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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 민속학의 濫觴>을 읽고




한국의 민속학은 1920년대에 비로소 학문으로서의 모습을 갖추고 본격적인 연구가 시작되었다고 하는 것이 정설이다. 그렇게 보면 한국 민속학은 여타의 학문과 달리 100년이 안 되는 짧은 역사를 가졌다. 하지만 근대의 학문이란 서구의 제도문물과 함께 동양으로 전래된 것이 대부분으로서 현재 대개의 학문, 특히 ‘한국의 OO학’이라 부를 수 있는 학문은 모두 역사가 짧을 수밖에 없다. 그럼으로 민속학사에서는 그 짧은 역사보다도 오히려 다른 문제, 곧 민속학의 역사적 배경으로 인해 민속학은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이식된 식민주의의 결과물이라는 것이 더욱 문제가 될 것이다. 인권환 선생님은 이 논문을 통하여 그러한 한국 민속학의 문제를 극복하고자 한다.

그는 먼저 우리나라의 여느 학문 연구가 “일천한 역사”를 지녔는데, 그 가운데 특히 실학은 “종합적이고 복합적인 성격”으로 인한 어려움까지 존재한다고 전제한다. 하지만 그는 오히려 그러한 “실학의 종합적 성격 가운데서 민속학적 성격을 추출하여” 민속학사에서 실학이 점하는 위치를 평가할 수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리고 실학의 그런 민속학적 측면은 구한말로 단절되어 사라져버리는 것이 아니라, 개화사상을 거쳐 최남선과 이능화와 같은 1920년대의 초기 민속학자에게 계승되면서 “형성기, 정립기에 이르는 초기 한국 민속학”의 형성으로 이어진다고 주장한다. 결국 그가 이 논문을 통하여 주장하고자 하는 바는 “한국 민속학의 시발을 1920년대로 보고 그 원류를 외래적인 것으로 보는 견해”를 시정하고 “민속학은 자생적인 것이며, 실학에서 비롯”되었음을 밝히는 것이다. 그리고 그것이 가능할 때 한국 민속학은 식민주의의 결과물이라는 딱지를 떼고 우리의 학적 전통 속에서 자생한 것이라는 점을 입증할 수 있다.

이를 위하여 인권환 선생님은 먼저 한국 민속학의 남상이 실학임을 입증하는 근거를 제시한다. 그는 우리나라의 실학이 ‘저급문화 민족’이나 ‘일반서민’ 사이에서 “옛날부터 전래되는 전통적인 설화·가요·속담·신앙·습관 등을 그 대상”으로 하는 영국이나 프랑스의 민속학이 아니라, ‘민족의식과 민족감정의 고양’과 함께 “자신을 알고 자신을 지키고자 하는 문화운동”으로서의 성격을 띠는 독일과 오스트리아의 민속학과 근원이 유사하다고 지적한다. 그리고 그보다 더욱 강력한 근거로 실학과 독일의 민속학이 모두 “자본주의의 대두에 따르는 중세적 가치관념과 사회체제가 붕괴되는 역사적 전환기에 그 단서를 마련”했다는 점을 들고 있다.

이어서 현실적·사회정책적으로 민속학을 연구한 뫼저(J. Möser)의 경우를 예로 제시한다. 뫼저는 “민속학에 대한 과학적 인식보다는 서민대중을 명확하게 파악함으로써 그들을 어떻게 구제하느냐가 일차적 목표”였던 사람으로서, “그의 궁극적 목적은 독일민족, 독일민족정신에 대한 확고한 인식”이었다. 인권환 선생님은 바로 그 점이 실학의 민속학적 경우와 비슷하다고 강조한다. 이와 같은 논의를 통하여 그는 “실학파의 서민계급에 대한 투철한 인식과 전통문화에 대한 학적 관심을 남상기의 민속학적 현상으로 볼 수 있”다고 주장하며, 1880년대 인류학의 일환으로 서구로부터 이입된 일본의 민속학과는 원류가 다르다고 지적한다. 그는 이로써 한국 민속학이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이식된 식민주의의 결과물이란 오명을 씻을 수 있다고 생각한 듯하다.

그러나 그가 밝히듯이 그러한 실학의 민속학적 성격에는 몇 가지 한계가 존재한다. 먼저 “실학 전반에 걸치는 폭넓은 考究가 선행되어야 마땅”하나 “실학 자체의 연구에서도 아직 명확히 논파된” 적이 없다는 점이다. 그래서 “실학의 학적 성격은 임임한 여러 학문의 연총일 뿐 어느 하나로 귀결지을 수 없”는데, 그는 “이야말로 실학이 지니는 진면목”이라고 강조한다. 그는 이 부분에서 실학의 그러한 성격이 “박학다식의 학문이니 백과사전적 학풍”을 대변한다면서, 은근슬쩍 민속학을 학문 체계가 성립된 하나의 學으로서가 아니라 잡학적인 것으로, 곧 엄밀한 학이 아닌 듯이 이야기하고 있다. 이는 실학자들이 “민속학을 과학으로서 의식하였느냐의 여부는 굳이 따질 일이 못된다. 어느 나라의 경우에도 학의 개념이 정립된 후에 민속학을 시작한 예는 없다”란 자신의 주장을 성립시키기 위한 변명인 듯한 인상을 지울 수 없다.

또한 실학의 개념과 관련한 천관우 선생님의 “전근대의식에 대립되는 근대의식 내지 근대지향의식, 몰민족의식에 대립되는 민족의식을 척도로 하여 재구성된 조선 후기 유학의 개신적 사상으로서 조선후기에 일어난 개신유학”이라는 내용을 인용한다. 이를 통하여 자신이 주장한 실학의 민속학적 성격과 독일 민속학의 유사성을 공고히 함으로써 “실학이 지니는 민족주체성, 현실성, 박학다식성 등은 앞에서 살펴본 서구민속학의 성립 여건에서 볼 수 있는 바와 같이, 민속학이 자생할 수 있는 소지로서 충분한 조건”이라고 결론짓는다. 그러나 그의 주장처럼 실학이 지니는 ‘민족주체성, 현실성, 박학다식성’ 등은 하나의 학문으로서의 근거라기보다는 하나의 운동으로서의 근거에 더욱 가깝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그는 실학에 대해 논하면서 실학자들이 지닌 “학적 관심은 봉건주의와 성리학에 짓밟힌 서민과 그들의 생활·문화, 곧 전통문화”였다고 하여, 실학의 연구주제가 민속학의 연구주제와 같은 듯이 끼워 맞춘다. 그러나 비록 실학이 그동안 성리학에서 다루지 않던 다양한 주제를 다루었다고는 하지만, 그것을 수행한 주체는 지배권력층 또는 지배권력층으로 나아갈 수 있는 가능성이 언제나 열려 있는 계층이었고 그들은 한 번도 성리학적 질서에 기반하여 운영되는 조선 사회를 포기한 적이 없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렇다면 실학은 그의 주장처럼 ‘봉건주의와 성리학에 짓밟힌 서민과 그들의 생활문화’보다는 다른 쪽에 더 초점을 맞추고 있었다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만약 그러하다면 그가 실학의 민속학적 성격을 논하는 것 자체가 논리에 맞지 않는 견강부회한 견해가 된다. 그뿐만 아니라 그렇게 본다면 실학의 민속학적 성격은 독일 민속학의 기원보다는 오히려 영국 민속학의 기원과 더 유사하다고 볼 수 있기에, 그의 주장의 가장 중요한 근거까지 흔들리게 된다.

인권환 선생님의 논증은 본인이 열거한 민속학의 특징과 실학의 한계를 통해 더욱 취약해진다. 그는 민속학의 주요한 특징으로 “민속학은 철저한 자기인식의 학문”이라고 강조한다. 하지만 자기인식이란 타인의 존재를 인식했을 때 비로소 필요해지는 법이다. 논문 초반에 서술했듯이 영국은 식민지민과 천한 서민층을 통해서, 독일은 특유의 정치적 상황을 통해서 자기인식을 하게 되었고, 그 결과 민속학이 탄생했다. 여기서 그는 본의 아니게 일제에 의해 이식된 결과물이란 한국 민속학의 식민주의를 인정하게 되는 오류에 빠진다.

그의 주장처럼 실학은 “학으로서의 민속학이 출발하기 이전 민속학의 잉태기 또는 남상기의 민속학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그도 인정하듯이 실학의 민속학적 성격은 “학으로서의 명확한 독자성은 결여”되어 있고, “문헌적 방법이 그 중심”이라 “실증적 과학으로서의 민속학”으로서는 결함을 갖는다. 또한 “민속지적 자료정리의 단계에서 그 이상 연구의 단계에까지는 이르지” 못했으며 “학적인 천착이나 이론의 체계화”도 찾아볼 수 없다. 다시 말해 엄밀한 의미로서의 學이라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그는 엄밀한 의미에서의 學은 아니지만, 몇 가지 근거 ―실학의 근대지향의식, 민족의식, 민족주체성, 현실성, 박학다식성 등― 를 들며 이미 실학에 민속학적 성격이 내재해 있었기에 한국 민속학은 자생적이며 실학에서 비롯되었다고 하는데, 그런 그의 주장은 너무 지나친 면이 있다. 또한 앞에서 지적했듯이 실학이란 학문 자체를 잘못 평가함으로써 생기는 오류도 안고 있다. 실학을 봉건주의에 짓밟힌 민중의 삶과 문화를 학적 관심으로 갖는 학문이라 해석하는 것은 우리를 민족주의의 함정으로 이끌 위험이 내포되어 있다.

그러나 인권환 선생님의 실학이 민속학의 “본격적인 학적 정립기라 할 1920년대 민속학에로 계승”되었는지 밝히려고 한 시도는 높이 평가할 만하다. 우리는 일본 제국주의에 의해 뜻하지 않게 억지로 개화되면서 스스로를 반성할 기회조차 갖지 못하고 근대화의 과정을 거쳤다. 그 결과 전근대와 근대의 단절로 인해 민속학만이 아니라 여러 분야의 공백이 존재한다. 그가 실학의 민속학적 성격을 논하고자 한 이 글은 바로 이러한 공백을 메우려는 노력 소산일 것이다. 그가 이 논문을 쓸 당시에는 아직 실학에 대한 연구가 폭넓게 이루어지지도 않았음은 물론 명확한 평가도 이루어지지 않은 시점이었기에, 그에 따른 한계가 존재한다. 실학에 대한 연구가 폭넓게 이루어지고 정확한 정의가 내려진다면, 실제로 실학에 민속학적 성격이 내재했는지에 대하여 더욱 자세히 따져볼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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