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30년대 충청북도 청주의 어느 곳.

선돌과 신목이 함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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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느덧 한 해가 다 지났군요. 올해는 날씨를 종잡을 수 없어 농사도 힘들었습니다. 그래도 다들 큰 피해는 보지 않으셨길 바랍니다.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은 현재 황해도 지역까지 보았습니다. 시간이 갈수록 더뎌지고 있네요. 천릿길도 한 걸음부터라는 말을 떠올리며, 한 걸음은 갔으니 앞으로 포기하지 않고 계속 나아가려고 합니다. 이번에는 충청도 지역을 소개하겠습니다.

청주에서 충주로

934년 6월 30일, 다카하시 노보루는 자동차로 청주에서 충주까지 달렸습니다. 그는 본분이 학자인지라 경치를 구경하기보다는 논밭이 먼저 눈에 들어왔나 봅니다. 차를 타고 지나면서 본 논밭의 풍경을 다음과 같이 적어 놓았습니다.


1935년 자동차 사진. 농민들에게는 여전히 함부로 다가설 수 없는 물건이었을 것이다

① 콩에 들깨를 군데군데 섞어짓기한다. 들깨는 옮겨 심은 것
콩밭에 빈자리를 두지 않으려고 군데군데 들깨를 심은 모습이다. 보통 들깨는 밭 둘레에 쭉 둘러 심는 일이 많은데, 특이한 모습이다.




② 콩과 수수 섞어짓기
콩과 수수는 자주 섞어짓는 작물이다. 수수는 거름을 많이 먹고, 콩은 거름을 만드는 성질을 활용한 모습이다. 몇 년째 콩과 수수를 섞어짓기하는데, 실제로 아주 궁합이 잘 맞는다.



③ 가을보리 사이짓기 콩
보리는 보통 밭을 싹갈이(또는 삭갈이, 밭 전체를 완전히 다 간다는 뜻)한 뒤, 고무래로 골을 타고 심는다. 거름이 많은 집은 밭에 거름을 쫙 뿌린 다음 소로 쟁기질하지만, 그렇지 않은 집은 골을 타 보리를 심고 그 위에 흙 대신 두엄을 덮는다고 한다. 그리고 우리 나라는 보통 겨울에 비가 많이 오지 않기에 골에다 심는다. 그러니까 골에는 보리를 심고, 이듬해 봄이 오면 두둑에는 콩을 심는 형식이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유럽은 오히려 여름에 비가 별로 오지 않고 겨울에 많이 와서, 여름에는 농사를 짓지 않고 겨울에 농사를 짓는다고 한다.
아무튼 이때는 망종에서 스물 닷새나 지났으니 보리는 밑동만 남았을 것이다.



④ 가을보리 사이짓기 목화
콩 대신 목화를 심은 모습이다. 보리는 다 베었을 텐데, 목화는 싹이라서 그런지 보리보다 작다. 아니면 그림을 잘못 그렸을 것이다. 당시 목화는 중요한 돈벌이 작물이었다. 일제는 방직업 같은 공업 원료들을 조선에서 마음껏 긁어 갔다. 농민들이 물세에 여러 세금을 내려면 울며 겨자 먹기로 목화를 심을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지금도 상황은 크게 다르지 않다.



⑤ 콩 홑짓기(줄지어 점뿌림)
두둑을 좁게 지어 한 두둑에 한 줄로 콩을 심은 모습이다.



⑥ 콩 홑짓기 가로로 점뿌림
위와 달리 두둑을 더 넓게 짓고, 콩을 더 배게 심었다.



⑦ 가을보리 60㎝(2尺)로 줄뿌림한 사이에 콩 1줄로 점뿌림
올해 안산 텃밭에서는 밀에 사이짓기로 콩을 심는 실험을 했다. 결과는 밀이 버티고 서 있으니 차츰 극성스러워지는 새들에게서 콩을 지킬 수 있었다. 당시는 새 피해가 그리 크지 않았을 것이니, 그런 이유 때문에 이렇게 심지는 않았을 것이다.



⑧ 일반적으로 논두렁콩을 많이 심었다
전문적으로 논농사만 크게 짓는 곳이 아니라면 지금도 여느 농촌이나 다 논두렁콩을 심는다.

⑨ 가을밀 사이에 콩. 120㎝(4尺)로 밀을 줄뿌림한 사이에 콩을 2줄로 점뿌림
7번 그림을 떠올리면 된다. 대신 두둑을 더 넓게 지어 콩을 2줄로 심은 것이 차이일 뿐이다.

⑩ 가을보리 사이에 조 줄뿌림
보리의 두둑 사이는 약 90㎝(3尺), 대부분 펀펀한 두둑이다. 조 사이사이에 콩을 섞어 심었다.
보리는 수확했겠지만, 한 밭에서 3가지 작물을 볼 수 있다. 보통 2년 3작은 이렇게 돌린다. 봄에 조를 심어 가을에 거두고, 거기에 밀이나 보리를 심는다. 그리고 이듬해 봄에 거둔 뒤, 다시 콩을 심어 가을에 거둔다. 그러고 나서 이듬해 봄까지 땅심을 찾도록 묵힌다.
하지만 이 밭에서는 특이하게도 콩과 조를 함께 심었다. 다카하시 노보루는 조가 자란 길이가 얼마 되지 않는 것을 보고 여름에 심은 것이 아닌지 추측하고 있다. 올해 밭에서 콩과 조를 함께 심어 본 결과, 별 문제는 없었다. 그러니 이것은 2년 3작이 아니라, 그냥 보리를 거둔 뒤 콩에 띄엄띄엄 조를 심거나 그 반대의 경우일 것이다.



⑪ 밀을 줄뿌림한 사이에 조를 줄뿌림한다. 보리도 이와 같다

⑫ 밀을 줄뿌림한 사이에 콩을 줄지어 점뿌림한 곳이 많다

충북 청주군 사주면 복대리
먼저 복대리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 본래 이곳은 청주군 서주내면의 지역이었다. 여기에 짐대(솟대)가 서 있어 짐대마루라 하다가, 말이 변하여 진때마루 또는 복대(福臺=卜大)라 했다. 1914년에 실시한 행정구역 폐합에 따라 죽천리(竹川里)와 화진리(華辰里) 일부를 병합하여 복대리라 했다. 지금의 청주시 흥덕구 복대동으로서, 중부고속도로와 충북대학교 사이에 낀 지역이다.
다카하시는 이곳에서 박인규(朴寅圭) 씨를 만났다. 그의 식구는 모두 여덟이다. 그들은 아버지(53), 자신(31), 아내(23), 딸(3)과 둘째 아들 내외(23, 22), 셋째 아들(18), 넷째 아들(11, 보통학교)이다. 그 가운데 농사짓는 사람은 3명이고, 둘째 아들과 셋째 아들은 시험장에서 일꾼으로 일한다고 한다. 현재 있는 '충청북도 농업기술원 종자생산시험장'이란 곳이 1957년 1월 1일 청원군 사주면 복대리에서 진천으로 이전했다는 기록으로 봐서, 이 시험장을 말하는 것 같다.
이 사람이 농사짓는 곳 가운데 갱빈밭(ケンビンパ)에서 보리 그루갈이 콩, 들깨를 기르는 방법을 살펴보겠다.

먼저 이 밭은 집에서 327m(3町) 떨어진 곳으로서, 600평이 두 곳으로 나뉘어 있다. 소작료는 정조로 나락 1섬 3말 5되를 낸다. 모두 600평이지만 콩과 들깨를 그루갈이하는 곳은 500평이다.
보리를 심으려고 거름을 내는데, 배합비료 18.75㎏과 두엄 50지게(1지게에 45~56㎏)을 혼자서 하루에 나른다. 그런 다음 쟁기질은 씨를 뿌리기 5일 전인 음력 9월 5일에 한다. 그리고 홑짓기하던 콩에 그루갈이로 보리를 심을 때 쟁기질하는 방법은 싹갈이다. 그런데 다카하시 노보루는 이 대목에서 이런 방법은 경기도에서 쟁기질하는 것과 비슷하다고 지적한다. 이는 내가 밭에서 마을 어르신께 들은 이야기와도 똑같다. 이로 미루어 보아, 기계가 밀려들기 전인 1960~1970년대까지만 해도 1930년대와 크게 다르지 않은 방법으로 농사지었음을 알 수 있다.



자세한 방법은 먼저 베어 낸 콩 그루를 중심으로 두 거웃 갈이 하여, 양쪽으로 째며 갈아엎어 땅을 펀펀하게 한다. 써레질은 나중에 한다. 그런 다음 쟁기질한 방향과 직각으로 보리씨 뿌릴 골을 낸다. 그러니 고랑이었던 곳이 이듬해에는 두둑이 되고, 그 다음해에는 다시 고랑으로 만들어 땅을 알맞게 돌아가며 활용할 수 있다. 골을 낼 때는 보습을 끼워서 한 거웃 갈이를 한다. 두둑과 두둑의 너비는 쟁기꾼이 알아서 알맞게 한다. 골을 탄 뒤에는 쇠스랑으로 긁는다. 아무래도 손으로 골을 깔끔하게 다듬는 것이 목적인 듯하다.
이듬해 사이짓기로 콩을 심는 것은 '골고리'라고 부른다. 그럴 경우에는 보릿골을 넓게 탄다. 보리는 동보리라는 품종을 심는데, 아마 동(冬)보리는 곧 겨울보리를 말하는 것 같다. 뿌리는 보리의 양은 모두 2말이라고 한다.

이와 같은 일을 할 때에는 주인, 셋째 아들, 품앗이 남자(마을 사람) 4명, 품앗이 소 1마리(쟁기도 함께)가 함께 한다. 일하러 오는 마을 남자 4명은, 보리농사인 만큼 두레가 아니라 그냥 품앗이일 것이다.



그리고 소가 와서 일해 주면 남자 둘이 가서 그만큼 일해야 한다. 그리고 소가 일하러 오면 아침, 저녁에는 소 주인이 먹이를 책임지고, 점심만 빌린 사람이 책임진다고 한다. 이 집처럼 쟁기까지 빌려쓰면, 소 1마리+쟁기의 품삯으로 2원에다 쟁기꾼 품삯 1원까지 모두 3원을 줘야 한다. 논에서 일하건 밭에서 일하건 모두 똑같고, 모내기철처럼 아주 바쁠 때라고 특별히 더 비싸지도 않다. 다만 바쁠 때에는 일꾼에게 세 끼 밥을 챙겨 주고, 담배(3전)를 주면 하루 품삯은 60전이다.

이렇게 보리를 심을 때에는 농기구로 쟁기 1대, 쇠스랑 5자루, 삼태기 2개, 토입기(土入器) 1개, 씨앗 담는 바가지 1개를 쓴다. 이 사람들과 농기구를 가지고 한나절이면 500평에 보리 심기를 끝낸다.

이후 음력 9월 안에 보리 싹이 나오면, 곧바로 사람 똥오줌을 두 번 정도 준다. 약 100병 정도인데, 한 병에 약 37.5㎏ 들어간다. 웃거름을 한 번 줄 때마다 남자 두 사람이 함께 한다. 웃거름은 사람 똥오줌을 기본으로 주는데, 그것 말고도 돼지 오줌이나 부엌의 구정물 같은 것도 준다.
첫 번째 웃거름은 싹이 난 뒤 바로 준다. 두 번째 웃거름은 석 달 뒤인 초봄에, 그 동안 모아 둔 똥오줌을 내다가 준다. 또는 얼음이 풀릴 때 화학비료를 줄 때도 있다. 그럴 경우에는 배합비료 1가마니 37.5㎏을 가루로 만들어 준다. 이 배합비료 1가마니는 4원 36전이다. 앞에 쟁기꾼의 하루 품삯이 1원이었으니, 요즘처럼 사람 품삯이 비료값보다 더 비싼 것과 확실히 다르다.

음력 3월쯤에는 주인과 셋째 아들이 김을 맨다. 이 둘이 대략 이틀쯤 걸려 끝낸다. 김매고 5일 뒤에는 주인 혼자서 토입기로 흙을 넣는다. 하루면 충분히 마친다. 

음력 5월 중순, 양력으로 따지면 5월 하순에서 6월 초순에 보리를 벤다. 품앗이 2명과 주인이 함께 낫 3자루를 들고 한나절 동안 보리를 베고, 이후 지게로 나른다. 집에 나른 다음에는 이 세 사람이 도리깨로 떠는 데 한나절 걸린다. 수확량은 3섬(최고는 4섬이었음), 보릿짚은 7지게가 나왔다. 이걸 내다 팔면 겉보리 1섬에 13원 50전을 받고, 보릿짚은 1지게에 60전을 받는다.

방아는 발동기로 찧는데, 그러면 원래 양에서 보리쌀 56~67%를 얻는다. 여기서 나오는 보리기울은 집에 가지고 간다. 2말 5되 정도의 보리기울을 얻어, 집에 가지고 가서 돼지에게 먹인다. 이 집은 소가 없었으니 돼지가 중요한 자원이었을 것이다. 소가 없는 집에서는 거름도 밟히고 급할 때 돈으로 바꾸려고 돼지라도 한두 마리씩 꼭 키웠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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