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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길을 내주지 않았다
- 김석기
거세당한 가로수가 줄지어 늘어선
도심의 난잡한 길을 걷는다.
그 길은 어느새
이름 모를 산자락,
그 언저리에 닿아 있다.
길은 영원의 샘에서 뿜어져 나온
생명수를 모두 집어 삼키며
고개 넘어 이름 모를 마을 어딘가로 이어진다.
그러나 산은 길을 내주지 않았다.
길은 아무런 양해도 없이
산의 부드러운 속살을 후벼파
커다란 상처를 남기는가 하면
팔다리도 무참히 잘라내어
아무 볼품없이 길바닥 옆에
피가 흐르는 대로 내동댕이 쳐버렸다.
내가 오고 감에 길이 생겼지만
그 길은 이런 길이 아니다.
굽이굽이 고개고개
능선 따라 계곡 따라
영원의 샘물을 마시며 넘었을
그 옛적 호랑이가 살던 길.
봄에는 들꽃 피고
여름에는 새가 울며
가을에는 추수하던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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