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28x90

전주의 인구는 얼마나 될까?

가장 정확한 건 행정안전부에서 제공하는 주민등록 통계자료일 것이다.

http://www.mois.go.kr/frt/sub/a05/totStat/screen.do


최대 42개월의 자료를 제공하고 있어 2015년 5월부터 1년 단위로 2018년까지 살펴보았다.

결과는 아래와 같다.






위에서 보는 바와 같이 오르락내리락 하긴 하지만, 대략 65만 3천 명이 전주시의 인구라고 할 수 있다.

지난 3년 사이 확 늘어나지도, 그렇다고 확 줄지도 않았다. 


이전 자료는 찾아보니 다음과 같다.

1980년 36만6997명

1990년 51만7104명

2000년 62만2238명

2010년 64만6535명

2011년 65만1015명

2012년 65만4040명

2013년 65만5358명

2014년 65만8570명


아무튼 2000년까지는 양적 성장을 한 뒤, 혁신도시 개발과 함께 65만 명을 찍은 뒤 꾸준히 그 정도의 인구가 유지되고 있다고 할 수 있겠다.


그런데 앞으로도 계속 이 추세를 유지할 수 있을까? 글쎄, 장담할 수 없을 것이다.


전주의 인구가 꾸준히 늘어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최근 들어 늘어나지는 않지만 계속 65만 선을 유지할 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인가?

정확히 분석해 보지는 않았지만, 전북의 주변 시군에서 인구가 유입되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일이 앞으로도 계속 가능할 것인가?

나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바로 마츠다 보고서라고 하는, 이른바 '지방 소멸'이라 하는 현상 때문이다.


아래 지도를 보는 방법은 이렇다. 

65세 고령층 인구의 숫자와 20-39세의 여성 인구의 숫자의 비율로 '소멸 위험지수'를 계산한다. 

그 값이 1.0 이하일 때, 다시 말해 고령 인구가 여성 인구보다 많아질 때 그 지역은 쇠퇴의 위험에 접어들었다는 것이다. 

그리고 이 값이 0.5 이하라는 건 젊은 여성의 인구가 고령 인구의 절반 이하라는 뜻이며, 그때 무언가 획기적 계기가 없으면 소멸 위험에 처했다는 것이다.


자, 그러면 전주를 중심으로 그 주변 지역의 소멸 위험지수가 어떠한가?

전주만 안정권이고, 군산과 익산, 완주는 쇠퇴의 위험에 처해 있으며, 나머지는 소멸 위험에 처해 있다.

그런데 전주의 인구가 지속가능하게 유지되거나 성장할 수 있는 기반이 조성되어 있는가? 쉽지 않다. 주변에서 인구를 땡겨 와서 지금껏 인구 규모를 유지했다고 봐야 할 것이다.

군산은 다들 잘 알다시피 현대조선과 GM군산공장이 무너졌다. 많은 사람들이 군산 제조업의 몰락과 전주는 상관이 없다고 그러는데,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장은 뚜렷하게 드러나는 영향이 없을지라도 장기적으로 전주에도 악영향을 미칠 것이다.

그럼 익산은? 거기야 늘 거기서 거기일 것이다. KTX역을 지키는 데 혈안이 된 건 그거라도 지켜야 명맥을유지할 수 있어서일 것이다. 얼마전에는 원불교 교당인가를 익산에서 다른 곳으로 옮긴다고 해서 큰일나기도 한 적 있다. 또 군산 제조업의 몰락은 당장 익산 지역의 공단에도 영향을 미칠 것 같다.

이외의 농어촌은 더 말할 것도 없다. 거긴 가만 있으면 미래의 어느 날, 지도에서 사라질지도 모른다. 



순망치한이라고 했다. 전북의 이런 소멸 위기는 전주에만 몰빵을 한다고 해결될 일이 아닐 것이다. 전주는 전주대로, 그리고 그 이외의 전북 지역은 그 지역대로 무언가 조치를 취해야지만 한다. 전주만 무얼 해서 간신히 유지하거나 소폭 상승한다고 하자, 하지만 그 상태로는 여전히 위태롭다. 주변 세력도 든든해져야 중심도 강해지는 법이다. 


전주를 중심으로 전북에 장기적으로 지속가능한 미래가 있는가?

현재로서는 나도 잘 모르겠다. 잘 보이지 않는 게 사실이다. 


뱀다리... 인구 감소, 특히 저출산 고령화로 인한 청년층이 사라지며 발생하는 문제가 이제부터 시작이라고 한다. 그에 대한 좋은 기사가 있어 첨부한다.


http://blog.daum.net/stonehinge/8732245






728x90

'농담 > 雜다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개발, 발전=토건이란 논리  (0) 2018.06.14
이현웅 후보는 무언가?  (0) 2018.06.13
6월, 전북의 미세먼지  (0) 2018.06.09
여성민우회 후원회원으로 가입했다  (0) 2018.06.04
조선의 애민 정신  (0) 2018.06.04
728x90

어디를 갈까 하다가 국수나 먹으러 가자 해서 찾아간 익산 부송동 부송국수.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리며 먹는 모습에 깜짝 놀랐다.





약계란은 한 번 더 추가해서 먹지 않을 수 없을 정도로 맛이 좋았다.





이 집의 매력은 아이들을 위한 배려가 눈에 띈다는 점. 

어린이국수도 있고, 아이용 의자도 있더라.




728x90

'농담 > 雜다한 글' 카테고리의 다른 글

진안 천황사  (0) 2016.05.02
진안 운일암 반일암  (0) 2016.05.02
퍼블릭  (0) 2016.04.23
치르치르 치킨  (0) 2016.04.21
세월호 2주기  (0) 2016.04.16
728x90

남선지장은 일제의 산미증식계획에 따라 주로 볍씨 육종을 위해 전라북도 이리(현 전라북도 익산시)에 설립된 농사시험장 분장이다.

1930년 1월 18일 총독부 훈령 제7호로 관제가 공포되고, 건설비 10만 6천여 원과 부지 4천여 평을 전라북도의 지주와 농업관계자, 유지 들의 기부로 마련해 1930년 2월 공사를 시작해 그해 7월 완공했다.

이 지역은 옛날부터 호남평야로 유명했는데, 일본인 지주들이 진출하면서 거기에다 개막은땅(간척지)이 급증한다. 이에 따라 소금기에 강한 품종을 육종하는 일이 시급해졌다. 그와 더불어 생산량을 늘리고자 비료를 많이 줘도 쓰러지지 않고 병에 강한 품종을 육종해 산미증식이란 일제의 밑그림을 완성하고자 했다. 

 

 

 초창기 남선지장의 모습

 

특성 검사 및 품종을 보존하던 건물 

 

남선지장 앞에 설치한 기상관측시설 

 

 다카하시 노보루가 만난 남선지장 장 사토 겐길 씨. 일제 패망 때까지 남선지장에서 근무했다. 이후 일본으로 돌아가 아키타 농업단기대학 학장 등을 지냈다.

 

 아직까지 남아 있는 남선지장 건립비 (왼쪽부터 농사시험장 남선지장 간척출장소 건립기념비)

 

 남선지장의 후신 호남농업연구소의 모습. 저 너머 보이는 아파트 공사 현장이 우리 농업의 현실을 반영하는 듯하다.

728x90

'농담 > 읽을거리'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조선 반도의 농법과 농민  (0) 2009.06.11
시마타니 농장  (0) 2009.01.25
조선반도의 농법과 농민 1-5. 전북 옥구군 개정면 여산리  (0) 2009.01.23
곡물검사소는?  (0) 2008.11.21
1-2. 전남 광주군  (0) 2008.10.24

+ Recent post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