잘못된 기사의 한 예라고 할 수 있다. '고대미'라는 벼를 소개하고 있는데, 고대미가 1천 년이 넘는 재배역사를 지닌 토종 쌀이라고 한다. 너무 황당무계하다. 아마 글을 쓴 사람이 농사를 전혀 모르거나, 아니면 인터뷰에 응한 사람이 너무 홍보에만 치중하여 잘못된 정보를 전달했거나, 그것도 아니면 둘 다에 해당하는 것 같다.

예를 들어, 여기 토종 자광미가 있다. 이것은 100여 년 전 재배하던 당시의 것과 같은 것인가 다른 것인가? 시간의 흐름에 따라 그 당시의 벼와 지금의 벼는 환경에 적응하여 살아가며 조금씩 달라져 있을 것이다. 그런데 하물며 1천 년이라니? 그 벼가 오랫동안 재배해 온 토종이라는 걸 강조하려고 하는 뜻은 알겠지만 표현이 완전히 잘못되었다. 

또한 한국에 토종 벼가 있었다면 일본에도 똑같이 토종 벼가 있다. 그런데 한국의 것이 일본으로 넘어갔으니 한국의 벼라는 논리는 무엇인가? 그럼 한국이 원사지인 것은 콩 정도밖에 없고 나머지는 다 외국을 통해 들어왔으니 토종 작물이라고 할 수 있는 건 하나도 없겠다. 말도 안 되는 억지논리일 뿐이다. 잘 가려서 들어야 할 내용의 기사이다. 그래도 지역의 농산물을 알리려고 하는 맘은 잘 알겠다.


  


출처 http://goo.gl/5lxCy


안은금주의 컬리너리 투어·10


천 년의 맛, 고대미

가을이 한창 무르익은 날 전남 장흥에 가면, 황금 들녘 대신 빨갛게 익은 벼가 너울대는 붉은 물결을 만날 수 있다. 마치 보리처럼, 긴 수염에 알알이 붉은 열매를 달고 있는 고대미. 그런데 이 붉은 야생 쌀이 우리 토종쌀이란 것과, 일본의 유명한 쌀 품종인 대마도 적미의 원조라는 사실을 아는 이는 많지 않다.

안은금주 씨는… 좋은 식재료가 나는 산지를 소개하고, 농장으로의 여행을 연결하는 커뮤니티 '빅팜'(http://cafe.naver.com/bigfarm)의 대표. 한국 컬리너리 투어리즘협회 부회장이기도 한 그녀는 레몬트리와 함께 식문화 여행인 컬리너리 투어를 떠나, 건강하고 좋은 먹거리를 소개하는 일에 앞장서고 있다.

통일신라시대부터 이어져온 토종쌀

전남 장흥에는 1천 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우리 토종쌀이 자란다. 먹는 것을 피부에 양보하라는 모 회사의 화장품 광고를 통해 대중에게 모습을 알렸지만, 본래 고대미는 통일신라시대부터 기르던 우리나라 고유의 쌀이다. 광고에 등장한 것은 낱알이 붉은 적토미로, 이 외에 녹색을 띠는 쌀인 녹토미, 검은 빛깔의 흑토미 등 야생 벼의 특징을 가진 토종쌀을 통틀어 고대미라 부른다.

적토미에는 노화를 일으키는 활성산소를 없애는 산화 물질인 폴리페놀이 일반 쌀보다 무려 2백 배나 많고, 녹토미에는 녹색 식물에 들어 있는 클로로필 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는 등 고대미에는 일반 쌀에 비해 영양가가 몇십 곱절은 더 풍부하게 들어 있다. 이런 성분이 알려지면서 지금은 한 가마에 2백만 원을 호가하는 건강 쌀로 각광받고 있지만. 그간 고대미가 받았던 설움은 이만저만이 아니었다고 한다.

1m를 훌쩍 넘는 키로 다른 벼보다 크기 때문에 그만큼 약한 바람에도 잘 넘어지고, 그래서 재배가 쉽지 않았다. 더욱이 기다란 수염은 도정을 할 때 기계에 끼기 일쑤라, 한창 바쁜 수확기에는 정미소에서 탈곡도 퇴짜 맞는 천덕꾸러기 신세였다.

고대미가 자라는 전남 장흥

고대미는 전남 장흥에서도 딱 세 농가에서만 재배를 하고 있다. 이유는 앞서 말한 것처럼 농사짓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처음 농사를 시작한 한창본 농부는 바른 농사를 짓는 사람들의 모임인 '정농회'에서 사라진 우리 토종쌀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우리 쌀이 일제강점기때 일본으로 넘어가 고시히카리, 대마도 적미 등 고소득을 올리는 수많은 쌀의 원조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듣고는 너무도 안타까웠다.

그래서 일본 자연 농법 연구회인 애농회를 통해 역으로 우리 토종쌀인 적미 종자를 가져와 마을의 농가들과 함께 복원을 시작했다. "2001년 처음 2백 평 논에 친환경 농법으로 적토미를 재배하기 시작했어요. 그런데 수십 년 동안 화학 비료를 쓰던 땅에 적토미를 심으니 벼가 성인 남자 키만큼 웃자라는 거예요. 길게 자라니 약한 바람에도 쉽게 쓰러져버리고, 해충도 득달같이 달라붙었죠. 그런 데다 농약과 화학 비료를 치지 않으니 병해충으로부터 작물을 지켜내기가 여간 어려운 게 아니더라고요."

이렇게 고생스럽게 농사를 지어도 수확량은 이전 농사의 절반에도 못 미치니, 처음 마음을 함께하던 농가들 중에서도 친환경 농법을 포기하고 밤에 몰래 약을 치거나 슬쩍 원래 짓던 농사로 돌아서는 곳이 생겼다. 이런 농가들을 퇴출시켜가며 친환경 농법을 고수한 끝에 남은 게 지금 농사짓고 있는 세 농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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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토미가 자라는 논은 봄에는 꽃처럼 빨갛게 색을 내고, 익을수록 보랏빛으로 물들어 가을엔 검붉은 물결이 너울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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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미는 야생 벼의 특징을 그대로 가지고 있어 병충해에 강하고 척박한 토지에서도 잘 자라지만, 긴 키 때문에 바람에 쓰러지기 십상이고 재배법이 확립되지 않아 아직 수확량이 일반 벼의 50%에도 미치지 못한다.

바르게 알아야 할 우리 쌀, 고대미 공부

적미를 사전에서 찾아보면 '쌀 속에 섞여 있는 빛깔이 붉은 나쁜 쌀'이라 설명하고 있다. 이는 적토미에 대한 지식이 없던 시절, 노란 벼 사이에 듬성듬성 삐죽이 솟은 적토미를 잡풀로 치부해 생긴 일이다. 이토록 우리가 우리 쌀에 대해 모르니, 농사를 짓는 것은 물론이거니와 농사지은 쌀을 판매하기 어려운 것은 당연한 일. 일본과 중국에서는 몸에 좋은 적미를 황제에게 진상하는 데 썼고 지금도 고급 쌀로 대접받고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아직 그 존재조차 모르는 이가 많으니 참으로 답답한 노릇이다.

농부의 이야기에 따르면, 우리나라에 자생하던 고대미의 종류는 자그마치 2천7백여 종에 이른다고 한다. 그중 많은 종이 일본으로 건너가 지금은 수백 가지 개량종으로 발전했고, 우리나라에는 현재 국립종자원에서 4백여 종만 보관하고 있다고. 하지만 이는 개량하는 종자 정도로만 쓰일 뿐 모두 재배되지는 않는다. 한창본 농부처럼 우리 쌀에 관심을 갖고 기르는 사람이 많아져야 일본에서처럼 유명 쌀들이 나타날 터.

반갑게도 농부는 10월 말 이탈리아에서 열리는 세계 유기농 대회에 우리나라 고대미를 들고 가 소개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런 노력이 쌓여 머지않은 때 우리나라에서도 고시히카리를 넘어서는 명품 쌀이 생겨나길 바라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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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토미와 녹토미로 지은 밥. 도정한 백미보다 현미가 거친 것처럼 야생성을 그대로 지닌 고대미는 현미보다는 거친 맛이 난다. 그래서 그냥 먹기보다 일반 쌀과 3:7 비율로 섞었을 때 가장 맛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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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량미라고도 부르는 녹토미는 『동의보감』에서 약재로 사용하는 곡식이라 말하고, 『본초강목』에서는 다른 곡식에 비해 비장과 위를 아주 잘 보(補)한다고 적고 있다. 그만큼 영양이 풍부해 이를 추출해 건강보조식품으로 만들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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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토미에는 항산화, 항균 작용을 하는 폴리페놀이, 녹토미에는 혈액정화 및 혈당조절 기능이 있는 클로로필 성분의 폴리페놀이 다량으로 들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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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토미, 녹토미, 적미찹쌀 등 한창본 농부가 재배하고 있는 다양한 고대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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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수염 등 야생 벼의 특징을 지닌 고대미들.

적토미 먹고 자라는 소와 장흥 삼합

한창본 농부는 적토미와 남은 볏짚을 소 먹이로 주고, 소가 배설한 축분을 퇴비로 활용하는 자연순환 농법을 실천하고 있다. 적토미를 먹인 한우인 적토우는 일반 소를 기를 때보다 비용이 2~3배 더 들기는 하지만, 일반 한우보다 훨씬 크고 건강하게 자라는 고급 소다. 적토미 외에 농부가 직접 기른 참다래를 디저트로 주고 있는데, 오후에는 클래식을 들으며 휴식도 취한다니 이런 호사를 누리는 소가 또 있을까.

고대미와 참다래를 먹고 자란 소는 특유의 누린내가 없이 고소하고 육질 또한 부드럽다고 한다. 지역 명물인 장흥 삼합은 보통 소고기에 키조개, 표고버섯을 곁들여 먹는 것인데, 여기에 적미밥을 더해 장흥 사합으로 즐기면 이보다 술술 넘어가는 보약 밥상이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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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토우, 표고버섯, 키조개와 적토미 밥으로 차린 장흥 사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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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토미를 먹고 자라는 적토우. 일반 소를 기를 때보다 생산비가 2~3배 더 들긴 하지만 체중이 1톤까지 크는 '슈퍼 한우'로 자라 한 마리에 최고 2천만 원이 넘는 가격에 팔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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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대미가 자라는 논 한쪽에는 적토우에게 먹일 참다래 덩굴이 자리하고 있다.

HOW TO BUY

장흥에서 친환경 농법으로 재배한 고대미와 적토미를 먹고 자란 적토우는 모두 장흥몰(www.okjmall.com)에서 구입할 수 있다. 적토미, 녹토미 , 흑토미, 혼합미 등으로 판매하며 고대미 3색 맞춤쌀 3kg 4만2천원, 유기농 적토미 3kg 7만5천원 선.

기획_오영제 사진_이과용

레몬트리 2012 11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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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38년 5월 전라남도 장흥군 장흥면 지도리의 강강수월래

5월이면 단오날 노는 모습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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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농업에서 배우자(33)-장흥 이영동 선생
토종 작물 육종하는 재미, 안 해본 사람은 모르지요



 

흙살림 전통농업위원회는 전남 장흥군 용산면 쇠똥구리마을에 사는 이영동(56) 선생을 찾아뵙고 왔다. 선생께서는 약다산 자락에 자리한 농장에서 토종을 보존하는 일은 물론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란 단체도 이끌고, 쇠똥구리마을 추진위원장도 맡으며 바쁘게 살고 있다. “농민이 가장 훌륭한 육종가”라는 말을 몸소 실천해 여러 가지 실험과 도전을 하며 열성적으로 토종을 보존하여 토종농사의 귀감이 되고 있다.

 



 

- 토종 종자를 얼마나 보존하고 있으신가요?
= 모두 22작물 60여 품종을 재배하고 있습니다. 씨를 보존하려고 하는 정도라서 조금씩밖에 못합니다. 경제적으로 보탬은 안 되지만 내가 좋아서 하는 일이죠. 옛날 고구마나 옥수수 같은 것만 봐도 맛이 좋습니다. 그런 뜻에서 보존하지 다른 뜻은 없습니다.

 

- ‘야생화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은 어떤 모임인가요?
= 어릴 때부터 보던 논둑, 밭둑의 풀들이 없어지는 걸 보면서 이걸 재배해서 자원으로 이용할 수 없을까 해서 만든 모임입니다. 회원은 모두 16명이지요. 요즘 삭막해져 가는 정서를 야생화로 순화할 수 없을까 하는 생각에 매년 전시회도 하고, 취미 삼아 그냥 합니다. 또 야생화는 다 약초가 됩니다. 이걸 재배하는 실험도 하고 있습니다. 이 지방에는 난대 식물부터 냉대 식물도 있습니다. 지역은 남쪽이지만 산이 800고지가 넘어서 그렇습니다. 야생화가 있다고 함부로 채취하지 않고 씨를 받아서 증식시킵니다.

 

- 보존하고 있는 토종 종자 가운데 특이한 것 좀 소개해 주세요?
= 먼저 적토미가 있습니다. 일본에도 붉은쌀이 있는데, 확실하진 않지만 고려 때 우리나라에서 적미가 일본으로 갔다고 합니다. 이 벼는 알이 작은데, 너무 끈적거리는 찰벼라서 꼭 다른 것과 섞어서 먹어야 합니다. 또 키가 아주 커서 가슴까지 자라서 잘 쓰러져요. 그래서 일반적으로 비료로 재배하기 힘듭니다. 하지만 맛이 아주 좋습니다. 지난해까지만 해도 성남 농협과 결연해서 모두 팔았는데, 일본에서 홍미가 들어오면서 올해는 취소됐습니다. 홍미보다 맛이 더 좋지만 홍미가 싸게 들어오면서 소비자들이 외면했지요. 이 일을 겪으면서 소비자에게 값으로 접근하기보다는 맛과 질로 홍보해야 팔린다는 걸 알았습니다.
또 다마금이 있습니다. 이건 1920년대부터 심던 것인데 아마 일본에서 왔을 겁니다. 상남 밭벼는 찰벼인데, 옛날에 결혼하는 날 이걸로 주먹밥을 해서 줬습니다. 이 쌀로 주먹밥을 하면 며칠 뒤에도 굳지 않습니다. 녹토미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건 극만생종이라 빨리 심어도 이모작보다 늦게 서리 맞고 벱니다. 껍질을 까면 쌀이 푸른색이지요. 흑미도 있는데 이 흑미는 일반 흑미보다 알이 작습니다. 그래서 모르는 사람은 까만깨인 줄 압니다. 이것도 아주 맛이 좋습니다. 속까지 다 검진 않지만 도정해도 조금 검은빛이 납니다. 이것 말고도 벼는 모두 10여 가지가 있고, 새로 육종하고 있는 것들이 있습니다.
이밖에 보리와 밀이 1종씩 있고, 콩 종류는 10가지 이상 있습니다. 콩 중에는 제비콩이라는 것이 있습니다. 이건 한약재로도 쓰고, 옛날에는 주로 콩나물로 많이 먹었습니다. 1950년대부터 내려오는 노란 옥수수, 단단하고 바람이 잘 안 드는 조선무, 잘 타고 올라가 수확량도 많은 울타리콩 등도 있습니다. 요즘 중국에서 팥이 많이 들어오는데, 여기 있는 우리 것은 좀 어두운 붉은 색이지만 중국 팥은 선명하게 빨갛습니다. 제가 재배하는 토종 감자는 맛은 좋은데 좀 씁니다.
고추도 옛날부터 심던 것을 그대로 심습니다. 껍질이 얇아서 햇볕에 조금만 내놔도 잘 마릅니다. 먹으면 처음에는 사근사근하다가 나중에는 좀 매운 맛이 납니다. 이조는 어디서든 잘 크고 재배하기도 쉽습니다. 보통 조의 반 정도 크기밖에 안 합니다. 이건 방아를 안 찧고 그냥 먹을 수 있습니다. 토종 가지도 있는데 가지가 굵고 크지만 수량이 많지 않습니다. 개량종은 지금 그냥 먹으면 맛이 없지만 이건 지금도 맛있게 먹을 수 있습니다. 개량종에 비해 토종이 줄기도 굵고 잎도 더 큰 편입니다.

 

- 특이한 벼가 많은데 논농사는 어떻게 짓나요?
= 요즘 벼는 다 농약과 화학비료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옛날에는 거름도 별로 없을 때라서 산풀을 베다가 넣었습니다. 그건 땅을 실하게 하지요. 봄에 모내기 전에 넣기도 하고, 보리를 베기 전에 그냥 갖다 놨다가 보리를 베고 물을 대기도 했습니다. 그럴 때는 갈잎도 넣고 여러 풀도 넣었는데, 거기에는 무수한 성분이 들어있지요.
지금은 로터리로 위만 부드럽게 하는데, 그러면 밑에는 딱딱한 형성층이 생깁니다. 지금 논들은 조금만 파면 아래에 딱딱한 형성층이 있습니다. 이 층을 깨야 산소와 뿌리가 깊이 들어갈 수 있습니다. 지금 논의 구조를 보면 거대한 화분처럼 밑이 막혀 있다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거기에다가 키 큰 벼를 심으면 다 쓰러져 버리죠. 그러니까 옛날처럼 깊이 쟁기질하고, 넓게 심으면 되겠지요. 토종은 토종 농법으로 해야 합니다. 형성층이 생기지 않게 깊이 쟁기질하면 뿌리가 깊게 뻗을 수 있습니다. 또 요즘은 지나치게 배게 심습니다. 그래서 통풍도 안 되고, 웃자라다 보니 쓰러짐에 약합니다.
제가 처음 트랙터를 배웠을 때인데, 솜씨가 서툴다보니 쟁기가 깊이 들어가 갈았습니다. 그러니 키가 커도 잘 쓰러지지 않고 수확도 많은 것을 경험했습니다. 솜씨가 좋아지면서 얕게 갈다보니 오히려 잘 쓰러지더군요. 그걸 보고 맛 좋고 질 좋은 토종 종자와 그에 알맞은 농법이 중요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지금 나온 신품종 농작물은 사람에게 길들여져 있고, 농약과 화학비료에 길들여져 있습니다. 논밭 구조도 현 신품종에 맞게 쭉 길들여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사람, 우리나라 농민들까지도 다 길들여져 있습니다. 그렇다고 신품종이 다 안 좋다는 것은 아닙니다. 좋은 신품종도 많이 있습니다. 교배를 하면 할수록 야생성은 없어지고, 농약과 화학비료를 쓰지 않으면 안 된다는 데 거기에 문제가 있는 것입니다. 나의 고민도 거기 있고, 여러분의 고민도 거기 있는 것 아닙니까?

 

- 토종이 좋은 점은 무엇입니까?
= 앞에서 말한 것 말고도 토종은 키가 커서 자라기만 하면 얼른 주위를 장악해서 제초하는 노력이 덜 듭니다. 크게 잘 자라니 풀들이 힘을 못 쓰는 것이지요. 그래서 더 멀리 심어야 합니다. 개량호박이나 오이를 보면 넝쿨이 많이 안 뻗지만 조선 호박이나 오이는 엄청 뻗습니다. 또 토종은 씨가 많다는 특징도 있습니다.

 

- 종자 보관은 어떻게 하시나요?
= 냉동고에 보관해보니 4~5년이면 잘 나지 않습니다. 나더라도 발아율이 엄청 떨어집니다. 저 같은 개인은 종자은행도 없으니 해마다 재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많이는 못하고 조금조금씩 잃어버리지 않으려고 해마다 심습니다. 예전에 잠깐 다른 데 나갔다 왔는데 철을 놓쳐서 한 20여 종을 잃어버린 적이 있습니다. 그렇게 한 번 잃어버리면 얼마나 안타깝고 서운한지 모릅니다. 진짜 맘이 아픕니다. 어디 가서 씨앗 하나만 구하면 참 재미가 있어요.
논을 다닐 때도 특이하게 자란 것이 있으면 눈여겨보며 지나다닙니다. 이것저것 가져다가 육종하면서 제가 생각한대로 나오면 참 재밌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뭐하냐고 해도 저는 너무 재밌어서 그것만 쳐다보고 있을 때도 있습니다. 이걸 욕심 같아서는 다른 것도 더 많이 하고 싶지만 여건상 힘들어서 참습니다.

 

- 마지막으로 저희에게 하고 싶은 말씀은 없으신가요?
= 농촌 현실이 어려워 지금은 빚 없는 집이 없습니다. 기회만 되면 땅이라도 팔아서 빚 갚으려고 하는 실정입니다. 그러다 보니 농심은 어디 가고 돈이 되면 무슨 짓이든 다 하는 지경이 되었습니다. 농심이 변했지요. 그게 제일 어렵습니다. 토종이 아직은 현실에 맞지 않지만 이제부터는 슬슬 기회가 왔다고 생각합니다. 요즘 사람들은 맛을 우선시하는데 토종의 맛은 신품종이 따라올 수 없습니다.
60~70년대 산업화되면서 도시로 나간 사람이 많아요. 저도 친구 따라서 서울에 갔지만 6개월 살고 내려와 버렸습니다. 지금 생각하면 옥수수, 고구마 맛 때문인 것 같아요.
토종 농작물은 우리 조상들과 함께 해온 식물이고, 우리 조상들이 먹고 살아온 작물입니다. 그중에 희로애락도 있을 것이고, 많은 토종 농작물에 대한 사연도 있고, 문화도 농심도 있습니다. 몇 천 몇 백 년 내려온 씨앗들이 60~70년대 산업화되면서, 농사도 돈벌이로 전락하면서 수확을 많게 개발하다 보니까 맛은 없어져 버리고, 땅은 땅대로 버렸습니다. 지금부터라도 옛날 맛과 땅을 살려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토종 농작물의 장점은 너무나 많습니다. 이 땅에 알맞기 때문에 지금까지 살아왔습니다. 야생성이 강하고 원종에 가깝기 때문에 병충해에 강하고 어느 토양이나 기후에도 적응성이 강해서 농약이나 화학비료가 필요 없습니다. 또 키가 크고 무성하게 자라기 때문에 잡초도 이길 수 있습니다. 지금도 새로운 신품종들이 수없이 많이 나오지만 맛은 토종을 따라갈 수 없습니다. 단점은 현실 농업에 맞지 않습니다. 키가 크기 때문에 쓰러짐에 약합니다. 또 수확량이 적습니다. 수확량이 적고 현실 농업에 맞지 않다는 것은 지나친 욕심 때문이 아닐까요?
토종 농작물은 미래의 농업 유전자원으로 보존되어야 하고, 재배도 많이 해야 합니다. 덧붙여 자연의 문제는 자연을 이용해서 자연적으로 해결하는 방법이 가장 좋은 방법입니다. 아무튼 흙살림에서 이런 운동을 한다니 정말 반갑고, 더운 날씨에 이곳 먼 구석까지 찾아 준 여러분께 정말 감사드립니다.

<정리 : 김석기(흙살림 전통농업위원회 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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