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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농업에서 배우자(33)-장흥 이영동 선생
토종 작물 육종하는 재미, 안 해본 사람은 모르지요



 

흙살림 전통농업위원회는 전남 장흥군 용산면 쇠똥구리마을에 사는 이영동(56) 선생을 찾아뵙고 왔다. 선생께서는 약다산 자락에 자리한 농장에서 토종을 보존하는 일은 물론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단체도 이끌고, 쇠똥구리마을 추진위원장도 맡으며 바쁘게 살고 있다. “농민이 가장 훌륭한 육종가”라는 말을 몸소 실천해 여러 가지 실험과 도전을 하며 열성적으로 토종을 보존하여 토종농사의 귀감이 되고 있다.

 



 

- 토종 종자를 얼마나 보존하고 있으신가요?
= 모두 22작물 60여 품종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씨를 보존하려고 하는 정도라서 조금씩밖에 못합니다. 경제적으로 보탬은 안 되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죠. 옛날 고구마나 옥수수 같은 것만 봐도 맛이 좋습니다. 그런 뜻에서 보존하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어떤 모임인가요?
= 어릴 때부터 보던 논둑, 밭둑의 풀들이 없어지는 걸 보면서 이걸 재배해서 자원으로 이용할 수 없을까 해서 만든 모임입니다. 회원은 모두 16명이지요. 요즘 삭막해져 가는 정서를 야생화로 순화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매년 전시회도 하고, 취미 삼아 그냥 합니다. 또 야생화는 다 약초가 됩니다. 이걸 재배하는 실험도 하고 있습니다. 이 지방에는 난대 식물부터 냉대 식물도 있습니다. 지역은 남쪽이지만 산이 800고지가 넘어서 그렇습니다. 야생화가 있다고 함부로 채취하지 않고 씨를 받아서 증식시킵니다.

 

- 보존하고 있는 토종 종자 가운데 특이한 것 좀 소개해 주세요?
= 먼저 적토미가 있습니다. 일본에도 붉은쌀이 있는데, 확실하진 않지만 고려 때 우리나라에서 적미가 일본으로 갔다고 합니다. 이 벼는 알이 작은데, 너무 끈적거리는 찰벼라서 꼭 다른 것과 섞어서 먹어야 합니다. 또 키가 아주 커서 가슴까지 자라서 잘 쓰러져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비료로 재배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맛이 아주 좋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성남 농협과 결연해서 모두 팔았는데, 일본에서 홍미가 들어오면서 올해는 취소됐습니다. 홍미보다 맛이 더 좋지만 홍미가 싸게 들어오면서 소비자들이 외면했지요. 이 일을 겪으면서 소비자에게 값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맛과 질로 홍보해야 팔린다는 걸 알았습니다.
또 다마금이 있습니다. 이건 1920년대부터 심던 것인데 아마 일본에서 왔을 겁니다. 상남 밭벼는 찰벼인데, 옛날에 결혼하는 날 이걸로 주먹밥을 해서 줬습니다. 이 쌀로 주먹밥을 하면 며칠 뒤에도 굳지 않습니다. 녹토미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건 극만생종이라 빨리 심어도 이모작보다 늦게 서리 맞고 벱니다. 껍질을 까면 쌀이 푸른색이지요. 흑미도 있는데 이 흑미는 일반 흑미보다 알이 작습니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은 까만깨인 줄 압니다. 이것도 아주 맛이 좋습니다. 속까지 다 검진 않지만 도정해도 조금 검은빛이 납니다. 이것 말고도 벼는 모두 10여 가지가 있고, 새로 육종하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밖에 보리와 밀이 1종씩 있고, 콩 종류는 10가지 이상 있습니다. 콩 중에는 제비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건 한약재로도 쓰고, 옛날에는 주로 콩나물로 많이 먹었습니다. 1950년대부터 내려오는 노란 옥수수, 단단하고 바람이 잘 안 드는 조선무, 잘 타고 올라가 수확량도 많은 울타리콩 등도 있습니다. 요즘 중국에서 팥이 많이 들어오는데, 여기 있는 우리 것은 좀 어두운 붉은 색이지만 중국 팥은 선명하게 빨갛습니다. 제가 재배하는 토종 감자는 맛은 좋은데 좀 씁니다.
고추도 옛날부터 심던 것을 그대로 심습니다. 껍질이 얇아서 햇볕에 조금만 내놔도 잘 마릅니다. 먹으면 처음에는 사근사근하다가 나중에는 좀 매운 맛이 납니다. 이조는 어디서든 잘 크고 재배하기도 쉽습니다. 보통 조의 반 정도 크기밖에 안 합니다. 이건 방아를 안 찧고 그냥 먹을 수 있습니다. 토종 가지도 있는데 가지가 굵고 크지만 수량이 많지 않습니다. 개량종은 지금 그냥 먹으면 맛이 없지만 이건 지금도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개량종에 비해 토종이 줄기도 굵고 잎도 더 큰 편입니다.

 

- 특이한 벼가 많은데 논농사는 어떻게 짓나요?
= 요즘 벼는 다 농약과 화학비료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옛날에는 거름도 별로 없을 때라서 산풀을 베다가 넣었습니다. 그건 땅을 실하게 하지요. 봄에 모내기 전에 넣기도 하고, 보리를 베기 전에 그냥 갖다 놨다가 보리를 베고 물을 대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는 갈잎도 넣고 여러 풀도 넣었는데, 거기에는 무수한 성분이 들어있지요.
지금은 로터리로 위만 부드럽게 하는데, 그러면 밑에는 딱딱한 형성층이 생깁니다. 지금 논들은 조금만 파면 아래에 딱딱한 형성층이 있습니다. 이 층을 깨야 산소와 뿌리가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지금 논의 구조를 보면 거대한 화분처럼 밑이 막혀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거기에다가 키 큰 벼를 심으면 다 쓰러져 버리죠. 그러니까 옛날처럼 깊이 쟁기질하고, 넓게 심으면 되겠지요. 토종은 토종 농법으로 해야 합니다. 형성층이 생기지 않게 깊이 쟁기질하면 뿌리가 깊게 뻗을 수 있습니다. 또 요즘은 지나치게 배게 심습니다. 그래서 통풍도 안 되고, 웃자라다 보니 쓰러짐에 약합니다.
제가 처음 트랙터를 배웠을 때인데, 솜씨가 서툴다보니 쟁기가 깊이 들어가 갈았습니다. 그러니 키가 커도 잘 쓰러지지 않고 수확도 많은 것을 경험했습니다. 솜씨가 좋아지면서 얕게 갈다보니 오히려 잘 쓰러지더군요. 그걸 보고 맛 좋고 질 좋은 토종 종자와 그에 알맞은 농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나온 신품종 농작물은 사람에게 길들여져 있고, 농약과 화학비료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논밭 구조도 현 신품종에 맞게 쭉 길들여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우리나라 농민들까지도 다 길들여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신품종이 다 안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신품종도 많이 있습니다. 교배를 하면 할수록 야생성은 없어지고,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데 거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나의 고민도 거기 있고, 여러분의 고민도 거기 있는 것 아닙니까?

 

- 토종이 좋은 점은 무엇입니까?
= 앞에서 말한 것 말고도 토종은 키가 커서 자라기만 하면 얼른 주위를 장악해서 제초하는 노력이 덜 듭니다. 크게 잘 자라니 풀들이 힘을 못 쓰는 것이지요. 그래서 더 멀리 심어야 합니다. 개량호박이나 오이를 보면 넝쿨이 많이 안 뻗지만 조선 호박이나 오이는 엄청 뻗습니다. 또 토종은 씨가 많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 종자 보관은 어떻게 하시나요?
= 냉동고에 보관해보니 4~5년이면 잘 나지 않습니다. 나더라도 발아율이 엄청 떨어집니다. 저 같은 개인은 종자은행도 없으니 해마다 재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많이는 못하고 조금조금씩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해마다 심습니다. 예전에 잠깐 다른 데 나갔다 왔는데 철을 놓쳐서 한 20여 종을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한 번 잃어버리면 얼마나 안타깝고 서운한지 모릅니다. 진짜 맘이 아픕니다. 어디 가서 씨앗 하나만 구하면 참 재미가 있어요.
논을 다닐 때도 특이하게 자란 것이 있으면 눈여겨보며 지나다닙니다. 이것저것 가져다가 육종하면서 제가 생각한대로 나오면 참 재밌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뭐하냐고 해도 저는 너무 재밌어서 그것만 쳐다보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이걸 욕심 같아서는 다른 것도 더 많이 하고 싶지만 여건상 힘들어서 참습니다.

 

- 마지막으로 저희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없으신가요?
= 농촌 현실이 어려워 지금은 빚 없는 집이 없습니다. 기회만 되면 땅이라도 팔아서 빚 갚으려고 하는 실정입니다. 그러다 보니 농심은 어디 가고 돈이 되면 무슨 짓이든 다 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농심이 변했지요. 그게 제일 어렵습니다. 토종이 아직은 현실에 맞지 않지만 이제부터는 슬슬 기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맛을 우선시하는데 토종의 맛은 신품종이 따라올 수 없습니다.
60~70년대 산업화되면서 도시로 나간 사람이 많아요. 저도 친구 따라서 서울에 갔지만 6개월 살고 내려와 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옥수수, 고구마 맛 때문인 것 같아요.
토종 농작물은 우리 조상들과 함께 해온 식물이고, 우리 조상들이 먹고 살아온 작물입니다. 그중에 희로애락도 있을 것이고, 많은 토종 농작물에 대한 사연도 있고, 문화도 농심도 있습니다. 몇 천 몇 백 년 내려온 씨앗들이 60~70년대 산업화되면서, 농사도 돈벌이로 전락하면서 수확을 많게 개발하다 보니까 맛은 없어져 버리고, 땅은 땅대로 버렸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옛날 맛과 땅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토종 농작물의 장점은 너무나 많습니다. 이 땅에 알맞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야생성이 강하고 원종에 가깝기 때문에 병충해에 강하고 어느 토양이나 기후에도 적응성이 강해서 농약이나 화학비료가 필요 없습니다. 또 키가 크고 무성하게 자라기 때문에 잡초도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도 새로운 신품종들이 수없이 많이 나오지만 맛은 토종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단점은 현실 농업에 맞지 않습니다. 키가 크기 때문에 쓰러짐에 약합니다. 또 수확량이 적습니다. 수확량이 적고 현실 농업에 맞지 않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 때문이 아닐까요?
토종 농작물은 미래의 농업 유전자원으로 보존되어야 하고, 재배도 많이 해야 합니다. 덧붙여 자연의 문제는 자연을 이용해서 자연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아무튼 흙살림에서 이런 운동을 한다니 정말 반갑고, 더운 날씨에 이곳 먼 구석까지 찾아 준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리 : 김석기(흙살림 전통농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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