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한달 동안 정신없이 달려오시느라 수고가 많으셨습니다.

이제 좀 뒤도 돌아볼 여유가 생긴 듯하여 다행입니다.

그동안 한 일을 잠시 되짚어 볼까요?

 

먼저 밭 만들기를 했지요. 이 밭은 특히 질어서 고랑 파는 일에 집중을 하고 유기물을 섞어 뒤집어 주는 일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고추 밭의 고랑은 너무 확실하게 파서 오히려 해가 되는 면도 있었습니다. 고추는 습기를 싫어하니까 두둑을 높이해 준 것까지는 좋았는데, 너무 높은 바람에 오히려 가물 위험이 높아졌습니다. 뭐든지 적당한 게 좋습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過猶不及! 땀 흘리며 애써서 땅을 일구셨는데 쓴소리하여 미안합니다. 허나 지나친 것은 지나친 것, 다음부터는 조심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양 옆으로 큰 고랑을 팠지요. 그런데 가운데 배수로는 다시 손을 보면서 끝으로 가며 더 낮은 부분이 생겨 물이 고이고 빠지지 않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고랑을 팔 때 주의할 점은, 삽질은 하다가 보면 꼭 깊어지기에 기울기를 맞추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입니다. 물길은 확실히 잡아주는 것이 좋기는 하나, 너무 무리하게 파서도 안 되고, 또 그렇게 무리해서 파지 않아도 됩니다. 물이 흘러갈 길만 잡아주면 됩니다.

 

그러고 나서는 고추를 곧뿌림했습니다. 첫번째는 4월 10일에 고추와 대파를 섞어서 줄뿌림과 점뿌림을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주에 줄뿌림으로 고추를 심었지요. 이 고추는 대화초라는 고추인데 매운맛이 강한 특성을 지닌 토종입니다. 고추와 대파를 섞어서 심은 것은 연변의 전통농법 이야기를 듣고 응용한 것입니다. 그렇게 섞어 심었을 때 효과가 좋다고 하더군요. 어떤 것이 어떻게 더 좋을지는 앞으로 계속 지켜보아야 할 일입니다.

대파는 이미 싹이 나왔는데, 고추는 아마 다음주나 되어야 나오지 않을까 합니다. 늦게 심은 것은 1주가 더 걸릴 테구요. 날이 따뜻하면 3주면 나오는데 올해는 날도 춥고 하여 매운물이 덜 빠졌나 봅니다.

 

4월 17일에는 이런저런 모종을 만들었습니다. 주로 콩 종류와 채소 몇 가지이지요. 감독님이 이미 만들어 놓으신 모종도 있습니다. 참외, 호박, 고추, 오이 등입니다. 감독님이 심은 모종은 이제 본잎이 나오기 시작하더군요. 다음주 주중에, 그러니까 5월 8일 이후에 옮겨심기가 가능할 듯합니다. 상태를 보아 그 전에 심어도 되는 것이 생기면 5월 8일에도 심겠으나, 아무튼 주중에 심어야 할 수도 있으니 그때 시간이 되는 분들은 한 번 모여서 심도록 하지요.

우리가 만든 모종은 이제 막 싹이 나오고 있습니다. 어떤 것은 잘 나온 반면, 어떤 것은 아예 나오지 않은 것도 있습니다. 그런 것은 잘못 심어서 그렇다기 보다는 씨가 오래 묵어서 발아율이 떨어지기 때문에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안완식 박사님이 보관하시면서 너무 오래된 씨를 다시 받지 못하셔서 그럴 수 있지요. 이 모종들은 흐음... 아쉽지만 그런 놈들은 어떻게 할 수 없습니다. 나온 놈들이라도 잘 키워야지요. 상태를 봐서 이달 말쯤에는 옮겨심을 수 있지 않을까 합니다.

농사는 하늘이 짓는다는 말이 있습니다. 물론 그만큼 하늘이 중요하다는 뜻이기는 하지만, 땅과 사람을 무시할 수 없습니다. 하늘의 때와 땅의 기운과 사람의 노동이 삼박자를 맞춰야 이루어지는 것이 농사입니다. 태평농법이니 자연농법이니 해도 사람의 노동이 들어가지 않을 수 없습니다. 편하게 농사지을 생각이시라면 애초에 그만두시는 편이 나을 겁니다. 편하게 농사짓는 방법은 없습니다. 어떤 방법이든 몸을 움직이지 않으면 되지 않을 겁니다.

 

여기서 잠깐 토종 씨앗의 장점은, 이 땅에서 오랫동안 지내며 이 땅의 기운과 하늘의 날씨에 충분히 적응했다는 점입니다. 수확량이니 특정한 맛이라든지 내병성 등의 점은 새로 육종해서 나오는 씨앗이 더 나을지도 모릅니다. 그런데도 토종이 왜 중요할까요? 숙제입니다. 토종이 무엇이고, 왜 중요할까 다음에 이야기 나눌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그 다음주는 옥수수를 심었지요. 옥수수와 수수. 수수란 이름이 들어가는 놈들은 거름을 많이 먹습니다. 생겨 먹길 그렇게 생겨 먹은 놈들입니다. 물론 거름이 적어도 되기는 합니다만, 크게 자라지 않지요. 거름을주면 줄수록 수확할 것이 커지는 놈들입니다. 조와 기장은 거름을 주면 줄수록 너무 커져서 쓰러진다는 치명적인 약점이 있지만, 수수 종류는 그렇지 않습니다. 미국의 흙은 우리보다 훨씬 유기물 함량이 높습니다. 축복받은 땅입니다. 그건 빙하가 드르르륵 내려오면서 유기물을 많이 남겨놓았기 때문이라 합니다. 우리의 흙은 대부분 산성의 척박한 땅입니다. 그건 우리 흙의 어머니인 암반이 화강암이기 때문입니다. 흙은 이런 바위가 오랜 세월에 걸쳐 바스러져 만들어진 결과물입니다. 이런 척박하고 산성인 토양에서 잘 자라는 대표적인 나무가 바로 진달래와 소나무입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의 나무인 것이지요. 어디에서나 잘 자라고 흔하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다시 옥수수로 돌아와 옥수수는 거름이 많이 필요하기에 그 조건을 충당할 수 없어 가장 넓은 두둑에 세 군데씩 점뿌림을 했습니다. 그 사이사이에는 다른 작물을 사이짓기하려고 합니다. 지금 생각으로는 콩이 가장 좋기는 하나, 그것보다 완두콩이나 오이, 참외 종류가 어떨까 합니다. 옥수수는 위로 자라니 옆으로 퍼지거나 붙잡고 올라가는 종류가 좋겠는데 그놈들이 딱이네요.

참, 완두콩과 강낭콩은 같은 콩이지만 뿌리혹박테리아가 없습니다. 이놈들은 거름을 좀 해야 합니다. 그러니 옥수수밭에 이놈들을 심었으니 서로 상생하겠구나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이놈들을 옥수수밭에 심는다면 웃거름을 따로 줘야 합니다. 그건 나중 문제이니 넘어가도록 하지요. 아무튼 옆으로 기거나 붙잡고 위로 오르는 놈들을 옮겨심으면 좋겠다는 생각입니다.

 

그리고 어제, 기장과 조를 심었습니다. 조와 기장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곡식입니다. 오히려 옛날에는 벼보다 더 많이 자주 먹던 곡식이지요. 이건 역사책에도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삼국시대를 배우며 그 시대에는 주곡이 이것이었다는 이야기, 기억나시나요? 벼는 얼마나 먹기 어려웠는지, 그래서 하얀 쌀밥이 고깃국이란 말이 나왔겠지요. 그 관념이 우리를 지배하여 벼가 최고의 곡식이 되기에 이르렀습니다. 그 결과 벼 말고 다른 곡식들은 '잡곡'이라 불리며 많이 기르지도 않고 서서히 사라지게 되었습니다. 안익준 선생님 말씀처럼 곡식 방아를 찧어주는 곳이 이제 거의 없습니다. 참 웃긴 일이지요.

우리는 하찮은, 쓸데없는 것을 부를 때 '잡雜'이니 '개'니 하는 말을 붙입니다. 잡곡, 잡초, 잡스러운 놈... 개망초, 개나리... 그런데 그 말이 얼마나 부질없는 것인지는 더 말씀드리지 않아도 아실 겁니다. 우리는 '잡'이란 말을 빼고 부르는 건 어떨까요? 그냥 풀이라고 하면 더 좋잖아요. 시골 할마시 들은 그렇게 부르십니다. 잡초란 말을 잘 안 쓰시지요.

곡식 종류는 살짝 골을 타고 심는 것이 좋습니다. 습기 유지에도 좋고, 나중에 관리(김매기, 북주기)하기에도 더 편합니다. 씨가 많지 않을 때는 점뿌림이 씨도 덜 들고 거름도 덜 먹어서 좋습니다. 농사는 이렇듯 그때그때 상황에 따라 달라집니다. 표준 영농이란 것이 있는데, 도시물을, 또 교육을 많이 받은 사람일수록 표준, 계량, 계측, 지도법에 매달리는 경향이 있지만, 그게 어렴풋이 윤곽을 그리는 데 도움이 되기는 하여도 밭의 상황이 저마다 다르기에 그게 꼭 정답이라고 할 수는 없습니다. 우리는 정답 문화에 너무 익숙하지요. 네 개 가운데 정답 하나를 고르는 방식에 길들여져, 정답이 아니면 불안하고 어찌해야 쓸까 안절부절합니다. 그런데 농사에는 정답이 없습니다. 거꾸로 말하자면 여러분이 하시는 일 모두가 정답입니다. 시행착오를 겪는 것도 정답이오. 모르는 것도 정답입니다. 그러니 너무 조바심내지 마세요. 농사의 흐름, 곧 자연의 흐름을 몸으로 익히시길 바랍니다. 몸을 놀리는 일에 익숙해지도록 하시기 바랍니다. 농기구를 쓰는 요령을 터득하시길 바랍니다. 무엇을 언제 심고 언제 거두고 하는 일은 두번째 문제입니다. 먼저 자신을 살피고, 나아가 자연을 느끼고, 그 흐름에 몸을 맡기시길 바랍니다. 그러면 자연스레 눈이 뜨일 겁니다. 아, 비가 오겠구나. 아, 이걸 심어야겠구나. 아, 이맘때는 무엇을 해야겠구나. 머리로 외워선 되지 않는 일입니다. 소농학교 과정을 통해 몸으로 깨우치시길 바랍니다.

물론 1년으로 되지 않겠지요. 1년에 농사는 한 번 경험할 수 있습니다. 그러니 10년이 지나도 10번입니다. 저도 아직 10번을 채우지 못했습니다. 앞으로 1년은 더 지나야 10번, 열 손가락을 다 채울 수 있습니다. 길게 봐야 합니다. 강한 자가 살아남는 것이 아니라 살아남는 자가 강한 것이라는 말, 그 맥락이 여기에도 적용됩니다. 길게 보고 천천히, 자기 발걸음에 맞춰서 자신 만의 길을 걸어나가십시오.

 

다시 농사 이야기로 돌아오겠습니다. 조와 기장 말고 땅콩과 곰취도 심었지요. 곰취는 반은 햇빛, 반은 그늘에 있는 것이 좋다는 이야기가 떠올랐습니다. 3년 전인가 4년 전인가, 원주 신림에서 곰취 농사를 크게 짓는 어르신을 만나 들은 이야기였습니다. 아무래도 나물 종류, 그러니까 산에서 살다가 밭으로 내려온 종류는 하루종일 따가운 햇살에 노출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나무 그늘 아래 살던 버릇 때문인 듯합니다. 어떤 나물을 심으시든 이 점만 기억하시면 되겠습니다. 하루의 반은 햇빛, 반은 그늘.

땅콩은 재밌지요. 뿌리가 확 뻗기 때문에 간격을 꽤 넓게 잡습니다. 40~50cm 호미 두 자루 정도입니다. 호미 한 자루가 어느 정도 길이인지 재보셨나요? 몇 센치, 몇 미터, 며칠, 몇 시에 익숙한 우리로서는 어르신들의 호미 한 자루, 발자국 하나, 해가 중천, 장 설 때 라는 말은 이해할 수 없는 말들입니다. 그 말 안에 녹아 있는 경험을 알아챌 수 있는 눈치와 그걸 정리하는 일은 각자의 몫입니다. 호미 한자루에 대략 30cm 정도 될 겁니다. 발자국 하나도 그렇구요.

작물은 땅이 척박하냐 기름지냐에 따라서 배게 심냐 드물게 심냐가 정해집니다. 어떤 땅에 어떻게 심을까요? 숙제입니다. 척박한 땅에는 어떻게, 기름진 땅에는 어떻게...

 

참, 강낭콩도 심었습니다. 늦었지요. 많이 늦었습니다. 이 강낭콩은 청산도에서 가지고 온 검정 강낭콩입니다. 보통 강낭콩은 감자 심을 때 심습니다. 3월 말이면 심지요. 수확은 씨를 받을 것만 나중에 따고 오며 가며 몇 개씩 따다가 밥할 때 넣어서 먹는 콩이 강낭콩입니다. 그래서 강낭콩은 주로 밥밑콩으로 쓰입니다. 콩은 용도에 따라 밥밑콩, 나물콩, 장콩으로 나뉩니다. 뭐 요즘은 기름용도 들어가겠네요. 암튼 장콩이 단백질이 많은 종류가 좋고, 밥밑콩은 잘 무르는 콩, 나물콩은 뿌리가 빨리 나오는 콩이 좋습니다. 

우리는 강낭콩을 저번주랑 이번주에 심었으니 참 늦었지요. 왜 늦었다고 하냐면. 강낭콩은 심고 두 달은 지나야 꼬투리가 생기기 시작합니다. 그리고 나서 익음때가 오지요. 그런데 그 시기가 꼭 장마와 겹칩니다. 장마와 겹치면 어떤 일이 생기는지 아세요? 강낭콩은 밥밑콩이라고 했지요. 그만큼 잘 무른다는 이야기입니다. 잘 무른다는 것은 물이 닿으면 흐물흐물해져 빨리 뿌리를 뻗는다는 말입니다. 나중에 보시면 알겠지만 장마를 만나 비가 자주 오면 꼬투리 안에서도 뿌리가 나오고 난리가 납니다. 그래서 그전에 오며가며 따먹고 씨 할 것만 콩대에 남겼다가 날 잡아서 한 번에 수확합니다. 우리가 심은 강낭콩은 어떻게 될지 지켜봅시다.

 

이상으로 4월 소농학교에서 한 농사이야기를 끝내겠습니다. 한 달이 어떻게 지났는지 대략 머릿속에 그려지신다면 좋겠습니다. 개인별로 농사일지는 꼭 쓰시고, 궁금한 점, 알고 싶은 사항이 있으면 물어주세요. 제가 그리 친절한 사람도 아니고, 꼼꼼한 사람도 아니며, 붙임성 좋은 사람도 아니여서 그러지 않으시면 그냥 넘어갑니다. 전 참으로 무심한 남자입니다!

728x90

'농담 > 텃밭농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서울의 도시농업  (0) 2010.05.06
5월 1일 - 군포의 모판 만들기  (0) 2010.05.02
옥상 텃밭 만들기  (0) 2010.04.26
4월 24일 밭의 전경과 밀밭  (0) 2010.04.25
백작 수수쌀  (0) 2010.04.22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