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른 봄, 먼동이 틀 무렵이면 어김없이 들리던 소리가 있었다. 「타당탕 타당탕, 때로는 탕탕 탕......」, 대장장이가 불에 달구어진 쇠를 모루(쇠를 올려놓고 두드릴 때 받침대 역할을 하는 쇳덩이)에 놓고 망치로 두들겨 호미, 낫, 괭이, 쇠스랑 등의 농기구나 문고리, 칼, 돌쩌귀, 편자(말 발굽에 붙이는 쇠) 등 각종 생활도구를 만들던 소리였다. 농사철이 가까워지는 2∼3월이면 대장간의 일손은 더욱 바빳다. 대장장이의 기술은 쇠를 달구고 망치질과 담금질로 무쇠나 고철에 생명을 불어 넣는 일, 그들은 기구의 쓰임새에 따라 열처리 방식도 달리하고 쇠의 강도를 조절하는 담금질(쇠를 달구었다가 찬물에 넣는 것)도 달리했다. 하지만 온도조절이나 쇠의 강도나 굵기를 재기는커녕, 눈대중 하나로 쇠를 달구고 또한 뒤집고 깎아내고 망치질과 담금질을 대충대충 해 내도 누구나 주문한 기구는 어김 없이 탄생, 대장장이의 기술은 과히 달인에 가까웠다. 우리지역 조상들은 대장간에서 농기구 등을 새롭게 만드는 작업을 성양한다고 했는데 이는 모양새를 새로 갖춘다는 뜻의 성양(成樣)으로 표현했음직하다. 1960년대만 해도 시골지역 웬만한 마을마다 한 곳 정도 있을 만큼 쉽게 눈에 띄던 대장간. 이곳에 없어서는 안될 것이 풀무(bellows)였다. 화덕에 공기를 분사시키는 역활을 담당했던 풀무는 가장자리가 쉽게 휘도록 돼 있었고 경첩으로 연결된 상자를 통해 안쪽으로 공기를 팽창시키면 밸브를 통해 공기가 화덕으로 유출, 연료가 불에 잘 타도록 했다. 당시 쇠를 녹이던 연료는 대부분 나무였기에 풀무질은 필수쉼없는 풀무질에 쇠도 녹고 애환도 녹였고 농기구를 성양하러 온 사람은 풀무질을 담당, 쉬엄쉬엄 풀무채를 밀고 당기면 어느새 시우쇠(무쇠를 불려서 만든 쇠붙이의 하나)는 선홍색으로 달아 올르며 화덕속의 쇠도 녹고 가슴속의 애환도 녹았다. 풀무는 중세시대 처음 발명, 다양하게 개발돼 대장간이나 제철소의 용철로(熔鐵爐)외 연소 속도를 증가시키는데 사용됐고 리드오르간이나 파이프오르간에도 사용됐다. 대장간에는 가장 단순한 형태인 직사각형 수동 풀무가 사용됐는데 이는 1980년대 중반, 전동모터가 생겨나며 대부분 자취를 감추기 시작, 이제는 그 어디서도 풀무의 자취를 찾아보기 힘들게 됐다. 대장간이 불야성을 이룬 것은 지난 1960∼1970년대, 건설업계가 호황을 누릴 때 기초공사에 필요한 철근 구조물이나 각종 기구 등을 생산했다. 특히 이때 대장장이는 쉬지 않고 쇠를 두드리면 동네 아이들은 쇳밥을 줍기위해 이곳으로 몰렸다. 쇳밥을 줏어 모아 엿장수에게 갖다 주면 달콤한 엿을 쥐어주기 때문이었다. 쇳밥의 큰 조각은 다시 녹여 쓰이지만 맛있는 엿에만 눈이 먼 아이들은 대장장이의 눈길을 피해 슬쩍 슬쩍 하나 둘 쇳밥을 슬쩍 훔쳐 냈다. 그러나 채 식지도 않은 쇳밥을 줏다가 손을 데이기도 일쑤, 그것은 붉은 쇠가 혓바닥을 날름거리던 대장간의 진풍경이었다. 새벽부터 화덕에 불을 지피고 식사를 거르면서도 하루해가 모자라 밤에는 호롱불로 성양하던 대장장이, 그들은 돈벌이의 목적 보다는 농사철 이전에 농민들의 기구를 고쳐야 한다는 의무감과 그 기구가 농민들의 만족을 얻어내야 한다는 장인(匠人) 정신에 비지땀의 고달픔도 인내 속에 묻고 살았다. 그러나 이 대장간은 지난 80년대 농기구의 급속한 발달, 각종 주물(鑄物)을 생산하는 공장 건립 등에 따라 서서히 사라지기 시작, 현재 흔적조차 찾아 볼 수 없을 만큼 우리 곁에서 사라져 버렸다. 경운기 콤바인 등 기계화 영농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시절, 우리사회에 없어서는 안될 중요한 부분을 차지했던 대장간, 그 속에서 비지땀을 흘리며 쇠를 치던 대장장이, 그 곁에서 풀무질에 여념 없던 시골의 할아버지, 슬금슬금 눈치 보며 쇳밥 줍기에 정신 없던 개구장이들, 이제는 모두가 떠나 갔지만 그때 그 대장간은 아직도 우리의 가슴에 남아 아련한 추억의 불씨를 지피고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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