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헬Sahel의 전통농업 - 자이Zai
절망의 사헬
사헬이란 사하라사막과 아프리카 중부의 열대림 사이에 낀 반半건조지대인데, 1970년대부터 기근과 빈곤, 환경 파괴를 상징하는 대명사가 되었다. 1975년의 가뭄과 더 심각했던 1985년의 가뭄으로 대서양 연안의 모리타니Mautitania부터 내륙의 차드까지 기아에 허덕이며 10만 명 이상이 굶어 죽었다. 하지만 실제 사망자는 더 많았을 것이다. 대다수의 농민이 비가 오는 다른 지역으로 이주해야 했고, 특히 이런 현상은 사헬의 중심에 있는 부르키나파소의 중앙 지역인 야텡가주Yatenga州에서 두드러졌다.
“아무것도 남은 게 없고, 떠날 수조차 없는 사람만 남았습니다. 만약 이곳을 빠져나갈 수단만 있다면 누구라도 떠났을 겁니다.”
부르키나파소 출신의 개발전문가 마티유 웨드라오고Mathieu Ouédraogo는 말한다. 해수면 온도의 변화와 대기오염으로 구름 형성이 억제되고, 지구온난화 등으로 사헬이 황폐해진 원인에 대해서는 다양한 학설이 있다. 그러나 어떠한 원인이든 결과는 명백했다. 강렬한 햇빛과 무더위와 사납게 부는 바람 때문에 땅거죽은 돌처럼 딱딱하게 굳었고, 식물의 뿌리조차 뻗지 못하며 빗물도 스며들지 않는 불모의 땅이 되어 버렸다.
사헬 지역.
1950년대까지 사하라는 인구밀도도 낮고 대부분 유목민이어서 토지의 부담도 적었다. 하지만 그 뒤에 인구가 늘어나 정주와 집약농업이 시작된다. 예를 들면 부르키나파소 야텡가주의 인구는 1930년 25만에서 1975년 53만으로 늘었다. 그러자 지금까지 하던 대로 땅심이 떨어지는 것을 막기 위해 농사땅을 묵힐 만한 여유가 사라졌다.
1970년대에는 야텡가의 중앙 고지대에 있는 농사땅의 80%에서 수수와 조를 이어짓기했다. 면적으로 보면 마을의 70~85%가 농사땅이 되었고, 그 가운데 약 40%가 무리하게 경작하는 한계지였다.
다행스럽게 그때까지는 여느 해와 달리 강우량이 많은 해가 오랫동안 이어져 왔기에 이 문제가 겉으로 드러나지 않았는데, 가뭄이 들자 단번에 표면화되었다. 땅심의 저하, 토양침식, 농업 생산성의 저하. 중앙 고지대의 평원에서도 인구가 많은 북부는 심각한 환경 위기에 직면했다. 되풀이되는 가뭄으로 고지대와 비탈땅에서는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되었고, 비탈면의 아래쪽과 골짜기에 자리한 펀펀한 농사땅에 농사가 집중되어 나갔다. 그것이 더욱 부담을 더해 불모의 토지가 확 번져 나갔다. 여성들은 땔감을 모으려고 더욱더 멀리 걸어다녀야 했고, 땔감만이 아니라 농사땅을 넓히려고도 식생을 파괴했다. 식생율의 감소는 북부에서는 엄청난 비율에 달하여 토양은 바람과 물에 침식된 채로 남고, 1980년 이 지역은 부르키나파소에서도 가장 조건이 나빠진 지역이라 불리게 되었다.
중앙 고지대의 지하수 높이도 1980넌대 전반 약 50~100㎝/년으로 낮아졌다. 우기가 끝나면 대개의 우물이 말라 버렸다. 예를 들면 밤주Bam州의 리시암Rissiam과 존도마주Zondoma州의 라나와Ranawa 마을에서도 모든 우물이 말라붙어, 물을 긷는 일이 일상인 여성들은 물이 나오는 우물과 호수가 있는 곳까지 5~6㎞나 걸어가야 했다.
사막 녹화의 세계 모델
아카시 등의 중요한 종도 자취를 감추고, 난개발과 자연 갱신이 잘 되지 않아 바오밥나무도 노령화되어 갔다. 1980년 중반에 부르키나파소의 중앙 고지대에서 일하던 임업과 천연자원 관리의 전문가들은 절망적인 미래를 예상했다. 하지만 지금 부르키나파소의 야텡가 지역의 마을에서는 왜인지 농사땅에 나무가 급증하고 있다. 1980년부터 나무가 늘어나, 부르키나파소 전체에서 심각하게 나빠지고 있던 땅의 약 10만㏊가 과거 10년 동안 수복되었다. 30년 이상 사헬에서 일한 지리학자 암스테르담 자유대학의 크리스 레이Chris Reij 씨는 말한다.
“농민들이 자력으로 드넓은 지역에서 사막화를 막은 사헬의 녹화는 아프리카에서도 최대급에 속하는 생태적인 업적입니다. 그것은 여타 세계의 모델입니다.”
그 성과에 국외에서는 거의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부르키나파소에서는 농민협동행동 당국(Ministry for Peasant Co-operative Action)을 통하여 정부에서 유기농업 정책을 지원하고, 수많은 NGO와 여성 조직 및 농민조직도 환경과 식량 안전 보장이란 이유로 유기농업의 추진에 관계하고 있다. 2002년에는 유기식품 가공기술 훈련을 위한 센터가 ‘IFOAM 유기농업 2002 프로그램’의 원조를 통해 설치되었다. IFOAM의 국제과학회의는 2년에 한 번 개최되는데, 아프리카에서는 부르키나파소가 최초의 개최국이 되어 ‘개발도상국의 유기농업은 사치스러운 것이 아니라, 식량 안전 보장을 이루기 위한 전제조건이다’라고 기술한 와가두구Ouagadougou 선언도 발표했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일까?
사막에서 식량을 자급하다 - 농민개혁가 사와도고의 등장
새롭게 농사땅을 넓힐 수 있는 가능성이 한정되었기에 나빠진 땅을 수복하는 것이 생산을 늘리려는 농민에게 남은 유일한 선택이었다. 그래서 부르키나파소에서는 웨드라오고가 옥스팜의 프로젝트를 통해 현지 농민들을 모아, 1981년 흙을 회복하기 위한 실험을 시작했다. 거기에는 웨드라오고가 알고 있던 전통농법도 있었다. 프랑스어로 ‘코르돈 피에르cordons pierreux’, 곧 ‘돌의 줄’을 뜻하는 농법이다. 방법은 참으로 간단하여 주먹 정도 크기의 짱돌을 줄지어 늘어세울 뿐이다. 그럼 땅위를 흐르던 빗물이 이 돌에 고인다. 그리고 그렇게 고인 진창에 섞여 있던 식물의 씨앗이 싹튼다. 이러한 돌의 줄은 서서히 푸른 식물의 줄로 바뀌고, 또 빗물의 흐름도 늦추며 싹이 트는 씨앗도 늘린다. 가장 처음에 자라던 풀은 뒤이어 떨기나무나 나무가 그 자리를 대신하고, 낙엽이 토양을 기름지게 하며, 몇 년이 지나면 단지 돌의 줄이 대지를 되살린다.
코르돈 피에르를 만드는 농민(위)과 그 결과(아래). 아래의 사진은 자이 농법이 적용된 결과이기도 하다.
웨드라오고와 함께 활동하며 자이 농법의 개혁과 보급에 크나큰 역할을 완수한 농민으로 야쿠바 사와도고Yacouba Savadogo라는 인물이 있다. 사와도고는 부르키나파소 야텡가주 구르마Gourma 마을의 농민으로 세 아내와 31명의 아이를 두었는데, 창의적인 연구에 관심이 많고 자립심도 강한 사람이다. 그래서 옥스팜의 프로그램을 통해 말리에 견학을 가서 이 기술을 쓰고 있는 것을 본 뒤, 1979년 자신의 나빠진 땅에서 수수와 조를 생산하려고 자기 나름의 생각도 더하여 실험을 시작했다.
측량하고 있는 사와도고 씨.
사와도고가 실험을 시작한 계기는 가뭄으로 맞은 식량 위기였다. 가뭄으로 곤궁해진 사람들은 부르키나파소의 다른 지역과 다른 나라로 나가고 있었다. 하지만 사와도고는 자신의 농장에 머물기를 바랐다.
“선조 때부터 쭉 여기에서 살았기 때문입니다.”
땅이 나빠지는 것을 보며 무슨 수를 써야 한다고 자각한 사와도고 씨는 코르돈 피에르라는 기술을 쓰는 것과 함께, 건기에 몇 천 개의 구멍을 팠다. 자이Zai 또는 타싸Tassa라고 부르는 이 기술은 ‘지펠레zipélé’라고 불리며, 빗물이 스며들지 않을 만큼 딱딱해진 땅을 회복시키려고 부르키나파소에서 써 오던 전통농법이다. 사와도고는 자이를 이렇게 설명한다.
“나름대로 표현하자면, 자이는 빨리 출발한다는 뜻합니다. 사헬에서는 우기가 매우 짧기 때문이지요. 만약 수확량을 올리고 싶다면 빨리 시작해야 하고, 그것이 자이를 뜻합니다. 자이는 먼저 괭이로 땅에 구멍을 팝니다. 구멍은 대부분 지름 약 30㎝, 깊이 약 15㎝인데, 땅에 따라서 크게 파기도 하고 작게 파기도 합니다. 구멍을 파면, 작물의 양분으로 유기비료를 넣습니다. 외양간두엄은 흰개미를 끌어오고, 흰개미가 파는 굴이 단단했던 땅이 더욱 부드러워지도록 도와줍니다. 우기가 되면 이 구멍에 물을 모을 수 있습니다. 보통 비는 하루에 20~30분 동안 내리고, 다음번에 내리기까지 꽤 기다려야 합니다. 그렇지만 자이라는 기술로 다음에 비가 내릴 때까지 물을 모아 놓습니다. 곧 이것은 물을 보전하는 기술입니다.”
그 기술은 참으로 간단하다. 먼저 건기에 20~30㎝ 너비와 깊이의 구멍을 판다. 그리고 구멍의 경사면에는 데미룬demi-lune이라는 흙막이를 흙으로 만들고, 비가 내리면 거기에 수수와 조를 심는다. 사아도고는 자이를 부모에게 배웠다. 자이는 땅을 수복하려고 소규모로 이용되어 왔는데, 예전보다 개선된 점은 거기에 외양간두엄을 준다는 것이다.
구멍에 거름을 넣으면 그것이 흰개미를 끌어오고, 흰개미는 유기물을 소화하여 식물이 더 이용하기 쉬운 양분으로 바꾸어 놓는다. 그리고 흰개미가 흙에 집을 지어 놓아서 비가 내리면 물은 흰개미의 집을 따라 땅속으로 스며든다. 이 구멍은 건기에 파는데, 예전에는 나빠져서 아무것도 기를 수 없던 농사땅에서 수확량을 얻고, 사와도고는 가족의 식량 자급에 성공했다. 사와도고는 자이 농법을 쓰기 이전에는 자급을 할 수 없어 시간제노동으로 돈을 벌려고 나가서 모든 수입을 모자란 곡물을 사는 데 충당했다.
“예전엔 아주 가난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자이 덕분에 유복해져 우리 가족을 먹이고 있습니다.”
사와도고는 부르키나파소부터 말리에 이르기까지 언제나 조를 수확할 수 있는 유일한 농민이 되었다.
자이로 되살린 숲
부르키나파소에서는 전국의 마을에 나무심기 프로그램(National Village Forestry Programme)과 ‘2000곳의 마을에 8000군데의 숲을(2000 Villages, 8000 Forests)’이라고 명명한 캠페인 등의 국가 프로젝트를 통해 지난 30년 동안 몇 백만 그루의 묘목을 심었다. 하지만 묘목의 생존율은 낮았다. 나무를 심은 뒤 돌보는 일에 서투르고, 관리되지 않는 가축의 방목, 땔감으로 나무 베기 등 실패한 까닭은 허다하다. 하지만 그 가운데 결정적인 것은 프로젝트가 농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어지지 않았기 때문이다. 사와도고의 나빠진 땅에도 겨우 4그루의 나무만 심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사와도고는 자이의 구멍에서 나무가 자연히 자라기 시작한 것에 놀랐다. 나무의 씨앗은 물에 쓸려 들어오거나, 자이의 구멍에 넣은 외양간두엄에 들어가 있었던 것이다. 사와도고는 이 나무를 소중히 보호했다. 곧 자이의 구멍을 통해 ‘숲을 기르는 기술’을 발견한 것이다. 사와도고는 과일과 사료로 쓰이는 재래종 넛트(sheanut=Butyrospermum paradoxum var.parkii), 노란자두(yellow plum=Sclerocarya birrea), 란네아 미크로카파Lannea microcarpa, 다양한 아카시와 그밖에 감바풀(Gamba grass=Andropogon gayanus), 펜니세텀 페디셀라텀Pennisetum pedicellatum 등의 사료용 풀씨를 모아, 그것을 다음 우기에 구멍에 넣었다.
재래종 너트
노란자두.
감바풀.
란네아 미크로카파
펜니세텀 페디셀라텀
이리하여 몇 년 지나지 않아 불모의 땅은 다양한 수종으로 이루어진 12㏊의 숲으로 서서히 바뀌었다. 이 수목과 떨기나무가 곡물과 경쟁하기 시작하여 사와도고는 어려운 선택을 직면했다. 나무인가, 작물인가? 사와도고는 나무를 기르는 쪽을 선택하고, 자이의 구멍에 자연히 자란 나무를 보호했다.
“나무가 없으면 흙도 사라진다.”
자이는 단단하지 않고 물기도 있어 나무는 잘 자랐다. 해마다 사와도고는 자신이 바라는 수종의 씨앗을 구멍에 넣고, 토양침식을 막으려고 농지에 만든 돌의 줄을 따라서 흩뿌렸다.
한편 1994년 1월에 서아프리카 프랑(CFA)의 통화가 인하되어 농민 대부분은 약을 살 여유가 사라졌다. 그것이 약용 식물에 대한 관심을 높였다. 사와도고는 1970년대 전반과 1980년대 중반의 가뭄으로 사라져 버린 수종에 중점을 두고 야텡가주 이외의 지역으로 여행할 때 지역에서 사라진 약용 식물을 모으는 일과 함께, 야텡가주에는 없는 새로운 종도 도입했다. 이리하여 말라리아, 위장병, 황달 등의 치료에 도움이 되는 수종을 농지에서 보호하며 재배하도록 했다. 그곳에는 님(Azadirachta indica), 포도나무(Lannia microcarpa), 노란자두, 유칼립투스, 사바나 마호가니, 모링가 올리에페라Moringa oleifera, Guiera senegalensis 등이 있다. 불모지는 다양하고 도움이 되는 수종으로 착실히 숲으로 바뀌어 나갔다. 이리하여 사와도고는 20㏊의 황무지를 이 근처에서 가장 넓고 풍요로운 숲으로 바꾸었다.
기네아 세니갈렌시스
자이 농법을 퍼뜨리다
이전에는 무엇도 생산할 수 없었던 땅에서 수수와 조를 수확했다. 가까운 농민들도 당연히 이에 주목하게 되었고, 다른 마을의 농민들도 사와도고를 따라 하기 시작했다. 사와도고는 ‘자이 보급협회(Association pour la Promotion des Zaï)’를 결성하고, 1년에 한 번 그의 농장에서 기술 강습회를 열었다. 해마다 약 100곳의 마을에서 대표들이 경험을 나누고 만나고자 골가 마을에 모였다. 농민의 대표만이 아니라, 프로젝트와 연구 기관에서도 약용 식물(잎, 껍질, 뿌리)에 대한 사와도고의 경험을 배우려고 찾아왔다. 약용 식물 분야의 지식을 보완하고자 사와도고는 유명한 전통 치료사와도 만났다. 대부분은 농민인데, 거기에는 비즈니스 관계자나 공무원도 있었다. 사와도고는 그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대금 지불을 요구하지 않는다. 활동을 통한 사회적 평가에 더 관심을 가지기 때문이다. 사와도고는 이렇게 떠올린다.
“가뭄으로 마을의 삶은 매우 힘겨워졌습니다. 땅과 나무 등 모든 것이 마르고, 가축도 죽음에 이르렀습니다. 너무나 어려워서 대부분의 사람이 마을을 떠났는데, 저는 이 땅에 남아 해결책을 찾아내자고 결단했습니다. 몇 년이나 떨기나무 밑에서 살아남고자 시간을 보냈습니다. 그것이 물을 위한, 살아남기 위한 나무를 기르는 기술을 찾아내게 만들었습니다. 몇 년이나 떨기나무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저를 사람들은 미쳤다고 손가락질했습니다. 확실히 저는 정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렇지만 저는 해결책을 모색해 나아갔습니다. 만약 제가 해결책을 찾아낸다면 사람들이 제가 왜 이 땅에 남았는지를 알 것입니다. 지금 저의 기술이 기능하는 것을 보고 제가 해마다 수확한 곡물을 볼 때, 마을을 나간 사람들은 되돌아올 것입니다. 지금 저의 마을만 보자면, 저의 기술을 배우려고 돌아온 많은 사람을 볼 수 있습니다.”
몇 백 명의 농민들이 자이를 만들기 시작하면서, 간단하고 값싸며 새로운 기술은 멀리까지 널리 알려졌다. 더 많은 사람이 농사를 지으면 짓는 만큼 땅은 더 풍요로워졌다. 옥스팜이 자금 원조하고 있는 혼농임업 프로젝트도 이 개량된 자이 농법의 가능성을 인식하고, 이 마을로 견학을 가도록 추천하는 것으로 이 기술의 보급을 시작했다. 다른 NGO와 정부 기관도 자이의 가능성을 깨달았다. 몇 년 동안 자이는 야텡가주에 널리 퍼지고, 또 중앙 고지대의 다른 지역에도 퍼져 나아갔다.
자이의 다면적인 성과
자이로 숲이 생긴 일은 새로운 문제의 해결로도 이어졌다. 그 이전에 여성들은 집에서 쓸 땔감을 모으러 10~12㎞나 걸어가야 했다. 하지만 지금 어떤 농민의 아내는 이렇게 말한다.
“우리는 많은 시간을 절약하게 되어 현재 수입을 만드는 활동에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가족의 농사땅에 나무가 있는 것은 풍요로움입니다.”
약용 목적으로 다용도의 수목을 생산하여 추가 소득으로 이어지기도 한다. 예를 들면 몇몇 농민은 지붕, 오두막 등의 건축용 자재로 수목을 판매하고 있다. 수입은 목재의 양과 시장 수급에 따라 다르지만 20,000~40,000(30~60달러) 서아프리카 프랑(CFA)이다. 자이는 비의 변동에 따른 위험을 최소한으로 억제하고, 수확량을 확실하게 한다. 사와도고도 자급만이 아니라 돈을 벌고자 곡류와 갓끈동부를 판매하고 있는데, 자이는 수수와 조 같은 곡류와 함께 돈벌이작물인 갓끈동부 등도 생산할 수 있게 한다.
자이 농법은 축산물도 개선해 나아간다. 가축의 먹이도 되고 다용도로 쓰이는 식물 부산물을 생산하는 일이 5~10년 정도의 짧은 시간으로도 가능하기 때문이다. 대부분의 농민은 자이를 도입하기 이전은 가축 몇 마리밖에 기르지 못했다고 한다. 하지만 지금 자이를 받아들인 중앙 고지대 평원 북부의 많은 농민은 가축에 많이 투자하고 있다고 말한다. 자이 농법은 가축 사육의 개선과 연동한다. 농민은 팔려고 만이 아니라 외양간두엄을 생산하려고도 양을 기른다. 똥은 직접 자이에 쓰이든지, 외양간두엄의 원료가 된다. 높은 수확량을 올리는 것은 자이에 외양간두엄을 넣었을 때뿐이기 때문이다. 지금까지 소를 돌보는 일은 후라니족의 목동(Fulani herders)들에게 맡기는 것이 일반적이었다. 하지만 지금은 갈수기에도 소를 기르고 있다. 덕분에 외양간두엄의 이익을 얻고 있다. 야텡가의 농민들은 가축의 먹이가 되는 특정 수목(노란자두, 아카시, Piliostigma reticulatum), 곡물의 잎과 줄기와 꼬투리 및 과일도 모으고 있다. 이러한 것들의 씨앗은 가축의 소화기를 빠져나오면서 부드러워지고, 최후에는 외양간두엄이 된다. 씨앗은 곡물과 동시에 싹이 터서 자라고, 농민들은 그것을 보호한다. 자이는 유축복합경영에도 공헌한다.
자이에 대한 평가는 다양하다. 30~35% 정도 수확이 늘었다고 평가하는 보고서도 있고, 코르돈 피에르를 적용하면 건조한 해에는 평균 150~300㎏/㏊에서 440㎏/㏊까지, 비가 충분한 해에는 700~1000㎏/㏊까지 수확량이 늘어난다는 보고서도 있다. 크리스 레이는 자이 농법을 받아들이면 평균 644㎏, 곧 반년 이상이나 식량이 부족하던 상태에서 153㎏의 잉여 작물을 생산하게 된다고 평가한다. 또 자이 농법은 집약적이다. 이 때문에 부르키나파소에서는 현지에서 일하는 새로운 고용 기회도 창출하고, 몇몇 젊은이는 일을 구하러 도시로 이주하기보다 지역에 남는다. 그리고 자이 농법은 지금 이웃의 여러 나라에까지 퍼지고 있다. 사와도고는 말한다.
“이전에 저는 우리 마을에도 국내에도 알려져 있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는 이탈리아에 가서 CILSS(Comité permanent Inter-Etats de Lutte contre la Sécheresse dans le Sahelas)로부터 사헬의 최고 농민으로 인정받았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이 기술의 교사입니다. 왜냐하면 저는 이 기술을 토마스 산카라Thomas Sankara와 블레이즈 콤파오레Blaise Compaore에게서 인정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토마스 산카라는 아프리카의 체 게바라라고 불리는데, 젊은 나이에 암살된 부르키나파소의 대통령이다. 산카라는 자이 농법이 지닌 뜻을 철저히 꿰뚫어 보았다.
토마스 산카라.
written by 吉田太郞, translated by 김서방
인용문헌
(5) Burkina Faso: New Farming Technique Brings Trees Back to the Sahel,allAfrica.com, 31 October 20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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