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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읽을거리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 1-5. 전북 옥구군 개정면 여산리

by 石基 2009. 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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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지장南鮮支場 장長 사토 켄길佐藤健吉 씨와 옥구군 시마타니島谷 농장1)을 방문했다. 시마타니島谷 농장은 전북에서도 이름난 농장이다. 농장장이 없어서 사무원 이토伊藤 씨에게 들었다.

 

올해는 수확이 전혀 없다고 한다.

농장의 경영면적은 약 300만 평(1000町步)으로, 여느 해라면 소작료로 약 2만 섬의 수입을 얻는다. 나락 1섬에 18원이라면 36만 원의 수입이다. 그러나 올해는 30% 이하의 수확에 대해서는 소작료를 받지 않았기 때문에 1%의 수입도 없다고 한다.

 

그러고 나서 농장에서 소작인에게 빌려준 비료 값과 농업 자금을 들었는데 다음과 같다.

화학비료 7~8만 원, 농업 자금 10만 원. 합계 17~18만 원.

이밖에 예탁 소가 100마리라고 한다.

 

이상으로 볼 때 여느 해의 소작 수입 36만 원은 300만 평의 땅값에 대해 10% 안팎의 이윤이지만, 비료 값과 농업 자금으로 농장에서 소작인에게 빌려준 17~18만 원의 금리는 아마 20~30%에 맞먹을 것이다. 농장에서는 혹시 이런 고리대 자본에 더 관심이 많은 것이 아닐까? 소작인의 입장에서 말하면 이런 고리 자본의 굴레에서 영원히 벗어날 수 없을 것이다.

남선지장 장은 그러한 농장을 전북의 모범 농장이라고 부르니 의문이지 않을 수 없다. 자세한 것은 조사할 필요도 없다. 곧바로 소작인 1명에게 논농사에 대하여 들었다. 사무소 근처다.

 



옥구군 개정면開井面 여산리餘山里 이동부李東芙

 

이 소작인은 1904년 무렵부터 이 농장에 전속된 소작인이다.

농사땅은 논 9000평(3町步), 밭 300평(1反步, 집터)이다.

논벼의 됨새 : 1920년의 가뭄에는 25% 정도 거두어 한 단에 5~6홉(1평 5홉)을 거두었다고 한다. 1936년에는 도열병 피해가 심했다고 한다.

1938년에는 후년에 보지 못할  최고 수확량을 보여 총 수확량이 120섬에 달했다고 한다. 올해는 가뭄으로 수확량이 전체 수확량으로 1가마니 정도일 것이라고 한다.

1920년, 1921년 무렵에 품종은 곡량도穀良都2)를 주로 하고, 화학비료‧콩깻묵을 300평에 2~3포 뿌려서 그때 수확량은 1평에 2~2.5되 정도였다고 한다. 지난해 풍년일 때는 1섬에 102㎏(170斤, 나락)으로써 1평에 1.8㎏(3斤) 정도를 얻었다. 품종은 은방주였고, 화학비료로는 300평에 8원(질소 9㎏<2.4貫>, 인산 3.75㎏<1貫>, 칼륨 3.75㎏<1貫>, 두엄 750㎏<200貫>).

 


 

논벼 기르는 방법

 

신작논シンヂャンノン, 3배미, 3750평, 상등, 집에서 지게 지고 한 번만 쉬는 거리에 있음.

마른논, 수확량(최고) 지난해 1평에 1.8㎏(3斤), 볏짚 1050단(1지게=15단), 최저는 40섬 정도(도열병 때문).

못자리 : 440평. 뿌리는 양 84㎏(140斤)

거름 : 1평에 과인산석회 33.75g(9匁), 황산암모늄과 깻묵의 배합비료 37.5g(10匁), 나뭇재 15지게, 두엄 40지게.

나뭇재와 두엄을 나르는 데 주인과 머슴, 놉 세 사람이 하루 걸린다. 머슴은 철머슴으로 100원을 준다. 놉은 하루 50전+세 끼+담배+술.

쟁기질 : 440평에 가을갈이 한 번과 봄갈이 두 번(도급). 한 번 쟁기질하는 데 한나절 걸린다. 쟁기질 값은 2원 20전.

벌레꾀임등 : 2주일, 등 하나를 하룻밤 켜는 데 석유 9㎖(5勺)를 쓴다. 석유는 농회農會3)에서 나눠준다. 산다면 1되(1.8ℓ)에 35전이다.

피사리 : 두 번으로 8명(놉 여자 30전+점심 한 끼) 포이드ポイド‧보르드ボルド액4)을 뿌린다. 보통 두 번(한 번에 300평의 못자리에 5전 정도 들고, 뿌리는 데는 약 30분 정도).

못자리 관리 : 날마다 2~3번 정도 돌아본다.

싹 말리기 : 씨뿌리고 싹이 난지 10일째에 한다. 모가 여느 해에 비해 잘 자랐다.

 

모내기철 : 6월 15일쯤

애벌갈이(옮겨 심을 논) : 모내기 40일 전에 쟁기질 도급을 준다. 애벌갈이에 3일 걸린다. 도급 품삯은 1평에 3리로서 쟁기질 깊이는 15㎝(5寸)다.

두벌갈이 : 1평에 4리로서 깊이 15㎝(5寸)다. 모내기 20일 전에 한다. 소

세벌갈이 : 1평에 1리. 이것은 농장에서 보조한다.

써레질 : 자기와 놉 남자 세 사람이 하루에 끝낸다. 놉 품삯은 60전+세 끼+담배. 하루에 하는 일은 일소로 900평(3段步).

거름주기 : 애벌갈이 전에 200지게의 두엄을 자신이 달구지로 나르는 데 이틀 걸린다. 화학비료는 모내기 전날, 배합비료 9가마니를 날라다 자기 혼자서 다 뿌리기까지 이틀 걸린다.

모찌기 : 모내기는 부녀단婦女團에서 모찌기부터 심는 것까지 여자 25명과 남자 3명이 하루 걸린다. 모를 나르는 데 놉 남자 두 사람과 자기. 모찌기부터 모내기까지는 1평에 4리다. 밥은 안 준다. 한 그루의 포기 수는 4~5포기, 그루 사이는 22.5×25.5㎝(7.5×8.5寸).

올해는 그때 논에 물대기가 어려워서 석유 발동기와 모터로 900평(3段步)에 물을 댔다. 경비는 농장에서 빌려줬는데 1원 50전(300평에)이다.

물을 댄 기간은 하루 밤낮으로, 자기가 그것을 감독했다. 여느 해라면 못자리부터 논에 물을 댈 때까지 물대기 비용으로 300평에 70전 정도 든다.

 

부녀단婦女團의 모내기

여자 25명, 남자 2명이 한 조가 되고. 남자는 여자 품삯보다 20% 더 받는다. 여자 한 사람이 하루에 보통 40~45전이다. 이 품삯은 농장에서 보증을 서 준다. 모내기철에 보통 여자 한 사람이 12~13일 정도 일한다.

소갈이 : 1마리에 2,4000평(8町步) 정도(두 거웃 갈이 넓이). 소갈이하는 양은 보통 하루에 900평(3段步)이다. 그래서 일 소 한 마리를 모내기철에 부리는 기간은 약 한 달 정도다.

나르기 : 거둘 때 달구지로 1080평(3反6畝)의 수확물을 나르는 데 소 1마리와 남자 2명이 끝낸다. 달구지의 품삯은 하루 3원이다. 수확철에 나르기 때문에 소를 부리는 기간은 대체로 10일 정도일 것 같다. 이 부근은 군산과 가까워서 달구지를 부업으로 하는 사람이 많다.

보습을 쓰는 넓이 : 1개로 보통 3900평(1頂3反步) 정도는 쓴다.

소갈이 일꾼이 보통 농사땅을 가지고 있지 않는 고용된 사람이라면 농장에서 먹이와 보습을 빌려준다.

 

애벌매기 : 모내고 17일째, 남자 12명(고지대雇只隊5)만)이 한다. 한 사람에 85전(밥 안줌).

두벌매기 : 8일째, 남자 11명(고지대雇只隊), 한 사람에 85전.

세벌매기 : 15일째, 한 사람에 85전 고지대雇只隊.

올해의 강수량 : 7월 25일에 적은 양인 34㎜의 비가 왔다. 그 뒤 비가 오지 않다가 8월 25일에 16㎜가 왔다. 9월 8, 9, 10일에 10㎜, 8㎜, 6㎜의 비만 내린 것으로 보아 한 번도 없었던 가뭄과 만났다.

모 길이 : 현재 3.9~4.5㎝(1.3~1.5寸)다. 절반은 베다가 두엄을 만들었다. 절반을 베는 이 일에 남자 10명이 이틀 걸렸다. 베는 것이 오히려 보통 때보다 수고스럽다.

 

뒷갈이 보리 : 10월 8일, 쌀보리 4말

쟁기질 : 씨뿌리기 전날, 남자와 소, 2일 동안

도급을 주어 1평에 5리(싹갈이함)

남자 13명이 이틀 걸린다(고지대雇只隊 ?)

놉 남자, 1명에 85전(밥 안줌)

두엄 100지게, 나르는 품삯은 1원 50전.

뿌리는 데 남자 2명이 하루 걸린다.

화학비료 : 배합비료 300평(1反步)에 암모니아 26.25㎏(7貫)쯤, 과인산석회 22.5㎏(6貫), 칼륨 2.625㎏(700匁).

농장에서 빌려준다(합계 5원 정도임). 웃거름으로 황산암모늄 18.75㎏(5貫)쯤.

사이갈이‧김매기 : 한 번에 여자 20명 정도 있어야 한다.

거두는 때 : 6월 5일에서 10일쯤이다.

수확량(예상) : 12~13섬, 보릿짚 50지게. 1지게는 37.5~56.25㎏(10~15貫).


1) 지금은 군산시 개정면 발산리 발산초등학교 자리.


2) 곡량도穀良都는 1925년 이전에 권업모범장에서 일본의 야마구치현山口縣에서 수입하여 대구 중원 농장에서 처음 기른 품종이다. 까락이 없고 중생종이다. 명충 피해가 많고, 키가 커서 쓰러지기 쉽다. 수확량이 매우 많고 적응 지역이 넓으며 재해 저항성이 높아서 60년대까지도 일부 지역에서 기른 품종이다.


3) 조선농회라고도 한다. 처음에는 민간에서 운영하는 비영리단체였으나 1926년 각종 단체를 통합한 뒤 농사개량 지도사업을 추진했다. 초창기인 1910~1919년에는 권농모범장과 도 종묘장을 비롯하여 지주회‧권농회‧농우회‧권업회 등 관제 단체만 있었고, 이들 단체는 일본인 관리와 대지주가 주축이었다. 1920년대 산미증산계획과 조선농촌진흥운동의 실질적인 수행기관이었다. 주요 사업은 작물 적지 재배, 자급비료 증산, 농기구 개량, 유축농업 촉진, 농업에 관한 조사 및 연구, 소작쟁의 조정 및 중재, 농산가공 기술지도, 공동구입‧판매 사업 등이었으며, 이런 사업은 일제의 농업정책을 충실히 반영하는 것이다. 1952년에 민간 조직체인 농업협동조합으로 바뀌었다.


4) 보르도액은 생석회에 황산구리 용액을 섞어 만든 액체 살균체. 19세기 말 프랑스에서 포도의 병충해를 방제할 때 처음 써서 붙여진 이름이다.


5) 고지대雇只隊는 두레와 대조되는 집단 노동 형태로 히사마 겐이치久間健一의 보고(1935)에 보인다. 그는 전북 옥구를 비롯한 우리나라 농촌의 여러 곳에서 고지雇只 노동이 여러 농민들이 결집한 고지대雇只隊의 집단 노동 형태를 취하고 있음을 기록하고, 이 집단 노동 형태는 전통적 두레의 원리가 변형된 것으로 보았다.

고지雇只는 가난한 농민이 논 1마지기에 일정한 값을 정해 모내기부터 김매기까지 또는 수확까지 일 해주기로 하고 미리 받아쓰는 품삯이나 그 일을 말한다. 가난한 농민은 농번기가 되기 전에 식량이 떨어지면 자기의 노동력을 담보로 식량을 구할 수 있고, 부유한 농민은 농번기에 필요한 노동력을 미리 확보할 수 있는 이점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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