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역사회학 12권 1호
먹을거리의 탈정치화와 대응에 관한 연구
김종덕(경남대 사회학과 교수)
I. 문제의 제기
먹을거리는 우리의 생명 및 생존과 직결된다. 또 먹을거리는 우리의 생활에서도 핵심을 구성한다. 우리의 삶과 관련하여 먹을거리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안전하고 좋은 먹을거리는 우리가 누려야 할 권리라고 할 수 있다. 국제연합에서는 1948년에 식량권을 기본적 인권으로 공표한 바 있다.
사회의 관점에서 보더라도 먹을거리만큼 중요한 것이 없다. 먹을거리 부족과 이로 인한 아사자의 증대는 사회에 무질서와 혼란을 가져오기 때문이다. 먹을거리의 안정적 공급은 특정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과제이다. 보통 국가의 임무는 국민의 생명 보호라고 명시되어 있는데 여기에도 먹을거리의 안정적 공급이 전제되어 있다. 먹을거리는 모든 사회에서 정치의 핵심 대상이라 할 수 있다.
먹을거리가 정치의 핵심 대상이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실에서는 그렇게 다루어지지 않고 있다. 대부분의 국가에서 먹을거리는 정치의 핵심 대상이 아니라 주변의 대상이다. 많은 국가의 헌법에서 국가의 국민에 대한 식량권 보장이 빠져 있다. 식량권 보장이 명문화된 나라일지라도 정부의 식량권 의무 이행이 잘 되지 않고 있다. 국가 행정부서에서도 먹을거리를 관장하는 부서가 그 위상에 맞게 설치되어 있지 않고, 대개 다른 영역의 부서가 먹을거리 문제를 함께 다루고 있다. 또 먹을거리를 단일부서에서 통합적으로 다루지 않고 있다. 국가의 먹을거리 정책도 근본적인 문제(식량권, 식량보장) 등을 다루기보다 상대적으로 지엽적인 문제(식품안전, 가격, 식품표시 등)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또 먹을거리의 생산자들과 소비자들도 먹을거리를 정치의 문제로 인식하지 못하고 있고, 기본권인 식량권을 누리지 못하고 있다. 현대 먹을거리의 생산, 가공, 유통, 소비를 담당하고 있는 식량체계, 즉 세계식량체계를 당연한 것으로 인식하고 있다.
국가가 먹을거리 문제에 소극적으로 개입하고, 먹을거리의 생산자들과 소비자들이 먹을거리를 정치적 사안으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은 먹을거리의 탈정치화(depoliticization of food)의 결과라고 생각된다. 국가, 사회, 개인 차원에서 문제의 먹을거리와 이를 공급하는 식량체계와 기업 등을 문제 삼지 않으면서 현대 먹을거리와 관련된 문제가 더 심화되고 있다.
탈정치화는 여러 연구자들에 의해 다양한 의미로 사용되고 있다. 탈정치화된 법은 정치적 과정을 거치지 않은 법으로 관습법이나 19세기 이전 보통법을 지칭한다(Hasnas. 2008). 탈정치화된 식량 원조체제는 정치적 영향을 받지 않는 원조체제를 의미한다(Clapp. 2005). 브라운(Brown)은 다문화제국에서 관용담론의 탈정치화된 기능을 다루고 있는데, 탈정치화란 불평등, 종속, 주변화, 사회갈등 같이 정치적인 분석과 해결책을 필요로 하는 문제들을 한편으로는 개인적인 문제로, 다른 한편으로 자연적, 종교적, 문화적인 문제로 이해하려는 시도를 지칭한다(브라운, 웬디. 이승철 옮김, 2010: 39). 본 연구에서 탈정치화는 대상을 정치적인 논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대상이 정치적인 관심사가 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조치나 시도로 사용한다(김종덕. 2009a).
먹을거리의 탈정치화는 많이 연구되지 않은 주제이다. 먹을거리의 탈정치화를 다룬 선도적인 연구로 Riches(1991b)의 연구를 들 수 있다. 그는 캐나다의 푸드뱅크(food bank)에 대한 연구에서 푸드뱅크가 굶주림에 대해 국가가 아니라 시민사회의 역할을 강조한다는 점에서 탈정치화의 기능을 한다고 밝히고 있다. 식품산업의 먹을거리 탈정치화에 대해서는 Nestle(2002)의 연구가 돋보인다. 그는 식품산업이 정부기관과 전문가 등을 활용해서 먹을거리를 탈정치화하는 것을 다루고 있다. 김종덕(2005; 2009a)은 세계식량체계와 관련하여 탈정치화를 다루고 있다. 그는 먹을거리 탈정치화를 가져오는 메커니즘과 탈정치화의 결과를 밝히고 있다. 하지만 먹을거리의 탈정치화와 그것에 대한 대응을 전반적으로 다룬 연구는 없다.
본 연구는 현대 먹을거리의 탈정치화와 이에 대한 대응을 살펴보려고 한다. 먹을거리의 탈정치화와 관련해서는 세계식량체계, 식품산업이 탈정치화를 하는 이유, 그리고 세계식량체계에서 이루어지는 먹을거리의 탈정치화, 식품산업의 먹을거리의 탈정치화를 다룬다. 먹을거리 탈정치화에 대한 대응으로는 지역식량체계의 구축을 위한 슬로푸드운동과 로컬푸드 운동, 식량권과 식량주권과 관련된 움직임, 음식시민 양성 움직임을 다루고자 한다.
먹을거리 탈정치화가 거의 연구되지 않은 상황에서 본 연구는 먹을거리와 관련된 탈정치화의 메커니즘을 밝히고, 또 탈정치화에 대한 대응방향을 모색하는데도 도움을 줄 것으로 생각된다.
II. 먹을거리 탈정치화의 이유
1. 세계식량체계
세계식량체계는 오늘날 전 세계 수준에서 식량의 생산, 가공, 유통을 좌우하는 식량체계이다. 여기서는 세계식량체계에서 먹을거리의 탈정치화가 필요한 이유를 살펴보고자 한다.
세계식량체계의 등장과 발전에는 자본주의, 사회적, 기술적 요인이 작용했다. 자본주의의 원리가 농업에 확산되면서 영농의 효율성과 이윤제고를 위해 산업형 농업(industrial agriculture)이 생겨났다. 산업형 농업은 농업생산에서도 공장수준의 효율성과 합리성을 추구한다(Kimbrell. 2002a). 산업형 농업을 통해 대규모 영농을 통해 저가의 농산물을 생산하는 것이 가능해졌다. 사회적, 기술적 요인으로 도시화, 기술발전을 들 수 있다(Beardsworth, et al. 1997). 산업화에 의한 도시규모의 확대와 대규모 식량수요는 지역을 넘어 식량을 공급하는 체계를 발전시켰다. 18세기 운하의 발전, 19세기 중반 철도의 발전으로 대규모 식량의 장거리 운송이 가능해졌다. 멸균처리 등 식품보존 향상 기술, 냉장차의 발명, 자동차 및 가정의 냉장고, 식품해동기(1970년대), 전기오븐(1980년대) 등의 가전제품의 보급도 세계식량체계의 확산에 중요한 역할을 했다.
세계식량체계는 이전의 식량체계와는 다른 특징을 갖고 있다(김종덕. 2009a). 생산과 관련하여 효율성을 높이고 비용을 줄이기 위해 규모의 경제가 도입되고, 생산이 고도로 전문화된다. 지역 시장이 아니라 세계시장을 위해 생산이 이루어진다. 특정인이 아닌 불특정 다수를 위한 생산이다. 생산자는 생산물 대부분을 소비자에게 직접 판매하는 것이 아니라 유통업체에 판매한다. 유통과 관련하여 유통이 지역이 아니라 세계적 수준에서 이루어진다. 따라서 생산물의 이동거리 즉 푸드마일(food mile)이 길다. 생산자와 먹을거리 소비자 간에 거리가 멀다. 생산자에서 최종 소비자까지 여러 단계를 거친다. 소비와 관련해서는 집에서 먹는 식사보다는 외식, 그리고 간편하고 단시간에 먹을 수 있는 패스트푸드, 인스턴트식품의 소비가 늘어난다.
세계식량체계에서 먹을거리의 탈정치화가 필요한 이유로 다음을 들 수 있다. 첫째, 세계식량체계가 이윤을 중심으로 움직인다는 것을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세계식량체계는 기본적으로 그것의 주요행위자인 곡물 메이저, 농기업, 식품산업 등의 이윤을 위해 존재하고, 움직인다(매그도프, 프레드. 윤병선 외 옮김. 2006). 세계식량체계는 이들 주요행위자의 비즈니스를 보장해주는 틀이다. 곡물메이저는 세계 곡물무역의 80% 이상을 취급하면서 막대한 규모의 이윤을 챙긴다. 이들은 엄청난 자금력과 정보력을 바탕으로 세계 각지 농산물 생산지나 시카고 선물거래소 등에서 다량의 곡물을 매입, 정부와 기업에 판매함으로써 막대한 이윤을 얻고 있다(김종덕. 2009a). 농기업들은 세계식량체계에서 지배적인 산업형 농업에 필요한 농기계나 비료, 농약, 농자재 등을 공급하면서 엄청난 규모의 이윤을 누리고 있다. 현대 먹을거리의 가공, 유통, 서비스의 대부분을 책임지고 있는 식품산업은 세계 경제에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시간이 지날수록 그 규모가 커지고 있다. 세계식량체계가 그것을 주도하는 곡물 메이저, 농기업, 식품산업 등에게 안정적인 비즈니스 영역과 활동의 장을 제공해주는 장이 되고 있지만, 세계식량체계는 그 필요성으로 세계인구의 거의 대부분에게 식량을 안정적으로 그리고 합리적인 가격에 공급한다는 것을 내세운다. 세계식량체계에 속한 보다 많은 사람들이 세계식량체계의 필요성을 인식하도록 하기 위해서 먹을거리의 탈정치화가 요구된다.
둘째, 세계식량체계에서 나타나는 먹을거리의 문제점을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효율성에 바탕을 둔, 세계시장을 상대로 한 먹을거리의 생산과 유통에 많은 문제가 생긴다. 세계식량체계에서 생산, 유통되는 먹을거리는 안전하지 않다. 비용을 줄이기 위한 대규모 영농은 불가피하게 제초제 등을 사용할 수밖에 없고, 식량의 장거리 수송과정에서도 살충제, 방부재 등을 살포하기 때문이다. 문제가 있는 식품섭취로 인해 식원성 질병은 늘어나고 있지만 질병이 제대로 보고되지 않고, 위험의 상당수가 알려져 있지 않기 때문에 과소평가 되고 있다(셀, 엘렌 벨 셀. 정준희 옮김. 2010: 329). 세계식량체계에서 생산된 먹을거리가 지역시장이 아니라 세계시장에서 유통되면서, 또 개발도상국에는 선진국의 농업보조금으로 생산된 값싼 농산물이 유입되면서 지역차원에 식량보장 문제가 생기게 된다. 세계식량체계가 작동하면서 쌀 수출국이었던 필리핀과 하이티 등은 쌀 부족 국가로 전락했다(벨로, 월든. 김기근 옮김. 2010). 세계식량체계에서는 글로벌푸드, 패스트푸드가 전 세계 곳곳으로 확산되면서 지역음식이 점차 자취를 감추게 된다. 그리하여 음식의 지역정체성이 사라지고, 수천년간 지속된 지역음식문화가 소멸된다. 세계식량체계 구성원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이러한 문제의 심각성을 인식하게 되면, 세계식량체계의 지속과 운용에 어려움을 겪게 된다.
셋째, 세계식량체계의 취약성을 숨기기위해서다. 세계식량체계는 몇가지 취약점을 가지고 있다(김종덕, 2005). 세계식량체계가 먹을거리를 값싸게 안정적으로 공급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전 세계에는 9억명 이상이 기아의 상태에 놓여 있다. 세계 식량 체계의 영농은 산업형 농업으로 생물다양성, 토양, 수질 등에 부정적 영향을 미치고 있어 지속적인 농사를 보장하지 못한다. 세계식량체계는 세계 경제와 정치가 안정되어 있을 때만 제대로 작동될 수 있고, 전쟁, 천재지변 등에 의해 세계경제가 요동을 치거나 정치적인 갈등이 고조될 경우 어려움에 처하게 된다. 세계식량체계는 2008년 곡물파동시기에 볼 수 있듯이 식량가격이 폭등할 때 행위자들 간에 상호 의존이나 협력을 기대하기 어렵다. 끝으로 세계식량체계는 석유에너지에 의존하기 때문에 석유에너지의 부족 또는 석유에너지의 급격한 가격 인상은 세계식량체계의 존립을 위태롭게 한다. 세계식량체계의 취약성이 드러나면, 그것의 존재이유나 필요성에 의문이 생기게 되기 때문에 이를 숨길 필요가 커진다.
넷째, 세계식량체계의 원활한 작동과 지배적인 식량체계로서 위상을 유지하기 위해서다. 세계식량체계의 원만한 운용을 위해서는 세계식량체계가 필요한 식량체계이며 기능적으로 작용한다는 인식이 공유되어야 한다. 즉 세계식량체계와 그것의 기능과 역할에 대해 식량체계의 참여자, 특히 먹을거리의 생산자와 소비자들로부터 의문이 제기되지 말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생산자와 소비자들이 세계식량체계를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여야 한다. 또 세계식량체계에서 생산, 공급, 소비되는 먹을거리가 문제가 없는 것으로 여겨야 한다.
2. 식품산업
세계식량체계의 주요 행위자의 하나는 식품산업이다. 식품산업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영업 활동을 하는 초국적기업과 국내 기업으로 구성되어 있다. 식품 산업은 가공, 유통, 서비스업으로 나누어진다. 세계식량체계가 확산되면서 식품가공기업, 식품유통업, 식품서비스업의 규모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또 특정기업들의 점유율도 높아지고 있다. 식품음료 가공업체중 상위 10위권 기업들은 1조 2,500만 달러 규모시장의 24%를 차지하고, 식품유통업체 상위 10위권 기업들이 3조 5천만 달러 시장의 24%를 차지한다(파렐, 리즈. 유지훈 옮김.2008:154-158). 전 세계를 영업대상으로 하는 30여 식품유통업체가 2003년 기준 전 세계 식료품 판매액의 1/3을 점유하고 있다(Dawson, et al. 1998: 161). 이를 반영하여 푸드달러(food dollar)에서 식품유통업이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핼웨일, 김종덕 외 옮김). 식품산업이 먹을거리에 대한 탈정치화를 필요로 하는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식품산업의 고객인 소비자들이 식품 기업들의 본질을 알지 못하도록 하기 위해서다. 식품을 공급하는 식품기업은 건강관련 기관도 사회복지 기관도 아니다(폴란, 마이클. 조윤정 옮김. 2009). 식품기업의 목표는 농산물의 영양 가치나 공동체의 건강이 아니라 이윤이다(Riches. 1999b: 205). 식품을 통한 이윤 추구가 회사의 존재 이유이며, 최고경영자의 경영목표이다. 식품생산과 유통에서 소비자의 건강, 복지, 지속가능성은 부차적이다. 식품기업의 이러한 본질이 소비자들에게 알려지면, 식품기업의 경영이나 마케팅에 문제가 될 수 있다. 식품산업이 공급하는 제품에 대한 신뢰가 저하되고, 식품기업에 대한 불신이 커질 수 있다.
둘째, 식품기업이 자신의 정체를 숨기기 위해서다. 기업들은 숨길 것이 많은 조직중의 하나이다(닌, 부르스티 지음. 안철환 옮김, 2004). 기업정보가 알려지면 경영에 어려움을 겪게 될 것으로 판단하여, 다국적 식품기업은 심지어는 내부자료도 공개하지 않는다. 때문에 기업의 문제점이 잘 드러나지 않아 연구자나 언론 등에서 문제점을 밝히기가 어렵게 되어 있다.
셋째, 정부나 소비자들이 식품산업의 집적과 집중을 문제 삼지 못하게 하기 위해서다. 식품산업은 보다 많은 이윤을 얻기 위해 원료부터 완제품, 수송, 유통시장까지 수직적으로 지배하는 체제를 발전시켜왔다. 인수 합병 등을 통해 식량체계에서 식품기업집단이 차지하는 비중을 키워왔다(Starmer and Anderson. 2008). 또 각각의 부문에서 집중도를 높여왔다(Hendrickson and Heffernan. 2005). 집중도가 높으면, 규모의 경제의 이점을 누릴 수 있고, 정부의 지원을 더 받을 수 있으며, 그 부문에서 독점성격이 강해 보다 많은 이윤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Weiss, ed. 1989). 식품산업의 현안은 정부나 소비자들의 집적과 집중에 대한 견제에서 벗어나는 것이다. 식품산업이 견제를 적게 받으면서 독점 성격을 유지하려면, 이러한 집적과 집중을 문제 삼지 못하도록 사전에 예방조치가 필요하다.
넷째. 현대 먹을거리의 문제점을 숨기기 위해서다. 세계식량체계에서 식품산업이 공급하는 먹을거리의 대부분은 시간의 맥락을 잃은 패스트푸드이고, 또 공간의 맥락을 잃은 글로벌푸드이다(김종덕. 2009a). 이들 먹을거리의 대부분은 생산과 가공, 유통이 환경, 지역경제, 지역사회, 농민, 소비자에게 문제를 야기한다. 식품산업은 이러한 문제를 야기하는 먹을거리의 생산, 가공, 유통, 서비스 등을 통해 이윤을 얻는다. 소비자들이 식품산업이 공급하는 먹을거리의 문제를 알아 문제제기를 하거나, 또 구매를 적게 하면, 식품산업의 영업에 큰 영향을 받게 된다. 이러한 문제에 직면하기 전에 식품산업은 소비자들이 현대 먹을거리의 문제점에 관심을 갖지 않도록 조치를 한다(Nestle. 2002). 또 언론, 시민단체, 식품의 피해자들이 식품에 문제제기를 못하게 하거나 하더라도 최소한으로 하도록 하고자 한다.
다섯째, 세계식량체계하에서 유통되는 먹을거리 자체가 정치적인 아젠더가 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현대 먹을거리의 심각성이 문제가 되고, 그것이 정치적으로 다루어지면 질수록 세계식량체계의 대안에 관심이 모아질 것이고, 또 식품산업을 규제하는 틀이 강화될 수 있다. 이러한 변화는 세계식량체계와 식품산업의 발전에 걸림돌이 된다. 따라서 세계식량체계의 주요 행위자인 식품산업은 전략적 차원에서 먹을거리에 대해 문제제기를 하지 못하도록 사전 대응이 필요하다.
III. 먹을거리 탈정치화의 실제
1. 세계식량체계와 먹을거리 탈정치화
먹을거리를 정치적인 논의 대상에서 제외시키고, 대상이 정치적인 관심사가 되지 않도록 사전에 예방하는 먹을거리의 탈정치화는 여러 수준에서 일어난다. 여기서는 현재의 지배적인 식량체계인 세계식량체계에서 이루어지는 먹을거리 탈정치화를 살펴본다.
우선 세계식량체계의 지배가 먹을거리 탈정치화를 가져온다(김종덕. 2009a). 세계 식량 체계가 지배적인 식량체계로서 실질적인 영향을 미치게 되면서, 사람들 대부분이 세계식량체계에 익숙해져 있다. 이들은 세계식량체계의 존재나 필요성을 인정하고, 문제를 제기하더라도 다만 지엽적인 사항을 문제 삼는데 그친다. 예를 들면, 세계식량체계로 인한 식품안전 문제 등을 문제시하지 않고, 학교 급식현장에서 발생하는 식중독 등에 관심을 기울인다. 이처럼 세계식량체계의 지배 자체가 사람들의 먹을거리에 대한 성찰을 가로막는다.
둘째, 세계식량체계에서 먹을거리의 생산자와 소비자 분리가 먹을거리의 탈정치화에 작용한다. 세계식량체계에서 생산자와 소비자는 공간적으로, 사회적으로 멀리 떨어져 있어, 소비자는 음식과 영양의 원천에 접근을 할 수 없다(Riches. 1999a). 생산자가 소비자와 교류와 피드백이 거의 가능하지 않다(Sundkvist. 2005). 생산자는 먹을거리와 관련된 소비자의 고충을 모르고, 소비자는 먹을거리의 생산자, 생산과정, 생산방식, 생산자의 고충을 알지 못한다. 생산자와 소비자의 단절은 또 소비자와 생산자가 푸드 공동체를 이루는 것을 막는다. 그리하여 소비자가 먹을거리에 영향을 미칠 수 없고, 단순한 식품 소비자 수준에 머물게 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소비자는 경제적 자기이익에 기초하여 행동한다(Lyson and Green. 1999). 소비자의 생산자에 대한 지원과 배려가 없어진다. 세계식량체계에서 생산자와 소비자의 분리는 생산자와 소비자 각각을 고립시켜, 정치력을 사용할 수 없게 하며, 이들이 세계식량체계의 주요행위자의 지배를 받게 한다(김종덕. 2009a). 생산자의 생존권에 대한 주장, 소비자의 식량권에 대한 주장을 어렵게 만든다. 먹을거리의 탈정치화는 세계식량체계의 주요 행위자가 먹을거리의 생산자와 소비자들을 분할 지배하는데 이롭게 작용한다.
셋째, 세계식량체계에서 먹을거리의 상품화가 먹을거리의 탈정치화를 가져온다(김종덕. 2009a). 먹을거리는 사람의 생존과 직결되며, 사회존속에 필수품이다. 농업이 시작된 이래 먹을거리는 문화와 사회체계와 기본적으로 연결되었다. 하지만 산업형 농업이 자리하면서 먹을거리는 상품(commodity)이 되었다(Pretty. 2002). 먹을거리는 섭취되어 사람의 일부가 되기 때문에 다른 상품과는 다른 친밀한 상품(intimate commodity)이다(Winson. 1993). 하지만 점차 시장에서 다른 상품과 같은 것이 되었다. 이렇게 되는 데는 영양학자들의 현대먹을거리에 대한 영양학적 접근이 기여했다. 이들이 먹을거리에서 지역맥락, 문화 맥락 등을 제거했기 때문이다(폴란, 마이클. 조윤정 옮김. 2009). 먹을거리가 상품이 되면, 그것의 생산, 수송, 유통, 소비는 다른 상품과 마찬가지로 경제의 법칙의 영향을 받는다(Winson. 1993). 또 먹을거리가 사적 영역에서 다루어진다(보베, 조제 외. 홍세화 옮김. 2002). 이렇게 되면 국가는 단지 먹을거리와 관련하여 시장 실패 영역에 최소한도로 개입한다. 국가는 식량보장 정책을 외면하고, 국민의 기본적 인권인 식량권에 대한 의무 등을 경시하게 된다. 또 소비자들의 먹을거리의 구매가 소비문화가 되어 정치의 문제를 문화의 문제로 환원해 버리는 정치의 문화화 현상이 나타나게 된다. 그리하여 특정한 대상을 둘러싼 역사와 정치경제적·국제적 관계에 대한 분석을 하지 못하게 한다(브라운, 웬디. 이승철 옮김. 2010: 48). 먹을거리가 상품이 되면서 사람들은 농촌 경관, 자연과의 연결성이 끊긴다. 자연과 토지에 대한 스토리를 잃어버린다(Pretty. 2002).
넷째, 세계식량체계가 공급하는 저렴한 가격의 먹을거리를 들 수 있다. 세계식량체계는 그것의 장점으로 싼 가격의 먹을거리의 공급을 내세운다(김종덕. 2009a). 세계식량체계에서는 가급적 생산 원가를 줄이기 위해 먹을거리의 생산자 및 고용 인부에게 저임금 지급, 규모와 효율성을 위한 단작재배, 인건비를 줄이기 위한 제초제 사용, 수확량을 늘리기 위한 화학비료의 사용, 대규모 생산과 효율적 생산을 위한 공장형 사육 등이 도입된다. 또 먹을거리 생산 및 운송과 관련하여 공적자금의 지원도 받는다. 한편 소비자들도 저렴한 가격의 식품을 원한다. 1990년대 유럽연합이 15개국 14,331명을 대상으로 한 대규모 연구에 의하면, 식품선택에 영향을 미치는 주요요인은 질, 가격, 맛이며 건강은 그 다음 우선순위였다(랭, 팀 외. 박중곤 옮김. 2007:205-206). 저가 음식의 대규모 공세는 사람들로 하여금 구매할 돈만 있으면 식량부족이나 기근에 이르지 않는다고 생각하게 한다. 실제로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싼 식량 덕분에 굶주림 없는 식생활을 한다. 사람들은 보통 식량을 구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때 음식의 필요성이나 소중함을 더 느낀다. 또 음식의 확보와 관련된 지식을 더 필요로 한다. 음식이 비교적 저렴한 가격으로 시장에서 쉽게 구입이 가능해진 것 자체가 음식의 중요성을 느끼지 못하게 하고, 또 음식에 대한 성찰을 가로막는다.
다섯째, 세계식량체계에서 소비자들의 식생활을 들 수 있다(Tansey and Worsley. 2000).소비자들의 식사에서 패스트푸드, 인스턴트식품이 차지하는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또 정기적인 가족식사 횟수가 줄어드는 가운데 외식 및 나 홀로 식사와 간식 횟수가 늘어나고 있다 이러한 식사 추세는 인스턴트식품과 패스트푸드의 확산에 힘입었다. 또 가정 주부중 경제활동을 하는 인구비중이 늘어난 것과 관련이 있다(Nestle. 2002). 사람들이 패스트푸드, 인스턴트식품을 더 애용하면서 이제 식품회사들이 사람들의 음식을 준비하게 되었다. 심지어 가정에서 상추 등을 씻을 필요가 없어지고 있다. 이렇게 되면서 가정이나 학교에서 조리 및 음식 교육이 줄어들었다. 어머니들마저 조리법을 알지 못하고, 식생활에서 조리법이 필요하지 않기 때문이다. 학교에서 행해지는 음식 교육도 간단한 조리 기술이나 영양교육에 그치고, 현대 먹을거리를 전체적인 관점에서 다루지 않고 있다. 그리하여 소비자들이 현대 먹을거리의 본질이나 근본적 문제와 관련된 지식을 접할 기회를 갖지 못한다. 소비자들은 음식문맹자가 되면서 패스트푸드, 인스턴트식품을 애용하고, 그러한 식품이외에 대안을 갖지 못하면서, 식품에 관심을 기울이지 않게 된다.
이상에서 살펴본 세계식량체계의 구조와 특성과 관련된 먹을거리의 탈정치화는 의도적이기 보다는 주어진 조건 그 자체에서 기인한다. 따라서 그러한 조건이 있는 한 세계식량체계에서 먹을거리의 탈정치화는 계속해서 이루어진다고 볼 수 있다.
2. 식품산업의 먹을거리 탈정치화
세계식량체계의 주요 행위자인 식품기업은 다양한 수단을 이용해 먹을거리를 탈정치화하고 있다. 첫째, 식품 기업은 광고를 활용한다. 텔레비전이나 잡지뿐만 아니라 교과서, 인터넷 웹사이트, 놀이터, 공원 등도 광고매체가 된다(파렐, 리즈. 유지훈 옮김. 2008:380-381). 식품기업들은 막대한 광고비를 들여 소비자들이 글로벌 푸드에 익숙하게 만든다(Nestle. 2002). 특히 광고는 성인을 대상으로 한 것보다는 아이들을 대상으로 한 것이 더 많고, 식품을 보면, 건강식품에 대한 광고 보다 정크푸드에 대한 광고가 더 많다(파렐, 리즈. 유지훈 옮김.2008:380). 아동들을 대상으로 하는 광고는 텔레비전 광고와 상표 병용(co-branding) 전략을 사용한다. 예컨대 미닛 메이드(Minute Maid)와 코카콜라는 하계독서프로그램을 지원하여 아동들의 관심을 이끈다(파렐, 리즈. 유지훈 옮김. 2008). 베리(베리, 웬델. 정승진 옮김. 2002)는 식품기업의 광고가 소비자들에게 상품선택을 위한 정보제공 보다는 먹을거리에 대한 혼란을 야기한다고 지적한다. 식품기업이 제공하는 광고 정보는 소비자들이 대안 먹을거리를 생각하지 못하도록 하는데 작용한다.
둘째 식품기업들은 기업홍보를 이용한다. 이들은 기업홍보를 통해 자신들의 이미지를 관리하고, 이를 통해 자사의 제품에도 좋은 이미지를 갖게 만들고자 한다. 맥도날드사는 자신에 대한 홍보로 다음을 내세우고 있다(http://www.mcdonalds.co.kr/mcd/csr.asp). ① 어린이와 가족, 사람을 생각하는 기업: 어린이를 위한 모금, 장애인 고령자 대상 매장 직원 고용, 우수 파트타이머 장학금 지급, ② 환경을 생각하는 기업: 2003년 1월부터 환경부와 “1회 용품 줄이기 자발적 협약” 맺고 환경보전사업 실시, ③ 국제연합이 정한 세계 어린이날(11월 20일) 전 세계 119개 국가에서 모금한 돈을 필요한 어린이들에게 지원, ④ 로날드 맥도날드 하우스 자선 재단을 통해 전 세계 25개국 243개 로날드 맥도날드 하우스에서 장기 치료 어린이들에게 쉼터 제공 등이다 이러한 홍보는 맥도날드사의 패스트푸드가 소아 비만의 원인이라는 사실, 맥도날드사가 환경 피해를 야기하면서 식재료를 공급한다는 점, 맥도날드사가 저임금에 노조 등을 허용하지 않는 사업장이라는 사실을 숨기는데 기여한다. 맥도날드사의 홍보에 접한 소비자들은 맥도날드사의 회사 이미지를 제품의 이미지와 연결시키게 된다.
셋째, 식품기업이 도입하는 다양한 마케팅 전략이다. 식품기업은 제품을 많이 판매하여 이윤을 많이 남기고자 끊임없이 신제품을 만들고, 브랜드를 개발한다(Tansey and Worsley. 2000: Nestle. 2002). 식품기업은 또 형태와 포장을 달리하여 기존의 제품과 달라 보이는 제품을 신제품으로 공급한다. 미국에서는 매년 17,000여개의 새로운 식품제품이 선보인다(폴란, 마이클. 조윤정 옮김. 2009). 그리하여 소비자가 음식을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음식이 소비자를 선택한다고 할 수 있을 정도다(파렐, 리즈. 유지훈 옮김. 2008). 식품 제품의 홍수 속에 소비자들은 사실 비슷한 식품중에서 선택하는 것에 불과한데도 자신이 선택하는 것으로 생각한다(민츠, 시드니. 조병준 역. 1998). 이러한 소비자들은 식품기업이 제공하는 식품을 선호하며, 이에 대해 의심하지 않게 된다. 식품기업은 미래의 소비자인 아동들을 대상으로 판매촉진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예컨대 영국 맥도날드는 학교성적과 맥도날드 제품을 포상으로 주는 A+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리처, 조지. 김종덕 옮김. 2003). 이 프로그램의 수혜자들은 맥도날드의 지속적인 고객이 될 가능성이 높다. 이들은 맥도날드가 제공하는 음식을 의심하지 않게 된다.
넷째. 식품기업은 관련분야 전문가를 이용한다(김종덕. 2009a). 식품기업은 관련분야의 학생들에게는 장학금, 연구자들에게는 연구비 등을 지원하여 관계를 맺는다. 이들이 전문가가 되면, 식품산업은 이해관계를 위해 이들을 이용한다. 전문가들은 식품산업과 그 제품에 권위를 부여한다. 전문가가 의견을 개진하면 문제의 먹을거리도 문제가 없는 것이 된다(Rampton and Stauber. 2002). 대부분의 소비자들은 전문가들의 의견을 받아들인다. 식품기업은 전문가의 연구결과를 이용하기도 한다. 식품업체가 지원한 영양학 연구는 해당식품업체의 제품에 유리한 쪽으로 연구결과가 발표될 가능성이 큰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Nestle. 2002; 폴란, 마이클. 조윤정 옮김. 2009). 식품기업은 또 자신들이 만든 연구소에 고용한 전문가들을 이용하여 연구하도록 한다. 이 경우 기업에 유리한 연구결과만 발표된다. 전문가들의 도움에 힘입어 식품기업은 소비자들의 문제제기를 미리 막을 수 있다.
다섯째, 식품 산업은 그들의 영업 방침이나 제품을 문제 삼는 소비자나 소비자 단체에 대해“공중 참여에 대응한 전략적 법률 소송”(Strategic Law Against Popular Participation: SLAPP)을 통해 통제한다. 식품산업이 SLAPP에 이용하는 법은 명예훼손법, 먹을거리비방법(food disparagement law) 등이다. 명예훼손법을 이용한 소송으로 영국 맥도날드사가 런던그린피스(London Greenpeace)의 실무자를 대상으로 한 소송을 들 수 있다(김종덕. 2000). 런던그린피스가 맥도날드의 실상과 관련하여 비판하는 전단을 만들어 시민들을 대상으로 배포하자 영국맥도날드사는 런던그린피스 실무자 5명을 명예훼손법으로 고소했다. 영국에서는 이 소송 이전에 명예훼손의 대상은 사람에 국한되었는데, 이 소송에서는 명예훼손의 대상을 확대하여 회사에도 적용했다. 이 소송은 런던 그린피스가 영국 맥도날드사를 비판한 데 따른 것이었지만, 영국맥도날드사가 이 소송에서 노린 것은 다른 시민단체가 영국 맥도날드사를 비판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었다. 실제로 영국맥도날드사는 고소한 런던그린피스 실무자 5명중 영국맥도날드사에 사과한 3명에게 고소를 취하했다. 미국의 먹을거리비방법은 식품산업계가 식품을 문제시삼고, 비판하는 사람들을 제재하기 위해 만든 법으로 미국의 14개 주에 제정되어 있고, 콜로라도 주는 형법이다(김종덕. 2005). 이 법에 의한 소송으로 미국의 축산업자들이 오프라 윈프리(Ophra Winfrey)를 고소한 사건이 유명하다. 오프라 윈프리가 라디오 쇼에서 미국의 소가 광우병에서 자유롭지 않다는 이야기를 듣고 쇠고기를 먹지 말아야하겠다고 말한 후 시장에서 쇠고기 가격이 떨어지자 축산업자들이 이 법으로 소송을 제기했다. 이 소송으로 인해 오프라 윈프리는 3년 이상 재판을 받아야만 했고, 결국 재판에 승리했다. 하지만 재판의 승리에 관계없이 오프라 윈프리 소송은 일반 사람들이 먹을거리를 비판했을 때 직면할 수 있는 위험을 널리 알리는 결과를 낳았다. 먹을거리비방법은 그 존재만으로도 일반 국민들이나 시민단체가 먹을거리 문제에 침묵하도록 하는 결과를 가져오는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김종덕. 2005).
여섯째, 식품기업은 식품표시제도를 활용한다. 식품표시제도는 식품에 관한 각종 정보, 즉 원재료명, 내용량, 제조일자 및 유통기한, 영양성분, 주의사항 등에 관한 정보를 제품의 포장이나 용기에 표시토록 함으로써 소매자에게 구매정보를 제공하여 식품선택에 도움을 주고자 마련되었다(http://www.foodnara.go.kr/). 하지만 식품표시제도의 이러한 도입취지와는 달리 현실에서 이 제도는 왜곡되어 활용되고 있다. 많은 식품기업들이 너무 적은 글씨로 표시하여, 소비자들의 정보에 대한 접근을 어렵게 하고 있다. 또 일부 식품기업들은 식품표시를 이용해 식품정보를 숨기기도 한다. 예를 들면, 식품에 들어있는 방부제를 소르빈산칼륨, 소르빈산나트륨, 안식향산나트륨, 안식향산칼륨, 안식향산칼슘, 파라옥시안식향산메틸, 파라옥시안식향산프로필, 프로피온산나트륨, 프로피온산칼슘 등으로 표시한다. 식품기업들은 또 식품표시기준을 적절하게 활용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미국의 식품의약청(FDA)이 정한 무지방 표시(fat free)는 1회 섭취분에 지방 0.6그램 이하를 의미한다(Tansey and Worsley. 2000). 식품회사들은 이를 이용하여 지방이 들어 있는데도 무지방으로 표시하여 소비자를 유혹하지만, 대부분은 소비자들은 이러한 사실을 모르고 있다.
일곱째, 식품산업은 정치인에 영향력을 행사하여 특정 식품정책이 수립, 실행되도록 하고, 식품이 문제가 되는 것을 사전에 예방하고 있다. 식품산업은 이를 위해 정치자금과 로비 등을 활용한다. 미국에서 식품업계의 4대 기업이 제공한 정치자금은 전체의 50%를 크게 상회한다(파렐, 리즈. 유지훈 옮김. 2008:166). 정치인들은 식품산업에 유리한 법이나 정책으로 보상한다. 미국기업의 해외진출에 도움을 주는 "아프리카 성장 및 기회촉진법"(Wynberg. 2000)은 로비의 산물로 볼 수 있다. 또 미국민 수십만 명이 유전자 조작 식품의 의무표시제를 청원했음에도 미국 식품의약청(FDA)이 그것을 도입하지 않는 것도 로비가 작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식품산업은 또 식품 규제기관에도 영향력을 행사하여 이용한다. 회전문 인사를 통해 식품산업의 회사 중역이 규제기관의 중견간부로 가고, 또 규제기관의 고위공무원이 식품산업의 중역으로 중용된다(Nestle, 2002). 이와 같은 방식으로 식품산업이 정치인, 규제기관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틀을 가지고 있게 되면, 식품산업은 식품과 관련된 문제가 발생할 때 효과적으로 대응할 수 있다. 식품산업은 나아가 식품과 관련된 체계를 만드는 데까지 영향력을 행사한다(Nestle. 2002). 이러한 체계에는 영양피라미드, 식품관련정책, 식품산업에 대한 규제, 음식교육 등이 포함되어 있다. 이러한 체계는 식품산업의 영향 하에 만들어지므로, 식품산업의 이해관계와 합치되는 내용으로 되어 있다. 예를 들면, 음식교육에서는 포드주의적 먹을거리 생산에 대한 의문 등 식량체계의 구조적인 문제가 아니라 지엽적인 문제, 예컨대 식품선택, 식품안전, 식품 위생 문제 등을 다루게 된다. 때문에 이러한 음식교육을 받더라도 소비자, 또는 미래의 소비자들은 현대의 먹을거리, 먹을거리 문제의 본질, 식품산업의 정체에 대해 잘 알지 못하게 된다.
이처럼 식품산업은 여러 수단과 자원을 이용하여 자신들의 긍정적 이미지를 확대하고, 자신들이 생산하여 공급한 식품이 문제가 되는 것을 막아 식품이 정치적 쟁점이 되는 것을 피하고 있다. 세계식량체계에서 이루어지는 먹을거리의 탈정치화와는 달리 식품산업의 먹을거리 탈정치화는 특정한 계획에 의한 과정이라는 의미(브라운, 웬디. 이승철 옮김. 2010: 40)에서 의도된 것으로 볼 수 있다.
IV. 먹을거리 탈정치화에 대한 대응
1. 대응의 필요성
현대 먹을거리가 많은 문제와 부작용을 낳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먹을거리의 탈정치화 등의 도움으로 인해 실제로 현대 먹을거리의 생산, 가공, 유통, 소비를 틀 지우는 세계식량체계는 여전히 지배적 위상을 갖고 있다. 다음과 같은 이유에서 먹을거리의 탈정치화에 대한 대응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첫째, 먹을거리의 탈정치화로 야기되는 생산자와 소비자의 피해를 줄이기 위해서다. 먹을거리의 탈정치화는 세계식량체계를 강화하여 생산자와 소비자에게 피해를 가져온다(김종덕. 2009a). 세계식량체계에 편입된 생산자는 거대한 식량체계의 일부가 되어 영농에 필요한 기자재나 투입재를 외부에 전적으로 의존한다. 또 종자 파종부터 생산물 판매에 이르기까지 자율적인 결정을 거의 하지 못한다. 영농에서 차지하는 생산자의 비중이 줄어들면서 먹을거리 판매대금에서 생산자인 농민에게 돌아가는 푸드달러 농민 몫도 크게 줄어들게 되었다(핼웨일, 브라이언. 김종덕 외 옮김. 2006). 영농을 통한 재생산이 가능하지 않자 선진국이나 후진국 모두에서 많은 농민들이 빈농이 되거나 영농을 그만두는 일이 일어나고 있다. 먹을거리 탈정치화는 소비자들을 음식문맹자로 만든다(김종덕. 2009a). 소비자들이 먹을거리에 대한 지식을 갖지 못하게 되고, 먹을거리의 문제점을 알지 못하게 되며, 문제의 먹을거리를 공급하는 세계식량체계나 식품산업의 본질에 대해서도 알지 못하게 되기 때문이다. 소비자들은 세계식량체계가 공급하는 문제의 먹을거리를 섭취하게 되고, 그로 인해 비만이나 당뇨병 등에 시달리게 된다. 특히 소득에서 먹을거리 관련 비용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고, 또 시간적 여유가 없는 하층 계급이 저가의 패스트푸드를 많이 섭취하기 때문에 상층계급보다 더 고통을 겪는다(파렐, 리즈. 유지훈 옮김. 2008:383).
둘째, 현대 먹을거리의 문제점을 개선하고 나아가 대안 식량체계를 모색하기 위해서다. 세계식량체계가 공급하는 먹을거리는 여러 점에서 문제가 있다(김종덕. 2009a). 먹을거리의 생산과정에서 토양의 사막화를 가져오고, 생물다양성을 줄이며, 공장형 사육은 수질을 오염시킨다. 즉 생산과정이 지속적이지 않다. 식품안전도 문제이다. 식품안전성이 검증되지 않은 유전자조작 농산물을 생산하고, 제초비용을 줄이고자 농약을 사용하여 생산물에 농약이 잔류하게 하고, 보관과 장거리 수송과정에서 방부제를 사용한다. 가공식품에도 각종 첨가물을 넣어 식품안전성을 위협하고 있다. 산업형 농업에 의한 성장기간의 단축, 제철에 관계없는 사철농업의 실시는 제철 먹을거리를 위협하고 있다. 글로벌푸드의 유입은 이전에 지역음식이 잘 남아 있던 곳에서도 지역음식이 사라지게 하고 있다. 먹을거리 탈정치화는 현대의 먹을거리의 문제점을 숨기는데 기여한다. 이러한 상황에서 먹을거리 탈정치화에 대한 대응은 세계식량체계에서 생산, 공급되는 먹을거리의 문제를 완화하는데 기여할 것이다. 또 이러한 대응은 세계식량체계의 문제점을 깨닫고, 그러한 문제점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대안 식량체계가 필요하다는 점을 인식하는데 기여한다.
셋째, 먹을거리의 공공성을 강화하기 위해서다. 기본적 인권인 식량권에 의하면, 누구든지 영양과 안전에 적합하고, 문화적인 기준에도 맞는 먹을거리에 대한 접근이 보장되어야 한다. 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의 보호에 책임을 지고 있는 국가는 개인의 식량권을 존중, 보호, 충족시켜야 하는 의무를 지고 있다(김종덕·감정기. 2007). 하지만 세계식량체계에서는 먹을거리가 상품이 되어 시장에서 거래되면서 식량권이 충족되지 않고 있다. 먹을거리의 탈정치화로 인해 생산자와 소비자가 식량권을 모르고, 국가도 국민들의 식량권 요구가 약한 가운데, 먹을거리는 시장에서 유통되는 것이 정상적이라는 이유를 들어 식량권에 대한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있다. 먹을거리의 탈정치화에 대한 대응을 통해 국민들이 식량권을 인식하고, 그것을 국가에 강력하게 요청하면, 국가가 먹을거리에 적극적으로 개입할 가능성이 크다. 또 현재 경시하고 있는 식량주권도 국가가 중요하게 여길 것이다.
넷째, 지역 먹을거리, 즉 로컬푸드를 복원하고, 지역사회를 활성화하기 위해서다. 세계식량체계가 자리하기 이전에는 사람들은 지역의 기후, 환경, 문화, 토양 등에 기초한 농업에서 생산된 생산물을 먹어 왔다. 수천 년에 걸쳐 지역의 다양한 먹을거리 생산과 그것에 토대한 음식문화를 발전시켜왔다. 하지만 세계식량체계가 확산되면서 세계의 대부분의 지역에서 지역종자, 지역 영농, 지역음식과 지역음식문화의 대부분이 사라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전에 선조들이 먹던 음식과 전혀 다른 음식, 어디에서 누가 어떤 방식으로 생산했는지 모르는 음식을 먹게 되었다. 먹을거리의 탈정치화로 인해 이러한 변화의 심각성이 숨기어지고 있고, 그 결과 사람들은 변화의 심각성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 먹을거리 탈정치화에 대한 대응은 사라진 지역 먹을거리를 복원하고, 그것에 기초하여 지역사회를 활성화하는데 기여한다. 그러한 성과는 슬로푸드 운동본부가 추진하고 있는 테라마드레(Terra Madre)에서 입증되고 있다(페트리니, 카를로. 김종덕 외 옮김. 2008).
2. 대응의 실제
먹을거리의 탈정치화에 대한 대응은 대응주체를 기준으로 개인의 대응과 집단의 대응으로 나눌 수 있다. 전자는 연구자, 언론인 등 개인이 먹을거리 탈정치화에 대해 문제삼는 것이다. 후자는 시민단체나 네트워크 집단 등이 먹을거리 탈정치화를 문제삼는 것을 말한다. 또 대응의 대상을 기준으로 먹을거리 탈정치화 자체에 대한 대응과 먹을거리 탈정치화로 인해 야기된 결과를 극복하고자 하는 대응으로 나눌 수 있다. 여기서는 집단의 대응, 또 먹을거리 탈정치화로 인해 야기된 결과를 극복하고자 하는 대응에 초점을 맞추고자 한다. 집단의 차원에서 먹을거리 탈정치화로 인해 야기된 결과를 극복하고자 하는 대응으로 대안식량체계의 구축과 관련된 움직임, 식량주권, 식량권 확보와 관련된 움직임, 음식시민(food citizen)의 양성과 관련된 움직임을 주목할 수 있다.
첫째 세계식량체계의 대안으로 제시된 지역식량체계의 구축을 위한 움직임으로 로컬푸드운동, 슬로푸드운동이 있다. 세계식량체계와는 달리 지역식량체계는 먹을거리 생산자와 소비자가 연결되어 있고, 생산 및 유통되는 먹을거리도 상품 이상의 의미를 가지며, 생산자가 소비자의 식품 안전을 염두에 두며, 소비자는 생산자의 지속적인 영농에 관심을 기울인다(김종덕. 2009a). 로컬푸드운동은 쿠바처럼 국가가 주도하기도 하고, 캐나다의 벤쿠버나 토론토에서 볼 수 있듯이 시당국이 주도하기도 한다. 또 생산자 및 소비자 단체 등을 포함한 시민단체 등이 주도하기도 한다. 로컬푸드운동이 추구하는 지역식량체계의 모델은 농민장터, 공동체지원농업, 급식, 직거래, 지역식량정책협의회 등이다. 슬로푸드운동도 세계식량체계의 대안을 추구한다. 1986년에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이 운동은 1989년 슬로푸드 선언문을 공표하면서 국제적인 운동이 되었다. 이 운동의 본부는 이탈리아 브라에 있으며, 2009년 현재 150여 개국의 10만여 명의 회원, 1,300개의 지부(Convivium)로 구성되어 있다(http//www.slowfood.com). 이 운동은 세계화된 농업에 반대하고, 기후, 토양, 문화에 기초한 지역농업을 중시한다(김종덕. 2002). 지역의 재래종을 비롯한 다양한 생물다양성을 유지하는 방법을 모색하고, 이를 위해 미각의 방주 프로젝트를 실시하고 있다(http//www.slowfood.com). 지역농산물로 만든 음식과 공예품을 중시하고, 이를 통한 지역경제에 기여하는 프레시디아(Presidia), 지역음식과 음식문화의 향상을 위한 미각교육 프로그램의 개발과 운영, 생산자와 소비자들을 연결할 수 있는 테라마드레를 비롯한 다양한 행사들을 열고 있다. 이 운동에서는 먹을거리 소비자를 공동생산자(coproducer)로 파악하고, 먹을거리 생산자와 공동생산자로 구성된 먹을거리 공동체(food community)를 지향하고 있다(페트리니, 카를로. 김종덕 외 옮김. 2008).
둘째, 식량주권, 식량권과 관련된 움직임이 있다. 식량주권 개념은 세계 농민단체 연합인 비아 캄페시나(via Compesina)가 처음 고안했다. 이 단체는 1993년에 생겨 지금은 56개국에 150여개의 단체가 가입되어 있고, 농민 국제협력주의의 상징으로 발전했다. 이 단체는 식량의 성격상 모든 나라가 자국의 식량정책을 독자적으로 결정할 권리를 가져야 하며, 식량의 안정적인 공급을 통한 국정의 안정화는 주권국가의 의무이자 권리라고 주장한다. 1996년 세계식량정상회의(World Food Summit)에서 식량주권은 기존 식량과 농업의 틀에 대한 대안적 패러다임으로 제기되었다(로셋, 피터 엠. 김영배 옮김. 2008). 비아 캄페시나와 식량주권 네트워크의 공동성명서인 “식량주권 선언문”에 의하면 식량주권에는 “국내에서 생산되는 농산품을 보호하고 규제할 수 있는 권리, 지속가능한 발전을 위한 교역의 권리, 자급자족 여부를 결정할 수 있는 권리, 자국시장에서 덤핑판매를 제한할 수 있는 권리, 어업공동체가 수산물을 우선적으로 이용할 수 있는 권리 등이 포함된다”(로셋, 피터 엠. 김영배 옮김.2008). 한편 핌베르트(Pimbert. 2010)는 식량주권이 대안적 패러다임으로 형평성, 사회정의, 생태적 지속가능성에 기초한 민주적이고 다양한 자율적 식량체계를 창출하고자 하는 "전환적 과정(transformative process)"으로 보고 있다. 비아 캄페시나는 식량주권을 가지려면, 개별 국가는 지역의 욕구를 충족시키는 영농이 이루어져야 하며, 그것은 소규모 가족농을 통해 달성할 수 있다고 본다. 핌베르트는 식량주권과 관련된 성과를 보여주는 사례로 말리(Mali)를 들고 있다(Pimbert. 2010). 말리 정부는 식량주권의 실행을 포함한 새로운 농업준거법(agricultural framework law)의 제정을 위해 농민들과 1년 이상 토론한 후 농촌과 도시의 생활개선을 위한 우선순위로 식량주권에 두었다. 말리 정부와 농민조직들은 식량주권틀을 실행하기 위한 방안을 논의하고 있다.
식량권은 국제연합이 공포한 기본인권중의 하나로 1976년 발효된 UN 경제·문화·사회적 권리에 대한 국제 규약에 조인한 회원국들은 식량권을 이행할 의무를 진다(김종덕·감정기. 2007).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 의무를 소홀히 하고 있지만 브라질 벨로오리존찌(Belo Horizonte) 시는 식량권에 대한 의무를 1993년부터 실천하고 있다(김종덕. 2009a). 벨로오리존찌 시정부는 시민들의 기아와 영양실조를 시장실패로 파악했다(Rocha. 2007). 시민들은 기본권으로 식량권을 가지며, 따라서 시장실패의 다른 영역, 즉 건강이나 교육, 복지 등과 마찬가지로 기아와 영양실조에 대한 시의 적극적 개입과 관여를 시의 의무로 보았다. 벨로오리존찌 시정부는 시민들의 식량권에 대한 지자체의 의무를 이행하기 위해 시조달국(Secretaria Municipal de Abastecimento)을 설치하고,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지속적으로 식량보장 프로그램과 정책을 실시해왔다. 벨로오리존찌 시정부의 식량보장 프로그램은 예방을 강조하며, 지역사회의 발전과 관련하여 장기적으로 추진하고, 지역사회 자원의 구축 측면에서 기아와 영양실조의 문제를 다룬다. 전달체계도 시장을 활용하며, 자가 생산 및 지역먹을거리를 강조한다. 그리하여 지역농업을 지원하고, 농민에게 정당한 가격을 제공하는 차원의 정책을 실시한다(김종덕. 2009b). 벨로오리존찌 시 정부의 식량보장 프로그램에서는 식량을 시장에서 거래되는 상품이 아니라 인간이 마땅히 누려야 할 필요재로 보고 있다. 농산물 유통에서 중간상인을 배제하고, 생산자와 소비자를 직접 연결하여 생산자에게는 더 나은 수입을 얻게 하고, 소비자들은 저렴한 가격에 좋은 품질의 먹을거리를 살 수 있게 하고 있다.
셋째, 각성된 음식 소비자를 지칭하는 음식시민(food citizen)의 양성을 들 수 있다. 세계식량체계에서 먹을거리 탈정치화의 결과 대부분의 사람들이 음식을 중시하지 않고, 음식에 대해서 모르는 음식문맹자가 된다. 그리고 음식문맹자는 세계식량체계를 유지, 강화하는 데 일조하여 공범자(共犯者)가 된다. 음식문맹자와 달리 음식시민은 음식을 소중히 여기고, 음식에 감사하고, 음식에 대해 끊임없이 성찰한다(Wilkins. 2005). 또 식량권을 요구하고, 식량정책의 수립과 이행에 적극적으로 동참한다. 또 이들은 식량의 생산과정에 영향을 미치고, 생산과정에 동참하기도 한다. 음식시민을 양성하는 데 음식교육이 필요하다. 현실에서는 교육에 여러 미디어와 방식이 활용되고 있다. 그 중 일부를 보면, 현대 먹을거리의 문제를 폭로하는 각종 연구결과, 서적, 영화, 다큐멘터리, 대규모 시위, 체계적인 음식교육 프로그램 등이다. 레이첼 카슨의 <침묵의 봄>은 산업형 농업의 심각성을, 에릭 솔로셔의 책 <패스트푸드의 제국>과 모건 스펄록 감독의 영화 <수퍼 사이즈 미>등은 패스트푸드의 심각성을 환기시키는데 기여했다. 먹을거리와 관련된 대규모 시위, 예컨대 2008년도 우리나라 전역에서 일어난 미국산 쇠고기 수입 반대 촛불시위 등은 먹을거리 소비자의 의식을 바꾸는데 계기가 되기도 한다. 2008년 촛불시위에 대한 연구에 따르면, 촛불시위에 지속적으로 참여한 10대는 그렇지 않은 10대에 비해 시민적 주체화가 진행되었고(이해진. 2009), 또 이들은 먹을거리 문제에 대해 방어적 행동을 하는 것으로 나타났다(김철규・김선업. 2009). 음식교육에서 특히 조리기술의 습득이 중요한 것으로 지적되고 있다(Tansey and Worsley. 2000). 조리기술의 습득은 사람들로 하여금 패스트푸드나 인스턴트식품의 섭취가 아니라 음식에 보다 많은 선택권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V. 결론
현대 먹을거리의 생산, 가공, 유통, 소비를 담당하는 세계식량체계는 많은 취약점과 문제점을 가지고 있다. 하지만 먹을거리의 탈정치화로 인해 먹을거리에 대한 국가개입의 최소화, 생산자와 소비자들의 음식문맹에 힘입어 세계식량체계는 지배적인 식량체계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 세계식량체계의 주요 행위자, 특히 식품산업은 이러한 탈정치화를 통해 그들이 공급하는 먹을거리의 문제점을 숨기고, 국가의 규제를 적게 받으며, 시민단체나 개인 등의 문제제기 등을 피하면서 식품의 가공, 유통, 서비스를 통해 막대한 이윤을 누리고 있다. 반면에 세계식량체계에 편입되어 먹을거리 생산과 유통에서 자율성을 잃은 생산자들은 값싼 글로벌푸드가 유입되는 가운데 푸드달러의 저하 등으로 인해 영농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또 소비자들은 인근지역에 좋은 먹을거리가 생산되고 있음에도 먼 곳에서 생산되어 공급되는 잘 모르는 먹을거리를 먹게 된다. 또 푸드머니(food money)가 지역 외부로 유출되어 지역경제가 침체된다.
먹을거리 탈정치화를 통해 지속되는 세계식량체계를 통해 단기적으로 식량체계의 주요 행위자들은 이득을 보고, 생산자 및 소비자들은 손해를 보지만, 장기적으로 보면 모두가 피해자라 할 수 있다. 산업형 농업과 효율성에 기반을 둔 세계식량체계는 근본적으로 지속가능한 식량체계가 아니기 때문이다.
미래 세대에게도 좋을 먹을거리를 안정적으로 공급하려면, 지역의 자원과 필요에 기초한 지속가능한 지역식량체계가 자리해야 한다. 이러한 식량체계로의 전환을 위해 먹을거리의 탈정치화에서 벗어나 많은 사람들이 세계식량체계의 문제점과 취약점을 알아야 한다. 먹을거리의 탈정치화에 대한 대응 중에서 식량주권, 식량권 확보를 위한 움직임과 음식시민의 양성에 특히 관심을 가져야 한다. 세계식량체계가 주도하는 가운데 거의 모든 국가에서 식량주권이 상실되어 있고, 식량권도 기본적 인권으로 자리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또 많은 사람들이 음식문맹자임에도 불구하고, 음식시민의 양성에 기여하는 먹을거리 교육이 잘 시행되지 않고 있기 때문이다.
먹을거리 탈정치화에 대한 대응을 통해 먹을거리의 정치성이 복원되어, 먹을거리가 국가의 중심 정책으로 다루어지고, 사람들도 음식시민이 되어 먹을거리를 제일 중요한 것으로 여겨야 한다. 이렇게 될 때 제도적으로 먹을거리의 지속가능한 생산과 공급이 가능해지고, 사람들은 좋고(good), 깨끗하며(clean), 공정한(fair) 음식을 즐길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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