논농사
15세기에 쓴 금양잡록에는 27가지 볍씨가 나온다.
올벼로, 구왕되오리救荒狄所里(어름것기) 백채白蔡 서광薯光.
다음 올벼로 에우디於伊仇智, 왜자倭子, 쇠노되오리所老狄所里, 황금자黃金子.
늦벼로, 사노리沙老里, 쇼되오리牛狄所里, 거믄사노리黑沙老里, 사노리沙老里, 고새노리高沙老里, 쇠노리所伊老里, 늦왜자晩倭子, 동아노리東謁老里, 우득산도牛得山稻, 흰검부기白黔夫只, 검은검부기黑黔夫只, 동�리東鼎艮里, 영산되오리靈山狄所里, 고새눈거미高沙伊眼檢伊, 다다기多多只, 구렁仇郞粘 , 쇠노所伊老粘, 다다기多多只粘, 점산도粘山稻, 보리산도麰山稻
산림경제에는 여기에 더해, 우리鷄鳴稻, 버들우리柳稻, 파랑되오리靑狄所里, 듕실벼中實稻, 잣다리栢達伊, 예슈리倭水里, 밀다리密多里 들이 추가되었다.
해동농서에는 다시 해남벼海南稻, 불겅紅糯, 어룽䮕糯, 쟈갈벼馬銜稻, 칠승벼七升稻, 녹도벼綠稻 들이 늘어났다.
임원십육지에는 앞의 것들 말고, 몽골벼禿稻, 뎡샨도天山稻, 노인채老人早稻, 정근채精根채, 옥자강벼玉糟稻, 뉴두벼流頭稻, 대궐벼大闕稻, 꿩의채雉稻, 붕어채鮒魚稻, 목기리벼長頸稻, 앙증다리벼昻徵稻, 목옴초리縮頭稻, 죠개벼蛤稻, 날개벼翼稻, 등려지기圻背稻, 쳔일벼千一稻, ��벼靑蔥稻, 암리벼泉橋稻, 배탈벼裵脫稻, 양푼찰凉金, 징검찰澄黔糯, 분홍벼茜紅稻, 산도粘山稻, 밧오려旱早稻, 서양벼西洋稻 들이 추가되어 고농서에 소개된 볍씨는 모두 54종
충남 아산군 음봉면 산정리에 살던 김응남, 민경수 씨의 증언에 따르면 1920년대 그곳에서 기른 볍씨는 갈곳베(수염이 길고 갈대 비슷한 벼), 보리흔베(빛이 흰 벼), 팥베(붉은 빛 벼), 보리붉은베 4가지뿐이었다.
1930년쯤 평안북도 박천군博川郡에서는 애달조(빛이 흰 벼), 대구벼(붉은 기운이 돌고 애달조보다 부드러운 벼), 밤벼(대구벼보다 붉은 벼), 올벼, 찰벼 들이 있었고, 개량종으로(장건상 씨) 구미龜尾, 육우陸羽가 있었다.
박천에서 볍씨 뿌리는 방법 3가지. 건파乾播, 모내기, 흩뿌림
건파는 논에 댈 물이 부족할 것 같으면 논을 마른대로 갈고 골을 쳐서 밭에 심듯이 볍씨를 뿌리는 방법. 그 뒤 비가 오면 그대로 무논이 되고 그 다음부터는 무논과 같이 한다. 그러나 비가 와도 싹이 볏모만큼 자라야(약 15cm) 물을 댈 수 있다. 건파논의 쌀은 풀기가 적다.
흩뿌림은 물이 부족해서 모를 낼 수 없을 때 한다. 모를 붓는 시기보다 늦다. 씨를 곧뿌림하는 것이므로 벤 데는 베고 드문 데는 드물어서 싹이 나온 뒤에 벤 데 것을 떠서 드문 데 심어 준다. 흩뿌림은 모내기보다 소출이 많으나 김매기가 어렵다. 박천에서는 1930년대까지 모내기보다 많이 썼다.
충남 아산군 일대에서 모를 붓는 방법.
볍씨는 씨나락이라고 함. 오쟁이에 넣어 사랑방 뒷벽 시렁 위에 둔다. 못자리를 만들기 전에 먼저 못자리거름으로 쓸 모풀을 준비. 정월 그믐께 각시풀(길이 10cm)을 캐서 흙을 털어 말리며 조금 뒤에는 낫으로 베어 들이기도 한다.
못자리를 고르면 쟁기로 갈고 정월 스무날께부터 써레로 썬다. 써레질은 장써레라고 하여 맞덮고 두 번 갈아엎으며 다시 십자 모양이 되도록 써는데, 이를 곱써레라고 한다. 이렇게 두 번을 갈아야 ‘땅이 고루 익는다.’ 못자리는 2000평의 논을 가졌으면 200평을 마련한다.
써레질 뒤에 고무래로 흙을 걷어올려 가며 개탕을 치고 판을 만들며 다시 죽가래로 펀펀하게 고르는데 이를 ‘번디친다’고 한다. 이때 애거름인 모풀과 재를 깔고 발로 밟아 준다. 이삼 일 말려서 땅바닥이 구덕구덕해지면 물을 3cm 가량 넣고 맹물에 십여 일 동안 담가 두었던 씨나락을 뿌린다. 씨나락은 물 위에 뜬 채로 좌악 퍼진 다음 천천히 가라앉는다. 보름쯤 지나면 3cm쯤 싹이 트며 이때 물을 빼서 말린다. 이것을 ‘그룬다’고 하며 이렇게 해야 뿌리가 땅에 잘 붙는다. 적당히 마르면 다시 모 끝에 찰랑찰랑할 정도로 물을 대며 보름쯤 두었다가 물을 뺀다. 모의 길이는 5~6cm 정도 되며 이때 중거름을 주고 나서 열흘에서 보름이 되면 옮겨심기 좋을 정도로 큰다.
모는 깊은 데서부터 심어 나가며 처음 자리는 그날 바람 방향을 보아 정한다. 모는 바람을 등지고 심어야 하기 때문이다. 열흘쯤 지나서 손으로 풀을 뽑거나 벼포기를 만져 주는 ‘더듬이’를 한다. 경기도 파주에서는 논을 ‘애벌’ ‘두벌’ ‘삼동’ 세 번 매며 두벌과 삼동 때는 호미를 쓰지 않고 ‘손으로 훔친다’. 그러나 영동에서는 세 번 모두 손으로 맨다. 충북 괴산에서는 ‘아이’와 ‘이듬’이라 하여 두 번만 매며 아이맬 때는 풀을 손으로 쥐고 호미로 긁어서 뒤집어 주며 일주일에서 열흘쯤 지나 이듬맬 때 패인 데를 발 끝으로 눌러서 펀펀하게 하고 살아남은 풀은 손으로 뽑는다. 전남 고흥에서는 논매는 일을 ‘초벌’ ‘중벌’ ‘만물’이라고 하며 갯논은 네 번 매 준다.
벼를 베는 데는 잦쥐고 베기와 엎쥐고 베기 두 방법이 있다. 예전에는 벼를 늦게 베어 꼬부라진 뒤에 모두 잦쥐고 베었으나 요즘은 벼와 보리를 모두 엎쥐고 벤다.
볏단은 세 주먹만큼의 양을 한 뭇이라 하고 스무 뭇을 한 가리라고 한다.
영동에서는 벼를 다발로 묶으며 쌀 한 되 가량 될 만큼을 한 다발이라 하고, 스무 다발을 한 광이라고 한다. 말릴 때는 스무 뭇을 단위로 하여 논바닥에 동서로 이십여 일 동안 세워 둔다. 이렇게 해야 아침의 동풍과 저녁의 서풍을 받아 잘 마른다. 영동에서는 장광이라고 하여 볏단을 한 줄로 나란히 세워 말린다. 이때는 한 광마다 벼를 한 모습씩 거꾸로 세워서 표시한다.
잘 마른 볏단은 집으로 옮겨와 서로 엇걸어 묶어(이를 장구단이라고 함) 짚가리로 쌓아 두었다가 마당질을 해서 떨거나 집채(벼훑이)로 알갱이를 훑어 낸다. 마당질은 품앗이를 주어서 하는 것이 보통이다.
경기 북부 논농사
고양에서는 논갈이를 세 번 나누어서 한다. 처음 하는 ‘애벌갈이’는 쟁기밥 두 밥만큼을 갈지 않은 위에 좌우에서 각각 한 밥이나 두 밥씩 갈아 올려 모두 두 밥 또는 네 밥의 두둑을 만드는 것을 말한다. 네밥두둑을 ‘네곳지’, 두밥두둑을 ‘두곳지’라고 하는데 두곳지보다는 네곳지가 일반적이다. 두번째 하는 ‘두벌갈이’에는 애벌갈이에 갈아 올린 쟁기밥을 쟁기골에 되갈아 넣는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하는 ‘배째기’는 갈리지 않았던 두둑바닥의 흙을 양쪽으로 갈라놓는 것을 말한다. 애벌과 두벌을 봄에 논이 말라 있을 때 마른갈이로 하고, 배째기는 써레질을 하기 전에 물을 댄 무논에서 한다.
연천과 강화에서는 갈이방식이 고양과 비슷하지만 배째기는 하지 않으며, 또 네곳지가 아닌 두곳지 방식만 있다. 그러나 연천은 고양과 마찬가지로 애벌과 두벌갈이를 모두 봄에 마른갈이로 하지만, 강화에서는 애벌은 가을에 마른갈이로 하고 두벌은 봄에 무논갈이로 한다.
이는 강화가 섬이라서 저수지가 없어 하류에 보를 막아 물을 퍼 올려 농사를 짓기 때문에 이른봄부터 보에 물을 담수하면 논에도 물이 고여 가을이 아니면 마른갈이를 할 수 없다.
갈이는 쟁기로 하는데 강화에서는 사각형의 긴술쟁기(장상리)를 쓰기도 했으나 일본에서 들어온 개량쟁기인 고북식과 마루식 쟁기가 주종을 이루었다. 고북식과 마루식은 굽쟁기의 개량형으로 보습의 모양이 다르다. 연천에서도 ‘호리’라고 하는 개량쟁기가 논갈이에 사용되었다.
못자리와 모내기
갈이가 끝나면 곡우쯤에 물줄이 좋고 기름진 논을 골라 못자리를 만드는데 물이 잠기는 하류는 피하고 상류의 물웅덩이가 있는 곳을 택한다. 못자리에 적당한 논이 없으면 남의 논을 빌리거나 모를 얻어 쓴다. 못자리는 두둑 너비 120cm 골 30cm로 만들고 길이는 논 크기에 따라 다르다. 못자리의 흙을 파는 데는 손이나 삽을 쓰고, 바닥을 고르는 데 번지라고 하는 널빤지를 쓴다. 강화에서는 ‘밀개’라고 하는 연장을 썼다. 번지는 너비 30센치, 길이 1.5미터 되는 널빤지에 뗏장을 올려놓고 줄을 매 당기는 형태, 밀개는 지름 6~8센치 되는 곧은 통나무를 T자 모양으로 만들어 고무래 쓰듯 쓰는데 너비 1m쯤 된다. 못자리가 완성되면 3~4일 동안 말린 다음 볍씨를 뿌린다.
볍씨는 가을에 태질친 알곡을 가마니에 담아 보통 윗방 머리맡에 보관한다.
망종이 되면 모를 찧어 모내기를 하는데, 원래 막모를 내다가 일제시대에 줄모를 냈다. 줄모는 처음에는 일본식이라 잘 안 하다가 총독부의 강제 보급과 제초기 사용 이점 때문에 바꾸었다.
김매기
모를 내고 보름 간격으로 김을 매는데, ‘애벌매기’ ‘두벌매기’ ‘세벌매기’라고 한다. 두벌까지는 마을에서 두레패를 조직해 공동으로 하고, 세벌은 집집마다 한다. 애벌과 두벌은 무더운 여름에 호미를 가지고 허리를 굽혀 하는 일이라 공동 작업을 하지만 세벌은 피사리 정도의 가벼운 일이라 각자 따로 한다. 고양에서는 세 번째 매는 김을 ‘삼동’이라 하낟. 부지런한 사람은 세벌도 피사리가 아닌 김을 매기도 했다.
거두기
한로가 되면 벼베기 시작. 강화에서는 낫으로 베어 2줌씩 엇갈려 놓은 4줌을 1단으로 묶어 논두렁에 서로 기대어 세우는데 100단이 되면 하단을 거꾸로 세워 총량을 파악하기 쉽게 했다. 이와 달리 연천에서는 한 움쿰씩 서로 엇갈리게 논바닥에 깔아 두었다가 먼저 마르면 뒤집어서 말린 다음 8움쿰을 한 단으로 묶는다. 그리고 이삭이 안쪽으로 가도록 볏단 4개를 십자로 논바닥에 놓고 그 위에 5켜를 올려 모두 20단의 볏가리를 만들었다.
벼와 볏짚이 적당히 마르면 타작마당으로 옮기는데, 길이 좋으면 논에서 직접 걸채(발채)에 실어 나르고 길이 나쁘면 길이 좋은 곳까지는 지게로 나르고 그 다음부터는 걸채를 썼다. 걸채에는 보통 40~50단을 싣고, 지게는 20~30단을 나른다.
타작마당으로 옮긴 벼는 이삭은 안으로 밑동은 바깥으로 하여 지름 3~4미터 되는 원통모양으로 볏가리를 은 다음 빗물이 스며들지 않게 이엉을 덮는다. 볏가리가 큰 것은 20마지기 분을 한가리로 쌓기도 한다.
마당질은 농사가 많은 집에서는 겨울 내내 하고 늦으면 이름봄까지도 한다. 보통 나무절구를 뉘어놓고 여기에 자리갯줄로 감은 볏단을 내리쳐서 낟알을 떤다. 이를 ‘태질’이라 하고, 태질할 절구를 놓는 일을 ‘개상놓기’라고 한다. 태질로 2/3 정도의 낟알이 털리고 남은 것은 탈곡기로 마저 턴다. 검불에 섞은 이삭은 따로 모아두었다가 도리깨로 떤다.
거름내기와 방제
논농사에 쓰는 거름은, 연천에서는 봄에 갈순(떡갈나무 순)이나 풀을 베어다가 논에 넣고 쟁기로 갈아엎는 ‘생풀넣기’가 있고, 고양과 강화에서는 외양간두엄이나 아궁이재가 전부고, 간혹 여름에 개울이나 논둑의 풀을 베어다 썩힌 두엄을 내는 경우가 있다. 거름이 귀한 강화에서는 마을이나 산과 들에서 흘러 들어가는 물(북정물)이 있는 논을 가장 좋은 논으로 여겼다.
병충해 방제는, 강화에서는 빈추이(벼멸구)를 방제하려고 논에 등유를 뿌리기도 했다. 고양에서는 늦(멸강나방)을 방제하려고 경우를 썼다. 쌀겨를 경우에 버무려 늦이 있는 논에 뿌리고 다른 사람이 느티나무 가지로 벼를 쓸면 늦이 논바닥으로 떨어져 죽는다.
물대기
고양에서는 ‘동맥이(개울에 둑을 막아 물은 담은 일종의 저수지)’를 막아 ‘뺑뺑이(무자위)’로 물을 댔다. 연천에서는 둠벙에 물을 푸는데 쓰는 ‘두레(맞두레)’가 고작.
경기 남부
‘갈아엎는다’
봄에 ‘봄갈이’ 가을에 ‘갈갈이’
갈갈이는 벼 거두고 땅이 얼기 전에. 양력 11월 안에. 부지런한 사람만.
‘네거치기’ ‘두거치기’ ‘싹갈이’ ‘반갈이’
가래질 - 논둑 만들기. 가래질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