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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통농업에서 배우자(32)-의성 오세석 선생

“토종 종자 수집하려고 시골장이란 장은 다 뒤졌지요”


대서라는 절기답게 후덥지근한 날, 경상북도 의성군 단북면에 있는 경북농산물원종장 의성분장을 찾았다. 이곳에서 15년 이상 토종을 찾아 보존하며 경제성 있는 토종은 적극적으로 농가에 보급해 온 오세석(54) 분장장을 만났다. 그저 할 일을 했을 뿐 내세울 것도 없다며 환히 웃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운 분이다.


- 이곳 원종장이 어떤 곳인지 소개해 주세요?

= 원종장은 기본적으로 종자를 채종해서 농가에 보급하는 일을 하는 곳입니다. 이런 원종장은 각 도마다 다 있습니다. 이곳 경북 원종장은 원래 경상북도에 소속된 기관이었는데, 5년 전부터 농업기술원 소속으로 이관됐습니다. 이곳에서 하는 일은 주로 보리, 콩, 참깨, 고구마 같은 식량작물을 채종해서 농가에 보급하는 것입니다. 특히 대구에 있는 원종장에서는 벼를 담당하고, 이곳 의성분장에서는 밭작물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옥수수와 감자는 강원도에 있는 원종장에서 담당합니다. 여기 의성분장은 모두 10만 2천 평에 직원이 11명 있습니다. 보리, 콩, 팥, 녹두, 땅콩, 참깨, 들깨를 주로 심습니다. 이렇게 기른 작물에서 씨를 받아 경상북도 모든 농가에 보급하고, 농가에서는 보통 4년을 주기로 종자갱신을 합니다.

채소나 원예, 과수와 관련된 육종이나 채종은 모두 업자가 할 수 있게 관련법이 정비되어 있습니다. 종묘법에 따르면 채소, 원예, 과수와 관련한 종자는 종묘 회사에서만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 하면 품종 등록이 되지 않을 겁니다. 종묘 회사처럼 어디 팔고 그러면 소송을 당하겠죠. 엄격히 따지면 지금 여기 원종장에서 제가 토종을 심는 일도 걸릴 겁니다. 품종 이름도 내가 지었고, 몇 단계 검사를 거쳐야 하는데 그러지도 않았고, 법에 안 걸리려면 아마 품종 등록을 해야 할 겁니다.


- 토종에는 어떻게 관심을 가지셨나요?

= 부모님은 영천에서 과수 농사를 지었습니다. 저는 농업고등학교를 나와 젊어서부터 기술원에서 일을 시작했습니다. 그렇게 지금까지 33년 동안 공무원을 하고 있는데, 농업 분야가 제 적성에 맞고 재밌습디다. 이곳 분장장에서 일한 지는 24년 됐습니다. 이곳에서 종자를 보급하는 일을 하면서 90년부터 토종에 관심을 갖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토종 종자를 수집하려고 시골 장이란 장은 다 다녔지요. 옛날 기록도 뒤져서 주산지가 어디라고 나오면 그곳까지 따라가서 뒤졌습니다.

그러다 십 몇 년 전에는 안동장에 갔다가 아무 것도 찾지 못하고 돌아와야 했는데, 여기까지 온 김에 관광이나 하자고 해서 하회 마을을 찾았습니다. 거기에서 우연히 한 농가에 자주감자꽃이 핀 것을 보고는 주인한테 부탁해서 다섯 알을 얻어 왔지요. 그걸 심어서 첫해 10kg으로 늘리고, 이듬해에는 250kg까지 늘렸습니다. 98년에는 중국에도 한 일주일 가서 몇 가지 종자를 몰래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그렇게 모은 토종이 예전에는 300가지쯤 있었습니다. 헌데 이곳은 진흥청 산하 종자은행처럼 보관 시설이 좋은 것도 아니고, 계속 재배하기도 힘들고 감당하기 어려운 점이 있어 지금은 35가지만 심고 있습니다. 특히 이곳은 원종장이라는 특성이 있는 만큼 농가에서 찾는 것을 중심으로 보존하는 현실입니다. 아니면 보기에 좋거나 특이한 것을 위주로 보존하고 있습니다. 그렇다고 많은 양은 아니고 15평, 30평씩 종자라도 보존하자는 생각으로 심고 있습니다.

이곳에서 심고 있는 35가지 토종 가운데 농가에는 15가지 정도 보급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속청, 검정콩, 율무, 메밀은 농가에서 많이들 생산하고 있습니다. 다른 원종장에서는 주로 종자 생산에만 초점을 맞추고 있습니다. 토종을 찾아서 보존하고 농가에 보급하는 일은 여기서만 진행하는 일입니다.


- 자주감자는 어떤 건가요?

= 자주감자는 50~60년 전부터 내려오던 것입니다. 이건 춘천 지역에서 많이 심었다고 해서 이름을 춘천재래라고 합니다. 자주감자는 겉은 자줏빛이 나고 속은 흰데, 이걸 날로 먹으면 맛이 아립니다. 북한에서 나온 동의보감을 찾아보니 자주감자는 간에 좋다고 나옵디다. 그래서인지 가끔씩 한방 쪽에서 찾는 전화가 옵니다. 이런 것은 연구할 만한 가치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율무는 이뇨 작용에 좋고, 목화는 변비에 좋고, 메밀은 동맥경화에 좋고 이런 것들을 자세하게 연구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자주감자 말고 붉은감자라는 것도 있습니다. 이건 처음에 예천의 한 백화점에 가서 구했는데, 종자로는 못쓰게 했습니다. 자신들만의 특산물이라며 지키려고 그런 거죠. 지금 10년 넘게 심고 있는데 퇴화되지 않습니다. 퇴화되면 토종이 아니죠.

토종은 해마다 심어도 퇴화되거나 그러지 않습니다. 또 토종은 극심한 가뭄에도 잘 견뎌서 수확량도 괜찮고, 병충해도 잘 타지 않고 적응력도 높아 산간지나 텃밭이나 어디에든 재배할 수 있습니다. 앞에도 말했듯이 몸에도 아주 좋지요. 그런데 보통 토종이라고 하면 몇 백 년 전 것만 찾는 경향이 있습니다. 저는 어디서 왔든지 우리 땅에 토착화했으면 토종이라고 생각합니다.


- 씨감자 보관은 어떻게 하시나요?

= 감자는 일반 창고에 2~3℃를 유지하는 것이 좋습니다. 고구마는 11℃를 유지해야 좋습니다. 저도 처음에는 감자를 보관하려고 땅속에 묻었는데, 봄에 싹이 많이 납디다. 지금은 종이상자에 넣고 신문지 같은 종이 뭉치를 넣어서 그냥 창고 구석에 보관합니다.


- 토종 감자는 수확량이 어떠나요?

= 올해는 봄에 많이 가물어서 좀 못합니다. 땅만 좋으면 한 포기에 대여섯 개도 더 달리지요. 열개까지도 됩니다. 그렇게 하려면 첫째 퇴비를 많이 넣어야 합니다. 저는 퇴비는 많이 넣을수록 좋다고 생각합니다.

이곳 땅은 검사하니 유기물 함량이 2가 되지 않습니다. 그것도 많이 좋아진 것이 그렇습니다. 95년도에 경지정리를 하면서 싹 뒤집어서 밑에 안 좋은 흙이 올라왔습니다. 그래서 처음 4~5년 동안은 농사가 되지도 않았습니다. 이곳이 단북면인데 붉을 단자를 씁니다. 여기 말로는 쪼대흙이라고 하는데, 황토가 많아서 그렇습니다. 그래서 비가 오면 질고, 마르면 돌덩이가 됩니다. 수평 배수는 어느 정도 되는데, 수직 배수가 잘 안 되지요. 모래와 퇴비를 넣어서 그나마 좋아졌습니다.


- 옥광을 심고 있는데, 맛은 좋지만 웃자라고 익으면 터집니다.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 여기서 많이 보급하고 있는 토종 콩인 속청은 보통 5월 초에 심습니다. 지금 다 순지르기를 끝냈죠. 모든 콩이 보통 요즘이 개화기입니다. 이렇게 꽃이 필 때 순지르기를 하면 늦습니다. 웃자란다 싶으면 조금 일찍 심거나 순지르기를 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합니다. 콩은 처음에 웃자라면 수확량이 적습니다. 익으면 탈립하는 건 그 콩의 특성입니다.

정부 차원에서 경제성이 보장된다고 하여 여기서 재배해서 보급하는 콩은 5가지입니다. 그것은 대원콩, 태광콩, 장원콩처럼 굵은 건 메주콩으로 쓰고, 보석콩처럼 잘면 콩나물콩으로 씁니다. 또 청자콩 2호는 검정콩의 하나입니다.


- 콩에 질소질은 얼마나 주나요?

= 여기는 보통 4에 맞춥니다. 농고를 나오면 다 아는 얘기인데, 요소비료 같으면 질소비율이 46%입니다. 이걸 계산하면 300평에 8.7kg를 줘야 질소질 4kg을 주게 됩니다. 유안 같으면 질소비율이 20%이니 더 줘야 하지요.


- 붉은 찰벼라는 종자가 있던데 자광미와 다른 것인가요?

= 여기서 15년 넘게 심고 있는 찰벼입니다. 보통 벼보다는 분명히 수확량은 떨어집니다. 하지만 먹어 본 분들은 자기가 먹어 본 찰벼 가운데 가장 맛있다고 합니다. 자광미는 이야기만 듣고 직접 해보지는 않았는데, 이건 쌀이 아니라 잎이 붉은색입니다. 쌀은 일반 벼와 똑같이 현미는 누런색이고, 도정하면 흰색입니다. 그러니 붉은 찰벼라는 건 잎이 붉다는 뜻입니다.

그리고 경상도에서는 올보리를 많이 심습니다. 이걸 찾는 이유는 알이 굵어서 그렇습니다. 알이 굵어서 농사만 잘 지으면 쉽게 1등급을 받습니다. 그 재미로 수확량은 조금 떨어지지만 농민들이 올보리를 많이 심습니다.


- 마지막으로 한 말씀만 해주세요.

= 지금 우리나라에서는 벼, 보리, 감자, 옥수수, 콩 이렇게 다섯 가지만 나라에서 관리하고 있습니다. 점점 농업은 어려워지니까 정부에서는 그 다섯 가지 말고는 관리를 못하는 실정이지요. 막상 토종을 해보니 요즘은 괜히 힘만 들지 괜히 시작했나 하는 생각도 듭디다. 그래도 종자은행의 냉동고에 있는 것보다 살아 있는 싱싱한 종자를 보존하고 보급하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내가 먹을 정도면 몰라도 농민 입장에서 어디 내다 팔고 하려면 경제성을 무시할 수 없는데, 토종은 아직 그런 면에서 힘듭니다. 예전에 흑미가 값이 좋을 때는 한 가마에 40~50만원도 했습니다. 그런데 참 농산물이라는 것이 그렇습니다. 5%만 과잉 생산되면 폭락하고, 5%만 모자라면 폭등합니다. 요즘은 어떤 농산물 값이 비싸다고 하면 바로 수입해서 그 폭이 덜하긴 하지요. 채소는 생물이라서 그렇게까지는 못합니다만, 값이 떨어지면 외면을 받습니다.

저는 사택에 따로 30평쯤 텃밭을 하는데, 거기 케일을 심었습니다. 거름은 깻묵 썩은 걸 주고 벌레 때문에 모기장을 덮어 놓았지요. 하루는 백화점 가서 깨끗한 케일을 보면서 ‘이게 이렇게 깨끗하게 안 되는데’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1970년 이전 농업통계를 보면 쌀만 생산량이 2000만석 전후였습니다. 그 이후에는 웬만하면 4000만석 이상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경작률은 줄었지만 오히려 수확률은 늘었다는 건 다수확 품종을 심고, 비료를 많이 주고, 그러다 보니 병이 많아져 농약을 많이 했다는 뜻입니다. 비료를 적게 주면 도열병이 오지도 않습니다. 비료를 많이 주면 대번 도열병에 다 걸리지요. 퇴비를 보약이라고 한다면 화학비료는 영양제입니다. 한약은 많이 먹어도 나쁘지 않고 좋은 것처럼 퇴비를 줘서 강하게 자라도록 해야 합니다. 땅이 좋아야 안 좋은 종자도 좋아집니다. 땅이 나쁘면 종자도 제대로 되기 어렵습니다. 종자가 좋으면 좋은데, 종자가 나쁘면 땅이라도 좋아야 합니다. 여기는 땅이 넓어 감당하기 어려워 퇴비를 많이 쓰지 못합니다. 그래도 생산량보다 종자로 쓰려고 하는 것이기에 될 수 있으면 비료를 적게 줍니다. 그래야 강한 종자를 받을 수 있어서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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