붉은 돼지(Communist Pigs)

- 동독의 흥망과 돼지의 역사(An Animal History of East Germany's Rise and Fall)

 

 

 

돼지는 공산주의 원칙에 기반해 현대의 산업형 먹을거리 체계를 창출하고 유지하려고 시도한 독일 민주공화국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1980년대 중반, 동독은 서독과 영국보다 1인당 더 많은 돼지를 생산하는 한편, 이러한 중앙계획식 사육으로 분뇨 오염, 가축 질병, 단계적인 식량부족 등 의도하지 않은 수많은 결과가 발생했다. 

 

돼지는 엄청나게 적용력이 좋은 동물인데, 역사학자 Thomas Fleischman 씨는 이러한 역사에서 중요한 역할을 담당한 세 유형의 돼지를 발견했다.  공장식 축산에 적합하게 개조된 산업형 돼지, 보존의 성공 사례라기보단 농업 개발의 부작용으로 과밀해진 멧돼지, 그리고 계획경제 안에서 사적인 소규모 농업을 체제가 허용했음을 반영하는 텃밭 돼지가 그것이다.  

 

Fleischman 씨는 동독이 가족농에서 공장식 축산으로 이동한 모습을 연대순으로 작성하면서, 공산주의 원칙이 어떻게 산업형 농업 관행을 채택했는지 설명한다. 더 광범위하게, Fleischman 씨는 공산주의의 농업은 자본주의 농업의 표준 관행을 반영하게 되었으며 양돈 산업이 이러한 집합점에 대한 명확한 사례를 제공한다고 주장한다. 그의 분석은 농촌의 환경 및 1989년 동독이 정치적으로 붕괴한 원인을 밝히고, 아울러 현재와 미래의 저렴한 먹을거리가 가져올 값비싼 비용에 대해 경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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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책 너무 재밌지 않겠습니까?

<슈퍼마켓 미국: 냉전 시대 농장 경주에서 먹을거리와 권력> https://www.amazon.com/dp/0300232691/ref=rdr_ext_tmb

미국은 슈퍼마켓을 이용해서도 냉전 시대에 싸웠고, 그렇게 개척된 식품 경제가 오늘날 우리가 먹는 방식을 형성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슈퍼마켓은 미국에서 발명되었고, 1940년대부터 미국 스타일의 경제 문화를 전파하기 위하여 전 세계로 나아갔다. 이 혁신적인 역사서는 우리에게 냉전 시기에 슈퍼마켓이 공산주의에 반대하는 무기로 사용된 방식과 그것이 현행 먹을거리 체계를 어떻게 형성했는지 알려준다.

자유로운 기업의 무기로서 슈퍼마켓의 매력은 미국과 소련의 "농장 경주"에 기여했으며, 이들 초강대국은 먹을거리의 생산과 유통에 대한 자신들의 대조적인 접근법이 풍요로운 미래에 가장 적합하다는 걸 입증하고자 노력했다. 냉전의 여파로 미국의 먹을거리 권력은 세계 체계의 시장 권력으로 전환되어, 다국적 슈퍼마켓이 세계 식품 경제에서 강력한 기관으로 운영되는 현대 세계가 등장하기 위한 토대를 마련했다.


이러한 책 소개와 함께, 얼마 전 중국에 진출한 코스트코 1호점에서 난리가 났다는 이 소식이 자연스럽게 떠오릅니다. 요즘 한국도 예외가 아니지요. 코스트코 근처로는 차를 몰고 가면 안 됩니다. 코스트코 가는 차량에 막혀서 옴짝달싹 못할 경우가 많아요. https://www.bbc.com/korean/news-494696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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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주의 발달에 따른 한국 농민계급의 몰락과 분화

-몰계급적 민중연대를 경계하며


최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체결되었다. 그리고 WTO협상이 본격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 이 두 가지 모두 공히 초국적 자본을 위한 자유무역의 확대를 가져올 것이다. 또한 투기적 성격이 강한 화폐자본의 자유, 즉 금융자유화가 더욱 진행될 것이다. 이 자유무역의 확대와 금융자유화의 증대는 자본간 경쟁의 심화와 그에 따른 위기의 심화 및 불안정성의 심화를 가져올 것이다. 그리고 이 결과 다수 자본의 몰락 및 소수자본으로의 집중을 야기할 것이며, 이는 노동계급의 대량실업과 삶 전반의 악화를 초래할 것이다. 이런 세계화는 자본자체의 본성에 근거하며, 그 파괴성도 이 자본자체의 성격에 근거한다. 따라서 자본주의 자체를 변혁하지 않고서는 노동계급은 세계화의 파괴성을 저지할 수 없다.

 그런데 현재 이런 자유무역협정 타결과 WTO 협상은 주로 농업 및 농민문제와 결부되어 다루어지고 있다. 농산물 수입개방에 따른 농업 붕괴 위기로 인해 농민들의 삶은 특히 악화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바로 이로 인해 농민들은 11월 13일 대규모 집회를 여는 등 그들의 불만을 대대적으로 표출하고 있다. 이처럼 자본의 세계화와 신자유주의화로 말미암아 노동자계급과 농민은 모두 위기로 내몰리고 있다. 노동계급과 농민 양자 모두 자본주의하에서 억압받고 수탈당하는 민중인 것이다. 따라서 민중연대 혹은 노농연대는 당연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농민계급은 노동자와는 다른 계급이며, 농민의 내적 계급구성도 단일하지 않다. 따라서 노동자계급과 농민의 연대는 각자의 계급적 성격과 계급적 차이에 대한 인식을 바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비계급적이고 맹목적인 민중연대는 노동운동, 그리고 변혁운동의 질곡이 될 뿐이다. 이하에서는 한국의 농업과 농민문제를 한국자본주의 발달과 관련하여 계급적인 관점에서 분석하고자 한다.


1. 자본주의의 체제하의 소자영농 몰락과 분화의 경제법칙

현재 한국 농업․농민문제에 대한 올바른 접근은 한국 농업의 객관적인 성격을 밝히는 데서 출발한다. 한국 농업은 한마디로 자본주의의 체제아래 소규모 토지에 근거한 소농으로부터 출발했다. 해방후 미국과 자본가집단은 남한 자본주의체제의 유지 강화를 위해서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이는 첫째로 해방후 한국자본주의의 체제위기를 해소하며, 지주계급의 제거를 도모하였다. 즉, 경자유전의 원칙하에 소작제도를 원칙적으로 금하고 농가 아닌자의 농지, 스스로 경작하지 않는자의 농지, 3정보 초과 소유지 등을 강제로 매수하여 소작농 등 경작농민에게 유상으로 분배하였다. 이 농지개혁의 분배조건은 농지의 평년작 주산물 생산량의 150%를 지가로 평가하여 이를 5년 간 균분상환하는 조건으로 유상분배하는 것이었다.  한마디 한국 농업 수백만의 소농체제로 재편되었으며, 이런 구조는 현재에까지도 한국 농업의 성격을 정치 경제적으로 규정하고 있다1). 따라서 이하에서 먼저 소자영농의 경제적 성격을 밝히는 데서부터 출발하기로 한다.

 소자영농은 자본주의체제하에서 필연적으로 곤궁한 삶과 필연적 몰락이라는 길을 걷게된다. 이는 자본주의 경제의 상품경제하의 법칙이다. 이런 결과가 초래되는 것은 소자영농은 자본주의적 생산방식이 아니라 소규모의 생계유지적 생산방식이라는 그 본성에 기인한다. 자본주의적 농업 생산은 생산비용(기계 원료 등의 불변자본+임금)+일반적이윤율+지대를 보장하는 시장가격아래서만 생산이 진행된다. 그렇지 않으면 차지농업가(농업자본가)는 농업에 투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생계유지형 농업의 생산, 즉 소규모 자영농의 생산방식에서는 이윤 및 지대가 보장되지 않고 단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한 임금만이 얻어지게 된다. 그리고 때때로 낮은 수입과 낮은 농산물가격아래서도 수많은 소자영농은 농업을 지속하게 된다. 그리하여 소자영농의 대다수의 삶은 최저의 생계수준으로 떨어지게 된다.2)

 이 소토지 소자영농체제에 관통하고 있는 내적 경제논리 살펴보자. 먼저 소자영농들은 생산수단인 토지를 소유하고 있거나 구매해야 한다는 사실이다. 이것은 소토지 소유의 경우 특징적인 결함인데, 이는 자본주의적 차지농업가의 경우에는 농지의 구입에 자본을 투하할 필요가 없는 것과 대조된다3). 그렇게 함으로써 소규모토지 경작자는 실제 생산에 투하할 자본을 그만큼 투하하지 못하게 된다. 그리고 다른 여타의 생산수단의 비용도 지속적으로 상승하는데 이는 토지를4) 포함하여 그 생산수단의 수요가 공급을 초과하기 때문이다. 반면에 이러한 수많은 소농 대다수가 생산수단의 구입에 자본을 투하하여 생산력을 증대시키면, 이는 수요 이상의 공급을 늘려 농산물의 가격을 하락시킨다. 이 결과 생산을 위해 들어가는 비용은 급증하는 반면, 생산된 농산물의 가격은 하락하게 된다. 소위 농산물의 교역조건이 악화되는 것이다. 그 결과 생계를 위해서 그리고 생산의 유지 혹은 확대를 위해서 빚이 증가하지만, 이 빚은 점점 더 갚기 힘들게 된다. 이와 함께 막대한 이자비용과 높은 조세는 소자영농의 삶을 더욱더 붕괴시키고 몰락시키게 된다. 이처럼 생산이 확대되고 증가할수록 오히려 소자영농은 몰락하게 되는 데, 이런 흐름은 상대적으로 큰 규모의 중․대농이 출현하면서 더욱 극심해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소자영농은 자신의 땅뙤기에 집착한다. 그리하여 상태는 더욱더 악화된다.

 이와같이 소규모 토지의 자영농은 우선적으로 그들 상호간의 경쟁, 그리고 점차적으로 대규모 토지 경작자와의 경쟁에서 몰락해 간다. 수많은 소규모의 자영농들은 생산수단을 각자가 소유하고 있는 소규모 토지로  분산시킴으로써 생산성의 발전을 저해하는 한편, 그나마 상속이라는 이유로 인해 생산수단이 분산된다. 그리고 미미하게 생산성이 증대하지만 그에 따라 생산수단의 가격 등귀와 생산물의 거래조건의 악화가 필연적으로 발생한다. 그리하여 이 생산방식에서는 생산량의 증대조차도 커다란 불행으로 작용한다.5)

 요컨대 이 소자영농계급은 생산력의 발전을 배제하며, 오히려 생산력의 발전에 따라 몰락해가는 계급이기도 하다6). 그리고 이런 대다수 소자영농민의 몰락에 수반하여 소수대농이 등장한다. 그리고 이 대농들 중 일부는 타 노동력을 고용하는 자본주의적 농업으로 이행한다. 즉 대다수 소자영농의 전반적 몰락과 극소수 대농으로의 분화과정은 동시에 진행된다. 이것은 자본주의 발달이 초래하는 필연적인 법칙이다7). 따라서 농업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않고, 단지 소자영농체제를 유지 보존하려고 하는 농민과 농민운동은 패배할 뿐만 아니라 반동적이기 조차하다. 그리고 이런 소자영농의 역사적 위치와 계급적 성격을 무시한 맹목적인 계급연대를 주장하는 것도 오류에 빠지고 말 것이다.


 “오늘날 부르주아지와 대립하고 있는 모든 계급 중에서 프롤레타리아트만이 참으로 혁명적인 계급이다. 그 밖의 계급은 대공업의 발전과 함께 쇠퇴, 몰락하지만 프롤레타리아트는 대공업의 고유한 산물이다. 중간계급, 즉 소생산자, 소상인, 수공업자, 농민 등도 부르주아지와 투쟁한다. 그러나 그것은 중간계급으로서의 자신의 존재를 파멸로부터 지키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그들은 혁명적이 아니라 보수적이다. 오히려 그들은 반동적이기조차 하다. 왜냐하면 그들은 역사의 수레바퀴를 거꾸로 돌리려고 하기 때문이다. 그들이 혁명적으로 되는 것은 프롤레타리아트로의 이행이 눈앞에 임박할 때이고, 그 때 그들은 그들의 현재의 이익이 아니라 미래의 이익을 지키고 그들 자신의 입장을 버리고 프롤레타리아트의 입장에 선다.”8)


2. 자본주의하 소자영농 몰락 법칙에 대한 예증

①농업과 농민의 전반적 몰락

 이 소자영농체제로 출발한 한국 농업과 농촌은 자본주의 발달과 함께 급격한 몰락과 재편을 겪고 있다. 그리고 현재에도 소자영농들은 몰락과 변화과정이 지속되고 있다.  1970년 국민총생산의 23.3%에서 1980년 12.7%, 1996년 5.4%, 2001년에 4.4%로 축소되었다. 그리고 농가호수는 1970년에 248만 호에서 1996년에 148만 호로 2001년 현재 135만 호를 기록하고 있다. 전체가구수에서 차지하는 농가의 비율 42%에서 9.6%로 저하하였다. 농가 인구 1442만 명에서 393만 명으로 45%에서 8.3%로 감소하였다. 물론 이 9.6%도 모두가 농민인 것이 아니다. 여기에는 농외 취업 혹은 겸업자가 포함되어 있다. 또한 한국 농업 경영주는 2001년 현재 30세 미만의 농가가 0.3%, 30-49세 농가가 20.2%인 반면에 60세 이상이 55.4%를 차지하고 있다. 따라서 한국농업 특히 소농체제의 축소는 더욱 가속화될 것이다.

<표 1>농업 비중의 변화

구분

1970

1980

1990

1996

2001

농가호수(만호) 

(농가율)

248(42.4)

216(27.0)

177(15.6)

148(11.6)

135(9.6)

농가인구(만명)

(비율)

1,442(44.7)

1,083(28.4)

666(15.5)

469(10.3)

393(8.3)

농림업취업자 (만명)

(비율)

476(49.5)

433(32.3)

310(17.1)

230(11.1)

173(8.1)

농업 GDP 비율

23.3

12.7

7.4

5.4

4.4

자료: 이영기 『한국의 농업경제』1998. 재인용, 농림부, 「농업관련주요통계」

http://www.maf.go.kr/.


이처럼 해방후부터 한국 농업은 급속한 몰락을 겪었고, 농민들은 대규모로 축소되었다. 이런 결과가 초래된 것은 이후 살펴볼 정부의 정책에도 영향을 받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한국 농촌이 전반적으로 축소하게 되고, 농민들이 급격하게 축소하게 된 것은 바로 자본주의 경제법칙 자체에 기인한다. 즉, 수많은 소자영농들의 체제로 출발한 한국 농업은 소자영농들의 필연적 몰락과 함께 축소 재편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이다. 이런 소자영농들의 몰락을 초래하는 법칙은 앞절에서 지적한 그대로 이다.

 그런데 소자영농민의 몰락이 전체 농업노동력의 감소라는 형식으로 나타나는 것은, 농업분야에서는 다른 비농업적 산업에서와는 달리 지속적으로 다시 흡수되는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소자영농 및 농업노동자들은 그 몰락과정에서 항상적으로 도시 프롤레타리아트 혹은 비농업 프롤레타리아트로 이행하고 있다9). 특히 이런 몰락의 경향은 대농과의 경쟁 더 나아가 자본주의적 농업과의 경쟁속에서 더욱 지속된다. 가족농, 즉 자영농이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동시에 자본주의적 농업도 진행되고 있는 선진 유럽국가에서도 일반적인 경향이다10).


“유럽의 농업노동력은 1975년부터 1999년 사이에 3800만 명이 감소하여 그 규모가 약 절반 정도로 줄어들었으며, 가족노동력이 전체 농업노동력의 5분의 4를 차지해 중추적인 역할을 담당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또한 고령화 현상도 지속되고 있어 전체 농업인구의 40%/  55세 이상의 고령이며, 특히 상대적으로 낙후된 유럽남부 국가들(그리스, 스페인, 이태리, 포르투갈)에서 고령화 문제가 심각하게 전개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11)


이처럼 소자영농으로서의 농민은 자본주의의 발달로 인해 몰락해가는 전형적인 계급이다. 따라서 이 계급은 프롤레타리아트화 되어 가고 있다는 점에서 자본주의에 저항하는 계급인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소자영농은 보수적이고 반동적인 방식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한다는 점 또한 사실이다. 따라서 노동계급은 이 소자영농의 양면성을 명확히 인식하여야 하며, 그들의 투쟁이 보수적인 혹은 개량주의적인 방식으로 나아가는 경우 제어하거나 그렇지 못할 경우 지지해서는 안된다. 즉, 자본주의 자체에 대한 문제점에 대한 저항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지켜내기 위한 임시방편적 투쟁에 지지를 보내서는 안된다. 특히 이런 보수적인 경향은 중․상층농에 의해 농민운동이 주도될 경우 더욱 그럴 것이다.

 부언하자면 자본주의 아래 농민의 급격한 감소는 자본주의 변혁이라는 관점에서 노농연대의 중요성을 축소시켰다. 이런 점은 일제하의 반봉건성이 그나마 해방후 농지개혁에 의하여 사라졌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다시 말해 농민이 대다수를 차지하고 있던 1917년 러시아 혁명기의 노농연대가 필요했던 당시, 그리고 중국의 사회주의 혁명을 성공으로 이끌었던 당시와는 질적 차이가 존재한다는 점이다. 물론 향후 자본주의의 변혁이라는 관점에서는 노동계급은 여타 뿌티부르주아 계급과의 연대해 투쟁할 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계급적 지형은 노동자계급이 더욱더 중심적인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는 것을 보여준다. 더 나아가 민중연대라는 미명하에 노동계급의 계급적 투쟁을 방기하고, 양면성을 가진 뿌띠 부르주아와의 몰계급적 연대를 주장하는 것은 더욱 더 큰 오류가 아닐 수 없다. 노동운동을 중심으로 반자본주의 운동은 이루어져야 한다. 


②농민계급의 분화: 소농민 몰락과 대농으로의 집중

소자영농체제로부터 출발한 한국 농업의 전반적 축소와 농민의 급격한 감소는 다수 소자영농의 몰락과 소수 대농12)으로의 재편과정이었다. 이 소자영농 및 그 자녀들은 도시 프롤레타리아트로 이탈하거나 농촌에 거주하는 경우에도 농업을 포기하게 되었다13). 따라서 그들이 기존에 소유하거나 혹은 상속받은 토지는 매매되었을 뿐 아니라 임대되었다. 즉, 대농으로의 토지의 집중은 토지의 매매 뿐만아니라 광범한 임대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그런데 이 몰락한 소자영농 및 그 자녀들이 자신의 토지를 임대하는 경우 소위 부재지주 혹은 부재 비농가라 불린다. 그리고 농촌에 거주하지만 경쟁에서 뒤지거나 체력 혹은 경비 등이 부족하여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소자영농들이 그들의 토지를 임대하는 경우 이들이 바로 재촌지주 혹은 재촌 비농가가 된다. 이들 지주는 지주-소작제 즉 봉건제 혹은 반(半)봉건제하의 지주가 아니라 바로 몰락한 소자영농들이 대부분이다. 그리고 소작농도 봉건적인 종속된 계급이 아니라, 상대적으로 우월한 소작농들, 즉 중농 혹은 대농들이다. 이런 점은 경지규모가 큰 농가일수록 임차지율이 높고, 규모가 작은 영세소농일수록 임차지율이 낮은 반면에 임대해주는 면적이 상대적으로 높다는 사실에서도 알 수 있다14). 이런 임차를 통한 영농규모의 확대는 한국 자본주의를 포함해서 일반적인 방식이기도 하다. 즉 매매외에 임차지의 확대를 통한 영농규모의 확대는 토지가격이 높은 다수의 소자영농체제에서는 주요한 방식이다15). 따라서 1980년대 말 당시 소작제도에서 반(半)봉건론 혹은 반(半)자본주의론을 주장했던, 즉 자본주의의 문제를 정면으로 제기하는 것을 거부했던 뿌띠부르주아적  민족해방(NL)계열의 오류가 현재에는 더더욱 숨길 수 없다. 그리고 덧붙여 말한다면, 그들이 반봉건성의 토대로 제기했던 고율의 ‘소작료’16)는 반봉건성의 특징이 아니라 봉건성과는 전혀 무관한 소자영농체제의 성격일 뿐이다. 즉, 고율의 소작료(혹은 차지료)는 임금수준만이 보장되더라도 경작을 하려고 하는 소자영농체제의 법칙에 근거하는 것이다17). 반면에 이러한 관념적인 반봉건성의 문제를 제대로 지적했던 논자들 중 일부는 고율의 소작료를 오히려 독점자본주의의 파괴성으로 인해 왜곡된 특수성으로 보는 오류를 범했다. 그리고 소작지(임차지)의 확대를 대농형성이라는 보편적 과정으로 보지 못하고 내적 계급분화가 저해되는 것으로 간주하는 오류를 범하고 있다18). 어쨌든 한국 사회에서도 소농의 몰락과 대농의 형성은 토지 매매 뿐만아니라 임차지의 확대를 통해서 이루어졌다.


<표2>임차지 확대를 통한 소자영농의 몰락과 대농으로의 분화

연도

농지보유형태별 농가구성

임차지율

자작농

자작겸 임차농

 순임차농

1945

14.2

35.6

50.2

65.0

1949

37.4

41.4

21.2

32.6

1960

73.6

19.6

6.7

12.0

1970

66.5

24.1

9.4

17.2

1975

72.2

20.0

7.8

13.8

1985

35.3

62.6

2.1

30.5

1990

30.5

61.2

8.2

37.4

1995

28.3

63.2

8.0

42.2

2000

27.4

64.6

7.9

43.6

자료: 이영기(1998)재인용 (1945-1990), 박석두, 「농업구조개선을 위한 농지제도 방향」 2002. 재인용(1995-2000)

 이처럼 영세농의 몰각 즉, 도시 이탈과 농사포기로 인해 전체 농가가 대폭 축소되는 동시에 중․대농으로의 재편은 임차지의 확대를 통해서 급격히 이루어져왔다. 이런 소작은 해방이후 형식상으로는 불법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농촌분화의 과정에서 일반화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고 토지소유상한제가 법적으로 철폐되기 시작한 1980년대 초이래 임차지 확대와 매매를 통해 경지규모가 상대적으로 큰 중․대농의 비중이 증가하였다. 그 결과 2ha이상의 농가의 비중이 70년 6.5% 그리고 85년 5.7%였으나, 이후 급격히 증가하여 2001년 현재 13%를 차지하였다. 이런 상층농가의 비중이 증대하는 한편, 소농자영은 몰락의 길을 걷지 않을 수 없었다. 그리하여  한편으로 소자영농은 결국 탈농하여 도시에서 노동력을 팔거나 자영업을 통해서 생계를 유지한다. 다른 한편 농촌에서 몰락해가고 있는 소자영농은 생계를 유지하기 위해 자신의 토지를 경작하는 것 외에 노동력을 판매해야 한다. 즉, 소작농의 상당수가 자신이 농업외 활동을 함으로써만 생계를 유지하는 반프롤레타리아트의 상황에 처한다19). 반면 이런 소농의 몰락과정에서 중․대농의 경영면적은 증대할 뿐만아니라, 소득도 증대한다. 이런 소자영농의 몰락과 대농으로의 집중화라는 양극화는 아래의 경지규모별 농업소득의 변화를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다.


“□ 최근 소농과 대농간 소득격차가 급속히 확대되고 있는데 이는 농업소득의 차이에 기인함

  ◦ IMF 이후 1ha 미만 농가(896천호)는 실질소득이 크게 감소하고 1~2ha 농가(332천호)는 실질소득이 근소하게 감소한 반면 5ha 이상 농가(17천호)는 실질소득이 급속히 증가 …

  ◦ 소농은 노임 및 급료 소득, 대농은 겸업소득 중심으로 나타남

  ◦ 2.0ha 미만(전체농가의 90%) 농가는 농업소득으로 가계비('99년 1,712만원) 충당이 어려운 상황“20)


<표3>경지규모별 농업소득의 가계비 충족도 변화 (단위%)

연도

0.5ha미만

0.5-1.0

1.0-1.5

1.5-2.0

2.0ha이상

평균

1975

73.8

107.8

124.0

138.4

149.9

116.0

1979

45.1

84.3

104.8

115.9

126.3

92.1

1983

44.8

69.4

90.2

94.9

110.7

82.2

1986

30.4

58.6

74.8

90.6

114.2

73.6

1989

33.4

60.1

84.3

103.4

113.7

79.5

1992

27.3

55.0

82.9

94.1

116.5

73.2

1995

34.5

55.5

81.5

89.8

117.5

70.8

1999

16.6

35.4

66.4

84.8

113.9

60.5

자료: 농림부 ,「농가관련주요통계」http://www.maf.go.kr/, 이영기(1998) 재인용.

 이런 소농의 몰락과 대농으로의 집중은 농가부채의 증대로 나타났다. 그런데 부채는 소농과 중농․대농 모두 증가했는데, 그 성격은 기본적으로 다르다. 엄밀히 구분할 수는 없지만 가계비충족도를 상회하는 2ha 이상의 중․대농의 부채는 기본적으로 생산성부채가 증대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이는 전반적인 자산증가로 나타나고 있다. 반면에 가계비를 충족시키지 못하는 중소농의 부채는 가계성부채가 상당하리라는 것은 쉽게 예상할 수 있다. 그런데 현재에는 가계비를 충족시키고 있는 중농들의 경우, 점차적으로 경영상태의 악화와 함께 생산성부채의 증대와 그 부담을 이겨내지 못할 것이며, 결국 가계비도 충족시키지 못하는 소농이라는 몰락의 길로 접어들 것이다21). 그 결과 대농으로의 집중이 심화될 것이고, 대농의 기준이되는 경작면적은 상승할 것이다.

<표4>농가소득, 자산, 부채                              

                                                      (단위: 천원)

년도

농가소득

농가자산

부채

‘70

256

915

16

‘75

873

4,588

33

‘80

2,693

13,384

339

‘85

5,736

28,378

2,024

‘90

11,026

79,352

4,734

‘95

21,803

158,171

9,163

‘01

23,907

166,765

20,376

자료: 농림부, 농업관련주요통계, http://www.maf.go.kr/


 이런 소농의 몰락과 중․대농으로의 분화는 다름아닌 생산력증대에 따른 결과였다. 그리고 한쪽에는 생산성 부채가 다른 쪽에서는 가계성부채가 증대한 것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경우 기계화는 1960년대 중반 경까지는 동력탈곡기, 양수기 및 분무기, 1970년대에는 경운기 탈곡기 분무기 등 소형기계화, 1980이 후 트랙터, 이앙기, 콤바인 등으로 진행되었다22). 이와 같은 기계화와 비료 등의 투입재를 통한 생산력 증대의 과정은 상대적으로 영세하고 규모가 작은 다수 소농의 몰락과 소수 대농으로의 집중화 과정이다. 왜냐하면, 소농들은 이런 자본을 투입할 수 없거나, 투입한다고 하더라도 대규모 농업에 비해 비효율적이다. 뿐만아니라 이러한 생계형 소농간의 경쟁 그리고 대농과의 경쟁은 그들을 몰락시키고, 부채는 더욱 증대한다. 그 결과 대규모 생계형 중소자영농은 반프롤레타리아트가 되어가며, 결국 대농으로의 집중에 이른다. 부언하자면 이런 대농 더 나아가 기업농 중심으로의 집중화 과정은 아직 가족농 중심의 자영농이 대다수인 유럽의 경우에도 마찬가지다23). 물론 유럽국가의 소자영농은 상대적으로 큰 규모 농지를 가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대농 및 기업농으로의 집중이 지속되고 있다.

 이렇게 볼 때, 농민을 몰락시키는 것은 바로 소자영농적 생산구조자체에 있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아래 소규모 자영농체제는 생산력 발달에 따라 붕괴할 수밖에 없는 역사적 한계를 가지고 있다. 자본주의체제하의 소농민의 몰락은 다음절에서 지적한 것처럼 국가의 정책이나, 혹은 대외개방 등 2차적인 외부환경에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자본주의와 소농적 농업구조 자체가 농민들의 몰락의 원인이다24). 따라서 농업 및 농민 문제는 소자영농체제 자체의 근본적인 변화 그리고 자본주의에 대한 근본적인 변혁을 통해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자본주의의 체제아래 소자영농체제를 온존시키려는 온정적주의적 투쟁은 실현 불가능하다는 점에서 기만적이며, 관념적이고 반동적이기도 하다. 그리고 투쟁을 잘못된 방향으로 이끈다는 점에서 반농민적이기도 하다.


3.자본축적을 위한 소농의 압박: 자본의 국가

한국자본주의 국가의 농업정책: 자본축적을 위한 소농 공격과 대농육성.

 소자영농의 몰락과 대농의 성장은 자본주의 경제체제하에서의 생산력 발전에 따른 필연적 귀결이다. 단지 국가는 정책으로 이것을 강화하거나 완화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한국의 경우 해방을 기점으로 한국 자본은 미국의 권력을 등에 엎고 완전히 권력을 장악하게 되었다. 자본가계급은 앞서 살펴본 것처럼 자본주의 유지 강화를 위해서 단행했던 농지개혁이 소자영농체제를 구축하였는 데, 이는 동시에 지주를 몰락시키는 결과를 초래하였다. 이로써 자본가 계급은 유일한 지배계급으로 등극하고 자본을 위한 농업정책 그리고 더 나아가 농촌 특히 소자영농 수탈적 정책을 사용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런데 이 농민 수탈적 정책이 동시에 대농형성의 과정이었다.


 자본은 이윤을 획득하고 지속적으로 축적하기 위해서 새로운 노동력을 필요로 한다. 따라서 농민을 몰락시킴으로써 노동력을 도시로 보내는 것이 바로 자본의 국가가 추구하는 정책이다. 그리하여 자본의 국가는 앞서 살펴본 자본주의 경제아래 소자영농의 몰락의 법칙을 강화하는 정책을 사용한다. 또한 자본은 노동력의 재생산을 위한 생필품의 가격을 낮추고 이를 통해 임금을 낮추기를 원한다. 따라서 자본은 농산물가격을 인위적으로 낮추는 정책을 사용하며, 소자영농의 몰락을 심화한다. 그리고 이런 몰락으로 인한 농촌 노동력의 도시로의 이주는 신규 노동인력을 제공한다. 그리고 자본은 농촌이 자본을 위한 원활한 저가의 원료제공지이자 판매처가 되기를 원한다. 따라서 낮은 생산력의 소자영농체제가 빠른 시기내에 생산성 높은 대농체제로 재편되기를 원한다. -따라서 자본의 요구는 소자영농의 몰락과 대농체제로의 재편이며, 국가는 이런 자본의 요구에 따라 소자영농의 몰락의 법칙을 강화한다.

 즉, 해방후 1960년대 초반까지 한국전쟁기간에 인위적으로 낮은 농산물가격, 그리고 전후에는 미국 잉여농산물을 도입함으로써 저농산물가격을 추진하였다. 그리고 1960년대 말부터 70년대 초에는 공업화에 따른 농산물 수요의 급증과 세계적인 농업불황 등의 문제로 인해 농산물 증산이 요청되었다. 이리하여 이시기 식량자급7개년(1965-71년)계획 등이 추진되었으며, 한시적으로 농산물가격 상승을 수용하였다. 즉, 이는 당시의 국제 농산물 흉작 등과 같은 긴급한 상황에서 추구한 방법이었으나, 그러나 이런 농산물 가격의 상승은 농촌해체를 더디게 만들었으며, 자본축적에 방해가 되었다. 이를 기점으로 하여 자본의 국가는 소자영농체제의 근간을 유지한 채 압박하는 것만으로는 저농산물가격, 저임금 구조, 그리고 풍부한 노동력 제공이 한계에 다다른 것으로 판단한다25). 그리하여 세계 각국의 증산정책으로 식량사정이 호전되자. 다시금 1970년대 말 개방농정으로 전환하면서 저농산물가격을 재개한다. 그리고 이시기 저가격의 농산물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해서 소자영농체제를 대체할 대농 육성책을 의식적으로 강력히 추구한다. 이 대농육성책은 다시말해 자본주의적 식량안보에 대응하는 한 방식이다. 국가는 1980년대 초부터 영농규모확대에 중점을 둔 농업구조개선 추진, 대농의 육성을 촉진하는 농산물 유통개선, 농업보호 완화와 수입개방 확대를 추진한다. 저농산물가격은 소농을 직접적 몰락시키는 동시에 농지가격 및 임차료를 낮춤으로써 대농에 의한 경영집중을 강화한다. 그리고 이는 1980년대 중반이후 미국의 농산물 시장 개방압력과 우루과이라운드(UR)협상을 기점으로 더욱 강화되었다. 1986년 농지임대차제도를 합법화하여, 임차를 통한 대농의 경영확대를 지원하였다. 그리고1989년 ‘농어촌 발전종합대책’을 발표하여, 상업적 전업농 중심, 영농규모확대, 농지의 집중화, 1991년 농어촌 ‘구조개선대책’을 발표하여 농업기계화와 현대화, 전업농의 규모확대 등 지속적으로 대농육성을 위해 지원하였다26). 이런 값싼 농산물 수입개방의 확대와 대농 육성은 자본일반의 이익뿐만 아니라 농산물가공 및 유통자본의 이익을 직접적으로 충족시켜준다. 그리고 동시에 국내에서도 농산물 가공 및 유통자본을 위한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을 실시하였다27). 그런데 이런 유통구조개선 및 유통자본의 형성은 소농 보다 대농에게 더욱 이익이 되며, 다시금 대농으로의 집중을 낳는다.

 소농의 몰락을 통한 대농으로의 재편이 바로 한국자본의 이해를 대변하는 국가의 영농정책이다. 따라서 대다수 농민을 몰락시키는 것은 자본의 입장에서는 영농실패가 아니라 성공적인 영농이다. 농민들은 정부의 영농정책 실패를 비판하고, 새로운 영농정책을 요구하고 있지만 이것은 사태를 잘못 파악하고 있는 것이다. 의지할 것은 자본의 국가기구인 정부가 아니다. 부언하자면 대농으로의 재편은 유럽에서도 이루어져왔는데, 유럽의 경우 한국의 70년대 개입시와 같은 가격지지정책이 상당한 시기 지속되었다. 이런 국가개입 방식의 차이는 아마도 유럽의 농업이 이미 상당수준 대농으로 그리고 더 나아가 자본주의적으로 재편되었으며, 타자본이 이윤을 확보할 수 있는 생산적 기능을 제공하고 있기 때문이다28). 그러나 유럽국가들도 농업 전반에 대한 지원하면서도 대농육성책을 사용했을 뿐만아니라, 대농으로의 분화과정이 미진하자 다시금 정책적 변화를 꽤하고 있다29). 무엇보다도 명심해야 할 점은, 그들 나라의 목표도 자본을 위한 대농 및 자본주의적 농업의 강화라는 것이다. 하지만 한국에

서 그나마 유럽 및 미국과 유사한 영농정책이 실현되기 위해서는 그에 앞서 한국농업이 자본주의적농업 혹은 대농중심으로 재편되어야 한다. 다시 말해 수많은 소자영농이 몰락하고 농업의 비중이 더욱 축소되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선진자본주의 국가는 소자영농을 위해 농업을 지원하는 것이 아니라 대농 및 자본주의적 농업을 위해서 지원하는 것이다30). 요컨대 자본의 국가에서 소자영농 체제의 유지를 통한 농민문제 해결은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농민을 위한 방향으로 영농정책의 개편을 정부에 청원하는 식의 투쟁은 국가정책의 본질을 알지 못한 것이다. 그리고 이런 투쟁은 근본적인 투쟁을 저지하는 결과를 초래한다.



4. WTO와 자유무역협정: 자본축적을 위한 농업정책

① 국가의 개방농정에 따른 분화의 가속화: 우르과이라운드의 영향

자본의 생산방식은 지속적이고 주기적인 과잉생산에 직면하는데, 이 과잉을 해소하기 위해서 해외시장의 확대를 추구한다. 이런 점은 운송과 보관 등의 기술적 발달과 함께 농산물생산부문에서도 확대된다. 특히 1970년대 이후 유럽을 중심으로 한 세계 각국의 수입관세장벽과 수출보조정책 등 농업지원정책에 힘입어 80년대부터는 세계 농산물시장이 과잉상태에 이르렀다. 이런 상황에서 기존 농산물 수출국의 초국적 농업자본들이 주도되어 농산물시장 개방의 압력을 강화하면서, 우르과이라운드(UR)의 주요 협상대상이 되었다. 이 농산물협상에서 주요 쟁점은 첫째, 시장개방분야에서는 일체의 비관세 장벽의 철폐와 전면적인 관세화의 수용여부 및 그 방법, 둘째 국내 농업지원 및 보호조치에 대한 제한 정도와 방법, 셋째 수출 보조금분야에서는 그 삭감 정도와 방법 등이었다. UR협상은 93년 12월 타결되고 1994년 4월 최종의정서와 세계무역기구(WTO) 설립협정문에 서명함으로써 종결되었다. 그런데 이 우르과이라운드는 농산물 수입에 따른 개방농정의 연속이다. 자본, 특히 초국적 자본은 자본의 구조조정과는 별도로 농촌몰락을 통해서 임금을 낮게 유지하고, 노동력을 충분히 공급받으며, 충분한 노동력으로 임금을 다시 낮추며, 적은 비용으로 농산물 가공 및 판매를 통해서 시장을 확대했다. 그 결과 농촌의 몰락과 농민의 분화 및 대농으로의 재편은 가속화되었다.

 먼저 이런 점은 우르과이라운드 이후 농가소득의 정체와 양극화에서 확인된다. 즉, 우르과이라운드가 타결된 1994년 이후 실질농업소득은 감소로 반전하였는 데, 그 주요인은 바로 수입농산물에 의한 농산물가격하락 때문이었다. 반면에 농업에 투입되는 생산수단의 가격은 실질적으로 상승하여, 한국 농촌의 몰락을 촉진하였다31). 그런데 전반적으로 농업소득 및 농가소득이 감소함에도 불구하고 대농을 중심으로 해서는 농업 및 농가소득이 증대하였다. 특히 5ha이상의 농가 소득 증대가 두드러졌다32). 또한 수입을 통한 저농산물가격 정책과 그에 따른 소자영농의 몰락은 농지 임대료를 떨어뜨림으로써 대농으로의 재편을 더욱 가속화하는 조건을 창출하였다33). 요컨대 국내외 초국적 자본을 위한 우르과이라운드와 개방은 국내 소자영농체제 전반의 몰락과 일부 대농으로의 집중이라는 결과를 초래한다.


②WTO 협상과 자유무역협정(FTA)

이제까지 살펴본 것처럼 자본주의의 발달과정에서 소자영농은 붕괴와 분화를 맞이하게 된다. 그리고 이런 과정은 국가에 의한 자본중심적 농업정책, 예컨대 개방농정 등으로 더욱 강화된다. 앞서 살펴본 우르과이라운드와 마찬가지로 향후 세계무역기구(WTO)협상도 자본중심 특히 초국적 자본중심으로 진행될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WTO협상에 관해서 간단히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먼저 UR(우르과이라운드)협상의 타결로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하였다. 그리고 2001년 11월 도하에서 열린 WTO제 4차 각료회의에서 더 높은 개방을 목적으로 한 뉴라운드에 합의했다. 이 뉴라운드는 2002년부터 3년간 지속되며, 2005년 1년 1월까지 종료하기로 하였다. 이 중 농산물 분야는 이미 우르과이라운드 협상때 논의하기로 되어있는 분야다. 즉, 2000년 3월-2001년 3월은 각국이 제출한 협상제안서를 가지고 논의하며, 2001. 5월부터는 관세율할당관리, 관세, 감축대상보조금, 수출보조금에 대해서 논의하기로 하였다. 그리고 세부사항 제출시한은 2003년 3월말이며 서로가 인정하는 최종안 제출시한은 5차 각료회의 이전으로 하며, 협상종결은 전체 뉴라운드 협상종결과 합치한다. 현재 진행되고 있는 WTO협상에서는 우르과이라운드 당시 유예되었던 쌀 개방문제와 함께 다른 농산물의 관세인하가 함께 논의되고 있다34).

 그런데 현재 이런 농산물 개방과 관련하여 EU와 일본 그리고 미국의 입장이 상호 대립하고 있다. 더욱이 미국은 연말 선거를 앞두고 2002년 농업법을 통해 1800억달러에 달하는 보조를 자국 농민들에게 하기로 결정한 상태이다35). 따라서 유럽과 일본 그리고 미국 등 자본주의 주요국들간에 아직은 그 어떤 합의도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상황이다. 반면에 현재 일본도 높은 관세율을 부과하기는 하였으나, 개방을 하였으며, 대만도 WTO에 가입함과 동시에 최소시장접근(MMA)36)을 개도국에 비해 대폭 개방하였고 내년에는 관세화로 완전개방을 할 것이다37). 이런 상황에서 자본의 국가이며, 초국적 자본에 휘둘리고 있는 한국정부의 방향성은 이미 정해져 있다. 첫째, 자본을 위한 여타의 협상에서 농산물 협상이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하며, 농산물 시장 양보와 자본의 시장을 맞바꾸려고 할 것이다. 둘째, 소농체제의 해체와 대농체제로의 재편을 관철시키는 방식으로 전개할 것이다. 셋째, 가장 적은 비용이 드는 방식을 선택할 것이다. 그리하여 공산품 등 다른 부문의 협상정도, 그리고 여타 농산물 개방 협상과 연계해서 자본에 가장 이로운 방식으로 쌀시장 문제가 처리될 것이다. 따라서 쌀시장개방에 관한 협상은 개방을 전제한 협상이며, 다만 농민들의 분노의 폭발성을 낮추는 것이 한국정부의 정책일 것이다. 이를 위하여 초기에  상당히 높은 관세를 얻어내고 점차적으로 관세를 낮추어가는 방식이거나 초기에는 높은 소득 보전에서 점차적으로 농사를 중단시켜 집중화하는 방식으로 전개될 것이다38). 그러나 이에 앞서 관세화를 최대한 끔으로서, 농민들의 이해를 대변하는 모양새를 갖출지라도, 실제로는 급격한 소농민 퇴출에 노력할 것이며, 대농으로의 재편을 위한 시간을 확보하려고 할 것이다. 자본을 위한 소농몰락, 소수 대농육성이 바로 자본의 이해에 합치되는 유일한 농정이다.


③한․칠레 자유무역협정

2002년 10월.18~20일 제 6차 협상 결과 한․칠레 자유무역협정(FTA)이 타결되었다. 그런데 이 자유무역협정은 한국의 농업정책이 자본을 위한 농업정책이라는 것을 더욱 노골적으로 보여준다. 즉,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은 노골적으로 국내 자본, 즉 제조업체들의 이익을 위해서, 농산물시장을 개방하였다39). ‘먼저 칠레측은 이번 자유무역협정에서 자동차, 휴대폰, 컴퓨터, 철강파이프 등2,300여 개 품목을 협정발효 즉시 개방화하기로 하였고, 자동차부품, 폴리에텔렌 등2,100여 개 품목을 5년 동안 균등 철폐키로 하였다. 그리하여 제조업 전체의 대칠레 수출증가액이 6억 3,600만 달러에 달할 것으로 보이며, 특히 자동차의 경우 일본을 제치고 1위로 올라설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40). 이런 국내 초국적 자본의 이익을 위해 칠레의 초국적 농업자본에게 과실을 포함한 농산물 시장을 개방하였다. ’칠레는 포도수출에서 세계 1위이며, 자두 2위, 사과․배․키위․아보카도 3위 등 각종 과실수출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지니고 있는 나라이다. 칠레의 과실가격은 수송비를 포함해도 국내산 과실가격의 1/2~1/6 수준인데, 관세가 철폐될 경우 가격이 1/3~1/8수준으로 낮아진다‘41). 이 결과 한국 과실부문을 포함한 농업에 대한 파괴적인 결과는 그 누구도 부인하지 못한다42). 요컨대 칠레산 과일의 도입은 국내 과수농가의 몰락 및 이탈과 그에 따른 대체 부문의 과잉이 발생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칠레산 축산물도 국내점유율이 높아질 것이며, 축산물 가격하락이 발생할 것이다. 칠레와의 자유무역협정체결은 국내 과수농가의 급격한 몰락을 초래할 수 있다. 하지만 한국 정부는 소농의 몰락이 대농으로의 집중하도록 하는 데 시간을 확보하는 관세유예, 그리고 보조금 지급 등의 정책을 사용할 것이다.

 이런 소자영농체제의 붕괴를 통한 대농의 육성은 각국 초국적 자본 등의 이익을 위한 세계화의 확대에 따라 더욱 강화될 것이다. 이번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은 이것으로 끝나지 않을 것임을 노골적으로 드러내고 있다43). 현 자유무역협정은 직접적으로는 국내의 초국적자본의 이익을 위한 것이지만, 이는 미국을 중심으로 한 초국적자본들의 이익을 내포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44) 향후 WTO협상을 용이하게 하게 하기 위한 수단이기도 하다45). 요컨대 미국을 중심으로 한 세계각국의 초국적자본은 추가적인 자유무역협정 및 WTO협상 등을 통해 향후 더욱 강도 높은 시장개방을 추구할 것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지속적인 시장개방의 결과 중에 하나는 한국 농민 대다수의 급속한 몰락과 극소수 대농으로 재편이다. 따라서 한국 농민 대다수는 자본주의에 대항한 투쟁, 그리고 자본의 국가에 대한 투쟁을 전개하여야 할 것이다. 또한 시장의 개방은 자본의 자유의 증대와 그들간의 경쟁의 심화는 다수자본의 몰락과 소수자본으로의 집중을 초래한다. 한 편으로는 자본의 몰락을 수반하는 지속적 구조조정으로 노동계급의 생존권이 공격당할 것이다. 따라서 자본의 공격에 대해 노동계급은 전면적으로 투쟁해야 하며, 이 투쟁에서 농민을 올바른 방향으로 나아가도록 지도해야 하며, 그런 방향에서 연대해야 한다.


5. 소자영농의 계급성과 개량주의적 투쟁

-자본주의 변혁이라는 관점에서만 노동계급과 농민은 연대할 수 있다

이제까지 한국농업에 대한 한국정부의 조처는 철저히 자본의 입장에서 추진되었다. 그리고 정부의 파괴적인 정책의 결과 대농 중심으로 재편이라는 법칙이 더욱 강력히 관철되고 있다. 그리고 이 바탕에는 소자영농 몰락이라는 자본주의 자체의 법칙이 자리잡고 있다. 소규모 자영농의 몰락은 자국농업을 보호하는 국가에서도 속도는 느리지만 지속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다는 사실을 앞서 확인하였다. 따라서 문제는 정권이 아니며, 올바른 농정이 문제가 아니다. 자본주의 자체, 그리고 자본의 국가 자체가 대다수 자영농민의 삶을 몰락시키는 요인이다. 물론 농산물 수입 등 개방농정은 농민들의 몰락과 재편을 급속하게 할 것이지만, 그 바탕에는 소농몰락이라는 자본주의의 법칙이 자리하고 있다. 따라서 단지 농산물 수입개방 등 정부의 영농정책만을 비판하고, 자본주의와 소자영농적 구조의 근본적 변혁을 주장하지 않는 것은 크나 큰 오류가 아닐 수 없다. 그와 같은 투쟁은 관념적 투쟁이며, 농민들에 대한 인기 영합적 주장이며, 농민의 고통을 연장시킬 뿐인 투쟁이다.

 그런데 현재 농민운동은 이와 같은 자본주의의 근본적인 문제를 비판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더 나아가 관념적이고 보수적인 해법으로 근본적 문제를 은폐하고 있다. 전농 등 농민단체 일각에서는 ‘통일농업’, ‘식량안보’라는 논리를 전개하고 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아래서 이런 대안은 대다수 소자영농들의 생존을 결코 보장해줄 수 없으며, 자본의 국가는 결코 소자영농을 지켜주는 정책을 사용하지 않을 것이라는 점을 무시한 것이다. 전농에서는 마치 자본주의 체제아래서 통일을 대비한 농업정책이 도입 가능하며, 통일이 되면 대다수 농민의 생존권이 유지확보 될 것으로 상상하고 있다. 그러나 통일을 대비하기 위해서도 한국 정부는 대농육성을 추구할 것이며, 식량안보의 문제를 해결하는 자본의 방식도 또한 소수대농의 육성이다. 그리고 안에서 새는 바가지 밖에서도 새듯이 통일전의 농민몰락정책은 통일이후에도 지속될  것이다. 만일 통일이 되어 쌀에 대한 공급이 부족하면, 그 때 정부는 당연히 더욱더 대규모로 수입을 개방할 것이다. 물론 이 과정에서 세계적인 곡물생산량이 흉작 등으로 말미암아 축소되면, 식량이 무기화 되거나 한국 사회는 수입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이윤에 눈이 먼 자본과 자본의 국가는 사회를 위기로 몰아넣을 지라도, 자신들의 이윤을 희생하면서 대다수 소자영농민을 살려둘 수는 없다. 그리고 북한이 현재 낮은 농산물 생산을 기록하고 있지만, 한국의 자본 및 기술과 북한의 협동농장형태의 대규모 토지가 만난다면 사정이 달라질 것이다. 그 결과는 통일 독일의 경우와 마찬가지로 남한 소자영농 몰락을 가속화할 것이며, 대농에게는 새로운 투자처를 제공하기도 할 것이다46). 따라서 ‘통일농업’론은 뿌띠부르주아의 보수적인 해결인 동시에, 또 한편의 소농 몰락과 대농육성의 논리이며, 결국 반농민적 주장이기도 하다.

 따라서 농민은 개량주의적으로 농정변화를 청원할 것이 아니라 근본적인 투쟁을 전개함으로써 실질적인 삶의 개선을 쟁취해야 할 것이다. 그리고 이 자본주의 사회의 변혁이 근본적인 해법임을 명심해야 한다. 자본주의 변혁만이 노동계급의 해방뿐만 아니라 농민의 해방의 조건임을 노동계급과 농민모두가 명심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 농민은 노동계급의 변혁운동을 적극 지지해야 한다. 또한 자본주의체제하의 소자영농자체의 구조적 문제를 직시하고, 대규모 협동농업으로의 전환이 필요함을 잊지 말아야 한다. 그 구체적인 형태는 국가마다 다를 것이지만 그 핵심은 국민 전체에 의한 토지 소유, 즉 토지 국유화47)와 그에 입각한 농민협동조합48)에 의한 경작이다. 그리고 이제 빚만 지우는 땅에 집착하는 것이 아니라 생존권을 확보하는 사회적 투쟁을 전개해야 한다. 그리고 이런 근본적인 관점에서 전면적인 대정부 실천 투쟁을 전개하여야 한다. 그럴 때에만 그나마 생존권 유지라는 개량적 성과도 얻어낼 것이다.

 하지만 자본주의 경제체제에서 반프롤레타리아트 및 프롤레타리아트로 몰락해가는 농민들은 자본주의 현실에 철저히 반대하지만, 동시에 그들의 계급적 보수성으로 인해 그들의 투쟁은 제한된다. 그들의 토지 소유자로서의 지위에 대한 집착과  고립분산적 생산방식49)에서 비롯된 그들의 계급성이 그들의 투쟁을 제약하고 있다. 이런  점은 최근의 투쟁에서도 확인된다. 쌀시장개방이 가시화되고 한․칠레 자유무역협정이 체결됨에 따라 농민들은 각종 집회와 서명 그리고 시위 특히 11월 13일 10만이 모이는 대규모 집회를 열었다. 반프롤레타리아트의 수준으로 몰락하고 있는 소자영농민들의 분노가 극에 달한 것이다. 그러나 동시에 이 소농자영농들의 분노는 자본주의 자체를 향한 분노로 승화되지 못했으며, 따라서 그들의 투쟁은 행정관청에 대한 청원식 투쟁으로 끝났다. 선거라는 국면에서 문제의 해법을 새로운 부르주아 정권창출에 기대고 있다. 생존권이 경각에 달린 10여만 명의 농민이 모여 대규모집회를 열었지만, 대선 주자들에 대한 항의와 지지표명 이외에 아무일도 없었다. 특히 통일농업론 등 뿌띠부르주아적 관점에 경도되어 있는 대표들이 농민들의 저항과 분노를 개량적인 방향으로 밀고 나갔던 것이다. 그리고 11월 25일 투쟁은 더욱더 지역적으로 산발적인 투쟁으로 끝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그들의 계급적 고립분산성은 이런 전체적 투쟁이 전개되는 동안에도 개인적인 해법을 찾는 데 집중하기도 한다.

 따라서 노동계급은 소자영농의 이런 분노가 자본주의 자체와 자본의 국가에 향하도록 해야 한다. 그리고 투쟁이 지속되고 조직화될 수 있도록 견인해야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본주의 변혁의 주체는 노동자계급이라는 사실 그리고 농민의 보수성은 노동자계급과 충돌할 수도 있다는 사실을 염두해야 한다. 그리고 노동계급은 농민들이 자신의 문제를 근본적으로 해결하도록 지원하고 지도해야 한다. 즉, 통일농업론은 기만적인 대안이며, 쌀 개방반대만 가지고는 문제가 해결되지 않으며, 정부가 바뀐다고 농민의 삶이 개선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지적해야 한다. 자본주의 변혁에 나서게 해야하며, 토지 국유화와 협동조합에 의한 대규모 경작을 이뤄내도록 해야 한다50). 그렇지 않은 연대에 나서는 것은 온정주의적이고 기만적인 연대이며 개량주의적 연대이다.

 그런데 이런 지도적 임무를 수행해야 할 노동계급과 노동운동 진영 또한 농민 못지 않게 개량주의적 길을 걷고 있다. 그리고 농민들과 마찬가지로 의회주의적 투쟁에 빠져, 선거국면에 매몰된 상황이다. 노동계급이 선거국면에 매몰된 사이, 자본은 경제특구법 통과, 금융권구조조정 지속, 공무원노조 탄압 등 노동계급에 대한 공격을 자행하고 있다. 11월 13일 농민투쟁의 실패는 11월 10일 무기력한 노동자 대회의 재판이다. 노동계급은 자신의 생존권을 위해 철저히 자본에 저항하는 것이, 백배의 선전보다 실제로 농민운동을 올바로 지도하고 지원하는 길임을 명확히 인식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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