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부에는 긴가쿠지로 알려진 이 절은, 원래 이름은 지쇼우지慈照寺라고 한다. 禪으로 유명한 임제 선사를 잇는 임제종 상국사파相国寺派의 사원이다. 이곳에는 무로마치室町 시대의 후기에 번성한 히가시야마東山 문화를 대표하는 건축과 정원이 있다. 지금은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어 일본인들만이 아니라 세계 각국의 사람들이 바글바글 찾아오는 곳이 되었다.






오사카에서 가는 방법은 한국의 철도공사와 같은 JR 기차를 이용하거나 1호선 천안 급행 전철과 같은 한큐阪急 급행을 타면 된다. 우메다역梅田驛과 가와라마치역河原町駅을 오가는 전철이니 앉아서 가기 좋다. 문제는 여기까지 찾아가는 길이다. 대부분 난바역이나 혼마치역 근처의 숙소에서 우메다역까지 이동하는데, 지하철을 타는 구간을 짧아도 내려서 한큐우메다역까지 찾아가는 길이 만만치 않다. 낯선 외국에서, 그것도 어디가 어딘지 종잡을 수 없는 지하통로에서 뱅글뱅글 돌다보면 가기도 전에 지쳐 포기해버리고 싶은 심정이 되기도 한다. 이틀 동안 몇 번을 오간 끝에 이제는 좀 감이 온다. 하지만 첫날의 그 당혹스러움이란... 몇 번을 지하에서 헤맨 끝에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일본인은 개미와 같다. 그리고 그들이 만든 지하통로는 개미굴과 같다." 



아침부터 교토행을 택하면 이런 출근인파와 마주쳐야 한다. 무슨 군대처럼 발소리를 내면서 걸어가는 그들을 바라보노라니, 사회는 전쟁터이고 직장인은 그곳에서 전쟁을 수행하는 군인이라는 말이 실감이 난다. 현대 자본주의 사회에서는 총성 없는 전쟁이 벌어진다. 여행자는 이러한 일상에서 벗어나 자신과 남의 삶을 관찰할 수 있다는 데에 큰 재미가 있는 것 아닌가 싶다.




가와라마치역까지 한 45분. 여기서 내려 6번 출구로 나가 바로 버스를 타면 된다. 지하철 통로에 버스노선 안내도가 아주 잘 되어 있으니 먼저 참고하면 좋다. 



몇 번 출구에서 어디로 가는 몇 번 버스를 탈 수 있는지 아주 자세히 설명해 놓았다.



버스정류장에도 안내가 잘 되어 있으니 글자만 읽을 줄 알면 된다. 유명한 관광지인 만큼 대중교통 안내체계가 아주 잘 되어 있어 일본어 회화를 못해도 누구나 다닐 수 있다. 버스에서도 이번 역은 어디인지 내릴 곳은 어디인지 안내 전광판이 달려 있다. 말로만 설명하면 어렵겠지만, 그 전광판만 봐도 된다. 


6번 출구로 나와 203번을 타고 "긴가쿠지 앞"까지 가서 내리면 된다. 난 중간에 딴짓을 하느라 방송을 놓쳐 몇 정거장 전에 내려 동네를 좀 거닐었다.


동네를 거닐며 만난 개천. 이 때문에 교토의 첫인상은 '물이 많은 도시'였다. 실제로 다니는 내내 물과 만날 수 있었다. 이 정도의 물이라면 농사짓고 살기 좋았겠다. 여름철 장마와 태풍은 어떤지 알 수가 없지만...



버스 정거장 2~3개쯤은 걸어서 20~30분이면 오갈 수 있는 가뿐한 거리다. 요즘은 그 정도 거리도 잘 걸어다니지 않아서 그런지 엄청 멀다고들 하지만 나에겐 아무것도 아니다. 은각사까지 동네 골목으로 해서 이동해 도착!



이국적인 풍경은 설레임을 안겨준다. 똑같은 가게라도 한국에서 보는 것과 외국에서 보는 건 느낌이 달라진다. 그러나 경계할 것이 있으니, 그때의 그 설레임 때문에 자국의 문화를 우습게 여길 수도 있다는 점이다. 외국에 오래 살다가 온 사람은 그럴 위험이 적으나, 어설프게 다녀온 사람들이 꼭 그런 오류에 빠지는 모습을 몇 번 보았다. 미국 몇 달 다녀온 뒤에 미국은 이래서 참 좋고 그런데 한국은 이래서 안 된다느니 하는 말을 하더라.



은각사 입구. 주변으로 가게 등이 있어 볼거리와 먹을거리를 제공한다. 유명한 유적지로 들어가는 입구에서 이러저러한 물건을 파는 모습과 같다. 그런데 일본은 그것이 조금 더 깔끔하게 잘 정리된 느낌이랄까.



표를 끊는 곳까지 몇 분 정도 살짝 걸어서 올라가면 은각사에 들어가는 입구에 도착한다. 



은각사 경내 안내도. 2010년 어느 분의 여행기를 보면 이 안내판이 아닌 구식 안내판의 모습을 볼 수 있다(http://goo.gl/pAS7H). 돈 벌어서 계속 수리복원 등을 하고 있는 것 같던데, 안내판도 그렇게 바뀌었나 보다. 알뜰한 일본인. 쓸데없는 데 예산낭비를 안 하려는 노력의 일환으로 비싼 입장료로 그렇게 하는 것이겠지? ㅡㅡ




입장료를 내고 들어서면 잘 다듬어진 동백나무 벽을 만날 수 있다. 한국에서 이 정도 크기의 동백나무 벽은 제주도나 가야지 볼 수 있다. 제주도에서는 방풍림으로 동백나무를 심은 곳이 꽤 있다. 그곳에 가도 참 아름답다.





경내로 들어가면 몇몇 포인트가 있다. 우선 가장 먼저 만날 수 있는 은각銀閣. 말처럼 은빛으로 번쩍이기 때문에 은각인지 어떤지 알 수는 없다고 한다. 일본에서도 전하는 속설에는 원래 은박을 입히려고 했으나 재정이 부족하여 그렇게 안 했다느니, 은박을 입혔는데 그것이 떨어진 것이라느니 하는 설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2007년 정밀조사 결과 원래부터 은박이 입혀지지는 않았고 검은 옻칠만 되어 있었다는 것이 밝혀졌다. 그러니 은각은 은빛으로 빛나는 건물이라 그런 것이 아니라는 뜻이다. 금각사는 확실히 금박으로 입혀졌던데, 그냥 그에 대한 상대적인 이름으로 은각사란 이름이 붙었는지도 모르겠다. 



일본 특유의 정원 문화를 엿볼 수 있는 은각사 경내의 정원과 연못 안의 북두석. 북두성은 인간의 수명을 관장하는 중요한 별인데 이 연못 안의 돌에 북두석이라 이름을 붙인 건 어인 연유일까? 아무튼 일본인들이 아기자기하게 꾸미고 이름을 붙이는 걸 보면 특유의 섬세함이 잘 드러난다. 중국은 커다란 바위를 가져다 놓고 꾸민다지. 



한창 단풍철이라 그런지 소풍을 온 아이들부터 단풍놀이를 온 어른들에 나 같은 외국인 관광객까지 사람들로 넘쳐났다. 그래도 벚꽃놀이할 때보다는 적은 편이겠지? 벚꽃이 필 때 오면 인파에 휩쓸려 다닐 것 같다. 아무튼 붉은 단풍 덕에 정원이 더욱 아름답게 보인다. 



이것이 은각사의 핵심인 은각의 전체 모습. 2층의 흰 창이 있는 부분을 검게 옻칠해 놓았다. 이것이 원래 모습이라고 밝혀져 그렇게 복원한 것이다.


경내에 마련되어 있는 기념품 가게에는 찻집이 딸려 있는데, 그곳에서 차를 주문하면 이 안에 들어가 은각의 옛 모습이 어떠했는지 복원해 놓은 걸 볼 수 있다. 옻칠만 시커멓게 해놓은 것이 아니라 한국의 사찰처럼 단청까지 칠해져 있었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일본의 절을 다니며 단청을 본 기억이 별로 없다. 몇 군데에선 봤는데.



은각사 인근의 골목길을 걷다가 발견한 한 가정집에 옻칠을 해놓은 2층 건물을 발견. 주인을 만나 어찌된 연유인지 묻고 싶었으나 속으로만 삼키고 지나갔다. 아무튼 재밌다.




은각이 있는 곳에서 조금 더 들어가면 조그마한 신사가 하나 나온다. 일본은 신의 나라이다. 어디에나 도처에 신이 존재한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를 기리는 신사 등을 지어 그들을 모신다. 왜 그럴까? 자연재해와 전쟁 때문은 아니었을까? 인간은 원래부터 불안한 존재다. 내부적으로도 그런데 외부적으로 불안을 가중시키는 일들이 잦아진다면 더욱더 외부의 절대적 존재에게 자신의 운명을 맡기고 싶어진다. 그것이 일본을 신의 나라로 만든 원인은 아닐까.



이곳의 신이 관장하는 일도 참 깨알 같다. 교통사고가 나지 않도록 보호해주는 것에서부터 목조건물이 많은 탓에 화재를 막아주는 일까지 몇몇 주요한 일을 담당한다. 이 신이 모든 걸 다 해결해주지는 않는다. 또 신마다 전문으로 담당하는 역할이 따로 있다. 그래서 기술자, 장인들이 많았을까?



다음으로는 모래 정원이다. 이건 마치 만다라의 그림을 그리는 것과 같아 보인다. 티벳불교에서는 종교적 의미를 지닌 만다라라는 그림을 아주 정성들여 돌가루와 모래 등과 같은 재료로 몇 달간 고생하며 그린 다음 그에 집착하지 않는다는 의미로 확 밀어버리는 의식이 있다. 이곳 은각사 안의 모래정원은 그를 본따 만든 것으로 禪 문화를 상징하는 것 같다. 


이걸 매일 아침마다 다시 다듬는지, 아니면 한 번 만들어 놓으면 모양이 망가질 때까지 그대로 놔두는지 어떻게 관리하는지가 더 궁금해졌다. 옛날에는 이걸 선 수행의 하나로 행하였겠지만, 지금은 관광객들을 위한 볼거리로만 쓰이는 마당이니 예전처럼 활용하지도 않을 것이다.





여기에는 향월대라고 하여 모래를 봉긋하게 쌓아올린 대가 하나 있는데, 왜 하필 '달'인가 하는 의문이 들었다. 금각사에 대응한 은각사, 둘은 음과 양을 상징하는 건 아닐까? 금각사가 양을, 은각사가 음을 상징하여 음의 극인 달을 바라본다는 향월대가 이곳에 있는 건 아닐까? 지나친 확장 해석일지도 모른다.  





은각사의 세 번째 볼거리는 동구당東求堂(일본명: 도우구도우)이라 불리는 건물이다. 이 건물은 1486년에 지어진 것으로, 당시에는 은각 쪽에 지어졌다고 한다. 아무튼 이곳은 일본 건축사에서 다실의 원류로 꼽힐 만큼 훌륭한 건물이다.  


다들 물에 비친 동구당 건물의 모습에 반할 때, 난 물에 반사된 햇빛이 비친 동구당 건물이 더 눈에 들어왔다. 방 안에 앉아 있으면 그 물빛이 더 아름답게 보였을 테지. 들어가지 못하는 것이 아쉽다. 일본의 역사유적은 모두 막혀 있다. 우리도 마찬가지이긴 하지만 그것이 한국보다 훨씬 심하다. 그래서 가끔은 여기도 들어가지 못하는데 입장료가 너무 비싼 거 아닌가 하는 억울함까지 든다. 세계문화유산 때문에 그러하겠지. 창덕궁도 세계문화유산에 등록된 다음부터 그랬다. 세계문화유산 따위!



동구당의 물그림자라고 아름답지 않은 것이 아니다. 우주를 반영한 듯한 일본 정원의 아기자기한 아름다움이란! 



'아!' 하는 감탄사가 절로 나오게 만드는 풍경. 이래서 은각사를 오는구나. 




은각사의 네 번째 볼거리는 작은 폭포. 이름을 세월천洗月이라 한다. 향월대가 달을 바라보는 대라면, 이곳은 달을 씻는 샘이다. 모두 달과 관계가 된다는 점이 흥미롭다. 폭포라고 했지만 웅장한 규모는 아니고 그저 작은 물줄기가 주르륵 떨어지는 모습일 뿐이다. 그런데 여기서도 일본인 특유의 아기자기함이 엿보인다는 사실. 가만히 앉아서 물이 떨어지는 모습을 보노라면 저절로 수행이 되었을 것이다. 선불교가 일본에 들어와 일본문화에 정말 엄청난 영향을 주었다는 걸 알 수 있다. 그것이 다시 서양에 알려지면서 서양인들이 일본문화에 뿅 간 것이고. 


그저 그런 물줄기로만 볼 수도 있지만, 이 안에 놓인 아름다움이란...



세월천의 물이 고이는 곳엔 사람들의 염원을 담은 동전이 가득 쌓여 있다. 마음을 닦으랬더니 염원을 쌓는다. 인간이 그렇다. 




은각사의 다섯 번째 볼거리는 동산에 올라 바라보는 교토시의 모습이다. 늘 지상에서만 생활하는 인간은 자신의 모습을 돌아볼 수가 없다. 높은 산이나 건물, 비행기 등에 올라 내려다볼 때만 자신이 살고 있는 세상을, 그 안에 사는 자신을 돌아볼 기회를 얻는다. 그래서 옛날에는 높은 산이 숭상을 받았는지도 모른다. 그 안에 깃든 신령은 인간의 외부에 따로 존재하는 것이 아닌, 인간이 그 산에 들어감으로써 만나게 되는 자기 자신일 것이다. 


은각의 모습과 함께 한눈에 들어오는 교토의 모습. 야트막한 산에 집들이 다닥다닥 있는 모습에 '여기랑 한국이랑 비슷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은각사, 아니 일본을 여행하며 만난 정원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는 바로 이끼였다. 어째서 일본의 흙에선 풀이 한 포기도 자라지 않는 것인가! 어찌 이끼만 멋진 양탄자처럼 깔려 있는 것인가! 그 이유는 나중에 난젠지라는 곳에서 알았다. 일본인 특유의 섬세함으로 풀을 하나씩 뽑아버렸던 것이다. 

요즘 한국의 공원이나 학교, 유적지 등에서 풀을 관리하는 방법은 그냥 제초제를 치는 것이다. 그것이 가격도 싸게 먹히고, 관리하기에도 수월하기 때문에 그렇게 한다. 그런데 일본은, 풀을 사람이 하나하나 손으로 뽑으며 이끼를 보호했던 것이다. 은각사 전체를 아우르는 볼거리의 핵심은 바로 이 이끼에 있다! 


일본 정원 문화의 핵심은 이끼가 아닐까 싶을 정도로 관리가 잘 되어 있다. 이끼 외에 다른 풀은 전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이다.



보라, 이 모습을! 어디에 풀이 있단 말인가. 




은각사 전체를 둘러보는 시간은 천차만별이다. 들어가서 중요한 건물들만 쓱 훑고 나오면 30분 이내. 한곳에서 찬찬히 감상하며 거닌다면 1시간에서 2시간 사이 정도 걸릴 듯하다. 아니면 하루종일 은각사에서만 시간을 보낼 수도 있다. 일정이 정해져 있지 않는 여행자라면 은각사 경내에 마련되어 있는 찻집에서 주구장창 앉아서 시간을 보내도 참 좋겠더라.

경내에는 기념품을 파는 가게도 마련되어 있다. 들어가서 한번 둘러보며 재밌다. 그중에서도 난 "순간을 살다"라는 제목으로 팔리는 아래의 DVD인지에 눈길이 갔다. 무슨 선승이 이렇게 토실토실한지. 뭐, 선승이라 하면 마르고 눈빛이 형형하며 고행을 일삼듯 할 것이라고 생각하는 나의 고정관념이 더 문제일지도 모르겠지만 말이다.



마지막까지 날 미혹에 빠뜨린 향 피우는 도구. 이걸 사려면 이에 어울리는 향도 사야 하고, 이거 하나의 가격이 몇 만원인데 이걸 가져와서 잘 쓸 수 있을지 고민하게 되고... 그냥 선승처럼 단칼에 물욕을 베어버렸다. 




교토에는 절과 신사가 수천 개라고 한다. 그만큼 하루에 여기를 다 둘러보는 것은 애초부터 무리다. 시간을 들여 찬찬히 돌아봐야 할 곳이 바로 교토. 마치 한국의 경주랄까? 정확히 비교해보지는 않았지만, 아마 경주보다 규모가 더 큰 것 같다. 일본인들도 제대로 보지 못하는 곳을 외국에서 온 내가 천천히 곱씹으며 다 둘러보는 건 처음부터 가능하지 않은 일이다. 게다가 계속 걷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마당에 더더욱 힘든 일이다. 오사카에 숙소가 있다면, 가와라마치역에서 우메다역까지 돌아가는 전철 시간은 아래와 같다.



가와라마치역에서 우메다역으로 돌아오는 평일의 전철 시간표. 빨간색 네모와 원에 들어간 시간이 우메다역까지 가는 급행 전철이다. 밤 10시 11분이 급행 막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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