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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속 읽어 가다 보면 갸우뚱하게 만드는 부분도 있지만, 아무튼 씨앗을 지키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이긴 하다.

모든 생명은 씨앗에서 시작된다 ―"씨앗 학교"의 오카모토 요리타카岡本よりたか 씨가 "씨앗 받기"를 권하는 이유



요즘은 정원이나 텃밭이 취미라고 하는 사람도 많을 것이다. 하지만 모종이나 씨앗은 어떻게 구하는가? "씨앗은 사는 것." 그것은 농민도 마찬가지이다. 그런데 '씨앗 받기'의 중요성을 호소하고 있는 것이 '씨앗 학교'를 세운 무비료 재배자 오카모토 요리타카 씨이다. "모두의 생명은 씨앗에서 시작된다"고 각지에서 씨앗의 매력을 알리고 다닌다. 씨앗에 얽힌 위기부터, 간단히 할 수 있는 씨앗 받기의 소중한 힌트까지 알려주었다.  

어머니에게 들은 "생명을 먹으세요"

―오카모토 씨가 농업을 시작한 것은 40대가 되면서부터이네요. 왜 농부가 되려고 생각한 겁니까? 

오카모토 저는 40세까지는 텔레비와 IT 관련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아시다시피 그쪽 생활은 불규칙하고, 스트레스도 심하죠. 몸 상태가 망가져 버린 겁니다. 그때 생각난 것이 어린 시절부터 계속 들었던 "먹을거리가 중요하다"는 어머니의 말. 어머니는 항상 "생명을 먹으세요"라고 이야기했어요. 

그래서 믿을 수 있는 먹을거리를 얻기 위해서 직접 농사짓지 않으면 안 되겠다 하여 채소 농사를 시작했습니다. 가장 처음은 상자텃밭부터요.

 

―농약과 비료는 처음부터 쓰지 않은 겁니까? 

오카모토 네. 사실 영상 일을 하고 있을 때, 농약의 독성을 추적하는 다큐멘터리를 촬영한 적이 있어서 처음부터 농약에 저항감이 있었습니다. 비료도, 화학비료는 물론, 유기비료도 냄새가 독하여 아무래도 사용할 마음이 생기지 않았어요. 그럴 때, 자연농법의 대가 후쿠오카 마사노부 씨의 저서 <자연농법 짚 한 오라기의 혁명>을 읽고 무비료로 하겠다고 결심했죠.  

씨앗만 있다면, 살아갈 수 있다

―2018년에 <씨앗은 누구의 것인가?>를 출판했는데, 씨앗에 관심을 가지게 된 계기는? 

오카모토 씨앗을 생각하기 시작한 건, 사실 농업으로는 생활할 수 없어 포기하려 한 때였습니다. 

회사를 관두고, 야마나시山梨에 밭을 빌려 취농을 하고 있었는데, 무비료로는 생각처럼 수익이 나오지 않았어요. 정신이 들면 저금도 약간. 세금을 체납하게 되었을 때는 정말이지 수렁을 맛보았습니다. 이제 농업을 계속하는 건 무리라고 …….



―일단 농업을 포기하려 했네요.

오카모토 그 무렵은 이미 밭도 내버려 두었어요. 그런데 오랜만에 가 보니 아무리 노력해도 잘 안 되던 토마토가, 그것이 보기 좋게 열매가 달려 있었어요. 감동했지요. 그리고 생각했습니다. 우선 밭에 가면 먹을거리는 있다. 씨앗이 생긴다. 손에 씨앗이 있으면 그렇게 많은 돈이 없어도 살아갈 수 있지 않을까?  

직접 씨앗을 받게 된 것은 그것 때문입니다. 수확할 수 없어도 어쨌든 씨만은 받으려고.


―그때까지는 왜 씨앗을 받지 않았나요? 

오카모토 확신이었죠. 농업을 시작할 때 직접 받은 씨앗은 맛있는 것이 나오지 않고, 양도 적다고 배운 거죠. 그래서 농약이나 비료는 사지 않아도 씨앗만은 종묘상에서 구입했어요.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 위화감도 들었습니다. 씨앗을 구입한다는 건 돈이 없으면 할 수 없다. 사회경제의 안에 완전히 통합되어 있죠. 저는 먹을거리를 농사짓는다는 행위는 경제와 분리해서 고려해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었으니까요. 


씨앗은 환경을 기억하고 스스로 개량한다 

―직접 받은 씨앗을 사용하면서 무엇이 변화했나요?

오카모토 저의 경우, 채소들이 건강히 자라게 되었어요. 병도 잘 안 생깁니다.

―대단하네요. 왜 그런가요? 

오카모토 씨앗은 설계도 같은 것입니다. 심어진 토지의 기후와 토양, 곤충들의 종류와 풀의 다양성 등을 모두 기억하면서 제대로 자라도록 스스로 개량해 갑니다. 그래서 일단 병에 걸리면 그 정보를 수집하고, 다음 세대에서는 그 질병에 대한 저항성을 갖게 되지요. 


여러 종류의 보리 씨앗. 왼쪽에서 두 번째는 고대 보리의 일종. 


―굉장한 능력이군요!

오카모토 저의 경험으로 말하자면, 1년째부터 서서히 정보가 축적되어 7년이면 완전히 그 토지에 익숙해집니다. 예를 들면, 자연농법으로 유명한 카와구치 유이치川口由一 씨의 밭에 가면 마치 풀 속에서 채소가 자라고 있는 것 같은 상태랍니다. 자가채종을 계속한 씨앗이 풀 속에서 자라는 유전자가 된 것입니다. 종묘상에서 구입한 씨앗으로는 똑같은 결과가 나오지 않아요.

자가채종으로 이어가면 씨앗이 환경을 기억하기 때문에 재배의 노력이 줄어듭니다. 씨앗을 구입한다는 건 모처럼 정보가 기록된 설계도를 버리고 다시 처음부터 새로운 설계도를 사용하는 것과 같은 일입니다. 


잡초가 자라는 밭에서 씩씩하게 크고 있는 염교의 싹 


씨앗에게 맡기는 것이 최고

―<씨앗은 누구의 것인가??에서는 판매하고 있는 씨앗과 자가채종한 씨앗은 외형도 전혀 다르다고 써 있습니다. 오카모토 그렇습니다. 예를 들면, 당근의 경우 시판하는 씨앗은 약간 타원형으로 휘어져 있지만, 자가채종한 것은 잔털이 빽빽하게 붙어 있습니다. 마치 작은 벌레처럼.

씨앗이 달려 있는 채로 말려, 건조 보존시키는 당근의 꽃. 


―어떻게 된 것인가요?

오카모토 털이 있으면 기계로 잘 파종할 수 없기 때문에, 종묘상이 없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실은 이 털이 당근의 발아에 굉장히 도움이 되어요. 

당근은 물을 열심히 주지 않으면 발아하지 않지만, 자가채종한 씨앗은 비가 한 번 오면 발아합니다. 털이 수분을 쥐어주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인간은 심기 어렵다고 털을 없애고, 발아하지 않으면 불평을 합니다. 효율화라는 이름으로 비효율적인 일을 하고 있습니다. 내 경험으로는 그렇게 생각합니다. 

당근만이 아니라, 식물은 필요하지 않은 것은 몸에 달지 않아요. 각각 그 모양에는 이유가 있습니다. 채소의 일은 채소가 가장 잘 알고 있어요. 씨앗에게 맡기는 것이 최고가 아니겠습니까? 


三浦 무의 씨앗(앞쪽)


씨앗 받기의 관습은 왜 사라졌을까


―일반적인 농업에서도 보통은 씨앗을 구매하지요. 

오카모토 네. 지금, 슈퍼 등의 진열대에 있는 채소의 대부분은 두 종류 이상의 품종을 교배시킨 교배종(F1:잡종 제1대)인데, 교배종이 나와서 씨앗 받는 관습은 사라져 버렸습니다. 

왜냐하면 구입한 교배종의 씨앗을 심으면 맛과 모양, 크기가 균일한 작물이 나오지만, 거기에서 받은 씨앗을 심으면교배시키기 전 각각의 품종이 지닌 형질이 나타나 모양도 크기도 제각각이 됩니다. 


순무의 고정종 가운데 하나, 미야마みやま 작은 순무. 생으로 갉아 먹어도 부드럽고 맛있다 


―그럼 시장에 내기는 힘들겠네요. 

오카모토 본래는 그 다양성이야말로 식물이 생존하기 위한 생명력이지요. 하지만 유통을시켜도 팔리지 않아 곤란하기에 농민은 해마다 씨앗을 구매해 심게 된 것입니다.  

저는 교배종을 부정하지 않아요. 교배종이 있기에 지금의 일본의 식탁에는 채소가 많이 올라가고 있죠. 사람의 지혜가 집적된 기술이라고도 생각합니다. 

다만, 씨앗을 남기는 것은 식물의 최종 사명입니다. 나 자신, 씨앗 받기를 하게 되어 "생명의 순환"을 피부로 이해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씨앗 받기만큼은 잃어 버리지 말자고 말하고 싶습니다.  


씨앗을 턴 뒤의 가지 


씨앗은 누구의 것인가?

―그런데 지금, 씨앗을 둘러싸고 일부 기업에 의한 지배와 독점이 우려되고 있습니다. 오카모토 씨는 이에 대해 어떻게 생각합니까?

오카모토 기업이 씨앗의 권리를 주장하고, 농민의 자가채종을 금하려 하는 흐름이 있다는 것을 느끼고 있으며, 강한 위기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처음에 불쑥 생각한 것은, 유전자변환 종자였습니다. 유전자변환 종자에는 개발한 기업에게 지적재산권인 특허가 주어져 있습니다. 예를 들어, 일반 유채를 재배해도 의도하지 않게 이웃 밭의 유전자변환 유채와 교잡된 것만으로도 특허 침해로 고소를 당합니다. 

하지만 씨앗을 맺는 건 식물로서 당연한 생명 활동입니다. 씨앗은 식물 자신이 생명의 이어달리기를 해 온 것입니다. 그런데 인간이 그 씨앗을 '자신의 것'이라고 주장하는 건, 딱 오지 않습니다. 

―일본에서는 2018년 4월에 "주요 농작물 종자법(이하 종자법)"이 폐지되어 '자가채종 금지인가' 하고 시끄럽습니다. 

오카모토 여기는 조금 조심해야 하는 바입니다. 

종자법은 어디까지나 벼, 보리, 콩에 관한 법률로, 전쟁 이후의 혼란기, 국가가 농민을 대신해 주식인 벼, 보리, 콩의 원종, 원원종을 남기려고 태어난 것입니다. 폐지된 것은 시대도 변하고, 민간도 많이 만들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경쟁의식을 높여 가격의 안정을 도모한다는 이유였습니다. 

그래서 종자법이 폐지된다고 하여 곧바로 자가채종이 금지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렇다면 안심일까요? 

오카모토 아니, 그렇다고도 할 수 없습니다. 종자법이 폐지되어서 앞으로 바이오 기업을 포함한 민간의 종묘회사의 진출이 활발해질 것이라 예측할 수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벼, 보리, 콩의 씨앗에서도 기업과의 사이에서 '자가채종 금지'의 계약이 늘어날지도 모릅니다. 다만, 저는 종자법에는 그다지 집착하지 않는 편이 좋다고 생각합니다. 


싹을 내민 보리밭 


걱정해야 할 건 종묘법의 개정 

―그것은 무엇을 의미할까요? 

오카모토 제가 정말로 우려하는 것은 씨앗에 관한 또 다른 법률 '종묘법'이 개정될지도 모른다는 겁니다. 자가채종의 권리에 직접 관련된 것은 종묘법 쪽입니다. 

종묘법은 벼, 보리, 콩만이 아니라 채소와 꽃 등 식물 전체에 대한 법률입니다. 종묘법에서는 등록된 품종에 대해서는 개발자에게 '육성자권'이 주어지고, 육성자권을 가진 주체 이외는 씨앗과 모종을 육종하거나, 판매, 양도하는 일은할 수 없다고 합니다. 한편, 현재 상태에서는 농업인이 씨앗을 받거나, 받은 씨앗으로 직접 작물을 재배하는 일(자가증식)은 인정되고 있습니다(※1)。

※1:예외적으로, 종묘회사가 계약으로 자가채종을 금지할 수 있다. 또, 감자와 딸기 등 뿌리와 줄기, 덩굴 등에서 '영양번식'으로 늘어나는 것은 자가증식이 제한되어 있다. 


자가채종한 씨앗이 보관되어 있는 "씨앗 학교"의 보관고 


―그 종묘법이 어떻게 개정되려 합니까? 

오카모토 품종 등록된 품종에 대하여, 모든 자가채종을 금지하려 하는 움직임이 있습니다. 

그 전제로 있는 것이 '식물 신품종의 보호에 관한 국제조약(UPOV 조약)'입니다. 이전, 딸기와 포도 등에서 일본이 육종해 등록한 품종이 한국과 중국으로 건너가 허가 없이 재배된 사건이 있었는데, UPOV 조약은 그러한 문제를 받가 각국의 지적재산인 육성자권을 지키기 위해 세계 공통의 규칙으로 체결된 겁니다. 

요점이 되는 건 UPOV 조약에서는 원칙적으로 모든 자가증식이 금지되어 있는 점. 그리고 지금 농수성은 종묘법도이에 맞추어 씨앗을 받거나, 받은 씨앗을 직접 심는 일까지 금지하는 방향으로 바꾸려고 하고 있습니다. 

―자가증식이 금지된다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오카모토 '씨앗은 사는 것'이라 믿고 있으면 별로 와닿지 않을지도 모르지만, 기업에게 씨앗이 집중되는 건 매우 걱정스러운 일입니다. 왜냐하면 만약 기업이 씨앗을 팔지 않으면 어떻게 합니까? 지금보다 몇 십 배 가격을 올리면? 

실제 인도에서는 재래종 면화의 씨앗에 대한 권리를 거대 바이오 기업이 독점하고, 유전자변형 종자만 판매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게다가 씨앗의 가격이 80배나 뛰었습니다. 똑같은 일이 일본에서도 일어날 수 있어요. 

"씨앗 학교"에서 씨앗 받기를 퍼뜨리고 싶다

―오카야마 씨는 2018년 기후현 군죠시郡上市에 종자은행 '씨앗 학교'를 설립했습니다. 그것도 이런 상황에 대한 위기감 때문입니까? 

오카야마 그렇습니다. 언제라고 할 수는 없지만, 이대로면 언제 종묘법이 개정되어 버릴 겁니다. 만일 자가채종을 하지 못하게 될 때, 수중에 씨앗이 없으면 안 되니까요. 지금 시작하지 않으면 늦습니다. 


'씨앗 학교'에서는 회원 여러분이 채종한 씨앗을 보낸 걸 받아서 보존하는 일과 동시에, 씨앗 받는 기술을 지도하거나, 씨앗 교환회를 하거나 하여 '씨앗은 남기는 것'이란 의식화를 하고 싶습니다

―반응은 어떻습니까?

오카모토 씨앗 받기를 하는 사람의 수가 늘어나고 있는 걸 실감합니다. 수확량만 보면 그다지 널리 퍼지지 않았다고 판단할지 모르지만, 집에서 작은 화분에 재배하는 사람까지 포함하면 씨앗 받기를 하는 사람은 전업농의 수보다 많지 않을까 해요. 


오카모토 씨 자신이 채취한 씨앗과 전국에서 보낸 씨앗이 보관되어 있다. 


호박과 토마토의 씨앗을 받아 보자!

―채소를 기르지 않아도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이 있나요? 

오카모토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구입한 호박의 씨앗을 받아보면 어떨까요. 씨앗 주변에 붙은 걸 깨끗이 씻어서 잘 말립니다. 이걸 땅에 심으면 싹이 나고, 호박이 달릴 겁니다.  

호박 이외에도 토마토, 수박, 멜론 등이 있어요. 씨앗을 빼서 씻어 말리기만 해도 됩니다. 상자텃밭 하나에서도 할 수 있어요. 

씨앗 받기부터 직접 하면, 단편적으로 생각했을 때에는 보지 못하던 일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식물의 본질이 보이기 시작합니다. 씨앗에서부터 먹을거리를 자신의 손으로 만들어 낼 줄 알면, 어디에 가서도 살 수 있다는 자신감이 듭니다. 

열매에서 빼 말리고 있는 씨앗 


―왠지 두근두근 하네요.

오카모토 어렵게 생각하지 말고 즐겁게 하면 좋습니다. 토마토라는 하나의 저런 작은 알갱이에서 몇 개가 생기는 것일까요? 흔히 말이에요. 파칭코보다 승률이 좋아요(웃음).  어쨌든 한 알에서 몇 만 알이나 생기니까요. 

"씨앗은 누구의 것인가?" 저는 계속 이 질문을 생각해 왔는데, 누구의 것도 아니다. 그 식물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種は誰のものか?

岡本よりたか/著(2018年、veggy Books・キラジェンヌ出版)

農作物の種を巡る世界情勢が目まぐるしく変わってきている現在。種がなぜ大事なのかを改めて考えると同時に、種がどのように作られ、私たちの命とどうかかわっているのか、さらには世界と食卓を結ぶ一粒の種にどんな問題が起きているのかを、分かりやすく解説。そのうえで私たちが今すべきことをライフスタイルから見つめ直していきます。





岡本よりたかさん

오카모토 요리타카岡本よりたか

空水 비오팜 농장주。CM 크리에이터、TV 디렉터 등의 취재를 통하여 농약과 제초제, 비료가 환경에 미치는 파괴적인 피해를 알고, 40세 중반에 야마나시현 호쿠토시北杜市의 야스카타산八ヶ岳 남쪽 기슭에서 무농약, 무비료, 무제초제, 자가채종 밀과 채소를 재배하기 시작한다. 현재는 기후현 군죠시郡上市로 다시 이주하여, 자가채종의 중요성을 호소하는 세미나와 강연을 개최하면서 살기 어려운 이 세상에서 살아남기 위한 수단으로 자연농법을 보급하는 일도 노력하고 있다. 무비료 재배 세미나 강연활동은 연간 150일 정도, 전국에서 개최하고 있으며, 그와 함께 1800평 밭에서 농업도 계속하고 있다. 또한 민간 종자은행인 '씨앗 학교'를 주최하고, 농업 학교 등도 개최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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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의 종자 관련 법안. 

그래도 한국은 미국에 비하면 느슨한 편이라고 할 수 있다. 


http://ejatlas.org/featured/se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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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야 조금 의문이 풀렸다. 콜롬비아의 농민들이 왜 파업에 나섰는지 말이다.

뉴스로 콜롬비아의 농민들이 파업에 나섰다길래 "우와!" 하며 감탄하고 있었는데, 왜 그랬는지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는 글을 발견했다.


결론부터 말하면, 콜롬비아가 미국 및 유럽연합과의 FTA로 종자산업을 강화하는 법안이 시행되었고, 그로 인해 농민들이 자신의 종자를 이용하지 못하게 된 것이 그 밑바탕에 깔려 있었다. 물론 가장 큰 요인은 소규모 가족농이 더 이상 안심하고 농사짓지 못하게 만든 농업 정책과 환경조성에 있지만 말이다. 

이 글을 보면서 IMF로 종묘회사들이 다국적 기업들에게 홀랑 넘어갔던 한국의 암담했던 시절이 생각난다. 

작년부터는 정부 차원에서 종자산업을 강화한다며 종자산업법을 개정하고 종자 강국이 되겠다며 본격적으로 나섰지. 이름도 재미난 골든씨드 프로젝트가 그것이다.


콜롬비아의 이야기가 남의 일 같지가 않다. 세계는 이렇게 비슷한 상황에 놓여 있구나. 연대투쟁이 중요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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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19일, 콜롬비아의 농민단체들이 전국적인 대규모 파업을 시작했다. 그들을 도로를 가로막고, 차에 우유를 쏟아부으며 도시를 위한 먹을거리 생산을 중지했다. 문제는? 농민들이 정부 정책에 의해 벼랑으로 내몰렸기 때문이다. 




"대통령이여, 우리의 행진은 평화이다. 우린 평화로운 코코아 재배자이다. 우릴 도와달라!"




정부는 소농에 대한 지원을 거의 제공하지 않는다.1 그 대신 부유한 소수 엘리트의 이해관계에 복무하는 사회경제적 모델을 받아들였다. 최근 미국과 유럽연합과 체결한 자유무역 협정(FTA)이 보조금을 받은 수입산과 경쟁할 수 없도록 콜롬비아 농민들을 약화시키고 있다.2 콜롬비아 정부는 적극적으로 대개 외국계인 대기업(브라질의 Monica Semillas, 이스라엘의 Merhav, 미국의 카길)의 토지수탈을 조장하여, 식량주권을 지향하는 가족농을 희생시켜 수출 지향형 농산업을 추진하고 있다. 


그러나 농업 분야는 특히 토지의 이용과 생산비 절감이란 형태로 실질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시위대는 주장한다. 그렇지 않으면, 콜롬비아의 커피와 감자 농민들, 유제품과 육류 생산자들은 물론 소규모 어민들도 일을 유지할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은 쫓겨나고 있으며 몰살되고 있다. 


벽에 등을 기댄 채, 지난 6월 한 지역에서 시작된 총파업 운동이 8월에는 전국적인 행동으로 조직되었다. 농민의 파업은 곧 석유산업 노동자, 광부, 운송 노동자, 건강 부문 전문가와 기타 다른 부문의 지원을 받았다. 8월 29일 파업에 들어간 지 10일째, 2만 명 이상의 학생들이 운동에 동참하여 수도 보고타를 뒤덮었다. 


정부의 반응은 혼돈과 반박이었다. 경찰이 폭력적으로 진압했고 기자라고 언급하지 않은 많은 시위자들이 부상을 입었다. 날조된 혐의로 상급 노동조합의 지도자 Hubert Jesús Ballesteros Gomez 씨를 포함하여 250명이 체포되었다. 


양쪽의 많은 사람들이 자신의 생활을 잃었다. 한쪽으로 정부는 농민들의 불만을 타당한 것으로 받아들이고 몇 가지 양보안을 제시했다. 다른 한쪽으로는 그 운동이 FARC에서 침투한 사태라고 주장했다. Santos 대통령은 텔레비전에 나와 "농민의 파업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주장했다. 다음날, 보고타의 거리를 가득 메운 최루탄과 분쟁 현장을 헬리콥터에 타고 살펴보는 그의 모습이 촬영되었다. 


총파업은 콜롬비아에 토론회, 의식화, 연대와 저항을 위한 공간을 여는 데 매우 성공적이었다. 예를 들어, 학생들은 농민을 지원하고 그들의 요구를 지지했다. 그들은 소리높여 GMO에 반대하고 식량주권을 지지한다고 시위했다. 그러나 그들은 또한 현행 콜롬비아 정책을 변화시키고자 하는 사회적 압력의 파도에 농업에 대한 관심을 넘어 총파업을 통해 자신들의 무상교육 요구안을 전하고 싶어 했다.


970 법안

종자가 눈에 띄는 쟁점으로 나타났다. 워싱턴만이 아니라 브뤼셀과 체결한 FTA 체제에 따라, 보고타는 콜롬비아에 투자하기 위한 인센티브로 미국과 유럽의 기업들이 판매하는 종자에 법적으로 독점권을 제공해야 하게 되었다. 농장에서 갈무리한 씨앗이나 공식적으로 등록되지 않은 단순히 토종 씨앗을 판매하다가 잡힌 농민은 벌금이나 실형을 받을 수 있게 되었다.3 세계의 다른 여러 나라의 사례에서처럼, 이러한 농민과 토착민이 종자를 저장하고 교환하고 판매하는 행위에 대한 유죄선고는 생물다양성과 문화적 유산을 위기에 빠뜨릴 것이다. 

콜롬비아 정부가 여러 해 동안 이러한 방향을 추진하여 안데스 공동시장이나 세계무역기구에 가입하는 일환으로 그러한 정책에 동의해 온 것은 사실이지만, 많은 사람들은 정부가 이를 진지하게 실행하기 시작한 것은 미국 및 유럽연합과 FTA를 체결한 이후라고 지적한다. 


이것이 '무허가' 종자들을 파괴하고 있는 자유무역의 모습이다. (사진: ICA)


2011년 콜롬비아 정부 당국은 후일라(Huila) 주의 캄포알레그리(Campoalegre)에 있는 벼 재배 농민의 창고와 트럭을 급습하여, 법에 따라 처리된 것이 아니라며 폭력적으로 70톤의 볍씨를 파괴했다. 농민의 씨앗을 파괴하기 위한 이러한 무력 개입은 많은 이들이게 충격을 주었고, 한 젊은 칠레의 활동가 Victoria Solano 씨는 이에 영감을 받아 그걸 영화로 제작했다. 이 영화의 제목은 2010년에 채택된 법안의 숫자인 "9.70"이다. 이 법안은 농민이 이를 지키지 않으면 국가의 권리에 따라 그들의 씨앗을 파괴할 수 있다고 명시했다.4

오늘날, 농민 시위의 힘과 끈기, 정당성 덕분에 콜롬비아의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대중매체와 소셜네트워크, 거리에서 볼 수 있듯이 그 영화에 대해 토론하고 있으며, 정부가 왜 그런 무의미한 정책을 추진하고 있는지 묻고 있다. 


운동에 대한 지원

콜롬비아의 농민들이 일자리와 존엄성과 건강한 환경을 제공하는 방식으로 국가를 잘 먹여살릴 수 있다는 사실은 의심의 여지가 없다. 그러나 정부는 하수인의 이해관계를 채워주고 소규모 가족농의 자리는 생각하지 않는 경제 모델에 너무 찰싹 달라붙어 있다. 우리 모두는 이 모델을 반전시키려는 콜롬비아 농민의 투쟁을 지원해야 한다. 너무 늦지 않았다. 

하나의 작은 구체적 행동으로, "9.70"이란 다큐멘터리 영화 -스페인어로 여기에서 http://youtu.be/kZWAqS-El_g 볼 수 있다- 가 영어 자막 버전을 만들려고 자금을 찾고 있는데, 세계의 더 많은 사람들이 콜롬비아의 농민들이 직면한 상황이 무엇이고 그러한 정책을 깨부수도록 지원할 수 있다. 작은 기여를 할 수 있다. 여기로 가서 참여하시라! http://idea.me/proyectos/9162/documental970 마감은 10월 10일이다!

다른 의미 있는 행동으로, 비아깜페시나의 라틴아메리카 코디네이션이 파업을 지원하기 위하여 국제 연대사업을 추진하고 있다. 여기로 가면 더 많은 걸 알 수 있다. http://goo.gl/9u6RXJ 다시 말하지만, 시간이 관건이다!

콜롬비아 외에도 이와 비슷한 종자법에 관한 싸움이 현재 칠레와 아르헨티나의 농촌 지역에서도 벌어지고 있다. 한 가지 우려스러운 점은 콜롬비아에서 채택한 더 적극적인 요소가 다른 라틴아메리카로 침투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법안을 폐기시켜야 할 필요성은 정말 정말 시급하다!


더 읽을거리:

Visit the bilaterals.org website for more coverage (in English, French and Spanish) of the general agrarian strike and the fight over Law 970

For more information about the struggles around the seed laws in Colombia, please contact Grupo Semillas ("Seeds Group") at semillas@semillas.org.co or visit their websitehttp://semillas.org.co/

To learn more about the political battle currently taking place in Chile, please get in touch with Anamuri, the National Association of Rural and Indigenous Women, atsecretariag@anamuri.cl

For information about what is happening in Argentina, please contact Diego Montón at theLatin American Coordination of La Vía Campesina, at secretaria.cloc.vc@gmail.com.


 

1 콜롬비아 인구의 약 1/3이 농촌에 살고 있으며, 농촌 지역에 사는 사람의 약 60%는 어느 정도 기아 상태이다. Paro Nacional Agrario y Popular, Pliego de peticiones를 보라.

2 그 효과는 단지 시작이지만, 실제이다. 미국의 콜롬비아에 대한 농산물 수출은 협정 첫해에 62% 급증했지만, 콜롬비아의 미국에 대한 농산물 수출은 15% 하락했다. (USTR와 Portafolio를 보라)

3 종자를 등록하고 인증을 받으려면 농산업의 과정에 맞도록 유전적 균일성과 안정성 기준들을 충족시켜야 한다. 이러한 개념에 따라 다양하고, 적응력이 있고, 역동적인 경향이 있는 소농의 씨앗, 또는 크리올로의 품종은 배재된다. 콜롬비아의 현행 규정에 따라 만약 농민이 크리올로 씨앗을 심고자 한다면, 그들은 정부로부터 허가를 받아야 단 한 번만 5헥타르의 규모로 심을 수 있고 그건 전부 집에서만 소비해야 한다(시장에 내다팔 수 없다).

4 영화의 페이스북을 보고, 트위터의 #NoMas970을 지켜보라. 970법안이 시행된 지 3년(2010~2012) 만에, 정부는 약 4천 톤의 씨앗을 거부하거나 파괴했다. 




http://www.grain.org/article/entries/4779-colombia-farmers-uprising-puts-the-spotlight-on-seed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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