 썩어서 나오는 음식들, 대형마트 등에서 유통기한이 지나 폐기되는 것들 등등이 바로 그것입니다.


인간이 역사를 기록한 이후 이렇게 풍요롭고 풍족한 시기가 있었나 모르겠습니다. 지금 시대는 풍족해도 너~무 풍족하여 사치와 낭비라는 것이 함께 태어났습니다. 그에 따른 육신의 편함은 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대신 자연환경과 여타의 생명들은 인간의 풍요로움을 뒷받침하느라 죽어나고 있지요. 뭐, 어디 자연과 생명만 그런 상황이겠습니까. 인간의 인간에 대한 착취도 장난이 아니죠. 사람들이 열광하는 월드컵 뒤에는 경기에서 쓰일 축구공을 꼬매느라 손에 굳은살이 박히는 꼬마들이, 멋진 스키니진 뒤에는 밤잠을 잊어가며 재봉질하는 여공들이 존재합니다. 세상은 자립적으로 살지 못하는 만큼 누군가의 도움과 희생을 필요로 합니다. 과거 생산자와 소비자가 직접 만나서 거래가 이루어지거나 대부분의 물건을 직접 만들어 쓰던 시대에는 남의 도움과 희생이 그나마 덜했죠. 하지만 생산자와 소비자의 '거리'(물리적, 경제적)가 멀어질수록 둘 사이의 '관계'에 대한 고민도 함께 필요없어졌습니다. 그 결과 남는 건 실용, 디자인, 가격 등의 요소뿐입니다.


'아이고, 이거 만드느라 얼마나 고생이 많았어. 이거라도 하나 가져가'라는 대화가 오고가는 거래가 자연스럽게 사라졌지요. 아직 남아 있긴 한데 핸드메이드, 곧 수제품에 대한 반응입니다. 하지만 그것도 수제품을 상품이 아니라 선물로 주고받을 때 그런 반응을 얻을 수 있죠. 그래서 생산물에 대한 심리적, 물리적, 경제적 거리에 대해 알려주는 책들이 꾸준히 나오는 듯합니다. 이 청바지, 농산물, 커피 등등이 어디의 누가 어떻게 생산해 우리(내가 아니라)에게 오는가 하는 류의 책이요. 그렇지만 그 안에서 지식 외에 공감은 찾아볼 수 없습니다. 지식은 머릿속으로 들어가 어느 한 구석으로 물러나 잊혀질 수 있지만, 공감은 마음에 아로새겨집니다. 개에게 크게 공감한 사람은 다시는 개고기를 먹지 않을 가능성이 높지만, 개에 대한 지식을 쌓은 사람은 그럴 가능성이 낮지요.


기계도 마찬가지가 아닐까 합니다. 호미와 낫으로 일할 땐 자연과의 거리가 가까울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 농기구를 가지고 일하면서 상대와 공감하고 그를 바탕으로 서로 이해하게 되는 계기가 되지요. 그러나 트랙터나 콤바인은 그런 관계를 끊어놓습니다. 나와 기계, 그리고 자연이 개별 지식의 대상이 됩니다. 그래서 기계를 새로 들이거나 활용할 때는 신중해질 수밖에 없습니다. 기계 하나가 내 삶에 무슨 큰 영향을 미치겠나 생각할지 모르지만, 그 기계 하나로 인해 내 삶이 크게 뒤흔들립니다. 스마트폰을 보십시오. 그리고 드라이기를 보십시오. 작은 기계 하나가 우리의 삶을 확 바꾸어 놓았죠.


기계의 장점은 편리성, 효율성이겠지만 그로 인해 관계의 고리가 끊어지고 그만큼 '거리'가 멀어진다는 점도 생각해야 하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합니다. 관계가 끊어지고 거리가 멀어질수록 사람은 자립하기 힘들어집니다. 무언가에 대한 의존성과 불안감은 그 제곱으로 높아집니다. 바로 그 공간으로 각종 상품을 들고 자본이 들어오죠. 세상에 대한 가장 큰 대안이랄까 반항은 '자립하는 삶'입니다. 그것이 무엇이든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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