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 늘 게으르게 농사짓는 방법을 선호한다.

그래서 작물을 심을 때도 모종을 내기보다는 씨앗을 그대로 심는 방법을 선호한다.


곧뿌림, 어떻게 하면 잘할 수 있는가?


특히 어려운 것들이 몇 가지 있다.

콩과 배추, 무 등이다.

배추와 무는 초기에 벌레들에게 무방비 상태로 노출이 된다.

그리고 콩은 초기에 새들, 특히 비둘기에게 먹히기 쉽다.

꿩은 땅을 파서 콩알을 꺼내 먹는다고도 하는데, 내가 있는 곳에는 그런 일이 없다.

대신 비둘기가 떡잎을 주로 공격한다.



웬 걸. 이번에도 비둘기에게 일부 습격을 당했다. 으, 지킨다고 지켰건만 모두를 안전하게 지키지 못했다. 비둘기에게 떡잎이 뜯어먹힌 콩들.



하하하, 떡잎만 공격을 당하면 그나마 다행이다. 

아예 목을 뎅강 자르듯이 먹힌 콩들도 발생한다. 

밭에 신나서 갔는데 그런 모습을 발견하면, 그야말로 분노가 치밀어 오른다.

이건 안 당해본 사람은 모를 것이다. 

비유하자면, 아이를 만나러 신나서 가는데 만나니 누군가에게 쥐어터져 멍들고 코피가 나고 있는 상태랄까?


보라. 잔인한 비둘기들... 물론 나의 입장에서 그렇게 부르는 것이다. 비둘기들이 사실 무슨 죄가 있겠는가. 먹고 먹히는 삶 속에서 자신의 역할에 충실하여 살아가는 것일 뿐.



작년에는 어떻게 할까 하다가 한랭사를 설치해서 모종을 내는 방법을 택했다.

그렇게 1년 다시 해보니 너무너무 귀찮았다.

그래서 올해는 그냥 곧뿌림을 하기로 마음 먹었다.


곧뿌림을 할 때 중요하게 고려할 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심는 시기를 잘 택해야 한다. 새들의 산란철을 피해야 한다. 아무래도 새가 알을 까려고 하면 영양보충이 필요하고, 그래서인지 닥치는 대로 먹어 치운다. 새들의 산란철은 주로 5월 말이라고 들었다. 그러니까 중부 지역에서는 5월 말에 밭에다 콩을 곧뿌림하는 걸 금기시해야 한다.



이놈, 바로 이놈이다! 도시에 사는 비둘기보다야 백배 천배 예쁘게 생겼지만, 콩 심을 때 나에게는 그 어떤 모습보다 흉흉하다. 머리는 또 얼마나 좋은지... 누가 새대가리래? 새가 얼마나 영악스러운데. 



둘째, 노농들은 6월 중순 무렵이 콩을 심는 적기라고 했다. 과연 그때 심으면 좋다. 5월 말~6월 초는 조금 이른 감이 있고, 6월 말은 좀 늦은 감이 있다. 그런데 문제는 6월 중순에 할일이 산더미처럼 많다는 것이다. 요즘이야 모내기도 5월이면 끝나서 별 문제가 없지만, 예전에는 6월 중순이 모내기하는 때였다. 그래서 밀과 보리를 심었으면 그거 수확하랴, 부랴부랴 콩 심으랴, 모내기도 준비해서 하랴 정말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철이었다. 이를 '삼그루판'이라고 표현하는데, 이때가 바로 '부지깽이 손이라도 빌린다'고 하는 그 시절이다. 얼마나 바쁘면 부지깽이한테 손을 빌리려 하겠는가. 아무튼 난 올해는 6월 10일 무렵 심었다. 


셋째, 이 역시 심는 시기를 선택할 때 고려할 요소이기도 한데 비가 오기 전날 심으면 좋다는 것이다. 콩은 심은 다음 비를 두 번 정도 맞히면 어김없이 싹이 난다. 올해는 뜻하지도 않게 이른 장마가 와서 더 도움이 되었다. 6월 10일을 파종기로 잡은 것은 그 다음날인가 다다음날 비가 온다고 해서이다. 심은 뒤 비를 한 번 맞히고, 다시 사나흘 뒤에 비가 내려서 아주 좋았다. 과연 두 번 비를 맞히고 난 다음날 밭에 가보니 막 고개를 디밀고 나오기 시작했더라. 



두 번 비를 맞은 다음날의 콩. 어김없이 올라오고 있다. 모든 생명은 어릴 때 가장 이쁘다. 그건 인간도, 동물도, 식물도 마찬가지다. 11년째 텃밭 농사를 짓지만 해마다 새롭고, 늘 보는 싹들이지만 늘 어여쁘다. 위 사진을 보라! 너무너무 예쁘지 않은가? 너무나 경이롭지 않은가! 



넷째, 은폐엄폐가 중요하다. 낙엽이 있으면 낙엽으로, 풀이 있으면 풀로 잘 덮어서 새들이 찾지 못하도록 하라. 덮개는 이후 콩이 자라서도 흙이 그대로 노출되지 않게 해줌으로써 콩의 성장에 도움이 되기도 한다. 아무튼 중요한 것은 콩의 본잎이 나올 때까지는 떡잎을 보호해야 한다는 점이다. 본잎이 나오면 새들이 더 이상 건드리지 않는다. 본잎이 나올락 말락 하는 그 순간에 떡잎이 가지고 있는 양분을 먹으려고 덤비는 것이다. 그러니 콩을 심고 덮개로 잘 덮어 놓으면 그 밑에서 콩이 서서히 밀고 올라와서 세상에 나타났을 때에는 이미 본잎이 나와 있는 상태가 된다.   


콩들이 덮어놓은 풀을 뚫고 나왔다. 이렇게 본잎이 나온 상태로 나오기에 새들도 더 이상 흥미를 보이지 않는다. 문제는 엉성하게 덮어 본잎이 제대로 나오기도 전에 노출되는 떡잎들이다. 또한 그렇다고 너무 두껍게 덮으면... 콩들이 제대로 나오지 못하고 길쭉하게 웃자라 버리니 주의하라.




모든 농사가 그렇듯이 쉬우려면 한없이 쉽고, 어려우려면 한없이 어렵다. 때를 알고, 땅을 알고, 일머리를 알면 이것보다 쉬운 일이 없다. 옛말처럼 "하늘의 때를 알고, 땅의 이로움을 알며, 사람의 일을 다한다"는 자세랄까. 그중에 가장 중요한 일이라면 역시나 게으름을 부리지 않고 자신의 맡은 바 일을 성실히 수행하는 것이다. 아무리 기후가 안 좋아도, 흙이 안 좋아도 성실하게 노력하는 사람의 힘으로 극복할 수 있다. 그래도 안 된다면, 그건 안 되는 일이다. 하지만 사람의 일을 다하지도 않고 무언가 이루어지길 바라는 건 너무 큰 욕심이 아닐까?

  


마지막까지 노심초사하게 만든 콩. 다른 콩보다 너무 늦게 나와서 새들의 표적이 되지 않을까 걱정했다. 하루이틀만 버티면 강한 햇살을 받아서 얼른 본잎을 낼 텐데 그 사이에 새들이 찾아올까봐 걱정한 것.



하늘도 무심하지 않으신지 걱정했던 콩이 하루 만에 강렬한 햇살과 함께 광합성을 하여 색도 푸르러지고 본잎도 삐죽이 비집고 나왔다. 물론 새에게 먹히지도 않았고. 고맙습니다. 잘 커라. 내 계속 지켜보마. 아이만 부모의 사랑과 관심을 먹고 크는 것이 아니다. 생명이라면 어떤 것이나 관심과 사랑을 먹으며 소통하면서 자란다.



밭에 다가가자 푸드드득 비둘기 한 마리가 밀밭에서 날아오른다. 아마 여기 떨어진 밀 이삭이라도 주워먹고 있었나 보다. 콩이 제대로 자리를 잡으니 그걸 건드리기보다 여기서 먹을 걸 찾는 게 더 이득이란 걸 알았던 게다. 그래, 이런 이삭이라면 내 얼마든지 줄 수 있으니 여기서 놀아라. 이렇게 밭에 다양한 작물들이 자라니 새도, 벌레도, 미생물도, 그리고 사람도 다양하게 어우러져 살아갈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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