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도를 보며 찾은 곳은 한림읍 명월리. 마을회관 앞에 차를 세우고는 또 동네 조사에 들어갔다. 마을회관 바로 앞에 있는 집에서 한 할망을 만났으나, 뭍에 살다가 섬에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았다며 자신의 집에는 토종이 없단다. 집에 들어오는 길에도 시멘트를 깔끔히 발라 놓으신 걸 보니 그렇기도 하겠다.

그렇다고 아무 성과도 없이 이 동네를 뜨기가 뭐하여 다시 이 집 저 집 기웃거렸다. 돌담을 따라 들어선 골목에서 검은 동부가 자라다 말라비틀어진 것을 발견했다. 다시 한 번 채집에 들어갔다. 검은 동부를 한참 따다 보니 이건 동부만 있는 게 아니다. 새팥으로 의심되는 것과 돌동부도 자라고 있었다. 오늘은 특별한 성과도 없으니 이것 모두 채집 대상이 되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돌담을 따라 집으로도 찾아들어갔다. 마당에 서서 사람을 찾으니 문이 왈칵 열린다. 할머니께서 쪽파를 다듬어 장에 내려고 일하고 계셨다.

 

 한림읍 명월리 양귀순(80) 할머니의 쪽파밭 한 귀퉁이에 있는 바위에 캐다 만 고구마와 골갱이가 놓여 있다. 제주에서는 호미를 골갱이라 부르고, 낫을 호미라 한다. 골갱이는 골을 파는 괭이라는 뜻이 아닐까? 돌이 많은 제주의 밭에서 귀가 넓은 호미를 쓰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할머니께 토종을 찾으러 다닌다고 바쁘시더라도 잠깐 씨앗 좀 보여주실 수 없냐고 부탁드렸다. 흙 묻은 손을 탁탁 털며 일어나시더니 굽은 허리로 우리를 창고로 이끄신다. 이것저것 꺼내서 주셨는데 오래 묵어 못 쓰는 것이 많았다. 이제 기력도 딸리시고 농사일도 많아 세심하게 챙기시기 어려우신가 보다. 하루방도 없는 듯한데 혼자서 고생이 많으신 듯하여 마음이 짠하다. 동네 할머니한테 빌어 왔다는 3년 심은 청상추를 하나 얻은 뒤 이거라도 먹으라고 주시는 곶감으로 허기를 달래며 헤어졌다.

 

꽁꽁 싸매 놓은 씨앗을 꺼내고 계신 양귀순 할머니. 소쿠리에 담겨 있는 곶감은 잠시 뒤 우리의 입속으로 낼름 들어갔다. 

 

 

다시 차에 올라 명월리의 다른 곳으로 이동했다. 가는 길에 채집하는 일을 잊지 않고 새콩과 나물콩을 챙겼다. 제주에서는 눈에 띄면 일단 모은다. 토종을 찾기가 강화도보다 어렵다. 땅은 넓지만 사람도 마을도 드물고, 게다가 자연조건 탓인지 씨앗도 잘 챙겨 두지 않으셔서 더 그렇다.

 

 여기저기 헤매다 만나 나무에 달린 열매. 뭐라고 일러주셨건만 또 까먹어 버렸다. 열매가 너무 예뻐서 한 장 찍었는데... 

 

 

명월리 상동이란 곳에 사시는 고지옥(76) 할망을 찾은 건 해가 기울어가는 때였다. 이제 오늘 하루도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할망은 안 그래도 저녁을 준비하시는 듯하다. 잠시 다른 데 정신 팔려 늦게 온 사이에 안완식 박사님이 고추며 방아풀 씨를 얻으셨다. 고추는 계속 받아서 심고 있다고 하시는데, 정말 작다.

 

고지옥 할머니 댁의 고추. 크기가 아주 작고, 작은 대신인지 아주 맵다. 입에서 불이 날 정도로. 그나저나 12월 말에 이런 고추를 보리라고는 생각도 못했다.

 

 

고지옥 할머니. 어두워지고 있던 때라 사진도 어둡기만 하다. 우리가 느끼기에는 별로 춥지 않았으나, 연세도 있으시고 하여 추위를 막으려고 두텁게 입으셨다.

 

보틀브러쉬나무의 꽃. 우리말로는 그대로 병솔나무란다. 이건 하도 특이해서 까먹지 않았다.

 

 

잠시도 지체할 틈 없이 다시 상명리로 날아갔다. 시간이 천금이다. 상명리 872번지에 사시는 강순옥(71) 할머니 댁에서 기름 짜 먹는 유채와 속이 안 차고 국거리나 김치로 먹는다는 호배추를 얻었다. 할머니는 낮잠을 주무셨는지 한참을 불러서 만날 수 있었다. 끈덕지고 큰 소리로 부르지 않았으면 못 만날 뻔했다. 생판 모르는 사람과 만나야 하느니 만큼 일단 뻔뻔해야 한다. 또 친근하게 다가가야 한다.

 

강순옥 할머니의 옆집에는 양공표, 조유선 어르신이 사신다. 양공표는 강순옥 할머니의 남편의 동생이라고 하신다. 강순옥 할머니 댁에 들어가며 두 집 문패의 이름이 비슷해 혹시나 하고 물었더니 역시나 형제 사이란다.  

 

 강순옥 할머니 댁에서 만난 의자. 무릎이 안 좋아서 이걸 허리에 차고 밭에 철푸덕 퍼질러 앉아서 일하신다. 안에는 스티로폼이 들었다.

 

 

상명리는 오늘의 최종 목적지다. 다른 데를 가고 싶어도 이제 해가 지기에 그럴 수도 없다. 마지막 힘을 내 이 동네를 샅샅이 뒤진다. 그렇게 1771번지에 사시는 강계춘(77) 할망 댁에 들어갔다.

강계춘 할머니 댁 마당 한켠에 쌓여 있는 짚가리. 이걸 소를 먹인다고 한다. 

 

 

해질녘에 만나는 분들은 늘 그렇듯 일단 마음의 문을 좀 닫고 계신다. 날씨에 따라서도 그렇지만 시간에 따라서도 사람을 반기기도 하고 그렇지 않기도 한다. 하긴 한밤중에 누가 찾아오면 나라도 문부터 닫아 걸겠다. 그것이 인지상정. 할머니께 여기까지 찾아온 사정을 말씀드리고 옛날부터 심던 씨앗이 있냐고 여쭈었다. 그러니 보리콩이 하나 나왔다. 여타의 것은 더 묻지 않고 이 정도로 마치고 나왔다. 나와서 혹시나 하는 마음에 동네를 더 둘러보다가 담벼락에서 지름콩(콩나물콩)을 찾았다. 콩을 털고 쌓아 놓은 콩가리에서 떨어진 것들이다. 그래서 이번에도 다시 한 번 채집 활동에 들어갔다.

 

오늘 하루는 채집의 연속. 

 

이것으로 오늘의 일을 마치고 대정여성농민회의 김정임 선생님을 기다렸다. 오늘은 잠깐 만나 이것저것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기 때문이다. 이삼십 분 뒤에 만나 한림읍으로 나갔다. 숙소를 잡기 전 저녁을 먹으며 그동안 지나온 사정과 수집한 토종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제주도에서는 원래 푸른콩으로 장을 담그고, 노란콩은 소를 먹였다고 한다.

대문에 걸쳐 놓는 나무는 정낭이라고 하는데, 쭉쭉 뻗은 숫대나무(편백)나 삼나무로 만든다고 한다. 이걸 세 개 다 걸쳐 놓으면 멀리 갔다는 뜻이고, 셋 다 내려놓으면 집에 있음, 하나만 내려 놓으면 옆집이나 근처에 있으니 좀 기다리든가 하라는 뜻, 두 개만 내려놓으면 마을 어딘가에 있으니 찾아오든지 하라는 뜻이란다. 도둑이 생겨도 목숨 걸고 섬을 빠져나가지 않는 이상 어디서든 잡을 수 있을 테니 이렇게 경계가 허술(?)했겠지. 요즘처럼 몇 개씩 보안장치를 하고도 불안해 하는 세상에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풍속이다. 과연 세상이 살기 좋아진 건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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