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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에서 기후 위기에 대비해 베트남의 농업기술을 받아들인다는 소식. 


전남은 이 사업을 이주 여성들 중심으로 지원해서 자립하도록 도우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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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진 / 사당리 / 푸조나무

강진 / 삼인리 / 비자나무

강진 / 백련사 / 동백나무 숲

강진 / 성동리 / 은행나무


광양/ 광양읍 나무, 이팝나무 

광양 / 옥룡사 / 동백나무 숲


구례 / 화엄사 / 올벚나무

구례 / 화엄사 / 매화


나주 / 송죽리 / 금사정 동백나무

나주 / 상방리 / 호랑가시나무


담양 / 대치리/ 느티나무

담양 / 관방제림

담양 / 봉안리 / 은행나무 


무안 / 청천리 / 팽나무, 개서어나무 숲


보성 / 전일리 / 팽나무 숲


순천 / 평중리 / 이팝나무

순천/ 송광사 천자암 / 곱향나무

순천 / 선암사 / 선암매


영광 / 불갑사 / 참식나무 자생북한지


영암 / 월곡리 / 느티나무


완도 / 주도 / 상록수림

완도 / 예송리 / 상록수림

완도 / 예작도 / 감탕나무

완도 / 대문리 / 모감주나무 군락

완도 / 정자리 / 황칠나무


장성 / 백양사 / 비자나무 숲

장성 / 백양사 / 고불매

장성 / 단전리 / 느티나무


장흥 / 어산리 / 푸조나무

장흥 / 옥당리 / 효자송


진도 / 쌍계사 / 상록수림

진도 / 상만리 / 비자나무

진도 / 관매도 / 후박나무


함평 / 향교리 / 느티나무, 팽나무, 개서어나무 숲

함평 / 기각리 / 붉가시나무


해남 / 대둔산 / 왕벚나무 자생지

해남 / 녹우단 / 비자나무 숲

해남 / 성내리 / 수성송


화순 / 야사리 / 은행나무

화순 / 개천사 / 비자나무 숲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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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라남도 순천군 순천읍 풍덕리豊德里 


이 마을은 61호. 농업 47호(자작 10호, 자소작 10호, 소작 27호), 날품 13호. 따로 담배 가게 1호가 있다.

우물 네 군데. 


순천읍에서 약 1090m(10), 순천역까지 1090m(10)


이동 노동력 : 모내기철 이 마을에 오는 다른 마을 사람은 5명, 20일 정도. 곧 총인원 100명 정도 된다. 

소는 11마리 정도.


농사짓는 규모 : 대농은 논 37~40마지기(2.7) 밭 5마지기(17). 소농은 논 2~3마지기 밭은 없음. 아예 농사짓지 않는 집도 10~15호 있다.




조사 농가 ― 황귀연黃貴連


식구 12명 : 아버지(61), 어머니(56), 본인(32), 아내(32), 맏아들(9), 둘째아들(4), 맏딸(1), 동생(25, 일본에 있음), 제수(22), 둘째 동생(19, 역무원), 둘째 제수(19), 셋째 동생(16). 농사짓는 사람 6명.


농사땅



1. 집앞논, 집터 옆, 800평, 2배미, 소작료 6/10 볏짚은 소작인 것.

수확량 : 1937년 벼 10섬, 볏짚, 품종 은방주銀坊主. 1938년 벼 6섬.

모내기 그루 수 : 18×21㎝(6×7寸)=86그루

뒷갈이 : 쌀보리 2섬(심는 양 1말 7되 5홉)

왕골 1평(소의 고삐 21.6m<12尋>를 만듦), 자운영 5평(심는 양 5홉, 종자값은 1섬에 85원)

보리 밑거름 : 과인산석회 1가마니, 두엄 40지게

웃거름 : 사람 똥오줌 60장군


2. 간신량カンシンリャン, 654m(6町), 6마지기(1마지기 200평), 소작, 1배미.

한머리닥ハンモリタク―지게 다리 : 지게에 한가득 싣고 쉬지 않고서 갈 수 있는 거리.

축축한 땅이라 뒷갈이하지 않는다. 그루 사이 21×24㎝(7×8寸)=64그루

못자리 150평, 심는 양 3.5말(그 가운데 변경弁慶 2말, 은방주 1말 5되)


3. 오정평オ―チョンピョン, 654m(6町), 500평, 자작, 1배미, 4년 전 430원에 구입.

벼 뒷갈이 보리 400평·자운영 100평.


4. 중오정チュンオ―チョン, 1308m(12町), 440평, 자작, 1배미 

논벼 은방주, 21×24㎝(7×8寸)=64그루

보리는 쌀보리.


5. 하오정ハオチョン, 1962m(18町), 400평, 자작, 1배미, 품종 은방주, 21×24㎝(7×8寸). 

쌀보리 뒷갈이.


6. 산배미サンペニイ, 1962m(18町), 1200평, 소작, 1배미

앞갈이 벼, 뒷갈이 보리 500평, 못자리 300평(볍씨 5되).


7. 샛들セッツル, 1962m(18町), 600평, 소작

벼 한그루짓기, 축축한 땅, 물잡이논.



8. 남지정ナムヂヂョン 앞밭, 1308m(12町), 소작, 3마지기, 280평, 정조定租 벼 1섬.

쌀보리 ― 콩(그루갈이) 140평 

쌀보리 ― 목화(사이짓기) 140평. 280평에 배추·무를 조금 짓는다.

쌀보리 ― 조, 들깨, 팥, 고추, 마늘, 녹두

작부방식 

쌀보리·콩 ― 쌀보리·목화, 쌀보리·목화 ― 쌀보리·콩을 번갈아 가며 한다.


남새밭 : 집터 앞 약 40평, 소작료 벼 2말 5되

20일 무 10평, 가을배추 3평

봄배추 28평, 씨받이 무 2평 ― 가을무 30평

상추, 시금치 7평

산림 : 3210평(1町7畝), 4㎞(1里) 남짓

작은 소나무 1.5m(5尺), 대나무 숲 없음.

소 1마리, 다른 집짐승 없음.

부업으로 무명, 집에서 쓰려고 한 해 5필을 짠다. 1필은 6m(20尺)다.

노동력 : 머슴, 철머슴 없음.

한 해 놉 150명을 고용(모내기철 50~60일, 김매기철 50일, 벼베기철 3일).

모내기 품삯 : 남자 20명×세 끼+막걸리 20전+담배 5전

세 끼 ― 5주발로 1되 5홉, 흰쌀 1되 32전(2주발은 놉이 집에 가지고 감). 

그러므로 남자의 품삯은 하루 93전 정도에 해당할 것이다.

여자 30명×세 끼(5주발)…78전 정도 된다.

김매기철 품삯 : 남자 20명×한 끼(2주발)+10전+담배 5전+술 정하지 않음

여자는 김매기하지 않는다.

벼베기 품삯 : 남녀 모두 모내기철과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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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방주: 1922년 익산군 오산면의 농가가 토야마현富山縣에서 원종을 가져와 기르기 시작했다. 까락이 없고 중간 크기여서 쓰러짐이 적다. 병에 강하고 척박한 곳에서 잘 자란다. 전북 산간 지역은 올씨를 심어서 3주 빨리 익고, 수확량은 85~90%였다고 한다.

모내기 그루 수: 1평에 18×21㎝ 사이로 86그루를 심는다는 말이다.

지게: 장한 남자는 한 지게에 50~70㎏을 싣는다.

정조: 소작 계약 때 미리 일정한 수량을 정하고 수확한 뒤 분배하는 소작관행. 일제시대 소작료는 보통 40~60%였는데, 세금만은 지주와 소작인 혼자서 또는 둘이 함께 부담했다. 소작인은 생산물을 자유롭게 거두어들이고 가공할 수 있었지만 소작료는 지주가 지정한 장소까지 기일 안에 날라다 놔야 했다.

머슴: 고용주의 집에서 살며 새경(私耕)을 받고 노동력을 제공하는 농업 임금 노동자. 고공雇工·고용雇傭·용인傭人 들로도 불렸다. 머슴은 1894년(고종 31년) 갑오경장 이후 많아졌다. 그를 통해 노비들도 머슴으로 많이 바뀌고, 호칭도 머슴으로 굳어졌다. 머슴은 고용 기간에 따라 일 년 단위로 고용되던 머슴, 달 또는 계절 단위로 고용되던 달머슴(月傭)과 반머슴(季節傭)이 있었다. 고지雇只 머슴이라는 특수한 형태도 있었는데, 일정한 토지나 집, 또는 식량을 빌리고 고용주를 위하여 일정 기일 노동을 하거나 일정 작업량을 해주었다. 또 노동력과 농사 경험에 따라 상머슴과 중머슴, 그리고 꼴담살이, 애기머슴 따위가 있었다.

머슴은 농사일 말고도 가사 노동에도 부려졌다. 하루 노동시간을 10시간으로 잡으면 머슴은 한 해 평균 225일, 고용주와 그 식구는 139일을 일한 것으로 나타났다. 농번기에는 아침부터 잠자기 전까지 일했기에 ‘머슴밥’이라는 엄청난 양의 밥을 하루에 대여섯 번 먹었다. 농한기에는 한가한 편이지만 거름과 땔나무를 하고 가마니를 치고 새끼를 꼬아야 했다. 

머슴의 새경은 보통 현물로 줬는데 대개 벼 1섬에서 1섬 반이었고, 1930년대 초반에는 돈으로 160원 안팎부터 30~40원까지 받았다. 농번기에만 고용되는 경우는 약 3개월에 60~70원을 받고 옷과 밥은 자기가 해결하기도 했다. 

이러한 머슴은 일제시대에 들어와 토지 약탈과 인구 증가로 더욱 늘어났다. 1930년 통계로 보면 고용주 44,2908명에게 머슴 53,7432명이 고용되었다. 머슴은 1940년쯤까지 계속 늘어나다가 그 이후 징병·지원병으로 노동력이 차출되고, 공장이 세워지고 만주로 이주함에 따라 특히 서북 지방의 경우 머슴을 고용하기 어려워졌다. 

놉: 밥과 술을 먹이고 날삯을 주어 일을 시키는 일꾼. 식구의 노동력이나 품앗이로도 일을 다 할 수 없을 때 품을 사게 된다. 품을 파는 사람들은 주로 한 마을에 사는 사람들이며, 그 가운데서도 자기 농사땅이 적은 영세농이나 소농들이다. ‘날품팔이’는 계약에 의한 완전한 임금노동자를 말하는 데 반하여, 놉은 보수를 받고 노동력을 제공하지만 얼굴 보고 사는 가까운 집단 안의 사람들이 서로 협동한다는 생각으로 주고받는 노동력이다. 그래서 놉을 산 집에서는 보수 말고도 술·담배·참 따위를 공짜로 주고, 보수도 꼭 돈 말고 필요한 현물로 주기도 하며 지급 시기도 일정하지 않다. 특히 보수를 마음대로 정한 뒤 노동력을 제공하는 것이 아니라 마을에서 정한 범위 안에서 고용자가 주는 대로 받는 것이 특징이다. 이와 같은 놉은 품앗이 같은 협동 노동 형태에서 머슴 같은 임금노동의 형태로 바뀌는 중간 모습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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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머니들은 허리가 굽었다. 자식 낳고 힘든 농사일에 허리가 굽었다. 그 허리는 살아 생전 다시는 펴지지 않는다. 그래도 그녀는 그 세월을 이기며 살아간다. /곡성군 고달면 백곡리





택배기사를 기다린다. 자식들에게 보낼 먹거리를 한상자 가득 담아 쟁여놓고 택배기사를 기다린다. 그래서 처음엔 우리를 택배기사인 줄 아셨다고 한다. /곡성군 고달면 백곡리





염색하시다 손님의 방문에 그대로 달려나오셨다. 씨앗도 주시고 음료수까지 챙겨주시고, 그것도 모자라 감까지 손에 쥐어주신다. 정말 고마운 마음씨. /곡성군 고달면 백곡리 




씨앗을 주신다. 평생 밑지지 않고 고생하며 길러오신 씨앗을 내어주신다. 할머니들이 사라지면 씨앗도 사라진다. 그녀의 죽음과 함께 작은 우주도 사라진다. /곡성군 고달면 백곡리





씨앗은 살아 있다. 씨앗은 우리 눈에 보이지 않게 숨을 쉰다. /곡성군 고달면 대사리





그녀는 흐뭇하다. 자식처럼 귀하게 길러온 씨앗 칭찬에, 그녀는 흐뭇하다. 할머니의 얼굴에 소녀 같은 미소가 머문다. /곡성군 고달면 대사리





마당에 들깨향이 가득하다. 햇볕에 잘 말린 들깨는 방앗간에서 고소한 들기름이 될 것이다. 그 기름은 금쪽같은 내 자식새끼 입으로 들어갈 것이고... /곡성군 





가을은 일이 많다. 이것저것 수확하고 털어서 잘 갈무리해야 한겨울 추위를 날 수 있다. 게으름을 부릴 생각일랑 말고 몸을 놀려야 한다. 때를 놓칠까 부지런히 콩을 터는 할머니. /곡성군 고달면 고달리 






곡식에게 가을볕은 너무나 소중하다. 가을볕 한줌에 곡식이 알차게 영근다. 정말 귀한 햇볕이다. /곡성군 고달면 고달리 





불청객의 방문에 일하던 손을 멈추고 잠시 쉰다. 날이 갈수록 허리는 아프고 잠시 쉴 동안이라도 담벼락에 몸을 맡긴다. /곡성군 고달면 고달리





섬진강 가에 있는 이 마을은 아침마다 안개가 자욱하게 낀다. 오늘은 마을 초입에서 공사까지 하고 있다. 우리의 여정은 예상치 못한 일 투성이다. /곡성군 고달면 호곡리 





안개보다 높이 자리한 마을에는 이제 겨울이 찾아오고 있다. 밭에 자라고 있는 무잎 위로 살짝 서리가 내렸다. /곡성군






할머니의 보물상자에는 보물이 한가득 들었다. 꺼내도 꺼내도 마르지 않고 계속해서 나온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뒤웅박, 씨오쟁이에서 가방으로 바뀌었지만, 한땀 한땀 직접 꼬매 만든 씨주머니에서는 그녀의 정성이 느껴진다. /곡성군 고달면 호곡리  




당연히 씨주머니에는 씨앗이 들었다. 씨주머니마다 서로 다른 씨앗이 담겨 있다. 상추씨. /곡성군 고달면 호곡리





평생 부쳐온 자신의 밭 앞에 섰다. 이제는 늙어 힘이 없어 쪼끔만 한다며 다 늙은 것 사진 찍어 뭐하냐고 하신다. 시간이 갈수록 빛이 나는 것들이 있다. /곡성군 고달면 호곡리





농부는 작은 공간도 허투루 버려두는 법이 없다. 마늘을 심고 고랑에는 상추씨를 흩뿌려 놓았다. 이대로 겨울을 나고 봄부터 뜯어 먹는 맛은 무엇에도 비할 수 없다. /곡성군 고달면 호곡리




10월 말이지만 꽃이 피었다. 부추꽃이 활짝 피었다. /곡성군 고달면 호곡리 





쌀쌀한 아침 공기를 가르며 햇빛이 내리쬔다. 겨울 채비에 맘이 바빠진다. 불청객의 방문에 무심한 듯 바삐 손을 놀려 키질을 한다. 키에선 팥들이 천둥을 친다. /곡성군 고달면 호곡리





그 색과 얼룩이 마치 꿩을 닮았다고 하여 꿩동부라고 한다. 장끼보다는 까투리와 닮았다. 토종 씨앗의 이름은 자연을 닮았다. /곡성군 고달면 호곡리 





집마다 장맛이 다른 건, 손맛도 손맛이지만 장독대가 달라 그럴 수도 있으리라. /곡성군 고달면 호곡리





호박을 잘라서 말린다. 이렇게 말려 놓은 호박은 겨울 내내 훌륭한 먹을거리가 된다. 시장에서 모든 걸 해결하는 도시민과는 사뭇 다른 겨울 채비. /곡성군 고달면 호곡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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