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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상이 방향을 잡으면 부탄의 푸르른 계곡이 모두 유기농 농장으로 바뀔 수 있다.



작은 히말라야의 나라인 부탄은 단 73만8천 명이 살고 있다 —알래스카의 인구 정도. 그러나 이 작은 내륙의 나라는 세계에서 가장 큰 전업 유기농으로 나아가는 길에 서 있다. 

2012년 6월 지속가능한 발전에 대한 Rio+20 회의에서, 그 왕국의 Jigmi Thinley 수상은 자기 나라의 모든 농경지를 유기농으로 전환할 계획이라고 연설에서 발표하며 "'부탄에서 재배된 것'은 '유기농으로 재배한 것'과 동일하다는 표시가 붙을 것이다"라고 했다.

그 나라는 이미 유기농으로 잘 나아가고 있다: 부탄인의 2/3는 농민이고, 그들 대부분은 화학농업에서 필요한 화학비료와 농약을 구입할 여력이 없어 어쩔 수 없이 유기농으로 농사를 짓는다. 매우 적은 농장만 실제로 유기농 인증을 받았지만, 그 나라는 여러 농민은 반다나 시바 씨의 유기농 교육농장에 공부하러 보냈고, 그들은 지역에서 차례로 유기농으로 전환하려는 농부들을 돕도록 교육하려고 그녀에게 자문을 받았다.

수상은 더 많은 이익과 자급이 그 운동을 뒤에서 추동하는 주요한 두 가지 요인이라고 연설했다. 부탄은 현재 그들이 생산할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식량을 수입하는데, 이는 농민이 그들의 주요 수입원을 잃어버린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이웃한 인도는 유기농 식품에 대한 수요가 '기하급수적으로 성장'하고 있다"고 하며, 금방 줄어들지 않을 것 같다고 한다. 

그리고 거기에는 깨끗한 물 문제가 있다. 부탄인의 1/3은 농촌에서 물을 얻는데, 이는 화학비료에 쉽게 오염될 수 있고, 농촌지역에 살고 있는 6~10살의 아이들은 오염된 비위생적인 물에 의해 고통을 받는다. 

그러나 모든 부탄의 농장을 유기농으로 전환하기 위한 운동은 부탄의 4대 왕이 30년 전부터 국민총생산보다 더 중요한 가치라고 주장해 왔던 "국민총행복"을 달설하기를 바라기에 그러한 요인들에 의해 더욱 추동된다. "우리가 농촌의 삶에 동기를 주려는 주요한 이유는 상호의존의 필요, 적극적인 영적인 삶, 일상적으로 다른 생명 및 자연과의 소통에 의해 활기찬 지역사회를 드높이면서 사람들이 행복을 찾을 수 있는 농사에 달려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라고 말했다.


http://www.rodale.com/organic-farms?cm_mmc=Twitter-_-Rodale-_-Content-RecentNews-_-TinyCountrySupplytheWor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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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ature » 지금 행복하라

그들이 말하는 행복 _ Talk About Happiness

 

인터뷰어 _ 양민호


인터뷰이 _
김석기(토종씨앗연구) 77년생. 농부. 텃밭 보급원. (사)전국귀농운동본부 「귀농통문」 편집위원. 전통농업과 생태농업을 공부하며 농사짓고 산다. 틈틈이 토종 종자를 모으러 다니고, 전통농업에 대한 실마리를 찾기 위해 늙은 농부를 만나는 걸 즐거움으로 알고 산다. 작은 텃밭에서 전통농업과 생태농업 그리고 토종 종자의 가능성을 실험하고 있다. 식구가 중심이 되는 소농이 자립하는 순환 가능한 세상을 꿈꾼다.


나종필(삼성카드) 성북구 종암동. 78년생. 전라도 고창에서 2남1녀 중 장남으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시골 마을의 정과 장남이 받을 수 있는 사랑을 한껏 누리며 자랐다. 대학입학과 동시에 상경해 지금껏 살고 있다. 작년 봄 결혼해서, 지금은 예쁜 아내와 얼마 전 태어난 귀여운 딸(윤슬)을 보며 웃음 가득한 하루하루를 보내고 있다. 삼성카드 마케팅전략팀에서 일하고 있다.


사진 _ 하지권 일러스트 _ 이진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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혹자는 현대와 같은 자본주의 시대에 사회적 성공이 행복의 제1요소라고 말한다. 또 누군가는 물질적 욕구를 떠난 자유로운 삶이야말로 진정한 행복이라고 말한다. 그리고 여기, 두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양민호 : 지금 어떤 일들을 하고 계신가요?
김석기 : 농사 관련해서 이런저런 일을 하고 있습니다. 워낙 잡다하게 하는지라, 뭐가 일인지 모르겠네요.
나종필 : 삼성카드에서 마케팅 관련 업무를 보고 있습니다. 평범한 샐러리맨이죠.


양민호 : 옛날 얘기 좀 나눠볼까요. 어려서부터 지금까지 살아온 인생 스토리요.
나종필 : 시골에서 고등학교 때까지 살다가 대학교 진학하면서 서울로 올라왔습니다. 남들처럼 점수에 맞춰서 학교(고려대 통계학과)에 들어가고, 남들

          졸업할 때 같이 졸업해서 남들 취업할 때 같이 취업했습니다. 굴곡 없는 인생이죠.
김석기 : 서울 출생이긴 한데, 어렸을 때 잠시 경기도 곤지암에서 자랐습니다. 그때의 강렬한 기억 때문인지 농사를 좋아하게 됐습니다.

          대학교(성균관대 철학과)를 졸업하고 귀농관련 시민단체 등에서 몇 년 정도 일하다가 괴산으로 귀농했습니다.
나종필 : 저랑은 많이 다르시네요. 저는 어떻게 하면 시골을 벗어날까 고민하면서 도시의 찬란함을 꿈꿨었는데….
양민호 : 전적으로 동감합니다.
김석기 : 왜, 어릴 때는 모든 게 낭만적으로 보이잖아요. 그래서 그런가 봐요. 저도 만약 중·고등학교를 시골에서 다니면서 현실을 알았다면,

          귀농 안 했을지도 모르죠.(웃음)


양민호 : 사회에 첫 발을 내딛었을 때 어땠나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살고 계신 두 분이라 각자 느끼는 어려움도 달랐을 것 같은데요.
나종필 : 대학교에서 통계학을 전공하고 실제로 하는 일은 경영학에 가까운 마케팅 업무다 보니까, 처음에는 적응이 잘 안 됐습니다.

          무슨 얘기하는지도 모르겠고, 시키는 일이라곤 맨날 복사. 무엇보다 아침 8시에 출근해서 밤 11시 넘어서 퇴근하는 빡빡한 생활의 반복이

          힘들었습니다. 이렇게 사는 게 맞는 건가 하는 생각이 들 정도로요.
김석기 : 2004년도인가 2005년도인가…연도 개념이 없어서 잘 기억은 안 나는데, 아무튼 졸업하고 1~2년 정도 일하다가 괴산 산골짜기로 내려갔습니다.

          그런데 막상 살아보니까, 이건 도 닦을 때나 하는 짓이지 사람 사는 게 아니더라고요. 결국 6개월 만에 꼬리 내리고 다시 세상으로 나왔습니다.
양민호 : 그 정도면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 법도 한데, 두 분 다 용케 잘 극복하셨네요. 지금껏 같은 길을 걸어가시는 걸 보면 말이죠.
김석기 : 원래 하고 싶었던 일이니까요. 다만 처음엔 준비가 덜 되어 있었던 것뿐이죠. 다시 세상에 나와서 결혼도 하고, 농사와 관련된 일을         

          조금씩 접하다 보니까 자연스레 자리 잡게 된 것 같습니다.
나종필 : 세상에 힘든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마음껏 일할 수 있다는 것만으로도 감사하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처음이니까 낯설고 힘든 거지,

          적응되니까 또 괜찮아지더라고요.

 

양민호 : 그럼 지금은 어떠세요, 생활형편 좀 나아지셨습니까?
나종필 : 처음에 비하면 많이 좋아졌죠. 어느 정도 회사에서 자리도 잡았고, 가정도 생겼고. 그렇다고 마냥 편한 건 또 아니에요. 아무래도 사회적

           흐름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에서 일하다 보니까 새로운 개념들이 계속해서 생기더라고요. 매번 새로 배운다는 느낌으로 일하고 있습니다.
김석기 : 예전에 어머니께서 암투병을 하실 때 빚을 1500만원 가까이 졌습니다. 한 달에 80만원 벌어서 25만원씩 4년이 걸려서 빚을 다 갚았습니다.

          그렇게 마이너스에서 출발해서 지금은 집도 생기고, 점점 살림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양민호 : 혹시 후회 같은 거 해본 적 없으세요? 그때로 되돌아간다면 지금과 다른 선택을 했을 텐데 하는.
나종필 : 음, 제 성격 자체가 뭔가에 미련을 두는 체질이 아니라서요. 딱히 후회가 된다거나 하는 기억은 없습니다. 대신 이런 건 있죠. 선생님(김석기)처럼

          여러 가지 사회활동을 하면서 다양한 경험을 해보고 싶다는 생각. 뭔가 자유로운 삶에 대한 막연한 동경 같은 게 있는 것 같습니다.
양민호 : 전 세계 샐러리맨들의 공통적인 생각 아닐까 싶은데요. 김석기 님은 어떠세요? 때론 차도남(차가운 도시 남자)의 삶이 부럽거나 하지 않으세요.
김석기 : 아니요, 저는 절대 그렇게 못 살 것 같아요. 바쁘고 스트레스 받는 상황을 잘 못 견디거든요. 사실 그게 제 단점이자 약점입니다.

          희생정신이 부족하다고나 할까요. 그래서 저는 바빠도 시간을 내 맘대로 쓸 수 있는 농촌에서 사는 게 좋습니다. 단, 돈이 안 된다는 거~

양민호 : 사람은 꿈을 먹고 사는 동물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두 분의 인생목표 혹은 꿈은 무엇인가요?
김석기 : 농업을 중심으로 지방 소도시들을 키워내고 건강한 사회 그물망을 만들고자 합니다. 제 이름이 석기(石基)인데, 신석기 혁명이 농업혁명이었잖아요.

          그 이름에 걸맞게 저도 혁명 지도자로서 제2의 농업혁명을 이루는 게 꿈입니다.
나종필 : 방금 자유로운 삶에 대한 동경이 있다고 말씀드렸는데, 현실은 그것과 정반대의 미래상을 그리고 있습니다. 어떻게 실력을 쌓아서

          이 회사의 임원이 되고 사장이 될까 하는, 뭐 그런….
김석기 : 일반 직원이 어디까지 올라갈 수 있나요?
나종필 : 저 같이 입사해서 사장까지 올라가신 분이 있습니다. 물론 전체적으로 보면 1%도 안 되는 비율이지만.

 

양민호 : 나종필 님 말씀을 들어보면 뭐랄까, 인내심이라고 할까요. 흔히 경쟁 속에서 느끼는 부담감이나 심리적 압박 같은 걸 극복하는 힘이 있으신 것 같아요.
나종필 : 글쎄요. 인내심은 별로 없는데…. 저는 경쟁이 다른 사람을 누르고 올라가는, 그런 살벌한 게 아니라 자신과의 싸움이라고 생각해요.

           그래서 남을 의식하기보다 스스로를 더 갈고 닦는다는 생각으로 지금껏 살아왔습니다.

양민호 : 두 분은 각자 다른 꿈을 가지고 자기만의 삶의 살고 계시잖아요. 행복에 대한 관점도 다를 것 같은데, 어떤 삶이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시나요?
나종필 : 불교에서는 인생이 고통이라는 대전제를 깔고 있잖아요. 그 부분에 많이 공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복한 삶이란 고통이 없는 삶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일적으로 보면 남들보다 뒤처지는 게 저 같은 샐러리맨들에겐 일종의 고통이라고 할 수 있는데, 그러지 않기 위해서 지금껏 노력해왔죠.

          이런 건 이제 부분적인 것들이고, 궁극적으로는 가족 그리고 친구들과 즐겁게 사는 게 행복한 삶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제 꿈은 나중에 늙었을 때

          주변에 사람이 많았으면 하는 겁니다.
김석기 : 저는 그냥 자기가 지금 살고 있는 모습이 만족스러우면 그게 행복인 것 같습니다. 무엇을 하든 주어진 환경 속에서 즐겁게 일하고 가족과 함께

          잘 지내면, 그게 최고인 것 같아요. 개인적으로 죽을 때까지 아내랑 알콩달콩 손잡고 다녔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습니다.

양민호 : 마지막으로 살면서 ‘가장 행복했던 순간’이라고 말할 만한 순간이 있었나요?
김석기 : 불행했던 순간 빼고는 다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20대 때 부모님께서 돌아가셨는데, 두 분 모두 50대의 젊은 나이에 병으로 떠나셨죠.

          그때 빼고는 다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인생이란 게 그런 것 같아요. 평소에는 다 만족하고 행복하게 살다가 힘든 일이 생길 때면

          잠깐씩 불행해지는 게 아닌가 합니다. 그러다가 시간이 흘러 다시 평소처럼 돌아오면 행복해 지는 거고.
나종필 : 돌아보면 지나간 시간들은 다 행복했던 것 같습니다. 물론 순간순간은 힘든 적도 있었겠지만, 지나고 보니까 그게 다 행복이었던 것 같아요.

          가만… 이렇게 말하면 지금이 가장 불행한 순간이 되는 건가요. 오해 마시길, 전 지금 행복하답니다(웃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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