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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 중의 덕은 양덕이라고 했던가?

그 말이 맞네. 내 인정한다.


양봉에 미친 사람들을 위해 양봉 도구를 판매하는 곳이 있다.

특히나 위와 같이 새로 디자인된 벌통을 만들어서 팔기까지 하네.


훌륭하도다.


양봉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은 한번씩 들어가서 참고하거나, 요즘 해외 직구가 유행이니 과감히 도전해 볼만하다.


더 많은 것은 다음 주소로 들어가 보시라. http://www.beethink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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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처에서 벌의 죽음에 대한 소식을 듣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꿀벌이 세상에 없으면 먹을거리의 절반이 빈다는 홀푸드(Whole Foods)에서 나온 상상의 사진도 있었다. 그걸 보면 아인슈타인이 진짜 말하지는 않았지만, 지구에서 벌이 사라지면 인류가 4년 안에 망할 것이라는 무서운 예언이 떠오른다. 또한 예전에 관심을 가지고 있었던 문제도 떠오르게 한다. 그건 질병과 기아를 통해 자신의 모든 벌을 갑자기 잃은 양봉가 아리스타이오스(Aristaeus)가 나오는 베르길리우스의 전원시(4. 281 – 558)이다. 이 고전의 우화가 오늘날과 어떤 연관이 있는가? 아리스타이오스 이야기의 중요성에 관하여 더 읽고, 어떻게 그의 조치가 현재 우리가 겪는 벌의 위기에 도움이 될 수 있는지 살펴보자. 






이 시는 "꿀벌을 모두 잃어 그것을 어떻게 새로 복원할지" 해결책을 찾으려는 아리스타이오스의 이야기로 시작한다(아리스타이오스와 꿀벌에 관한 더 자세한 이야기는 여기를 참조). 그러고 나서 그는 해결책을 알려준다. “예전에 죽은 수송아지의 썩은 피에서 꿀벌을 발생시키곤 하던" 방법인 bugonia이다. 


잔학한 희생 의식인 bugonia에 대한 설명이 계속되면서 실질적으로 단계별 방법을 알려준다. 그러나 결과는 기적과 초현실이다. 희생된 수송아지 시체를 젖에 담가 썩힌 살에서 새로운   떼가 자연스럽게 나타난다. 


다양한 의식들이 존재한다. 실제로 행해지든 아니든, 여기에서는 현재 벌의 위기에 처해 있는 우리에게 교훈이 될 시대를 초월한 신화적 비유로서 bugonia에 대해 알아보는 것이다.


아리스타이오스의 벌들이 죽었을 때, 그는 충격을 받고 당혹해 한다. 그 죽음의 원인을 찾으면서, 바다의 신 프로테우스에게 호소하여 결국 답을 얻게 된다. 벌들의 죽음은 유리디스의 죽음에 아리스타이오스가 역할을 한 죄에 대한 처벌이다(유리디스는 전설적인 음악가 오르페우스가 사랑하는 아내였음.) 아리스타이오스는 강을 따라 그에게서 도망가는 님프들을 좇아갔고, 강둑에 숨어 있던 뱀이 불행하게도 그녀를 물었다. 


이 이야기는 이어서 가장 유명한 부분으로 넘어간다. 그건, 실패하긴 하지만 죽은 유리디스를 찾아나선 오르페우스의 여행 이야기이다. 베르길리우스는 아리스타이오스에 대한 처벌을 자극하며 사별한 오르페우스를 묘사했지만, 의 죽음이란 실제 처벌은 참나무의 님프였던 유리디스를 따르던 님프들이 행한 것이었다. 






님프는 보통 특정 장소나 지형과 연관된 소수의 여성 자연신들이었다. 그들은 산과 숲, 강, 나무가 우거진 작은 골짜기, 시원한 동굴 등에 살았다. 그들은 자유롭고 춤과 노래를 좋아했다. 우린 그들을 자연 그 자체의 창조적 활동을 의인화한 것으로 볼 수 있다. 생기를 주는 봄의 분출로 가장 적절히 묘사할 수 있다. 


아리스타이오스는 양봉만이 아니라 치즈를 만들기 위해 우유를 응결시키고 올리브가 달리도록 야생 보리수를 길들이는 등 문명의 기술을 도입한 영광스러운 영웅이었다. 즉, 그는 인류의 선을 위하여 자연의 가공되지 않은 자원들을 다루는 작업을 했다. 


자연 또는 님프들이 아리스타이오스의 전문기술 영역이라면, 아마 그가 유리디스를 좇아간 것은 특별히 성적 욕망 때문이 아니라 일반적으로 이익을 위해 자연을 악용하는 인간의 본능이었을 것이다..


이 범죄에 대한 속죄를 위하여, 아리스타이오스는 앞에서 언급했듯이 수소의 희생을 수반하는 bugonia를 수행하도록 지시받는다. 수소는 전형적으로 인간에게 반은 길들여지고 반은 본능적인 점에서 특히 상징적인 동물이다.


우리는 생명을 위협하는 불가능해 보이는 임무와 맞서 싸우는 평균적인 남성보다 뛰어난 투우사가 영웅을 재현하는 스페인의 투우에서 이 매우 상징적인 표현을 살펴볼 수 있다. 격노한 수소와 마주서서 그는 자신의 동물적 본능의 열정과 얼굴을 맞대고 있다. 그러나 최후의 살해는 무턱대고 벌이는 잔학한 학살이 아니다. 그것은 아리스타이오스가 bugonia를 행하듯이 상세한 단계를 수반하는 통제가 잘된 의식의 행위이다.






<꿀벌 없는 세계World Without Bees>의 도입부에서 저자 Benjamin과 McCallum 씨는 지구라는 탄광에서 벌이 카나리아라는 이야기를 장황하게 반복한다. 그들의 건강은 지구의 미래의 복지에 대한 분명한 전조이다.


아리스타이오스의 벌의 죽음은 그가 저지른 범죄에 대한 처벌로 설명되지만, 그것이 불가해하거나 정당화되지 않는 것은 아니다. 사실 그것은 우리의 생명을 유지하기 위한 끊임없는 자연세계의 관대함을 지나치게 남용한 결과이다. 그의 무절제함은 질병과 병폐의 존저인 자연의 균형을 혼란시켰다. 이러한 관점에서, 벌의 죽음은 그저 물리학의 가장 기본적인 법칙에 대한 필연적인 반응처럼 보인다. 


2007년에 만들어진 군집붕괴(CCD)라는 용어가 도입된 이후, 과학자와 곤충학자, 양봉업자 들은 벌의 개체수가 급격하고 지속적으로 감소하는 정확한 원인을 분석해 왔다. Benjamin과 McCallum 씨는 몇 가지 가능성을 인용한다. 그것은 “유전자변형 작물, 농약중독, 침습성 기생충, 영양실조, 장거리 이동에 대한 스트레스”만이 아니라 과로라고 한다. 


그것은 우리가 다시 복잡한 현상에 대한 단일한 원인과 어떤 통일된 이론을 찾고 있는 일반적인 오류를 저지르는 것처럼 보인다. 단 하나의 원인만 있는 건 거의 없다. 위에 언급한 것들이 모두 유효한 원인이다. 각각은 생태학적 결과를 생각하지 않고 당연하다는 듯이 탐욕스럽게 지구를 약탈하는 우리가 지닌 아리스타이오스 성향의 사례이다.






유일한 일반적 해결책은 지구에 대한 우리의 태도를 바꾸는 것이다. 지구가 살아 움직이고, 우리는 그와 꾸준히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을 이해하는 것이다. 우리가 지구를 무례하게 취급하면, 님프가 꿀벌이 죽음으로 아리스타이오스에게 그랬던 것처럼 움직이지 않는 상태로 남아 있지는 않지만 반응하지 않을 것이다. 


아리스타이오스는 그의 행로가 죽음에서 부활을 통해 상징적이고 의무적인 통과의례를 수반하기 때문에 영웅이다. 새로운 벌 떼가 죽은 수소에서부터 태어났다. 그러나 그 행로가 영웅으로서 갖는 진정한 가치는 자신의 범죄에 대한 의식적인 인정과 자신의 타고난 본능을 순화시킴에 있다. 우리에게 그 가치는 우리의 현재 매우 긴급한 위기를 해결하기 위해 주의하고 모방해야 할 시대를 초월한 교훈이다. 


아리스타이오스처럼 우린 희생을 해야 한다. 이익을 위하는 우리의 욕망을 희생하고, 지구를 대하는 우리의 오래된 태도와 시대에 뒤진 방법을 희생하자. 우린 지구가 너무 관대하게 제공한 선물에 보답하여 새로운 인식으로 다시 태어나야 한다. 자연과의 관계에서 균형을 되찾으면 그 관대함이 벌을 포함하여 새롭게 꽃을 피울 것이다.




Read more: Why the Bees are Dying: An Ancient Solution to a Modern Problem | Inhabitat - Sustainable Design Innovation, Eco Architecture, Green Buildi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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