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 겨울, 세계의 인류는 예상치 못한 날씨와 지각변동 등으로 큰 고통을 받았습니다. 이런 현상이 단지 한때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이 더욱 우려스러울 뿐입니다. 이런 변동의 시기, 귀농통문에서는 ‘소농’이란 주제를 좀 더 심도 있게 다루려고 합니다. 적절한 비유는 아닐지 모르지만 과거 지구에서 가장 몸집이 큰 생물이었던 공룡은 변동의 시기를 이기지 못하고 멸종한 데에 반하여, 오히려 몸집이 작았던 생물이 살아남았던 역사가 있습니다. 지금과 같은 변동의 시기에는 작은 몸집으로 기민하게 변화에 적응하는 쪽이 살아남는 데 더 적합할지도 모른다는 역설이 재밌습니다. 말 그대로 장자의 쓸모없음의 쓸모있음, 다시 말해 무용지용(無用之用)의 논리가 적용되는 시대라고 볼 수는 없을까요.

소농에 대해서는 다양한 반응이 있으리라 예상합니다. 지금 같은 시대에 소농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 있다는 것인지, 소농이 농사땅이 작기만 하면 소농인 것인지, 과거로 회귀하자는 것인지, 많은 우려와 반박도 있을 것이라 생각합니다. 맞습니다. 아직 소농에 대한 개념 정의가 명확한 상태는 아닙니다. 이런 상태에서 소농이란 주제를 심도 있게 다룬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 소리일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물론 많이 부족하겠지만, 지금 우리 시대의 농업과 그 모습을 살피며 앞으로 차차 그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려고 합니다. 그런 맥락에서 일단은 소농을 참된 농사를 짓는 일이라고 정의하고자 합니다. 일단 간략히 화석에너지에 덜 의존하면서 자신에게 주어진 조건과 환경에 알맞은 방법을 이용하여 인력과 자연력을 최대한 활용하고, 그렇게 감당할 수 있는 만큼의 농사땅에서 농사지으며 사는 농가를 소농이라고 하겠습니다.


12월에 있었던 편집회의에서 ‘소농’이란 큰 주제를 특집으로 어떤 내용을 다룰 것인지 논의한 결과, 올해 귀농통문에서는 네 가지 소주제를 제시하기로 하였습니다. 그것은 바로 불교에서 말하는 세상을 구성하는 네 요소인 지(地)·수(水)·화(火)·풍(風)입니다. 우연히도 불교에서 말하는 지수화풍은 농사에서도 가장 중요한 네 요소인 흙·물·햇빛·바람과도 일맥상통하는 면이 있습니다. 누구나 알다시피 작물은 흙에 뿌리를 박은 채 물과 양분을 빨아들이고 햇빛을 받으며 호흡을 통해 생명을 이어나갑니다. 그렇게 작물과 가장 밀접하기에 가장 기본적인 요소인 지수화풍을 통하여 농사의 근본을 돌아보려고 합니다. 또한 흙·물·햇빛·공기란 주제는 귀농통문의 발간 횟수와도 일치하고 있다는 점이 재밌기도 하면서 계간지인 귀농통문과도 잘 어울린다고 생각했습니다.


그에 따라 이번 봄에 나오는 53호에서는 수(水), 곧 ‘물’을 먼저 다루려고 합니다. 지구의 표면을 구성하는 것 가운데 가장 비중이 큰 것도, 생명을 구성하는 것에서도 물이 차지하는 비중은 엄청납니다. 지구 표면의 70%는 물론, 소우주(小宇宙)인 인간의 몸 또한 물이 가장 큰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비중이 크다는 건 그만큼 우리의 생명과 뗄 수 없는 관계라는 걸 반영하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론 농사와 작물에도 물은 아주 중요한 요소라는 건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런 소중한 물이 현재 우리에게 어떻게 다가오고 쓰이고 있는지, 이번 호에서는 이런 질문에 대한 답을 찾는 과정이 펼쳐질 것입니다. 가깝게는 날마다 마시는 식수에서부터 현재 남용되고 있는 지하수는, 또한 물 부족 국가로 분류되어 있는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아무렇지도 않게 낭비되고 있는 빗물에 관련된 이야기까지, 물에 관한 전반적인 이야기를 나누고자 합니다.


그 이후 다음 호부터는 지구의 가장 큰 에너지원인 화(火)와 생명 활동의 기본인 호흡과 관련된 풍(風), 그리고 모든 걸 아우르고 정리하는 의미에서 지(地)라는 주제를 차례대로 다루려고 합니다. 물론 순서야 그때의 사정에 따라 바뀔 수도 있지만, 어떠신가요? 괜찮습니까? 올해 귀농통문이 다루려는 이야기에 많은 관심과 격려, 말씀을 부탁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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